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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집주 학이편 12 있기 때문이며 크고 작은 것 모두가 和에서 나왔음이라. 예(體)와 화(用)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유자는 말하고 있다. 然이나 皆出於自然之理라 故로 其爲用이 必從容而不迫이라야 乃爲可貴하니 先王之道ㅣ 此其所以爲美而小事大事ㅣ 無不由之也ㅣ라 않는(조급히 굴지 않는) 뜻이라. 대개 예의 체됨이 비록 엄하나 그러나 다 자연의 이치에서 나옴이라. 그러므로 그 씀이 반드시 종용하고 박절하게 아니하여야 이에 가히 귀함이 되니 선왕의 도가 이 그 써 아름다움이 되는 바이니 작은 일 큰 일이 여기에서 말미암지 않음이 없느니라. 則亦非復禮之本然矣니 所以流蕩忘反하야 而亦不可行也ㅣ라 ○程子ㅣ 曰禮勝則離라 故로 禮之用이 和爲貴하니 先王之道ㅣ 以斯爲美而小大由之라 樂勝則流라 故로 有所不行者ㅣ 知和而和ㅣ오 不以禮節之면 亦不可行이니라 范氏 曰凡禮之體눈 主於敬而其用則以和爲貴라 敬者는 禮之所以立也ㅣ오 和者는 樂之所由生也ㅣ니 若有子는 可謂達禮樂之本矣니라 愚는 謂嚴而泰하고 和而節하니 此ㅣ 理之自然이오 禮之全體也ㅣ라 毫釐有差면 則失其中正하야 而各倚於一偏이니 其不可行이 均矣라 줄만 알고 화하는 데만 한결같이 하고, 다시 예절로써 아니하면 곧 또한 예를 회복하는 본연이 아니니 방탕한 데로만 흘러서 (예의 본체로) 돌아옴을 잃어 또한 가히 행하지 못하느니라. ○정자 가라사대 예가 이기면 떠나느니라. 그러므로 예의 씀이 화가 귀하니, 선왕의 도가 이로써 아름답고 작고 큰 것이 이로 말미암느니라. 즐거움이 이기면 흐르느니라. 그러므로 행하지 못할 바가 있으니 화할 줄만 알아 화하고 예절로써 아니하면 또한 가히 행하지 못하느니라. 범씨 가로대 무릇 예의 체는 공경을 주로 하고 그 씀인즉 화로써 귀함이 되느니라. 경이라는 것은 예의 써 서는 바요, 화라는 것은 음악이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니, 유자같 은 이는 가히 예악의 근본을 통달했다고 이를만하도다. 우는 엄하되 통하고, 화하되 조절하니 이는 이치의 자연함이오, 예의 전체라. 터럭 끝만치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그 중정을 잃어 각각 한쪽에 치우치리니 그 가히 행하지 못함이 골고루함이라.
논어집주 학이편 13 대표적인 문구중의 하나이다. “信近於義면 言可復也”는 말과 의리를 결합하여 말한 것으로, 말을 믿음직하게 하여 그 말을 옳게 내뱉었을 때 의에 가까우면 그 사람이 말한대로 회복된 것이라는 뜻이고, “恭近於禮면 遠耻辱也”사람이 살면서 부끄럽거나 욕된 행동을 하지 않으려면 공순한 행동에 달려있다. 따라서 공순한 행동을 하되 예절에 가까운 행동을 하면 평생 살도록 치욕이 멀어지는 것이다. 이런 것으로 인하여 그 친한 이를 잃지 아니한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종주가 될 것이다. 因은 猶依也ㅣ라 宗은 猶主也ㅣ라 言約信而合其宜면 則言必可踐矣요 致恭而中其節이면 則能遠恥辱矣요 所依者는 不失其可親之人이면 則亦可以宗而主之矣라 此는 言人之言行交際에 皆當謹之於始하야 而慮其所終하니 不然則因仍苟且之間하야 將有不勝其自失之悔者矣니라 공순은 공경을 이룸이오, 예는 절도있는 무늬라. 인은 의지함과 같음이라. 종은 주와 같음이라. 말을 약속대로 믿게 하고 그 마땅함에 합하면 곧 말이 반드시 가히 실천함이오, 공순을 이루되 그 절차에 맞게 하면 능히 치욕을 멀리할 것이오, 의지하는 바가 그 가히 친한 사람을 잃지 아니하면 곧 또한 가히 써 으뜸이 되어 주장하니라. 이는 사람이 언행 교제에 다 마땅히 처음에 삼가해 그 마칠 바를 염려하니, 그렇지 아니하면 인습이 되어 인하여 구차한 사이에 장차 그 스스로 잃음의 후회하는 것이 있으리라. |
첫댓글 恭近於禮면 遠恥辱也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