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의 향기를 가까이하지 못한 채 봄날이 가고, 연꽃을 감상하고 국화를 캐지 못하고 여름과 가을을 보내며, 눈 속의 매화를 찾음 없이 겨울을 보내는 것은 한 해를 헛산 것과 진배없다.
인간은 하늘과 땅과 더불어 우주 만물의 일부분이나 인간의 작은 지식의 오만함이 하늘과 땅의 존엄함에 도전하여 인간 스스로의 존엄성을 잃어버려 생명의 터인 자연을 병들게 하니 자연의 역습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인간의 무지함을 인지하여 무농약, 무비료, 복합영농의 순환하는 건강한 먹을거리 농사로써 자립적이고 생태적인 삶을 추구하며 꿈으로 존재했던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 생명이 샘솟는 터를 일구며 살고자 한다.
석이동에 내비치는 햇살만큼이나 이들 가족의 미소도 밝고 따스하다 석이동에 들어서며늦가을 산중 정취, 높푸른 하늘, 붉게 물든 나뭇잎들, 나뭇결이 살아 있는 식탁, 곳곳에 널려있는 산야초, 그리고 농산물들……. 나는 먼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백승일·이혜영 부부의 아름다운 삶에 푹 빠져 허우적거려야 했다. 우리는 흔히 도시 한복판에서 다닥다닥 붙어살아야 하고 좋은 차와 좋은 집에서 살아야 잘 사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간다. 백화점에 가서 비싼 물건을 사고 뮤지컬이나 영화를 보면서 문화생활을 해야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삶을 포기하고 봉화 석이동 자연의 품에 안긴 젊은 부부, 과연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부산 출신인 아내 이혜영 님과 영주가 고향인 남편 백승일 님의 귀농 이야기를 들어본다. 도시의 이방인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 공군제대 후 금융업에 종사했던 백승일(43) 님. 그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런 그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하루 빨리 도시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도시에서의 삶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도시를 떠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삶의 질적인 부분은 접어두고 양적인 팽창만을 추구하기 위해서 기를 쓴다. 내가 출세하려면 다른 사람들을 짓밟고 넘어가야 한다. 마치 제로섬게임처럼 말이다. 내가 이익을 보면 나로 인하여 반드시 피해를 당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그런 삶이 싫었다. 직장생활이란 조직의 한 구성원으로 기업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마치 노예처럼 일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마치 내 모든 것을 버려 몇 푼의 돈을 받는 삶이다. 그곳에 사람은 없다. 기업의 이윤만 있을 뿐이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백승일 님은 이런 인간적이지 못한 사회시스템에 더 이상 자신을 맡겨둘 수 없었다. 그의 이런 생각이 그를 도시의 이방인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방인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꿈 찾아 날아가기 위한 조기퇴직1998년, 백승일 님은 약간 늦은 나이에 이혜영 님(40)을 만나 결혼했다. 결혼하자마자 아내에게 귀농의 의사를 밝혔다. 처음엔 완강히 반대하던 부인 이혜영 님도 백승일 님의 설득에 점점 동화되어 갔다. 2003년 드디어 기회가 왔다. 명퇴바람이 불었다. 이때가 기회다 싶어 마지막 명퇴자금이 지급될 때 과감히 명퇴를 결정하고 귀농하기로 결심했다. 회사를 그만 두고 가장 먼저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개설하는 귀농학교에 등록하였다. 귀농학교를 수료하던 해에 귀농지를 봉화로 정하고 소천면 분천3리 자마리마을 한복판의 빈집을 얻어 이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이 마을로 먼저 귀농한 귀농학교 동기회장 심재흥 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과정에서 틈틈이 목수일도 배웠다. 마을사람들과 친화가 정착함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은 교육을 통해서나 귀농선배들의 경험담을 통해서 알고 있었던 터라 백승일·이혜영 부부는 이 점에 매우 많은 정성을 할애하였다.
석이동 마을입구 장승(좌) 백승일 이혜영 님의 농장 전경(우)
“다른 귀농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마을 분들과 얼마나 빨리 친해지고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가가 정착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도시에서의 삶과 시골에서의 삶은 그 방식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으며 도시생활에 익숙해진 귀농자들은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희들 역시 그런 생활방식을 깨는데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묻고 조언을 구했지요. 농사짓는 법도 하나하나 물었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자주 물어 봐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아마 당신들도 누군가를 위해서 가르칠 수 있다는 기쁨 같은 것이겠지요.” 2005년 9월, 백승일·이혜영 부부는 인근 마을인 분천4리 여내골 석이동 마을에 집이 딸린 5천평의 밭을 구입한 후 본격적인 정착을 위한 새로운 삶의 프로젝트에 돌입하게 된다. 아무 것도 모른 채 무작정 시골로 이사와 좌충우돌하면서 1년을 보내면서 마을 분들에게서 농사의 기술을 배우고 산과 들에 자생하는 산야초를 찾아 다녔다. “저는 산과 들에서 나는 식물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수렵과 채취를 좋아해요. 현재의 농사방식만으로는 농촌에서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를 극복하는 해답이 산에 있습니다. 산과 들에는 생명력 있는 먹을거리가 계절마다 다양하게 자랍니다. 특히 병의 자연치유에 좋다는 생약초도 많지요. 저는 기본적인 농사일 이외에 지천에 널려있는 약용·식용식물을 이용하는 것이 시골에서의 정착을 많이 도와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자연을 소중히 여겨 식물을 보존하고 가꾸는 것도 필요하겠지요. 요즘 무분별한 산야초 채취가 산을 황폐화시킨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정말 조심해야겠지요. 그러면 산은 아낌없이 우리들에게 베풉니다.” 백승일·이혜영 부부는 시골에서 산다는 게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다름을 절실히 느꼈다.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우고 시골에 내려가지만 계획대로 되는 것은 거의 없었다. 뜻하지 않은 문제들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땅 문제, 집 문제, 아이들 교육문제, 생활비, 농장관리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백승일 님은 이러한 문제해결 방법으로 초심 유지, 가족간의 사랑, 인간사랑을 제시했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실천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여내골에 메아리친 17년만의 아기 울음소리
다른 마을에도 마찬가지겠지만 귀농자의 출산은 마을의 경사다. 도시에서 태어난 아들 건우가 이곳에서 동생을 보았다. 아기 울음소리가 끊어진지 17년만에 태어난 딸 건영이를 축하하는 동네잔치가 벌어졌고 마을 전체를 들뜨게 만들었다. 그러나 건영이가 태어나기까지 이혜영 님의 마음 고생이 컸다. 임신한 후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이는 힘든 농사일을 임신 중에도 계속해야 했던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앞날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이제 생활비가 더 들어가야 할 텐데 현재의 농사만으로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다면 또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까?’ 등으로 머릿속은 복잡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 아내의 옆에는 늘 남편 백승일 님이 있었고 산후조리를 할 때는 한 달 동안 옆에서 아내를 돌봤다. 그런 사랑이 없었다면 이혜영 님은 농촌에서의 생활이 너무나 버거웠을 것이다. 우울증과 불안감은 건영이가 태어난 후 눈처럼 녹아내렸다.
희망과 사랑은 산골에서 누리는 행복의 버팀목이다(좌) 산골에 사는 건우는 도시에서보다 친구가 더 많아졌다(우) 미래에 대한 희망 살림살이
석이동농장의 계절별 농ㆍ임산물, 먹을거리 봄(4~5월) : 두릅, 산나물, 봄나물, 오가피 나물 등 여름(6~8월) : 감자, 더덕, 쌈 채소, 토마토, 수박, 옥수수, 효소, 오가피 등 가을(9~11월) : 풋고추, 건 고추, 고춧가루, 콩, 고추장, 밤, 고구마, 효소, 오가피 등 겨울(11~3월): 건 고추, 고춧가루, 메주, 고추장, 겨우살이, 효소, 오가피 등
높은 나무에서 채취한 겨우살이
백승일·이혜영 부부가 현재 짓고 있는 농사는 다양하다. 밤, 고추, 고구마, 울타리콩, 감자, 토마토, 옥수수, 수박, 토종오가피, 콩 등이 있다. 또한 산에서 나는 두릅, 산나물, 더덕, 겨우살이를 채취하여 판매하고 있으며 메주, 고추장, 효소, 고춧가루 등을 만들어 수입을 올리고 있다. 올해 농산물과 임산물을 판매해 얻은 수입은 대략 400 여만 원, 그 외에 마을의 잡일을 하여 올린 농외수입 800만원을 합하면 1,200만원의 수입이 된다. 작은 수입이지만 만족한다고 하는 두 사람의 표정엔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있었다. 회원과 함께, 자연과 함께TV가 없는 백승일·이혜영 부부의 작은 천국 석이동. 비록 육체노동이 지치게 할 때도 있지만 지금까지 그 어떤 삶보다 행복하다. 내 손으로 생산한 농산물이 높은 값에 팔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초보농부의 어설픈 농사, 그러나 누구보다도 정직하게 최선을 다했다. 올해는 유난히도 일조량이 적어 고추농사에 애를 먹었다. 태양초를 회원들에게 보내야 하는데 햇볕 드는 날이 거의 없어 햇볕에 말리지 못했다. 회원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가격을 낮췄다. 이렇듯 백승일·이혜영 부부는 회원들에게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농촌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회원들인지라 한 분, 한 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원칙을 지키면서 최선을 다한다면 농촌에서의 정착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 도농간의 직거래방식을 통한 삶의 교류, 그것은 단순히 농산물을 판매하고 구매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회원이 석이동을 찾는 것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이 부부의 아름답고 행복한 삶이 도시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농촌을 아름답게 짊어지고 갈 젊은 귀농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집 뒤 비탈밭에서(좌) 산에서 나는 여러 재료로 효소를 담갔다(우) “이제 귀농한 지 만 4년이 됩니다. 아직은 넘어지고 깨어지는 시기이지만 머지 않은 날에 아름다운 정착을 이루어 낼 것입니다. 오가피 농장, 밤, 감, 그리고 저희들이 사랑하는 저 아름다운 대자연의 나무와 풀들, 새들의 노랫소리, 바람소리……. 봄이면 들꽃 한 송이에 가슴 떨리고 여름이면 초록의 빛깔이 너무 아름답고, 가을이면 오색단풍이 마음까지 채색하며 겨울이면 흰솜털 이불이 삶을 포근하게 만듭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대자연의 정취를 마음껏 누리지 못한다면 참 삶을 살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저희들이 만들어 가는 달콤한 삶,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석이동자연농장 http://cafe.naver.com/seogido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