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1
하프 한 대가 집 한 채 값이라는데...
하프만 있으면 명문대 거저 간다는데...
이제사 고백합니다.
11월 무대가 '하프'로 정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동시에 제 머리 속에 떠오른 말들입니다.
한 마디로 '돈 있으면 할 수 있는 악기이고 부모 잘 만난 덕 보는 악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는 말이지요.
게다가 천상의 울림, 천사의 악기 등으로 불려온 하프의 이미지가 있어
하피스트들은 땅을 밟지 않고 살 것 같은(?) 위화감도 들었습니다.
우리처럼 전세값 오른다는 소리에 가슴이 내려 앉고 생선을 더 싸게 사기 위해 문 닫을 시간에 마트장에 달려가고
김장철이 지나면 허리병이 도지고... 하면서 살진 않을 것 같은 생각 말입니다.
제 무식 탓이라고 하기에는 사실 하프와 대중이 만나기는 쉽지 않은데에 이유가
있을 거라 변명을 해봅니다.
하프는 오케스트라 공연에서도 단 한 대 뿐이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데다
하프 앙상블 공연이나 독주회 같은 것은 자주 접할 수 없어 '알고 보고 들을' 기회가
없어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말이지요
고백 2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대공연장이고 하우스 콘서트고 무지하게 다닌 것 같은데
정말 하프 공연은 기회가 없었네요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내 찾아가본 하프 독주회.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의 스칼렛 오하라처럼 허리 조인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아름다운 하피스트가
조명 받아 더 빛나는 하프 앞에 나비처럼 사뿐히 앉는 모습을 볼 때까지
저는 팔짱을 끼고 앉아 마치 연극무대의 배우를 보는(?) 눈으로 연주자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팔짱이 풀리고 자세가 앞으로 몰리기 시작한 것은 두 곡이 끝나기도 전이었습니다.
하나의 악기에서 한 명의 연주자가 내는 소리라고 믿기지 않던 풍부하고 강렬한,
사람 세상에서 만들어져 낸 것 같지 않은 신비롭고 낯선,
눈을 감고 있으면 내 심장에 현이 있어 퉁기어지는 듯한...
아, 왜 저는 이 소리를 모른 체 반생을 살아온 것일까...
휴식 후 두 번째 무대가 시작되자 연주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케스트라 연주 때 하피스트는 악보와 지휘자에 눈을 주기 힘들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흔 일곱개의 현을 제대로 뜯는 것만으로도 눈이 돌 지경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하피스트를 백조라고 하는 이유도 백조의 고고한 생김 때문이 아니라 수면 밑에서
난리가 나는 백조 발놀림을 빗댄 거라지요.
저 우아한 드레스 밑의 두 발은 일곱 개의 페달을 오가느라 음악이 끝날 때까지
쉴 틈 없이 놀려져야 합니다.
하피스트의 손톱은 열 여덟개란 말이 있습니다.
연습을 하면서 피멍이 들고 찢겨 터져 아물고 하면서 손가락 끝에 잡힌 굳은 살
때문이라는 겁니다.
연습 고되기는 어느 악기와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라 하나
막상 공연을 하면 세계 최고 연주자라 해도 실수 없는 무대가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연주 자체가 고난이도라고 하지요.
그게 관람석 뒷자리에서도 여실히 보였습니다.
대개의 공연 무대처럼 연주자들이 관객을 향해 살짝 미소를 띄거나 동료들끼리
눈짓을 주고 받는 등의 여유를 상상 못할 정도로
저 마흔 일곱개 현과 일곱개 페달의 복잡한 악기에서 실수 없이 한 곡 한 곡을
연주해내기 위한 하피스트의 고도의 긴장과 몰입이 관객에게 전해진 것이지요.
하프 연주를 직접 보고 제가 떠올렸던 선입견은 깨끗이 지우기로 했습니다.
설사 부모 잘 만나 우아하게 시작은 할 수 있다 해도 연습과 공연은 절대 우아하게 할 수 없겠구나.
그 전쟁을 겪고 연주자로 무대에 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겠구나.
더군다나 저희 11월 무대의 두 주인공은
40년 넘게 하피스트로 살아온 국내 최정상 하피스트로 코리아 심포니 수석주자이자
이화여대 교수인 윤혜순씨와 어머니의 피를 받아 하프 영재로 성장한 차세대 기대주, 딸 정지인씨입니다.
쉽게 이룰 수 없는 자리라는 것을 단 한 번의 공연으로도 느꼈습니다.
그런데요.
모녀는 하피스트로서 연습과 공연을 위한 전쟁 뿐 아니라
엄마와 딸로서 피만 안튀는(?) 전쟁을 치뤘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처럼...
고백 3
딸은 엄마의 젖냄새와 자장가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대신 크리스마스를 단 한 번도 함께 보내지 않은 어머니, 집에 있으면서도
늘 제자들을 가르치던 어머니, 하프영재로 발탁돼 어머니를 뒤를 잇겠다고 하는 딸에게
단 한 번도 잘한다 칭찬하지 않던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어머니는 딸의 애교와 티없는 웃음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외동딸이라 그럴까, 외로움을 많이 타고 예민했던 아이, 누릴 것 다 누리게 하고 키웠는데
고민 많고 불만 많았던 아이, 사춘기 되자 하루가 멀다 하고 머리 아프다, 학교 가기 싫다고 해
가슴에 천근 돌덩이를 얹어놓던 아이. 악몽 같았던 아이의 사춘기를 기억합니다.
그 전쟁 같은 시간을 지나 이제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딸이라고 말하며 화안히 웃는 모녀.
연습과 공연도 어머니가 있어, 딸이 있어 더 행복하다는 모녀,
도대체 모녀 사이에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번 달 제6회 포도나무 하우스 콘서트에서 하피스트 모녀의 전쟁 같은 사랑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천상의 소리 하프의 음률 보다 더 아름답고 감동적인.
어쩌면 당신과 아이, 당신 부부의 이야기이기도 할....
다음 주 금요일인 22일 오후 8시,
이번에는 파주출판단지 중앙에 위치한 ㈜김영사의 4층 콘서트 홀에서 뵙겠습니다.
일 시 : 2013년 11월 22일(금) pm 8
장 소 : 김영사 사옥 4층 콘서트홀 (파주출판단지내)
예약처 : cafe.daum.net/podohcon (다음카페 포도나무 하우스콘서트)
문의전화 : 1600-4695
입장료 : 성인 1만5원 청소년 1만원 어린이(취학아동) 5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