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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숨
피를 토할 듯 울어대던 개들이 일순간 조용하다. 아빠가 고른 것은 황소 새끼 만한 누렁이이다. 아침부터 <풍년보신탕>에서 주문이 들어왔다. 개고기 스무 근. 아빠가 고른 개 한 마리면 충분히 스무 근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초복이 엿새 앞으로 다가왔다. 모든 일에는 성수기라는 것이 있다. 초복과 중복 사이. 개고기가 가장 많이 팔려나가는 시기다. 식용 개를 키우는 아빠에게는 그 시기가 성수기인 것이다. 성수기 동안 아빠는 매일 열 마리도 넘는 개를 잡아야 한다. 우리에서 끌려나온 개는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으로 버틴다.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닥칠 운명을 아는 듯하다. 하지만 한식경도 지나지 않아 개는 온몸이 까맣게 그을린 채 부위별로 토막이 나 있을 것이다.
마당 한쪽에는 사십여 년의 세월을 버텨낸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 옆으로 프로판가스 통이 보인다. 감나무 아래에는 개 오줌과 핏물이 흥건히 고여 있다. 감나무 줄기를 관통한 쇠막대 아래로 길게 늘어진 노끈은 핏물로 얼룩져 있다. 그래서일까. 감나무는 사형대를 연상시킨다. 초복을 앞둔 이 즈음, 사형대에서는 하루에 다섯 마리 이상의 개들이 처참히 죽어나간다. 목이 졸리고 온몸이 까맣게 그을린 채. 개들이 싸지른 오줌과 낭자하게 흘린 피가 거름이라도 되는 것일까. 감나무는 매해마다 6월이면 노란색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고, 가을에는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다. 가을이 깊어지면 감나무는 붉은 홍시를 땅바닥으로 뚝뚝 떨어뜨리는 것이다. 하긴, 동물의 분뇨와 피만큼 식물에게 거름 진 것도 없을 것이다.
아빠의 우악스런 손아귀에 목덜미가 붙잡힌 채 감나무로 끌려가던 개와 눈이 마주친다. 붉게 충혈 된 개의 눈동자를 피할 수 없다. 마치 거울 속 내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다. 눈동자 위로 죽음의 공포를 넘어선 체념이 언뜻 스치고 지나간다. 개의 눈동자를 간신히 외면하는 순간, 한기가 몰려들며 손가락들이 끝에서부터 딱딱하게 굳는다. 또렷하던 의식이 포말처럼 하얗게 끓어오른다. 한순간 나는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 것이다.
개의 목을 감나무에 매다는 순간, 나는 까마득히 의식을 잃는다.
내 의식이 돌아왔을 때, 아빠는 수돗가에서 개고기를 손질하고 있다.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개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긁어내고 있다. 온몸이 까맣게 그을린 개는 배가 갈린 채 네 다리를 어정쩡하게 벌리며 만세를 부르고 있다. 뱃속에서 위를 드러내는 손놀림이 자못 거칠다. 위 속에서 채 소화되지 못한 밥 알갱이들이 쏟아진다. 아빠는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밥 알갱이들을 하수구 구멍 속으로 흘려 넣는다. 까맣게 그을린 개의 몸은 부위별로 나뉘어진다. 칼을 내려칠 때마다 우지직 소리와 함께 핏물이 튄다. 머리, 목살, 갈비, 다리, 배받이. 그리고 투구를 연상키는 머리와 불알.
아빠는 토막 낸 덩어리들을 물에 대충 헹구어 씻은 후, 자주색 쌀자루에 집어넣는다.
개 잡는 사람이 되지 않았다면 아빠는 아마도 사람 잡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나충식(羅忠式). 부리면 나씨. 금산(錦山) 바닥에서 주먹 깨나 쓰는 사람들 치고 부리면 나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지금은 산속에 들어앉아 황소 만한 식용 개나 때려잡고 있지만, 한때 아빠는 금산과 마전, 옥천 바닥을 길길이 휘젓고 다녔다. 그래서일까. 금산 바닥의 보신탕 전문 식당에서 팔리는 개고기의 대부분은 아빠의 손을 거쳤다. 아빠는 개고기 공급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아빠 자신은 여간해서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개를 잡는 동안 아빠는 이미 개고기를 배부르게 먹은 것처럼 포만감을 느끼는 지도 모른다. 음식을 만드는 동안 냄새에 취해 포만감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그 대신 아빠가 즐겨 먹는 것은 개의 피다.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피를 아빠는 냉수 마시듯 들이켠다. 아빠의 몸 속 혈관에는 어쩌면 사람의 피가 아니라 개의 피가 흐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어느 새 아빠를 태운 트럭이 산을 내려간다.
늘 그렇지만, 간질발작을 하고 난 뒤라서 그런지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든다. 어느 정도 기운이 회복될 때까지, 나는 고치 속의 누에처럼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어야 한다. 첫 간질 발작이 나를 찾아온 것은 초경이 끝난 직후다. 체육시간에 운동장을 뛰다가 나는 첫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기력이 허약해졌는지 지난 봄부터 간질발작이 잦다. 한 번 발작을 일으키고 쓰러질 때마다 정신과 눈빛이 눈에 띄게 흐려지는 듯하다. 사팔뜨기처럼 내 두 눈은 이미 초점을 잃었다. 치매와도 같은 망각증상과 멍한 상태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
부엌에서 여자가 바가지를 들고 나온다. 바가지에는 상추가 소복하게 들어 있다. 조금 전까지 아빠가 개고기를 토막내던 수돗가에서 여자는 상추를 씻는다. 한 장 한 장 상추를 씻는 여자의 손놀림이 여유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여자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귀신같은 년!'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온다.
아빠가 여자를 이곳 산속 집에 데리고 온 것은 지난 봄이다. 개고기를 대주는 식당이나 술집에서 데리고 왔을 것이다. 여자는 아빠가 욕설을 퍼부어도 실실 웃음만 흘릴 뿐이다. 새벽에 일어나 개죽을 끓이고, 빨래를 하고, 밥을 짓는 것이 여자가 하는 일이다. 그리고 여자는 밤마다 아빠를 위해 기꺼이 가랑이를 벌린다. 유난히 씻기를 싫어하는 여자는 가랑이에 정액을 묻힌 채 잠이 들 것이다. 여자가 나를 향해 실실 웃음을 흘릴 때마다 나는 여자의 가랑이를 씻겨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허연 비누거품이 묻은 손으로 여자의 그곳을 거칠게 문질러대고 싶다.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아빠가 이곳 산속 집까지 끌고 들어오는 여자들을 나는 절대로 믿지 않는다. 망령 들린 노인네처럼 나는 그녀들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의심한다. 발작을 일으키며 무의식 속으로 빨려드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그녀들에게서 단 한순간도 경계의 눈빛을 거두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귀자가 내가 남긴 나쁜 기억 때문이다.
귀자는 유일하게 내가 엄마라고 부르면서 따라다녔던 여자다. 하루가 다르게 가물가물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귀자는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어떻게 잊혀질 수 있을까. 귀자는 내게 기꺼이 자신의 젖을 물려주었던 것이다. 내 입술에 물려진 귀자의 유두에서는 거짓말처럼 젖이 흘러나왔고, 나는 달지도 쓰지도 않은 비릿한 젖을 입술을 부르트도록 빨아먹다가 잠이 들었다. 내가 잠든 뒤면 귀자는 퉁퉁 부어오른 다른쪽 젖을 아빠의 입술에 물려주었을 것이다. 아마도 귀자는 그랬을 것이다. 해산을 하자마자 아빠를 따라서 내뺐는지, 옷이 흥건히 젖도록 넘쳐나는 젖을 주체하지 못했으니까.
'내 젖은 참젖이야.'
어린 계집애 같던 귀자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쟁쟁거린다. 귀자의 젖을 먹어서였을까. 그 무렵 나는 키가 한 뼘이나 자랐고 토실토실하게 살이 올랐다. 아직 초경을 맞기 전이었다. 하지만 귀자로 인해 나는 오른쪽 다리에 화상을 입었다. 젖이 바닥날 즈음 귀자는 나를 물이 펄펄 끓어오르는 가마솥에 밀어 넣고 이 산속 집을 떠났다. 귀자가 싸들고 나간 가방 속에는 오백만 원이나 되는 돈 뭉치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아빠가 근 석 달 가까이 귀자를 찾아 전국을 샅샅이 돌아다녔지만 끝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아빠가 만약 귀자를 찾아냈다면 발가벗긴 채 감나무에 거꾸로 매달았을 것이다. 밤마다 나는 귀자를 감나무에 매다는 상상을 한다. 빈 거푸집처럼 쪼그라든 젖을 늘어뜨린 채 꽃 핀 감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귀자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
어쩌면 지금 나는 귀자가, 귀자의 젖무덤이 그리운 것은 아닐까. 목이 마르다. 목안이 바싹 타 들어가는 것만 같다.
'귀자의 젖을 한 모금만이라도 입안으로 흘려 넣을 수 있다면…….'
간질 발작 뒤에 찾아오는 극도의 피로감 속에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한다.
아빠를 태운 트럭이 땅거미를 이끌고 돌아온다. 여자는 마루에 매달아 놓은 전구에 불을 켜고, 빨래를 걷는다. 하루 종일 마당 빨랫줄에 널어놓은 옷가지들에는 개털이 엉겨붙어 있을 것이다. 마당 솥에서는 개들에게 먹일 죽이 끓고 있다. 돼지비계와 사료, 식당에서 얻어온 음식 찌꺼기가 죽을 끓이는데 들어가는 재료다. 잘 먹여야 개들은 살이 오르고 조금이라도 근수가 더 나간다.
저녁은 돼지고기 목살이다. 여자는 부지런히 굽기만 할 뿐 돼지고기를 한 점도 입으로 가져가지 않는다. 맨밥에 밴댕이젓을 싼 상추쌈만을 연신 입이 터지도록 밀어 넣는다.
개들도 잠든 새벽. 내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지는 소리들 때문이다. 물 끓는 소리, 부엌 바닥에 슬리퍼가 끌리는 소리, 찬장 문 여닫는 소리…….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분명하다. 내 귀는 개의 귀만큼이나 예민하다. 특히 가수면 상태에서는 바퀴벌레가 방바닥을 기어다니는 소리까지도 감지할 수 있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여보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코고는 소리가 우렁차고 불규칙한 것으로 보아 아빠는 깊게 잠들었다. 결국 나는 이불 속에서 몸을 빼내고 만다. 방문을 소리나지 않게 열고 나와 마당으로 나간다. 부엌 문틈 사이로 새나온 불빛이 마당에 낫처럼 박혀 있다. 발소리를 죽이고 부엌 쪽으로 걸어간다. 문틈 사이로 초점 없는 눈을 가져간다.
여자가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무엇인가를 이빨로 물어뜯고 있다. 개고기가 틀림없다. 부엌 공기 중에 퍼져 있는 냄새만으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개고기 특유의 노린내. 그것은 그 어떤 양념을 가한다 해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 생강과 마늘을 짓이겨 넣고 된장을 아무리 쳐 발라도 개 노린내는 감춰지지 않는다. 여자는 주먹만한 개고기를 덩어리째 움켜쥐고 걸신들린 사람처럼 우악스럽게 뜯어먹고 있다. 오직 개고기를 먹는 것에만 여자의 온 정신이 집중되어 있다. 평소 여자가 내게 보여주던 모자란 듯하면서도 어수룩한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실뱀이 기어가듯 등골이 서늘하다. 천장에 매달아 놓은 전구 불빛 때문일까. 여자의 눈빛이 섬뜩하면서도 날카로운 광채를 발한다. 여자는 낮에 아빠 몰래 개고기 한 덩어리를 숨겨둔 것이 분명하다.
아귀도에 빠진 귀신의 모습이 저렇지 않을까. 아궁이는 마치 여자의 가랑이를 향해 쩌억, 입을 벌리고 있는 아귀도의 문(門) 같다. 고깃덩이를 다 해치우고 긴 혀를 내밀어 손가락에 묻은 기름기를 핥아먹으려는 순간 아귀도는 여자를 삼켜버릴 것이다. 정액이 덕지덕지 말라붙은, 그 더러운 자궁부터 천천히…….
매일 밤 여자는 아빠와 내가 잠들기를 기다려 몰래 개고기를 삶아 먹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지난 봄 아빠를 따라서 이곳에 왔을 때보다 여자는 살이 올랐다. 눈가의 검은 그늘도 옅어지고, 지푸라기처럼 푸석하던 머리칼에도 윤기가 돌았다. 이곳에 들어올 때만 해도 여자는 해골처럼 마르고 얼굴이 누렇게 뜬 것이 병색이 완연했다.
개고기를 다 해치운 여자는 바가지를 이용해 솥에 든 물을 퍼 하수구로 버린다. 나는 간신히 발을 옮겨 방으로 돌아온다. 산속이 환하게 밝아서야 겨우 잠을 이룬다.
이른 아침부터 개를 잡았는지 피비린내와 단백질이 타면서 풍기는 냄새가 마당 공기 중에 가득하다. 해는 벌써 중천에 떠 있다. 여자는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물에 불린 마늘을 까고 있다. 나를 보고는 히죽 웃는 것이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
밴댕이젓을 안주로 소주 한 병을 비운 아빠는 개 네 마리를 숨 돌릴 새도 없이 잡는다.
철컹철컹, 시멘트 바닥에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아까부터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도사 투견 '성길'.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마치 권좌에서 물어난 사자 같다. 갈색의 짧은 털로 뒤덮인 몸 곳곳에는 이빨 자국 따위 영광의 상처가 훈장처럼 남아 있다. 졸음이 몰려오는 듯 성길의 두 눈은 반쯤 감겨 있다.
익히지 않은 돼지고기 앞다리 한 근. 그것이 성길의 점심이다. 핏물이 붉게 도는 돼지고기 덩어리를 성길의 발 근처에 던져준다. 냄새를 맡던 성길은 두 앞발로 돼지고기 덩어리를 붙잡고 천천히 뜯어먹기 시작한다. 송곳 같은 이빨로 살점을 물어뜯을 때마다 길게 늘어진 두 볼이 물주머니처럼 출렁거린다. 성길이 그악스럽게 물어뜯고 있는 것이 돼지고기가 아니라 내 허벅지인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한때 아빠는 성길을 데리고 전국의 불법 투견도박판을 돌아다녔다. 투견꾼들 사이에 성길은 명성이 자자했다. 주인에 대한 절대적인 굴복, 지치지 않는 투지, 어떠한 고통도 끝까지 참아내는 인내력, 한 번 물면 숨이 끊어질 때까지 절대로 놓아주지 않는 집요함……. 젖먹이 때부터 아빠의 손에 길러진 성길은 투견으로서 갖추어야할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성길은 불법 투견도박판의 돈을 긁어모았고, 그 돈의 대부분을 아빠는 도박판에서 날려버렸다. 육식동물의 포악성을 길러주기 위해서였을까. 아빠는 늘 성길에게 핏물이 뚝뚝 흐르는 날고기만을 먹였다.
성길이 아빠를 향해 달려든 것은 육 년 전이다. 충남 보령의 산속에서 벌어졌던 투견 도박판에서 돌아온 날 밤. 성길은 술 취한 아빠를 향해 굶주린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금산경찰서에서 경찰들이 달려오고 총을 쏠 때까지 성길은 아빠의 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투견 도박꾼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한 투견다웠다. 그대로 쓰러진 아빠는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피를 많이 흘렸고, 가문 강줄기처럼 바닥난 혈관 속을 다른 사람의 피로 채워 넣어야 했다. 성길의 오른쪽 앞다리에는 그때 박힌 총알 자국이 남아 있다.
아빠는 결코 성길을 감나무에 매달지 않을 것이다. 쇠사슬에 묶어둔 채 아빠의 곁에서 천천히 늙어죽게 할 것이다. 다른 개들이 감나무에 목이 매달린 채 비참하게 죽어 가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게 하며.
갑자기 우리 안의 개들이 미친 듯이 짖어댄다. 한 놈이 짖으면 다른 놈들도 따라서 짖어댄다. 산길을 올라오는 오토바이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영식이다. 오토바이는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마당 수돗가 옆에 멈춰 선다. 영식이 오토바이에서 내린다. 짧게는 사흘에서 길게는 열흘씩 영식은 대처를 떠돌다가 이곳 산속 집으로 돌아온다. 이번에는 엿새만이다.
오토바이 뒷좌석에 고정해 놓은 우리 안에 개 한 마리가 들어 있다. 뱃살이 통통하게 오른 누런 진돗개다. 오토바이에 실려오는 동안 오줌을 싸질렀는지 지린내가 진동을 한다.
아빠가 영식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간다. 아빠와 마주 서 있는 영식은 한없이 왜소해 보인다. 영식은 아빠보다 두 뼘 정도 키가 작고 오이지처럼 비쩍 말랐다. 그래서인지 마치 맹수의 이빨에 목덜미를 잡힌 노루를 보는 것 같다. 아빠가 우리를 열고 진돗개를 땅바닥으로 내팽개친다. 아빠의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목덜미가 잡히는 순간 오줌을 지린 진돗개는 꼬리를 내리고 땅바닥을 벌벌 긴다.
아빠는 진돗개의 모가지를 우악스럽게 움켜잡고 감나무 쪽으로 질질 끌고 간다. 몇 분 후면 진돗개는 온몸이 까맣게 그을린 채 혀를 길게 빼고 죽어 있을 것이다.
영식이 아빠를 따라서 이곳 산속 집에 온 지도 벌써 이십 년이 다 되어간다. 대전역 뒷골목 중앙시장 바닥. 그곳이 바로 아빠가 영식을 발견한 곳이다. 어물전의 돈통을 훔쳐 달아나던 사내아이를 잡아서 데려온 것이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만, 엊그제 있었던 일처럼 또렷하게 떠오른다. 부모로부터 버려졌던 것일까. 영식은 자신의 이름도, 나이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나영식이란 이름과 열 살이라는 나이. 그것은 아빠가 지어준 이름이었고 나이였다. 어쨌든 이십 년의 세월이 흘러 영식은 이제 서른 살이 되었다.
어쩌다가 영식은 아빠 같은 사람의 마수에 걸려들었을까. 악랄한 포주. 앵벌이만 시키지 않았을 뿐이지 아빠는 포주나 다름없었다. 매일 밤 끊임없이 이어지는 구타로 영식의 몸에서는 하루도 피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나는 왜 그랬을까. 첫 간질 발작이 있던 날 밤. 나는 영식의 방으로 몰래 숨어들었다.
'도망쳐!'
날개가 부러진 새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는 영식의 귀에 대고 내가 그렇게 소리쳤던가. 날이 희미하게 밝아올 무렵, 영식은 부엌에 불을 질러놓고 도망쳤다. 새벽빛 속에서 검게 타오르던 연기와 넘실넘실 춤을 추던 불꽃. 아빠는 불길을 잡자마자 트럭을 몰고 산길을 내려갔다. 그리고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영식을 붙잡아 왔다. 나는 영식이 죽는 줄로만 알았다. 아빠는 영식을 발가벗겨 놓고 고무호스를 미친 듯이 휘둘렀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채 할딱할딱 숨을 몰아쉬는 영식의 발목에 녹슨 쇠고랑을 채웠다.
독하게 마음만 먹는다면 영식은 아빠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아빠가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곳으로 달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영식을 볼 때마다 나는 속으로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하지만 영식은 내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대도 아빠의 마수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영식은 어쩌면 아빠가 늙고 병들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늙고 병든 포주의 발목에 녹슨 쇠고랑을 채우고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려는 것은 아닐까.
개 노린내와 분뇨냄새, 돼지기름 냄새가 역하게 코를 후벼판다. 내가 나타나자 우리 안의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댄다. 예순 개의 우리는 형무소 내부처럼 2열 종대로 놓여 있다. 우리와 우리 사이에 파놓은 골에는 똥과 뒤섞인 오줌이 질퍽하게 고여 있다. 파리와 잠자리, 지렁이 따위가 간혹 그 안에서 죽어 있기도 하다. 우리 하나마다 개가 한 마리씩 들어 있다. 두 마리씩 넣기에는 우리가 너무 작기도 하지만 살을 찌우기 위해 일부러 한 마리씩 넣는다.
우리 안에서 이미 반쯤 미쳐버린 개들은 이빨로 밥그릇과 쇠창살을 물어뜯고 바닥을 긁어댄다. 흡사 광견병에 걸린 개들 같다. 어쩌면 개들 사이에 광견병이 나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사나운 개라도 아빠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벌벌 긴다.
산속이라서 유난히 무덤이 많다. 버려진 채 엉겅퀴 따위 풀들로 우거진 무덤, 화려한 비석이 문지기처럼 지키고 서 있는 무덤, 자궁 속 쌍둥이처럼 나란히 누워 있는 무덤, 밤나무 그늘에 가려진 무덤……. 지천으로 널린 수많은 무덤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무덤은 엄마의 무덤이다.
엄마는 내가 세상에 첫울음을 터트리는 순간, 숨을 거두었다. 그래서인지 엄마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은 없다. 내가 엄마의 무덤을 찾는 것은 오직 엄마의 무덤 앞에 세워진 비석 때문이다. 머룻빛 비석에는 아무런 글씨도 새겨져 있지 않다. 엄마의 이름이나, 죽은 해의 연도조차도 적혀 있지 않다.
손을 뻗어 비석을 어루만진다. 햇볕에 잘 데워진 비석은 따뜻하다. 기괴한 정적을 뚫고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무덤 위로 길게 늘어진 밤나무 잎들이 쏴아,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이곳 산에는 밤나무가 유난히 많다. 잠이 쏟아진다. 따뜻한 기운이 전신을 어루만지는 듯하다. 눈이 저절로 감긴다. 심장이 물고기의 부레처럼 팽팽하게 부풀어오르며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 같다.
눈을 떴을 때 영식이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집에서부터 나를 따라왔던 것일까. 영식은 아무 말도 없이 내 옆에 나란히 눕는다. 영식과 내가 엄마의 무덤가에 나란히 누워 있는 것을 본다면 아빠는 영식을 죽이려 들 것이다. 어쩌면 감나무에 매달지도 모른다.
"한날 한시에 죽어 한 무덤에 묻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내 목소리는 땅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음습하다. 영식은 아무 말도 없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빗물에 축축이 젖은 흙더미가 영식과 내 몸을 뒤덮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흙더미 위로 푸른 풀들이 자라나 그대로 무덤을 이루었으면……. 나는 손을 뻗어 영식의 손을 움켜잡는다. 갈퀴처럼 앙상하게 마른 손은 의외로 따뜻하다. 영식의 손을 끌어다가 내 오른쪽 가슴에 댄다.
"너와 한날 한시에 죽어 한 무덤에 묻히고 싶어."
영식이 거칠게 손을 빼낸다.
"나는 네가 느껴지지 않아."
음정의 고조 없이 건조하지만 절박하게 들린다.
"……!"
"네 육체가 탐나지도 않지."
영식이 몸을 일으킨다. 무덤 속에서 걸어나오듯이 천천히……. 담배를 한 대 피운 후 풀들을 헤집고 산을 내려간다.
나는 알고 있다. 영식은 아빠를 증오하듯 나를 증오한다.
비석을 쓰다듬는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태생적으로 슬픔이라는 것을 잘 모르는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산속을 떠돌아다니는 누군가의 혼이 내 몸을 빌려 서글프게 울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엄마의 혼인지도 모른다. 눈물이 마르기를 기다려 집으로 향한다.
영식이 등에 분무기를 매고 우리 주변을 소독하고 있다. 산속이라서 그런지 매일 개 우리 주변에 독한 소독약을 뿌려대는데도 밤이면 모기들이 들끓는다. 모기들은 병을 전염시킨다. 개들 사이에 전염병이라도 돌면 큰일이다. 작년 이맘때쯤 전염병이 돌았었다. 쉰여섯 마리나 되는 개들은 식욕감퇴와 구토, 폐렴, 설사 증세를 보이다가 하루나 이틀 간격으로 쓰러졌다. 전염병으로 죽은 개들은 불에 태우거나 땅속 깊이 매장해버려야 한다. 하지만 아빠는 죽은 개들을 손질해 대전과 금산 사이에 있는 산내 주변의 식당에 싸게 넘겼다.
"새끼를 밴 개였던디……."
영식과 내 눈이 동시에 여자를 향한다. 마른 땅처럼 갈라진 여자의 입술 밖으로 상추 잎사귀 부분이 불쑥 튀어나와 있다.
"그것두 다슷 마리나."
여자는 입안에 든 상추쌈을 꿀꺽 삼키고 상추 한 장을 또 집어든다.
"생김을 보니께 나올 띠가 다 디었던디……."
밥 한 숟가락을 떠 상추 위에 올리고 그 위에 또 밴댕이젓을 올린다.
"모르제 그냥 두었으믄 오늘밤에라두 새끼를 낳았을랑가……."
쩌억 벌어진 입으로 헐렁하게 싼 상추쌈을 가져간다. 밴댕이젓 국물이 여자의 입술을 타고 흘러내린다. 아빠가 국그릇을 내던지며 벌떡 일어선다. 여자는 상추쌈을 얼른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밥상이 엎어진다. 반찬그릇들과 상추가 바닥으로 흩어진다. 여자가 쥐약 먹은 개처럼 마루바닥을 긴다. 아빠의 발이 여자의 허리를 연신 걷어찬다. 영식이 숟가락을 집어던지고 마당으로 뛰쳐나간다. 오토바이를 몰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여자가 입에 피를 물고 쓰러진 뒤에야 아빠는 발길질을 멈춘다. 소주 두 병을 빠르게 비우고 곯아떨어진다. 아마도 새끼를 밴 개였다는 사실을 아빠는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잠들지 않고 영식을 기다린다. 이른 새벽, 설핏 든 잠 속으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금산 시내에서 술이라도 마시고 돌아오는 길일까. 온몸이 끈적하다. 목욕을 하고 싶다. 영식이 잠들기를 기다려 부엌으로 간다. 뜨겁게 데운 물을 고무통에 옮겨 담는다. 한 여름에도 나는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한다. 옷을 벗고 고무통 속에 몸을 담근다. 몸이 엿가락처럼 흐물흐물 풀어지는 것만 같다.
덜컥, 부엌문이 열리고 여자가 들어온다. 여자의 눈이 기괴한 광채를 발하며 내 발가벗은 몸을 훑는다.
"참, 곱다."
여자의 목소리가 벌거벗은 몸에 기분 나쁘게 감겨온다.
"내랑, 같이 가지 않을래?"
어깨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어느새 여자의 손이 내 어깨를 더듬거리고 있다. 어린 여자아이의 처녀막을 탐하는 사내의 손길이 이렇지 않을까. 팔과 다리에 소름이 돋는다.
"흐흐흐, 흐흐흐……, 내랑 같이 가자."
"아, 아빠, ……를, 부를, 거, 야."
썩은 연필심처럼 목소리가 뚝뚝 끓어진다.
"흐흐흐…… 내랑 같이 가자."
"아, 아빠, 를……."
내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여자는 아는 것일까. 여자는 오래오래 내 몸을 더듬거리다가 휑하니 부엌을 나간다. 고무통 속 물은 그새 미지근하게 식어 있다.
그런데 어미의 뱃속에서 죽은 개새끼들은 여자는 어떻게 했을까? 우물 속 같은 이 부엌 어딘가에 숨겨 놓지 않았을까.
작년 초복 즈음에 다녀오고 처음이니까 거의 일 년 만이다. 아빠와 나 사이에 껴 앉은 여자는 헤실헤실 웃기만 한다. 모처럼의 세상 구경이 여자도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영식은 산속 집에 남아 있겠다고 한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려와 십 분 정도 달리면 곧바로 금산 시내다. 트럭은 금방이라도 멈춰 설 듯 심하게 툴툴거린다. 트럭 어디선가 고무 타는 냄새가 희미하게 난다. 멀리 한국타이어 공장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교회 십자가와 아파트도 보인다. 한국타이어 공장 인부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영식이 생각난다. 영식이 한국타이어 공장 인부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나는 한국타이어 공장 인부의 아이를 낳는 것이 소원이었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 한국타이어 공장 건물 주변을 서성거리곤 했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져서야 산속 집으로 돌아왔다.
금산 시내는 일 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높고 번쩍거리는 건물들과, '마트'라는 간판을 단 대형 생필품 가게가 서너 개나 들어섰다. 대낮인데도 마트 안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아빠는 여자와 나를 오리요리 전문식당으로 데리고 간다. 오른쪽 팔뚝에 호랑이 문신을 한 주인사내는 아빠와 친구 사이이다. 아빠는 소주 한 병에 오리불고기를 시킨다. 주방에서 나온 할머니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지 어매를 쏙 빼닮았네'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나는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인다.
오리불고기를 먹은 후 수금을 위해 여러 식당을 돌아다닌다. 아빠가 다섯 번째로 찾아 들어간 <최가네 식당> 맞은편은 속옷가게다. 속옷가게 유리문에 붙여놓은 <여직원을 구함, 시급>이라고 쓴 종이가 눈에 들어온다. 매장에 걸어놓은 속옷들은 내가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색상과 모양이 화려한 것들뿐이다. 여자가 한눈을 파는 사이에 나는 얼른 속옷가게의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간다. 카운터에 서 있는 여자가 주인인 듯하다. 여자는 젊고 예쁘다. 매장에 걸어놓은 속옷들만큼이나 화장도 화려하다.
"저 일을 하고 싶어서……."
괜스레 기가 죽는다. 다리가 후들거리며 목소리가 안으로 기어 들어간다.
"옷가게 같은 곳에서 일해 본 적 있어요?"
나는 고개를 흔든다.
"혹시 몇 살이에요?"
내 나이가 좀처럼 짐작이 되지 않는지,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스물…… 아홉……."
"결혼했어요?"
나는 완강하게 고개를 흔든다.
"내일이라도 당장 일을 했으면 하는데……."
"……."
"이름하고 연락처 좀 남겨줘요."
나는 머뭇거린다.
"이름은 나영미…… 그리고 연락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번호를 댄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집 전화번호도 외우지 못한다. 여자는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메모지에 적어 넣는다. 내가 이따금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는 사실을 안다면 속옷가게 여자는 나를 결코 점원으로 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 이력서하고 주민등록등본 한 장만 준비해 오실래요?"
나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속옷가게를 나온다. 속옷가게 유리에 바짝 붙어 서 있던 여자가 나는 보고 히죽, 웃는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눈빛이다. 귀신같은 년.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개고기를 덩어리째 들고 뜯어먹던 여자의 모습이 머릿속으로 떠오르며 등골이 서늘해진다.
수금한 돈으로 필요한 것들을 잔뜩 산다.
화장지, 설탕, 라면, 생리대, 좀약, 양파, 참기름, 치약, 중국산 조기 한 묶음, 명태, 빨랫비누, 샴푸, 천 원에 세 장씩 하는 팬티, 고춧가루, 배추 한 단, 무, 새우젓, 밴댕이젓, 돼지고기 스무 근, 커피, 어묵, 마늘종, 모기향.
산속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느새 날이 어둡다.
그런데 이력서와 주민등록등본이라고 했었나? 한 번도 그런 것을 떼본 적이 없다. 금산여중에 사 개월 정도 다니다가 중퇴한 이후로 나는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왔다. 아빠와 아빠가 데리고 온 여자들, 그리고 영식만이 유일하게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통로였다. 문득문득, 나는 아빠가 두렵다. 한순간 화약처럼 붉은 불꽃을 일으키며 심장이 폭발해버릴 것만 같다. 아빠가 데리고 오는 여자들도 두렵기만 하다. 그녀들이 내 목을 조르거나 내 밥에 독을 타는 꿈을 꾸곤 한다. 그리고 꿈속에서 종종 그녀들은 산파가 되어 내 아기를 받아내기도 한다. 그리고 영식…….
산속 집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다. 트럭 헤드라이트 불빛에 감나무가 비친다. 나뭇가지 아래로 길게 내려와 있는 노끈이 바람에 함부로 휘둘린다. 나뭇잎을 흔들며 귀신처럼 서 있는 감나무 때문일까. 트럭 헤드라이트 불빛에 드러난 집은 흉가의 분위기를 풍긴다.
트럭에서 내려 마루에 매달에 놓은 전구에 불을 켜고 트럭 적재함에 싣고 온 물건들을 내린다. '성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깨닫는 순간, 아빠와 내 눈빛이 전구 불빛 속에서 마주친다. 성길의 목을 묶고 있던 굵은 쇠사슬은 두 동간이 난 채 나뒹굴고 있다. 영식과 영식의 오토바이도 보이지 않는다. 영식의 짓이 분명하다. 영식은 성길을 어디로 데려간 것일까.
정신 없이 집안 곳곳을 뒤지던 아빠는 도로 트럭에 올라탄다. 트럭은 빠르게 산길을 내려간다.
영식은 성길을 어떻게 했을까. 공장에 넘겼을 수도 있다. 공장에서는 늙은 투견들을 선호한다. 투견판에서 물러난 늙은 투견만큼 공장을 잘 지키는 개들도 없다.
다음날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아빠는 트럭을 몰고 돌아온다. 밤새 눈 한 번 부치지 않았는지 두 눈이 붉게 충혈 되어 있다. 소주 한 병을 비운 뒤 그대로 골아 떨어진다.
초복. 아침부터 개고기 주문이 밀린다. 아침을 먹자마자 아빠는 트럭을 몰고 산을 내려간다. 나는 개고기를 주문한 식당에 일일이 전화를 넣어 주문을 취소시킨다. 영식이 멀리 갔기를 바란다. 아니, 오늘밤에라도 영식이 아빠의 손아귀에 목덜미를 붙잡힌 채 질질 끌려오기를 바란다. 아빠가 영식을 놓아주려 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영식을 놓아주고 싶지 않다. 온몸에 피멍이 든 영식의 발목에 나는 쇠고랑을 채울 것이다.
영식이 성길을 데리고 사라진 지 닷새째 되는 날, 라디오 뉴스에서 투견 도박꾼들에 대한 기사를 내보낸다. '투견 도박'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오는 순간, 밥을 먹고 있던 아빠의 눈빛이 번갯불처럼 반짝 빛난다. 아빠는 물컵에 반쯤 따른 소주를 단숨에 들이켜고 얼굴의 근육을 긴장시킨다. 말라비틀어진 총각무를 입안에 밀어 넣고 우걱우걱 씹는다.
'충남 홍성경찰서에서 투견 도박을 한 혐의로 이모씨 등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최모씨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그들은 지난 8일 오후 2시께 충남 홍성군 갈산면 야산에 자리한 최모씨의 개 사육 농장에서 쇠로 만든 링을 설치, 1회에 500만원씩 1천여 만원을 걸고 투견 도박을 한 혐의입니다. 경찰은 투견 도박 현장에서 55명을 연행했으나 나머지 49명은 사안이 경미해 훈방했습니다.'
라디오 뉴스가 끝나고 최백호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고춧가루와 돼지기름, 으깨진 밥알이 지저분하게 묻은 밥그릇에 냉수를 붓고 휘휘 흔들어 단숨에 들이켜는 것을 끝으로 아빠의 식사가 끝난다.
영식은 어쩌면 성길을 데리고 불법 투견 도박판을 돌아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늙기는 했어도 성길은 투견으로서 아직 쓸만하다.
아빠는 소주를 한 병이나 비우고 트럭에 올라탄다. 산을 내려가는 대로 수소문을 해 전국의 불법 투견 도박장을 뒤지고 다닐 것이다. 아빠의 동물적인 직감이 빗나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쇠로 만든 링 한가운데. 피범벅이 된 채 쓰러져 있는 성길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사내들의 거친 욕설과 투견들의 비명 소리, 피 묻은 돈 다발. 실실 웃음이 흘러나온다. 손가락 끝이 딱딱하게 굳으며 한기가 몰려온다. 간질발작의 전조다. 포말처럼 끓어오르려는 의식을 부여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마른 땅처럼 뼈 마디마디가 갈라지고 시린 이빨들이 뿌리째 뽑히는 듯하다. 기어이 하얗게 끓어오르는 의식 속에서 영식이 성길을 안고 무덤들 속으로 사라지는 환상을 본다.
의식이 돌아온 뒤, 엄마의 무덤을 찾는다. 비석을 어루만지다가 무덤 옆에 나란히 눕는다. 무덤 속은 얼마나 따뜻할까. 무덤 속으로 들어가 잠들고 싶다. 날이 어둑해져서야 집으로 내려온다.
마당 솥에서 개죽이 끓고 있다. 수돗가에서는 비닐봉투 따위의 쓰레기들이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며 타고 있다. 변소 문짝이 활짝 열려 있다. 불이 환하게 켜진 부엌으로 간다. 여자가 보이지 않는다.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솥에서 시래기 국이 끓고 있다. 국이 넘치지 않게 솥뚜껑이 약간 열려 있다. 가스레인지의 불꽃 세기도 약한 불에 맞추어져 있다.
부엌에서 나와 여자가 머물고 있는 방으로 간다. 방문을 열고 방 안을 살핀다. 방 한가운데 여자가 늘상 입고 있던 자주색 치마가 개켜져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옥색 염주가 얌전히 놓여 있다. 양은 물주전자와 양은 대접, 빗, 싸구려 로션, 삼단 서랍장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여자가 이곳에 올 때 들고 왔던 가방이 보이지 않는다. 겨자색 가방은 삼단 서랍장과 벽 사이에 놓여 있었다. 서랍장 첫 번째와 두 번째 서랍은 텅 비어 있다. 세 번째 서랍에는 예불 책이 한 권 들어 있다.
안방과 내 방을 오가며 없어진 것이 없는지 살핀다. 없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약간 세게 잡아당겼을 뿐인데 줄이 끊어지며 옥색 염주 알들이 방바닥으로 흩어진다. 초점 없는 눈으로 바닥에 흩어진 옥색 염주 알을 훑는다. 한기가 몰려오며 손가락들이 딱딱하게 굳는 것만 같다. 눈앞이 흐리다. 가빠지려는 숨을 간신히 고른다. 쌀알을 줍듯 바닥에 흩어진 염주 알을 한 알 한 알 조심스럽게 줍는다. 염주 알은 총 열세 개다. 그런데 여자는 어디로 간 것일까.
나는 옥색 염주 알을 한 알 한 알 실에 꿴다. 염주 알에 뚫어놓은 구멍은 바늘구멍 만하다. 왼쪽 장지손가락과 엄지손가락과 사이에 쥔 염주 알이 여러 개로 겹쳐 보인다. 염주 알을 쥔 손과 흰 실을 쥔 손이 자꾸만 어긋난다. 간신히 염주 알을 다 꿰었을 때는 이미 날이 환하게 밝아 있다.
중복 이튿날. 부리면 면사무소의 천문달 아저씨가 아빠의 죽음을 알려온다. 그는 아빠의 친구이기도 하다. 산속 집까지 찾아온 천문달 아저씨는 아빠가 몰던 트럭이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시외버스와 충돌했다고 했다. 마전에서 대전으로 넘어가는 태봉터널 안에서 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핸들에 머리를 박은 채 그 자리에서 즉사한 아빠는 만취해 있었다고 했다. 갈라진 아빠의 머리에서는 끈적끈적한 개의 피가 흘러나왔을 것이다.
사흘 뒤, 아빠의 육신은 불태워진다. 한 줌 뼛가루가 되어 내 손에 들려진 아빠는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뼛가루를 엄마의 무덤에 뿌린다. 생쌀 한 주먹과 밤 세 알, 잣 다섯 알을 비석 아래 놓아두고 집으로 돌아온다.
마루에 걸터앉아 어서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린다. 솥에서는 개들에게 줄 죽이 끓고 있다. 돼지비계가 스물스물 녹아 있는 희멀건 개죽을 고무통에 퍼담아 들고 집 뒤쪽으로 간다. 우리 안의 개들이 미친 듯이 짖어댄다. 금방이라도 우리에서 달려나와 내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발길 것만 같다.
모기향을 피우고, 쌀을 씻어 안친다. 찬장 옆에 부적처럼 매달아 놓은 명태를 떼어내 국을 끓인다. 산길을 올라오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영식이다. 오늘밤 영식이 돌아오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영식은 불법 투견도박판이나 금산 시장 바닥에서 아빠의 죽음을 주워 들었을 것이다.
오토바이 뒷좌석 우리 안에 성길이 실려 있다. 성길은 포만감에 찬 수사자처럼 반쯤 졸린 듯한 눈으로 거만하게 앉아 있다. 마치 육 년 전의 성길이 다시 살아서 돌아온 듯하다. 아니, 육 년 전보다 더 완숙한 승리자의 위엄을 갖추고 있다. 영식은 우리 안에서 꺼낸 성길의 목에 쇠사슬을 채운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저녁상을 차려 내온다. 영식은 밥 한 그릇과 소주 한 병을 빠르게 비운다. 국그릇 옆에 명태 가시와 지느러미가 발라져 있다.
"온양에서 한판 벌어졌었어."
영식이 내게 내민 것은 뜻밖에도 두둑한 돈 뭉치다.
"늙기는 했지만 아직 쓸만하던 걸."
내 초점 없는 눈동자가 돈다발을 세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넷…… 백팔십, 백팔십일, 백팔십이, 백팔십삼, 백팔십사……."
내 손에 쥐어져 있던 돈다발은 이제 모기향 주변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나는 가랑이를 벌린 채 방바닥에 누워 있다. 지폐 몇 장이 내 손에 쥐어져 있다. 형광등 불빛에 눈이 부시다. 개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철컹철컹, 굵고 녹슨 쇠사슬이 시멘트 바닥에 끌리는 소리도 들려온다. 낮에 비석 앞에 놓아두었던 생쌀과 밤과 잣은 들쥐나 다람쥐가 물어갔을 것이다.
영식이 붉은 혀를 내밀어 내 오른쪽 다리를 핥기 시작한다. 영식의 혀가 핥고 있는 곳은 내 오른쪽 다리에 남아 있는 화상의 상처다. 혀의 서늘한 감촉이 전신으로 퍼지며 의식이 몽롱해진다. 내 불규칙한 숨소리가 모기향을 타고 방안으로 퍼진다. 혀는 천천히 허벅다리를 타고 올라와 봉인(封印)된 그곳을 핥기 시작한다.
처녀막이 찢어지는 순간 나는 입에 거품을 물고 넘어간다.
정신이 돌아온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방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진 지폐를 줍는 것이었다.
*
감 썩는 냄새가 마당 가득하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새벽 공기가 차다. 감나무는 올 가을에도 나뭇가지가 길게 늘어지도록 열매를 풍성하게 맺었다. 감나무 아래는 벌레 먹은 나뭇잎들과 형체가 일그러진 채 짓물러진 홍시들로 지저분하다.
밥그릇만 나뒹구는 텅 빈 개 우리를 지나 산속으로 들어간다. 식용을 위해 기르던 개들은 매일 밤 두 마리씩 성길의 포악스러운 이빨에 모가지가 뜯긴 채 죽어갔다. 성길은 여전히 투견으로서 쓸만했다.
오랜만에 찾은 엄마의 무덤 주변에는 밤송이가 지저분하게 널려 있다. 음력 팔월 보름인 오늘밤에는 보름달이 뜰 것이다. 붉게 익은 홍시 두 개와 생쌀 한 주먹, 밤 세 알을 엄마의 무덤에 바친다.
금명자. 그것은 지난 봄부터 여름 동안 이 산속 집에 머물렀던 여자의 이름이다. 여자가 사라진 지 사흘 정도 지나 웬 중늙은가 아빠를 찾아왔다. 중늙이는 자신이 여자의 남편이라고 했다. 그 사내에게 들어서 여자에 대해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여자의 이름이 금명자라는 것과 나이가 쉰여덟 살이라는 것, 그리고 말기 간암 환자라는 것과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는 것. 작년 겨울 여자는 병원에서 길어야 오 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여자가 아빠를 따라서 이곳에 온 것은 지난 봄이었다. 여자는 어쩌면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곳을 떠날 즈음, 매일 밤 개고기를 삶아 먹어서인지 부옇게 살이 오른 여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여자의 목소리. '내랑 같이 가자.' 여자가 내게 같이 가자고 한 곳은 어쩌면 죽음 저 너머에 존재하는 세계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자는 무엇 때문에 나를 데려 가려고 했던 것일까. 혼자서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는 것이 두려웠던 것일까. 비록 지진과도 같은 간질발작이 잠복해 있기는 하지만, 여자는 내 젊은 육체가 탐났던 것인지도 모른다.
"충주에서 한판 벌어지기로 했어."
아침을 먹으며 영식은 그렇게 말한다. 영식은 온양에서 벌어온 돈 뭉치의 일부를 떼어 잠바 주머니 속에 챙겨 넣는다.
영식과 성길을 태운 오토바이가 산을 내려간 후, 나는 검은 성경책을 펼친다. 그것이 금명자라는 여자가 놓고 간 예불 책이어도 상관없다. 다만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는 것이 검은 성경책일 뿐이다. 성경책은 죽은 엄마의 옷가지들과 함께 종이 상자 속에 넣어져 있었다. 옥색 염주를 만지작거리던 손가락으로 성경책을 펼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마음은 한없이 평화로워지고 싶다. 그래야 내 뱃속의 아기도 평화로울 것이다. 내 뱃속에서는 지금 영식의 아기가 자라고 있다. 세상 빛도 쬐어보지 못한 채 어미의 뱃속에서 죽은 개새끼들은 검은 비닐 봉지에 둘둘 말린 채 장독 속에 들어 있었다. 간혹 물을 받아두곤 하던 장독이었다. 내가 발견했을 때는 푹푹 썩는 냄새를 풍기며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구더기들이 들끓었다. 나는 그것들을 영식 몰래 불에 태웠다. 죽은 개새끼들을 태울 때 내 뱃속에서는 이미 영식의 아기가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죽은 개새끼들이 타 들어가며 피어오르던 검은 연기…….
그리고 그 사이로 훨훨 날아오르던 흰나비…….
꿈에서였던가. 그것은 어쩌면 지독한 태몽이었는지도 모른다.
김 숨 1974년 울산 출생. 1974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느림에 대하여>가,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에 <중세의 시간> 당선. 소설집으로 [투견]이 있음.
첫댓글 두번째 이글을 읽습니다. 처음엔 단숨에 꿰어 내려는 듯 숨가쁘게 읽어 내려갔고 ......두번째는 골골히 틀어박힌 글의 숨은 묘미를 찾아 볼 생각입니다. 작가님 카페에 가입안했음 이 지루한 여름날을 무엇을 하며 보냈을까 ? 하니 아찔합니다. 내 젊은 날의 한서린 입김의 원류를 찾아 더듬고 방황하면서 보낸 지금의 시간들을 언젠가 추억하며 꺼낼때가 있겠지요..... 그런 날을 위해서 오늘도 ......한 발 한 발 ....길을 떠나는 나그네처럼 ~~~산이 있음 돌아갈 것이고 강이 있음 건널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