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똑똑이
김복희
혜화동에 있는 대학로 식당에서 대학동문들과 교수님을 모시고 식사시간을 가졌다. 졸업 후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1999년 8월 7박8일의 중국 문학기행 때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는 나를 평생 따라다니며 잊을 수 없게 하는 ‘여권 분실’ 사건 이야기도 있었다. 나는 묘한 생각에 사로잡혀 20여 년 전을 떠올리고 있었다.
방송통신대 국문과 조남철 교수님께서는 중국 연변초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으시고 매년 여름방학이면 찾아가 여행을 하고 장학금도 전달하시곤 하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변 5일 북경 2일을 특별히 할애하신다 하였다. 그래서 한번 다녀온 적이 있는 선배들이 다시 신청하기도 했다.
친구들은 좋은 기회라며 서둘러 신청을 했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사업을 하며 공부를 하던 나는 선뜻 나설 수가 없어서 망설이고 있었다.
친구들은 선착순 30명이라며 계속 함께 가자고 재촉하였다. 하는 수없이 용기를 내어 남편생각을 떠보니 가계를 8일이나 비우고는 갈 수 없다고 하였다. 친구들은 집으로 찾아와 남편을 설득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고민하던 끝에 나는 남편에게 여행 다녀오면 내쫓으라 선언하고 중국문학기행 길에 올랐다.
아시아나 비행기는 1시간 반을 날아 북경공항에 도착하였다. 허름한 비행장 공안원들의 복장이 인민복 차림 같아서 섬찟하였다. 그곳에서 4시간을 지루하게 기다리다가 연변가는 비행기에 옮겨 탔다. 연변공항은 새로 세워서 깨끗했다.
짐을 챙겨 관광버스로 옮겨 타고 연변대학으로 향했다. 연변대학 교직원들은 우리를 반겨 주며 식탁에 생수와 다과를 준비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먹는 물 상태가 좋아 그 모습이 아주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 이후 우리도 생수병을 끼고 사는 나라가 되었다.
다음날 연변초등학교에 들러 장학금 전달식에 참석하였다. 여교장의 극진한 환영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판다공원 곰 농장도 둘러보고 소천지를 거닐다가 잡상인에게서 목마(木馬)를샀다. 그 목마(木馬) 진열장 앞에서 그때를 추억하게 하고 있었다. 화산이 폭발하여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물에 계란을 삶는 모습도 구경하며 거대한 장백폭포 구경 길에 나섰다. 장엄하게 흘러내리는 폭포수는 입이 딱 벌어지게 했다. 신선의 백발처럼 나부끼며 흘러내리는 폭포를 감상하다가 그 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였다. 어찌나 차갑던지 얼음물 같았다.
그 다음날은 윤동주 시인의 생가와 문학관에 들러 사진과 작품을 살펴보고 ‘별을 헤는 밤’ 책도 샀다. 날씨가 몹시 더웠지만 묘지에 들러 참배를 하였다. 그리고 백두산 오르는 길에는 지프에 나누어탔다. 꿈에도 그리던 백두산 천지가 보였다. 화창한 여름날 천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북경으로 날아 시한에서는 진시황묘를 보았고, 그 속의 병마총도 둘러보았다. 만리장성으로 올라가 웅장한 성을 바라보며 감탄하다가 북경 시내로 들어와 점심을 먹었다. 엄청 큰 건물에 1층은 백화점 2층은 식당이었다. 시내 한복판에 있어서 관광객도 많이 붐비는 식당이었다.
식탁이 원탁이라 음식이 나오면 돌려가며 순서대로 거두어 먹었다. 모처럼 색다른 음식을 즐겁게 먹고 일어서려는데 옆에 둔 손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큰일이다. 그 속에는 돈, 화장품, 여권까지 들어있는데, 갑자기 앞이 캄캄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잠시 내려놓았을 뿐인데 내 실수였다. 교수님과 친구들이 한참을 찾아보다가 포기하고 친구들은 이화원 구경을 가고 나는 교수님과 함께 영사관으로 향했다.
내일이면 출국을 해야 하는 날인데 큰일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주말도 근무하였는데 중국은 쉬었다. 그래서 더욱 난감하였다. 영사는 외국인 교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는 남편이 사업을 한다니까 여권을 팔아먹고 거짓말을 한다고 억지를 부렸다.
하얗게 질린 나는 4시간을 기다린 끝에 임시 여권을 받아들게 되었다. 우리 교수님과 중국 교수님이 통화가 되어 신원이 확인되었고, 퇴근 시간이 다되어가는 5시경에 임시 여권을 받아들고 영사관을 나오게 되어 마침내 예정대로 귀국하게 되었다. 외국 나들이가 과분한지 중국에서 호된 매를 맞았다. 교수님과 친구들에게 마음 쓰게 해서 여간 미안하고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 영글었다는 소리를 들어서인지 속이 꽉 찬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헛똑똑이였다.
첫댓글 허허 참 그런가요
선생님
잘 읽고갑니다
건강하세요
복희씨만 헛똑똑이 아닙니당
여기도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