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에 자리잡은 교육공동체 들살이

[sayre]

“자연과 함께 행복한 배움 만들어가요”

[현장] 폐교에 자리잡은 교육공동체 ‘들살이’

김현철 객원기자 greencheju@freechal.com

2005년 01월 15일 13:41:08

▲ 색종이와 풀 등을 이용해 자유롭게 만들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

제주시내에서 승용차로 40여분 남짓. 여느 제주 농촌마을과 마찬가지로 한라산이 내려다보이는 평화로운 마을, 남제주군 성산읍 난산리에 도착했다. 토질이 비옥한 편이어서 화학비료가 나오지 않았을 때도 곡식이 잘 자랐다는 난산마을.

도시로 사람들이 나가면서 아이들 수가 급감, 문을 닫은 옛 난산분교 자리에 ‘행복한 배움, 조화로운 삶’을 내건 교육공동체 ‘들살이’가 소중한 희망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아이들 스스로 교과목 배정 ‘자립심’ 쑥쑥
계절 캠프 다양한 수업 호응…재정 뒷받침

#  하루 일정표, 우리가 정해요

교실 6개의 작은 학교인 옛 난산분교에 들어서자 반갑게 맞이하는 고동원·김정이 씨. 들살이의 운영자이자 지킴이인 이들의 안내로 교실로 들어섰다. 기숙생활을 하는 아이들은 방학이라 자리를 비웠고 대신 겨울캠프에 참여할 몇몇 학생들만 눈에 띈다.

현재 들살이 학생은 8명. 기숙사 생활을 하며 주당 5일 교육을 받고 있다. 들살이의 하루는 아이들의 회의를 통해 스스로 결정한다. 오전 8시에 아이들이 일어나 시끌벅적하게 이불도 개고 화장실도 간다. 아이들 스스로 결정되는 시간이라 좋아하는 과목만 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모든 과목을 적당하게 분산시켜 놓을 정도로 합리적이라는 게 고동원씨의 설명이다. 아이들은 주로 오전에 과학원리 이해와 생태, 역사, 수원리 이해, 철학, 말, 글 등의 과목을 중심으로 배정하며 오후에는 집짓기, 연극놀이, 음식 만들기, 목공, 풍물 등 생활과 예술영역이 배정된다.

▲ 아이들에게 가장 신나는 시간인 목공예시간.

#  무엇이든 직접 해보니까 좋아요

들살이에서 기숙생활을 하는 아이들은 이곳에서의 생활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기존의 제도교육과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

민주 어린이는 “나는 학교에서 목공수업이 가장 재미있었다. 나는 망치로 나무에 못을 박아 무엇을 만드는 것이 신이 난다”며 “나는 목공시간 때 우선 크기부터 쟀다. 그리고 기계로 크기대로 자른 다음 나무에 못을 박아 연결시킨다...목공 말고 다른 수업도 저번 학교와 달리 모두 직접 해봐서 좋다”고 말한다.

한 학부모도 “우리 애들이 컸을 때 학과공부에만 뛰어나고 이기적인 사람보다는 남을 배려할 줄 알고 공동체의식이 있으며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필요하리라는 것을 확신한다”고 자신감이 차 있었다.

#  어려운 재정난, 처음 마음으로 극복

제도교육에 대한 문제를 느끼고 대안을 찾아보자고 해서 1년간 스터디를 통해 시작하게 된 대안학교. 7∼15세까지 초등학교 과정을 개설해 놓고 있는 들살이의 지난 3년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작은 학교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고동원 씨는 교육비와 기숙사비 등으로 웬만한 중산층도 보내기 힘든 귀족학교, 인텔리학교로 변하고 있는 대안학교들을 보면서 많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고 회상한다.

들살이는 학비가 없는 학교다. 가장 기본적인 아이들의 생활비만 받을 뿐 나머지는 일절 받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학교운영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학교운영비 충당을 위한 대안으로 마련한 게 계절캠프학교.

여름과 겨울 두 차례에 걸쳐 마련한 계절캠프학교가 다행히 호응이 좋아 운영에 도움이 되고 있다. 올 겨울에도 두 번에 걸쳐 실시되는 겨울캠프가 정원을 마감했다.

생활교사 3명을 비롯, 풍물, 민요, 과학 등 분야별 외부강사 5명이 초빙돼 수업이 이뤄지며, 운영을 맡은 김정이 씨와 고동원 씨가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고동원 씨는 “들살이를 도와주는 선생님들에게 작으나마 수고비를 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많지만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을 되새기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 민속생활용품인 솟대와 새총을 만들고 한 자리에 모였다.

#  작은 학교, 많이 생겨야 합니다

지난 2002년 7월 개교한 들살이는 8년간 학원 운영을 해온 김정이, 이안표, 이숙희 씨가 아이들의 영혼을 멍들게 하는 현 교육제도로는 미래가 없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무대 미술과 연극을 하는 고동원씨와 함께 대안 찾기에 골몰하다 만들게 됐다.

어느덧 상설학교 운영을 시작한지 벌써 2년 반을 훌쩍 지났다. ‘행복한 배움, 조화로운 삶’을 표방하는 들살이의 교육방식은 기존 제도교육과는 확연하게 차별화를 이룬다.

들살이는 다른 대안학교들과는 달리 정규학력을 인정받을 수가 없다. 정규화과정인 특성화 대안학교는 중·고등학교 과정만 인정되기 때문이다. 고동원씨는 “뭔가 거꾸로 되고 있다.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인해 탈 학생이 갑자기 늘어나니까 대안학교를 특성화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인정했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교육은 천천히 하는, 느리게 하는, 배움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 스스로 배우고 깨우치는 것”이라는 고동원 씨는 “모든 문화가 도시에 집중되면서 문제가 시작된 만큼 농촌으로 학교를 끌어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농촌교육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폐교를 활용하는 것은 농촌의 문화운동이자 대안교육이다.”

▲ 겨울임에도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작은학교 ‘들살이’ 전경

#  농촌 마을, 생기가 넘치다

들살이가 성산읍 난산리에 들어서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난산분교가 폐교되면서 마을이 조용해졌다가 다시금 아이들 소리가 들리고 생기를 찾게 된 것이다.

들살이에서 마을과의 유대를 위해 방학동안 난산지역 어려운 가정의 자녀를 무료로 캠프에 참여시키고 제주전통의 생활지혜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마을 주민을 체험교사로 모시는 등 농촌마을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

이밖에도 들살이는 민요교실을 열고 난산마을은 물론 인근 마을의 초등학교 학생들을 초청해 멋진 발표회를 갖기도 했고 주민들과 어울림 공연을 하기도 했다.

현경선 난산리 사무장은 “문화학교 들살이가 난산분교에 생긴 후 마을행사를 할 때마다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며 “마을 부녀회원을 대상으로 황토물들이기를 할 때에도 각종 재료와 장소까지 공급을 해주는 등 주민들에게 많은 협조를 해주고 있어 고마울 따름”이라고 칭찬했다.

이어 그는 “특히 방학 때면 마을아이들을 캠프에 참가시켜 주고 공부도 시켜줘 고맙게 생각한다”며 “김 기자님! 될 수 있으면 크게 홍보해 달라”는 특별한 부탁을 잊지 않았다.

"농촌의 작은학교가 새로운 희망입니다"

[인터뷰] 농촌학교를 말한다 - 안동우 제주도의원

▲ 안동우 도의원

 “창의력과 도덕적 가치관이 풍부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농촌의 작은학교가 새로운 희망입니다”

농민단체장 출신으로 농촌교육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안동우의원은 농촌학교에 대해 이같이 말하고 농촌의 희망을 작은 학교에서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안동우 의원은 “농산물 수입개방에 이은 쌀개방 협상과 농촌인구의 급격한 감소 등 농촌학교의 미래가 암울하기만 하다”며 “수년전부터 경제논리로 농촌소규모학교를 인위적으로 통폐합할 때부터 이미 예견됐던 일 이었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초등학교가 폐교된 지 4~5년여 지나고 나니 그 여파가 중학교로 밀려든다”며 “ 제주지역 농촌지역의 중학생 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당국이 학교통폐합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농촌주민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꺾어 놓았다는 점은 참으로 큰 잘못”이라며 강도 높게 지적한 안 의원은 “소규모라는 이유로 시설투자를 외면하고 통폐합을 시도함으로써 학부모들에게 농촌교육의 질 저하라는 불안감을 가중시켰고 이는 곧바로 이농을 부채질하는 결과만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안 의원은 “교육환경이 열악한 농촌지역에 다양한 가치관과 칭의성을 스스로 키워나가도록 다채로운 교육을 시키는 작은 학교가 대안으로 크게 기대되고 있다”며 “농촌학교만이 아니라 과거 활발했던 농촌문화를 재발전 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안 의원은 “기존의 제도교육이 천편일률적으로 가는 것에 비해 들살이는 자연환경과 더불어 지역사회와 함께 열어가는 학교가 되고 있는 모습에서 그 가치가 더하기만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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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네티즌 의견

김학준 [2005-01-16]

매우 다양한 대안교육의 스펙트럼 대안교육은 그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합니다. 따라서 그에 관한 논의나 주장도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동의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각각의 양상으로 전개되는 각각의 대안교육의 '과학성'에 주목하자는 것입니다. 취지나 목적, 즉 교육철학 자체가 그것을 달성하게 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연 아이들의 교육활동이 유의미하게 본래 취지와 목적을 실현하는 쪽으로 다가가고 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보다 주도면밀하게 대처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실험성은 기회와 위험의 양면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번 글머리에 적었듯이 저는 들살이의 구체적인 교육활동에 대해서 논할 만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언론에서 다루는 기왕의 대안교육에 관한글들이 센세이션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학부모들과 시민들을 오도케 하는 일들이 왕왕 있기에, 김현철 기자의 글이 그래서가 아니라, 대안교육의 실험성이 내포할 수 있는 기회와 함께 할 수 있는 위험에도 관심을 갖자는 취지였습니다. 대안학교의 일종인 세인고등학교는 공교육과 대안교육의 결합입니다. 물론 기숙학교입니다. 그런데 그곳은 가족관계 속에서 기본적인 인성 뿐만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와 사회학습의 틀이 길러지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고등학생들입니다. 어린아이의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관계는 토막쳐서 시간적으로 집어넣을 수 있는 영향을 초월합니다. 자기나름대로의 정체성이 어느 정도 형성되기도 전인 어린 아이 시절부터 가족관계에서 형성되는 가치를 포기하도록 하다니요. 지나치게 어른 위주의 사고가 아닐까요? 제가 대안교육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다시 한번 반복하거니와, 다만 그 실험성에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을 줄이자는 뜻입니다. 저는 그래서 공교육의 대안교육화를 주장합니다. 거기에는 교육행정당국은 물론 부모님들의 투철한 신념과 교육철학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대안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공교육에 대해서 과감히 그것을 요구하고 주장해내는 쪽으로, 심지어 싸움을 할 각오를 다지기도 해야 할 겁니다. 대안교육을 하더라도 적어도 가족의 따스함은 익히고 난 후인 고등학생 이후부터라야 하지 않을까 그게 제 생각입니다. 가족격리의 불가피성을 주장하셨는데 그 불가피성의 근거를 수긍하기가 쉽지 않군요.

학부모 [2005-01-16]

좋은 기사네요. 들살이라는 대안교육기관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기사로 접하기는 처음이네요. 기사를 쓰신 김현철 기자님 좋은 기사였습니다. 또 어려운 여건에서도 대안교육기관이 들살이를 운영하시는 고동원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께 고생하고 계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아래에 쓰신 분의 의견에 동의하질 않습니다. 물론 저도 초등학생들 둔 부모로서 아이들 들살이에 보내고 있지는 않지만 들살이의 교육 또한 기존의 교육과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우리가 기존 교육의 틀에 너무 안주하고 있다는 것이죠. 초등학교부터 영어와 수학, 피아노, 태권도 등 각종 교육에 찌든 아이들. 오전 9시에 집을 나서면 초등학생도 오후6시나 돼서야 집에 오는 현실, 이 현실이 대안학교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또 하나 대안학교의 학생들을 보면 우리사회가 왜 대안학교를 만들 수 밖에 없는지 이해할 것이라 봅니다. 중요한 것은 선생님께서 말한 실험성 문제인데요. 저는 막말로 지금의 우리나라 교육도 실험교육이라고 봐요. 단 하나 틀린 것은 국가가 공인하는 실험교육이라는 것이죠. 그 자체가 완성된 교육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거죠. 사설교육이 우리나라 처럼 많은 나라의 교육을 완성된 교육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입니다. 문제는 실험성이 강한 대안교육을 국가가 공인하는 교육기관으로 인정하자는 거죠. 그래서 대안교육의 취지, 교육방향은 인정하면서도 각종 시설과 예산, 인적 배치를 국가에서 지원하면 된다고 봅니다. 물론 국가는 이를 인정하지 않죠. 이를 인정하는 순간 국가교육 체계가 망가질 테니까요. 어쟀든 그 대안교육을 선택하는 학부모가 있다는 것입니다. 망설이는 부모도 있구요. 이 자체가 저는 대안교육은 이미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 받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떨어져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현실적인 불가피 함이 있다고 봅니다. 더 이상 자세한 것을 논한다면 대안학교 학생들에게 또다른 피해가 될 것 같네요. 어쨌든 좋은 기사였습니다.

김학준 [2005-01-15]

대안교육... 오래전부터 대안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장을 겪어보지 못해 '들살이'의 교육내용에 관해 왈가왈부 할 입장은 못된다. 다만, 제한된 기사내용에 근거하여 짤막하게 소견을 붙이고 싶다. 나는 공교육의 폐해를 가족과 떨어져 그리고 기존사회와 분리된 형태로 충분히 지양해낼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는 회의적이다. 우리는 이것저것 시도되는 공교육개혁의 실험성을 비난하곤 한다. '들살이' 식의 대안교육의 경우도 매우 실험성이 높은 선택이 아닌가싶다. 물론 부모의 교육철학이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긴 하나, '만약의 경우'는 어떠할 것인가? 아이들 교육에는 만약의 경우라는 게 없다. 우리들 인생은 돌이킬 수 없이 다만 일회적일 뿐이기 때문이다. 여덟명의 아이들이 기숙생활을 한다.... 얻는 것만 있고 잃는 것은 없을까? 그 부모들의 높은 실험정신이 놀랍기만 하다. 내가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 이러저런 실험적인 교육활동을 다양하게 시도했었다. 모듬활동, NIE, 논술시험, 그밖에도 많은 시도들-지금은 보편화되었지만-이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회한이 있기도 하다. 사명감을 내세워 섣부르게 진행된 실험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적지 않다. 더 잘할 수도 있었는데... 그 대목은 바로 아무리 취지가 좋고 당시에는 합리화될 수 있는 과정이라 하더라도 나중에 보면 그렇지 못한 점이 적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취지와 목적과 과정, 아이들의 인생은 현재도 중요하지만 그 현재에 맞춘 교육활동의 결과가 미래에도 맞아들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고 내 주장이 공교육을 두둔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대안교육의 실험성의 위험성에 주목하자는 이야기다. 대안교육의 철학과 과학성에 대한 집중적인 검토와 대화의 기회가 있었으면 싶다. *덧붙임 특히 나는 가족과 유리된 어린이 교육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