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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오신 강증산(姜甑山) 구천상제(九天上帝)
신앙의 대상은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 이시며, 바로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은 하늘님 한울님 한얼님, 즉 얼이 크신 분으로 부터 불려졌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이 하느님을 상제님이라고 불렀다.
상제(上帝)께서 구천(九天)에 계시자 신성(神聖)ㆍ불(佛)ㆍ보살(菩薩) 등이 상제가 아니면 혼란에 빠진 천지(天地)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호소하므로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오셔서 삼계(三界)를 둘러보고 천하(天下)를 대순(大巡)하시다가 동토(東土)에 그쳐 모악산(母岳山) 금산사(金山寺) 미륵금상(彌勒金像)에 임하여 30년을 지내시면서 최수운(崔水雲)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大道)를 세우게 하셨다가 갑자년(甲子年)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년(辛未年)에 스스로 세상에 내리기로 정하셨도다.(예시1절)
* 대법국: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상제님 계신 구천(九天)보다 낮은 차원으로 천지인 삼계를 돌아볼 수 있는 신명계로 추측.(서방정토의 세계라고도 함)
상제께서 어느 날 김형렬에게 가라사대 “서양인 이마두(利瑪竇)가 동양에 와서 지상 천국을 세우려 하였으되 오랫동안 뿌리를 박은 유교의 폐습으로 쉽사리 개혁할 수 없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도다.
다만 천상과 지하의 경계를 개방하여 제각기의 지역을 굳게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을 서로 왕래케 하고 그가 사후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에 가서 문운(文運)을 열었느니라.
이로부터 지하신은 천상의 모든 묘법을 본받아 인세에 그것을 베풀었노라.
서양의 모든 문물은 천국의 모형을 본뜬 것이라” 이르시고 “그 문명은 물질에 치우쳐서 도리어 인류의 교만을 조장하고 마침내 천리를 흔들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데서 모든 죄악을 끊임없이 저질러 신도의 권위를 떨어뜨렸으므로 천도와 인사의 상도가 어겨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니 원시의 모든 신성과 불과 보살이 회집하여 인류와 신명계의 이 겁액을 구천에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모악산 금산사(母岳山金山寺) 삼층전(三層殿) 미륵금불(彌勒金佛)에 이르러 三十년을 지내다가 최제우(崔濟愚)에게 제세대도(濟世大道)를 계시하였으되 제우가 능히 유교의 전헌을 넘어 대도의 참뜻을 밝히지 못하므로 갑자(甲子)년에 드디어 천명과 신교(神敎)를 거두고 신미(辛未)년에 강세하였노라”고 말씀하셨도다.(교운1장9절)
* 증산 상제님께서는 경주에 있는 용담정에서 최수운(1824년~1864)에게 당신을 대 신하여 세상을 구하도록 도를 열어 주셨으나 최수운의 그릇이 작아 천명을 이루 어내지 못하므로 갑자년(1864)에 그 기운을 거두셨습니다.
기운을 거두시자 바로 최수운은 잡히게 되었는데 사형선고를 받고 참형을 당하기전 북쪽을 향해 4배를 한 후 이르기를 「전 40년은 내려니와 후 40년은 뉘련가, 천하의 무극대도 더디 도다 더디도다. 8년이 더디도다」라고 자신의 사후(死後) 8년후 무극대도를 여실분 이 강세(降世)하실 것을 예고하고 목이 베이니 그의 나이 40세였다.
이처럼 최수운(1824~1864)이 순도(殉道)하고 8년째가 되는 1871년(신미) 상제님께서 인간세상으로 강세하십니다.
하늘을 찌를듯이 솟은 산세로 정기가 감도는 소백산맥중의 덕유산을 분수령으로 동북방에 경상도와 충청도를 경계하고 거기서 다시 서쪽으로 나온 한 줄기가 전주의 동쪽에 이르러 운장산을 이루고, 이 산의 한 맥이 전주와 임실 사이에서 남쪽을 향해 빠지면서 하나는 서쪽에서 모악산을 이루고, 또 하나는 남쪽으로 뻗어서 순창의 부흥산과 정읍의 노령을 이룬다.
여기 정읍과 고창을 연결하는 곳에 호남평야가 펼쳐져 있고 그 평야에는 토산무석(土山無石)의 풍요로운 고부(古阜)가 있다.
여기에 손바래기(客望里)라는 고을이 있으니, 이곳이 바로 상제께서 그 몸을 나타내신 곳이다.
이 손바래기는 호남의 대평원에 자연의 지기(地氣)를 실어다 준 노령산맥의 영기(靈氣)를 품은 곳이요, 그 영기가 사라지지 않도록 우주산에 쌓인 곳이다.
또한 우주산은 손바래기의 두승산에 영기를 보장할 뿐만이 아니라 고창의 방장산과 부안의 변산에까지 그 영기를 보장해 준다. 이 세 산을 삼신산(三神山)이라고 일컬으며 하늘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영주산, 방장산, 봉래산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또 손바래기는 두 물줄기를 안고 있다.
동진강이 서해로 흘러 내리다가 백산에 부딪쳐서 한 물줄기는 고을의 서쪽을 끼고 북쪽으로 향하고 또 한 줄기는 동쪽을 끼고 남쪽으로 흘러 내린다.
그러니 손바래기는 삼신산의 정기와 양강물의 수기를 업고 안고 있으며, 그 앞에 기름진 평야가 펼쳐졌으니, 실로 장풍팔우기동구(長風八隅氣同驅)의 곳이요 신선(神仙)이 내릴만한 곳이다.
계보(系譜)를 보면 강문회(姜文會)는 도시조(都始祖) 강이식(姜以式)으로부터 42대손이되고, 그의 22대 선조 창서(彰瑞)는 박사공(博士公)이며, 15대의 선조인 준중(准仲)은 통계공(通溪公)이다.
13대이전의 이온(利溫)은 이조 성종(成宗)때에 참의, 춘추관의 수선관, 승정원의 도승지에 올랐던 분인데, 연산군의 폭정을 바로 잡으려고 직언하다가 화를 입어 피신한 곳이 바로 손바래기였다.
문회(文會)는 자를 흥주(興周), 또는 응조(應祚)라고 했다.
이 분이 안동권씨의 양덕(良德)부인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그 부인의 친정은 역시 고부의 땅 답내면 서산리(現 이평면 두지리)이다.
부인은 어렸을 때부터 매월3일, 7일, 13일, 23일, 27일에 목욕재계하고 치성을 올리는 매우 경건한 인덕이 두터운 분이었다.
객망리에 강씨 종가인 진창 어른부터 六대에 이르렀을 때 상제께서 탄강하셨으니, 상제의 성은 강(姜)씨이요, 존휘는 일순(一淳)이고 자함은 사옥(士玉)이시고 존호는 증산(甑山)이시니라.
때는 신미(辛未)년 9월 19일인 즉 이조 고종(李朝高宗) 8년이며 단기로서는 4204년이고 서기로는 1871년 11월 1일이로다.
그리고 그 탄강하신 마을을 손바래기라고 부르며 당시에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全羅道古阜郡優德面客望里)라고 부르더니 지금은 정읍군 덕천면 신월리(井邑郡德川面新月里) 새터로 고쳐 부르도다.
객망리는 상제께서 탄강하시기 이전에는 선망리(仙望里)라 하더니 후에는 객망리라 하고 상제께서 화천(化天)하신 뒤로는 신월리(新月里)로 고쳐 부르고 오늘에 이르도다.(행록1장5~7절)
모친은 권(權)씨이며 휘는 양덕(良德)이니 이평면(梨坪面) 서산리 친정에 계시던 어느 날 꿈에 하늘이 남북으로 갈라지며 큰 불덩이가 몸을 덮으면서 천지가 밝아지는 꿈을 꾼 뒤에 태기가 있게 되었다.
태기가 있은 후 13개월이 되던 어느 날 비몽사몽간에 하늘에서 두 선녀가 내려오더니 산실에 들어서서 아기증산을 모시니 이상한 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하며 밝은 기운이 집 바깥까지 둘러 하늘에까지 뻗쳐 있었다.
일주일동안이나 계속된 그 신비로운 빛과 향기의 기운은 하늘에서 내리는 상서로운 이슬과 같은 분위기였다.
상제께서 이 땅에 현현(顯現)하시기 이전에 은신하여 천하(天下)가 대순(大巡)하는 길에 곳곳에 머물면서 신명계와 인간계의 물정을 살피다가 모악산 금산사의 삼층전 미륵금불(彌勒金佛)에 강림하셨고, 그곳에서 30년동안 계시다가 몸을 나타내시게 되었으니 그 현신(顯身)의 때가 이조 고종 8년 (서기1871년) 11월 1일(음9월19일)이었다.
성신을 현신하심에 양미간에 둥근 백호주가 있었고 왼 손바닥에 임(壬)자 무늬와 오른 손바닥에 무(戊)자 무늬가 있었고, 얼굴은 둥글어 원만함을 보이셨다.
진실로 하늘사람이지 땅에 속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누구든지 한번 보기만 하여도 존경심이 우러나올만큼 얼굴이 복스럽게 둥글어 몸체는 장골이면서도 성품은 원만하고 관후(寬厚)하셨다.
그 성품은 생물에 대한 호생의 덕이 많으셔서 풀 한 포기를 꺾지 아니하시고 지극히 작은 곤충일지라도 해치지 않으셨으며 일생동안 남에게 욕설 한번 못하실 정도로 온화한 성품이셨다.
어느날 부친이 새와 닭을 쫓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여 쫓는 것을 만류하셨으나 부친은 듣지 않고 여전히 새와 닭을 쫓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낮에 별안간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므로 말리던 벼가 떠내려가게 되어 두 부자는 서로 얼굴만 쳐다볼뿐 아니라, 말이 없었다.
외모도 뛰어났을뿐 아니라 안으로는 관후한 성품과 지혜를 겸비하여 신동(神童)으로 불리울만큼 총명하셨다.
증산께서 7세 되시던 해 세상공부를 시작, 부친이 서당 훈장을 초청하여 천자문을 가르치게 했는데 그 훈장이 하늘천(天)하면 받아 읽으시고 따지(地)하면 받아 읽으셨으나 검을현(玄) 누루황(黃) 했을 때는 따라 읽지를 않으셨다.
훈장이 그에게 받아읽지 않는 까닭을 물었으나 대답을 하시지 않고 있다가 부친에게 「하늘천(天)에서 하늘의 현묘를 찾았고 따지(地)에서 땅의 오묘한 이치를 간파하였으므로 더 이상 배울게 없아오니 훈장을 돌려 보내 달라고 여쭈었다.」
부친은 그 청을 거역하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그 훈장을 돌려보내고 뒷 뜰에 별장을 지어 홀로 거처하시게 하였다.
상제께서 1902년 임인년 四월에 삼계를 개벽하는 공사를 행하시다
상제께서 이듬해 四월에 김형렬의 집에서 삼계를 개벽하는 공사를 행하셨도다.
이때 상제께서 그에게 가라사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따라서 행할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느니라.
그것을 비유컨대 부모가 모은 재산이라 할지라도 자식이 얻어 쓰려면 쓸 때마다 얼굴이 쳐다보임과 같이 낡은 집에 그대로 살려면 엎어질 염려가 있으므로 불안하여 살기란 매우 괴로운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개벽하여야 하나니 대개 나의 공사는 옛날에도 지금도 없으며 남의 것을 계승함도 아니요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요 오직 내가 지어 만드는 것이니라.
나는 삼계의 대권을 주재하여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의 무궁한 선운을 열어 낙원을 세우리라” 하시고 “너는 나를 믿고 힘을 다하라”고 분부하셨도다.(공사1장2절)
상제께서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삼계공사(三界公事)이니라”고 김 형렬에게 말씀하시고 그 중의 명부공사(冥府公事)의 일부를 착수하셨도다.(공사1장3절)
상제께서 이 세상에 탄강하여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서 신명이 사람에게 드나들 수 있게 하시고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자들을 찾아 쓰고 모든 것에 운을 붙여 쓰기로 하셨도다. 이것은 삼계를 개조하기 위함이로다.(예시7절)
상제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도수로써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어 물샐틈없이 도수를 짜 놓으셨으니 제 한도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게 되니라.(예시16절)
나의 일은 남이 죽을 때 잘 살자는 일이요 남이 잘 살 때에 영화와 복록을 누리자는 일이니라.(교법1장6절)
상제께서 광구천하하심은 김일부의 꿈에 나타났으니 그는 상제와 함께 옥경에 올라가 요운전에서 원신(元神)이 상제와 함께 광구천하의 일을 의논하는 것을 알고 상제를 공경하여야 함을 깨달았도다.(예시3절)
석가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할 미래에 오실 부처님(구세주)
상제께서 어느 날에 가라사대 “나는 곧 미륵이라. 금산사(金山寺) 미륵전(彌勒殿) 육장금신(六丈金神)은 여의주를 손에 받았으되 나는 입에 물었노라”고 하셨도다.
그리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아래 입술을 내어 보이시니 거기에 붉은 점이 있고 상제의 용안은 금산사의 미륵금신과 흡사하시며 양미간에 둥근 백호주(白毫珠)가 있고 왼 손바닥에 임(壬) 자와 오른 손바닥에 무(戊) 자가 있음을 종도들이 보았도다.(행록2장16절)
석가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할 미래에 오실 부처님(구세주)이란 뜻이다.
불교에서 말세중생을 제도하기위해 오시는 구세주라는 뜻으로 다른 언어로는 ‘메테아’ 또는 ‘마에트리아’ 라고 불렀는데 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메시아’와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다.
상제께서 하루는 공우에게 말씀하시길 “동학 신자는 최 수운의 갱생을 기다리고, 불교 신자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예수 신자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나, 누구 한 사람만 오면 다 저의 스승이라 따르리라”고 하셨도다.
보통 서양 종교의 영향으로 하느님은 한 분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 상제님은 한 분이 아니다.
후천 개벽시기와 인간의 완성을 위해
네 분의 상제님이 계시다는 것을 여기 알리고자 한다.
이렇게 네 분의 상제님 중에 신앙의 대상은 구천상제님 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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