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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바이엘머티리얼사이언스사는 몸에 해로운 용매를 쓰지 않은 폴리우레탄 조성물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릇에 액체 원료를 붓고 주걱으로 저어준 뒤 붓기만 하면 누구나 멋진 플라스틱 공예가가 될 수 있다. | 1907년 최초의 합성 플라스틱 베이클라이트가 발명되면서 플라스틱 세상이 열렸다. 그 뒤 나날이 번창한 ‘플라스틱 패밀리’는 100년 만에 가장 널리, 가장 많이 쓰이는 소재가 됐다. 최근에는 에너지 위기를 넘을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플라스틱을 단열재로 쓰면 한겨울 난방비를 90%나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리나 나무 같은 천연소재의 싸구려 대체품에서 어느 것도 흉내낼 수 없는 신소재로 변신하고 있는 플라스틱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이집트 출신의 카림 라시드는 플라스틱 예찬론자다. 자신의 상상력을 구현할 수 있는 ‘유연성’(plasticity)있는 소재로 플라스틱만한 것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집을 전시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가 하면 국내 한 업체의 의뢰로 깜찍한 플라스틱 책꽂이를 디자인해 ‘책꽂이=나무격자’라는 통념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라시드 정도는 아니더라도 현대인들은 이미 플라스틱에 깊이 중독돼 있다. 플라스틱 튜브에 들어있는 치약을 짜서 플라스틱 칫솔로 양치질을 하고 플라스틱 빗으로 머리를 빗는다. 플라스틱테(일명 뿔테)에 렌즈까지 플라스틱 안경을 쓰고 플라스틱(페트)병에 든 물을 마신다. 플라스틱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50년 사이 사용량 200배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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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의 작품 'LG 자이 퓨처 하우스'. 그가 제안한 미래형 주거 공간에서는 플라스틱이 큰 몫을 차지한다. | 플라스틱이란 말은 ‘성형하기 알맞다’는 뜻의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에서 유래했다. 열이나 압력을 가했을 때 성형이 가능한 물질을 통칭하는데 합성 또는 반(半)합성 고분자로 이뤄졌다.
“본격적인 플라스틱이 선보인지 이제 꼭 100년이 됩니다. 이런 짧은 기간 동안 이토록 사람들을 사로잡은 소재는 없었죠.” 서강대 화학생물공학과 이재욱 교수의 말이다. 1907년 벨기에 출신 이민자 레오 헨드락 베이클랜드가 미국에서 발명한 ‘베이클라이트’는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를 합성해 만든 최초의 합성 플라스틱이다. 당구공의 재료로 쓰던 상아를 구하기 어렵게 되자 그 대체품으로 선보였던 것. 온도, 습도 변화에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전기가 통하지 않는 베이클라이트는 전선피복, 전화기, 커피 메이커 등의 소재로 급속히 보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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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성 플라스틱‘라이트론’은 미세한 전류가 흐르면 은은한 빛을 낸다. 열이 나지 않는‘쿨’한 빛이어서 다양한 인테리어로 쓰일 전망이다. | 그 뒤 스타킹을 대중화시킨 나일론, 유리보다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스티로폼’이라는 상표명으로 더 잘 알려진 발포폴리스티렌 등이 등장하면서 ‘플라스틱 패밀리’는 위력을 더해갔다. 세계의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은 1950년 100만 톤에서 현재 2억 3천만 톤으로 늘었다. 이런 양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플라스틱은 나무나 유리, 비단 같은 천연재료의 질감을 흉내 내기에 급급한 싸구려 대체품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미래에는 자연에 있는 어떤 재료로도 구현할 수 없는 고유한 물성을 띠는 플라스틱이 인류의 삶을 이끌어 갈 것입니다.” 독일 바이엘머티리얼사이언스사 신비지니스창조센터 엑카르트 폴틴 소장의 설명이다.
바이엘머티리얼사이언스사가 개발하고 있는 빛을 내는 플라스틱 ‘라이트론’이 대표적인 예. 전도성 플라스틱 필름 사이에 안료 결정이 채워져 있는 라이트론은 전류가 흐르면 결정에서 은은한 빛이 나온다. 필름의 두께가 아주 얇기 때문에 종이처럼 말 수 있고 적당한 모양으로 잘라도 된다. 안료 결정의 종류에 따라 여러 색을 연출할 수도 있다. “핸드백 안쪽 면에 라이트론 필름 조각을 붙여놓으면 내용물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바이엘코리아 김기정 이사는 라이트론의 응용범위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대용량 저장매체도 등장했다. 미국의 인페이스테크놀로지스사는 저장 용량이 300기가바이트로 DVD 50장에 해당하는 플라스틱 홀로그래픽 데이터 저장장치를 개발했다. 손바닥만한 크기에 수mm두께의 플라스틱에 레이저 펄스를 쏴 화학 반응을 일으켜 3차원 홀로그램으로 데이터를 저장한다. 수명이 50년으로 20년이 안 되는 CD나 DVD보다 월등하다.
자전거 전문업체인 미국의 TAG 휠스사는 플라스틱 바퀴살인 FRX5를 사용한 자전거를 출시했다. 다국적 화학회사 듀폰이 개발한 나일론수지와 유리섬유를 블렌딩한 플라스틱 ‘자이텔 나일론’으로 만든 FRX5는 일체형이라 충격에 강하고 튜닝이 필요없다. FRX5를 장착한 자전거를 타본 프로선수 다마 폰데인은 “바위에 부딪쳐 타이어가 터졌는데도 바퀴살은 멀쩡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뿌리는 플라스틱으로 소음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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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일체형 플라스틱 바퀴살 FRX5. 충격에 강한 자이텔 나일론 재질이다. 02뿌리는 플라스틱으로 철로 밑의 자갈 사이를 메우면 기차가 지나갈 때 소음을 줄일 수 있다. | 건축이나 토목 분야에서도 플라스틱의 활약이 눈부시다. 기차가 지나는 철길 옆에 사는 사람들은 소음으로 늘 신경이 피로하다. 조용하고 쾌적한 곳에서 한잠 푹 자는 게 소원이다. 민원이 폭주하다보니 방음벽을 설치한 구간이 늘어난다. 그 결과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기차여행의 낭만도 색이 바랜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전망이다.
철도 건설업체인 독일 프렌첼-바우 그룹은 혁신적인 철로 시스템인 ‘더플렉스’를 개발했다. 더플렉스는 뿌리는 플라스틱을 써서 철로 밑에 깔려있는 자갈 사이를 메우는 기법으로 소음을 대폭 줄였다. 자갈 사이에 액체 폴리우레탄 조성물을 스프레이로 뿌리면 순식간에 발포성 폴리우레탄으로 굳는다. 그 결과 기차가 지나갈 때 진동으로 자갈이 부딪치면서 생기는 소음을 방지할 수 있을뿐더러 레일이 받는 충격을 흡수해 철도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지난 여름 독일 윌첸 지역에 300m 길이로 시범 설치돼 현재 타당성을 시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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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마테름 태양 지붕은 단열, 방수뿐 아니라 태양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다목적 플라스틱 지붕이다. | 독일 푸렌사가 선보인 보마테름 태양 지붕은 위쪽이 폴리카보네이트, 아래쪽이 폴리우레탄 재질이고 그 사이가 비어있다.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를 통과한 빛은 내부 공간에 있는 공기를 덥히지만 단열재인 폴리우레탄 때문에 열기가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태양열로 덥혀진 공기는 지붕의 높은 쪽으로 이동해 열교환기를 거쳐 유용한 에너지로 바뀐다. 보마테름 태양 지붕은 기와를 얹은 지붕에 비해 무게가 절반밖에 나가지 않아 시공하기도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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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양 올림픽 스타디움 조감도. 축구장의 2배가 넘는 면적의 지붕을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 2008 베이징 올림픽이 열릴 37개 경기장 가운데 하나인 선양 올림픽 스타디움은 새가 내려앉으며 날개를 접는 장면을 형상화했다. 관중석을 덮은 지붕이 양 날개에 해당하는데 넓이가 2만㎡로 축구장면적의 2배가 넘는다. 유리처럼 투명한 이 지붕은 바이엘머티리얼사이언스사가 개발한 폴리카보네이트 ‘마크로론’이다. 마크로론은 충격강도가 유리의 250배나 되므로 25mm 두께로도 태풍이나 폭설 같은 악천후를 견딜 수 있다. 플라스틱이 없었다면 상상속에서나 가능한 디자인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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