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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용산은 잊겠다. 두만강에 남은 인생을 걸겠다.”
건축가 김석철 교수(70·명지대 석좌교수·아키반건축연구원 대표)는 새로운 도시건설을 꿈꾸고 있다. 그 꿈에 인생을 걸었다. 목숨 걸고 마시던 술도 두 달 전부터 끊었다. 지난 10년간 네 번의 암수술을 겪으면서도, 9개월간 병원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끊지 못했던 술이었다. 한 가지 목표가 생기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그가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공식이다.
그는 건축가라기보다 도시 전체를 디자인하는 도시 설계가이다. 한강 마스터플랜, 종묘·남산 재개발계획, 서울 여의도 마스터플랜이 그의 작품이다. 국회를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시의회 자리에서 여의도로 옮긴 것도 그다. 서울 개발에 관한 한 무한책임을 느끼는 그가 용산은 잊기로 했단다. 처음부터 잘못 낀 단추였던 ‘용산’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두만강 하구 다국적 도시 프로젝트이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접경지역인 두만강 하구에 대한민국의 미래와 한반도의 평화가 달려 있다고 믿고 있다. 백발이 돼가는 노교수의 얼굴은 첫사랑에 설레는 소년 같았다. 두만강과 사랑에 빠진 그의 머릿속에선 이미 거대한 다국적 도시가 건설되고 있었다.
올해는 그에게 특히 의미 있는 해이다. 그의 대표작품인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개관 25주년이자 그의 건축 인생과 함께 한 아키반건축연구원을 만든 지 40년이 됐다. 자신의 40년 건축 인생을 정리한 개정판 ‘만인의 건축 만인의 도시’(시공사)를 막 출간한 김석철 교수를 지난 3월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아키반건축연구원에서 만났다.
한 시간 정도 약속한 인터뷰는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그는 인터뷰 상대로서는 아주 편했다. 두만강에서 용산으로, 예술의전당으로 공간이동을 하면서 질문하기가 바쁘게 열정적으로 말을 쏟아냈다. 그는 지난해 10월에도 ‘한반도 그랜드 디자인’이라는 책을 내고 새 정부를 향해 국토개발 프로젝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두 차례의 암수술 와중에 진통제를 맞아가며 엮어낸 한반도 대구상이었다. 세종시, 부산·낙동강 도시연합, 북한 도시건설 등 7가지 프로젝트를 담은 것으로 여기에 두만강 프로젝트도 포함돼 있었다. 그 구상을 본격적으로 설계도면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새로운 설계를 맡을 때마다 인생을 걸었다. 예술의전당에는 7년 인생을 걸었고 쿠웨이트 신도시, 경주 보문단지, 서울대 관악캠퍼스 때도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야전침대 위에서 대부분의 건축 인생을 보냈다. 이젠 두만강에 올인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두만강 하구 다국적 도시 프로젝트를 새 정부에 제안할 계획”이라면서도 자신의 의욕이 정부 측에 너무 앞서 전달될까 염려하기도 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설렌다고 했다. 밤새 누워서 구상해놓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왜 두만강 하구에 인생을 걸었는지, 무너진 용산개발에 대한 해법은 있는지, 25주년이 된 예술의전당을 발전시키기 위한 구상은 어떤 것인지 들어보았다.
그가 두만강 하구의 다국적 도시를 구상한 것은 남북통일의 열쇠가 북한 경제를 도약시킬 도시개발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한의 경제성장이 울산 공단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대된 것처럼 발전가능성이 높은 요충지를 개발해 북한 경제의 퀀텀점프(약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 보고 핵실험 하지 마라, 그러면 뭐 해주겠다고 하는 것은 거세하면 장가 보내주겠다고 하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 ▲ 김석철 교수가 그동안 작업한 설계안들이 아키반건축연구원 지하 1층의 한쪽 벽면에 전시돼 있다. 김 교수의 건축 인생 40년이 한눈에 보인다.
그의 구상은 이렇다. 구체적 위치는 두만강과 굴포리 서포항 유적지 일대이다. 북한·중국·러시아 국경이 얽혀 있는 곳이다. 만주와 시베리아 횡단열차인 TCR와 TSR가 만나는 교통 요충지이자 세계 물류의 길목 중 하나다. 동유럽과 서유럽 사이 반도와 대륙이 만나는 접점에 위치, 십자군전쟁 당시 서유럽의 전진기지였던 베네치아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중국의 동북 3성이 바다로 나올 수 있고, 일본의 유럽·중국대륙 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 동북3성·시베리아·동해를 아우르는 항만과 공항을 만들면 파나마운하보다 더 큰 경제권역을 이룰 수 있다. 북한이 부자나라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는 기회의 땅인 것이다.
좀 더 구체적인 그림은 러시아, 중국, 북한 쪽에 각각 여의도 규모만 한 330만㎡(100만평) 3곳을 공동 개발하고 두만강 하구를 운하로 만들자는 것이다. 중국 동북3성의 중공업과 농축산업 물류가 동해로 연결되고, 러시아의 천연가스 저장 기지를 건설하면 최대 소비국인 한·중·일 3국과 파이프라인으로 연결할 수 있다. 여기에 남북한이 함께하는 전자·자동차·조선 산업을 유치한다. 오페라하우스와 같은 문화 인프라와 복합리조트를 만들고 최고의 대학과 최고의 연구소도 유치한다. 중국·러시아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이다. 태평양을 통해 일본과 미 대륙과도 바로 연결된다. 남·북한과 미·중·일·러가 모두 상생할 수 있는 21세기 대표적 파워도시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는 “6자회담을 공간 인프라로 만든 셈”이라고 말하고 “새로운 도시건설은 복지와 행복, 평화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한반도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상적인 계획이지만 과연 실현 가능할까? 그는 “박근혜 대통령만 결심하면 된다.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중국 시진핑과도 잘 통하고 일본 아베와도 친분이 있으니 박 대통령만 한 적임자가 없다”면서 “설계도만 있으면 5년 내 다국적 도시를 만들 수 있다. 어제도 새벽 5시까지 설계도 그리다 잤다. 곧 모형도 만들 것이다”고 자신했다. 그는 또 “다국적 도시 예정 부지는 현재 황무지이다. 땅 보상 등 복잡한 절차가 필요없다. 결심만 서면 의외로 일이 빨리 진행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가 가장 경쟁력을 갖고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 도시건설이라고 했다. “분당 신도시 개발의 경우 설계에서 입주까지 불과 5년밖에 안 걸렸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정도전이 한양을 설계한 것처럼 14세기 말에 20만명 인구의 도시를 설계한 나라가 없다. 우리는 기적에 가까운 일을 할 수 있는 DNA를 갖고 있다. 도시건설을 수출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중국의 도시건설은 21세기 최대 산업이다.”
- ▲ 김석철 교수의 두만강 하구 프로젝트 설계안 자료 : 아키반건축연구원
그는 두만강 설계와 관련해서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 2010년 한국·이탈리아 포럼 연설차 밀라노에 가서 오페라극장에 초대됐을 때의 일이다. 술이 문제였다. 어지러워 쓰러지는 바람에 머리가 깨졌다. 극장 안에까지 들어온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후송됐다. 피를 많이 흘려 혈압이 40㎜Hg까지 떨어졌다. 그때도 두만강 하구 프로젝트가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다음날 두만강 개발의 모델로 생각하고 있던 상트페테르부르크행 비행기를 예약해놓은 상태였다. 그는 “새벽에 마취에서 깨자마자 엑스레이 필름 봉투에 두만강 하구 도시안을 그려서 출근한 의사를 붙들고 보여주면서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했다. 두만강 하구에 페테르부르크보다 더한 도시를 건설하려고 한다. 사람들을 만나기로 돼 있어서 꼭 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결국 퇴원 승낙을 받아 앰뷸런스를 타고 공항으로 갈 수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도 머릿속에서는 두만강 하구에 대한 구상이 쏟아졌다. 스케치북에 정신없이 메모하면서 대략의 설계도를 그려놓고 공항에 도착하니 비행기 이륙 15분 전. 시간에 쫓겨 헐레벌떡 내리고 보니 아뿔사! 스케치북을 놓고 내린 것이었다. 그는 “그때 그린 스케치를 다시 복원하려고 했지만 잘 안되더라. 스케치는 떠나간 사랑처럼 순간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그때 기억을 더듬어 다시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두만강 때문에 잊기로 한 ‘용산 개발’ 문제에 대한 해법을 물었다. 그는 “도시설계를 할 때는 각계의 전문가가 모여 어떤 도시를 만들지, 어떤 산업 위주가 돼야 할지 개발의 방향을 잡고 전체적인 설계를 해야 하는데 용산 개발은 시작부터 잘못됐다. 어떤 건물을 지으면 잘 분양될까만 생각하다 보니 한 판의 거대한 부동산 투기판이 된 것 아니냐”면서 안타까워했다.
그는 용산은 서울의 머리와 심장을 연결하는, 신체 중 목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했다. “서울이 세계적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스케일이 부족하다. 다국적기업 아시아 본부들이 싱가포르나 중국에 가 있다. 그들을 끌어오려면 어느 정도의 스케일이 돼야 한다.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콘텐츠의 문제이다. 4대문 안도 여의도도 어반(도시) 스케일이 부족하다.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곳이 바로 용산이다.”
용산은 또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와 같은 곳이라고 한다. 그는 “용산은 식민지 서울을 상징하는 곳이다. 용산역은 일본에서 출발한 관동군이 만주 출병을 떠나던 곳이다. 4대문 안의 과거를 지나 근대의 용산을 거쳐 대한민국의 현재를 보여주는 여의도로 이어지는 역사의 축이다”고 말했다. 그만큼 용산은 중요하고 기회의 땅이라는 것. 그는 “어제도 용산을 둘러보고 모형도 보고 했는데 왜 저지경이 됐는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하려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설계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관 25주년이 된 예술의전당에 대해서는 그는 “아직 미완성”이라고 했다. “애초에 예술의전당을 그곳에 만들 때는 경복궁에서 국립박물관을 지나 한강에 보행전용 다리와 아레나를 짓고 국립도서관, 대법원을 거쳐 예술의전당까지 서울의 1번가를 만들자는 계획이었다.” 그는 “예술의전당에서 원래 계획했던 한강 아레나까지의 거리가 정확하게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와 똑같다”면서 “25주년 기념한다고 쓸데없는 잔치나 할 것이 아니라 ‘서울 1번가를 만들자’는 선언을 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하는 그는 요즘에 두 권의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용산 때문에 ‘예루살렘’을 읽었고 두만강 하구 프로젝트 때문에 읽고 있는 책이 ‘콜럼버스의 항해록’이다. 그는 “콜럼버스에게 신대륙이, 내게는 두만강 하구 개발이다”고 말했다. 책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고 용기를 얻고 있다고 했다. 콜럼버스의 좌절과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한 신념, 그 뒤의 고뇌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단다. 두만강 하구를 향한 항해를 시작한 그의 얼굴은 신념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두만강 하구 개발은 이미 이 머릿속에 있다”면서 도시가 완성된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뛴다고 했다.
사무실 한쪽 벽면에 설계도와 미술 작품 사이에 이상하게 생긴 상반신 모형 틀이 걸려 있었다. 자신이 항암치료를 받을 때 사용했던 방사선 차단용 납 가운이라고 말했다. “저게 방사선을 66번 맞은 거예요. 일본 원전 사고 때 최후의 결사대가 맞은 방사선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요? 방사선 치료 33번 양밖에 안 돼요.” 방사선 쪼인 횟수가 마치 훈장이나 되는 것처럼 자랑스럽게 말했다. 일에 대한 열정이 그의 심장을 뛰게 하는 한 암쯤은 별것 아니라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