惑(혹)
張諄河(장순하)
신도 잠들고
섣달 긴긴 囹圄(영어)의 밤
해 묵은 悔恨(회한)들이
한 점씩 저며 가고
마지막 執念(집념)만 앉아
아침을 맞는다。
四十四度 斜角(사각)에서
햇살 비치는 地下室 層階(층계)
그 鮮明한 톱날의
陰影(음영)을 타고
나는 둘
하나는 빛으로 가고
하나는 그늘로 간다。
練習曲(연습곡)
- 李祥根 兄에게
山을 빗장 지르고
하루를 우는 뻐꾸기
저것들은 한 움큼씩
눈물 갈라 쥐고 와
무시로 목청 고루던
단발머리 누이들。
너도 인제 알리라
빈손 수월한 어느 저녘
문득 흰옷 떨치고
사립문 나선 이 있어
네 아픔 섬으로 올 때
간절하리라
한 방울。
長澤 高氏 婦人傳(장택 고씨 부인전)
장택 고씨 부인, 이는 이름 한 字 없는 우리 할머니
의 장황한 호칭。
戶籍을 들추면 高氏 家門에가 아니라 興城張氏의 戶
口에 자리하여 九十 春秋。 질실로 한 生의 數運이란
제 뜻 아닌 고작 몇 글자의 붓끝으로 까불림을 뼈로
보노니, 開國에 나서 西域으로 가시는 동안 숱한 굽
이친 물결, 도도히 흘러간 핏빛 물결은 흰옷 자락을
점점히 물들이고 덩시렇던 노적 터에 길길이 억새만
가꾸었다。
목소리 담 넘을세라, 조신한 이 땅의 아낙으로 시원
히 한 가락 뽑안들 보았으랴만, 어버이와 지아비와 그
아들의 잎 그늘 사이로만 날아 온 잿빛 산비둘기, 이제
마지막 한 줄「事由」를 보태고 더 큰 가지에 날개를 접
도록에 한 마디 구구 소리도 없었건만,탯줄에 주저리
열린 일곱 남매, 그 중 앞서 비인 한 칸에
흥건히 고여 있꼬녀 ! 단 하나 당신의 뜻。
無限花序(무한화서)
俗離山(속리산) 法住寺 한밤의 인경 소리 天皇峰을
넘어가고 돌담 모퉁이에서 박꽃은 눈부시게 피어났다。
솔방울만한 上佐 적부터 새벽 밖으로 종채를 잡아
온 한 沙門의 發願, 종 소리에 띄워 보낸 그 숱한 發
願들이 淨府의 뒷문에 부딪혀 落葉으로 쌓인 것을 보
았을 때, 그는 이마 위에 서리를 날리고 있었다。
못할 짓이었다。 밤마다 새벽마다 八方十方에서 모여
드는 종소리, 목탁 소리, 念佛 소리에 그만 질력이 나
버린 크신님은 坎中連의 손가락 넌짓 들어 귓구멍을
막았던 것 -
그가 제 사연들을 거두어 불사르고, 바람은 또 잿가
루를 저마다의 자리로 돌려 보낸 뒤, 제비라도 한 마
리 스쳐 갔는지 씨알 하나 눈을 떴다。
덩굴은 길길이 담을 기고, 가진엔 가지가 돋아 땅을
덮는데, 어디선지 소리, 종소리들이 돌아와 마디마디
하나씩 弔旗를 꽂고 어둠은 작은 상처를 떨고 있었다。
默契(묵계)
뭔가 있지 있지 싶은 雨水節 이른 아침
新鮮한 한 젊은이 모자 벗어 손에 들고
한 발짝 물러선 곳에 다수굿한 새색시。
그들은 의논스레 날 넌지시 건너다보고
나는 벌써 요량한 듯 가벼이 點頭했다。
그렇지, 까치저고릿적 그 전부터의 친구들。
하여, 내 하늘 한귀에 둥지 틀고
두세 마리 새끼 쳐서 搖籃(요람) 위에 얹어
두고 신접난 젊은것들은 죽지 쉴 새 없구나。
이제 저 어린것들 너머로 날려 보내고
저것들도 머리 세어 제곳으로 돌아가면
난 다시 대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겠지。
장순하(張諄河.1928.9.13∼ )
시조시인. 전북 정읍 출생. 호 사봉(師峰). 원광대학교 국문과 졸업. 1949년 봄 도서출판 [현대사]에 입사하여 국어사전, 한한사전, 시조사전 등을 편찬하였다. 1949년 12월 [새교육]지에 첫 작품 <어머님전 상사리>를 발표하였다. 1950년 겨울 남성고등학교 교사가 됐다. 1957년 10월 제1회 개천절 경축 전국 백일장 시조부 예선에서 <통일대한>으로 장원을 했으며, [현대문학]지의 초대로 <울타리> <허수아비> 등이 게재됨으로써 문단에 데뷔하였다.
시조 전문지 [신조(新調)]의 주간을 역임하고, 1966년 1월 한국문인협회 이사로 피선되었다. 이로부터 10여 년간 문인협회 이사, 한국시조작가협회 이사에 이어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1970년 3월 건설부 촉탁을 퇴직하고 [금강출판사]를 설립하였다.
가람시조문학상(1981), 제6회 중앙시조대상(1987) 수상. 1988년 5월 김정문 씨와 함께 도서출판 [가리내]를 설립(대표)하였다. 1994년 4월 계간 [현대시조]지 자문위원이 되었다.
【작품 활동】
<어머님전 상사리>를 [새교육]지에 발표한 뒤 1957년 개천절 경축 전국백일장에서 <통일대한>이 장원으로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58년 [현대문학]에 <울타리>를 발표한 뒤, 작품집 <백색부>를 비롯하여 시조 <혹(惑)> <유예><반역(叛逆)> 등의 작품들과 논문 <시조문학 임상고발> 등 비평에도 관심을 보여주었다. 시조 전문지 [신조(新調)]의 주간을 맡기도 하였다.
【작품세계】
(1) 형식면으로는 평시조】엇시조】사설시조를 골고루 실험하였고, 때로는 평시조와 사설시조를 섞어서 짓거나 평시조와 엇시조를 섞어서 짓는 일까지 이울러 시도하였다.
(2) 한때 모더니즘에서 유행했던 시각적(視覺的) 표현법을 시조에 도입하여 글자 모양과 글자의 위치와 배열의 변화 등을 실험하는 한편, 화화(繪畵)를 시조 안에 끼워넣는 일까지도 시도하였다.
(3) 이와 같은 왕성한 실험정신은 제재(題材)의 발굴에도 적용되어, 그가 다루는 대상은 자연과 인생, 민족과 국가 등으로 다양한 진폭(振幅)을 보이고 있다.
(4) 이와 같은 시 정신은 내면적 세계로보다는 외적인 세계로 발산되고 있으며, 작품은 대개의 경우 설명적인 어법을 통해서 형성된다.
(5) 그의 시는 경험론적 시관(詩觀)으로 통하면서 이론적 사고(思考)를 바탕으로 하여 느끼는 시라기보다는 생각하는 시에 속한다.
【시집】<백색부(白色賦)>(일지사.1968) <묵계(黙契>(1974) <동창(東窓)이 밝았느냐>(어문각.1985) <달빛과 사랑>(어문각.1986) <서울 귀거래>(책만드는집.1997) <이삭줍기>(태학사.2001)
< 시집 이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