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꾸미는 피뿔고둥 껍질 속에 알을 낳는다
이렇게 씨를 받은 암컷 주꾸미는 산란장(産卵場)인 피뿔고둥을 찾아 나선다. 피뿔고둥은 뿔소라 과(科)에 드는 놈으로 입 둘레
가 원체 붉은 색이어서 ‘피’란 말이 붙었고, 껍질에 작은 ‘뿔(돌기)’이 나있어 ‘피뿔고둥’이다. 껍질이 아주 두껍고 야물며, 껍질
높이가 15 cm나 되니 쉽게 비유하면 글 쓰는 이의 주먹보다 더 크고 입(각구, 殼口)이 크고 넓어서 주꾸미가 들어앉기에 안성
맞춤이다. 그리고 육식성으로 이미 본 란에 설명한 ‘조개껍데기에 구멍 내기’가 이놈의 전공이기도 하다.
아무렴 주꾸미의 사랑 또한 기특하다. 피뿔고둥의 안벽에다 알을 낳아 붙이고 입구에 떡 버티고 앉아서 어엿이 알을 지킨다. 노
심초사, 애써 빨판(흡판, sucker)으로 알을 닦아주고, 맑은 물을 일부러 흘리면서 치성(致誠)을 다한다. 몸이 빼빼 마르고 성한
데가 없다. 주꾸미도 아프게 가슴앓이 하는 곡진한 모성애가 있다.
이제 주꾸미를 잡아보자. 먼저 피뿔고둥의 껍질에 구멍을 뚫어 길 다란 줄에 텅 빈 고둥을 디룽디룽 줄줄이 매달고 해저물녘에
배타고 나가서, 주꾸미가 많이 들것을 비손하면서 밧줄을 바다에 늘어뜨린다. 하룻밤 새우고 다음 날 새벽녘에 나가서 다시 걷
어 올린다. 피뿔고둥 속에 주꾸미가 들었다! 빈 고둥껍질이 낚시 바늘인 셈이다. 회 한 접시에도 민중의 역사와 삶이 스며있다
고 하던가. 주꾸미와 고둥의 조우(遭遇), 예사롭지 않는 거룩한 만남이다.
위기가 닥치면 피뿔고둥 껍질 속에 숨는 주꾸미
영리한 주꾸미 놈의 어처구니없는 습성 하나를 더 보자. 바깥나들이 나갔다가 이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주꾸미,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달려온 물고기 눈에는 식겁 먹고 꽁지 빠지게 달아난 녀석은 보이지 않고 어이없게도 입뚜껑(구개,口蓋, operculum)을 꽉
닫은 피뿔고둥 만이 덩그러니 버티고 있으니…, 머쓱하게도 닭 쫓던 개가 되고 말았다! 기겁한 주꾸미는 헐레벌떡 쫓기면서도
납작한 조개껍데기 하나를 덥석 물고 와 몸통을 쓰~윽 고둥 안에 비집어 넣고는 그 조가비로 퍼뜩 입을 틀어막아버린다. 이럴
때 엿 먹인다고 하던가? 암튼 신통한 일이로고! 도대체 주꾸미 너는 그것을 어찌, 어디서 터득했느냐? 어머니가 기꺼이 가르쳐
주셨답니다! 참, 자식은 부모를 비춰 보이는 거울이라 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