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9쌍 합동결혼식 기념촬영 |
|
ⓒ 김재경l |
| 행복의 문을 여는 결혼식
한해의 끝자락이 아쉬워지는 12월 1일 오후 1시, 안양시청 별관 2층 홍보홀에서는 봉사단체인 국제로타리클럽 3750지부 경안로타리클럽(회장 강태현)이 주최하는 '무료합동결혼식' 웨딩마치가 새로운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30세부터 많게는 69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동고동락 한 지 1년이 채 안된 커플부터 대부분 10년 이상, 길게는 40여 년을 부부로 살아온 9쌍이 이날의 주인공이었다.
"믿음은 사랑에서 싹트며 사랑은 신뢰에서 싹틉니다." "우리가 불편한 것은 내가 못 살아서가 아니라 상대가 잘 살기 때문에 생기는 상대적 빈곤입니다. 건강한 몸이 있는 한 불평은 사치스런 생각입니다." 안양로타리클럽 강창호 전 총재는 주례사를 통해 지혜로운 삶을 살도록 당부했다.
양명여고 학생들의 축하와 케이크 커팅 등 여느 결혼식과 다름없이 만세 3창으로 식이 끝나자 순서대로 가족사진 찍기와 폐백 등으로 술렁대며 다소 식장은 어수선해졌다.
폐백실에서 만난 신랑 신부들의 사연
폐백실에서 만난 박종기(69) 김갑례(60) 부부는 "생활이 어려워 그냥 살다보니 식도 못 올렸지. 늦게나마 소원 풀어서 기쁠 뿐이야."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넉넉한 미소에 담아 소감을 말한다. 이들 부부의 만남은 40년 전 김갑례씨의 고향(군산) 소꿉 친구가 직업군인이었던 남편의 동료인 박종기씨를 소개시켜주며 시작되었다.
서로의 마음이 자석처럼 끌려 직업군인이었던 박종기씨와 1962년 신접살림을 시작, 남매를 낳고 여느 부부처럼 오손도손 살았지만, 늘 가슴언저리에는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중압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한달 두달 미룬 것이 자녀들이 장성함에 따라 부끄럽고 민망하기까지 했다. 우연히 비산1동사무소 앞을 지나다가 '무료합동결혼식' 플래카드를 보게 되었고 설레는 맘에 잽싸게 신청까지 했다.
자녀를 모두 출가시킨 터라 슬그머니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맘먹었는데 자녀들이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부모님이 결혼식을 못 올린 것을 몰랐는데 축하할 일이다"라고 말해 이들 부부는 맘이 홀가분해지며 속까지 편안해졌다.
"자식들이 모두 짝을 찾아 떠나고 덩그라니 둘만 남은 이제부터 진짜 신혼이 아니냐"며 늦깎이 신랑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호계1동에 사는 남상만(53) 박인희(48) 부부는 5남매(22~11)를 낳아 기르다보니 자글자글 늘어나는 주름살만큼이나 생활이 펴질 날이 없었다. 결혼식에 참여한 자녀들이 "엄마! 아빠! 늦게라도 참 잘 되었네요" 한 목소리로 축하해 주니 기쁘다고 말한다.
척추장애로 결혼식 중 줄곧 의자에 앉아있던 양재무(47) 신랑의 백발이 성성한 노모 신정은(78) 할머니는 "아들의 결혼식을 보러 화성에서 왔다"며 "며느리가 여섯인데 모두 잘 들어왔어. 이제 넷째까지 결혼하는 것을 보니 소원 풀었어. 기분이 이렇게 좋을 수가..." 폐백을 받는 환한 표정에서 노심초사해 왔던 오랜 시름이 걷히는 듯 하다.
석수2동에 사는 신중기(51) 김재순(49) 부부는 중매로 만나 남매를 낳고 21년을 알콩달콩 살아왔다. 석수동에서 남편은 노래방을, 부인은 미용실을 운영하며 살고 있지만 처음에 못한 결혼식을 본인들이 스스로 하긴 쉽기가 않았다.
남편 신중기씨는 "머리를 올려 줘야지"하는 생각에 적잖은 부담감을 느끼며 항상 아내한테 미안하던 터에 동네 통장의 권유로 합동결혼식에 참여하게 되었다. 신부 김재순씨는 "오늘 이 자리가 너무 고맙고 감사하지요. 개인적으로는 속시원하고요." 이들 부부는 그 동안 마음고생을 훌훌 털어버리기라도 하듯 2박3일 일정으로 떠나는 제주도 신혼여행 준비에 마음이 분주해 보인다.
박달1동에 살며 자동차정비를 하는 이기영(40) 신랑은 친구의 처제였던 신부 박현심(30)씨를 소개받아 9살과 6살 형제를 낳고 단란하게 살고 있지만, 늘 가슴 한편에는 결혼식을 못한 아쉬움이 그림자로 남아 있었다.
신부는 "남편이 합동결혼식 현수막을 보고 신청하게 되었는데... 마음이 홀가분하고 한 짐 덜은 기분이네요"라며 "결혼식 도중 '엄마!'하고 달려나와 웨딩드레스 자락을 잡던 녀석이 작은아들이었어요"라고 말한다.
박종철(37) 강옥화(33)부부는 중국에 거주하는 동서의 소개로 만나 지난 5월부터 신접살림을 시작한 중국교포커플이다. 폐백실에서 신부는 "절을 몇 번 해야 되느냐"고 묻자 손위 동서가 차근차근 알려주고 일일이 챙겨주는 모습이 자매처럼 친근해 보인다.
근엄하게 절을 받던 시아버지가 "아들 딸 셋만 낳아라"고 말하자 시어머니는 "아들이든 딸이든 하나라도 건강하게 낳아 재미있게 살아라"고 덕담을 하며 밤과 대추를 던진다. 신랑과 마주 잡은 하얀 혼배수 가득 밤과 대추가 수북히 쌓이자 축하객들은 "아들 딸 무지하게 많이 낳겠는걸"하며 축하해 주었다.
마지막 커플이다 보니 사진사는 "신부 입에 대추를 물리고 신랑이 입으로 대추씨를 빼오라"는 등 "신랑 신부가 팔을 끼고 '러브샷'으로 술을 마시는 연출을 여유있게 시도"하고 있었다.
축하객으로 꽉 찬 피로연장
|
|
|
▲ 합동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 |
|
ⓒ 김재경 | 시청사내 직원식당에서는 잔치국수에 김치 깍두기 귤 콜라 절편 오색떡 꼬치전 돼지고기수육 등 어느 잔치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뷔페식 음식들로 정갈하다. 하지만 중간에 음식은 동이 나고, 주최측은 부랴부랴 떡 2말과 국수를 추가로 준비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행사를 주최한 경안 로타리클럽 강태현 회장은 "신랑과 신부를 대상으로 초청인원을 파악할 때는 280명이었기에 400여 명 분량을 넉넉히 준비했으나 예상외로 600여 명이 참여하며 생긴 파동"이라며 "이번 행사는 '사랑의 씨앗을 뿌리자'라는 국제로타리 테마에 따른 지역사회봉사의 일환으로 기획하게 되었다. 여러 사정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살아온 부부들에게 평소 소망인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행사를 주최하게 되어 클럽회원들 모두가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최측인 경안 로타리클럽에서는 음식 및 다과 기념품 차량을 제공했고, 후원사인 결혼 만들기 엘가에서 결혼에 따른 예복 메이크업 사진 비디오 촬영 등을 후원했다. 엘가의 신상수 대표는 "합동결혼식 후원은 생색내기를 위한 홍보용이 아닌 올 최신 유행상품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안양시는 각 홍보매체를 통해 무료합동결혼식 대상자 선정 및 모집, 예식장과 식당 등 장소를 제공했다. 금년이 첫 행사지만 '경안로타리클럽'과 '결혼 만들기 엘가'는 매년 이 행사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객으로 참석한 친척들과 관계자들은 원앙 9쌍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하며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