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 노화의 세 기둥 '운동 · 식단 · 사회생활'
세계 최고의 노인학 대학 데이비스스쿨의 핀차스 코언 학장
이동훈 주간조선 기자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남가주대학(USC) 데이비스스쿨은 노인학(Gerontology) 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最古), 최대(最大) 학교다. 1975년 설립돼 세계 최초로 노인학 분야를 개척했고 현재 노인학을 연구·강의하는 교수진이 50여명이다. 학부생과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은 300여명에 달한다.
핀차스 코언(56) 교수는 데이비스스쿨의 학장. 노인학 연구를 주도하는 세계적 석학이다. 지난 5월 24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남가주대 ‘글로벌 컨퍼런스 2013’ 참석차 방한한 코언 교수는 ‘수명연장의 도전과제: 성공적인 노화전략과 아시아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란 주제발표를 했다. 직후 주간조선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평균수명보다 건강수명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발표에는 의료산업을 신수종산업으로 키우고 있는 삼성종합기술원의 고위 관계자도 참석해 관심을 나타냈다.
코언 교수는 남가주대의 ‘에델 퍼시 엔드루스 노인학 센터’의 상임이사도 맡고 있다. 그는 1957년 이스라엘생으로, 1986년 이스라엘 테크니언의대를 최우수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 수련의로 일했다. 이후 펜실베이니아대와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교수를 거쳐 남가주대에서 일하고 있다. 노화·알츠하이머·당뇨·성장호르몬에 관한 25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고, 미토콘드리아에서 생성된 펩티드를 최초로 발견했다. 이 같은 공로로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의 유레카상 및 노화연구 부문 글렌상을 수상했다.
코언 교수는 “노인학은 20세기 후반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가장 최신 학문”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의 전 생애주기에 걸친 ‘생명’과 ‘노화’를 연구한다. 노인들의 보건의료 쪽에만 국한된 ‘노인의학’과는 조금 다르다. 의학을 비롯해 경제학, 경영학, 행정학, 사회학, 심리학, 공공정책학 등 거의 모든 학문을 망라한다.
코언 교수는 “노인학 연구를 통해 은퇴 준비에 필요한 재정계획 등을 수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몇 살에 은퇴해야 할 것인가, 또 은퇴를 하기 위해서는 얼마를 저축해야 하는지 등등의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가족력과 유전자 테스트 등을 통해 자신이 사망할 나이를 예측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이런 분석과 연구는 생명보험사의 보험상품 설계와 국민연금과 같은 공공정책 입안에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미국에서 노인학이란 학문분야를 개척한 것은 1960년대로 올라간다. 캘리포니아주에서 교장을 지내고 은퇴한 여성 에델 퍼시 앤드루스가 은퇴 후 보험을 가입하려 했는데 계속 거부당했다. 앤드루스는 당시 콜로니얼펜보험의 창업자인 레오나드 데이비스를 만나 “은퇴자에게 보험을 팔면 큰돈을 벌 것”이란 점을 설득했고, 이에 주목한 레오나드 데이비스는 ‘노인보험’ 상품을 도입해 대성공을 거뒀다. 이때 ‘시니어 파워’에 눈을 뜬 레오나드 데이비스 등은 당시 돈으로 500만달러를 모아 남가주대에 기부해 노인학 전문 학교인 데이비스스쿨을 세웠다.
현재 데이비스스쿨에서 노인학을 전공한 학생들은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노화 관련 비즈니스에서 일한다. 코언 교수는 “과거 양로원이나 요양센터의 운영에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이 관여했다면, 요즘은 노인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이끌어가는 추세”라고 했다. 미국에서 노인학과 연관된 시장규모는 약 2500억달러(약 280조원)로 추산된다.
- ▲ 지난 5월 24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미국 남가주대 ‘글로벌 컨퍼런스 2013’.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돈’ 역시 노인들이 쥐고 있다. 코언 교수는 “베이비붐 세대의 인구는 미국 전체 인구의 14%가량에 불과하지만, 가처분소득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며 “2030년에는 65세 이상의 미국 노인 인구가 5명 중 한 명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인들의 정치적 파워도 상당하다. 에델 퍼시 앤드루스가 이끈 전미은퇴교사협회(NRTA)는 미국은퇴자협회(AARP)로 거듭났다. 그는 “미국은퇴자협회는 회원 수만 4000만명에 달하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이익단체 중 하나”라고 말했다.
‘센티네리언(Centenarian)’이라고 불리는 ‘100세 노인’도 급증 추세다. ‘110세 노인’을 뜻하는 ‘수퍼 센티네리언’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코언 교수는 “1900년대 미국의 100세 이상 노인이 10만명당 1명꼴이었지만, 지금은 1만명당 1명꼴”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미국, 중국, 북한보다 더 길다”며 “한국도 100세 이상 노인이 5000명당 1명”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는 한국에도 시사점이 크다는 평가다.
‘성공적 노화’는 노인학이 추구하는 목표다. 코언 교수는 “70세까지 산다고 해도 병으로 골골대며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건강수명을 늘리면 은퇴 후에 들어가는 의료비 역시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딱히 정해진 목표수명은 없다. 그는 “국가별로 다르지만 평균수명 이상을 사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코언 교수는 “운동·식단·사회생활이 성공적 노화의 가장 핵심적인 세 기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시간의 운동과 옥외활동이 필수요소”라고 말했다. 또 그는 “국가와 지역마다 좋다고 말하는 식단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섭취해서는 안 되는 것들은 분명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권장하는 것은 붉은색 고기와 설탕 섭취를 줄이고, 색깔 있는 야채와 오메가3가 풍부한 생선을 섭취하는 것이다.
코언 교수 역시 일주일에 세 번 집 근처의 산타모니카산을 1시간30분 정도 등산한다. 또 헬스클럽에 1주일에 두 번씩 가고, 요가를 하고 있다. 건물 내에서도 엘리베이터는 절대 타지 않고, 연구실과 강의실을 계단만 이용해 오르내린다고 한다. 또 교정 사이를 이동할 때는 셔틀버스를 타는 대신 10~15분 걸리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다닌다고 했다.
식단 역시 엄격히 관리한다. 오메가3가 많이 함유된 생선을 일주일에 두세 번 섭취한다. 다크초콜릿을 제외한 디저트는 절대 먹지 않고, 대신 과일과 견과류를 풍부하게 섭취한다. 그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세 잔씩 마신다”며 “커피와 차는 몸에 좋다”고 말했다. 코언 교수는 “한국식 바비큐 등 붉은 고기를 섭취하는 것은 특별한 날에만 하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라고 말했다.
식습관과 운동습관만큼 성공적 노화에 중요한 것이 사회활동이다. 은퇴 후에도 종교커뮤니티나 사회커뮤니티에 참가하는 것이 좋다는 것.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선활동을 하는 것도 성공적 노화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코언 교수는 “영원히 은퇴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나도 영원히 은퇴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