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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개시 후 2일째(1967년 6월 6일) 아침 - 그 전날 하루 동안 아랍 4개국의 공군이 지상에서 사라지다.
앞에 글에서 설명했듯이 6월 5일 하루 동안 이스라엘 공군은 아랍 상대국들의 공군력을 거의 궤멸시켜버리는 성공적인 전공을 거둡니다. 성공 원인에는 모사드의 정밀한 정보 수집과 분석, 그리고 아랍 어느 국가의 공군 조종사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인한 정신력과 철저한 훈련으로 최고 수준의 이스라엘 공군 조종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작전이었습니다. 동시에 "당나라" 군대 수준의 무능력한 아랍 국가들의 방공망과 공군력도 일조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드디어 하루가 지나간 후에 전쟁 개시일에 전개된 이스라엘 공군 기습작전 (작전명 "Focus")의 결과를 흝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A.기종별 피해
1.전투기 피해
1) 미그 21 (당시 최신형 소련제 전투기) 148대 (이집트: 104대, 시리아:32대, 이라크:12대)
2) 미그 19 29대 (전부 이집트 공군 소속)
3) 미그 17 112대 (이집트:94대, 시리아:16대, 이라크:2대)
4) 수호이 Su-7 14대 (전부 이집트 공군 소속)
5) 호커 헌터 27대 (요르단:21대, 이라크:5대, 레바논:1대)
(호커 헌터 전투기 - 아랍 전투기들 중에서 유일하게 영국제입니다.)
2.폭격기 피해
1)투폴레프 Tu-16 31대 (이집트: 30대, 이라크: 1대)
2)일류신 Il-28 31대 (이집트 : 27대, 시리아 : 2대, 이라크:2대)
3.수송기 피해
1)일류신 Il-14 32대 (이집트:30대, 시리아:2대)
2)안트노프 An-12 8대 (전부 이집트 공군 소속)
3)C-27 4대 (이집트: 2대, 시리아: 2대)
4.헬리콥터 피해
1)밀 Mi-6 10대 (이집트: 8대, 시리아: 2대)
2)밀 Mi-4 6대 (이집트: 2대, 시리아: 4대)
B.국가별 피해
1.이집트 :338대
2.시리아: 61대
3.요르단: 29대
4.이라크: 23대
5.레바논: 1대
참고로 대한민국 공군의 전투기만 400대(그중 절반 이상이 구형 F4 팬텀과 F5 타이거)입니다. 이집트에서만 하루동안 200대가 훨씬 넘는 숫자의 전투기가 완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전투기들이 남겨졌는지 몰라도 이집트 공군은 거의 100% 전력이 깔끔하게 저세상으로 가버렸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결국 단 하루 동안의 이스라엘 공군의 기습작전의 결과로....
총 452대의 아랍 주변국들의 공군 항공기가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는데 반면 이스라엘은......
하루 동안의 작전 수행 중에 단 19대의 전투기를 잃었습니다!
어쨌든 기적과 같았던 포커스 작전 이야기는 그만 하고, 지상군 전투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투는 크게,
1.이스라엘 서쪽 시나이 반도에서 이집트 군과의 교전
2.이스라엘 동쪽 요르단 군과의 교전
3.이스라엘 북쪽 골란 고원에서 시리아군과의 교전
지금부터는 이상의 3개 교전 지역을 넘나들면서 입체적인 전투 상황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설명을 위해 보여지는 지도들에 대해서 눈여겨 보면서 글을 읽길 바랍니다.
시나이 반도 침공 상황
6월 5일~6일 (개전 이틀 동안 상황)
(6월 5일~6일, 전쟁 개시 이틀 동안 시나이 반도(이스라엘의 서쪽)로 진격해들어온 이스라엘군의 진행 경로)
이집트군이 제1차 방어선으로 설정한 칸 유니스, 엘 아리쉬, 아부 아게일라(위치 感을 잡도록 위에 지도에 이 3곳을 표시해놨습니다.)를 점령한 이스라엘군은 파죽지세로 수에즈 운하를 향해서 서쪽으로 진격을 해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2차대전때 노르망디에 상륙했던 연합군이 마켓 가든 작전 싯점에 겪었던 고충과 똑같은 문제였습니다. 즉, 단 하루만에 무섭게 진격해가다보니 선두 기갑부대와 후방 간에 보급선이 너무 길어져버려서 연료,탄약,식량의 보급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버린 것입니다.
끔찍한 더위에 사막 지대에서 사우나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인 탱크 속에서 제대로 물도 못먹는 상황이 지속되자 기갑병들에게 손실된 염분을 보충하기 위해 정제 소금이 보급되었지만 이나마 6월 6일(둘째 날)부터는 바닥이 나버렸습니다. 실제로 여단장급 지휘관도 6월 7일(세째날)까지 몇잔의 쥬스 정도를 마시며 배고픔과 갈증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헬리콥터로 공중 보급되는 물량의 대부분도 식량이나 식수보다 탄약과 연료가 우선이었고 병사들은 기갑병들이나 그 뒤를 쫓아오는 지상군 병사들 모두 이런 상태로 진격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유태인들이 얼마나 지독한 인간들인가는 인간의 한계에 다다를 정도의 끔찍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군 병사들의 사기는 전혀 꺾이지 않았고 아부 아게일리 남서쪽에 위치한 제벨리브니와 쿠세이마와 같은 이집트군의 제2차 방어선도 위협을 할 정도로 투혼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때 이집트 지상군이 전열을 재빨리 정비하고 반격을 가했다면 전세는 역전될 가능성도 없지 않았습니다. 이집트 지휘부는 공군력은 완전히 상실된 상황에서 지상군 지휘부조처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통신 시설은 이스라엘 공군의 공습으로 거의 대부분 두절된 상황이었고 그나마 연결되어 호출을 하면 이미 그곳을 점령한 이스라엘 병사들의 히브리어 조롱의 목소리가 들릴 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군지휘부와 나세르 정부는 자칫 이런 어처구니없는 패배의 소식이 국민들에게 전해질까봐 국영 방송국에서 이미 존재하지도 않는 이집트 공군이 용맹하게 이스라엘군에게 타격을 가하고 있다고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반복해서 방송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송 청취는 국민들만 듣는 것이 아니고 패퇴하는 이집트군도 듣게 되었는데 그들은 이런 거짓 방송으로 인해서 현재 상황에 대해서 더욱 더 혼란스러워 하게 되었습니다. 불쌍하게도 이런 방송 내용을 믿었던 병사들은 효과적인 철수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진격해온 이스라엘군들의 공격을 받고 전사하거나 부상자가 되어 포로 신세가 되었습니다.
6월 7일~8일 (개전 3일~4일째)
개전 3일째인 6월 7일 밤에 이스라엘 기갑 부대중에 샤드미 여단 소속 바르암 기갑대대가 겪은 사건은 보급선의 두절로 연료 문제가 얼마나 최악이었는가도 보여주지만 동시에 이집트군이 얼마나 멍청하게 대응하고 역전의 기회를 놓쳤는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바르암 기갑대대 소속 9대의 탱크는 미트라를 위해서 진격을 하던 중에 마침내 연료가 바닥나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미 보급선은 너무 멀어져서 언제 연료를 추가로 공급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결국 9대의 탱크에 남은 연료들을 모두 모아 5대의 탱크에 채워넣고 나머지 4대의 탱크들을 기동이 가능한 탱크 뒤에 케이블로 연결하여 견인하여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후방에서 접근해오는 이집트군의 대규모 기갑부대들의 탱크들이 그들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이 9대의 탱크는 이제 이집트 군 탱크들에 포위되어 집중 포격으로 전멸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이집트 탱크(T-55와 JS-III)들과 그뒤를 따르는 장갑차량들은 이스라엘 탱크들을 보고도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이집트군들은 바르암 기갑대대의 탱크들의 이스라엘 마크를 미쳐 못 보고 자신들과 같은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4대의 탱크들이 연료도 없어서 견인되어가는 모습이 도저히 노도와 같이 밀려들어온 이스라엘 침공군이라고 상상도 못했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야간 이동 원칙을 무시하고 이집트 기갑부대들은 훤하게 라이트를 켜놓은 상태로 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곳에서 비행중이던 이스라엘 공군의 후거 전투기 편대가 이 여단급의 거대한 대형으로 이동하는 이집트 기갑부대를 발견하였고 즉시 하강하여 맹폭을 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문제는 후거(Fouga Magister) 전투기는 사실상 연습기로 더 잘 알려진 정말 보잘 것 없는 기종으로
이집트 기갑 여단을 공격한 이스라엘 후거 편대는 가껏해야 2정의 75mm 기관총과 로켓탄 정도로
공격을 했을 것이고 만약 보다 강력한 무장이 되었다고 가정해도 대전차 미사일 SS-11 정도로
무장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 전투기의 폭격에 혼비백산한 이집트군의 무능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바르암 대대 탱크들도 이기회를 놓치지 않고 근거리에서 자신들을 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이집트 탱크들에게 포격을 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숫적으로 상대가 안되는 이스라엘 탱크에게 포격을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하늘에서 이스라엘 폭격기의 공격을 당하다 보니 이집트군 탱크들은 귀중한 최신형 T-55 탱크가 10여대가 파괴되어 사막 모래밭에 쳐박히도록 상황 파악을 못하고 허둥지둥하였습니다. 뒤늦게 상황이 파악되었을 때는 이미 반격을 가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태였고 서둘러 미트라 쪽으로 퇴각을 하였습니다.
삼십육계 줄행랑의 이집트 군
(지도 하단에 샤룸 앨 셰이크라는 해안 요새에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샤룸 앨 세이크라는 해안 도시는 이집트군이 아카바 만을 봉쇄하는 포대가 설치된 거대한 요새가 있는 곳입니다. 1956년 2차 중동전쟁때 시나이 반도를 침공했던 이스라엘군은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서 이집트군과의 교전으로 많은 병사들의 희생을 치뤘던 곳입니다. 이번에도 이곳이 다른 어느 곳보다 점령이 어려운 곳일 것이라 생각한 이스라엘 군은 철저하게 사전의 공군의 폭격과 함대의 함포 사격으로 사전에 강력한 공격을 진행하였습니다. 이어서 공수부대 강하 작전까지 수립해놓았으나 그에 앞서서 해군 함대는 이곳이 이미 텅텅 비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유는 2차 중동전쟁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결국 이스라엘에게 함락된 경험을 기억한 이집트군은 어차피 방어하겠다고 버텨봐야 함락될 것이다라고 지레 겁을 먹고 이스라엘 지상군이 들이닥치기 전에 일찌감치 퇴각해버린 것입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임했던 연합군 공수부대원들 못지 않게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하고 수송기에 탑승했던 이스라엘 공수부대원들은 아예 낙하산도 펴보지 못하고 다시 기지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비르 기프가파 최후의 결정 : 슈퍼 셔먼 VS T-55
지도에서 시나이 반도를 보면 횡으로나 종으로 결코 좁지 않은 지역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면적과 비교하면 얼추 눈짐작으로도 남한 면적에 약 70% 정도 되어 보입니다. 아무리 이곳에 대부분이 평평한 사막 지대라고 하더라도 도대체 단 3~4일내에 이스라엘군에게 거의 완전히 점령되었다는 것은 이해가 안가는 일입니다. 하지만 위에 열거한 사건들을 보면 이집트군들이 기본적으로 제대로 싸워보겠다는 의욕도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 개시 3일째~4일째 시나이 반도 전투 상황 - 이미 대부분의 반도가 이스라엘군에 의해서 점령되었습니다.)
6월 7일 시나이 반도 북쪽 내륙에 위치한 비르 기프가파에서 이집트 기갑부대가 무려 1,090대의 T-55 탱크를 아예 땅을 파서 후퇴를 못하게 하고 (일종의 배수의 진) 최후의 결전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결사항전의 의욕을 보였지만 무모한 전략이 되버립니다. 특히 가장 강력한 주포를 갖고있는 이스라엘 기갑부대의 M51 슈퍼 셔먼은 뛰어난 기갑병들의 사격 실력으로 무려 3,000미터 거리에서 T-55 탱크의 진형과 평행하게 횡대를 이루어 천천히 이동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적의 탱크들을 파괴해버렸습니다.
여기서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이집트군 지상군들은 시나이 반도를 전부 포기하고 이집트 국경 너머로 도주해버리게 됩니다. 결국 전쟁 개시 4일째인 6월 8일 이집트 나세르 대통령은 국제연합이 중재를 나선 정전 협정에 서둘러 싸인을 하고 사실상 항복을 해버립니다.
나세르는 침통한 표정으로 이집트의 전력 80퍼센트가 상실되었음을 국민들 앞에 공식발표를 했고 이집트의 발표에 따르면 전사 12,000명 포로 5,500여명의 손실을 입은데 반해서 이스라엘군은 시나이 반도 전투에서 전사 275명, 부상 800명에 불과했습니다.(대 이집트전의 피해만) 또 이스라엘이 총 61대의 전차를 상실하는 데 비해 이집트군은 900대이상의 전차가 파괴되거나 나포되었고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 900대의 전차 중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신품이 태반이었고 이스라엘군은 시나이 전 지역을 뒤져 가며 이집트군이 버리고 간 말짱한 상태의 탱크와 군용 차량들을 전부 회수해 갔습니다. (왠지 삼국지 적벽대전 중에 제갈공명이 조조진영으로 안개 속에 짚더미를 뒤집어 쓴 선박들을 몰고 가서 엄청난 화살을 얻어가지고 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나는군요.)
이렇게 노획하게 된 T-54/55를 개조하여 이스라엘군이 운용한 탱크가 바로 Ti 67(Tiran)이고 이 탱크들로만 구성한 독립 여단을 조직하게 됩니다. 그리고도 남은 T-54/55는 심지어 수출을 하여 외화 획득에 기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래저래 이집트에서 빼앗아간 무기의 규모는 약 25억 달러의 무상 군사 원조를 받은 효과였습니다.
(이렇게해서 난데없이 T-54 개조 탱크 Tiran 탱크가 이스라엘 탱크 라인 업에 등장
하게 되는 것입니다. )
한편 이 전쟁의 결과로 이스라엘이 점령하게 된 시나이 반도는 태반이 사막 지대인 탓에 별로 쓸모는 없지만 최소한 이집트가 이스라엘 본토에 바짝 탱크를 들이댈 수 없는 중간 지대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또한 시나이 반도의 이스라엘 점령으로 강제적으로 이스라엘 국민이 되버린 많은 숫자의 아랍인들은 시나이에 위치한 가자 지구에 거주하게 되면서 이후 이스라엘 내부적인 골치거리가 되었습니다.
어쨌든 1956년 2차 중동전쟁 당시에는 시나이 반도와 수에즈 운하를 완전히 점령하고도 미국과 소련의 입김으로 철수했던 이스라엘 군이 이번 전쟁에서는 시나이 반도 점령에 성공하였고 어떠한 외세의 압력에도 지난 번과 같은 철수는 절대 안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즉시 시나이 반도가 이스라엘 영토임을 공식 선언해버립니다.
"6일 전쟁"의 마지막 회는 다음으로 이어지겠습니다.
첫댓글 타이란의 탄생 배경을 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노획무기로 개조하고 수출까지 하고...
한마디로 '헐~' 이로군요, ^^'
정말.알고나면 엉뚱한.역사들 참.많습니다. 이것도 그중 하나지요.
한방에 훅 보냈다는 표현을 여기에 쓰면 딱 맞는 말 같습니다. 한나라도 아니고 여러나라를 대상(아무리 무능한 나라라 할지라도)으로 공군전력을 하루만에 싹 쓸이한 정보력과 작전능력 대단합니다.
제공권의 중요성을 알고 공격한 측과 중요성을 알지만 그냥 알고 있는 것만으로 끝난 나라와의 차이 인것 같습니다.
김작가님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항상.잊지않고 응원.댓글 남겨주셔서요:-):-)
이스라엘 군대의 우월함도 있겠지만, 주변국 군대의 무능함이 패전의 주 요인인듯 합니다.
재미있는 전쟁사 잘 보았습니다~! ^^
감사합니다.:-)
전지금까지 티란이 아랍 탱크인 줄 알아습니다. 무식을 깨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어서.제가.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