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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apurna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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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semite story 스크랩 엘캐피탄 노즈 등반기.
마운틴(김재만) 추천 0 조회 66 14.07.08 13:1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요세미티 엘캐피탄 노즈 등반기(Notes from Yosemite El capitan Nose)

patamania.egloos.com/5667981

어떤 사람들은 등반하는 모습을 마치 지금 올라가는 것처럼, 자신이 취했던 동작과 장비가 설치된 모양, 바위의 돌기하나까지도 자세하게 쓴다. 그러나 내게는 그런 기억력이 없다. 머릿 속에는 짧고 선명하고 뚜렷한 몇 가지 모습들만 남아있다. 그 모습들을 생생하게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글을 적는다.


CAMP 4
<캠프4 야영장 접수대- 상의 파타고니아 나노 퍼프 자켓, 하의 락크래프트 팬츠>

<캠프장에 자리를 깔고 누워, 가운데가 필자 - 상의 파타고니아 메리노1 반팔 티셔츠>

하루 한 번씩은 텐트 밖에 매트리스를 깔고 누웠다. 몇 십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즐겼던 공간이 주는 묘한 편안함, 주변의 커다란 나무, 캘리포니아의 뜨겁고 건조한 햇볕과 깊은 산 속 맑은 공기, 휴가가 안겨주는 해방감과 휴식의 기쁨이 뒤섞여 좋은 기운이 온 몸에 가득 차올랐다. 나무 그늘 아래 누워서 햇빛이 부서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웃통을 벗고 가만히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 보면서 "아 참 여유롭고 행복하다" 몇 번이나 말했다. 내가 얼마나 바쁘게 지내왔는지 서울이 나를 얼마나 짓누르고 있었는지 돌아보았다. 이틀이 지나 시차가 적응되자 몸은 자연을 따르기 시작했다. 해가 지는 9시면 졸려서 10시에 잠들었고 새가 우는 여섯시에 저절로 눈을 떴다. 여러 분들이 챙겨주신 밑반찬들, 신선한 캘리포니아산 스테이크와 과일들로 하 루 세 끼 배부르게 먹었다


Nose in El Capitan

<엘케피탄 봉우리 아래서>

<등반>

<등반 또 등반>

<13피치 등반 중인 필자-상의 파타고니아 후디니 자켓, 하의 락크래프트 팬츠>

<El capitan 정상에서 필자 - 상의 파타고니아 나노 퍼프 자켓, 하의 락크래프트 팬츠>


글을 쓰는 지금은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다. 2월 말에 요세미티에 간다고 결정한 후 마음 속으로 매일 생각했던 곳, 눈감고 그리던 곳이 없어지니 쓸쓸한 기분도 든다. 내게 모든 등반이 그랬던 것처럼 Nose 등반도 치열하고 처절한 순간, 긴장과 집중의 순간, 휴식과 한숨의 순간, 짜증과 욕지기가 터져 나오는 힘겨움의 순간이 오락가락했다. 달랐던 것이 있다면 이틀 밤낮을 해 떠서 해질 때까지 온 종일 벽에 매달려 버둥댔다는 것 뿐.
벽은 거대했다. 모자란 실력을 주마와 장비에 기대어 그저 버티며 한 발 한 발 올라갔다. 고개 들어 올려보면 끝이 저만치 보이는데 피치는 끝없이 이어졌다. 홀백은 온몸을 다 써서 끌어올려야 할 만큼 무거웠다. 벽의 거대함과 장비의 무게에 짓눌려 나의 등반은 엉망진창 올라가는 것은 더디기만 하였다. 비박 장소는 좁고 비탈져 아무리 몸을 뒤틀어도 편히 누울 수 없었다. 확보줄을 걸고 잠드는 밤, 뒤척이면 팽팽해진 확보줄이 허리를 당겼고 자주 잠에서 깼다. 웅크리고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면 은하수가 가로지르는 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반짝였다. 굴곡없이 같은 간격으로 똑바로 이어진 크랙은 아름다웠다. 먼 훗날 이 크랙을 최소한의 장비만 지닌 채 손과 발만으로 오르고 싶었다.
우리를 앞서 자유 등반팀이 여럿 지나갔다. 혼자서 힙합 음악을 들으며 등반과 회수를 모두 하면서 솔로로 올라가던 이십대 초반의 청년. 순식간에 우리를 앞질러 가더니 몇 피치 위에서 회수를 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대천장을 넘은 등반의 막바지에도 전혀 지쳐보이지 않는 얼굴로 웃으며 인사하고 지나가던 이십대 여자와 남자팀. 선등을 섰던 여자는 손목까지 밀어넣어 재밍을 했다. 그녀의 동작을 감탄하며 지켜봤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내가 얼마나 보잘 것 없었는지 느꼈다. 좌절감이나 속상함은 없었다. 꾸준히 멈춤없이 오르고 훈련하다보면 언젠가 나도 그들처럼 할 수 있을거야, 자극을 받았다.
정상은 자정에 도착했다. 성취감보다는 오늘은 벽에 매달려 잠자지 않아도 된다, 하네스를 벗고 누울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동영상에서 수없이 봤던 소나무 옆에 앉아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지쳐서 쓰러지듯 잠들었다.


사람들

<정상에서>

나 혼자서는 절대 산을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함께 올랐던 사람들, 밑에서 응원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산에 오를 수 있었다. 등반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일을 직접 계획하시고 준비하는데 도움을 주시고 일일이 챙기고 하나하나 가르쳐 주셨던 Y 선생님, 우리가 등반할 때 하루에 두 번씩 바위 아래서 등반하는 모습을 지켜보시고 메모하며 지원해 주셨다. 풀린 다리로 비틀대며 내려올 때 딱 맞춰 우리 앞에 나타나 달려오셨던 선생님을 봤을 때는 반가워 눈물이 날 뻔 했다. 아스팔트에 주저앉아 선생님이 준비해 온 커피를 마셨다. 내 평생 가장 맛있는 커피였다.
40대지만 우리보다 나은 체력과 정신력으로 지친 우리를 독려하고 이끌어주셨던 H 선배님, Nose 등반의 3분의 2이상 선등을 섰고 항상 앞서 생각하고 결정하여 걸림없이 등반할 수 있게 한 M 형, 늘 웃으며 궂은 일을 도맡아하고 자기가 할 일을 끝까지 책임지고 했던 S 형. 우리는 함께했기 때문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등반을 좋아해서 놀러간 것 뿐인데 원정대라고 이것저것 챙겨 주고 응원해주신 암장 선후배님들께 이 글을 빌어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운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장마가 한창인 서울 하늘 아래서 요세미티의 푸른 하늘과 따사로운 햇볕을 떠올리고는 한다. 지도를 보며 다음에는 어디를 갈까 생각한다. 나의 등반 실력이 아직 한참 모자라 키울 수 있는 부분이 그래도 있기는 있을 것 같아서, 세계 방방곡곡 갈 곳이 아직 많이 남아서 즐겁다. 할 수 있다면 하루하루 일상을 즐거움으로 채우고 싶다. 나의 원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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