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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암 창작품
*나의 창작의 산실- 유년기의 햇살과 바람과 파도
문학작품은 대부분의 경우 그 작가의 유년기적 체험과 깊은 연관고리를 가진다. 즉 작품은 작가의 체험의 반영이고 동시에 그 체험의 바탕에서 연상되어진 상상력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작품은 유년기적 체험을 유전인자로 해서 다양한 변용을 거쳐 창작되어진 것이라고 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강렬한 아침 햇살이다. 나는 늦잠꾸러기여서 잠에서 깨어날 때쯤엔 늘 혼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창호지를 바른 창문을 열면 곧바로 햇살이 밀려온다. 집이 정남향이고 언덕 위여서 퇴마루로 나서면 남쪽 멀리 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아직 레일이 깔리지 않은 동해부부선 철로길, 들판을 가로지르는 연곡천 물길, 궁바다라고 불리는 솔숲, 공동묘지, 문둥이 마을, 그 너머로 동해안의 백사장과 푸른 바다. 수평선에서 한참 떨어진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 아침 해가 강렬한 빛살을 쏘아댄다. 그 눈부신 햇살을 늘 잊을 수 없다.
한낮의 햇살과는 달리 밤이면 공동묘지가 있는 솔숲은 늘 으스스한 음기가 감돈다. 공동묘지 입구에 문둥이 마을까지 있어서 더욱 그런 느낌이다. 비바람이 거세게 부는 밤에는 솔숲에 도깨비불이 날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문둥이들이 무덤을 파고 죽은 아이의 시체를 파내어 간을 꺼내간다는 으스스한 이야기들을 자주 들었다.
마루에서 눈길을 조금만 서쪽으로 돌리면 첩첩이 쌓인 산봉우리들의 물결을 대할 수 있다. 오대산 영봉들이다. 그 중에서 소금강의 절경을 이루는 능선들이 쏟아져 내리는 그 산자락에 영진리라는 고향마을이 있게 된다. 산이 높아서 바람도 거세다. 그 바람이 파도를 일구고 파도소리가 늘 내 잠자리를 파고든다. 나는 달려드는 파도에 떠밀리고 잠기고 뒤채면서 뒤숭숭한 잠자리에서 헤매기도 한다.
나의 출생지인 영진리는 동해안의 어촌마을이다. 주민의 대부분은 농사를 짓지만 포구에 면해 있는 어촌마을은 언제나 떠들썩하다. 거기에다 주문진읍도 십여 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영진리는 농촌과 어촌, 도시의 여러 요소를 두루 갖춘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장날이면 어머니를 따라 주문진읍으로 나들이를 간다. 엿장수의 가위소리, 약장수의 목쉰소리, 어시장에서 악다구니 하는 장사꾼들의 욕지거리. 도시 전체가 활기에 넘치는 사람살이의 모습이다.
영진리 큰이모댁은 300여 호 되는 어촌마을을 대표하는 집안인 셈인데 어촌마을의 열댓 척 되는 모든 어선들을 소유한 선주였고 상당한 농토도 소유한 대지주였다. 항상 일하는 사람들로 들끓었는데 트럭이 있어서 매일 같이 잡아오는 생선을 당일로 서울까지 운반해 갔다. 그 트럭이 서울서 돌아올 때는 설탕 등의 생필품을 싣고 왔는데 교통이 극히 불편했던 당시에는 여간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큰이모댁은 영진리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잡은 일본식 건물인데 마치 학교건물처럼 방의 앞쪽으로 긴 복도를 배치하고 어깨 높이로 유리창을 달아서 전통적인 한옥과는 그 구조가 전혀 달랐다. 본채에 10여 개가 넘는 방이 있었고 이모부가 손님들을 마지하는 손님방, 바둑을 두는 놀이방도 있었다. 부엌 옆에 두어 개의 문간방이 따로 있었고 본채 둘레로 10 여개의 곳간 채가 있었다. 화장실도 복도의 양 끝에 남녀용으로 따로 설치했고 신식 목욕탕까지 갖춘 주택이었다.
식사 때는 모두 함께 식사를 했는데 자신이 필요한 만큼 공기에 밥을 담아서 몇 그릇이고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워낙 식솔이 많다 보니 잡곡밥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보리고개가 있던 시절이라 이런 풍요는 다른 집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기도 했다.
부모님이 큰이모네의 살림살이를 관리해주고 있어서 나는 이종 형제들과 어울리며 큰이모네집에서 살다싶이 했다. 이종형들은 서울에서 대학엘 다녔고 누님들은 강릉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당대에 유행하던 각종 잡지들이 집에 넘쳐났다. 초등학생이던 내가 ‘명랑’이며 ‘야담’ 같은 잡지책을 수시로 대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문화적 혜택 때문이었다.
내가 세상을 긍정적으로 대하고 밝게 전망하는 것은 궁핍하지 않았던 유년기적 생활의 영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지금도 파도에 휩쓸리는 꿈을 구면서 밤을 보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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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 어디까지 왔나 - 신화로서의 소설적 구조
우리나라에서 소설가가 되는 길은 각 일간신문에서 실시하는 “신춘문예” 등단, 또는 문예지의 “신인상” 당선, 또는 문예지의 “추천완료”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가지망생들은 오랜 기간을 신춘문예 작품공모에 응모하는 것으로 습작기의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나의 경우도 고등학교 문예반에 들어가서 소설습작을 시작한 이래로 이십여 년이나 지나서야 겨우 문예지를 통한 등단의 절차를 통과할 수 있었다. 「겁화경」(劫火經)이란 작품으로 월간문학 신인상(1979년) 「조기」(弔旗)란 작품으로 현대문학지 추천완료(1981년)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등단은 나름대로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한계를 내포하게 된다. 그 단점의 하나가 단편소설 중심이란 점이다. 그것이 빠른 등단에는 도움을 주지만 인간이나 시대를 총체적으로 조감하기 보다는 개인적 또는 충동적 시각이나 인상에 편향되기 쉽다는 점이다. 따라서 생명의 복합성과 우주의 다양성에 대한 본질을 천착하는 데는 많은 편견을 노출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 생각 때문에 근년에 이르러 나는 가급적 장편소설 장르에 관심을 두고 있다. 환경파괴 문제를 다루어서 녹색문학상을 수상한 바가 있는 『한송사의 숲』(2019)이나 탈북자 문제를 다룬 『피안으로 가는 길』(2020) 같은 장편소설은 작가의 개인적인 인상보다도 사회적 총체성에 적응하는 존재를 다루려는 노력을 한 바가 있다.
본고에서는 문단 등단시기의 단편소설과 근년에 창작한 장편소설의 내용을 검토하고 작가가 지향하고 있는 소설의 방향성에 대해서 말해 보고자 한다.
* 단편소설 「겁화경(劫火經)」과 「조기(弔旗)」
내가 〈월간문학〉에 신인상으로 당선된 작품은 단편 「겁화경」이다. 이 작품은 뱀잡이 노인 이야기다. 땅군인 뱀잡이 노인이 산불을 만나 불길을 피해서 마을로 내려오는 뱀들을 무더기로 잡는 행운을 마지하게 되는데 결국 그 행운이 지나쳐서 결국 자신이 잡은 뱀에 물려 죽게 된다는 이야기다. 산불과 뱀, 땅군 노인의 삶을 뒤섞어 다룬 것으로서 인간의 숙명적인 생애의 단면을 그린 것이다.
단편 「조기」는 〈현대문학〉에 추천완료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코레라가 번진 섬의 어촌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그곳을 탈출하고 싶어도 탈출할 수 없는 타향출신의 초등학교 교사의 심리적 갈등을 그린 것이다. 암울한 사회적 현실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겁화경」이 땅군 노인의 극히 개인적 삶의 족적을 운명적으로 서술한데 비해서 「조기」의 경우는 전염병이 만연한 지역의 한계상황에 처한 젊은 교사의 현실인식을 다룬 것이다. 전자가 “운명적 개인” 으로서의 삶이라면 후자가 갇힌 사회의 “한계적 상황”을 다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가 보다 개인적 운명과 직결되고 후자가 보다 사회적 한계 상황과 접맥되는 것이긴 하지만 단편소설이라는 장르적 한계 때문에 당대의 시대상이나 사회상 보다는 주로 개인적인 고뇌와 운명 등을 인상적으로 서술하는 양상이 되었다고 하겠다.
*장편소설 『한송사의 숲』 과 『피안으로 가는 길』
장편소설 『한송사의 숲』(2019)은 동해안의 해안가에 건립된 화력발전소 측과 그 옆에 자리잡고 있는 한송사라는 절간과의 갈등을 다룬 것이다. 산업화의 시대적인 대세를 업고 화력발전소측은 연료로 사용하고 버리게 되는 탄재처리장을 확보하기 위해서 한송사라는 작은 절간을 매입하여 없애려고 음모한다. 그런 위협에 처한 절간의 가족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온갖 난관을 극복하며 투쟁하게 된다. 이는 당대의 사회상을 확대시켜 거대 자본의 횡포와 민중으로 대변되는 약소한 민간인의 희생을 함께 다룬 것으로서 산업과 환경의 상관관계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피안으로 가는 길』은 인간본성의 내면을 다루려고 한 것이다. 이는 크게 보아서 “고향으로 돌아감” 또는 “고향에서 멀어짐”의 두 형태로 나뉘어지는데 이는 회귀본능으로서의 인간의 생명과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서의 엄청난 장애물 즉 현실적인 벽에 대한 사유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계설정의 양상이 직접적으로 잘 드러나는 예가 분단국가로서의 민족적 현실이 아닌가 싶다. 부모형제를 북쪽에 둔 월남인들의 북한에 대한 향수나 북쪽의 곤고한 삶의 조건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탈북민들의 탈북과정은 결과적으로 이상향에 대한 도전의 양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개인적인 이상향과 사회적 장벽 속에서 활로를 모색하는 삶의 한 양태라고 파악하게 된다.
*신화로서의 소설적 구조
소설은 역사성과 신화성을 동시에 지닌다. 소설의 역사성은 등장인물의 체험의 소산이지만 신화성은 보편성의 중심이 된다. 많은 경우에 작가는 개인의 체험 영역에 관심을 두어서 작품 기술에 있어서 역사성이 잘 확보되는 경우는 많지만 그럴 경우 자칫 보편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그럴 경우 개인적 체험의 사사화(私事化)란 말로 경계하게 되는데 소설은 역사적이기 보다는 신화적인 성격에 가깝기 때문이다.
소설의 신화성은 대체로 주인공이 전형적(典型的) 인물로 선정되고 그의 행동은 당대의 시대와 또는 사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한 개인이 자신의 성격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대의 인자로서 자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송사의 숲』이나 『피안으로 가는 길』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그런 점에서 모두 특정 시대 또는 특정 사회의 산물이다. 그 때의 개인은 시대와 사회를 떠나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는 작품을 떠나 현실적인 인간의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장편의 인물들이 단편의 인물들보다 실존적인 성격이 강하게 되고 그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 삶의 성찰이란 측면에서 보다 효용성이 크다고 하겠다.
나의 경우 근래에 이르러 단편소설 보다 장편소설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은 그것이 “노블(novel)”이라 불리는 현대소설의 본령에 보다 근접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이 소설이 지니는 호소력이란 측면에서도 보다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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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 1편(80매이내)
형과 형수
겨울 바다가 새파랗게 날을 갈고 으르렁거렸다. 눈발마저 흩날리고 있어서 바다는 더욱 음산했다. 철민은 형의 유골이 담겼던 빈 상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형의 영혼을 가두었던 상자곽. 지금쯤 형의 영혼은 세찬 바람을 타고 하늘 끝까지 솟구치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거친 파도의 능선을 헤치며 파도꽃을 피우고 있을지 모른다. 육신의 무게를 벗어 던진 가벼움으로 어머니의 품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이미 오래 전에 영혼이 되어 떠돌고 있는 어머니의 품.
철민은 어머니의 유골이 바다에 뿌려진 사실을 형에게서 들었다. 너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에 대해서 말할 때 형은 그런 식의 전제를 달곤 했다. 엄마의 뼛가루가 바다에 뿌려지던 때, 그때는 바람이 몹시 불었지. 너 기억나니? 철민은 그런 기억이 자신의 두뇌 속에 남아 있는지 어떤지를 뒤져보곤 했다. 기억나지 않을 게다. 하긴 나도 어떨 땐 희미하거든. 눈발이 푸설푸설 날렸었지. 몹시 추웠고. 넌 꽁꽁 얼어서 울지도 못했으니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묻는 형의 갑작스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철민은 곤혹스러웠다. 언뜻 생각날 것도 같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철민이 네 살 때였다. 그러니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희미할 밖에. 형은 그보다 다섯 살이나 위여서 어머니에 대한 정이 남달랐던 것 같다. 그래서 어머니에 대해서 뚜렷한 기억을 지니지 못한 철민이 매우 불만인 모양이었다.
형은 밥을 먹다가, 또는 외출을 하려고 문을 열다가 갑자기 물었다. 너 엄마가 기억나니? 그렇게 묻는 형의 억양에는 다분히 철민을 몰아세우려는 기세가 역력했다. 엄마도 기억하지 못하는 멍청한 놈. 또는 다른 의미가 있는지 모른다. 아무리 네게 잘해 주어도 계모는 계모야. 엄마가 될 수는 없어. 그러니 새엄마에게 아양떠는 짓은 그만두란 말이야.
철민은 자신이 새어머니에게 아양을 떤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새어머니가 친엄마처럼 잘해주니까 잘 따를 뿐이다. 그런데 형은 그게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철민은 수시로 형에게 닥달을 당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분명치 않았다. 꿈을 깨고 났을 때 꿈속 풍경처럼 몽롱했다. 아련한 안개에 가려진 사물처럼. 때로는 포근한 어머니의 젖가슴 감촉과 향긋한 체취가 갑자기 기억날 것 같은 때도 있었다.
형은 새어머니가 아무리 잘 챙겨주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철민은 새어머니가 뒷방에 몸을 숨기고 숨죽여 우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네 형은 어쩌면 너하고는 그렇게 다르냐? 그런 새어머니를 아버지가 다독거렸다. 사춘기가 지나면 달라질 거요. 그러니 조금만 더 참구려.
그러나 형은 사춘기를 마치기도 전에 가출하고 말았다. 그 이후로 형은 바람처럼 불쑥 집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 그렇게 사라지곤 했다. 대체로 곤궁해져서 돈이 필요할 때만 불쑥 나타났던 것이다. 형이 그렇게 불쑥 나타날 때마다 아버지는 노발대발해서 당장 나가라고 고함을 질렀다. 네놈은 이제 자식도 아니다. 그러나 새어머니는 형이 요구하는 얼만큼의 돈을 아버지 몰래 마련해주는 듯 싶었다. 그런 사실이 들통나면 아버지의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내가 자식이 아니라는데 임자가 왜 나서는 거요. 세월이 약이라지 않아요. 그러니 당신이 참으셔야지요. 새어머니는 마음씨가 무던한 편이었다. 세월이 약이란 말은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형에게는 별로 통하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도 형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도 알지 못했다. 아버지의 죽음은 전혀 뜻밖이었다. 한약방을 경영하시는 아버지는 자신의 건강에는 남다른 정성을 쏟았다. 만년에는 술도 담배도 하지 않았다. 때때로 보약을 챙겨 드셔서 항상 혈색이 좋았다. 건장한 체구의 아버지가 장식용 지팡이를 건들거리며 걷는 모습은 매우 멋스러워 보였다.
저런 풍채니 한약방집 맏딸을 꼬셔냈지. 마을 사람들의 질시가 곁들인 험구였다. 어머니가 그 풍채에 빠져서 퍽도 따랐던 모양이다. 딸만 셋이던 외할아버지의 한약방은 자연스럽게 맏딸의 사위인 아버지의 몫이 되었다. 약재에 대해서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밝았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받으며 약재를 익힌 탓이다.
건장하시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날은 공교롭게도 새어머니와 재혼한지 7년째 되는 날이다. 새어머니의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영실아. 이제 너도 그만큼 살았으면 됐다. 이젠 내가 데려가야겠다. 꿈속에 나타난 어머니의 그 말에 새어머니는 펄쩍 뛰었다는 것이다. 언니, 그게 무슨 말이유. 한 마을에 살던 처지라 어머니와는 언니, 동생으로 자별한 사이라고 했다. 언니, 그런 말 마요. 처녀로 시집 와서 겨우 칠 년인데. 새어머니도 아버지를 흠모해서 과년하도록 결혼을 미루다가 막상 상처를 하게 되자 그 후처를 자청했다고 한다. 꿈속에 나타난 어머니가 새어머니의 말엔 들은 척도 않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러게 빌려준 게 아니냐. 네가 시집도 안가고 버티는 게 안쓰러워서 말이다. 하지만 이젠 데려갈 때가 되었다.
새어머니는 그 말을 듣자 눈앞이 캄캄하더라는 것이다. 언니. 해도 너무 해요. 겨우 칠 년인데. 그러다 퍼뜩 잠이 깼다는 것이다. 꿈이 너무도 생생해서 옆에 누워 있는 남편의 몸을 더듬어 보았다는 것이다. 그때 남편은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잠자다가 심장마비가 왔던 것이다. 세상에 그럴 수가 있니? 새어머니는 한동안 실성한 사람 같았다. 아무리 제 남편이 좋기로서니. 산 사람을 그렇게 데려갈 수 있냐? 결혼기념일 음식으로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며 새어머니는 도무지 믿을 수 없어했다.
새어머니에게는 자식도 없었다. 새어머니는 그것도 분했다. 제 자식 잘 키우라고 자식 낳는 것도 방해한 거여. 병원에서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고, 좋은 한약재는 다 썼는데도 자식을 못 낳은 이유를 그제야 알겠드만. 죽은 어머니의 혼령이 방해해서 자식을 밸 수 없었다는 것이다. 주위에서 우연의 일치가 아니겠느냐고 위로를 해도 새어머니는 조금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게 어찌 우연의 일치유. 꼭 칠 년 째, 정확히 결혼날짜에 맞추어서 데려갔는데, 꿈속에 나타나기까지 해서 말이요. 그게 어찌 우연일 수가 있느냐구요.
남편을 어이없이 잃은 새어머니는 그나마 철민이에게 위안을 찾으려고 했다. 새어머니는 철민의 등을 토닥이며 자신을 위로하곤 했다. 너 하나라도 있으니까 내가 열심히 살아야지. 안 그러니? 그럼요. 제가 어머니를 잘 모실게요. 돌아가신 아버지는 잊으세요. 새어머니는 나름대로 마음을 다잡으려고 퍽도 애를 쓰는 눈치였다. 그러나 철민이 대학생이 되자 홀연 외국으로 이민을 신청했다. 벌써 이민을 떠난 친정 식구들이 그녀를 설득한 것이다. 자식도 없이 언제까지 그냥 살 테냐? 마음을 정해라. 새어머니는 대학생이 된 철민을 대견하게 여겨서 말했다. 남겨진 재산이 좀 있으니 이젠 네 힘으로 자립해라. 이제 너도 대학생이 아니냐.
형은 그런 집안의 북새통도 알지 못했다. 형은 몇 년 동안이나 집안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던 것이다. 철민이 재산을 정리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 서울의 작은 사립중학교에 교편을 잡게 된 어느 날 형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대뜸 하는 말이 돈 좀 줄 수 있겠니? 하는 것이었다. 철민의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그동안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아버지의 죽음과 새어머니의 이민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는지 어쨌는지 전혀 묻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는 듯했다.
그가 동생을 만나서 한 첫마디가 ‘돈 좀 줄 수 있니?’ 였고 그 다음 말이란 게 ‘넌 어머니 모습이 기억나니?’ 가 전부였다. 어머니가 형을 끔찍이 위했을 것이란 것은 짐작이 되는 일이었다. 형은 철민이 태어나기 전까지 5년 동안이나 한약방집 외아들이었다. 거기에다 평소 정이 많은 어머니의 남다른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이웃들이 그런 사실을 증언했다. 빨리 죽으려고 그랬던 모양이다. 우리 철영이, 우리 철영이, 하고 노상 입에 달고 살더니. 이웃 부녀자들의 말이다. 얼굴도 제 아비를 빼 닮았어. 똑 같다니까. 소꿉친구 때부터 그리 좋아하더니. 어머니는 소꿉놀이 때도 아버지를 꼭 남편으로 삼았고, 아버지 없이는 소꿉놀이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약방집 맏딸이란 유세가 있어서 그런 억지가 통했던 모양이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위하는 정성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이웃으로부터 단편적으로 들은 이야기지만 집안에서 큰소리가 난 일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마음이 약한 분이라 생시엔 큰소리 낼 이유도 없었지만 어쩌다 몹시 화가 나서 술이 제법 취한 때라도 어머니의 능숙한 접대에 그냥 넘어가고 만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술취한 남편을 잘 달래는 요령을 알고 있었다. 당신 술이 모자라지 않아요. 나랑 한 잔 더 해요. 어머니는 따끈하게 뎁힌 정종을 예쁜 사기 주전자에 담고 맛깔스런 안주를 곁들인 술상을 마련하여 대작을 청한다는 것이다. 일본 기생처럼 무릎을 꿇고 술을 따르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에 좋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술에 약한 아버지는 어머니의 미인계에 넘어가서 몇 잔 더 마시지도 못하고 그냥 곯아떨어지는 것이다.
술꾼 남편을 둔 이웃들은 모두 한약방집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아낙들이 술취한 남편을 타박하다가 대판 싸움이 붙어 얻어 맞기도 하고, 기물이 부서지기도 하고, 온 동네가 떠들썩하도록 창피를 떠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난리를 부리고 다음 날 정신이 돌아온 남정네들은 계면쩍게 뒤통수를 긁으며 한약방 아낙네 같이 했으면 아무 탈이 없었을 것을, 하고 제 아내를 나무란다는 것이다. 그걸 아무나 하요. 아낙네들은 그렇게 퉁명스럽게 받아치며 멍든 눈두덩을 흘키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처럼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아주 자연스럽게 해 냈는데, 본디 타고난 천성이 그렇기도 했겠지만 남편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 그런 행동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약초에 익숙하지 않은 아버지를 위해서 험한 산속까지도 함께 다니며 약초를 수집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큰 약초 보퉁이를 메고 부부가 함께 하산하는 것을 보고 모두들 하늘이 맺어 준 천생배필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형은 어머니가 죽은 이후로 마음을 잡지 못하고 평생을 떠도는 삶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아무튼 모처럼 나타난 형은 대뜸 상당한 액수의 돈을 요구했고, 철민은 형을 만난 반가움 때문에 두 말없이 형이 요구하는 대로 돈을 마련해 주었다. 그렇게 한 번 길을 트니 형의 내방은 부쩍 늘었다. 그때마다 돈타령이었다. 일정한 직업이 없이 떠돌며 먹고살자니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철민이 결혼을 하고부터는 형편이 여의치 않았다. 아내의 동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자 형이 돈을 뜯어 가는 방법이 점점 비열해졌다. 가게를 장만하려니까 빚 보증을 서달라는 식이다. 그렇게 보증을 서고 나면 한 달도 안돼서 빚쟁이가 들이닥쳤다. 그러니 빚은 이미 예전에 진 것이고 돈을 받아 내려고 빚쟁이와 짜고 빚 보증을 서게 한 것이다. 그렇게 여러 번 속고 나니 형이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근래에 들어서는 형이 막무가내로 협박하면 마지못해 몇 푼쯤 보태주는 것으로 끝내곤 했다.
그러니 꼭 1년 전이다. 그에게 형이 죽었다는 부고가 날아왔다. 형이 죽은 후의 뒷감당을 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지만 그래도 하나뿐인 혈육의 죽음인데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부랴부랴 양구의 ‘해안마을’ 이란 곳으로 달려갔다. 바다도 없는데 ‘해안’이란 마을 이름이 이상해서 물어보니 ‘돼지 해(亥)’에 ‘편안 안(安)’이란다. 이곳 지형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서 뱀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돼지를 키워야 편안해 지는 마을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돼지가 뱀을 잘 잡아먹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듣고 보니 그럴 듯했다. 마을은 마치 진흙땅에 주먹으로 한 방 쥐어박기라도 한 듯 옴폭 파인 분지인데 농토가 비옥해서 곡식이 잘 자랐다. 그리고 분지의 주위로는 험한 산의 능선이 울타리처럼 둘려져 있었다. 워낙 산세가 험해서 온갖 산짐승들이 우글거릴 만 했다. 그러니 야생 산짐승들이 먹이가 귀해지면 곡물을 훔쳐먹으려고 분지로 기어들기 마련이었다. 뱀들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뱀들은 분지에 풍부한 생쥐나, 무논에 사는 개구리를 사냥하려고 또한 마을로 기어들었던 것이다.
해안 마을은 휴전선과 바로 연접한 곳이어서 그곳 주민들 외에는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헌병과 경찰이 합동으로 단속을 벌였다. 그리고 낯이 익은 마을 주민들 외에는 일일이 주민증을 확인했다. 북한의 땅굴이 있는 곳이라 그만큼 경비가 삼엄했던 것이다. 철민은 그런 이상한 곳에 형이 정착하게 된 동기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긴 형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형은 새어머니가 들어오고부터 수시로 가출했고 그 이유를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무서운 매에도 불구하고 입을 열지 않았다. 지 에미 귀신이 씐 거여. 아버지는 그렇게 한숨을 쉬었다. 형은 중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다니는지 마는지 했다. 그렇게 떠돌다 보니 변변한 직장생활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는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집 짓는 곳에 가서 미장이 일도 거들고 목수 일도 거들었다. 때로는 막품팔이도 했다. 한 번은 목수노릇 하겠다면서 톱이며 대패 같은 공구 일체를 사내라고 해서 거금을 들여 장만해 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장만해 준 공구를 가지고 목수 일도 제대로 해 내는 것 같지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떠돌던 형이 해안마을에 정착한 것은 군대생활과 관계되지 않을까 하고 추측해 볼뿐이다. 해안 마을은 접전지역이어서 이 지역 출신이 아니고는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저기 군부대가 진을 치고 있어서 군사작전이 수시로 진행되는 특수지대였다. 특별한 인연이 아니고는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다. 그러니 형이 이곳에 정착하게 된 동기를 군생활과 연관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형은 자신의 근황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추측이나 해 볼 뿐이었다.
철민은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며 부고가 보내어진 주소지를 찾아갔다. 주소지는 우체국 옆의 작은 식당이었다. 그가 작은 식당의 밀창을 열고 얼굴을 디밀자 탁자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형이 대뜸 반겼다.
“야, 철민이 왔구나.”
철민은 피둥피둥 살아있는 형을 보자 어리둥절했다.
“형, 어찌 된 거야. 부고장은?”
“임마. 부고장이라도 보내니까 찾아오지.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오기나 할건가? 아무튼 이 형이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좋지? 안 그래? 넌 내 하나뿐인 동생인데.”
형은 거침없이 내뱉았다. 웬만한 철면피가 아니고는 부고장을 보고 찾아온 동생에게 이렇게 태연하게 지껄이지는 못할 것이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철민이 쭈빗거리며 서 있자 형이 말했다.
“어서 올라 와라. 네가 지금쯤은 올 때가 되었다 싶어서 널 기다리며 술잔을 기울이던 참이다.”
그렇게 되어 철민은 형과 식당에서 소주잔을 대작했다. 몇 잔의 술이 돌자 형이 말했다.
“사실은 말야 돈이 좀 필요해선데.”
형이 부고장까지 보내면서 사람을 오라고 할 때야 돈 때문이란 것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좀 엉뚱했다.
“내가 장가를 가려고 해선데.”
형이 새삼 장가를 가겠다는 말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돈을 뜯어내려고 이 핑계 저 핑계 다 대다가 이제 장가타령이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얼마의 돈이 왜 필요해서 이런 거짓말까지 하게 되었단 말인가?
“그래선데 이 식당을 세 낼 생각이다. 장가를 들어서도 떠돌이 생활을 할 수는 없지 않니? 네 형수감이 음식 솜씨는 제법이거든. 마침 이 식당이 잘 안돼서 주인이 세로 내놓으려던 참이라…. 네 신세를 좀 져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다.”
형의 말은 그런 대로 조리가 있었다. 어떻게든 동생을 설득해야겠다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연습한 게 분명했다.
“얼만데?”
“시골 식당이야 얼마 되니? 천만 원쯤이면 돼.”
철민은 눈앞이 캄캄했다. 중학교 선생에게 천만 원이란 참으로 거금이었다. 설혹 형에 대한 애정 때문에 그가 승낙한다 하더라도 아내가 동의할 리가 없었다. 거기다 난데없이 결혼이란 게 뭔가? 형은 지금껏 한 번도 제대로 결혼이란 걸 한 적이 없다. 어쩌다 한 여자를 만났는가 싶다가도 서너 달이 못되어서 헤어지곤 했다. 생활력이 없는 남자에게 시집올 여자도 없었겠지만 형도 한 여자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떤 여잔데?”
“곧 나타날 꺼야.”
그 때 밀창이 드르륵 열리며 주방 쪽에서 어떤 여자가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주방에서 방금까지 일을 하던 중이었던지 앞치마를 두른 모습이었다. 철민은 순간 훅 숨을 들이마셨다. 호리호리하고 날씬한 몸매였다. 철민은 이 여자가 바로 그 여자구나 하고 대뜸 알아 볼 수 있었다. 어릴 때 돌아간 어머니의 영상이 갑자기 확대되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리 와서 인사해요. 서울서 선생질하는 내 동생이야. 내가 늘 말했지. 착한 내 동생은 나와는 다르다고. 나같은 떠돌이에게 믿을게 뭐가 있느냐고 당신은 말했지. 여기 동생이 있지 않나. 식당 차릴 천만 원을 선뜻 내놓을 동생이란 말이네. 식당 차릴 능력이라도 되면 청혼을 받아들인다고 하지 않았었나?”
형은 잔뜩 들떠서 그렇게 주워섬겼다. 여자가 잔잔하게 웃으며 철민을 건네다 보았다. 형님 말이 모두 맞나요? 여자는 그렇게 묻는 듯했다. 철민은 서둘러 말했다.
“축하합니다. 형님이 이제야 자리를 잡을까 보네요.”
철민은 해안마을을 떠나오면서 줄곧 그 여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쩌면 어머니를 그토록 빼 닮았을까? 철민은 그 여자를 보는 순간 그동안 잊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모두 되살아나는 것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안개 속에서 몽롱해진 영상이 햇빛과 더불어 또렷해지듯이, 머릿속에서 꿈결처럼 어렴풋하던 기억들이 생생해졌다. 어쩌면 그리 닮았을까? 여자는 어머니의 친동기간 같았다. 아니면 딸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형이 그토록 열정을 쏟을 만 했다. 조용조용한 말씨며, 잔잔한 웃음, 심지어는 음식 솜씨마저도 그렇게 닮을 수 없었다.
철민이 아내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천만 원을 선뜻 빌려 준 것은 결국 그 형수에 대한 신뢰였다. 받지 못할 돈이란 것을 알면서도 은행 빚을 냈던 것이다. 그만큼 형수는 철민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형도 그녀와 살림을 차리고는 별 탈 없이 사는 듯 싶었다.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동생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형은 채 1년도 살지 못하고 갑자기 죽었다. 형수로부터 온 부고였던 것이다.
“간암이었다고 하데요.”
형수는 담담하게 말했다. 형은 이미 결혼하기 전에 암이었던 모양이다. 불규칙한 생활과 과도한 음주가 그를 그렇게 만든 모양이었다. 자신의 병을 속이고 결혼을 하다니. 형수를 볼 면목이 없었다. 철민이 그렇게 사과하자
“형보고 결혼했나요? 시동생보고 결혼했지요.”
형수는 그렇게 말했다. 형과 결혼하기 전에 형수는 이 식당의 종업원으로 일했다. 형은 식당 일을 거드는 형수의 옆을 줄창 맴돌았다. 결혼 해 달라고 목을 매었다. 미장이질 같은 막노동으로 겨우 생계나 꾸리는 주제면서도 그녀에 대한 열정은 절대적이었다. 그래 견디다 못해, 누구든 믿을만한 동기간이 있어서, 한 명이라도 데려오면 결혼해 주겠다고 했던 것인데 생각지도 못했던 시동생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식당까지 선뜻 차려주니 빈말로 한 약속이지만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착한 사람이었어요. 결혼 후에는 술 주정 한 번 없었어요.”
형수의 말은 매우 의외였다. 형의 불규칙한 그동안의 생활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았다.
“그 성미로 보아서 공연히 불끈 할 때도 있었을 텐 데요.”
“다른 사람들과는 더러 그런 일도 있었던가 봐요. 그렇게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날은 제가 술상을 마련해서 대작을 청했지요. 저랑 술 마시면서 모두 풀어버려요 라구요. 그러면 어린애 마냥 고분고분해 지지요.”
형수는 추억을 더듬듯 먼 산을 바라보며 잔잔히 미소지었다. 그런 모습을 보자 아버지와 대작하셨다는 어머니의 영상이 겹쳐 왔다. 일본 기생처럼 단정한 옷차림으로 남편의 술잔에 술을 따르는 다소곳한 여인상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도 있지요.”
형수는 한참 동안 뜸을 들이더니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죽기 바로 직전이었어요. 어떤 나그네 부부가 들렀어요. 약초 캐는 사람이었어요. 약초를 한 보퉁이씩 배낭처럼 걸머지고 왔었지요. 된장찌개가 맛있다며 밥 한 상을 더 시키데요. 동동주 한 되를 두 부부가 나누어 들고는 늦기 전에 가야겠다며 일어서데요. 안방의 문이 삐끔히 열린 상태여서 환자의 모습이 언뜻 엿보였던지 누구냐고 묻데요. 남편이 앓고 있다고 했지요. 무슨 병이냐고 묻길래 간암이라고 했지요. 여자가 혀를 차며 암엔 약이 없다지요. 하며 약초 한 꾸러미를 내 놓으며 다려서 먹여 보라고 하더군요. 된장찌개가 너무 맛있어서 거저 주는 거라며.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도 있으니 정성을 다 기울여 보라고요. 그러자 남편 되는 사람이 허, 임자. 간암엔 약이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 그러네. 어서 가기나 해요. 하고 닥달하더라구요.
형수는 눈시울을 적시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약초 캐는 부부가 떠나간 후에 남편이 묻데요. 누구냐구요. 약초캐는 부부라고 했더니 지금은 약초 캐는 시기가 지났는데. 하더군요. 듣고 보니 그렇데요. 11월이니 눈발이 날릴 때도 됐잖아요. 남자가 키가 크더냐고 묻길래 당신만큼 크더라고 했지요. 그럼 여자는 당신만큼이나 호리호리 했겠네. 남편이 장난삼아 그러기에 듣고 보니 그렇네요. 하고 대답했지요.
약초 캘 시기도 아니고 아무나 산에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아닌데…. 남편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군요. 듣고 보니 그래요. 이곳은 사방에 군사기지가 있고 또 지뢰가 매설되어 있어서 약초를 캐러 산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요. 지금 어디쯤 갔을까? 그렇게 묻길래. 글쎄요. 인제 쪽으로 가는 것 같았는데, 강어귀에 이르렀을까? 그러다가 문득 남편의 관심이 지나치다 싶어서 뭐 궁금한 것 있어요? 가서 불러올까요? 그렇게 물었더니, 아냐, 머리를 흔들고는 글쎄, 내가 따라가는 게 옳겠지. 강은 건넜을까? 그렇게 몇 마디 하더니 그냥 까무룩 혼수상태에 빠지더라고요.
형수는 눈물을 훔쳤다. 죽어가는 그 경황에도 여보. 그동안 고마웠소. 하고 인사를 잊지 않았지요. 착한 사람이지요. 병을 속이고 결혼한 것을 생각하면 괘씸하다가도 나름대로 극진한 사랑 때문에 그랬거니 하고 용서하고 싶어지기도 하고요. 죽은 뒤에 생각하니 그 약초 캐는 부부도 부쩍 의심스럽데요. 전에 그런 나그네를 한 번도 본적이 없거든요.
철민은 형수의 말을 들으며 머리가 어수선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약초 보퉁이를 걸머지고 돌아오던 모습이 불쑥 떠올라서였다. 확실한 기억은 못되지만 몇 번이나 체험한 느낌이기도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혼령이 아들을 위해서 잠시 머물렀던 것일까? 그걸 알고 형은 서둘러 그 뒤를 좇은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형이 형수를 만난 것도 어쩌면 평생의 한을 잠시라도 덜어주려는 혼령들의 세심한 배려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었다. 황당한 이야기도 어떨 때는 절실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번의 경우는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형수는 형의 유언이라며 화장한 뒤에 뼛가루를 동해바다에 뿌려 달라고 했다. 어머니의 뼛가루가 뿌려진 곳이 동해바다란 것을 아는 사람은 철민뿐이었다.
“이곳에서 한계령을 넘으면 바다지요.”
형수는 그렇게 말했다. 해안마을에서 바다로 가는 가장 가까운 고개가 한계령이었다. 철민은 따라오겠다는 형수를 뿌리치고 혼자 형의 뼛가루를 안고 한계령을 넘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바다 작은 포구로 향했다. 바람이 몹시 거세었다. 방파제에 나가서 뼛가루를 뿌렸다. 어머니의 뼛가루가 뿌려진 그 바다였다. 인간이 태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푸설푸설 눈발이 쌓이기 시작했다. 서둘러 차를 몰았다. 한계령을 넘자 눈은 폭설로 변했다. 앞을 볼 수 없었다. 여기저기서 순경들이 길목을 막았다. 폭설로 교통이 통제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서둘러 서울까지 가야했다. 상고로 인한 휴가는 오늘로 끝이었다. 자신 때문에 학생들을 쉬게 할 수는 없었다. 순경들이 막아선 길을 돌아 사잇길로 빠지기를 몇 차례 하다 보니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어둠이 갑자기 다가왔다. 차가 언덕을 넘고 있었다. 헤드라이트가 눈길을 비추었다. 얼마를 달렸을까? 문득 눈발에 가려진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부터는 해안(亥安)마을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그러자 형수의 모습이 차창을 가득 메우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잊혀졌던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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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약력
<홍성암> 강원도 강릉 출생, 〈월간문학〉 신인상(1979), 〈현대문학〉 완료추천(1981),
단편집: 모깃불, 큰물로 가는 큰고기, 어떤 귀향, 영진리 마을의 개, 다리가 없는 통닭
영진리 블루 . 중편집: 가족 . 장편: 남한산성(전9권), 세발 까마귀의 고독(2권), 한송사의 숲, 피안으로 가는 길
한국소설문학상(1997), 한국비평문학상(2003), 둔촌이집문학상(2018), 녹색문학상(2019).
한국소설가협회,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이사, 한국작가교수회 회장, 한국산림문학회 고문. 문학박사. 동덕여대 교수.
*주소: 경기도 의정부시 동일로 400, 105-303 (신곡동, 우성아파트)
계좌번호“ 농협 351-0054-8811-53 (홍성암)
010- 9097- 5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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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집필실 배경사진 포함, 찍은 연도, 장소, 함께한 분 이름 등 기재)
화보용 사용 용량 500kb 이상의 사진 파일
* 편집자께서 적절하게 선택해 주세요.
1. 젊은 시절의 가족(2남1녀)
2. 한국소설가협회 호주 세미나(시드니 호주 문화원, 홍성유이사장님을 모시고)
3. 고향 강릉의 문인들(왼쪽에서 2,3번째. 윤명, 원영동 시인
4. 가까운 문우들과 (왼쪽에서 정소성, 유재용, 박종철)
5. 창작 동인들 (왼쪽에서 이상문, 이규원, 김예나, 곽의진, 최병탁)
6. 한국소설가 지역 세미나, (신동문시비 앞에서, 홍성유이사장과 함께)
7.한양대학교 대학원 학위수여식 때 (가운데, 비평가 김시태교수)
8. 고려대주최 전국고교문예콩쿨 소설당선 축하 행진(강릉시)
9.대학교 개교기념 시화전 출품(박두진교수를 모시고)
10. 동료 문인들과 더불어(호영송, 김용성, 김월준, 이길륭)
11. 정년 출판기념회(2006) (장백일, 조병무, 엄기원, 김지연, 강호삼,김용철)
* 서제 스냅 사진 1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