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임금과 순임금은 중국상고사에 있어 전설적인 임금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그 당시 고대중국은 풍요로운 시대를 구가하고 있었고 평화스러웠으며 농사가 잘 되어 임금의 존재를 모를 만큼 두 임금은 선정을 베풀었고 그 뒤 중국역대제왕들의 본보기가 될 만큼 성군으로 명망이 높았고 요순시대에는 태평성대로 중국역사에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요순 두 임금도 시련기가 있었다. 바로 요순 두 임금의 정권교체기에 빈발한 홍수때문이다. 그러나 요순 두 임금은 슬기롭게 물난리를 극복했다. 그런데 요임금은 왜 자기 아들 단주에게 왕위를 물려주지않고 동이족인 舜에게 물려 주었을까?
발해(震)를 건국한 대조영이 동생 대야발에게 편찬을 명한 단기고사에 의하면 초대단군인 왕검과 2대 단군인 부루의 신하인 고시의 형인 고수의 아들 즉 고시의 조카 순이 조선에서 벼슬을 하지않고 요임금에게서 벼슬을 하자 부자의 의견이 달라 불화하므로 고수는 작은 아들 象을 사랑하여 순을 죽이고자 하였다. 순이 아버지의 뜻을 알고 효성으로 섬기며 끝까지 순복하니 요임금이 신임하고 왕의 자리를 내어 주었다고 한다.
여기에 요임금의 왕위선양의 비밀이 숨어있다. 이 사건은 중국고대사에 아주 조심스런 사건으로 취급되고있으며 아마도 고대에 한국과 중국의 치열한 주도권 싸움의 결과일 것이다. 그 이전의 중국 지나족의 시조인 황제 헌원과 동이족의 군장 치우천황(일명 자오지 한웅)의 싸움처럼 말이다.
요임금은 잦은 홍수로 정권이 흔들리자(고대에 천재지변은 임금의 부덕으로 일어난다고 생각했음) 치수사업을 완수한 고조선의 2대 단군인 부루의 그 당시로서는 최첨단치수법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고 그 댓가로 단 군 부루의 요구대로 순을 요임금의 후계자로 삼았을 것이다. 그러나 순임금은 남방순행시 갑자기 병사했다고 사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동이족인 순이 중국의 왕이 된데 불만을 품은 중국인들에게 살해당했을 것이다. 이에 순임금의 왕후인 아황과 여영은 소상강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말았다. 단순히 병사했으면 왕후들이 자살했을까? 소상강 부근에 얼룩진 반점이 있는 대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두 왕후들이 흘린 눈물이 변한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참조:순임금이 동이족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단기고사 뿐만 아니라 공자와 자웅을 겨루는 맹자도 시인했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단기고사는 분명 대조영의 명령에 의하여 편찬된 고조선 역사서인데 아직도 정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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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golta0507 원문보기 글쓴이: 아골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