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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며칠 전, 통합진보당 심상정 원내대표는 말합니다. ‘내가 재벌을 해체하는 잔다르크가 되겠다, 그래서 노동자를 위한 세상을 열겠다.’,라고 말입니다. 하아, 좋은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단은 박수를 쳐줄 일입니다. 짝짝짝.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세 번 정도의 박수도 과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저는 도무지 심상정에게서 잔다르크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550년 전에 죽은 잔다르크를 실증할 사진이 남아있을 리 없으니 그 모습을 심상정과 대비시켜 논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또 그렇게 두 여인의 용모를 비교분석할 이유도 의도도 없습니다. 심상정이 그런 비유를 통해 언고싶은 건 용모가 아니라, 누란 위기의 조국을 구했다는 영웅성, 민중의 염윈이 체화된 잔다르크의 신성한 이미지를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 답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미지란 권력적 언어체계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언어의 내면을, 역사의 이면에 웅크리고 있는 다른 역사를 거울처럼 비춰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부드럽고 연약해보이지만 내면을 직접적이고 명료하게 비춘다는 점에서 견고하고 강합니다. 우리의 의식세계가 아니라, 그 의식에 가려 잠재되어 있던 어떤 것을 수면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여러분은 이런 이미지 연상적용을 통해 심상정의 어떤 점이 잔다르크로 이어졌나요? 안타깝게도 저는 여전히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제가 우문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누가 발견한 사람이 있다면 제 글에 반론으로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돌아보면 심상정은 누구 못지않게 노동자, 민중, 재벌해체를 말해왔습니다. 한때 철의여인이라는 별칭을 가진 적도 있지요, 하지만 그녀의 말이 점점 공허하게 들리기 시작한지가 꽤 오래되었다는데 슬픔이 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노동 중심성이 그녀의 뇌속 의식에서 입술 끝까지만 이어진 껍데기라는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이 치마 대신 바지를 갈아입고 직접 전쟁터로 나가 조국과 민중을 향한 사랑을 온몸으로 체화한 잔다르크와 다른 점이기도 합니다. 심상정의 노동이란 늘 입술 끝을 떠나지 않는 것이어서, 온 몸을 관통하는 이미지를 형성할 수 없었고, 그녀가 말하는 노동자와 혼연일체를 이룰 수 없게 한 것입니다.
2.
사실 우리는 이 땅에 잔다르크의 이미지를 가진 여인 한 둘 정도는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유신공주마마께서 유력한 대권후보인 현실이 그런 열망을 더 하기도 합니다. 만약 심상정하면 잔다르크의 이미지가 바로 떠오를 만큼 우리 민중의 심금을 움켜쥘 수 있는 분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저 역시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등에 찬사의 입맞춤을 할 용의가 충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런 여인을 갖지 못했습니다. 옛 한나라당 나경원 전 의원도 잔다르크를 참칭했을 정도로 착각에 빠진 사람들 몇 명을 보았을 뿐입니다. 착각이야 인간의 질 낮은 속성 중 하나긴 하지만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잔다르크에겐 조국을 구한 승리여신의 이미지만 있는 게 아니질 않습니까. 그녀는 마지막 순간 조국의 외면으로 화형을 당해 죽은 여인입니다. 처절한 아픔과 슬픔, 그리고 인간들이 얼마나 간교하고 잔혹할 수 있는지를 실증한 여인으로, 잔다르크처럼 살겠다는 것은 곧 이 모두를 각오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사람들은 이를 간과한 건 아닌지 싶습니다. 그들이 조국과 민중을 위해 어떤 고통과 고난을 받았는지 아직 아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그렇습니다. 잔다르크는 승리의 여신이자 수난의 여신입니다. 그녀는 한 인간이 양립시키기 어려운 승리와 수난을 겪은 후 결국 신적인 일원성으로 환원시켜 성녀의 반열에 오릅니다. 신분상승이 막혀있던 소작인 딸로 태어난 점, 여성의 천형적인 한계를 극복한 전쟁터의 영웅, 그리고 국왕도 시기할 만큼 큰 대중적 인기를 누린 영광의 시간들, 여기에 마녀이자 성녀. 이 얼마나 강렬하고 드라마틱한 삶입니까.
물론, 그녀의 삶이 이처럼 신화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과장이 섞이고 지나친 비유가 가미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를 향한 동경과 감동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민중의 염원이 그녀의 몸을 통해 투사되기 때문입니다. 잔다르크의 짧은 일생 속엔 시대를 초월한 민중 신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입니다.
3.
그러나 정작 잔다르크 신화의 정점은 그녀의 삶에 있지 않습니다. 안타깝고 애절하고 우리가 인간임이 부끄럽다고 느끼게 하는 그녀의 죽음에 있습니다.
잔다르크의 연이은 전공 덕분에 새로 왕위에 오른 샤를 7세는 잔다르크를 극도로 시기합니다. 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민중들 사이에서 나날이 치솟는 그녀의 인기가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영국연합군과의 전쟁이 벌어지자 잔다르크를 거의 혈혈단신으로 전쟁터로 내보냅니다. 그녀는 결국 그 전투에서 사로잡혀 영국으로 팔려갑니다. 이에 영국은 프랑스 왕 샤를에게 제안을 합니다. 몸값을 내면 잔다르크를 석방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샤를왕은 아무런 응답도 주지 않습니다. 신의 계시, 즉 민중들의 염원일 그 계시를 말하는 잔다르크가 귀찮고 두려운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그 즉시 그녀를 마녀로 모는 재판이 시작됩니다.
나는 이 지점에서 이정희 전 의원을 떠 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5월 4일, 이정희의 운명을 가른 전국운영운원회의 그 시간대 이정희 말입니다. 이제까지 그녀가 잔다르크를 참칭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녀를 꼼꼼히 지켜 본 나로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아시다시피 그때 이정희 대표는 부실한 진상보고서로 인해 누구도 억울한 사람이 생기면 안 된다며 평당윈의 명예를 말했습니다. 그를 위해 선 진실규명, 후 정치적 책임을 주장합니다. 오르지 정치를 힘의 논리와 권좌를 노린 게임의 과정으로 보는 정치모리배들로서는 무척 귀찮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제, 왜 저래, 이 중차대한 시기에. 종북 비난의 빌미가 되는 찌질이들을 털어내고 대권 가도로 나가야하는데 몇몇 당원들의 명예 때문에 저러고 있다니, 저 여자 정체가 뭐야?’, 하는 소리가 정치를 좀 안다는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이후 상황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전 언론 전 지식인이 한 몸 한 입이 되어 그녀를 마녀로 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종파주의자며, 민주주의의 이단자이고, 이 사회를 혼란에 빠트릴 위험한 종북녀였습니다. 아, 그 날카로운 광기와 잔인함이라니!
바로 그 과정이 잔다르크가 일곱 번의 재판 끝에 마녀가 되어가는 과정을 함축해 놓은 것과 똑 같습니다. 잔다르크가 한 일이라고는 조국을 위해 싸웠고, 그 과정에서 민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은 것뿐입니다. 하지만 영국 사제들은 물론 프랑스 귀족들까지 그녀에게 이교도로 우상을 숭배한다는 죄를 뒤집어씌웁니다. 신의 신성한 계시는 신의 중개자인 사제, 즉 유럽중세의 최고 권력자인 그들만이 할 수 있는데 그를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제시한 논거가 아주 치졸합니다. 잔다르크가 바지를 입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 마녀는 치마대신 바지를 입고 다닌다는 통설이 있었는데 이를 적용한 것입니다. 16세 화려한 나이의 그녀가 왜 치마 대신 바지를 입어야했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었습니다. 전쟁터 마상에서 적과 싸우기 위해서는 바지가 편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제와 귀족들은 그런 진실을 외면하고 잔다르크에게 마녀라는 오명을 씌웁니다. 인권, 명예, 민주적 절차 등 민주정치의 기본과 진실을 말하다 마녀로 몰린 이정희 모습과 어쩜 그리 닮아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잔다르크는 화형대에서 조국과 민중을 위해 입었던 전투복 바지를 벗고 입은 치마에 붙은 불길과 함께 연기로 사라집니다.
4.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당시 최고 권력자인 카톨릭 사제와 귀족들이 잔다르크를 왜 마녀로 몰아 죽였냐는 것입니다. 그녀는 전쟁에 참여했고, 적국의 장수였습니다. 그런 만큼 군사재판으로 죽일 충분한 이유가 있었고, 또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건 당시 지배계급의 맨 꼭지점에 있던 사제들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반 전쟁에서 군사 몇 만을 죽인 죄보다 훨씬 무거운 것입니다. 조국과 민중을 구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그녀가 전승을 거듭하고, 그로 인해 민중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큰일 날 문제였습니다. 바로 신을 대리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지배구조를 뿌리 체 흔드는 일이었습니다. 사제들이 볼 때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잔다르크는 마녀로 죽어야 했습니다.
이번에 이정희가 마녀로 몰린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정희는 중세유럽의 카톨릭 사제와 같은 권능으로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검은 세력에겐 몹시 껄끄러운 존재였습니다. 학력고사 전국 수석에 서울 법대 졸업, 그리고 사법고시 패스. 이는 우리 사회에서 계층이동을 약정한 표식과도 같은 것입니다. 아마도 검은 세력은 그녀에게 그렇게 속삭였을 것입니다. 세련되고 풍족하며 외국어 섞인 자신들만의 언어를 구사하는 찬란한 세계로 어서 건너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정희는 스스로 자신이 재래시장의 자그마한 두부공장 딸이고 반지하방 생활을 했다며 시쳇말로 개천에서 나온 용임을 밝힙니다.
이에 저들은 그때까지야 뭐 그럴 수 있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 용들도 얼마 가지 않아 자기들의 세계로 건너온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이정희라는 용은 달랐습니다. 그 용은 끝내 개천에서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개천에서 함께 살던 자잘한 고기들과 함께 그 개천을 바다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리곤 도탄에 빠진 조국과 민중을 구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은 잔다르크가 전쟁터에 뛰어들듯 정치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연전연승을 거둔 잔다르크처럼 국회의원 4년 동안 눈부신 성과를 보여줍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검은 세력을 제대로 자극했던 것입니다. 그 때 이미 이정희는 두 무릎을 꿇지 않은 한 저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5.
누구라도 역사적인 인물을 빗대어 자신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를 뭐라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그 인물의 이미지가 바로 자기 것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닙디다. 맹렬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투사했을 승리의 여신 잔다르크. 그러기에 더더욱 그녀의 이미지를 온전히 가져올 수 있는 인물은 드물 것입니다. 그토록 강렬한 인물의 이미지 속엔 반드시 고난과 시련의 시간이 녹아있는 것이고, 그를 몸으로 체화하지 않고는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거짓 이미지 조작으로 선량한 사람들을 현혹할 수 있을 진 몰라도 말이지요.
틈만 나면 언론에 대고 재벌과 잔다르크처럼 싸우겠다는 심상정과 그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저들에게 이미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이정희. 그 두 사람 중 누가 잔다르크의 이미지에 더 잘 어울릴까요? 판단은 각자가 할입니다. 저는 그 둘을 비교하는 것조차 민망할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 덧글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흐른 시간을 생각 합니;다.
혁신은 앞에 놓인 시간을 당겨쓰는 의미가 있고,
진실규명은 시간을 뒤로 돌려야 하는 숙명이 있습니다,
지금 진보진영에는 이 두 종류의 시간이 혼재 되어 있습니다,
이래서는 앞으로 나기기 힘듭니다. 혁신을 위해서도 진실규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정희 살리기 팬카페, ‘희소식 : http://cafe.daum.net/heenews에 동참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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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새로운 한 주를 여기에 글을 올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전망이 별로 안 보일때 내딛는 일보야 말로 나를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걸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모두들 화이팅입니다. 자신과의 약속, 잊지 마시고요
http://durl.me/x2avd
언제 보아도 감동적인 "이다르크"~
PLAY
이렇게 동영상 댓글로 다는 방법 궁금합니다!
하하, 전주 번개, 알려주셔요.
함, 나들이 하게요.
간단하져~ 유튜브 들어가서 자료 찾아내고 공유 클릭하여 복사~ 붙이기 하면 됨^^
나중에 만나면 자세히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퍼 갈께요...당게로~~^^
직접 올리지 못함을 양해 바랍니다.
대신 욕을 먹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월요일 아침, 좋은 글로 한 주를 시작하네요.
같은 마음ㅡ 감사한 일이지요
조심스러운 글이라 쓸 때 시간이 좀 걸려도,그 마음을 공유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저도 퍼갑니다.
공유 고마운 일이지요.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인간답게 사는 세상은 그냥 오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저 역시 작은 성의를 보이고 있는 중입니다.
"그 용은 끝내 개천에서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개천에서 함께 살던 자잘한 고기들과 함께 그 개천을 바다로 만들겠다고 선언"
가슴에 와닿습니다.
저는 이정희님의 그런 점이 고맙습니다.
참 힘든 일이지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단락 4 에서
[국회의원 4 동안] --> [국회의원 4년 동안] 입니다.
지적 고마워요.
오탈자를 조심한다고 하난데 글 쓰기에 진중하다보면 늘 생겨요.
앞으로도 봐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할 게요
저도 퍼날르기 동참합니당^^*
멋진글 감사합니다.
마마님, 수고를 찌치는 간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비둘기는 여전히 잘 클 것이고요^^
저는 페북으로 퍼갑니다. 늘 감사합니다.
오랜만이군요. 희카페 많이 사랑하는 분이라는 거 알아요.
조심스러운 글이라 글을 쓸 때 시간을 좀 투자해야해도 공유할 수 있는 분들이 있어 고마운 일이지요
^&^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함께 바다를 만들어 나갔음, 좋겠습니다.
이런글은 조용히 집에서 읽어야 제맛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드고님의 멋진 눈매가 생각나내요.
함께 마음을 공유할 수 있어 기쁨니다, 더위 조심하시고요
글 잘 읽었습니다.
하루빨리 잔다르크을 다시 만나고 싶네요~
그렇지요. 나라와 민중을 구한 잔다르크,
어서 기운을 차려, 마상에 올라야할 텐데, 알아서 잘 하시겠지요
고맙습니다. 날씨가 덥네요. 더위조심 하세요
대구는 더 많이 덥다는데,,,, 역시 건강입니다.
샛강 바다 만들기에 마을 주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감명받았습니다. 좋은 글 페북에서 마주하며,,미안함과 감사한 마음이 ,,만감이 교차합니다.
함께 함박 웃음 지을 날 오겠지요! 사랑합니다.^^
감사, 그리고 반가습니다.
소,,, 저는 왜그리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외양간에서 그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순진함과 묵묵함.
저도 감사합니다. 소를 키우자님.
세상과 세상의 호사가들은 잔다르크의 민중적 투쟁성이나 투쟁결과 보다는 그녀가 참혹하게 화형에 처해졌다는 결과에만 주목합니다. 더불어 페미니즘적 문제와 결합했을 때의 시의성과 논쟁이 커진다는 어쩌면 선정적 코드로 읽히는 것이 잔다르크에 대한 제 코멘트입니다. 더운 여름을 고되게 횡단하시느라 힘드신 님들에게 한바가지의 차가운 약수를..
많이 덥습니다. 한 바가지 차가운 약수를 함께 되돌립니다.
예전이 저는 기술연구소에서 연구기획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니드와 씨드에 따라 연구테마를 결정하는 일이었지요. 그때 제가 만들었던 슬로건이 생각납니다, 기술 시야는 넓게, 기술 달성은 깊게. 우리들 소통도 그랬음, 좋겠습니다. 방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