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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주능선)
1. 산행 참가 산우
동문산악회 선후배 산우 72명(13회~41회)
-동기 산우: 김종무 부부, 님장현, 민경삼, 양명륭, 이인우+지인, 정현복 이상 8명
2. 산행 시간
상원사(865m) 04:00
적멸보궁(1,185m) 04:50
비로봉(1,563m) 05:40
상왕봉(1,491m) 06:40(아침 식사 07:00~07:15)
두로령(1,310m) 07:40
두로봉(1,422m) 08:30
신선목이(1,120m) 09:15
차돌박이(1,240m) 10:00
동대산(1,434m) 11:30
진고개(960m) 12:15
3. 산행 落穗
부처님의 꽃, 연꽃이 흐뭇하게 피어난 모습의 오대산이 가을색에 곱게 물들어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소식이다.
그 연꽃의 꽃술이 피어나는 花心에 寂滅寶宮이 자리를 잡았다는데 뉘라서 감히 적멸(깨달음)의 경지를 헤아릴 수 있겠는가.
불타오르는 단풍이 오대천 계곡물에 어리고 전나무 숲길이 아름다운 月精寺가 자리잡은 오대산 산길은 淸信徒가 아니더라도 낙엽이 날리는 가을철이면 佛敎的 상념에 살짝 젖어 거닐고 싶은 산길이기도 하다.
오대산은 重厚한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마다 불교적 사연이 깃들었고 옛스런 불교 유적과 불교 문화의 자취를 만날 수 있다는데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 족보가 보관되던 史庫址도 떠오르고 한강 발원지의 하나라는 우통수도 떠오르는가.
오대산의 대간길이 꽉 막혀있는 것은 아니고 숨통이 약간 트여 일부 구간(두로봉~동대산~진고개~ 노인봉)이 열려 있다는 소식이니 대간길에 닿기 위해 산길을 한참 돌아가더라도 대간으로 향하지 않을 수 없다.
북쪽 구간(구룡령~응복산~만월봉~두로봉)과 남쪽 구간(노인봉~소황병산~선자령)의 마무리 산행이 기약이 없어 아쉽지만 그 대신 오늘 명산 순례차 오대산의 주봉인 비로봉을 오르고 호젓한 상왕봉 능선의 하늘길도 걷게 되었으니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어서 오히려 반갑다.
오늘 8km 남짓 대체적으로 南進하는 대간 구간(두로봉~동대산~진고개)을 걷기 위해 17km 쯤의 오대산 산길을 유람하는 것인데 그 첫 발걸음을 상원사에서 비로봉을 향해 떼어 놓는 것이다.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五臺山의 이름은 다섯 臺와 다섯 봉우리에서 왔다 한다.
佛心이 피어나는 산길을 따라 眞身(진리의 몸)이 상주한다는 다섯 암자(臺)가 자리를 잡았는데 다섯 庵子는 동대(관음암), 서대(수정암), 남대(지장암), 북대(미륵암), 중대(사자암)이다.
또 연꽃잎처럼 솟아오른 큼지막한 다섯 봉우리(비로봉,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는 모두 올라보고 싶은 봉우리들인데 이 다섯 봉우리가 自然의 암자처럼 솟아올라 둥그런 연꽃 울타리를 이루어 계곡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요즈음 산줄기의 구분상 두로봉과 동대산은 대간의 봉우리이고 상왕봉, 비로봉, 호령봉은 한강기맥의 봉우리라는데 한강기맥은 오대산 두로봉에서 대간 산줄기와 갈라져나와 오대산 비로봉, 계방산, 오음산, 용문산 등을 거쳐 양수리 부근 한강으로 빠져드는 산줄기이다.
버스가 한밤중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를 향해 이십여리 오대천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雜學과 전설 같은 옛일의 뒤안길이 꿈결인양 생각난다. 전설과 역사는 종이 한 장 차이인가.
지금 월정사에서 불교문화 축전이 열리고 있어 부처의 진신사리를 친견할 수 있다는데 원뜻이 영롱한 보배라는 月精은 절의 뒷산인 만월산의 이름이 말해주듯 달의 정기가 뭉쳐 내 마음의 달이 떠오르는 것이고 불교의 주요 사상을 비롯한 모든 종교적 사상의 가치를 일컫는 심오한 말이라 한다.
신라 때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을 親見한 바로 그 명당 자리에 월정사가 세워졌다고 하지만 月精寺는 여러 번 불에 타 중창불사가 거듭되었다니 얄궂게도 成住壞滅이라는 인연의 순환법칙에서 이 유서 깊은 절집도 자유롭지 못하였나 보다.
절의 명암도 인연 따라 엇갈리는가.
한국전쟁 당시 이 산중도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 말려들었을 때 월정사는 국보인 팔각구층석탑 하나만 가까스로 남기고 대부분 불타버린 반면 상원사의 경우는 대체적으로 온전했다는 이야기이다.
산중의 절집이 공산군의 저항 거점이 되지 않도록 월정사를 불태우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명령에 죽고사는 외골수 군인이 곧이 곧대로 명령을 수행한 반면 상원사는 주지 스님이 지휘관과 담판을 하여 법당의 문짝 하나만 태우는 것으로 하여 지켜냈다는 것이다.
상부의 지시를 살짝 어긴 어느 군인의 기지와 용기 덕분으로 몇몇 산중 절집의 불교 문화재가 보존되었나.
할아버지 태종이 그랬던 것처럼 칼날에 많은 피를 묻히고 왕위에 오른 세조가 이 계곡에서 목욕을 할 때 지혜의 보살인 文殊보살과 인연으로 만났고 동자 문수보살이 세조의 몸을 씻겨주어 온 몸에 퍼진 악성 종기가 나았다는 것인가.
세조의 형수인 단종의 어머니가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했으면 세조의 꿈에 나타나 생생한 저주의 말과 함께 침을 뱉어 온몸에 종기가 퍼졌다는데 生의 前後를 넘나드는 因緣의 굴레에 따라 因果應報의 법칙이 언젠가는 반드시 실현된다 하니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은 어렵거니와 잘못한 일에 대한 냉엄한 응보의 칼날이 언제 나를 겨눌지 모르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할아버지 태종이 이복 동생의 어머니인 康妃로부터 똑 같은 일을 당했다 하니 사람을 죽여야 하는 그 악연이 손자代까지 끝나지 않았었다는 것이고 세조가 목욕을 할 때 옷을 걸어 놓은 곳이 지금의 冠帶걸이이고 세조가 친견한 문수보살의 동자상을 둘째 딸인 의숙 공주 부부로 하여금 나무에 새기게 한 것이 현재 國寶로 상원사 문수전에 모셔진 문수보살 동자상이라니 지금으로부터 555년 전쯤의 이야기이다.
상원사 앞마당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4시 이전이다. 霜降을 사흘 앞둔 산중의 밤공기가 제법 차고 풀벌레 소리 끊겨 있으니 산중은 벌써 늦가을이 지나가나 보다.
보름이 하루 지났기에 산중에 흐뭇한 달빛이 교교히 흐르기를 바라지만 달은 이미 진 것인지 아니면 구름이 잔뜩 끼었는지 하늘은 캄캄하다. 대신 밤안개가 짙게 너울거리며 한 두 방울 물방울이 나무에서 떨어지는데 아슬아슬하게 산행중 비를 피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다.
상원사 경내에서 산행 준비를 하며 불이 켜진 절집들을 바라본다. 절집의 기상 시간이 새벽 3시이니 이미 새벽 예불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상원사는 국보인 銅鐘이 유명하고 刺客으로부터 세조의 목숨을 구해주었다는 고양이 두 마리가 언제부터인가 이끼 낀 石像이 되어 세월의 무게를 전해 주며 문수전 돌계단 밑에 앉아 있다는 소식이다.
언젠가 이 절에서 귀동냥한 일요 法門이 종교간의 상호 포용과 이른바 福에 관한 내용이었나. 한밤중 안개 몰려오는 자연의 법당에서 씩씩한 발걸음으로 산길을 걸어 마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것이 나에게는 福이 되리라 믿는다.
상원사에서 비로봉까지 3km의 산길에서 해발 고도가 700m쯤 높아지니 군데군데 제법 가파른 산길이 기다리고 있다.
상원사에서 적멸보궁까지 포장이 된 1.5km 산길이 마냥 푸근하지만은 않다. 흙길이 포장 돌길로 바뀐 것은 그만큼 많은 등산객과 참배객이 이 비탈길을 걷고 있어 토사의 유실이 우려되기 때문이겠지만 산길에서 사라진 흙냄새가 아쉽고 그립다.
짙어가는 안개 속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걸어 中臺 사자암으로 향한다. 새벽 단잠을 깨우는 랜턴의 행렬이 못마땅한지 나무 위에서 웬 날짐승이 못마땅한 괴성을 길짐승처럼 내뱉고 있다.
중대의 중창 불사가 크게 일어난 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옛 사자암 시절의 고요한 산사의 정취는 찾아보기 어려우니 조금은 아쉬운가. 전등이 환하게 켜진 절집에서 샘물 한 모금 마시며 바람결에 울리는 풍경 소리를 기대하지만 바람도 멎어있는 듯하다.
길섶의 작은 석등의 행렬을 따라 적멸보궁으로 향한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작은 석등의 문양이 육자진언이라는 <옴마니반메홈>을 뜻하는가.
낮에 이 길을 걸었다면 아름다운 오색 단풍 숲길을 기대하였겠지만 느낌으로는 불빛이 비추는 곳의 단풍이 곱지 않고 이미 퇴색한 듯하다.
부처의 眞身舍利를 모셨다는 적멸보궁에 닿는다. 불교 성지라는 남한 5대 보궁(통도사, 봉정암, 법흥사, 정암사, 오대산 중대)중 오대산 적멸보궁은 사리의 안장 위치가 알려지지 않았다 한다.
불교 성지에 수익사업 차원에서 누군가의 학업성취를 위하는 기도가 진행되는 듯하다. 바야흐로 입시철이 다가오는가.
인간이 미련하고 어리석다 하더라도 빌어서 된다면 무슨 일이나 못 빌 것이 없겠지만 자신과 가족의 福을 바라는 좋은 뜻을 부처께서 가끔은 굽어살펴 주시는가. 한국의 입시 제도가 없어진다면 산중의 절집들은 문을 닫아야 하는가.
스스로 절집을 찾아 즐거운 마음으로 큼지막한 마지(摩旨:부처께서 드시는 밥) 祭器들을 열심히 닦아 광을 내거나 떡을 찌고 밥을 짓는 무보수 봉사자들이 복 받는 일을 하는 것인가
눈치 빠르게 바지런하면서 실속을 차리면 남보다 사회적으로 조금이라도 앞서 나가고 경제적으로도 나아질 수 있겠지만 그런 것들을 보이지 않는 큰 福에 어찌 비할 수가 있으랴. 善緣이 쌓이면 보이지 않는 손이 큰 福을 베풀어 주시는 것인가.
적멸보궁 앞마당의 바람이 조용히 일렁이는 곳에 바람 앞의 등불 같은 燈하나 달고 싶은 마음이다.
적멸보궁을 지나자 산길이 남한 제8 고봉 비로봉을 향해 제대로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가파른 산길이 힘에 겨워 계단을 세면서 올라가며 날이 밝으면 보게 될 오대산의 고운 수채화를 떠올려 비탈길의 고달픔을 잊으려 애쓴다. 이 때까지는 名不虛傳이고 眞實不虛라는 오대산 단풍이 철저하게 기대를 배반하리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드디어 안개가 더욱 짙어진 비로봉 정상에 닿아 반가운 돌탑을 어루만진다.
안개와 어둠으로 아무 것도 볼 수 없지만 심호흡을 하며 사방을 둘러보고 산정에서 바라보는 전망 그림을 살펴본다.
남쪽 호령봉 산길이 막혀 있는 것이 아쉽지만 전망이 생긴다면 동쪽으로 푹 가라앉은 진고개 위로 동대산과 두로봉의 모습이 반겨줄 것이고 동북 방향으로 상왕봉 능선이 부드럽게 나타나고 북쪽 설악산과 남쪽 발왕산도 살짝 얼굴을 내밀어 안부를 전해줄 것이다.
중(僧)이든 俗人이든 비로봉에서 푸른 하늘 올려다 보고 가슴에 품은 바를 허공에 아뢰며 마음을 다잡던 사람이 어디 한둘이었겠으랴.
비로봉에 으슬으슬하게 추운 기운이 몰려 와 상왕봉으로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비로봉에서 상왕봉에 이르는 2.3km 산길은 걷고 싶은 편안하고 아늑한 하늘길이다. 1,400~1,500m 고지에 이렇게 아름답고 호젓한 산길이 펼쳐지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 일인가.
비록 기대하던 단풍은 이미 낙엽으로 다 날렸고 차가운 안개 몰려오지만 아름드리 참나무 고목과 어울린 푸른 朱木들이 천년을 하루 같이 고요히 숨쉬고 있는 산길이다.
새벽 시간 약간 졸린 몸에 고목 사이로 너울거리는 안개가 산길의 분위기를 더욱 몽환적으로 만드는데 누군가는 혼자 걸으면 영화 속의 장면처럼 고목에 붙어 사는 유령이 튀어나올 듯 으시시하다고도 한다.
마침 구룡령쪽으로 잠시 안개가 흩어지고 하늘이 열려 둥그런 달이 조각 구름에 씻기고 있다. 곧 산중이 밝아올 것이니 5산 산행시 도봉산 능선의 새벽처럼 달이 지고 해가 뜨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듯도하다.
어쨌든 부드러운 호흡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떼어 놓을 수 있는 산길이 고마운데 이렇게 아늑한 길이 두로령 지나 두로봉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편한 발걸음으로 40여분만에 상왕봉에 닿아 물 한 모금 마신다.
상왕봉에 새 날의 여명이 밝아오지만 안개 때문에 미끈하게 잘 생긴 봉우리가 하늘 향해 덩실 떠오르는 듯한 비로봉과 호령봉을 돌아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산길을 덮은 안개가 언제쯤 활짝 갤 것인가.
북대 미륵암쪽과 두로령 산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다람쥐 소풍날 싸오는 듯한 김밥과 구운 달걀로 아침 요기를 하고 두로령 산길로 들어선다. 초록 이끼가 낀 고목이 쓰러져 나뒹굴고 안개에 젖은 산길이 운치가 있지만 계속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어 조금 지루해지기도 한다.
곱게 불타오르는 단풍 속으로 빨려 들어가 悠悠自適의 발걸음을 옮기는 기대를 너무 크게 한 탓일까.
구룡령 아래 홍천군 내면 명개리에서 월정사를 향해 구불거리며 내려오는 446번 비포장 산간 도로가 지나는 두로령에 닿아 잠시 망중한의 시간을 갖는다. 대간을 벗어난 산길에 <백두대간 두로령>이라는 비석을 세운 것은 오대산의 산줄기가 그 만큼 대간과 밀접하다는 뜻이리라.
두로령에서 약한 오르막길을 삼십분쯤 걸어 오늘의 대간길이 시작되는 두로봉에 닿는다.
노인봉의 뒤에 있는 봉우리라는 이 두로봉이 한강기맥의 분기점이라는데 나중에 안개가 걷혔을 때 살펴보니 노인봉과는 6번 국도가 지나는 협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형국이라 이름에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이 봉우리에서 구룡령쪽 응복산과 산길 앞쪽의 동대산 방향을 돌아보던 2차 대간 산행 때(2004년 5월 31일)의 추억이 떠오른다.
당시 53명의 동문 산우들(7회~36회)이 구룡령에서 진고개까지 싱그러운 초여름의 바람이 불어오고 철쭉 피어나던 산길을 열심히 걸었고 이 봉우리에서 굵직한 대간 마루금이 달려오고 달려나가던 장면을 살피지 않았던가.
마침 이 곳에 일찍 도착하신 형님 세 분께서 오손도손 사이 좋게 아침 식사를 마치시고 떠날 채비를 하고 계신다.
동진하던 산길이 두로봉부터 동대산을 향해 남진으로 바뀐다.
동대산까지 6.7km 남은 산길에 안개가 빨리 걷히기만을 바라며 내리막길을 걸어 신선목이로 향한다. 산길이 신선목이를 향해 고도를 300m쯤 낮추었다가 다시 동대산을 향해 작은 봉우리들을 넘어서며 고도를 300m쯤 높여간다.
울창하게 숲이 우거진 산길에 젊은 朱木도 눈에 띄고 곳곳에 쓰러진 고색창연한 고사목들이 초록 이끼로 몸을 가리고 길을 가로막고 있어 산길의 운치가 깊어진다. 바람이 불어 안개만 흩어지면 오르막 어디선가 오대산 다섯 봉우리들이 연꽃처럼 피어나 산중을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터이다.
신선목이 못미친 산길에서 배낭 속에 위스키 한 병 곱게 모시고 두로봉을 향해 역산행을 하시는 형님을 만나 진고개쪽 사정을 듣고 신선목이에 닿아 물 한 모금 마신다. 산길에 500m 단위로 이정표가 계속 나와 목적지까지 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다시 약한 오르막길을 걸어 1,200m급 봉우리를 두어 개 넘어서니 동대산을 2.7km 앞둔 오르막 지점에 훤한 빛을 뿜고 있는 차돌바위가 나타난다.
작은 키의 두어 개의 통차돌바위가 발걸음을 맞아주는데 이정표에는 아예 쇠고기 부위인 차돌박이로 표시되어 있고 한 시간 전에 이 곳에 닿은 형이 차돌박이 주막을 열어 목마른 산우들에게 비장의 약술을 시음케 하고 있다.
몸에 무조건 좋다는 약술 한 모금 마시고 비탈길을 올라가는데 차돌바위의 훤한 빛 덕분인지 산중이 갑자기 훤해지고 안개가 금세 흩어져 전후좌우 전망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뜻하지 아니한 후미의 기쁨이다. 두 시간쯤 전에 이 곳을 통과한 선두팀은 틀림없이 이 좋은 산중의 풍경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두로봉쪽을 돌아보니 구룡령쪽 대간 줄기가 안개에 씻긴 산뜻한 얼굴로 굼실굼실 달려오는 모습이 반갑고 바로 협곡 넘어 노인봉과 시설물을 머리에 이고 있는 황병산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저 아래 진고개 휴게소의 빨간 지붕이 보인지도 오래 되었고 눈들어 보면 황병산 너머 움푹 들어간 곳은 매봉 지나 삼양목장 자리인가.
무엇보다도 오대산 다섯 봉우리가 연꽃처럼 피어나고 덩실 솟아올라 말발굽 형태로 산중을 감싸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게 된 것은 망외의 소득이어서 풀려가는 다리에 힘이 저절로 생기는 느낌이다. 오대산 봉우리들이 무엇인가 부드러운 말을 전해주는 듯하다.
오르막 발걸음마다 봉우리들을 살피고 앞뒤 대간 줄기를 뒤돌아 보니 힘도 덜 드는 느낌이다.
다시 힘을 내 1,400m급 봉우리를 두어 개 넘어서니 드디어 평평한 산길 끝에 동대산이 나타나고 동대산 정상에 환한 햇살이 아낌 없이 쏟아지고 있다.
정상석이 맞아주는 동대산에서 가깝게 다가오는 노인봉과 황병산의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이 뿌듯하다. 이른바 불심이 피어난다는 하늘길을 12km쯤 걸어 이 곳에 닿은 기분이 아주 좋다.
오대산 산길에서 문수보살의 지혜라도 한 수 배워가는 듯 의기 양양해지는가. 가만히 귀 기울이면 노인봉 넘어 주문진 앞바다의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누구도 왜 사는지 왜 걷는지 답을 주지 않지만 꽤 높은 곳에 걸린 사십여리 산길에 흘린 땀방울의 자취를 되돌아볼 때 입가에 번지는 흐뭇한 미소를 감출 수가 없다.
동대산 정상에 닿은 좋은 느낌을 한껏 만끽하고 진고개로 향하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온다. 1.7km 산길에 해발 고도가 500m쯤 낮아진다.
비탈을 거의 다 내려오니 산죽숲이 우거진 곳에 보고 싶었던 단풍숲이 슬며시 나타나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올여름 무더위 탓에 단풍이 곱지 않고 버섯이 흉작이라는 것이 아닌가.
사십여분쯤 지나 차량과 인파가 붐비는 진고개 휴게소에 닿는다. 선두와는 두 시간쯤 늦은 발걸음이다.
진고개는 글자 그대로 질퍽거리는 고개이자 긴고개(長嶺)인가. 6번 국도가 지나는 진고개는 서쪽 평창 대관령면과 동쪽 강릉 연곡면의 경계이기도 하다.
휴게소에서 찬 물로 얼굴을 부득부득 씻고 맥주 한 모금 목에 들이부어 산길을 무사히 마친 것을 자축한 다음 모두 모이기를 기다려 진부 읍내로 나아가 9년 전 산우들이 함께 들렀던 그 식당에서 산채 듬뿍 넣어 밥 비비고 향긋한 산나물 안주로 술 몇 모금 더 마신다.
산중의 산나물밭이 줄어들고 또 산나물을 뜯어 삶고 말리고 불려 조리하는 인건비가 비싸진 것인지 예전보다 산나물 가짓수와 양이 줄어든 느낌인데 오히려 두부맛은 더 좋아졌는가. 산나물을 보약처럼 알뜰하게 다 걷어먹는 맛이 괜찮다.
음식점 벽에 걸린 초서체인지 행서체인지 사자성어 첫 글자의 판독이 쉽지않아 아우들과 이런 저런 궁리를 해보는데 옆자리의 형님께서 일별하시고 <俯仰無愧/부앙무괴>의 뜻을 전하신다. 맹자의 말씀인지 세상을 굽어보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인가 보다.
산행에서 이 뜻을 흉내라도 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章
2013. 10.
(차돌박이)
(두로봉과 그 너머 구룡령쪽 대간 줄기)
((황병산)
(동대산 정상 이정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