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처형님 처남 처제님
이번 저의 어머니 운명(殞命)의 슬픔을 깊은 마음으로 위로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저께 저녁 늦게 집에 도착하여 지난 일들을 생각해 보니 평소 정성을 다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워 가슴 아프며, 엄마 생시 이런 저런 모습이 떠올라 힘들지만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라 생각하며 자위하니 그나마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많은 세월이 흐러면서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질수록 엄마의 젊은 시절의 청초하고 단아했던 모습은 간곳없고 서서히 무너져 가는 모습을 하나하나 옆에서 지켜보면서, 앞으로 이와 똑 같은 길을 가게 될 나는 분명 엄마보다 더 흉한 모습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생에 대한 회의와 허무가 엄습합니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부터 식음을 전폐하시고 영양제로 연명하고 계시는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생각에 빨리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밤은 점점 깊어 가는데 더욱 엄마의 앙가슴을 파고드는 나의 모습은 아무리 빨아도 나오지 않는 젖꼭지를 물고 젖 달라고 생떼를 쓰는 아이처럼 울기만 했습니다.
살짝 잠들었을 때 전화소리가 울리더군요.
전화번호를 보는 순간 ...어머니가!!!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며... 병원의 간호사 음성은 다급하고 빨랐습니다. 곧 숨을 거두시겠다는 연락을 받고 후다닥 옷을 걸치고 가는데 또 다시 걸려오는 간호사의 음성에는 힘이 빠졌습니다. “운명하셨습니다.”이슬비는 차창에 눈물과 함께 흐르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여 운명하신 엄마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고통을 참고 견디던 그 모습은 간데없고 근래 보기 드물게 편안하며 여유로운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습니다.
3일간의 모든 행사를 다 마치고 영구차에 싸늘히 식은 엄마의 몸을 싣고 화장장으로 향하면서 엄마의 숨결과 손끝의 지문이 함께 더 칠 되어 있는 집을 둘러보는 순간, 엄마의 여러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습니다. 대문 문치방에 우두꺼니 앉아, 오고 가는사람들의 발걸음만 헤아리다가 혹여 아들이나 오려나 기다리며 애를 태우시며 나날을 보내셨던 우리엄마, 방에 들어서서 서랍과 농을 열어보는 순간 북받치는 서러움은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새 옷처럼 차곡차곡 깨끗하게 정돈된 한복들 왜 그렇게 빈틈없이 잘 해 놓으셨단 말입니까. 서러움을 주체할수 없어 그냥 엉 엉 대성통곡하면서 엄마께 대어 들 듯 원망하였습니다. “엄마 왜 이렇게 갖가지 옷들을 빈틈없이 깨끗하게 걸어 놓고, 언제 입으려고 이렇게 해 놓았습니까. 아무렇게나 해 놓고 가셨다면 이렇게 가슴을 후려치지는 않을 것 아닙니꺼. 엄마! 엄마! 빨리 일어나 이 옷 입고 놀러 가입시더. 빨리요! 자식의 이런 오열을 들어보시지 않았던 우리 엄마 당황하실까봐 겁도 났습니다.
어릴 적에 떼를 쓰면서 찡찡거리며 울 때, 엄마는 항상 이렇게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니가 그렇게 울면 엄마가 빨리 죽는단다.”는 말씀. 이 이야기가 나오면 얼마나 겁이 났던지 울음을 뚝 그쳤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가 죽으면 안 된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머릿속에 강하고 깊게 심어 놓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엄마는 돌아갔으니 울고 있는 나를 보고 무어라 말할까.... “그렇게 울고 있으면 엄마를 빨리 만나지 못한다.”고 말씀 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월이 흘러 엄마의 모습을 떠 올려도 눈물이 나지 않을 때쯤은 싸늘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가리라 생각해 봅니다.
화장장에서 엄마의 뼈를 쓸어 담아 고향 선산의 장지로 향하는 날씨, 하늘도 높았으며 산과 들에는 흐드러지게 개나리, 벚꽃, 진달래가 피었는가 하며 이름 모를 풀들과 함께 화원 동산의 연속이었습니다. 엄마가 16살에 시집와 새 살림을 차리셨던 그 집 부근의 개울가를 지날 때 “엄마 이 곳을 알겠습니꺼”하고 여쭤 보았더니 “그래 여기서 너 그를 낳아 길렀다”라는 밝은 음성이 들리는 듯하였습니다.
나지막한 선산의 햇빛은 따스하고 포근하였으며 군데군데 불을 짚여 활 활 따는 듯한 진달래와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 김은 입적의 환호와 축복으로 느껴졌습니다. 할머니를 비롯한 여러 일가친척이 함께 살고 계시는 이곳에 새 집 지어 이사 온 엄마는 집 들이 잔치 하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실 것 같다.
새 집이라 깨끗하기도 하지만 운동장 같이 널찍한 마당과 발 아래는 훤하고 조망까지 좋으니, 병원에서 찌든 가슴을 풀어 헤쳐 툴툴 털어내시고 활기찬 모습으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것 같은 상쾌한 곳입니다.
지극정성 무남독녀 엄마와 새끼들을 애지중지 금지옥엽, 눈이 오나 비가오나 하루도 걸리지 않고 꼭두새벽 목욕재계하시고 건강하고 잘 되게 해 달라고 주문을 외우셨던 외할머니와 손에 손잡고 알콩달콩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일들을 다 이루시고 극락 영생하시기를 이 아들은 합장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