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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원로수필가 별세
박종철 원로수필가가 지난 8일 오전 7시4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0세.
등을 역임했다.
1966년 수필 `꽁초 유감'으로 등단해 한국수필문학가협회 부회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한국불교문인 협회 부회장, 강원수필문학회 발기인, 영동수필문학회장, 두타문학회 고문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문학 의 확산과 중앙문단과의 교류를 위해 노력했고 공로를 인정받
아 강원도문화상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들 기성(시큐웍스 대표이사)·기범씨가 있다.
△발인=10일 오전 11시
강원일보 2020-3-10(화) 21면
▲「頭陀文學 50年史 祝典」삼척문화예술회관 제1전시실 로비에서,삼척 1960년대 현대문단의 초석을 놓은 원
로문인들, 앉은이 왼쪽 김익하 소설가는 삼척 최초 두번째 '不毛地문학' 동인이였고, 그 옆 박종철 수필가와 김
정남 수필가는 삼척 최초 동인지 '東藝문학동인'이다. 박종철 수필가는 하늘정원으로 소풍 가셨다.
▲「頭陀文學 50年史 祝典」 -개관식 테이프 컷팅, 노란점퍼 입은 김양호 시장, 옆이 서성옥 두타문학회장,김
정남 수필가, 박종철 수필가이다. 박종철 수필가는 이승에서 공식석상 마지막 모습이다.
▲「頭陀文學 50年史 祝典」 제1전시실 개관식을 마치고 두타문학회 회원들|왼쪽으로부터 박군자 시인. 최광
집 시인, 조의령 시인, 장금희 시인, 박소연 시인, 이봉자 시인, 조성돈 시인, 강동수 시인, 정연휘 시인, 김익하
소설가, 김정남 수필가, 박종철 수필가, 서성옥 소설가, 김일두 시인, 박종화 시인, 정순란 시인, 서순우 시인,
최영우 시인, 이용대 시인, 정석교 시인.
<추모>
박종철 원로수필가
1. 약력
*40.1.20 삼척시 당저동에서 태어나고, 유년기와 청년기를 정라진에서 보냄 *호 청암. 동예 *58.3 서울 균명고등학교졸업 *59.9 동국대학교 영문과 중퇴 *20.8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창과 수료 *59. 5 시집「은파도」발간 *60. 동예문학회 발기회원 *61.8『동예』 1집에 소설「상」을 발표 *66. 수적문학회 발기회원 동인지『수적』에 수필 ‘꽁초유감’을 발표.『삼척문화』편집위원. *67.1.1불모지 동인회 주최 시낭송회에서 ‘꽁초유감’을 낭송 *69.두타문학회 발기회원. 성신양회(주) 입사. *90.수필문학추천작가회 발기회원 *91.1 월간『수필문학』「남한산성 가는길」로 등단 *92~06강원수필문학회 발기회원~부회장, 02~11한국문협강원지회 회원~부회장. *93~98한국수필가협회 회원~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95.한국수필문학회 재정분과 회장. 성신양회(주) 상무이사. *97.수필문학 작가회 회장 *99.한국불교문인협회 부회장 *20.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총동창회 이사. *삼우회 회원. *01.월간 수필문학 편집위원, 신인상 심사위원, 한국수필문학가협회 부회장 *01.11.강릉으로 이주 *02.한국문학회 상임이사. 격월간『한국문인』신인상 심사위원. 실직문화연구회 연구위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원 *09.관동문학회 회원. *05 강릉문협 부지부장, 삼척문협 자문위원, 영동수필창작교실 지도강사. 영동수필문학회 회장.고문 *01.한국비평문학회 선정 ‘2001년을 대표하는 문제수필’에「개똥벌레의 꿈」게재 *동안 이승휴 전국학생백일장(제19,20회)심사위원장 *03.삼척문학통사발간위원회 자문위원. 제5회,6회 허난설헌백일장 심사위원. 한국현대수필작가100인선 대표작선 『시인의 목장』 발간. 연간대표수필선집(91-10) 작품수록(수필문학사) *04.2.한국비평문학회선정 ‘2003년을 대표하는 문제수필’에「선두리」게재 *05.국제펜클럽한국본부 강원지역위원회 지도위원. 09.부회장. 『역사와 문학』 편집위원. *04.『선』 수필지에 「영진안 길」수록 04.강원여성문예경연대회(신사임당)수필부문13회05.14회 09.18회.11 20회 심사위원. *06.강릉시여성문화센터 문예창작 강사. *07.수필의 날 운영위원회 조직위원. *08.『수필시대』편집위원 * 09.강원문학상. 강원펜문학상. 강원수필문학상. 한국불교문학상 심사위원 *배출한 수필신인작가(1999~2011): 이출남(수필문학: 1999.1월호:아이를 키우며) 외 홍순영,김희래,김춘열,최복순,최남미,최현숙,조병록,임명희,이은자,이은희,이인혜,민기숙,채명자,함인수,임정무,박우철,송금주,홍영실,진미영,서태원,차명자,김순덕,변옥희,이동철,최돈수,이근현 *수상: 1997 제7회 수필문학상. 2003 제6회 한국불교문학상. 2004 제1회 소월문학상. 2005제3회 강원수필문학상. 2006 제15회 황희문화예술상, 2006 제25회 강원문학상. 2007 제6회 강원펜문학상, 2010 제2회 연암수필문학상 *저서: 시집 「은파도」1959 매일인쇄사, 수필집『아버지의 땅』1997 교음사, 『꿈꾸는 수레바퀴』2001 교음사, 『시인의 목장』한국현대수필작가대표선집, 2003 수필문학사, 『촌부의 일기』2004 정은문화사, 『우렁나팔수』2008 교음사, 『아름다운 세상』2010 교음사
2. 작품
홀 지팡이
현관 구석에 지팡이 하나가 머쓱하니 서 있다. 어찌 보면 노인의 말년처럼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건강한 노인네처럼 꼬장꼬장해 보이기도 한다.
지팡이는 산신령의 신기가 어린 신묘한 지팡이도 아니요, 중생을 두루 구하는 덕도 높은 노승의 지팡이도 아니다. 더구나 거드름을 피우며 외양을 뽐내는 부자의 지팡이는 더욱 아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겨우 몸을 의지할 수 있을 정도의 가냘픈 몸매의 지팡이다.
지팡이는 가엾게도 외톨이다. 키는 내 허리에 닿을 정도이고 등은 노인네처럼 휘어지고 머리는 뭉툭하고 목 부분은 구부러져 손으로 잡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작은 키에 비하여 여덟군데나 옹이가 져서 아예 반드러운 자태를 갖추지 못한 추물(醜物)이다.
지팡이는 몇 년 전 노인 봉을 오를 때 지쳐 있는 나를 생각해서 친구가 냉큼 잘라서 몸을 의지하라고 마련해 준 것이다. 그날은 물을 잔뜩 머금은지라 다소 무겁기는 하였지만 그 덕에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 후로 산행 때마다 녀석을 앞세우는 것도 늙은이 행세를 하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현관 구석에 버려두고 외면할 때가 많았다.
가끔 지팡이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제멋대로 생긴 걸 보아 부잣집 거실에 장식용으로 쓰일 만한 분복(分福)도 없으려니와 도끼나 호밋자루로 쓰일 만큼 실한 재목감도 아니다. 뱀처럼 구불구불하고 험상궂은 걸 보면 내 인생만큼이나 험난하게 산 것 같아 연민의 정이 가기도 한다.
지팡이의 겉모양은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한사람을 섬길 줄 아는 순종과 충신의 의기를 지녔다고나 할까, 그에 비하여 외양이 멀쩡한 나는 마음속에다 탐욕과 시샘을 돌처럼 품고 남의 가슴에 불을 지르거나 못질을 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금년에는 비가 많이 내려서 산길이 미끄럽고 위험해서 산행 때마다 지팡이와 동행하게 되었다. 높은 곳을 오르거나 험난한 길에서는 어차피 녀석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된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을 지날 때에는 손아귀에 힘이 잔뜩 들어가 모가지를 비틀어 쥐고 온몸을 맡길 때에도 금방 꺾여질 듯 휘청거리면서도 신음 한마디 뱉지 못하고 버티어 내는 것이다.
세상은 팔자소관대로 산다는 말이 있다.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의 포로가 되어 산행에만 끌려 다니게 되었으니 기박한 팔자를 타고 난 셈이다.
수려한 풍차를 골라서 다니는 것도 아니요, 화려한 시가지를 여유있게 유람하는 것도 아니다. 가까운 야산이나 평탄한 들판으로 몰고 가는 것도 아니요, 오직 험난한 산이나 돌밭을 갈 때에만 입장을 새우는 것이니 놈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고 분통이 터질 만도 하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녀석에게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만일 임자를 잘 못 만났더라면 벌써 불쏘시개로 화형을 당하였거나 아니면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끌려 다니며 고생만 실컷 하다가 아무 곳에나 버려져 눈비를 맞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나 나와 더불어 한세상을 두루 산책하며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도 보람된 일이 아니겠는가. 하기야 애초부터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던들 깊은 산속에서 아름다운 꽃과 새들에 어우러져 한껏 삶을 노래하며 행복했을 터인데, 숲의 평화를 빼앗고 녀석의 생명마저 서슴없이 잘라버린 사람의 비정을 어디에다 비할 수 있으랴만,
어제의 일이다. 다섯 시간 가까이 숲의 향기에 취하여 산을 오르내리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누워 있는 녀석의 몰골을 살펴보았다. 목 부분은 피부가 벗겨지고 반질반질하게 닳아서 윤기가 흐르고 여기저기 찢겨져 화상을 입은 듯 속살이 드러났다. 발은 돌에 부딪치고 땅을 헤집은 탓으로 해어진 짚신 바닥처럼 마모되어 녀석의 노고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상처투성이인 지팡이는 일어설 기력도 없는 것 같고 약간 힘만 주어도 뿌지직하고 금방 부러질 것 같이 허약해 보였다. 그러나 명색이 숲의 명문가인 물푸레나무의 후예라 강하고 질기다. 사람으로 말하면 풀뿌리 민중의 근성이라고나 할까. 언뜻 보면 한물간 내 주제처럼 허실해 보이지만 위험이 닥칠 떄에는 쉬 꺾이지 않고 버티어 내는 귀한 성깔을 지니고 있다.
산행을 하고 난 다음에는 현관 구석에 홀로 세워두지만, 한결같이 꼿꼿한 자세로 서 있는 걸 보면 영락없는 시골선비의 지순한 모습이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푸르고 싱싱하던 녀석도 바짝 마른 늙은이처럼 군살 한 점 없이 가벼워졌다. 이제는 산길을 가다가 돌에라도 부딪치게 되면 댕그랑 하고 맑은 소리를 낸다. 몸에 지녔던 물기마저도 털어 버리고 세상의 영욕을 다 거두어 버린 조신한 선비의 목소리처럼 청아하다.
그리하여 지팡이는 나에게 대나무처럼 속을 비우라고 한다. 계곡의 청류에 찌든 마음을 헹구고 삼베옷 걸치듯 헐겁게 살라고 한다. 그러나 범부로서는 쉬이 접할 수 없는 구도의 길이기에 세속에 마음을 항상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지팡이여! 그대는 살아있는 나보다 더 현자이려니.(끝)
-현대수필가 100인선,수필의 길을 가다 12p, 수필과 비평사 발행
황토잉어
나는 40여 년 동안 한 마리의 잉어를 키우고 있다.
잉어는 한 톨의 먹이도, 한 모금의 물도 축여 보지 못한 채 다만 나의 정성과 공기만을 마시며 긴 세월을 살아오고 있다.
몸길이는 대충 20센티미터이고 몸통도 8센티미터 정도다. 그 동안 단 한 치도 자라지 않고 태어날 때의 크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잉어는 꼬리로 버티고 서서 단비를 기다리듯 하늘을 향해 큰 입을 벌리고 있다.
입가에는 긴 수염을 길렀고 몸은 온통 황토 빛이다. 경주 땅에서 신라의 혼으로 빚어진 잉어이다.
그의 생명이 40여 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보물이나 문화재의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서툰 장인의 손끝에서 하찮은 상품으로 태어난 것이다.
이 잉어는 수십 년 전, K라는 소녀가 사랑과 꿈을 담아 내게 전해준 순정의 그릇이다. K가 여고 졸업 수학여행을 경주로 다녀오면서 연필꽂이로 내게 선물한 것이다.
그때부터 잉어는 내 피붙이가 되어 줄곧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사람의 손을 탈까봐 깊은 곳에 숨겨 두기도 하고 남몰래 애지중지 하여 왔다.
특히 이사를 할 때에는 제일 먼저 잉어부터 챙겼고 손상이 가거나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각별히 신경을 썼다.
잉어의 입에는 한 번도 연필을 물리지 않았다. 연필이 드나들다 보면 깨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었다. 잉어는 내 눈이 미치는 곳에 두었고 유리창이 있는 책장의 뒷줄에 간직했다.
항상 마음을 기울여 소중하게 다루는 잉어에 대하여 아내는 한 마디도 내색하지 않았다. 언젠가 나 몰래 잉어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나에게 들킨 적은 있지만, 내내 무관심한 것 같이 보였다.
그러나 아내의 내면에는 늘 황토잉어가 자리 잡고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잉어는 K양이 나에게 선물한 이래 나의 약혼시절과 결혼 후의 나의 가족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번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할 때인데 미리 잘 챙겨둔 잉어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혼비백산하여 짐을 뒤졌고 아내와 아이들을 다그쳤다. 잉어를 이불 속 깊숙이 보관하여 놓고 깜박 했던 것이다. 아내는 그러한 나를 보면서 빙그레 웃기만 하였다.
요즈음 잉어를 볼 때마다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다.
k양은 내가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어렵게 다니고 있을 때 물심양면으로 나를 도와준 친구이자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K로부터 받은 잉어는 나에게 사랑의 환희와 삶의 용기를 전해주었다.
잉어는 추억으로 숨 쉬고 있다.
아내가 떠나고 없는 지금은 더욱 애절한 심정으로 잉어와 자주 얘기를 나눈다. 잉어가 간직하고 있는 긴 세월의 아름다운 추억은 잉어와 나 외에는 모르기 때문이다.
아직도 잉어는 예전의 빛깔과 본질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며 가족이 넷으로 늘어나 힘없이 살아 갈 때에도 잉어는 지난날의 기쁨을 돌이키게 하여 위안과 용기를 더해 주었다.
잉어는 비통에 잠긴 시간들도 말없이 받아들였다.
아내가 무서운 투병생활을 하며 절망의 벼랑에 서 있을 때도 잉어는 한 가닥 위로가 되었다.
아내의 눈물어린 구원의 기도도 잉어는 아픔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어쩌면 아내는 잉어로 인하여 더 큰 슬픔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잉어가 내게 아름다운 추억을 전하기도 하지만 이별보다 더 슬픈 그리움을 주기도 한다.
잉어를 바라볼 때마다 저려오는 그리움과 이별의 아픔을 가눌 수가 없다.
천년의 사랑인들 목마름이 가시랴.
어제일 같은데 잉어를 나에게 건네준 K양은 아내가 되어 긴 세월 나와 함께 하다가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고 나만이 들꽃이 되어 외로움만 남았다.
아내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잉어는 나에게 눈물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슬픔을 다스릴 줄 모르는 나에게 위안을 주기도 한다.
우리 가족의 지순한 삶의 현장을 말없이 지켜보았던 황토잉어.
어느 날, 내가 잉어의 곁을 떠나버리면 그는 누구와 남은 얘기를 나누랴.
아내와의 아름답고 애절한 삶을 엮어준 흙의 질긴 생명도 어쩌면 내가 아내 뒤를 따를 때, 그도 세상사를 내려놓고 나와 함께 동행할지 모르겠다.
그러한 날에는 나의 아픔과 시린 추억의 빛도 영영 땅에 떨어지리라.
생전 육필원고 '왜가리' 부문
2019.05.23.
3. 작품해설
김우종(문학평론가)
박종철의 수필세계
― 수필의 아름다움
박종철은 이미 1966년도에 수필 「꽁초유감」을 발표한 이후 수필창작에 돋보이는 역할을 해 오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창작만이 아니라 원로 작가로서 후배들을 위한 문예창작에도 힘쓰고 있다.
수필창작 지도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문학은 ‘언어로써 상상의 힘을 빌어 사상과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예술’이다.
시와 소설과 희곡 등이 모두 그렇다. 그런데 수필은 사실의 경험적 소재를 거짓으로 꾸미지 않고 쓰는 문학이다. 즉 픽션이 허용되지 않는다. 만일 픽션을 더하면 소설이 된다.
그런데 상상적인 표현은 예술의 본질에 속한다. 그러므로 시나 소설처럼 상상적인 장르가 아니라면 문학은 예술이 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즉 문학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이 되기 쉽다.
수필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어려운 문학이다. 사실의 경험적 본질을 지키면서도 상상의 세계를 형성해 나가고 문장의 다양한 기법과 구성 등의 변화에 의하여 예술성을 만들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박종철의 수필강좌는 매우 호평을 받는다고 알려지고 있다. 오랫동안의 수필창작 생활에서 수필의 가치가 어디서 오는가를 파악하고, 또 그런 작품을 꾸준히 쏟아내며 한국수필의 원로로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은 인생의 발견이다. 글쓰기를 통해서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것이다. 그 의미는 적게는 ‘나’라는 작은 공간의 것일 수도 있고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 속에서의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지닌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삶의 의미를 발견해 나간다는 것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찾는 밝은 시력을 갖게 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의미는 밝고, 크고, 넓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항상 작고 그늘지고 그래서 흔히 우리들로부터 잊혀지거나 무시되고 있는 사물에서 그 의미를 찾아 나가고 있다. 「군고구마장수」 「구두종합병원」 「견공의 지혜」 「파리의 변주곡」 「바보 새」 「돌 이야기」 「아름다운 하모니」 「홑 지팡이」 「우렁 나팔수」 등 대다수의 수필이 그렇다. 그런 점에서 그의 수필은 따뜻한 휴머니즘의 정서가 물씬 풍기고 있다.
「구두종합병원」은 부부가 함께 구두를 닦고 수선하고 염색도 해주는 곳을 그려 나간 작품이다.
‘구두를 솔로 털고 약을 바르고 헝겊에다 약을 찍어 구두코로부터 시작하여 문지른다. 힘이 들지 않는냐고 물었더니 “마음을 닦는 심정으로 닦기 때문에 힘든 줄 모르겠다.”고 한다. 어느 경지에 도달한 말 같다.
천으로 문지르고 물로 닦아서 광택을 내고 하여 깨끗한 얼굴로 둔갑을 한 구두가 발아래 놓였을 때엔 마음도 한결 밝아지는 것 같다.’
이렇게 표현된 구두닦이 부부의 삶은 우리사회 일반적인 직업 선호도나 직업인에 대한 존경정도를 기준으로 보면 하위에 속한다. 우선 평균적인 수입 기준으로 봐서 하위에 속한다.
물론 좋은 자리 맡아놓고 오랫동안 구두를 닦아 온 사람 중에는 그 수입으로 빌딩을 샀다는 경우도 있고, 그것은 자리 값만도 천만 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낮은 수준으로 친다. 그리고 수입이 낮은 직업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우선 존경받기 어려운 계층이다.
둘째로 그들은 더러운 것을 만진다. 구두가 아무리 비싸고 소중한 것이라고 하더라고 발고랑내가 나고 똥도 묻히고 다니는 신발이니까 그것을 만지는 직업은 천대받기 쉽다. 3D 업종 중의 하나인 dirty jop에 속한다. 실제로 그들의 손은 늘 때가 많이 묻어있다.
또 그들은 신사 양반 앞에 엎드려서 구두를 벗겨가고 작업을 끝내면 또 거기 와서 허리를 굽히고 신발을 내 드리고 돈을 받으면서 꾸벅 절을 한다. 직장의 의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그 절을 항상 앉아서 받으니 더 건방져 보인다. 그래서 구두닦이는 천대 받기 쉬운 직업이다.
또 그것은 해방 후 가난한 한국의 어린 소년들이 점령군인 양키들의 구두를 닦아 주는 데서부터 시작되었고 “구두 딲쇼!” 하며 구두 약통을 메고 다니는 소년들의 모습은 한국인의 가난의 상징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서 이 직업은 천대받기 쉽다.
그래서 이런 소재는 일상적으로 대중들의 관심 밖으로 벗어나 있다. 사치스럽고 호화롭고 찬란한 것만 판치는 세상에서 구두닦이 부부의 모습은 그늘에 가려진 소재다.
그런데 작가는 여기서 인간의 건강한 삶을 찾고 행복을 찾고 있다. 부부가 같이 일하고 있기 때문에 더 행복한 모습으로 비추인다. 그리고 그들은 “마음을 닦는 심정으로 구두를 닦기 때문에 힘들지 않는다”는 말을 잊지 않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을 작가가 내놓고 있는 셈이다. 즉 새로운 인생의 발견이다. 그리고 그 인생관 속에는 따뜻함이 있고 사랑이 있다. 그 자리는 소외계층의 외로운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뻥튀기부부」도 비슷하다. 옥수수 같은 것을 늘 튀기며 사는 부부에 대한 작자의 관심은 역시 힘없고 가난하며 남들로부터 별로 존경받지 못하는 외로운 계층에 대한 따뜻한 감정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사랑의 하모니」도 그런 의미에서 소외계층에 대한 휴머니스트의 발걸음이다.
‘사랑과 웃음을 가진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이오.’
두 마리의 겨울 사슴인 양 그들의 행보는 세모의 울적한 마음을 깨끗이 씻어 주었다.
그들은 마음의 창으로 사랑의 빛을 교감하고 절망을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다.
세모에 어둠을 덮고 사는 시각 장애인들로부터 마음의 빛을 얻게 되었으니 부끄럽고 고마울 따름이다. 그들이 건네준 마음의 메시지는 감동의 물결이 되어 올 겨울을 훈훈하게 해 줄 것이다.
새해에는 손에 들고 있는 빵도 이웃에게 나누어 주고, 웃음 한 조각도 밝게 건네주며 가난한 마음으로부터 해방되어야겠다. 사랑을 누리며 나누어 주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이것은 전철 안에서 만난 맹인부부의 아름다운 모습과 구걸하는 사람들의 세밑 풍경을 실감나게 그렸다. 구걸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생업수단이다.
작자는 이들 속에서도 역시 건강한 삶을 발견한다. 그가 말해 나가는 소외 계층의 삶이 모두 그렇다. 남들로부터 자칫 대접받지 못할 일에 종사하고 비록 가난하지만 그들은 모두 밝게 살아 나간다. 밝게 산다는 것은 행복한 삶이고 건강한 삶이다.
이것은 우리들의 세속적인 행복의 가치기준에 대한 반발이고 비판인 셈이다. 세속적인 허세에 대한 도전이며 찬된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철학적 탐구정신이 충만해 있다.
이런 것은 주로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작자는 사람 아닌 평범한 사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견공의 지혜」, 「돌 이야기」, 「바보 새」, 「파리의 변주곡」, 「장닭의 호연지기」 등은 독수리와 닭과 개와 파리 같은 것에 대한 예리한 관찰이며 그들을 통해서 인생의 교훈을 찾고 「돌 이야기」는 돌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찾아 나간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도 모두 이 세상에서 하찮은 존재라는 의미에서는 작고 그늘지고 외로운 사물과 인간에 대한 관심은 모두 공통적인 것이다.
이 같은 작자의 관심은 우리들에게 흐뭇한 감동을 오래도록 전해 준다.
우리 수필계에서는 신변잡기란 말이 자주 나온다.
신변적인 소재를 썼다고 해서 신변잡기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폄하된 수필관은 시정되어야 한다. 어떤 신변적인 소재라도 그것이 창의적인 문학성을 지니고 발전하면, 그것은 심오한 진리를 담은 그릇이 되고 표현 기법에 따라서는 매우 감동적인 예술성을 지니게 된다.
박종철의 글은 신변적인 것도 있지만 그 울타리 밖으로 소재를 찾아나서는 탐구적인 자세가 두드러진다. 얼핏 보면 심심해서 외출하고 산책하는 모습이지만 그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다.
그 같은 밝은 눈은 그가 저 시각장애인의 작품에서 말했듯이 자신도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의 눈은 소외자들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의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느 사회에나 남들보다 뒤처지고 힘들게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은 의외로 외로운 경우가 많다. 다수의 남들의 시선 밖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자는 그런 것이 수필의 주된 소재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휴머니스트로서의 눈을 지녔기 때문에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참된 삶의 의를 찾고 행복의 비밀을 찾아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문장이 매우 세련되어 있다. 섬세한 기교에 의한 문장의 변화는 드물지만 그 대신 정확한 논리와 예리한 관찰력으로 문장의 중량감을 더해주고 있다.
수필을 특히 사색의 문학이요 인생탐구의 문학이라고 한다면 박종철의 수필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귀중한 독보적 자리를 우리 수필문단에서 차지하고 있다.
4. 나의 문학세계
박종철
생명존중과 자연사랑
나의 문학의 시발점은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오른다.
졸업을 앞두고 담임선생님(김준헌)은 졸업생들에게 장래의 포부를 물었다. 나는 서슴없이 “대 문호가 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의외라는 듯이 나를 바라보더니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라고 하면서 격려해 주었다. 이러한 나의 문학지향적인 선언은 자신을 결박하는 족쇄가 되어 일생을 지배하게 된다.
나에게 문학적인 정서와 충동을 제공해 준 것은 순전히 가족이란 주범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자리 잡았던 수치심과 외로움이 동기였다.
큰 어머니가 딸만 주렁주렁 달고 등잔불같이 눈을 뜨고 있는 데도 아버지는 대를 잇는 다는 구실로 후처를 두게 된다. 후처의 몸에서 첫 째 아들로 태어났다. 10남매의 대 가족을 거느리게 되는 아버지는 가산을 탕진하고 빈 털털이가 되었다. 비렁뱅이 같은 가난 속에서 더욱 기를 꺾어 놓은 것은 첩의 자식이라는 수근거림이었다.
나의 정체성은 혼란을 거듭하게 되었고 고독이란 새장에 스스로 갇히게 된다.
우리집은 영진안에 있었다. 공동묘지로 가는 길목이라 갖가지 죽음의 행렬을 일찍부터 목격하게 되었다. 거적대기에 둘둘 말려서 리어카에 실려 가는 가련한 시신과 화려한 꽃상여에 묻혀 죽어서도 호강을 누리는 부자들의 상여를 지켜보면서 빈부의 차이와 죽음에 대한 우수를 경험하게 된다.
가정으로 인해 자존심을 송두리째 빼앗긴 나는 집안 처지가 비슷한 또래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게 되었고 부잣집 아이들과는 잘 섞이지 못하여 먼 이웃이 되었다. 자연히 열등의식이 싹트게 되고 숫기 없는 아이로 성장하게 된다.
나를 키워준 정라진이라는 어항은 거칠고 힘겨운 삶의 현장이었다. 부산하게 드나드는 어선들과 어판장에서 풍기는 비린내, 어부들의 아우성, 풍어기의 흥겨운 노랫가락은 푸른 바다와 같은 생동감으로 나의 우울을 걷어내 주었다.
6․25한국전쟁은 이 땅의 혼란기였다. 민족의 비극이라는 처절한 아픔이 황망하게 휴전이라는 이름으로 막을 내리고 아물지 않은 깊은 상처는 지금도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다.
중학생일 때 각종 문학서적을 섭렵하게 되고 수업시간에도 소설을 읽다가 몇 번이나 혼이 난 적이 있었다. 학비를 제 때에 납부하지 못하여 결국 집을 탈출하여 대구로 떠나게 된다. 농촌에서 머슴과 같은 농사꾼이 되기도 하고 후에는 미군부대에 하우스보이로 입성하여 막사의 청소와 구두닦이를 하는 노동자로 변신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자전적 장편소설 쓰기에 이르고 소설가로 성공하겠다는 목표를 부풀려 나갔다. 서울의 야간고교시절에는 시인 김선현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문학의 꿈을 잡는데 도움이 되었다. 고달픈 고학의 길에서 부딪치고 넘어지고 실패한 갖가지 체험들이 후일 문학의 편린이 되어 다시 태어나게 된다.
60년대 초에 동예문학회 발기인이 되어 단편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소설가 김장수 선생을 만난 것이 촉진제가 되었다. 학비를 조달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은파도』란 시집을 출간하여 판매를 시도하였으나 실패로 끝나버렸다.
1967년 『수적』에 ‘꽁초유감’이란 첫 수필을 발표하면서 수필문학의 장정에 오르게 된다.
‘꽁초유감’의 내용은, 미군부대에 근무할 때 일어난 사연이다. 한국노무자들이 쓰레기통에 박혀 꽁초를 찾고 있었다. 미군들이 빨다 버린 꽁초를 그대로 입에 물고 희희 거리는 것이다. 배알이 뒤틀리고 수치심을 느꼈다. 청소 때마다 꽁초를 수집하여 양쪽을 가위로 잘라내고 속 담배만 모았다. 노무자들에게 담배를 전해 주면서 꽁초 줍기를 말렸다. 미군들이 보면 창피한 노릇이라고 설득했다. 입소문으로 퍼져나가 꽁초 줍기는 끝이 났다.
수필은 삶의 진솔한 고백일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애정이요 철학이기도 하다. 수필은 시와 소설을 넘나들 수 있는 유연성을 지니고 있어 무한한 사유의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나는 분재형 수필을 멀리한다. 뿌리를 잘라내고 가지를 치고 철사로 동여매어 모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인형 같은 글은 삼가는 편이다.
비탈진 판자촌에서 질경이처럼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을 사랑하고 그들의 체취에 천착하는 것이 내 문학의 바닥이다. 서민들의 여리고 순박한 심상과 떼를 쓰는 억지도 내게는 따뜻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러한 대상으로 쓴 작품에는 ‘인형의 유랑’, ‘팥죽과 계란’, ‘르완다에 사랑을’, ‘세 여인’, ‘파트리샤의 기다림’, ‘달구나 할머니’, ‘시인의 목장’, ‘노인공화국’, ‘옥수수 아저씨’, ‘난전풍경’, ‘뻥튀기 부부’, ‘먹자골목’, ‘고구마장수’, ‘아름다운 하머니’, ‘구두종합병원’ 등이 있다.
둘째는 자연을 사랑함이다. 자연은 생명체를 잉태하고 기르고 소멸하는 생명의 원천이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자연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에는 ‘개미일가’, ‘도심의 제비가족’, ‘동강의 시련’, ‘각시붓꽃의 비명’, ‘신음하는 호수’, ‘개똥벌레의 꿈’, ‘겨울 나그네’, ‘청둥오리 사형제’, ‘우렁나팔수’, ‘어라연 연가’, ‘무기수 반달곰’, ‘봉의산의 너구리’ 등이 있다.
‘개동벌레의 꿈’ 일부를 소개해 본다.
‘앞으로 살길이 막막합니다. 약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들의 동네를 청청지역이라고 하면서 전원주택지로 눈독을 들이고 있으니 더욱 불안하기만 합니다. 개똥벌레의 불이 꺼지지 않아야 사람들도 길을 잃지 않습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우리들의 절규에 마음을 열어 주십시오. 우리들은 사람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다!’ 라고.
― 수필 「개똥벌레의 꿈」중에서
나의 문학을 생성시켜 준 토양은 어두웠던 가족사와 정라진이라는 어항과 바다, 어부들의 삶의 질곡과 사투, 고학으로 얼룩진 상처와 실패, 산업체에 몸담으면서 치러낸 생존을 위한 치열한 전쟁은 인간의 생태를 살필 수 있는 안목을 길러 주었다. 서민들의 생활모습과 애환 등 갖가지 체험과 실험정신이 내 문학의 풍토를 기름지게 해 준 것이다.
대중과 자연을 사랑하고 그들의 모습을 진지하게 그려내는 것이 나의 궁극적인 문학관이며 최근에는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황폐해 가는 지구촌. 기상이변, 자원고갈, 사막화, 분쟁과 질병 등으로 지구는 중병을 앓고 있다. 자연보호는 인류의 생존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수필문학은 지성과 해학과 감성의 결합체이다. 보편적인 가치와 진리가 보장받는 자유로운 사회에 머물고 싶다.
대문호가 되겠다던 어릴 때의 선언에 비해 문단의 말석에 자리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애정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볼 것이며 내 영혼이 쇠잔할 때 까지 수필창작의 길을 이어 갈 것이다. 수필은 곧 인간학과 상통하기 때문이다.
*사진과 일부 자료 출처|『三陟文學通史』정연휘 편저,삼척통사발간위,2012,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