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뻬(바지) もんぺ
일제강점기 수탈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말 순화집에서 권장하는 이름은 【일바지】 또는 【왜바지】이다
몸뻬(もんぺ)’란
몸뻬(もんぺ)는 일본에서 메이지 시대 이전부터 추운 농촌지방에서 입던 작업복이었다.
일본의 바지 중에는 형태적으로 보았을 때 몸뻬의 근원으로 간주할 만한 것이 있는데 ‘산고(山袴)’로 표기되며 <카루산カルサン>,<탓츠케 たっつけ(裁着け)>라고 부른다. 이것은 일본에서도 지방의 일상생활은 물론 농사일을 할 때 작업복으로 착용하는 바지의 총칭이다.
원래는 일본 동북(도호쿠東北) 지방에서 부인들이 사용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즈음에 일본 각지로 퍼졌으며, 당시 일제에 의해 일본과 조선의 부녀자들에게 강제적으로 보급된 바지의 한 종류이
다
허리와 발목을 조이고 다른 부위는 풍성하게 하여 활동성을 높였던 산고(山袴삼파쿠―やまばかま야먀바가바)는 일본 농촌에서 여인들이 노동복으로 착용이 되었는데 이 산고가 몸빼(もんぺ)로 변형이 된 것이라 한다. 이 바지는 일본의 ‘나가노현(ながのけん; 長野県)’의 ‘기소(きそ: 木曽)’지방의 산중을 중심으로 중부지방의 농촌에서 노동할 때 입던 바지형태의 옷이다.
하까마(はかま: 袴)’란 일본인이 겉에 입는 아랫도리옷으로 허리에서 발목까지 덮으며 넉넉하게 주름이 잡혀 있고 바지처럼 가랑이진 것이 보통이나 ‘스커트’ 모양의 것도 있다.
여기서는 주어(主語)인 ‘하까마(はかま; 袴)’앞에 ‘야마(やま; 山)’라는 전치사가 붙어 ‘야먀바까마(やまばかま: 山袴)’라고 발음한다.

▲밑에 바지부분이 하카마.위에 걸친 겉옷은 하오리. 역시 단추나 고름 없이 끈으로 묶는다.
※カルサン ;어원 포르투갈어 calçao
→위는 낙낙하고 아래는 좁게 만든 바지. 눈많은 지방에서 방한·작업복으로 남녀 모두 입음.
※はかま 하카마
→일본의 전통 의상이다. 바깥에 드러내며 아래입는 옷이다. 허리에서 발목까지 덮으며, 가랑이가 져있고 스커트 모양도 있다. 하카마는 기모노 위에 입으며, 입을 때에는 오비 매는 법이 다르다. 바지로 되어 있는 것은 우마노리하카마, 치마로 되어 있는 것은 안돈바카마라고 부른다.
※ もんぺ의 사전적 의미.
山袴(やまばかま)の一種。작업복의 일종
袴の形をして足首の所でくくるようにした、ももひきに似た労働用の衣服。
바지의 형태로 발목 부분을 쪼인듯한 모모히키(허리와 발목부분을 끈으로 묶은 바지의 일종)와 비슷한 노동용 의복
主に農山村の女性が用いる。防寒用を兼ねる。もんぺい。
주로 농산촌의 여성이 입는다. 방한용으로도 쓰임 . 몬뻬이
《季 冬》「―穿(は)き傘たばさみて子規墓参/虚子」

일제강점기 수탈에서 비롯되었다
몸빼 바지는 일제 강점기시대 1930년대 말 원래 일본 여성의 노동복 바지였던 몸빼의 착용이 일본에 의해 강요되어 여성에게 국민복 처럼 강요되어 입혀졌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0년 남성에게는 자원과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국민복’이라는 국방색의 복장을,1942년에는 전시 여성복으로 ‘부인표준복’을 제정했다
모두 7종류의 표준복이 있었으나,활동복으로 지정된 ‘몸뻬’만이 거의 모든 일본 여성에게 확산됐다
일본여성의 비상시복(非常時服)으로 채택되어 치마를 벗고 ‘몸뻬‘를 입기 시작했다. 이때 여학생도 치마나 학생복의 스커트를 벗어던지고 ’몸뻬’로 갈아입었다 다른 복장에 우선하여 몸빼는 전시국민복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일본인들은 그런대로 따라주어 전시체제를 갖추었으나 한복을 입는 한국 여성이 문제였는데 당시 형편으로는 세끼 밥 먹기조차 힘든 때라 경제적 부담 때문에 ‘몸뻬’로 갈아입는다는 것은 언감생심 생각도 못했다.

한국에 들어와서, 일제는 국가총동원법(1938년)과 비상시 국민생활개선기준(1939년)을 제정하고 전국민의 의식주에까지 간섭을 하였고, 식민지 조선뿐 아니라 자국민들 상대로도 사회통제와 군수품조달의 목적의 하나로 몸뻬 착용을 강요하였다.
1940년 일본은 우리의 노동력을 착취하고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강제적으로 몸빼를 보급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궁극적으로 전쟁수행을 위한 재원조달을 위한 것이었다.

▲ 일본식 통바지 ‘몸빼’를 입고 환자를 돌보는 간호부(간호사)들
1941년 방공훈련이 잦아짐에 따라 학내 애국반 활동을 강화하고 여성들을 방공훈련에 동원하면서 몸빼 착용을 강요하였다
일본은 전쟁발발일인 12월8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매월8일을 ‘방공훈련일’로 정하여 전국적으로 방공훈련을 실시했으며 번화가의 밀집지역에서는 수시로 방공훈련을 실시했다.
훈련장에는 항상 왜경(倭警)과 어용기관인 경방단(警防團)이 메가폰을 불어대며 훈련 통제를 했는데 훈련은 불끄기 진화훈련과 방공호로 피신하는 대피훈련을 주로 실시했다.
훈련에는 주변의 주민은 물론 통행인도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했으며 이때 남자의 복장은 전투복에 전투모를 쓰고 정강이에는 반드시 각반(脚絆)을 착용해야 했으며 여자의 복장은 간소복 저고리에 ‘몸뻬’를 입어야 했었다. 각반이란 걸음을 걸을 때 아랫도리를 가뜬하게 하려고 발목에서부터 무릎 아래까지 천으로 돌려 감는 띠를 말한다. 종류에 따라 헝겊이나 가죽 따위로 만들며 바깥쪽을 끈으로 엮는 것과 말아 붙이는 것도 있으며 서양말로는 ‘게트르(guetre)’라고 한다.
훈련에 참여하는 사람의 복장은 엄격한 통제를 받았는데 남자의 경우 각반을 착용치 않은 사람은 임시방편으로 바짓가랑이의 정강이를 지푸라기나 새끼줄로 동여 매야했다. 당시는 나일론 끈이 없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때 한복을 입은 여인의 경우가 좀 창피스러웠다. 겉에 걸친 치마를 단속곳 속으로 말아 집어넣고 훈련을 했으니 여인의 치부를 들어내 수모를 겪어야했다. 이토록 우리 민족을 인간이하로 취급했으니 일본과 가깝고자 해도 가까워지질 수가 없다.
만약에 복장의 미비로 훈련에 참여치 않으려고 뒷골목으로 피하다 붙들리게 되면 비국민으로 취급 되어 주재소나 파출소에 연행되어 신문을 받고 운 좋으면 시말서를 쓰고 나왔는데 여기에 끌려간 사람은 거의가 한국인 이었다.
1944년에 이르러 일제는 몸빼를 보급하고자 강압정책을 시행했다.
처음에는 포스터나 신문을 통해 ‘근대화’, ‘현대여성’이라는 포장으로 계몽운동을 했다가 점차 몸빼를 항상 착용하도록 하기 위해 ‘부인결전복장’, ‘부인국민복’이라는 이름으로 「몸빼필착운동」을 펼쳤다 ‘몸뻬 입지 않은 여성은 전차 타지 말라’거나 ‘새 옷감으로 이상한 몸뻬를 만들지 말라’는 희한한 규정들은 여성의 노동력을 통제하려는 과격한 명령이었다.
왜바지를 입지 않은 여성은 버스, 전차등을 못 타게 했으며, 관공서나 공공집회장 극장에 가는 것을 금지했고,식량배급에서도 불이익을 주었다

▲[화려한 복식을 입은 여성이 몸빼를 입고 부지런히 근로하러 가는 여성을 보고 부끄러워한다는 내용의 1940년대의 포스터입니다.]
몸빼는 1940년 5월 애국반이라는 명칭으로 가정부인이 방공훈련을 받게 되면서 입기 시작한 이래 권장되었고,바지만을 외의로 착용해 본 적이 없던 조선 여성들이 처음에는 수치감에서 잘 입지 않았으나 국가의 강압과 여성용 작업복이 별도로 제정된 것이 없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활동에 편리한 편의성과 당국의 강력한 정책에 의해 몸빼는 점차 확산되었다
해방이 되며 일본에서는 전시 복 체제가 사라지며 ‘몸뻬‘는 산간이나 농어촌으로 밀려나 작업복으로 이용되더니 지금은 모양을 패션화하여 갈음옷인 바지로 입는 경향이 있다.
광복 이후 강제적으로 착용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몸뻬가 여성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선택된 것은 우리의 고된 근대사와 함께 경제개발 분위기에서 여성의 사회적 활동과 책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세련되고 아름다운 것 보다는 삶의 노동력의 수단으로 몸을 감싸는 단순한 생활복으로 택한 것이다. 다시 말해 격동하는 시대에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고달픈 삶에서 일의 능률을 높여주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시기에 사람들은 물자의 부족으로 인해 여러 개의 의복을 상황에 맞춰가며 풍족하게 입지 못했다. 따라서 몸뻬는 그때까지 입었던 어떤 의복보다도 편한 노동복인 동시에 일상복으로 입기에도 크게 무리가 없는 의복이었던 것이다.
여유분량이 많고 풍덩하여 인체의 선을 드러내지 않는 몸빼는 별도의 작업복이 없던 상황에서 효율적임을 수긍하여 바지대용으로 착용되었고 잔존하여 오늘날에도 시정 여인들에게서 몸빼착용을 볼 수 있다.지금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아직도 젊은 층은 ’몸뻬’가 어느 나라 말 인줄도 모르며 가정에서 할머니들이나 입는 일 바지(허드레바지)로 생각하고 있을 것 이다.

파자마와 몸뻬와의 차이
* 파자마는 서양식 잠옷으로, 감촉이 좋도록 무명이나 타월천 ·실크 ·나일론 등이 사용되고 앞이 터지고 품이 넉넉한 것이 일반적이며 집안에서 입는 풍신한 옷으로, 달라붙지않고, 잠옷으로 대게 입는다.
* 몸빼는 파자마보다는 통이 좁고,(좁아봤자 큰편이지만...) 몸에 착착 달라붙어 일할때 주로 입는옷. 몸빼바지는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올때 일하는 용도로 왔다.(한복을 없애려는 의도로 보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