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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드워드 로빈슨(Edward Robinson:1794~1863년) 미국의 목사이며 언어학자인 로빈슨은 성서의 문자적 정확성을 입증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지역에 위치한,미확인된 성서 속의 여러 지명들을 지리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2.`텔 브엘세바'. 네게브 광야를 헤맨 끝에 로빈슨 일행은 `비르 에 세바'라 불리는 조그만 베두인 천막촌에 도착했다. 이곳의 아랍어 지명을 토대로 그는 이곳이 다름아닌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의 도시인 성서 속의 `브엘세바'임을 밝혔다. 1969년 이후 발굴을 통해 솔로몬시대 요새로 건설된 텔 브엘세바의 모습이 밝혀졌다.
3. 로빈슨의 아치(1850년대) 1838년 예루살렘의 성전 터의 축대 부분을 관찰하던 로빈슨은 지진으로 인해 튀어나왔다는 돌출부를 성전 부속건물로 통하는 통로를 받치기 위한 아치의 일부라고 요세푸스의 기록에 근거하여 밝혔다.
4.로빈슨의 아치(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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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묻혀 있는 팔레스타인 성서 지명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당대 최고의 비교언어학적인 방법론으로 무장한
에드워드 로빈슨이란 미국인 목사에 의해 1838년 최초로 시도되었습니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이스라엘의 출애굽 경로를 따라 성지를 순례했는데, 카이로를 출발하여 홍해를 건너고, 시내산에
등정한 후 요단강 건너편으로 향한 다음 여리고성으로 들어 갔습니다.
로빈슨은 수주일동안 네게브 광야를 헤맨 끝에 조그만 샘을 중심으로 형성된 비르 에-세바라 불리는 베두인 마을에서
그곳이 바로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의 도시였던 브엘사를 발견하였습니다.
로빈슨은 고대의 지명은 비록 그 지방 주민과 언어가 바뀌더라도 그 발음은 계속 보존된다고 믿어 현지의 아람어
지명을 참고로 성경의 도시들을 찾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로빈슨은 하루 종일 길 없는 외딴 곳에 위치한 유적지들을 당나귀를 타거나 걸어서 탐사하였습니다.
1838년 로빈슨은 예루살렘 북쪽의 유적지들을 탐사하여 아나타를 예레미아의 고향인 아나돗으로, 제바를 게바로,
묵크마스를 믹마스로, 엘-지브를 기브온으로, 그리고 베이틴을 야곱이 제단을 쌓았던 벧엘로 정확하게 일치시켰습니다.
"갈대아인이 살던 '우르' 라는 지역이 있었다."
이런 말이 성경에는 기원전 1400년 전, 즉 지금으로부터 3400년 전에 기록된 창세기 11장 31절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나옵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하여 아브라함의 가족들이 갈대아인의 땅 우르라는 곳에 살았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성경의 이 말씀을 한낱 전설과 같이 우습게 알고 수천년을 지나 왔습니다. 근대까지만해도 아무도 이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800년대 후반에 와서야 지금의 이라크 땅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가 만나는 지점에서 많은 고고학적인 발굴이 이루어짐으로써 정말 갈대아 우르지방이 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위에 지도가 나와 있는데요.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고 있고, 티그리스 강이 그 위로 흐르고 있는 그 사이에 비옥한 땅이 주욱 유지되고, 지중해 까지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비옥한 초생달 같은 모양이 유지가 되지요. 메소(사이) 포타미아(강)는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으로 시날 평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끝 부분, 바로 이 곳이 우르지역입니다. 그곳에서 많은 고고학자들이 1800년대 중반부터 많은 고생을 하며 연구를 하였습니다. 왼쪽 그림은 갈대아 우르 지역을 발굴하고 있는 실제모습입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들이 발견되었는데, 아주 정밀한 수로를 만들어서 그 지역의 농사를 위해 물관리를 철저히 한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많은 점토판에 완벽한 지도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1929년 3월 17일자 뉴욕 타임스 에는 "우르의 발견, 새로운 아브라함의 발견"이라는 머릿기사가 실렸는데, 이는 대공황의
늪에서 실의에 빠져 있던 미국인들에게 성서적 복음주의의 희망을 주었습니다.
새로운 '아브라함'이란 제목이 갖는 의미는 아브라함이 유목민일 뿐만이 아니라 당대 최고로 발달된 도시문명의 법과
문명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사실을 발견한 사람은 1880년 런던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후 박물관에서 고고학 연구를
한 '울리'라는 고고학자입니다. 그는 대영박물관과 펜실베니아 대학의 후원으로 1922년부터 12년동안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르'를 발굴하면서 세계적인 고고학자로서의 명성을 쌓았습니다.
위 사진의 B.C. 2100년경 건설된 우르의 지구라트는 지금까지 발견된 지구라트 중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것으로 꼭대기에 있는 난나(nanna) 신전의 받침대 역할을 하였습니다.
당시 우르 제3왕조의 왕 우르-남무는 도시의 수호신 난나를 모신 신전을 높은 곳에 세워 도시의 상징으로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는 도시인 우르에서 믿음이 있던 아브라함을 광야로 불러낸 것입니다.
주택단지들을 파 들어가 보다가 고고학자들은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지금 세계사 책에 보면 인류 문명의 최초의 문명으로 갈대아 우르 지역의 수메르문명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최초의 문명임에도 불구하고 건물 하나가 많게는 수백개의 방이 있는 건물을 비롯해 굉장한 주거지역을 이루며 살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당시에 이미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이 완비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상수도와 하수도를 만들었습니다. PVC나 스텐파이프는 아니고요, 도자기를 구워 상하수도 시설을 한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 그저 원숭이 비슷한 존재들이 아니고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조차도 상하수도 시설을 제대로 갖춘 것이 이제 몇 년 되었습니까? 그런데 인류 최초의 문명이 이미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르 지역에 살던 수메르 인들이 섬기던 신들중에 가장 대표적인 신이 '이난나' 여신인데, 이것이 이난나 여신의 상입니다. 머리에 있는 이것은 뿔이 아니라 '달'(초생달)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여신이 흥분도 하고 땀도 흘리고 하면, 비도 많이 오고 농사도 잘 된다고 생각하여, 봄철에 이난나를 숭배하는 기간동안 모든 여성이 남성들과의 자유로운 성교를 즐길 수 있게 하였으며, 신전은 공공연한 난교의 장이 되었지요. 그런데 이 이난나 여신이 가나안 지역에서는 아스다롯 여신으로 불렸고,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로 들어가면서 이쉬타르 여신이 되었으며, 그리이스로 가서는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되었으며, 결국 로마로 가서 비너스가 되었습니다.
그 신이 다 그 신이고, 그 원조가 이난나 여신입니다. 의학적으로 성병을 베네리얼 디지즈(Venereal disease, VD)라 부르는데요, 이 베네리얼이란 말은 비너스의 형용사로서 비너스 여신으로부터 유래된 말입니다. 비너스 여신이 관련된 병이라는 것이지요. 비너스 신전의 모든 성직자들은 여자들인데, 이 여사제들의 성은 완전개방이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은 하나의 사상으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수메르 문명에 대한 가장 놀라운 발견중의 하나는 수메르 문자의 발견입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자는 수메르 사람들이 쓰던 쐐기문자입니다. 쐐기라는 것은 곤충 중의 풀쐐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고정시킬 때 박는 쐐기(Wedge)를 말합니다. 한자로는 설형문자라고 부릅니다. 보시는바와 같이 이런 수많은 점토판이 발견되었는데요, 그 어순( 語順)이 서양이나 중동 사람 말이 아닌, 한국어와 제일 비슷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문장이 주어+목적어+동사의 순이고요, --'가', --'을' 등의 토시를 붙여서 말을 구성하며, '밭'을 '받'이라고 하고, '길'을 '길'이라고 하고, 아버지를 집에서는 '아바'라 하고, 남에게 말할때는 '아비'라 하며, 높은 분을 높여 부를 때는 이름뒤에 '님'자를 붙입니다. '하늘'을 '아눌'이라고 하고 하늘을 높인 말 즉 '하늘님'을 '아눌님', 혹은 '아누님'이라고 하지요. 그러한 말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또 놀라운 것은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귀하게 숭상하던 꽃이 'Rose of Sharon' 즉, '샤론의 장미'입니다. 예수님의 별명도 '샤론의 장미'이지요. 찬송가 89장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이 꽃의 학명은 히비스쿠스 시리아쿠스(Hybiscus syriacus) 인데요, 그것은 바로 무궁화 꽃의 학명과 동일합니다. 그 옛날 고토 메소포타미아 땅에서 바벨탑 사건 이후에 동방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 유래의 언어와 자취와 그들이 사랑한 꽃을 가져와 극동에 위치한 우리나라까지 대장정을 행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수메르인의 설형문자 점토판에서 발견된 놀라운 사실중의 하나는 대영박물관의 조지 스미스라는 청년이 평생을 바쳐 연구하여 밝힌 '길가메시 에픽'에 관한 기록입니다. 수메르의 길가메시라는 족장이 기록한 서사시인데, 그 내용이 성경의 노아의 홍수 이야기와 내용이 거의 같습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의 기록에 노아의 홍수 사건 기록이 나온다는 것인데, 이는 인류 최초의 문명 이전에 분명 노아의 홍수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수메르 문명이 홍수 이후에 생겨난 문명임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수메르라는 말의 어원은 '세메르'에서 왔는데, '셈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노아의 아들중에서 장자권을 가진 자 '셈의 나라'라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