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8.30.월. 예배가 중요합니까, 사람 키우는 게 중요합니까? (5P)
이 질문에 <성령의군대> 장군들께서 각자 답을 한번 해 보세요.
<성령의군대> 배종부 지도목사
[김순환 목사 김명희 사모] [오후 12:21] 사람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경 김승규 목사] [오후 2:02] 사람을 키워 놓으면, 예배는 자동 되어집니다 ~~
[정종윤 목사 고창 성송서부교회] [오후 2:18] 기본기와 태도가 중요하니,
사람을 키우는 게 우선이겠죠.
[강한나 목사 새성교회] [오후 2:34] 예배를 드리면, 자동으로 사람은 키워진다고 생각합니다. (미소)
[권재천 목사 대전 영음교회,엘이레선교] [오후 2:37] 바보스러운 질문 중에 하나가, 제일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 키우는 것과 예배는 둘 다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조에스더 목사 구미 샘솟는교회] [오후 2:40] 하나님 앞에 예배가 먼저죠~
[장정진 사모 박도식 목사] [오후 3:32] 그 사람의 마음 알아 주면
예배는 이루어 집니다.
사람의 마음 알아 주는 훈련을
성신교회에서는 10년 정도 한 것 같은데,
사건 앞에서는 먼저 불평이 떠오른다.
원망이 다 내게서 떠나 가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오늘은 승리했다.
승리하고 드린 예배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충만하다.
기도해 주신 영적 어머니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이요,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다.
[박민 목사 정은화 사모 고양 시티라이] [오후 3:44]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원어로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리는 것.
그 어떤 것도 예배 보다 중요하고 앞서는 것은 없습니다.
예배는 아무나 드릴 수 없는, 구원 받은 자의 특권입니다.
♡☆☆♡빅토르 민박 (성령님의 대사)
[박도식 목사 장정진 사모 인천 성신교] [오후 4:16] 오늘도 예배 찬송 가운데 눈물을 흘렸습니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예배 중에 하나님을 경험하면
성도는 변합니다. ^♡^
[이사라 권사] [오후 4:26] 너무나 좋은 의견들 감사합니다.
제 일생의 질문이 이것이었습니다.
다른 장군님들도 자유로운 의견 들을 주세요.
저도 글을 올릴 게요.
[이사라 권사] [오후 4:29] 참! 위의 두 글은, 배목사가 올린 겁니다.
[안정옥 목사 새맘교회] [오후 5:18] 하나님의 사람아!
예배하고 또 예배 드리면,
변해 갈 수 있습니다..
[김장환 몽골 선교사] [오후 5:36] 우선 순위는 당연히 예배입니다.
[백문숙 사모 정광근 목사 충진고회] [오후 9:52] 창조주이시며 왕이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우선된 피조물의 도리이다.
[문경 김승규 목사] [오전 7:38] 예배를 정말 아무라도 나옵니까?
<성령의군대> 같이 강력한 훈련 받은 사람이 예배에 목숨 걸지...
일주일에 공식예배가
3번 밖에 더 됩니까?
그것 만으로는 예배가 아니죠.
죽음을 체험할 만큼 훈련 받은 사람 만이
예배에 전 생애를 걸지 않을까요?
<성령의군대> 배종부 지도목사의 글:
양자의 의견이 다 답이 맞다.
이 문제의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아니, 나의 질문이 잘못된 것 같다.
원래가 내가 묻고 싶었던 질문은
“목사님 당신은 공예배가 주안점입니까, 일대일 제자 양육 훈련이 주안점입니까?” 이었다.
사실은 교회는 이 두 날개를 균형있게 유지해야 힘차게 날아 가는 것이 아닌가?
인천 성신교회 장정진 전도사님의 경우, 확실하게 일대일 제자 양육 훈련이 주안점으로 보인다.
그저, 나의 평생의 경험을 그저 글로 남겨 보려 한다.
새성교회 목회 초장기의 젊은 날, 친구 박화균 목사가 나 배종부 목사가 죽어라 예배만 드리니, “사람이 별로 없으니, 예배에 주안점을 두지 말고, ‘일대일 제자 양육 훈련’ 을 계속하라” 했다.
그래서 온누리교회의 <일대일 제자 양육 훈련> 교재로, 사모와 둘이서 2년 가까이 시도하다가, 그만 두고 말았다.
나는 도저히 ‘일대 일 양육’ 을 하는 것이 나의 영적 체질이 전혀 아니었다. 사람을 하나 내 앞에 앉혀 놓고 삶을 나누고 가르치고 있으니, 미칠 것 같았다.
나는 대중적인 부흥사요, 집회와, 예배와, 설교의 사람이었다.
최근 나를 찬찬히 지켜 본 고0석 목사님도, “예배 위주로만 하지 말고, 다양한 방법으로 성령 사역의 방향성을 전개해 보라.” 했다.
나의 고정적인 선입관과 늘 해 오던 방식을 바꾸려니, 정말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사람은 각자 굳어진 게 있다. 자기 만의 방식이 있다.
그게 옳지 아니면, 버려야 한다. 그 방법이 또한 시대에 맞지 않고 후지면, 당연히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그게 자기 만의 장점이라면, 오래된 ‘노- 하우’ 라면 그 길로 가야지, 얼핏 본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안된다.
항상 현장과 자기의 삶에서 방법이 나온다.
‘성령 컨퍼런스’ 도 똑 같다. 지금의 형태는 내 삶에서 최선의 방책으로 나온 것이다. ‘성령사관학교’ 도 마찬가지이다.
장군 들을 설교 훈련을 시키니, 두 달도 가지 않아서 식어 버리지 않는가?
첫째 설교 준비가 신실치 못하며, 둘째 설교 평가를 받기 싫은 것이다. 나부터도 설교 평가를 받는다면 결코 점수를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이다.
나는 평생을 목회하고서,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는 쪽으로 결론이 굳어졌다. 나는 일생 동안 변화된 사람을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그 사람이 늘 그 사람이다. 감추어져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변화시키려 들지 않는다. 단지 나에게 온 하나님의 사람들과 주님의 일을 할 뿐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미련없이 헤어지리라.
그래서 나는 선생으로 자처해 본 적이 없다. ‘제자를 키운다’ 는 개념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나는 사랑하는 동생들과 친구 동년배들과 선배 들을 모시고 그냥 살아 갈 뿐이다.
나는 일생 나의 유일하신 스승님이신 성령님께 직접 배울 것이다. 혹시라도 나의 자가당착과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하여, 나의 성령론과 성령 사역을 활짝 열어 놓고, 언제나 더 좋은 성령론과 성령 사역을 배워 갈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것이 아니면, 따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람을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하나님이 직접 키우시는 것이다.
나는 그저 하나님이 키우신 그 사람을 내게 주시면 그저 감사하며, 함께 동역할 뿐이다. 그가 나에게 실망하고, 나도 실망하면 서로 헤어지는 것이다.
다 내 사람이 아니다. 다 나와 맞지 않다.
나는 나의 길을 갈 뿐이다.
주여! 나의 獨斷(독단)을 버리고, 보다 객관적인 사람이 되게 하소서.
공평무사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제가 언제라도 배우고 가르침을 받되, 이제는 일방적으로 누구를 따를 그런 나이가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있으나 없으나, 늘 예배자이다.
예배가 최고의 제자 훈련이다.
예배가 최고의 영성 훈련이다.
예배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한 인간이, 부족한 한 인간이 가장 자기를 잘 갈고 닦을 수 있는 최고의 교육과 훈련과 양육의 과정이다.
나는 사람을 모으지 않으며, 사람을 키울 수 없다.
내 일생을 돌아 보니, 나는 사람을 키울 수 없었고, 제자를 양육할 수 없었다.
그저 하나님이 직접 잘 키운 사람 들을 보내 주셔서, 그저 감사 감사하며, 함께 오늘을 살아 갈 뿐이다.
그들이 바로 나의 <성령의군대> 장군들이다.
나는 그들에게 내 삶을 바치려 한다.
나는 그들과 함께 오로지 예배한다.
나는 단지 예배할 뿐이다.
나는 그냥 예배자이다.
다른 영적인 것들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이제는 예배가 점점 사라져 간다.
불의하고 악한 정권이 보란 듯이 예배를 폐쇄한다.
예전에는 예배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잘 알지 못했다.
이제는 오직 예배에 목숨을 걸려 한다.
우리의 선조들이 다들 예배하다가 죽지 않았는가?
물론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예배에는 비대면예배, 온라인예배는 포함되지 않는다. 나는 그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이지, 정식 예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있는 정성을 다하여 설교와 강의안을 준비하고, 정성을 다하여 예배한다.
그리고 어느 날 주님 앞에 가리라.
나는 이 세상의 그 어느 누구 보다도 예배를 가장 많이 드린 자가 되기를 소원한다. 역사 이래로 나보다 더 예배를 많이 드린 자가 없기를 소원한다.
그리고, 내가 드린 예배는
다 영과 진리로 드린 예배로
주님 앞에 열납된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