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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고원 (Mille Plateaux: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1980)
들뢰즈/가타리(G. Deleuze et F. Guattari), 김재인역, 새물결, 2001(1980). 1000쪽.
목차
역자 서문 - 연애에 관하여
이탈리아어 판 서문
머리말
1. 서론 - 리좀
2. 1914년 - 늑대는 한 마리인가 여러 마리인가?
3. 기원전 1만년 - 도덕의 지질학(지구는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4. 1923년 11월 20일 - 언어학의 기본 전제들
5. 기원전 587년 및 서기 70년 - 몇가지 기호 체제에 대하여
6. 1947년 11월 28일 - 기관없는 몸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7. 0년 - 얼굴성
8. 1874년 - 세 개의 단편소설 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9. 1933년 - 미시정치와 절편성
10. 1730년 - 강렬하게-되기, 동물-되기, 지각 불가능하게-되기
11. 1837년 - 리토르넬로에 대해
12. 1227년 - 유목론 또는 전쟁기계
13. 기원전 7000년 - 포획 장치
14. 1440년 - 매끈한 것과 홈이 패인 것
15. 결론 : 구체적인 규칙들과 추상적인 기계들
***
3. 기원전 1만년 - 도덕의 지질학(지구는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13. 기원전 7000년 - 포획 장치
5. 기원전 587년 및 서기 70년 - 몇 가지 기호 체제에 대하여
7. 0년 – 얼굴성 319-363
12. 1227년 - 유목론 또는 전쟁기계
14. 1440년 - 매끈한 것과 홈이 패인 것
10. 1730년 - 강렬하게-되기, 동물-되기, 지각 불가능하게-되기
11. 1837년 - 리토르넬로에 대해
8. 1874년 – 세 개의 단편소설 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2. 1914년 - 늑대는 한 마리인가 여러 마리인가?
4. 1923년 11월 20일 - 언어학의 기본 전제들
9. 1933년 - 미시정치와 절편성
6. 1947년 11월 28일 - 기관 없는 몸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227년 서하(宁夏, 저하) 정벌과 징키스칸 사망]
[왜 서양사의 사건에서 제로(0)년 다음으로 1440년일까? 한글 창제 1443년인데.. (50SKH)]
제12장 1227년: 유목론 또는 전쟁기계 669-812
§12.00 1227: Traité de nomadologie: La machine de guerre, 434-527
천개의 고원(Mille Plateaux: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1980)
들뢰즈/가타리(Deleuze et Guattari), 김재인역, 새물결, 2001(1980). 669-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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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년 징기스칸이 죽은 해이다.
매끈한 공간보다 미끌한 공간이란 표현이 더 나을 것 같다. (50LMH)
광화문 광장 대 북악산, 노모스 대 폴리스, 리좀의 흐름 대 전제적 성벽, 전쟁기계 대 요강(아름답게 보존할 도자기), - 저자들은 서양의 혁명이 족장제(팔루스 신앙)를 그대로 둔 국가 변형이라면, 동양의 혁명은 국가의 폐지라 한다. 실제로는 동양의 국가는 유목적 전쟁기계와 정면으로 대립된다. 따라서 전쟁기계가 나타나 동양에서는 왕조를 교체할 수 있고 국가 폐지를 꿈꿀 수 있다. 서양의 국가는 전쟁기계로부터 보호받고 있어서 제국이라는 성분을 보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촛불의 흐름은 노마드의 성격을 띠고 근본적으로 전쟁기계와 같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성벽을 넘어가고, 다른 한편으로 도자기를 부셔버리는 것이다. / 홈파인 공간에서 지시하는 전제정의 목소리 대신에 인민의 함성이 미끌한 공간으로 들어선다. 사적 이익을 대변한 법령은 폐지되고 인민의 일반의지에 의한 계약이 다시 들어설 것인가? 시대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현 상황으로는 인민의 일반의지가 성벽을 넘어가고 있고 도자기의 균열을 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50LMI)
박근혜-최순실계는 법률적 사회계가 아니라 화류계 또는 조폭계에 가깝다. 이들이 현실적으로 잉여를 사적으로 전유하는 것은 국가 제도적인 사회계가 아니라, 법인이라는 이름을 빈 조폭계인 셈이다. 그래서 그 주변에는 언제나 조폭들이 있고 또한 떠돌이 화류계가 있다. 사회계와 달리 후자들은 노모스계인데, 이것을 정부제도와 결연을 맺어 이익을 확대하고 할 때, 전쟁기계가 정부제도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박근혜는 정부가 법률과 조직으로 되어 있기에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한데, 노모스의 전쟁기계는 이미 정부조직과 법률체계를 무화(폐지화)시킨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들을 다시 새우려면 그녀가 이끈 노모스의 전쟁기계와 충돌할 수 밖에 없다. 촛불의 인민은 또다른 노모스계이다. 조폭계와 인민계가 한판 붙으면 조폭계가 이길 것 같지만, 군대(와 정보)와 경찰이 뒷배를 봐주지 않는 한 인민계가 승리한다. 지금까지는 일제부역자들이 군대와 경찰의 뒷배로 유지해왔다. 그런데 그들자신들이 세속계에 젖어있다는 것을 잊고 있다. 재벌들로 골목상권까지 지배하려들면서 세소계에 있지, 사회계에 속하지 않는 다는 것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50LMI)
**이 글을 다시 정리하는 동안 내내, 나로서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 섬멸전과 제한전, 전면전과 국지전, 총력전과 부분(국부)전 등의 개념을 떠올렸다. 13세기의 전쟁기계는 노마드이며, 20세기는 공포의 평화를 이룬 것이 과학계(핵, 우라늄 야금술)의 노마드였다. 21세기는 다양한 문화체들이 노마드가 될 것이다. / 20세기 전반에 독립과 자주, 후반에 민주와 자유의 쟁취에 있었다면, 그리고 21세기는 평화와 연대를 실행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소수자들의 다양체가 연대를 통해 통일을 지향하고 평화를 이루어보는 것이 인성을 확장하고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신자유주의 탐욕과 일부 개인주의자의 욕심을 인성도야의 욕망으로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50TMI)
#전쟁에 대한 의미에서 섬멸전과 핵공포가 현실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지에 대한 두 저자의 관점은 흥미롭다. 현재 반도의 상황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답은 인민의 일반의지를 형성하는 것이다. (50UKJ).
12장 1227년: 유목론 또는 전쟁기계 669-812
- 1227: Traité de nomadologie: La machine de guerre, 434-527
* Char nomade entièrement de bois, Altaï, V-IV siècles av. J.C. (434)
Les deux pôles de l’Etat. - Irréductibilité et extériorité de la machine de guerre. - L’homme de guerre. - Mineur et La pensée, l’Etat et al monadologie. - Premier aspect: machine de guerre et espace nomade. - La religion. - Orient, Occident et Etat. Deuxième aspect: machine de guerre et composition des hommes, nombre nomade. - Troisième aspect: machine de querre et affects nomades. - Action libre et travail. - Nature des agencements: outils et signes, armes et bijoux. - La métallurgie, l’itinérance et le nomadisme. - Phylum machinique et lignées technologiques. - Espace lisse, espace strié, espace troué. - La machine de guerre et la guerre: complexité du rapport.
§12. 12장 1227년 유목론 또는 전쟁기계 669 - 1227: Traité de nomadologie: La machine de guerre, 434
§12.00. 도판 그림(434, 669): 나무로 만들어진 유목민의 전차, 알타이 기원전 5-4세기
그림 출처: Dessin du char de bois se trouvant au Musée de l’Ermitage, Leningrad. - “목제 수레”의 소묘는 레닌그라드에 있는 ‘은자 박물관’에서 찾을 수 있다.
§12.01. 국가의 두 축 671 Les deux pôles de l’Etat. 434
공리1 - 전쟁 기계는 국가 장치 외부에 존재한다.
명제1 - 이러한 외부성은 먼저 신화, 서사시, 드라마 그리고 각종 놀이들에 의해 확인된다. (434, 671)
조르주 뒤메질(Georges Dumézil, 1898-1986)은 인도-유럽 신화에 대한 결정적인 분석에서 정치적 주권 또는 지배권은 “마법사-왕(roi-magicien)”과 “판관-사제(prêtre-juriste)”라는 두 개의 머리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 주었다. 즉 국왕(Rex)과 사제(flamen), 라이(raj)와 브라만(Brahman), 로물루스(Romulus)와 누마(Numa), 바루나(Varuna)와 미트라(Mitra), 전제군주(le despote)와 입법자(le légistateur), 묶는 자(lieur)와 조직하는 자(l‘organisateur) 등이다. 그리고 이 두 극은 밝음과 어두움, 격렬함과 평온함, 신속함과 장중함, 공포와 규울, “묶는 것”과 “계약” 등으로 서로 대립하고 있다. (434-435, 671-672) [통치신관(統治神官)으로서 왕(王)과 천지제관(天地祭官)으로서 무(巫)의 이중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44QLH)] [다른 하나, 벩송의 신비가, 들뢰즈 예언자(선지자)의 행동이 새로운 시대를 만들 것이다. 자연(본성)을 따르는 자가 선지자이다.(50LMI)] / [대립으로써 밝음과 어둠 등의 표현은 성별의 표현과 닮았는데, 대부분은 태양은 남성, 달은 여성이다. 남성의 우월성을 이런 성별에서 나왔다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에스키모인에게서 반대로 달이 남성이고 태양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강성(우월)과 약성(열등)의 대립 표현은 권력과 권위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50LMG)]
“대립적인 동시에 상호 보완적이며, 한쪽이 다른 한쪽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서로 간에 적대성은 없으며, 따라서 갈등을 나타내는 신화도 없다. 따라서 평면의 한쪽의 특수화는 기계적으로 다른 한 쪽의 동형적 특수화(spécification homologue, 거울 대칭적 특수화)를 불러온다. 이리하여 양쪽에서 이것들은 기능의 영역을 소진한다.” 이 두 극은 국가 장치의 주요 요소로서 ‘하나’-‘둘’에 의해 작용하여 이항적 구분을 분배하고 내부성의 환경을 형성한다. 이러한 이중분절이 국가 장치를 하나의 지층(une strate)으로 만든다. (435, 672) [이중분절 사이에 전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즉 둘 사이에 대립의 격화는 다른 것에서 온다. 벩송이 말하는 적이자 동지인 자매가 적대적일 때는 외부적 개입이 있을 경우가 아니겠는가, 들뢰즈는 전쟁기계는 다른 곳에서 온다고 한다. / 그러면 신화에서 교대적 관계인 낮(밝음)과 밤(어둠)이 적대적 관계로 되는 우화적 표현은 어떻게 될까? 이집트 신화에서 태양이 밤에게 상처를 입을 때 이에 도움을 주는 달을 상정할까? / 그리스 신화에서 밀의 생장에서 땅위와 땅밑의 관계를 하데스와 데메테르로 교대적으로 표현할까? (50LMG)]
§12.02. 전쟁기계의 비환원성과 외재성 672 - Irréductibilité et extériorité de la machine de guerre. 435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전쟁(la guerre)은 국가 장치 안에 장악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의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국가가 전쟁을 통하지 않고 폭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경우. ... 이와 반대로 국가가 군대를 보유하는 경우.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전쟁의 법률적 통합과 군사 기능의 조직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435, 672)
전쟁 기계는 다른 곳으로부터 온다. 전쟁의 신인 인드라(Indra)는 미트라뿐만 아니라 바루나와도 대립하는 것이다. ... 인드라는 오히려 척도를 갖고 있지 않은 순수한 다양체 또는 무리(la meute)를 이뤄 홀연히 출몰하고는 이내 사라져 버리는 변신 권능(puissance de la métamorphose)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인드라는 매듭을 푸는 동시에 계약을 배반하는 것이다. ... 이처럼 인드라는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잔혹함을 보이다가도 다른 때에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연민을 보여줌으로써, 전혀 다른 종류의 정의(正義)가 존재할 수 있음을 입증해준다(왜냐하면 그는 매듭을 풀기 때문이다). (435-436, 673)
전쟁기계와 국가 장치를 비교하기 위해 놀이 이론(la théorie des jeux)의 입장에서 장기와 바둑의 구체적인 사례를 갖고 각각의 말(駒 구)들 간의 관계, 그리고 이와 관련된 공간과 말 간의 관계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 (436, 673-674)
이에 비해 바둑알들은 작은 낱알들(des grains) 아니면 알약들(des pastilles)이라고 할까, 아무튼 단순한 산술 단위에 지나지 않으며, 익명 또는 집합적인 또는 3인칭적인 기능밖에 하지 못한다. (436, 674)
바둑은 단 한 알로도 공시적으로 하나의 성좌 전체를 무효로 만들 수 있는 반면 장기의 말은 그렇게 할 수 없다 (또는 통시적으로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장기가 기호론(une sémiologie)이라면 바둑은 순수한 전략(pure stratégie)이다. (436, 674)
바둑(le go)의 “매끈한” 공간 대 장기(les échecs)의 “홈이 패인” 공간, 바둑의 노모스 대 장기의 국가, 노모스(nomos) 대 폴리스(polis). 즉 장기가 공간을 코드화하고 탈코드화하는 데 반해, 바둑은 이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바둑은 공간을 영토화하고 탈영토화하는 것이다. (437, 675) [중국 대 미국은 양면성일 수 없다. 그런데 중국은 인도주의(humanitaire) 인데 미국은 상품자유주의(liberal)이다. 이에 비해 중국과 프랑스는 양면성일 수 있다. 중국의 인도주의에 프랑스의 인성자유주의(libertaire)가 상보관계일 수 있다. 인성(la nature)에서 영토(위상)의 이중분절과 국가(폴리스)에서 코드(법률 또는 아버지 신앙)의 이중분절은 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 우리는 시진핑 대 트럼프 사이에서 인도주의와 인성자유를 택해야 할 것인데, 요강공주 패거리가 재코드화에 집착하고, 인민은 촛불의 운동(노마드)로 탈영토화를 시험하고 있다. (50LMG)]
“그들은 운명처럼 다가온다. 원인이나 이유 또는 어떠한 구실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어떻게 그들이 수도에까지 침입해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들은 여기에 있다. 아침다다 그들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뤽 드 외슈가 분석하는 반투(Bantou)족 신화도 이와 동일한 도식을 보여준다.
경찰의 인간인 느콩골로(Nkongolo)는 배다른 누이들을 밀렵꾼인 므비디(Mbidi)에게 준다. .. 비밀의 인간인 므비디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뒤를 쫒아가더니 군대라는 전혀 상상을 초월한 무리들과 함께 외부로부터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는 느콩골로를 살해하고 새로운 국가를 재건한다. .. (437, 675-676). [국가가 갑자기 도래한다는 사례.. ]
국가의 관점에서 보자면 전쟁의 인간, 즉 전사의 독창성과 기이한 성격은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즉 우둔함, 기형, 광기, 비합법성, 강탈, 죄악 등으로. 뒤메질은 인도-유럽어족의 전통에서 나타나는 전사의 세 가지 “죄(péchés)”를 분석한다. 즉 왕, 사제, 국법에 대해 위반하는 죄가 그것이다(가령 남녀의 배분을 위태롭게 하는 성적 위반, 더 나아가 국가에 의해 제도화된 전쟁에 관한 법을 배반하는 죄 등). (437-438, 676)
역사가들은 부르주아역사가건 아니면 소련의 역사가건 한결같이 이처럼 부정적인 관점에 따라 징기스칸(Gengis Khan)을 전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사람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그는 국가나 도시라는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 하지만 정작 문제는 전쟁기계가 국가 장치 외부에 있다는 사실은 도처에서 분명하게 확인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사유하기는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438, 676-677) [징기스칸이 말을 더 이상 오를 수 없을 때 징기스칸의 노마드 제국은 무너졌다고 한다. 말에서 내리면 국가를 통치한다. 그런데 말에서 내리기 전에는 전쟁기계라는 의미가 된다. / 원(징기스칸의 다음으로 쿠빌라이 칸)이 저항하는 중국 송나라를 치고 함락하여 선대의 전략처럼 저항한 성의 신민들을 모조리 죽이려 할 때, 대신들이 극구 말렸다고 한다. 탈영토화의 노모스가 끝나고 코드화의 폴리스 시대가 바로 원나라일 것이다. // 미국의 자본은 노모스의 성격을 지니지만, 미국이라는 국가체계는 폴리스로 코드화에 있다. 아마도 트럼프는 노모스의 방식일 것인데(자본의 탈영토화를 부추기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계 경찰로서 지위를 유지하려는 한(포로수용소 긍정) 폴리스 체계에 휘둘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의 탈영토화와 미국의 탈코드화에서 미국이 경찰국가를 포기하지 않는 한 먼저 재코드화할 것이다. 시진평은 공자의 세계화를 빌미로 계속해서 탈영토화를 추진할 것이다. (50LMG)]
전쟁 기계를 순수한 외부성의 형식으로 고찰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국가 장치는 내부성의 형식을 구성하는데, 우리는 습관적으로 이 형식을 모델로 채택하거나 또는 이러한 형식에 따라 사유하는 습관에 익숙해져 있다. (438, 677)
그러면 여기서 뒤메질이 언급하고 있는 로마 왕들의 계보를 살펴보자. 한편으로 로물루스와 누마라는 관계, 똑같이 정통적인 두 유형의 주권자들이 교체(alternance)[교대]와 변형(variantes)을 거듭하면서 하나의 계열 전체에 걸쳐 반복된다. 다른 한편 툴루스 호스틸리우스(Tullus Hostilius),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Tarquinius Superbus) 등 로마의 “폭군(mauvais roi, 나쁜 왕)”들이 전사로서, 즉 불온하고 정당성을 결여한 인물로서 돌연히 출현한다. (438, 677) [“선한” 왕들(bons rois)] [영국, 미국, 일본의 교대와 변형, 프랑스, 소련, 중국에는 전복이 있다.]
셰익스피어가 묘사하고 있는 왕들... 즉 처음부터 전쟁기계를 부활시키고 호전적인 방침을 강제하려는 의도를 표명한 리처드 3세(Richard III)와 같은 인물이(기형적이고 야비하며 모반을 일삼았던 이 왕은 국가 권력의 탈취와는 전혀 무관한 “비밀스런 목적”을 추구할 것을 공언하고 여성들과의 다른 연관을 맺었다.) 끼어든다. 요컨대 전쟁 역량의 출현을 국가의 지배권의 계보와 혼동하게 되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438, 678)
국가 자체는 전쟁기계를 갖고 있지 않다. 국가는 단지 군사제도 형태로서만 전쟁 기계를 전유할 수 있지만 이 전쟁 기계는 끊임없이 국가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처럼 외부에서 유래한 전쟁 기계를 계승하고 있는 군사제도를 국가가 경계하는 것(la méfiance)은 이 때문이다. (439, 678)
§12.03. 전사 679 - L’homme de guerre. 439
전쟁의 인간(l’homme de guerre =전사)은 정치적 주권의 양극 사이에서 발목이 잡혀(coincé) 시대에 뒤떨어지고 미래도 없는 인간, 막다른 길에 몰려 스스로 광란(sa propre fureur)을 자기 자신에게 퍼부을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인간으로 간주된다. 헤라클레스의 후손인 아킬레우스(Achille)와 아이아스(Ajax)는 고대 국가의 국가의 인간(homme de État =정치인 [정부수반, 통치자])인 아가멤논(Agamemnon)에 맞서 자신들의 독립성을 긍정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은 충분히 갖고 있었으나 당시 새로 탄생하고 있던 근대 국가 최초의 정치가, 최초의 근대 국가적 인간이었던 오뒤세우스(Ulysse)를 당해낼 힘은 없었다. (439, 679) [아가멤논의 전제권 오디세우스의 판관권... / 전쟁권을 행사하는 아킬레우스가 죽음으로 그려질 수 밖에 없다(?). 그래야 판관권의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단죄당한 전쟁 인간[전사]의 기묘한 처지를 클라이스트처럼 훌륭하게 그려낸 사람은 없었다. 펜테실레이아(Penthésilée, Πενθεσίλεια, 1808)에서 아킬레우스는 이미 자기 역량에서 분리되어 있다. 한편 전쟁 기계는 국가를 갖고 있지 않은 여성 민족인 아마존 족으로 이동하는데, 이들의 정의나 종교, 사랑은 모두 아주 독특하게 전사적인 형태로 조직되어 있다. 스키타이 족의 후예인 아마존 족은 그리스와 트로이라는 두 국가 “사이에서(entre)” 번개처럼 출현해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갔다. 아킬레우스는 펜테실레이아라는 자기 분신을 마주하게 된다. ..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이미 충분히 그리스 국가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펜테실레이아 쪽도 아킬레우스와의 정열적인 전쟁 관계에 들어갈 때는 그녀가 속한 민족의 집단적 법을 어길 수밖에 없었다. (439-440, 679-680)
클라이스트(Kleist)는 작품 전체를 통해 전쟁기계를 예찬했으며 설령 처음부터 패배가 확실한 전투일지라도 전쟁기계를 국가 장치에 대립시켰다. 아르미니우스(Arminius, deu. Hermann, 전18?-후19)는 분명 결연(des alliances)[동맹인데 결연의 동맹]과 군대(des armées)라는 [로마의]제국적 질서와 단절하고, 로마국가와 영원히 대치하게 될 게르만적 전쟁 기계를 예고하고 있다. ... 콜하스(Michael Kohlhaus)의 경우 그의 전쟁기계는 산적 떼 일 수밖에 없었다.(440 681) - [중국 진나라의 유방은 산적 떼의 일부로 시작하였으며, 마오는 장정하는 떼거리로, 동학 농민 항쟁은 농민 떼거리로, 지리산의 남부군은 학도병 저항자들로 시작하였다. 남민전 전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50LMH)]
국가 사상가들이었던 [바이마르의] 괴테(Goethe)와 [프러시아의] 헤겔(Hegel)은 클라이스트의 마음속에는 괴물이 살고 있다고 보았는데, 클라이스트는 애초부터 패배했던 것이다. 그러나 클라이스트에게서 가장 기묘한 현대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비밀(le secret), 속도(la vitesse), 변용태(l’affet)가 그의 작품의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440, 681) [그렇다 괴물 즉 리좀의 다양체는 흐르고 있어서 잡히지도 코드화도 되지 않기에 괴물이다. 이에 비해 괴테와 헤겔은 국가(전제군주) 속에 구경꾼(관찰꾼)에서 꼭두각시로 또는 전위자로 되는 김기춘과 같은 좀비같이 될 것이다. (50LMH)]
이러한 것이 클라이스트(Clastres, 1934-1977)의 개인적 공식인데, 즉 미친듯한 질주와 응고된 긴장의 연속, 여기에서는 어떠한 주체적인 내부성도 더 이상 잔존하지 않는다. 클라이스트에게는 많은 동양적인 것이 있다. ... 무한히 계속될 듯 요지부동하다가 갑자기 지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재빠른 동작으로 상대를 해치우는 스모 선수[씨름, 활쏘기], 그리고 바둑기사, 현대예술의 많은 것들은 클라이스트에서 온다. (440-441, 682) [피에르 클라스트르(Pierre Clastres, 1934-1977) 프랑스 인류학자, 인종학자.]
전쟁기계가 낡은 것이 되고 단죄 당하고 국가에 의해 전유되자 새로운 형태로 변신하여 스스로의 환원 불가능성, 즉 외부성을, 다시 말해 서구의 국가의 인간[정부수반]이나 서구의 사상가들이 끊임없이 뭔가 다른 것으로 환원시키려고 하는 순수한 외부성의 환경을 전개하는 것은 동일한 운동의 두 측면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문제1- 국가 장치(또는 하나의 집단에서의 이것의 등가물들)의 형성을 방지할(conjurer, 몰아낼)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는가?
명제2- 전쟁 기계의 외부성은 민속학에 의해서도 똑같이 확인된다(피에르 클라스트르를 기리며(존경하며)). (441, 683)
절편적 원시 사회는 흔히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 즉 분명한 권력기관들이 출현하지 않은 사회로 정의되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로부터 이들 원시사회들은 국가 장치의 형성을 가능 또는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정도의 경제 발전 또는 정치적 분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결론에 도출해 왔다. 따라서 당연히 원시사회의 사람들은 이처럼 복잡한 장치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클라스트르의 학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진화론적 기본 전제와 단절한 데 있다. (441, 683)
클라스트르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원시 사회의 전쟁을 국가 형성을 저지하는 가장 확실한 메커니즘으로 규정한다. 전쟁은 모든 집단의 분산성과 절편성을 유지하며 또 전사는 그 자신이 공훈의 축적 과정에만 몰두하며, 결국 이 과정은 그를 권력과는 무관하지만 위신만 높아지는 고독이나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기 때문이다. 클라스트르는 “자연법”을 논거로 삼을 수도 있었지만, 주요 명제를 다음과 같이 뒤바꾼다[전복]. 홉스(Hobbes)가 간파한 “국가는 전쟁에 반대한다”를 “전쟁은 국가에 반대한다. 그리고 국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로. (442, 684) [로베스삐에르와 장꼬방 산악 당원들은 절대권과 판관권을 단대두에서 이슬로 보냈다. 한편으로 고독, 다른 한편으로 반동에 의한 죽음의 그림자가 항상 어른 거렸을 것이다. - 헤라클레스적 실행과 스토아 사상이 그들을 받쳐주었을 것이다. - 전사들도... (50LMH)]
이 명제의 흥미로운 점은 우선 국가 형성을 억제하는 여러 집단적 메커니즘들에 주목한 점에 있다. (442, 685) [소수자들로 되어 있는 집단의 예들이겠지]
자크 뫼니에(Jacques Meunier), 보고타 거리의 청소년 갱 집단에 대해 ... 리더가 안정적 권력을 획득하는 것을 저지하는 세 가지 수단 ... 마지막(셋째)으로 막연하게나마 연령 제한이 있어서 15세 정도가 되면 패거리를 탈퇴해 독립하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442, 685) [진화론적 관점을 버려야 하는 예인데, 알카포네나 돈 코를레오네는 국가 조직에 포획 또는 포섭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동물의 무리에서 조차 리더제(la chefferie)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데, 최강자가 리더로 뽑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재적인 관계들의 짜임(un tissu de relations immanantes)이 우선시되어 안정적인 권력의 설치를 억제한다. 가장 진화된 동물인 인간의 경우에도 쉽게 “사회성(sociabilité, 사회계, 사교계)”의 형식과 “사교성(mondanité, 속세계, 화류계)”의 형식을 대립시킬 수 있을 것이다. 즉 사교 집단은 패거리나 무리와 비슷한 것으로 사회 집단처럼 권력의 중심과의 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위신을 전파함으로써 움직이는 것이다(프루스트는 사교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간의 이러한 비상응성을 아주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다). 댄디이자 사교가였던 외젠느 슈(Eugène Sue, 1804-1857)는 정통왕당파들이 오를레앙 가에 빈번히 드나드는 것을 비난하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나는 그 가문에 결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쪽 무리들과 결탁하고 있을 뿐이다.” 무리나 패거리는 리좀 유형의 집단으로, 권력기관 주위에 집중되는 나무형 집단과 대립된다.(443 686) - [박정희가 낮의 제왕이라고 하고 방응모가 밤의 제왕이라고 할 때, 이 구분이 권력의 측면에서 대립이 아니라 거울효과처럼 이중성을 보인 것은 타당할 것이다. (50LMH)]
하지만 이러한 클라스트르의 설이 완전하게 설득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는 생산력의 발전이나 정치력의 분화에 의해서는 설명될 수 없다는 그의 주장에 우리는 동의한다. 대토목공사의 수행이나 잉여 생산물의 축적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공적 기능들의 조직화를 기능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 자체이기 때문이다. (443-444, 686-687) [맑스의 생산력 발전은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문제이다.]
국가는 제국 형태로 일거에(d’un coup) 출현하는 것처럼 보이며, 따라서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요인들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어떤 장소에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내는 것(son surgissement)은 마치 천재의 일필휘지처럼(comme un coup de génie) 보인다. 아테네 여신(d’Athéna)의 탄생처럼 말이다.(444, 687) [요술사가 요술 막대기로 한번 탁 치니 솟아나는 것처럼 보인다(창세기 신화에도 있으라 하니 있게 된다). 그런 형태가 거의 무매개적으로 보이는 것은 인간이 자기 자아의 인격성 자체가 무개개적으로 주어진 것과 같은 것은 아닐까? 본능적으로 또는 직관적으로 다양체라는 것을 느끼고 있어서, 셋이면 이미 폴리스(국가)가 형성되는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자연에 대항하여 살아야 하니깐. 사는 것이 먼저이고 다음에 사유한다. (50LMH)] [그리고 사고하여 국가라는 관념을 만들고 정신이란 관념을 형성한다. 그런데 사유는 영혼(체, 질료로서 실체)을 생성한다. (50UKJ)]
국가를 경제력이나 정치력의 진보(une progression, 진행과정)에 의해 설명할 수 없듯이 전쟁의 결과로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444, 687)
클라스트르는 라 보에티(La Boétie, 1530-1563) 식의 “자발적 복종(servitude volontaire)” 문제에 매료되어 있다. 왜 사람들은 원치 않은 불행한 전쟁의 결과로 생겨난 것도 아닌데 복종을 원하거나 욕망하는 것일까? 국가의 형성을 저지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었는데도 도대체 왜 또 어떻게 국가가 형성되었을까? ... 이 문제를 해결할 수단들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보인다.(444, 687)
그에 따르면 자연 상태는 순수 개념이 아니라 완전한 사회적 현실(réalité 실재성)이었으며, 이 진화는 발전이라기보다 돌연변이(la mutation brusque)였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국가는 일거에 완성된 모습으로 출현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는 국가의 출현을 저지하고 예방할 수 있는 아주 정밀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444, 688)
따라서 국가는 항상 존재해 왔다고, 게다가 완전한 상태, 아주 완벽한 모습으로 존재해 왔다고 말하는 쪽이 더 정확할 것이다. 고고학자들의 발견이 늘어나면서 점점 더 많은 제국이 발견되고 있다. 원국가(Urstaat)라는 가설은 사실임이 입증된 것처럼 보인다. - “잘 생각해 보면 국가라고 하는 것은 인류의 가장 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주변부나 지배의 촉수가 거의 뻗치지 않았던 지역이라도 제국과 접촉하지 않았던 원시 사회는 거의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의 사실이 이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즉, 국가 자체는 항상 바깥과의 관계를 맺어왔으며, 따라서 이러한 관계를 빼고는 국가를 생각할 수도 없다는 가설 말이다. 국가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전부> 아니면 <무>(국가적인 사회냐 아니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냐)라는 법칙이 아니라 내부와 외부의 법칙인 것이다. 국가란 바로 주권(la souveraineté)이다. 하지만 주권은 자신이 내부화하거나 국지적으로 전유할 수 있는 것 위에서만 군림할(régner) 수 있다. (445, 689) [양도하지 않은 주권, 체화된 주권이 있으니 국가가 성립하는 것이 아닐까? ]
외부는 동시에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난다. 먼저 특정 시점에 통합태(l’oecumène =전세계)로 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으며 국가에 대해 상당한 자율성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한 세계적 기계(가령 “다국적 기업” 유형의 산업조직 또는 산업 콤비나트 또는 기독교, 이슬람, 다른 몇몇 예언주의 운동 또는 메시아사상 등과 같은 종교 단체). 그러나 다른 한편 패거리, 주변부 집단(marges), 소수자 집단(minorités)이 가진 국지적 메커니즘도 있는데, 이들은 계속 국가 권력 기관에 맞서 절편적 사회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445, 689) [자유 쟁취하려는 후자들로서, 여성, 블랙리스트 예술가, 성소수자, 한철연 같은 연구집단 등이 있다.]
현대세계는 오늘날 이 두 가지 방향, 즉 통합태적인 세계적 기계의 방향만이 아니라 신원시주의, 맥루한(Mac Luhan)이 묘사한 바 있는 새로운 부족사회와 같은 이러한 두 가지 방향이 얼마나 분명하게 발전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445-446, 689-690,)
그러나 전쟁 기계의 외부성의 형식은 오직 스스로 변신할 때만 존재할 수 있다. 즉 산업의 혁신이나 기술의 발명, 상업적 유통망 또는 종교적 창조 등 국가로서는 이차적으로밖에는 전유할 수 없는 이 모든 흐름이나 경향들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왜재성과 내재성,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하는 전쟁 기계들과 자기 동일적인 국가 장치들, 패거리들(les bandes)과 왕국들(les royaumes), 거대 기계들(les mégamachines)과 제국들(les empires) 등은 상호 독립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상호 작용의 장 속에서 공존(coexistence)하고 경합(concurrence)하고 있다. (446, 690) [심층으로써 전자가 51%, 상층으로써 후자가 49%일 때 자유를 누리고 평등사회를 지향할 수 있을 것이다. (50LMH)]
§12.04. 소수자와 사유, 국가와 유목론 690 - Mineur et La pensée, l’Etat et la monadologie. 446
명제3: 전쟁기계의 외부성은 또한 “소수자 과학(science mineure)”의 또는 “유목 과학(science nomade)”의 존재와 영속성을 암시해 주는 인식론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446, 690)
분류하기 상당히 어려우며, 역사를 추적하기에 한층 더 어려운 어떤 종류의 과학 또는 과학론이 존재한다. 이것은 통상적인 의미에서 “기술들(techniques)”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역사적으로 확립된 왕립적이고 합법적인 의미에서 “과학들(sciences)”도 아니다. (446, 691)
세르(Michel Serres)의 최근 저서에 따르면 데모크리토스로부터 루크레티우스((Lucrèce, Lucretius, 전98-55)에 이르는 원자 물리학과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전 287-212)의 기하학 속에서 이러한 과학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삐닥한(excetntrique)[탈주심적] 과학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446, 691)
1) 우선 유체를 특수한 경우로 간주하는 고체 이론이 아니라 수력학을 모델로 사용한다. ... (447, 691) [정지의 과학과 운동의 과학인 셈이다. 원자론이 운동의 과학에 다가가는 것은 공간의 유동(회오리)의 인정이며, 그 공간은 기하학의 절대공간과 전혀 다르다. (50LKI)]
2) 이것은 안정된 것, 영원한 것, 자기 동일적인 것, 항상적인 것과 대립하는 생성과 다질성을 모델로 한다. (447, 691-692)
3) 박편(薄片) 또는 얇은 조각 모양의 흐름 속에 있는 직선으로부터 이 직선의 평행선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곡선의 편이로부터 경사면 위에서 나선과 소용돌이의 구성으로 나간다. 즉 최소각으로 최대경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투르바(turba) 또는 투르보(turbo). 즉 원자들의 패거리나 무리들로부터 거대한 소용돌이 조직들로, 이것은 소용돌이 모델로서 열린 공간 속에서 움직이며 이를 통해 닫힌 공간을 구분해 직선적 또는 고체적 사물들을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으로서 사물들이 배분된다. 바로 이것이 매끈한 공간(백터적, 투영적, 위상학적 공간)과 홈 패인 공간(계량적 공간)의 차이로서 전자의 경우는 “공간을 전혀 헤아리지 않고 점유”되는 반면, 후자에서는 “공간이 점유되기 위해 헤아려진다.” (447, 692-693)
4) 마지막으로 이 모델은 정리적(théorématique)이라기보다는 문제 설정적(problématique)이다. 도형은 절단, 삭제, 부가, 투영 등 도형에 가해지는 변용들(affections)이라는 관점(en fonction)에서만 고찰된다. (447, 693)
정리(定理, le théorème) 가 이성들의 질서(l'ordre des raisons, 이유들)를 따르는데 반해 문제(le problème)[문제적]는 변용태(affectif)의 차원에 속하는 것으로서 과학 자체의 다양한 변신이나 발생, 창조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 마르셀(Gabriel Marcel)의 의견과는 정반대로 문제는 “장애물”이 아니라 장애물의 극복, 앞으로 던짐(pro-jection, 투사), 다시 말해 하나의 전쟁기계이다. 왕립과학은 과학을 포함하는 이러한 “문제-요소”의 범위을 가능하면 대폭 축고해 “정리-요소”에 종속시키려 하는 등 이러한 아르키메데스적인 과학의 모든 움직임을 제한하려고 했다 (448, 693)
이러한 아르키메데스적 과학 또는 과학관은 본질적으로 전쟁기계와 결합되어 있다. 문제(problemata, 던져진 것)는 전쟁기계 자체로서 이것은 경사면이나 극한으로 이행, 소용돌이와 투사와 분리될 수 없다. 전쟁기계는 국가 장치가 복제하는 지식과는 형식을 달리하는 추상적 지식으로 투사된다. 또는 유목과학은 삐딱한 방식으로 전개되며, 따라서 왕립과학이나 제국과학는 분명하게 구분된다. 더욱이 이 유목과학은 국가과학의 요구와 조건에 의해 끊임없이 “봉쇄되고” 제지되고 억압당해왔다. 로마제국에 제압되어버린 아르키메데스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448, 694) [일반적으로 아르키메데스 전통의 과학은 로마의 실용과학으로 전개되었다고 하는데, 그 실용이 전쟁에 쓰임새인가? 들뢰즈는 달리 본다. 즉 아르키메데스는 유목과학인데 로마의 국가 과학(제국과학)이 유목과학을 제압했다고 한다. (50MKA)]
유목과학의 “[과]학자들(savants)”는 마치 십자 포화에 노출되어 있는 것 같다. 즉 이들을 키우고 발상을 부여해 주는 전쟁 기계와 이성의 질서를 강요하는 국가 사이에 끼여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아주 애매모호한 성격을 지닌 엔지니어(l’ingénieur)(특히 군사 엔지니어)라는 인물이다. ...진지 기술(l’art des camps)과 “포진법”(castramétration)에 대해서도 똑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기계의 이러한 차원을 전유할 때마다 국가는 반드시 그것을 시민적인 계량적 규칙에 종속시켜 이 유목과학의 적용 법위를 엄격하게 제한해 이를 관리하고 국지화시켜, 사회 영역 전체에까지 영향력을 확대되지 않도록 한다(이러한 측면에서 보방은 아르키메데스의 반복으로서 그와 유사한 패배를 감수해야 했다). (448-449, 694-695)
또 화법(畵法)[도형] 기하학(la géométrie descriptive)과 사영기학(la géométrie projective)도 마찬가지인데, 왕립 과학은 이 두 기하학을 좀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해석기하학에 종속된 단순한 실용적 부속물로 바꾸어 버리려고 했다(몽쥬나 퐁슬레가 “[과]학자”로서 애매모호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449, 695-696)
그리고 미적분학에 대해서도 똑같이 이야기 할 수 있다. (449, 696)
마지막으로 수력학 모델에 대해서도 똑같이 이야기 할 수 있다. (449, 696)
하지만 국가는 유목과학에서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수력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국가는 수력을 수로나 도관(導管), 제방 등에 종속시켜 소용돌이의 발생을 막고 물의 움직임을 어느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으로 유도해 공간 자체에 홈을 파고, 계량하며 또한 액체가 고체에 종속되고 흐름이 평행한 층류(層流)를 이루며 흐를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유목 과학과 전쟁 기계의 수력학 모델에서 물은 소용돌이가 되어 매끈한 공간을 가로질러 퍼져 나가면서 공간을 채우며 모든 지점에 동시에 작용하는 운동을 창출한다. 이와 반대로 국가 과학에서는 특정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국지적 운동 속에서 공간에 의해 운동이 장악된다. (449-450, 696-697)
데모크리토스(Démocrite Δημόκριτος, 전460-전370), 메나이코스(Ménechme, Μέναιχμος, 전380경-320경), 아르키메데스, 보방(Vauban, 1633-1707), 데자르그(Girard Desargues, 1591-1661), 베르누이, 몽주(Monge, 1746–1818), 카르노, 퐁슬레(Poncelet, 1788-1867), 페로네(Jean-Rodolphe Perronet, 1708-1794), ... (450, 697)
매끈한 공간인 바다는 전쟁기계에게 고유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 비릴리오가 잘 보여주고 있듯이 현존함대(fleet in being) 문제, 즉 어떠한 점에서라도 돌출해 소용돌이 운동을 하면서 열린 공간을 차지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곳은 바로 바다이기 때문이다. (450, 697)
왜냐하면 그러한 연구들에 따르면 리듬(le rythme)은 파도의 운동(le mouvement des flots)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그저 “형식” 일반, 좀 더 구체적으로는 “박자에 맞고(mesuré) 율동적인(cadencé)” 운동 형식만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리듬과 박자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450 698)
전쟁 기계의 유목 과학과 국가의 왕립 과학이라는 두 과학간의 이러한 대립, 아니 이 두 극한 사이를 흐르는 긴장 관계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수준으로 표출되어왔다. 케리앙(Anne Querrien, 1945-)의 저서는 이러한 계기 중 두 시기의 것을, 12세기의 고딕 대성당 건축과 18-19세기의 교량 건축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 (450, 698)
로마네스크 양식이 부분적으로는 여전히 홈이 패인 공간 속에 머물러(둥근 천장은 평행하게 세우는 기둥들의 병렬에 의존하고 있다) 있는 반면 고딕양식은 마치 매끈한 공간을 정복한 듯한 느낌이 든다. (451, 699)
전설에 따르면 베르나르두스(Bernard de Clairvaux)는 “너무 힘들다[어렵다]”는 이유로 서둘러 포기하고, 소수자 과학, 즉 수의 논리(marthéologie)라기보다는 수의 도형(mathégraphie)이라고 할 수 있는 사영적 또는 화법적[그림] 아르키메데스의 조작적 기하학의 특성을 이용할 것을 주장했다고 한다. 베르나르두스의 동료로서 석공-수도사였던 가랭 드 트루아(Garin de Troyes)는 운동에 관한 일종의 조작적 이론에 기대 이 이론의 “비의를 전수 받은 사람”은 공간 위에 우뚝 솟은 입체를 그려내고 돌을 잘라내어 “이러한 선이 수를 산출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451, 699) [이 흥미있는 이야기에서 프랑마송이 실무자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로 경주 불국사 석굴암의 뚜껑 덮는 이야기가 있다. 설굴암의 건립에 유목적 과학이 동원된 것으로 상상해보아도 될까? (50MKF)]
이러한 아르키메데스적인 기하학의 전체적인 흐름은 17세기의 비범한 수학자 데자르그(Desargues, 1591-1661)에게서 최고도로 표현되는 동시에 일시적으로 답보한다. 그와 비슷한 부류의 수학자들에게서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데자르그가 쓴 저서는 얼마 되지 않는다. .. 그림자론(leçon des ténèbres), 채석 계획 초안(Brouillon-project d'exemple d'une manière universelle touchant la practique du traict à preuves pour la coupe des pierres, 1640(4쪽+도표5쪽), 원뿔과 평면이 만나는 경우를 다루려는 시도에서 나온 초안(Brouillon-project d'une atteinte aux evenemens des rencontres du cone avec un plan, 1639)(30쪽) .. 등 사건으로서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고찰하기 위한 많은 소묘, 개요, 초안, 계획 등을 남겼다. 그런데 데자르그는 파리 고등법원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고 왕의 비서관들로부터도 공격을 받았으며, 그의 원근법의 실천은 금지되었다. (451-452, 700)
18세기 교량 건축에서도 이와 똑같은 이야기가 반향되고 있다는 케리앙의 이야기는 과연 옳은 것일까? 당연히 당시에는 이미 국가의 규범에 따라 분업이 확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조건은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452, 701)
교량도로학교(Ecole des ponts et chaussees)의 역사 전체가 아주 잘 보여주듯이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이 평민 “단체”는 광산학교나 공동토목학교,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종속되면서 활동 또한 점점 더 정상화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 이리하여 우리는 집단적 몸체(un corps collectif)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452-453, 701-702)
가령 옛날부터 문제시되어온 로비(lobby)는 윤곽이 유동적으로 변하는 그룹으로서 한편으로는 “영향을 미치려는” 국가와 다른 한편으로는 목적이 무엇이건 어째든 움직이고 싶어하는 전쟁기계 사이에서 극히 애매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453, 702)
몸체(un corps)는 유기체(un organisme)로 환원되지 않듯이, 몸체의 정신(=단결심 l’esprit de corps, [정령])이 유기체의 영혼(l’âme d’un organisme)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 정신이 [영혼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영혼이 중력적(gravifique), 즉 무게 중심을 갖는 반면 정신은 휘발성(volatile)이다. .. 이븐 할둔(Ibn Khaldoun)은 유목민의 전쟁기계를 가족 내지 가계 더하기(plus) 단결심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쟁기계는 국가와는 전혀 다른 관계를 가족과 맺고 있다. (453, 702-703) [사회체(단체)에는 정신을 유기체에는 영혼이란 용어를 쓰면서, 둘 사이가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시대정신 또는 군대정신은 영혼의 집합이 아니다. 볼테르와 루소만큼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프랑스 혁명에서는 절대왕정의 정신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 영혼의 문제가 아닐까? 물론 혁명의 과정은 수렴에서 국가라는 새로운 정신에 영혼을 포획하려고 하지만 말이다. (50MKF)] [전통적으로 혼(魂)은 하늘로 가서 구름처럼 자유로이 떠다닌다고 하고 백(魄)은 땅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쓰인 것이라 한다. 혼은 정신(정령)에 백은 영혼에 닮았다.(50UKB)]
국가라는 유기체 속에서 한 가족의 위치를 결정하는 것은 해당 가족의 공적인 명성이 아니라, 이와 반대로 전쟁 단체에서 명성들(les illustrations)을 결정하는 것은 연대를 창출할 수 있는 비밀스런 역량 또는 덕(la puissance ou vertu secrete)이며,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가계의 이동성(la mouvance)이다. (453, 703)
후설(Husserl)은 모호한, 즉 유랑적이고 유목적인 형태의 본질을 대상으로 하는 원(原)-기하학(proto-géometrie)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 본질은 감각적 사물과 구별될 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즉 왕립적 내지는 제국적인 본질과도 구별된다. ... 원(le cercle)은 이상적이고 유기적으로 고정된 본질이지만, 둥긂은 원과 둥근 것(꽃병, 바퀴, 태양...)과 구별되는 모호하고 유동적인 본질인 것이다. 정리적 형태(une figure théorématique, 도형)는 고정된 본질이지만 이러한 형태의 변형, 왜곡, 절삭 또는 부가 등의 모든 변화는 “렌즈” 모양(form, 형태), “우산” 모양, “톱니” 모양 등 모호하지만 엄밀한 문제 설정적인 형태를 형성하고 있다. 모호한 본질은 사물에서 사물성(la choséité) 이상의 규정, 마치 물체 정신(단결심)까지도 내포하고 있는 듯한 물체성(la corporéité)이라는 규정을 추출해낸다. (454-455, 704-705)
이러한 [왕립과학의] 우월성에 얽매여 있는 한 유목과학은 전(前)-과학적 또는 의사-과학적이고 부(副)-과학적 단계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과학과 기술, 과학과 실천 간의 관계 역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유목과학은 단순한 기술이나 실천이 아니라 왕립과학과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들 관계의 문제가 제기되고 해결되는 과학의 장이기 때문이다. .. 따라서 유목과학이 받아왔던 억압과 동시에 그것이 왕립과학과 “유지해온” 상호작용을 이해하려면 유목과학에 특유한 성격을 규정해야 할 것이다. (455, 706)
유목과학은 왕립과학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노동과 관계를 맺어왔다. 유목과학의 분업 정도가 덜 철저하기 때문이 아니라 분업 방법이 왕립과학과 다르기 때문이다. “동업조합(compagnonages)”, 즉 석공, 목수, 대장장이들이 형성하는 것과 같은 유목적이고 이동적인 단체와 국가의 관계가 항상 문제를 안고 있었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이야기한바와 같다. 노동력을 고정시키고 정주시키는 것, 수로(des canaux, 운하)와 유로(流路, des conduits, 도관 導管)를 지정해 노동의 흐름을 규제하고 유기체의 형태로 협력단체들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강제로 인력을 동원하는 것 – 현장에서 소집된 부역(賦役, corvée)에 의존하거나 아니면 빈민들 사이에서 모집한 인력(구빈원, ateliers de charité)에 의지할 수도 있다. - 이것이야말로 패거리들의 유랑성(un bagabondage de bande)과 몸체의 유목(un nomadisme de corps)을 동시에 타파하기를 염원하는 국가의 주요 사업 중의 하나였다. (456, 706-707)
다시 고딕 건축의 사례로 되돌아가보자[698쪽참조] .. 왕립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목과학에서도 “판”(un plan, 도면)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동업 조합원들이 직접 땅 위에 그린 고딕 건축의 도면(un plan)은 공사 현장에서 벗어나 건축가가 종이 위에 그리는 계량적 도면과 대립한다. (456, 707)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 사색” 실질적 건축가는 지붕부터 그리는 것이 아니라 주춧돌부터 그린다고 한다.]
국가가 끊임없이 유목적인 소수자 과학을 억압하고, 모호한 본질과 특징을 다루는 조작적 기하학에 대립해야 하는 것은 유목 과학들의 내용이 부정확하거나 불완전하거나 마법적이고 비의적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국가의 표준(des normes)과 대립하는 노동 분업(une division du travail)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456, 707-708)
따라서 예술(art)인 동시에 기술(technique)로도 간주되는 이 유목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분업은 완전한 의미로 존재하고 있으나 그것은 질료-형식이 이라는 이원성(설령 양자가 일대일 대응관계를 이루더라도 마찬가지다)을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유목 과학의 분업은 질료의 독자성과 표현의 특질들 간의 연결접속들(connexions)을 따르고(suivre) 있으며 자연적이건 강제적인 것이건 이러한 연결접속들에 의존해 있다. 이것은 국가와는 다른 노동조직화이며 노동을 통한 사회적 장의 상이한 조직화이기도 하다. (457, 708-709)
티마이오스편에서의 플라톤 식으로 두 과학 모델을 대립시켜야만 할 것이다. 하나는 공분(共分, Compars) 모델로, 다른 하나는 이분(離分, Dispars) 모델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공분(le compars)>은 왕립 과학이 채택한 법적 내지는 합법적인 모델이나 법칙의 추구는 설령 상수가 변수들 간의 관계(방정식)에 불과하더라도 상수를 끌어내는 데 있다. 변수들 간의 불변의 형식, 불변항의 가변적인 질료, 이것이 바로 “질료-형상” 도식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457-458, 709) [불변의 이데아에 맞게 설득되는 측면만이 공간(chora)이 질료의 일부분이다. 거푸집 안에서 만들어지는 형태들.. ]
이 모든 측면에서 볼 때 로고스와 노모스, 법과 노모스는 대립하는 셈이며, 따라서 니체는 법은 “아직 지나치게 도덕적인 뒷맛”이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합법적인 모델이 여러 힘들, 힘들의 작용을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공분(le compars)의 모델에 대응하는 등질적 공간을 생각해 보면 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등질적 공간은 결코 매끈한 공간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458, 710) [등질적인 이데아는 잘려진 것으로 홈패인 공간에서 성립한다.]
이 [만유]인력 형식이야말로 모든 과학의 내부성의 형식인 것이다. (459, 711)
그러나 노모스 또는 이분(le dispars)은 이와 전혀 다르다. .. 오히려 이들은 항상 보충적인 사건 또는 “가변적인 변용태(affects variable)”를 나타낸다. 과학이 새로 어떤 하나의 장(un champ)을 발견할 때마다 – 이 장이라는 개념이 형식이나 대상이라는 관념보다 훨씬 중요할 경우 – 이것은 인력의 장이나 중력 모델과 모순되지는 않더라도 이 장이나 모델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장은 “그 이상의 무엇인가”, 즉 잉여(surcroît, 과잉)를 적극적으로 나타내고 이러한 잉여 또는 간격(écart) 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는다. 화학이 결정적인 진보를 이룩하게 된 것은 중량에 전혀 다른 유형의 결합, 가령 전기적인 결합을 추가함으로써 화학식의 성질을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459, 711)
매끈한 공간이 바로 이러한 최소 편이(le plus petit écart)의 공간이다. 따라서 이 공간이 갖게 되는 등질성은 무한 근방에 있는 점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며 이러한 근방들의 접점은 규정된 모든 길(de toute voie)과는 무관하다. 이것은 유클리드적인 홈이 패인 공간처럼 시각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촉각적인, 즉 손에 의한 접촉 공간, 미세한 접촉행위의 공간이다. 매끈한 공간은 수로도 운하도 갖지 않은 하나의 장, 비-등질적인 공간으로서 아주 특수한 유형의 다양체, 비계량적이며 중심이 없는 리좀적 다양체, 즉 공간을 “헤아리지”않고 차지하는 다양체, “탐색하려면” “계속 앞으로 나가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다양체와 결합이다. .. 가령 [시각의] 유클리트적 공간과 대립하는 음 또는 색체의 체계조차 이러한 유형의 다양체에 속해 있다. (459-460, 712)
빠름과 느림, “신속함(Celeritas)”과 “중후함(Gravitas)”을 대립시킬 때는 이러한 대립을 양적인 것으로 파악하거나 신화적 구조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비록 뒤메질이 다름 아니라 국가 장치 그리고 이 장치의 태생적인 “중후함”과 관련해 바로 이러한 대립의 신화학적 중요성을 확인해 주었음에도 말이다). 이것은 오히려 질적인 동시에 과학적인 대립이다. (460, 712)
두 모델 간의 혼합이나 조합은 다양하게 존재하나 미셀 세르는 양자택일이라는 관점에서 이러한 관계를 가장 훌륭하게 정식화한 바 있다. 즉 물리학은 언제나 “두 가지 과학으로 즉 도로와 길에 대한 일반이론과 물결에 관한 포괄적 이론으로 환원된다.”
과학의 두 가지 유형, 즉 과학적 절차의 두 가지 유형도 구분해야 한다. - 한쪽을 “재생산하기(reproduire)” 절차라고 한다면 다른 한쪽은 “따라가기(suivre)” 절차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재생산, 즉 조작을 되풀이하고 반복하는 절차이고 후자는 이동 절차로서, 이동적(itinerantes), 순회적(ambulantes) 과학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460-461, 713-714)
그리고 이 과학적인 절차에 따라 “대지”의 의미 또한 철저하게 달라진다. 합법적 모델에 따르면 사람은 일련의 불변적인 관계의 총체에 따라 어떤 영역의 어느 한 가지 관점에 끊임없이 재영토화되는 반면, 이동적 모델에서는 바로 탈영토화의 운동이 영토 자체를 구성하고 확대한다. (461, 714)
“먼저 너의 최초의 식물이 있는 곳으로 가서 빗물이 어떤 형태로 흘러가는지를 주의 깊게 관찰해 보라. 그러면 이미 비가 식물의 종자를 먼 곳까지 실어 날랐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빗물이 파 놓은 도랑을 따라가 보아라. ... 네 영토를 확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갖가지 독자성들이 이 일련의 “우발적 사건들(accidents)”(문제들)로 배분되는 벡터들의 장 속에서 하나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을 본질로 하는 이동적․순회적 과학들이 존재한다. (461, 714-715)
일반적으로 매끈한 공간, 벡터 장, 비계량적 다양체는 항상 “공분”으로 번역 가능하며, 또 반드시 번역되어야 한다. 이처럼 번역이라는 기본 조작을 통해 반복해서 충분한 차원수를 가진 유클리드 공간의 접선이 매끈한 공간의 각 점에 접하도록 할 수 있으며, 두 벡터간의 평행성을 재도입해 “길찾기를 통한 탐색”을 따라가는 대신 이 비계량적 다양체를 재생산을 가능하게 해주는 등질적 홈이 패인 공간에 꼭 들어맞는 것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462, 715)
그렇다고 해서 순회적인[유목] 과학들이 왕립 과학보다 비합리적인 절차나 신비, 마법들에 잔뜩 물들어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462, 716)
이 두 과학의 관계는 벩송 철학에서의 직관과 지성의 관계와 흡사한데, 벩송에 따르면 오직 지성만이 직관이 제기하는 문제를 형식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학적 수단을 소유하고 있고, 직관은 그러한 문제의 해결을 물질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질적인 활동성에 맡기는 것으로 만족한다. (463-464, 718) [이 지성관은 들뢰즈의 “벩송주의”에서 설명되어 있다. / 그런데 나로서는 직관은 흐름(따라가기)의 내용의 연속으로써 본능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12.04-2. 사유학 – noologie]
문제2 - 사유를 국가 모델로부터 분리해낼 수 있는 수단이 있는가?
명제4 - 결국 전쟁 기계의 외부성은 사유학(noologie)에 의해서도 입증된다. (464, 718)
사유(pensée)의 내용들은 종종 너무 체제 순응적이라는 비판을 받곤 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사유의 형식 자체(la forme elle-même)이다. 사유는 그 자체로 이미 국가 장치로부터 빌려온 모델에 순응하고 있기 때문에, 바로 이 모델이 사유의 목적, 길, 도관, 수로, 기관 등 전체적인 오르가논(논리적 도구)을 지정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유를 포괄하는 하나의 사유 이미지가 존재한다. ... 국가-형식과 같은 것으로 “사유학(noologie)”이 고찰해야할 특별한 대상이다. (464, 718-719) [내가 상층에서 생각하는 것을 사고(思考)로 심층에서 느끼는 것을 사유(思惟)로 정했다. 여기서 사유학(noologie)은 사고학이다, 같은 누스 이지만 주지주의(플라톤주의자)의 회고적(추억) 입장에서는 누스가 “사고”이고 플로티노스의 내성적(생성, 기억)의 입장에서 보면 “사유”이다.]
그런데 이 사유의 이미지는 주권의 두 극에 상응하는 두 개의 머리를 갖고 있다. 먼저 참된 사유[사고]의 제국(un imperium). 이것은 마법적 포획, 장악 내지 속박(lien)에 의해 작동하며, 정초를 놓는다(뮈토스 muthos). 그리고 자유로운 정신들의 공화국. 이것은 맹약 내지 계약에 의해 진행되며, 입법 조직파 법률 조직을 만들어내며 근거를 정당화해준다(로고스 logos). 이 두 개의 머리는 고전적인 사유의 이미지에서 끊임없이 서로 간섭하고 있다. (464, 719) [벩송이 플라톤의 길은 신화의 길이고, 플로티노스의 길을 생성의 길, 또는 변증법의 길로 본 이유가 있다. 이 두 길은 방향이 달라서 하나가 다른 하나의 전복의 길이다.]
그러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행하려면 양자 “사이에” 전혀 다른 본성을 가진 사건이, 이러한 사유의 이미지 외부에 숨어 있다가 외부에서 발생하는 사건이 필요하다는 것은 전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사유의 이미지에만 국한시킨다면 진리의 제국과 정신의 공화국이라는 말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유를 내부성의 원리 내지 형식으로써 또는 지층으로써 구성하기 위한 조건이다. (464-465, 719-720)
이로부터 사유[사고]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유 혼자 힘으로는 결코 가져본 적이 없는 중후함, 그리고 국가를 포함해 모든 것이 사유 자체의 효력 내지는 승인에 의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주는 중심(une gravité)이 그것이다. (465, 720)
오직 사유(사고)만이 국가는 당연히 보편적인 것이라는 허구(la fiction)를, 국가를 합법적인 보편성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려 줄 수 있는 허구를 고안해 낼 수 있다. (720)
권리상 근대 국가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공동체 조직”으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이 공동체는 이미 개별성으로는 내부적(intérieure) 또는 정신적(morale) 개별성(민족정신, esprit d’un peuple)만을 가질 뿐이며, 동시에 이 공동체 조직을 통해 보편적 조화(절대정신, esprit absolu)에 공헌하기 때문이다.(465, 720)
이처럼 국가와 이성 간에는 기묘한 교환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교환은 동시에 분석적 명제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실현 가능한 이성은 마치 실제의 국가가 이성의 생성이듯이 권리상의 국가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소위 근대 철학과 근대 국가 또는 이성적 국가에서는 모든 것이 입법자와 주체(=신민)를 중심으로 운용된다. (465, 720-721)
철학은 토대를 놓는 역할을 자임한 이래 항상 기존 권력을 찬양하고, 국가의 여러 기구의 원리를 국가 권력의 여러 기관들 속으로 전사해왔다[베꼈다]. 공통감(sens commun), 즉 <코기토>를 중심으로 한 모든 능력들의 통일은 절대화된 국가의 합의(consensus)인 것이다. (466, 721)
고대의 제국적 국가에서는 시인이 사유의 이미지의 조련사 역할을 담당했으며 근대 국가에서는 사회학자들이 철학자의 역할을 대체해왔다(뒤르켐과 그의 제자들이 공화국에 세속적인 사유의 모델을 부여하려고 했던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심지어는 오늘날까지도 정신분석이 다시 마법적 회귀 속에서 <법>의 사유로서의 보편적 사유(Cogitatio universalis)의 역할을 차지하려고 하고 있다. (466, 722) [고대에 유리피데스에 대해 소크라테스의 역할은 니체가 지적한 바 있다. 뒤르켐은 신칸트주의 인식론으로 주지주의자이며 이에 대항하는 이는 레비-브륄이다. 정신분석학의 라깡에 대항한 것은 분열분석의 가타리/들뢰즈이다. (50UKC)]
그러나 사유학은 다양한 “반-사유학”에 봉착한다. 그것은 공적인 교수에 맞선 “사적 사유자”들의 격렬한 사유 행위로서 역사적으로는 단속적으로 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역사를 관통해서 동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키에르케고르, 니체(Nietzsche, 1844-1900) 또는 셰스토프(Chestov, 1866-1938) 등이 그들이다. (467, 722-723)
아마 니체의 교육자로서 쇼펜하우어(Schopenhauer als Erzieher, 1874)야말로 사유의 이미지와 이 이미지가 국가와 맺고 있는 관계를 겨냥한 전무후무한 탁월한 비판일 것이다. 그러나 “사적 사유자(penseur privé)”라는 표현은 바깥의 사유(une pensée du dehors)가 문제인데도 내부성을 강조하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만족할 만한 표현이라고 할 수 없다. 사유를 바깥과 바깥의 갖가지 힘들과 직접적으로 관련시키는 것, 즉 사유를 전쟁 기계로 만드는 것은 하나의 기묘한 계략으로, 니체를 통해 이 계략에서 사용되는 엄밀한 절차를 연구할 수 있다(가령 잠언aphorisme은 격언maxime과 아주 다르다. 격언은 문자lettres의 공화국에서 국가의 조직적 행위 또는 주권적 판결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 잠언은 항상 외부의 새로운 힘으로부터, 즉 이 잠언을 정복하거나 복종시키고 또는 이용해야 하는 최신의 힘으로부터, 이 잠언을 정복하거나 복종시키고 또는 이용해야 하는 최신의 힘으로부터 의미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전쟁 기계의 문제는 설령 수단이 궁핍하더라도 어떻게 중계하는가 하는 문제(celui du relais)지 모델이나 기념물을 어떻게 건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중계자들(relayeurs)인 순회적인 인민(un peuple ambulant)이지 모델 도시(un cité modèle)가 아니다. (468, 724)
“자연은 철학자를 화살처럼 인류에게 쏘아 보냈다. 목표는 정하지 않고 단지 화살이 어딘가 꽂히기만 기원하며. 그러나 이 때문에 자연은 수도 없이 실패를 거듭하고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 예술가와 철학자의 존재는 자연의 목적의 지혜를 보여주는 유력한 증거지만 자연의 수단과 관련해서는 자연의 합목적성에 대한 반대 증거이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감동시켜야 했지만 항상 소수의 사람들만 감동시킨다. 그리고 이 소수의 사람들조차 예술가나 철학자들이 활을 당기는 힘에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 (468, 724)
우리는 여기서 특히 사유가 파토스(반-로고스 그리고 반-뮈토스) 속에 들어 있다는 의미에서 파토스적인 두 개의 텍스트를 염두에 두고 있다. 하나는 아르토(Artaud, 1896-1948)의 텍스트로, 자크 리비에르(Jacques Rivière, 1886-1925)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사유의 중심의 붕괴에서 출발해 기능하기 시작하되 형태를 취할 수 없는 것에 의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고 재료로부터 단지 다양한 표현의 특질들만을 추출할 수 있을 뿐이며 보편화할 수 없는 독자성과 내면화할 수 없는 상황으로 기능하면서 순수하게 외부성의 환경으로서 주변적으로만 전개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말하면서 사유를 점진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Über die allmähliche Verfertigung der Gedanken beim Reden, 1806)」라는 클라이스트(Kleist, 1777-1811)의 텍스트로서, 이 글에서 클라이스트는 개념은 통제 수단이라고, 즉 말과 언어뿐만 아니라 변용태, 상황, 심지어 우연을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중심적인 내부성을 갖고 있다고 비난한다. (468, 725) [내부성 = 경험적 선험성
통제되기를 거부하는 바로 이러한 감정(Gemüt)이 전쟁기계를 형성한다. 이것은 내부의 형식 속에서 수집되는 대신 외부의 다양한 힘들과 싸우고, 이미지를 형성하는 대신 중계에 의해 작용하는 사유, 주체-사유가 아니라 사건-사유, 즉 “이것임”, 본질 또는 정리-사유가 아니라 문제-사유, 관청으로 자임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에게 호소하는 사유인 것이다. (725-726) [레드리스트 블랙리스트에 들어간 것에 저항하는 사유가 전쟁기계이며, 여러 촛불이 광화문에서 효자동으로 또는 삼청동으로 흐르는 것이 전쟁기계이다. 북악산 대 광화문, 폴리스 대 노모스, 일제부역자들 대 자주-자유 인민, 일베 대 촛불의 대비에서 정당들은 인민에게 호소하고, 요강공주는 어벙이연합에 구걸한다. (50LMH)]
렌츠(Lenz 1751-1792)와 클라이스트는 위대한 천재이자 모든 문학자 중 진정한 국가의 인간이었던 괴테와 충돌했다. 그러나 아직 이것이 최악의 사태는 아니었다. 최악의 사태는 클라이스트나 아르토의 문장 자체가 결국 기념비적인 것으로 자리잡아 복제를 부추기는 모델, 다른 모델보다 훨씬더 교활한 모델이 되어 이 모델에 필적한다고 주장하는 온갖 인위적인 말더듬기와 수도 없는 단순 모방이 쏟어져 나오게 된 것이다. (726-727)
사유[사고]의 고전적 이미 그리고 이 이미지가 유도하는 정신적 공간의 홈파기 방식은 보편성을 주장한다. 실제로 그것은 두 개의 “보편개념”을 이용해 홈을 파는데, 존재의 궁극적인 근거이자 모든 것을 포괄하는 지평으로서의 “전체(le Tout)”와 존재를 우리를 위한(pour-nous) 존재로 전환시켜주는 원리로서의 “주체(le Sujet)”가 그것이다. 제국과 공화국이 그것이다. (469, 727)
최근 화이트는 부족으로서 인종(켈트 족 또는 스스로를 켈트 족이이라고 여기는 사람들)과 환영으로서 공간(동양이여, 동양이여, 고비사막이여...) 간의 이러한 비대칭적 상보성을 강조한 바 있다. 화이트는 켈트와 동양의 결혼이라는 이 기묘한 조합이 영문학을 휩쓴 동시에 미국 문학을 만들어낸 본래적인 의미의 유목적 사유를 어떻게 고취시켰는지를 보여준다. [셀트족과 중국의 유사점: 농본(정주적), 인민주체, 공화사상, 인도주의적, 그리고 국가개념이 모호하다. (50UKI)]
§12.05. 첫째 측면: 전쟁기계와 노마드 공간 729 - Premier aspect: machine de guerre et espace nomade. 471
공리2 - 전쟁 기계는 유목민들의 발명품이다(국가 장치의 외부에 존재하며, 군사 제도와 구별되는 한에서). 이러한 의미에서 유목적인 전쟁 기계는 공간-지리적 측면, 산술적 또는 대수적 측면, 변용태적 측면의 세 가지 측면을 가진다.
명제5 - 유목민의 실존[현존]은 필연적으로 전쟁 기계의 조건들을 공간 속에서 실현시킨다. (471, 729)
유목민은 영토를 갖고 있으며 관습적인 궤적인 따라 이동한다.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이동하는 습성을 갖고 있으므로 물을 얻을 수 있는 지점, 머물 수 있는 지점, 모여야 할 지점 등의 지점을 모르지 않는다. ... 첫째로 .. 이 모든 지점은 중계점이며 중계점으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471, 729) [지난 해(‘17) 촛불 광장은 중계참인 셈이다.]
유목민의 생활은 일종의 간주곡인 것이다. 거주라는 요소도 이들이 따라 가는 궤적과 관련해 구상되는 것으로서 궤적을 따라 끊임없이 움직인다. 유목민은 이주민과는 전혀 다르다. (471, 729)
물론 유목민과 이주민은 다양한 방식으로 뒤섞이며 공통의 집합을 형성할 수도 있으나, 각각의 원인과 조건은 분명하게 구분된다(가령 메디나에 있는 마호멧에 합류하려는 사람들은 유목민, 즉 베두윈 족임을 맹세할 것인가 아니면 헤지라, 즉 이주민임을 맹세할 것인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471, 730)
둘째로 유목민의 궤적은 발자취나 관습적인 길을 따르더라도 정주민들의 도로의 기능을, 즉 인간들에게 닫힌 공간을 분배하고(distribuer) 부분적인 공간을 각자의 몫으로 지정한 다음 이들 부분들 간의 교통을 규제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반대의 기능을 한다. 즉 인간들(또는 짐승들)을 열린 공간 속에, 무규정적이며 교통하지 않는 공간 속에 분배한다(distribuer). 노모스는 지금은 결국 법을 의미하지만 본래는 분배(distribution)를, 분배의 양태(mode de distribution)를 가리키는 말이다.(471-472, 730)
노모스는 퍼지 집합의 고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노모스는 오지나 산록 또는 도시 주변으로 모호하게 퍼져 나가는 것으로서 법, 즉 폴리스와 대립한다(“노모스냐 폴리스냐”). (472, 730-731)
셋째로 벽, 울타리, 담 그리고 이 담들을 연결하는 도로들에 의해 홈이 파이는 정주민적 공간과 달리, 유목민적 공간은 매끈한 공간으로서 경로와 함께 지워지고 이동해나가는 “특정선(traits, 줄치기)”에 의해서만 구분된다. (472, 731) [정주공간에서 가로지르기와 건너뛰기가 바다와 사막에서 즉 매끈한 공간에서 흘러갈 수 있다.]
따라서 유목민을 운동에 의해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와 반대로 유목민은 오히려 옮겨다니지 않는다고 주장한 토인비가 근본적으로 옳다. 이주민은 거주지가 황폐해지거나 불모지가 되면 환경을 버리고 떠나는데 반해 유목민들은 떠나지 않으며 떠나기를 원하지 않는 자들로서, 숲이 점점 줄어들고 스탭이나 사막이 증가하면 나타나는 매끈한 공간 속에 있으면서도 이러한 도전에 대한 응답으로서 유목을 발명해낸다. (472, 731)
운동(le mouvement)은 외연적이며, 속도(la vitesse)는 내포적인 것이다. 운동은 “하나”로 간주되는 어떤 물체가 어느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경우 갖게 되는 상대적 성격을 가리키는 데 반해 속도는 어느 물체의 환원 불가능한 부분들(원자)이 돌연 어떠한 지점에서라도 출현할 수 있는 가능성과 함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매끈한 공간을 차지하거나 채우는 경우 물체가 갖게 되는 절대적 성격을 가리킨다. (473, 732)
요컨대 유목민만이 절대적 운동, 즉 속도를 갖고 있으며, 소용돌이 운동 내지 회전 운동은 본질적으로 전쟁기계에 속하는 것이다. (473, 732)
이러한 의미에서 실제로는 지점, 췌적, 땅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목민들은 이것들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하는 것이다. 유목민이 특히 “탈영토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들에게서 재영토화는 이주민의 경우에서처럼 탈영토화 이후에 이루어지거나 또는 정주민의 경우처럼 다른 어떤 것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473, 732)
위박(Hubac)이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유목은 전 지구적인 규모의 기후 변화(이것은 오히려 이주와 결합된다)보다는 “국지적 기후 변동”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매끈한 공간이 형성되어 사방을 침식해 들어가고 계속 증대하려고 하는 대지 위에는 반드시 유목민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목민이 사막에 의해 만들어지듯이 사막 또한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473, 733) [카프카의 “재칼과 아랍인”은 사막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재칼은 사막을 사막답게 만든다.]
유목민은 탈영토화의 벡터(vecteur)이다. 유목민을 끊임없이 행로나 방향을 바꾸는 일련의 국지적인 조작을 통해 사막에 사막을 스텝에 스텝을 참가시켜 나간다. 사막은 소위 고정점으로서의 오아시스만이 아니라 국지적인 우량에 따라 이동하는 일시적인 리좀적 식물군도 포함되어 있는데, 바로 이것이 유목민들의 행로 변경을 규정한다. 모래사막을 묘사하기 위한 이러한 용어들은 얼음 사막에서도 똑 같이 적용될 수 있다. (473-474, 733)
오히려 음향적인 공간으로 촉각적 또는 오히려 “촉지적(haptique)” 공간이다. 방향의 가변성, 다성성(polyvocité) 은 리좀 유형의 매끈한 공간의 본질적인 특징으로서 이 공간의 지도를 끊임없이 바꾸어 나간다. 유목민과 유목 공간은 국지화되지만 제한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정하거나 한정되는 것은 상대적인 포괄성(le global relatif)으로서의 홈이 패인 공간이다. (474, 734)
유목민은 오히려 국지적 절대성(un absolu local), 즉 국지적으로 표현되고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국지적 조작 체계를 통해 생산되는 절대성, 예를 들어 사막, 스텝, 빙원, 바다 같은 국지적 절대성 속에 존재한다. (734, 474)
§12.06. 종교 734 - La religion. 474
어떤 장소에 절대성(l’absolu)을 출현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종교의 일반적 성격이 아닌가(특히 이러한 출현의 성질과 그것을 재현하는 이미지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항상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종교의 성스러운 장소는 근본적으로 하나의 중심으로서 어둠침침한 노모스를 거절한다. 본질적으로 종교의 절대성이 포괄하는 지평선으로서 특수한 장소에 나타나는 이유 또한 이 포괄적인 것에 견고하고 안정적인 중심을 고정시키기 위해서이다. 일신교에서 사막, 스텝, 대양과 같은 매끈한 공간이 포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종종 지적되어왔다. 요컨대 종교는 절대성을 전환시키고 있는 것이다. (474-475, 734-735) [종교의 성소는 고정된 교환의 장소이다. 즉 다양한 질적 교환의 접점인 셈이다. 이 접점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부인하는 것이 종교의 노마드적 성격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종교는 설령 국가 장치라는 모델을 보편적인 것으로 고양시키고 절대적 제국(Imperium)을 구성할 수 있는 고유한 역량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 장치의 하나의 부품인 것이다. (475, 735)
유목민은 모호한, 말 그대로 방랑적(vagabond)인 “일신교”를 갖고 있는데, 이들은 그것에 만족하고 사방을 돌아다니는 불꽃(des feux ambulants)[도깨비불들]들과 함께 살아왔다. 하지만 그래도 유목민들은 절대성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기묘하게도(singulièrement) 무신론적이다. (475, 735) [마나(mana)와 같이 우주의 기운 같은 흐름 자체에서는 유일신의 종교성이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벩송이 이 기운으로부터 종교성이 있다고 한다. 그 극한은 자기 정체성의 확립일 것인데, 아직 인류가 지성의 차원이든 직관의 차원이든 부적절하고 부조리한 사태들에 대해 투사의 방식으로 하나의 통일성(단위)을 만들었을 것이라면, 종교는 유일 신앙이라는 측면이 개입할 것이다. 그러나 노마드에게는 스텝 또는 사막 전체가 하나의 단위이긴 하지만 동질적 단위가 아니다. 아마도 이 때문에 유일신의 반대로서, 또한 이질성의 다양체로서 간주된, 무신론이란 규정이 개입할 수 있을 것이다. / 꼴꽁들이 촛불흐름을 좌빨의 신앙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요강공주는 오랜 기획에 의한 음모에 말려들었다고 하는 것도 – 우주의 기운이 서린 요강도 신앙이란 점에 비추어서 - 흐름을 신앙의 영역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50LMH)]
발생기의 이슬람교도 헤지라, 즉 이주라는 주제를 유목보다 특권화 했으며, 몇몇 분열(가령 하리지 파kharidjisme[이슬람 최초의 엄격주의 교파] 운동 등)을 통해서야 비로소 아랍 유목민들이나 베르베르 유목민(les nomades berbères)들을 이슬람교로 개종시킬 수 있었다. (475, 736) [서로 다른 신들(또는 신앙)의 성격을 하나로 종합하는 것은 거의 변증법적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이중열망이 있고 또한 사유에서 이중성도 있으며, 거울효과도 있다는 것이 종합 또는 통일성으로 나갔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50LMH)]
그러나 이런 식으로 종교와 유목(religion-nomadisme)에 관한 두 가지 관점을 단순하게 대립시키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 세계에 보편적 또는 정신적 국가를 투사하려는 경향을 가진 일신교적인 종교도 가장 깊은 곳에서는 반드시 양가성(ambivalence)이나 이러한 경향을 초과하는 주변적 영역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475, 736)
일반적으로 종교는 특수한 탈영토화를 정신적 또는 심지어 물질적 재영토화를 통해 보상하려고 하는데, 성전의 경우 이것은 세계의 중심으로서의 성지를 정복하는 형태를 취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기계화되는 경우 종교는 놀라울 만한 크기의 전하를 가진 유목성, 즉 절대적 탈영통화를 가동시키고 해방시킨다. 그리고 그러한 종교는 그에 수반되는 유목민 이주민을 배가하는데, 이들은 결국 이처럼 막강한 유목민과 함께 있게 되면서 마침내 유목민이 되어버리며, 결국 국가-형식에 맞서 스스로 절대국가라는 꿈을 되돌려 받는다. 이러한 반전은 이 꿈과 마찬가지로 종교의 “본질”에 속한다. (476, 737) [판관권이 전제권으로 전환은 한 시대에 종교의 탈영토하를 국가의 재영토화로 전환이다.]
십자군의 역사는 극히 놀랄 만큼 다채로운 일련의 방향 전환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 왜냐하면 십자군의 이념 자체 속에 이미 단절되고 계속 변하는 방향들의 이러한 가변성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종교를 전쟁기계로 변화시키는 동시에 이를 이용해 이에 대응하는 유목을 불러오는 순간부터 즉시 이 모든 요소 내지 변수들이 십자군이라는 관념에 내재적으로 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476 737)
따라서 유목민을 섬멸시켜버린 정주화의 일반적 과정을 고찰하려면 반드시 이와 동시에 돌발적으로 나타나 정주민을 몰아내고 이주민(les migrants)의 수를 늘리는 국지적 유목화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특히 종교에 유리한 방향으로 일어난 국지적 유목화). (477, 738) [이주민이 수를 늘려서 아메리카를 먹은 것은 유일신앙자들의 노마드(종교의 박해를 받은 이민자들)에서 생긴 것이 아닌가? (50LMH)]
§12.07. 서양, 동양, 국가 738 - Orient, Occident et Etat 477 .
매끈한 공간 또는 유목 공간은 두 개의 홈이 패인 공간 사이에 있다. 중력의 수직선을 가진 숲의 공간과 격자와 일반화된 평행선을 가진 농업 공간 ... (477, 738) [중국이 흥미롭다. 농업공간을 둘러싼 산악(숲) 공간, 사막 공간, 바다 공간, 얼음 공간 ... 황허의 정(井)자 공간을 둘러싼 다른 공간들이 이 정자 공간의 생산 잉여를 차지하려 한 것이 아닐까? / 인구가 생산한 잉여 그것을 미국의 트럼프가 다시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미국은 소련의 스텝에서 잉여는 거의 없고, 사막의 잉여는 석유 자원인데 이미 장악했으니, 얼음자원은 나중이고 인구자원의 잉여를 노리는 것 같다. (50LMH)]
역사가들은 서양이 동양에 승리한 주요한 이유로서 통상 아래와 같은 특징을 거론하는데 일반적으로 여기서는 동양이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1]개간(défrichement)[서양]이 아니라 숲의 벌채(déboisement)[동양], 이 때문에 목재를 획득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다. [2]검불과 들판의 경작이 아니라 “논과 밭” 유형의 경작[논농사와 보리(밀)농사]. [3]목축은 대부분 정주민의 관리[조정]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에 정주민이 동물노동과 육식영양으로부터 결여되어 있다. [4]도시와 농촌 간의 교통량이 적었기 때문에 상업도 훨씬 덜 유연할 수밖에 없었다. (747-748, 739) [이 네 가지는 매우 흥미롭다. 동서양의 차이를 자연과 생활환경의 조건에서 문화적 차이를 보여준다. 동양(우리와 중국)은 노년기 지형인데 비해, 유럽(동유럽)은 장년기 지형이다. 논농사와 밭, 밀농사와 과수원(전원), 가축화와 목장화, 농업과 장인(바구니, 도자기)과 상업과 세공인(대장장이), 옥과 자기 공예 대 금속과 광물(다이아몬드) 등의 차이가 문화적 차이를 생산하는 것이 아닌가. / 공산사회 또는 평등 사회를 구현하는 방식도 달아야 한다. 서양의 공업에 비해 동양에서는 농업이 더 중요하다. 좌파의 평등 구현은 토대의 공산화 즉 토지의 공산화가 먼저 일 것이다. (50LMI)]
헤겔의 정치 철학에 그래도 한 가지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모든 국가는 내부에 현존의 본질적인 계기를 갖고 있다”는 명제일 것이다. (478, 739-740)
동양에서는 이러한 성분들이 서양에서보다 훨씬 더 분리되고 분절되어 있어 이 모든 성분들을 한데 보유하려면 거대한 부동의 형식이 필요했다. 아시아건 아프리카건 이러한 “전제적 구성체들”은 끊임없이 반란(révoltes, 봉기)이나 분리 운동, 왕조 교체(changements dynastiques)로 인해 흔들려 왔으나 형식 자체의 부동성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서양에서는 성분들이 서로 혼합되어 있었기 때문에(l’intrication des composantes) 혁명을 통한 국가-형식의 변형이 가능했다. 혁명이란 관념 자체가 애매한 것은 사실이다. 혁명이 국가의 변형과 관련되는 한 그것은 서양적 관념이지만, 국가의 파괴 폐지에 관한 한 그것은 동양적 관념이기 때문이다. (478, 740)
동양의 국가는 유목적인 전쟁기계와 정면으로 대치(confrontation directe)하고 있다. 이 전쟁기계[황건적]가 갑자기 제국으로 통합의 길을 밟아 반란과 왕조의 교체를 유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목민으로서 국가의 폐지라는 꿈을 꿀 수 있게 해주고 또 이를 현실화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바로 유목민으로서 이 전쟁기계이다. 이에 반해 서양의 국가는 스스로의 홈이 패인 공간 속에서 전쟁기계로부터 철저하게 보호 받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성분들을 좀 더 확실하게 보유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있었다. 또 유목민들과 아주 간접적으로만, 유목민으로 인해 발생한 이주민들(des migrations) 또는 이주화된 유목민을 매개로 아주 간접적으로만 마주쳐왔다. (479 741) [“패왕별희” 마오의 팔로군이 장개석 군대를 몰아내는 장면에서 들판을 가로지르는 팔로군은 매끄러운 공간의 개념을 보여준다. (50UKJ)]
국가의 기본적인 임무 중의 하나는 지배가 미치고 있는 공간에 홈을 파는 것, 즉 매끈한 공간을 홈이 패인 공간을 위한 교통 수단으로 이용하는데 있다. 단순히 유목민을 정복할 뿐만 아니라 이주를 통제하고, 좀더 일반적으로는 ‘외부’ 전체, 세계 공간을 가로지르는 흐름의 총체에 대해 법을 지배하는 지대가 군림하도록 하는 것은 모든 국가의 사활적인 관심사이다. (479 741)
비릴리오(Paul Virilio)의 명제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인데, 그에 따르면 “국가의 정치 권력은 폴리스, 즉 도로관리”이며, “도시의 성문(les portes), 즉 성세관들(ses octrois)와 국세관들(ses douanes)은 사람이건 가축이건 재화건 집단의 유동성이나 침입해 들어오는 무리들의 힘에 대비한 제방(des barrages)이며 필터(des filtres)이다.” (479, 741-742)
14세기 말경의 중국은 바로 이것을 경험했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조선술과 항해술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거대한 해양 공간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해적과 결연해 중국에 반역하는 상업적 흐름을 방치할 수 밖에 없었다. 중국은 상업에 대한 대재적인 제한이라는 부동(不動)의 정책 말고는 달리 이에 대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상업과 전쟁기계의 관계를 강화시켰을 뿐이다. (480, 743)
하지만 상황은 이제까지 서술해 온 것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다. 바다는 아마 가장 중요한 매끈한 공간이자 뛰어난 수력학적(hydraulique) 모델일 것이다. 또한 바다는 모든 매끈한 공간 중에서 가장 먼저 인간이 홈파기를 시도했던 곳으로, 고정된 항로, 일정한 방향, 상대적 운동, 그리고 수로나 운하 같은 반 수력학적인 시도를 통해 육지에 종속시키려고 변형을 시도했던 공간이기도 했다. (481, 743)
비릴리오가 강조하는 대로 바다는 현존 함대의 장소(lieu du fleet in being)가 되었으며, 이곳에서는 어느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임의의 한 점에서부터 모든 공간을 장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간을 홈파는 대신 끊임없이 운동하는 탈영토화의 벡터에 의한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 전략은 바다로부터 새로운 매끄러운 공간으로서의 하늘로, 뿐만 아니라 사막이나 바다와 같은 “지구” 전체로까지 확대되었다. (744)
이처럼 새로운 유목은 국가 장치를 초월하는 조직을 가지며 다국적인 에너지 산업, 군산 복합체 속에도 도입되는 세계적 규모의 전쟁 기계를 수반하고 있다. (481, 744) [미국이라는 제국이 그러하다. 자본은 기본적으로 유목이다. 흘러서 잉여의 이익이 있는 곳으로, 그 뒤에는 예전에는 종교의 선교사가 있었고 이제는 정보를 제공받는 군대가 있다. / 사드(THAAD)는 자본의 침공의 한 점일 것이다. (50LMI)]
§12.08. 둘째 측면: 전쟁기계와 인간들의 구성[조직화], 노마드 수 747 - Deuxième aspect: machine de guerre et composition des hommes, nombre nomade. 482
명제6 - 유목 생활[l’existence nomade]은 필연적으로 전쟁 기계의 수적 요소들을 함축한다. (482 745)
10(십인대 dizaines), 100(백인대 centaines), 1,000(천인대 milliers), 10,000(만인대myriades): 모든 군대들은 이러한 십진법에 따라 편성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수와 만날 때마다 군대조직이겠지 하고 추정할 정도가 되었다. 군대는 바로 이런 식으로 병사들을 탈영토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군대는 소대들(unités), 중대들(compagnies), 대대들(divisions)로 나뉘어져 있다. ... 이것은 결코 양이 아니라 조직 또는 편성의 문제이다. 이러한 수적 원리를 이용하지 않고는 어떤 국가도 군대를 편성할 수 없다. (482, 745) [로마 군대 십부장, 백부장 ... 군대의 숫자가 십진법인 것은 병참(먹거리, 치장거리, 잠거리:텐트)의 중요성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양이 아니라 한다. 즉 군대의 단위는 조직단위이지 양적 단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포대의 중대는 다른 수를 셀 것이고, 비행기의 중대는 다른 수로 나타낼 것이다. 보병의 단위와 포병, 항공편대의 단위 자체가 다르다. / 고원의 수(단위)는 접주의 수, 프랑마송의 수, 수도원의 수와 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축구팀의 단위, 농구 팀의 단위처럼, 그 단위(수)는 양이 아니라 능력과 기능을 포함한다. (50LMI)]
이처럼 인간을 수에 따라 조직한다는 정말 기묘한 생각은 원래 유목민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이집트로 끌어들인 것은 정복 유목민인 힉소스인이었다. 그리고 모세는 이것을 이집트로부터 탈출하던 그의 유대인에게 적용시켰다. 그는 유목민이며 장인이었던 켄 족 출신의 이드로(Jéthro)의 충고에 따라 성서의 「민수기(Livre des Nombres)」[4절]에 묘사되어 있는 대로 전쟁기계를 구성하려고 했던 것이다. (482, 746) [여기 십진법을 기준으로 삼아 666을 해결하지 못하여 짐승의 수로 만들었으나, 666은 2/3와 연관해서 나오는 것으로 60진법이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과 아랍(페르샤) 사이에 갈등이 있다고들 한다. (50LMI)]
노모스는 무엇보다 수이고 산술인 것이다. 그리스에서 유래하는 기하학과 인도-아랍에서 유래하는 대수학을 비교해 보면, 후자[인도-아랍]가 로고스에 대립하는 노모스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하지만 유목민이 산술이나 대수학을 “만든” 것이어서가 아니라 산술과 대수학이 유목민적인 요소가 농후한 세계에서 출현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482, 746) [그리스 기하학은 이집트 나일강의 측량기술에서 그리고 알렉산드리아학파가 정리한 기하학원리에 있다. 다시 이집트-그리스의 기하학과 인도-아랍의 산술학이라 구별하면, 윤회를 믿었다고 전해지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근원은 인도일까? (50LMI)]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인간 조직화의 주요한 유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즉 혈통적(lignagère), 영토적(territoriale), 수적(numérique) 이다. (482, 746)
고대 국가들은 정점을 가진 내포적 공간(spatium), 즉 다양한 깊이와 층위로 분화된 공간을 감싸고 있는 데 반해, (그리스의 도시로부터 시작된) 근대 국가는 내재적 중심, 동등하게 분할 가능한 부분들, 대칭적이며 역전 가능한 관계를 가진 등질적 연장(extensio)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483, 747)
계량적 역량... 이 역량은 전자[천문학적 공간, 천문학적 모델]에서는 제국적 내포적 공간(spatium)에서, 후자[기하학적 연장, 기하학적 모델]에서는 정치적 연장에서 나타난다. 산술과 수는 국가 장치에서 항상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고대 제국관료 기구가 실시했던 인구 조사, 국세 조사, 징세 조사라는 삼위일체의 조작에서부터 이미 그러했다. (483-484, 748) [중국에서 센다는 의미에서 수(數)를 내포적 공간과 결부시킨다면, 전통 유가에서 육예(예악사어서수)에서 수는 주나라의 정전제와 더불어 제국(전제정)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50LMI)]
이처럼 수는 항상 원료를 지배하고, 이 원료들의 다양한 변화와 운동을 관리하는데, 즉 이러한 변화와 운동을 국가의 시공간적 틀 – 제국적 내포적 공간이나 근대적 연장 – 에 복속시키는데 봉사해왔다. 국가는 영토적 원리 또는 탈영토화의 원리를 갖고 있으며, 이것이 수를(덧코드화를 행하기 위해 점점 더 복잡화시키는 계량 단위에 따라) 계량 단위에 결합시킨다. (484, 748)
헤아리는[세는] 수(Nombre nombrant), 즉 자율적인 산술적 조직화라고 해서 더 우월한 추상도(un degré d’abstaction supérieur, 상위 추상 정도)나 더 커다란 양(des quantités très grandes, 최고 큰 수들)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484, 749)
공간에 대한 수의 이러한 독립성은 추상 작용의 결과가 아니라 매끈한 공간, 즉 헤아려지지[세지] 않고도 차지되는 매끈한 공간의 구체적 본성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수는 이미 계산이나(compter) 계량(mesurer)의 수단이 아니라 자리바꿈(déplacer)의 수단이다. 수자체가 매끈한 공간에서 자리 바꾸는 것이다. (484, 749) [리좀의 흐름에서도 혁명의 인자는 자리바꿈을 할 줄 안다. (50LMI)]
왕립과학으로써 기하학은 전쟁 기계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이것은 오직 국가의 군대에서만, 게다가 정주민의 축성술에 중요하지만 그것은 또한 전군의 심각한 패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수는 매끈한 공간을 점거할 때마다 원리로서 작용하며, 홈이 패인 공간을 계량하는 대신 매끈한 공간의 주체로서 전개된다. 수는 이동적 점거자, 매끈한 공간 속의 동산으로서 홈이 패인 공간의 부동산의 기하학과 대립한다. 유목민의 수적 단위는 이동하는 불(le feu ambulant)이지 이동하기 곤란한 천막(la tente)이 아니다. “불이 유르트[맹수 가죽으로 만든 천막]보다 먼저다.” <헤아리는 수>는 더 이상 계량적 규정이나 기하학적 차원에 종속되지 않으며, 지리적 방향들과만 역동적 관계(un rapport, 연관)를 가질 뿐이다.(485, 749-750)
유목적 조직은 철저하게 산술적이며 방향적이다. 사방에서 눈에 띄는 10, 100이라는 양. 그리고 좌우라는 방향이 있을 뿐이다. 수의 대장(le chef)은 또한 방향, 즉 좌우라는 방향의 대장이기도 하다. ‘헤아리는 수(le nombre nombrant)’는 화음적인 것이 아니라, 리듬적이다. 따라서 보조와 박자와는 무관하다. 보조를 맞춰 행진하는 것은 훈련이나 퍼레이드들 벌이는 국가의 군대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485, 750)
“그는 사막의 자연스러운 울림에 어울리는 단절적인 리듬을 따라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래서인지 인간이 만들어내는 규칙적인 음을 기다리던 사람을 무색하게 만들 뿐이다. 그의 씨족의 다른 모든 성원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이러한 걸음걸이에 통달해 있었다. 그러한 발걸음을 너무나 훌륭하게 저절로 몸에 익혔기 때문에 이미 그것을 의식할 필요조차 없었다. 측정하기 어려운 리듬에 맞춰 발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485, 750) [이 인용문에서 ‘그’가 전쟁기계인가 구체적 전사인가? 앞 뒤 문장에서 찾을 수 없다.]
전쟁 기계와 더불어 그리고 유목적 현존에서 수는 더 이상 헤아려진 수(le nombre)이기를 그치고 ‘암호(Chiffre, 숫자)’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암호’로서 수는 “단결심(l’esprit de corps)”을 구성하고, 비밀과 비밀의 수반물들(전략, 첩보활동, 계략, 매복, 외교 등)을 발명해 낸다. (485-486, 750-751)
이처럼 ‘헤아리는 수(le nombre nombrant)’는 이동적, 자율적, 방향적, 리듬적, 암호적이다. 그리고 전쟁기계는 유목적 조직의 필연적 귀결이다(모세는 스스로 그것을 체험하고, 이것이 가져오는 모든 결과를 이끌어낸 바 있다). (486, 751) [혁명의 조직화에서 특이자의 성격을 잘 드러낸 것이다.]
아무리 무시무시하더라도 인간의 수적 조직은 혈통이나 국가 조직보다 더 잔혹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수로 취급하는 것이 반드시 사람들을 벌채해야할 수목으로 또는 재단해서 모델에 따라 만들어내야 할 기하학적 형상으로 다루는 것보다 더 나쁘지 않다. (486, 751)
수적 조직의 특수성은 유목민적 실존 양식과 전쟁 기계-기능에서 유래한다. ‘헤아리는 수(le nombre nombrant)’는 혈통적 코드와 국가적[영토적] 덧코드화 모두에 대립된다. (486, 751)
유목민 또는 전쟁에 속하는 ‘헤아리는 수’의 첫째 특성은 항상 복합적이라는 것, 즉 분절화되어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항상 복소수[complexe de nombres]이다. ‘헤아리는 수’가 국가의 수 또는 헤아려진 수처럼 대규모의 등질화된 양의 압축하지 않고 오히려 그 자체의 세세한 분절에 의해, 즉 자유로운 공간에 다질성(hétérogénéité, 이질성)을 분배함으로써 커다란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484, 751-752)
그러나 ‘헤아리는 수’는 이보다 좀 더 비밀스런 둘째 특성을 갖는다. 모든 전쟁기계는 마치 비대칭적이고 불균등한 두 계열에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산술적 복제나 이중화라는 기묘한 과정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혈통이나 씨족은 수적으로 조직되고 개편되며, 수적 편성이 혈통 조직 위에 중첩되어 새로운 원리가 지배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동시에 각각의 혈통에서 추출된 자들에 의해 특수한 수적 몸체(un corps numérique spécial)가 형성된다. (487, 752-753) [이 둘의 조직방식을 잘 만들어 보았던 노마드의 영웅이 징기스칸과 모세일 것이다. (50LMI)]
징기스칸은 스텝을 대규모로 편성할 때 혈동을 수직적으로 조직하는 동시에 각 혈통에서 나온 전사들을 숫자와 우두머리를 – 십인대(dizaines)와 십부장(dizainiers), 백인대(centaines)와 백부장(centainiers), 천인대(milliers)와 천부장(chiliarques)을 – 따르도록 했다. 이와 동시에 드는 이처럼 산술화된 각 혈통으로부터 소수를 선발해 개인 친위대, 즉 참모나 감독관, 전령, 외교관 등으로 이루어진 역동적 형성체를 - 맹우단(盟友團, antrustions)을 – 구성했다. (487, 753)
야훼보다는 유목민에게서 더 큰 영향을 받은 모세도 사막을 대대적으로 편성할 때 각 씨족의 인구를 조사해 수적으로 조직했다. (488, 753)
모세의 경우에는 씨족들과 레위 족 간에, 징기스칸의 경우에는 “노이안스(noyans, 귀족 계급을 구성하는 씨족)”와 “맹우단” 간의 관계가 그러했다. (488, 754)
이처럼 특수한 몸체가 편성되는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 특권적 혈통이나 씨족으로 편성하는 방법. ... (모세와 레위족의 경우). 2) 모든 혈통들로부터 대표자를 선발해 편성하는 방법. ... 볼모(징기스칸의 경우). 3) 본래의 사회 외부에 존재하는 전혀 다른 요소들로, 즉 노예, 외국인 또는 이교도로 편성하는 방법.. [용병 기용] (색슨 왕조의 프랑크족 노예) (488-489, 755)
- 이미 왕이 프랑크 족 노예들로 특수한 단체를 편성했던 색슨 왕조 때부터 그러했다. 특히 이슬람의 경우가 그러했는데, 급기야 여기서는 “병사 노예”라는 특수한 사회학적 범주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이집트의 맘루크 족(les Mamelouks)은 아주 어렸을 때 술탄에게 팔려간 스텝이나 코카서스 지방 출신의 노예들이었다. 또는 오토만 투르크 제국의 친위대인 야니사리 족(les Janissaires)은 기독교 공동체 출신이었다. - (489, 755) [이런 이야기는 노예 근위대 또는 용병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나오는데, 저자들은 유목적 실존의 조직체들에 대한 것으로 전쟁기계로 보았다. (50LMI)]
“어린이를 유괴하는 유목민”이라는 주요한 주제는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특히 셋째 사례에서 이처럼 특수한 단체가 어떻게 전쟁기계에서 결정적인 권력요소로서 확립되는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전쟁기계와 유목적 현존은 동시에 두 가지를, 즉 혈통에 기반한 귀족정치로 복귀와 제국적 관료제의 형성을 저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489, 755-756) [어린 아이의 유괴에 대해서는 집시(지딴)에서도 있는데, 집시는 노모스로서 전쟁기계가 아닐까? 집시는 유랑만을 하는 것일까? (50LMI)]
유목민들에게 역사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지리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유목민들의 패배는 너무나 철저했기 때문에 역사는 국가의 승리의 역사가 되었다. ... 그러나 만약 유목민이 강력한 야금술(une forte métallurgie)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유목민이 제국적 국가의 배반자들에게서 고도의 무기나 정치적 조언을 받았다고 생각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따른다. 게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왜 유목민은 도시나 국가를 파괴하려고 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파괴는 유목적 조직과 전쟁 기계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으며, 이 두 가지는 무지가 아니라 긍정적 특징과 고유한 공간 그리고 모든 혈통과 단절하고 국가-형식을 제거하는 고유한 편성에 의해 규정된다. (490, 757) [유목민의 도시와 국가 파괴로는 징기스칸이 행한 방식일 것이다.]
역사가들은 전쟁기계에는 본래적인 의미의 군사 제도와 관련된 범주(“군사 민주제”)를 유목에는 본래 정주민과 관련된 범주(“봉건제”)를 적용하려고 시도해왔다. 그러나 이 두 가설은 어떤 형태로든 영토적 권리를 전제하고 있다. 즉 제국적 국가가 전사에게 관직지를 분배함으로써 전쟁 기계를 전유하든지(클레로이{cleroi: 고대 그리스에서 전사에게 주어진 배분지}와 거짓 봉토) 또는 사적 소유로 바뀐 토지 소유 자체로부터 군대를 구성하는 토지 소유자 간의 종속 관계가 발생하던지(진짜 봉토와 봉신의 신분, vrais fiefs et vasselage) 둘 중의 하나이다. 이 두 경우에 모두 수는 “부동산”에 기초한 조세 조직에 종속되며, 이것이 양도 가능하거나 양도된 토지를 구성하는 동시에 토지 이용자 본인이 지불해야할 세금을 결정한다. (490, 757-758)
§12.09. 셋째 측면: 전쟁기계와 노마드 변용태들 758 - Troisième aspect: machine de querre et affects nomades. 491
명제7: 유목적 현존의 “변용태(affects)”는 전쟁 기계의 무기들이다. (491, 758)
용도에 따라(즉 인간을 살상하느냐 아니면 재화를 생산하느냐에 따라) 무기들(les armes)와 도구들(les outils)을 구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예를 들어] 르루아-구랑(André Leroi-Gourhan, 1911-1986)이 규정한 바 있는 타악기 유형들은 양쪽 모두에 속한다. “꽤 오랜 동안 농업용구와 전쟁무기는 같은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491, 758-759) [현악기와 활도 그럴까? ..]
기계적 문(phylum machinique)
우선[첫째로] 무기는 투사(投射, projection)와 특히 특권적 관계를 갖고 있다. 던지거나 던져지는 것 등은 전부 무기이며, 추진기야말로 무기의 본질적 계기이다. 그리고 무기는 탄도와 관련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문제(problème)”라는 용어 자체가 전쟁 기계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이와는 달리 도구는 오히려 내향적(introcceptif)이고 내사적(內射的, introjectif)이어서 ... (491-492, 759)
둘째로 무기와 도구가 운동이나 속도와 맺는 관계는 “경향적으로”(근사적으로)동일하지 않다. 무기와 속도의 다음과 같은 상보성을 강조한 것 역시 비릴리오의 중요한 공헌 중의 하나이다. 즉 무기가 속도를 발명하거나 속도의 발견이 무기를 발명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492, 760)
목축(l’élvage)과 조련(le dressage)은 원시적 수렵(la chasse)과도 정주적 가축화(la domestication)와도 혼동하지 말자. 오히려 이것들은 투사적인 그리고 발사적인 체계의 발견물(la devouverte)이다. (492, 760) [몽골인들의 유목적 목축과 말 다루는 기술로서 조련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몽골의 한 용사가 말을 열 마리 몰고 진격했다고 한다.]
“유혈이 낭자하게 하는 것이나 즉시 살해하는 것은 폭력의 무제한적 사용, 즉 폭력의 경제에 위반된다. (....) 폭력의 경제는 목축민 중의 사냥꾼의 경제가 아니라 수렵 당한 동물의 경제이다. 승마용 말에서 말의 운동에너지와 속도는 보존되지만 말의 단백질은 더 이상 보존되지 않는다(모터이지 더 이상 육식용이 아닌 것이다). (....) 이처럼 수렵에서 사냥꾼(le chasseur)은 체계적인 도살을 통해 야수들의 운동을 정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반해, 목축민(l’éleveur)들은 야수들의 운동을 보존시킨다. 그리고 조련을 통해 승마자(le chevaucheur)는 이러한 운동에 참여해 거기에 방향을 부여하면서 가속화시키려고 한다.” 기계적 모터가 이러한 경향을 한층 더 발달시키게 되지만 아무튼 “승마용 말(la monture)이 전사의 최초의 투사기(le premier projecteur)이자 최초의 무기 체계였다.” (492-493, 761)
그러나 어떤 경우이건 전사는 동물에게서 획득물이라는 모델(le modèle d’une proie, [먹이감])이 아니라 모터라는 발상을 빌려온다. 전사는 획득물이라는 모델을 일반화시켜 적에게 적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터라는 발상을 끌어내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한다. (493, 762)
여기서 즉각 두 가지 반론이 예상된다. 첫째 반론에 따르면 전쟁기계는 속도와 똑같은 정도의 무게와 중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무거움과 가벼움의 구별, 방어와 공격의 비대칭성, 휴전과 긴장의 대립). (493, 762)
그러나 힘의 균형은 저항에 의한 현상인 반면 반격은 이러한 균형을 깨뜨리는 속도의 변화 내지 가속을 내포한다. 전차는 속도 벡터를 중심으로 작전의 모든 것을 재조직하고, 운동에 매끈한 공간을 재부여해 인간과 무기로 하여금 정지 상태를 포기하도록 강요한다. (762)
§12.10. 자유로운 행동과 노동 762 - Action libre et travail. -494
이와 정반대의 둘째 반론이 이 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속도 역시 무기에 속하는 만큼이나 도구에 속하기도 하며, 따라서 결코 전쟁 기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질적인 모델들을 찾기보다는 너무 운동량만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닐까. 이상적인 모터 모델에는 노동 모델과 자유로운 행동 모델 두 가지가 있다. (493, 763)
노동이란 저항에 부딪히면서 외부에 작용해 결과를 창출하고 소비 또는 소진되는 동력원으로서 매 순간 끊임없이 갱신되어야 한다. 자유로운 행동 역시 동력원이기는 하지만 극복해야하는 저항에 부딪히는 일도 없으며 오직 동체 자체에만 작용하며, 따라서 결과를 창출하기 위해 소진되는 일이 없는 연속적 동력원인 것이다. 노동의 경우 속도의 크기나 정도와 관계없이 속도는 상대적인 반면, 자유로운 행동에서는 절대적이다(영구 운동체un perpetuum mobile라는 관념). 노동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로 간주되는 물체 위에 작용하는 중력의 작용점(무게중심)이며, 이 작용점의 상대적 이동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행동에서 중요한 것은 물체의 성분들이 중력으로부터 탈출해 점을 갖지 않는 공간을 절대적으로 차지하는 방식이다. 무기와 무기 사용법이 자유로운 모델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도구는 노동 모델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494, 763)
무기와 도구는 동일한 법칙을 따르고 있으며, 바로 이것이 이들의 공통의 차원을 정확하게 규정한다. 그러나 모든 기술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원칙에 따르면 기술적 요소는 그것이 전제하고 있는 배치물(un agencement)과 관련하지 않는 한 추상적일 뿐이며, 전혀 무규정적인 것으로 그치고 만다. 기술적 요소보다 우선하는 것은 기계(la manchine)이다. 다시 말해 기계라해도 자체가 기술적 요소들의 집합인 기술적 기계(la machine technique)가 아니라 사회적 또는 집단적 기계, 즉 특정한 시기에 무엇이 기술적 요소인가, 용도와 내용과 적용 범위는 어떠한가를 규정하는 기계적 배치물(l’agencement machinique)이 중요한 것이다. (495, 764)
문(un phylum)은 배치물들을 매개로 해서야 비로소 기술적 요소들을 선별하거나 규정하거나 발명할 수 있다. 따라서 무기나 도구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반드시 이것들이 전제하고 진입하는 구성적 배치물들을 먼저 규정해야 한다. (495, 764)
도구는 본질적으로 힘의 발생과 이동, 그리고 소비와 결합되어 있으며 노동의 법칙에 의해 규정되는 반면, 무기는 자유로운 행동에 따라 시간과 공간 속에서 힘을 행사하거나 표출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 무기의 특수성은 단지 힘이 자체로 파악되어 수와 운동, 시간과 공간하고만 관계를 맺거나 속도가 이동에 첨가될 때만 드러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무기 자체는 ‘노동’ 모델이 아니라 ‘자유로운 행동’ 모델과 관련이 있다. (495-496, 765)
요컨대 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도구는 중력-이동(un système gravité-déplacement), 중량-고도(poids-hauteur) 체계와 결합되고, 무기는 속도-영구 운동체 체계와 결합되어 있다(이러한 의미에서 속도 자체가 “무기 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 (496, 765)
아주 일반적으로 기계적, 집단적 배치(l’agencement)가 기술적 요소보다 우선한다는 것은 도구에 대해서도 무기에 대해서도 똑같이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496, 765)
가령 “중장보병(hoplitique)”의 무기는 전쟁기계의 변이인{고대 마케도니아의} 밀집방진(密集方陣)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다. 당시 유일하게 새로운 무기였던 양손잡이 방패는 바로 이러한 배치에 의해 창조된 것이었다. 다른 무기들도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나 다른 식으로 조합되었기 때문에 이전과 다른 기능과 본성을 각제 되었다. 이처럼 어떠한 경우에도 무기 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배치이다. (766)
창(la lance)과 칼(l’épée)이 청동기 시대부터 등장하게 된 것은 인간-말이라는 배치 덕분으로, 이 배치는 단검(le poignard)과 꼬챙이(l’épieu)의 길이를 늘려 보병 최초의 무기였던 망치와 도끼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어 등자(l’étier)가 인간-말이라는 배치에 새로운 형태를 강제하는데, 다시 이것은 새로운 유형의 창이나 새로운 무기 제작을 부추겼다. (496, 766)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활, 중국의 창, 일본의 칼이라고 한다. 일본 칼은 베는데, 이에 비해 유럽 칼은 찌르는데 사용한다. / 창과 칼이 무기와 도구이라면 활은 현악기와 무기라는 점이다. (50LMI)]
가령 바퀴 달린 쟁기(la charrue)가 특수 도구로 존재하게 된 것은 “넓게 펼쳐진 열린 들판”이 많아지면서 말이 소 대신 점차 쟁기를 끄는 동물의 역할을 대체하고 토지가 삼포식(三浦式)으로 경작되기 시작하고 촌락공동체 규모의 경제가 등장하는 등의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이다. 당연히 이전에도 쟁기가 존재했을 수도 있지만 단지 다른 배치들의 주변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특수성을 발휘할 수는 없었으며, 바퀴없는 쟁기(l’araire)와의 변별적 특성도 제대로 탐색될 수 없었다. (496-497, 766-767).
배치들(les agencements)은 정념적(passionnels, 정열적)이며, 욕망의 편성이다. 욕망은 자연적이고 자발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배치하고 배치되는 것이자 기계적인 것이다. 배치의 합리성이나 효율성은 이러한 배치가 유도하는 정념들 없이는, 또 이러한 배치를 구성하는 동시에 이러한 배치에 의해 구성되는 다양한 욕망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497, 767)
이것은 인간이 말에서 내려옴으로써 인간-말의 관계가 보병이라는 배치물의 인간들 간의 관계로 대체된 사례 중의 하나로서, 바로 이러한 배치가 농민병이나 시민병이 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와 함께 전쟁의 ‘에로스’ 전체가 변하고, 집단의 동성애적 에로스(un Eros homosexuel de groupe)가 기병의 동물 지향적 에로스(l’Eros zoosexué du chvalier)를 대체하려고 한다. (497, 767) [“아바타” 영화에서 아바타 전사가 거대한 조류와 동물지향적 에로스의 장면이 나온다. 긴 팔루스로 연결하는 방식이 거의 성애의 표현인데 말이다. (50LMJ)]
정념들(les passions)이란 배치에 따라 달라지는 욕망의 현실화(des effectuations, 효과화)이다. 따라서 배치에 따라 정의(正義), 잔혹함, 연민 등이 달라진다. 노동체계는 ‘형식’의 조직화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주체의 형성도 이에 대응한다. 이것이 “노동자의 형식”으로서 감정(sentiment)의 정념체계이다. 감정은 물질과 물질의 저항에 대한 평가, 형식과 형식의 발전에 대한 감각(sens, 방향), 그리고 힘과 힘의 이동의 경제[아낌] 등, 모든 엄숙함(gravité, 중후함)을 내포하고 있다. (497, 767-768) [정념들의 배치로서 감정, 감관은 도구적 의미로서 노동과 연관이 있다. 이에 비해 다음에 나오는 “변용태”는 감동(l’émotion, 감격)에 연관이다. 이로서 노동은 욕망에 있어서 표상화된 도구의 효과화이며 전쟁기계는 변용을 통하여 감격(감동)의 현실화(l’actualisation)일 것이다. 전자가 지성적이라면 후자는 애정관심적이다. (50LMJ)]
그러나 전쟁기계 체제는 이와 반대로 변용태(des affects) 체제로서 동체의 속도와 요소들 간의 속도의 합성에만 관여한다. 변용태는 정서(l’émotion, 감동, 감격)의 급격한 방출이며 반격인 반면, 감정은 항상 이동하고 지연되며 저항하는 정서(l’émotion)[정념에 가깝다]이다. 변용태는 무기와 마찬가지로 투사되는 것인데 반해, 감정은 도구와 마찬가지로 내향적이다. (497-498, 768)
기사는 말안장 위에서 잠을 자다가도 갑자기 화살처럼(comme une flèche) 출발한다. 이처럼 갑작스런 긴장증(ces brusques catatonie), 실신(évanouissements), 긴장감(suspens)을 전쟁기계의 최고 속도와 가장 훌륭하게 조합시킨 사람이 바로 클라이스트(Kleist)이다. (498, 768) [활은 아니지만 화살의 비유가 나왔다. 사실 활쏘기에서 만작의 평정 상태에서 긴장한 몸의 뼈대를 울리며(공명하며) 화살은 나간다. “전추태산(前推泰山) 발여호미(發如虎尾)”에서 호미(虎尾)는 꼬리를 바짝 세운 호랑이가 사정 후 꼬리를 천천히 느슨하게 내리는 모습이라는 설도 있다. 공명(共鳴) 이후 실신(évanouissements, 풀림)은 호미를 의미할 수 있다. /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 중에도 풀림 즉 늘어짐이 있다. (50LMJ)]
스스로 탈각하는(défaire) 것, 자기를 비우는(se défaire) 것을 배우는 것이야 말로 전쟁기계에 고유한 속성이다. 이것은 전사의 “무위(無爲, le ne-pas-faire)”이며 주체의 해체인(défaire) 것이다. 탈코드화[유목적]의 운동이 전쟁 기계를 가로지르고 있는 반면 덧코드화[국가적, 영토적]는 도구를 노동과 국가의 조직에 유착시키고 있다. (498. 768-769) [노자의 무위 자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는 탈코드화의 상황이지 코드화는 아닐 것이다. (50UKJ)]
길들(les voies)이라고 하는 것이 아직 궁극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길들은 아무리 멀리까지 침투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존재(l’Etre)의 영역으로부터 나오며, 다른 본성을 지닌 절대적 운동들을 통상적인 공간으로 번역할 뿐이다. 이 운동들은 무(le néant) 속에서가 아니라 ‘허공(le Vide, 빈 것)’ 속에서, 이미 아무런 목적도 없이 “맹렬한(à corps perdu)” 공격, 반격, 추락만이 있는 빈 것의 매끄러움 속에서 현실화된다(s’effectuer, 효과가 있다). (498, 769) [길들은 노마드 운동들의 길을 의미한다. 시골 사람들은 명절(정월 초하루[동지], 추석등)에는 이리저리 시간 약속도 없이 찾아가고 또 빈 곳이라도 되는 양 들이닥친다. 이들은 평소와 다른 길들을 열고, 마시고 취한다. 노마드의 전형이다. 도시의 길은 주소와 시간 약속이 필요하다. - 참조: 도로(la “voirie”, 항로, 항공로, 전선, 수도관와 가스관, 통화길, 지피에스 등) - (50LMJ)]
§12.11. 배치들의 본성: 도구들과 기호들, 무기들과 보석들 769 - Nature des agencements: outils et signes, armes et bijoux. 498
배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도구(les outils)와 기호(les signes) 간에는 항상 본질적인 관계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도구를 정의하는 노동 모델은 국가 장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종종 지적된 대로 원시 사회의 인간들은 설령 이들의 활동이 매우 제약되고 규제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노동을 하지 않는다. 당연히 전사도 마찬가지였다(헤라클레스의 ‘고역들 (travaux, 열두 과제들)’은 왕에 대한 복종을 전제로 한 것이다). (498-499, 769)
노동이 존재하려면 국가 장치에 의한 행동의 포획(une capture)과 문자(l’écriture)에 의한 행동의 기호화(une sémiotisation)가 필요하다. 이로부터 기호들-도구들(signes-outils), 문자기호들-노동의 조직화라는 배치의 친화성이 나온다. 그러나 무기에서는 사정이 이와 전혀 다르다. 무기는 보석류와 본질적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보석류는 너무나 많은 이차적 적용을 거쳐 왔기 때문에 우리는 과연 이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499, 769-770) [삶의 터전과 관련하여 조직화는 기호들-도구들이 국가 안에서 영토에 맞게 배치되어야 한다. 이에 비해 전쟁기계는 배치가 이동이라 귀금속 가공에 관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국가 없이 급하게 이동하는데 가지고 가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들 하는데, 골동품(고서포함)과 보석류(금은 포함)이다.]
이동하는 대장장이(le forgeron ambulant)는 금은 세공(l’orfèvrerie)을 무기와, 또한 반대로 무기를 금은세공과 결합시킨다. 금과 은은 다른 많은 기능도 갖고 있으나 전쟁 기계가 만들어낸 이러한 유목민적 공헌을 무시하고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 보석들(les bijoux)은 무기에 상응하는 변용태로 무기와 동일한 속도-벡터에 휩쓸려간다. (499, 770) [예로서, 우리나라 소유의 훈족의 유리장식 칼이 있다. 이는 세계에서 몇 점 안된다.]
금은 세공품(l’orfèvrerie), 보석류(la joaillerie), 장식품(l’ornementation, 치장품), 심지어 단순 장식(la décoration)은 모든 면에서 전혀 문자에 뒤지지 않은 추상 역량(puissance d’abstraction)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자언어를 형성하지는 않는다. 이 추상역량은 다른 방식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499, 771) [이 추상역량의 기호는 문자보다 뛰어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유럽의 21세기 추상예술이 원시인들의 작품들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 치장품의 기호는 지위와 순위 등을 포함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이 대장정에서 이동시에 비표(치장)를 달았다. / 여러나라 군인들도 약장을 단다. / 약장 또는 비표는 행동의 반경과 흐름을 표시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노모스이다. // 휘장과 문장(紋章) 등도 기호와 마찬가지이다. 서양에서 각 성에서 문양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프랑마송도 문장 또는 휘장을 갖는다. (50LMJ)]
문자의 경우 유목민들은 그것을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인접 제국의 정주민으로부터 그것을 빌려왔으며, 언어의 음성 표기법마저 이들에게서 가져왔다. (499-500, 771)
“금은 세공, 선조(線條) 세공, 그리고 금은 도금이나 세공은 특히 야만 예술이다. (...) 유목민과 전사의 경제는 이방인들만으로 제한된 교역을 거부하는 동시에 이를 이용하기도 했는데, 이와 결합된 스키타이 예술은 이처럼 화려하고 장식적인 쪽을 집중적으로 발전시켰다. ... 이처럼 기원전 3,4세기 경에 흑해 연안의 스키타이 예술은 자연스럽게 형태를 선사적(線寫的, graphique)으로 도식화하는 방향으로 나간 결과 문자 언어의 원형(proto-écriture)보다는 선적인 장식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500, 771)
고대 북구의 룬 문자(l’écriture lunique)의 경우는 이보다 훨씬 까다로운데, 왜냐하면 원래 이것은 오직 보석류, 장식용 고리, 금은 세공품, 액세서리 등 언제나 쉽게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작은 장식품들하고만 결합되어 있던 것 같기 때문이다. 초기에 룬 문자는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는 아주 미미한 가치만을 갖고 있었을 뿐이며 공적인 기능도 아주 제한되어 있었다. .. 오히려 이것은 1) 소유자나 제조자를 표시하기 위한 서명, 2) 싸움이나 사랑을 전하기 위한 짧은 메시지를 포함하는 변용태적인 기호체계로서 문자적이라기보다는 “장식적인” 텍스트를 형성하고 있다. 즉 “거의 쓸모가 없으며 반쯤은 유산된 발명품”으로, 문자의 대용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9세기경에 있었던 덴마크 혁명과 함께 국가나 노동과 관련된 기념비에 비명을 새기기 시작한 제2기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문자로서 가치를 갖게 된다. (500, 771-772)
도구나 무기, 기호나 보석류는 실제로는 어디서나, 공통된 문화권에서는 어디서나 타나나지 않는가 하는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으며, 각 경우의 기원을 찾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 변별적 특질들(les traits differentiels)을 결정하는 것이 문제이다. 건축(l’architecture)과 요리(la cuisine)는 분명히 국가 장치와 친화성을 갖는 반면 음악(la musique)과 마약(la drogue)은 유목적인 전쟁기계 쪽에 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변별적 특질을 갖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500-501, 772) [유목민의 밤은 음악 아니면 경전 암송(음율을 넣어 읽기)가 있다.]
농민은 후스 전쟁 동안 포술의 역사에 중요한 공헌을 했는데, 이때 지슈카(Zisca)는 우마차가 끄는 대포들로 움직이는 요새를 만들었다. 직공-병사, 도구-무기, 감정-변용태 간의 친화성이 바로 혁명이나 인민 전쟁의 적시성을 알려준다. (501, 773)
반격인 동시에 저항인 것이다. 모든 것은 양가성(ambigu)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가성이 윙거(Jünger)의 다음과 같은 분석을 무효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즉 그는 한편으로는 ‘직공’을, 다른 한편으로는 ‘병사’를 공통의 도주선 위로 끄집어내서 이 “반항자(le Rebelle)”를 초역사적인 인물로 그리고 있는데, 이 도주선 위에서 인간은 동시에 “나는 무기를 찾고 있다”, “나는 도구를 원한다.”고 말할 수 있다. 선을 그리거나 또는 같은 이야기이지만 선을 가로지르고 또는 선을 넘어서 가라 분리선을 넘지 않고는 선을 그을 수 없기 때문이다. (501, 774)
게릴라와 군사장치, 노동과 자유로운 행동은 언제나 서로 양방향에서 차용해왔다. 따라서 투쟁은 정말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다. (502, 775)
§12.12. 야금술, 편력, 노마디즘 775 La métallurgie, l’itinérance et le nomadisme. 502 -
문제3. 유목민들은 어떻게 그들의 무기를 발명 또는 발견했는가?
명제8. 야금술(la métallurgie)은 필연적으로 유목(le nomadisme)과 합류하는 하나의 흐름을 구성한다. (502 775)
스텝 주민들의 정치, 경제, 사회 체제는 공격용이나 방어용 무기, 인간의 편성이나 전략, 기술적 요소(안장, 등자, 편자, 마구 등) 등 전쟁과 관련해 이들이 이루어낸 여러 혁신들 보다는 훨씬 덜 알려져 있다. ... 인간-동물-무기라는 배치, 인간-말-활(arc)이라는 배치를 발명해낸 것은 유목민들이었다. (502-503, 775-776) [활의 이야기는 더 이상 전개되어 있지 않다]
가령 실린더 모양의 힉소스인들(les Hyksos)의 청동도끼(전부, 戰斧, la hache de bronze a douille)나 힛타이트인들(les Hittites)의 철검(l’épée de fer)은 소형 핵폭탄의 발명에 필적할 만큼 혁신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스텝 유목민들의 무기의 정밀도를 시대별로 제법 엄일하게 구분할 수 있으며, 중장비와 경장비(스키타이 형type scythe과 사르마티아 형type scythe et type sarmate)의 교체와 양장의 혼합 형태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칼은 스키타이인들(les Scythes)이 인도와 페르시아로 전파한 다음 다시 아랍인들에게 전해졌다. (503, 776) [현대에도 우라늄 야금술은 인도 파키스탄 핵무기 제조기술에 스며들었다(파키스탄 칸 박사).]
어째든 화기가 아닌 단순한 무기, 심지어 대포에서조차 각각의 무기의 기술적 계통(lignée technologique)의 지평선 위에 항상 유목민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만큼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503, 777)
물론 예를 들어 등자를 둘러싼 대논쟁이 잘 보여주듯이 각각의 경우에 대한 이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목민 자체로부터 유래하는 것과 이들 유목민들이 교역하고 정복하고 또는 통합되어 들어가는 제국으로부터 수용한 것을 구별하기가 그리 용이하지 않다. (503, 777)
스키타이인들의 칼의 전파자로서 힌두, 페르시아, 아랍인에게 이 칼을 전해 준 것만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이들은 이 칼의 최초의 희생자들로서 처음 칼의 위력에 당했던 것이다. 이칼을 발명한 것은 주강(l’acier fondu) 또는 도가니 강(le creuset) 제련법을 고안한 또는 이를 독점적으로 생산한 중국의 진(秦)과 한(漢) 제국이었다. (504, 777-778)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분명히 대장장이들의 발명품인데도 왜 주강은 필연적으로 정주민이나 제국 주민의 소유라고 하는가? 이 대장장이[야금술사]들은 반드시 국가 장치에 의해 통제된다고 가정되고 있지만 이들 또한 반드시 일정한 기술적 자율성과 사회적 은밀성을 누리고 있으며, 따라서 통제되더라도 이들 자신이 유목민이 아니듯 국가 장치에 속하지도 않은 것이다. 따라서 비밀을 누설한 탈영병들(déserteurs) 따위는 없었으며, 오히려 이 비밀을 전달하고 이 비밀의 적용과 전파를 가능하게 한 대장장이(métallurgistes, 야금장이)가 있었을 뿐이다.. (504, 778-779)
야금술은 항상적 법칙, 가령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금속의 용해 온도를 발견했기 때문에 하나의 과학이라고 말하는 것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야금술은 우선 몇 개의 변화선들과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운석과 천연금속의 변화, 원광석과 금속의 함유량의 변화, (인위적인 것이건 자연적인 것이건) 합금의 변화, 금속에 가해지는 공정들의 변화, 특정한 조직을 가능하게 해주는 성질 또는 특정한 조직의 결과로서 발생하는 성질들의 변화(가령 스메르에서는 원산지와 정련도에 따라 구리의 12가지 변종을 구별해 목록으로 만들었다). (505, 779)
이 모든 변수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포괄적인 항목들로 유형을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1]먼저 다양한 차원을 가진 시공간적인 특이성이나 <이것임> 그리고 이것들과 결합하는 변형이나 변용과정으로서의 조작. [2]둘째로는 이러한 특이성과 조작에 대응하는 다양한 측위의 변용태적 질이나 표현의 특질(경도, 무게, 색깔 등). ... 주강은 고온에서 철의 용해라고 하는 첫째 특이성을 현실화하고, 다음으로 둘째 특이성, 즉 점진적인 탈탄소에 의해 만들어진다. (505, 779-780)
다시 칼(le sabre) 아니 오히려 주강(l’acier au creuset)의 예로 되돌아 가 보자. .. 하지만 철검(l’épée de fer)은 이와는 전혀 다른 특이성과 관련되어 있다. .. 왜냐하면 이거[철검]은 베는 것이 아니라 찌르는 것이며, 측면이 아니라 정면에서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표현적인 모양도 철검과는 전혀 다른 방식 즉 상감(象嵌)에 의해 만들어 진다. 특이성들의 집합, 즉 몇몇 조작을 통해 연장 가능해지며, 또 이와 함께 하나 또는 몇 개의 지정가능한 표현의 특질들로 수렴되거나 또는 수렴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특이성들의 집합을 확인할 수 있다면 하나의 기계적 문(un phylum machinique) 또는 하나의 기술적 계통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505-506, 780)
그러나 하나의 문(un phylum)에서 다른 문으로 연장[이어가기] 가능한 특이성의 차원들을 설치해 이 두 문을 통일시키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결국 극단적으로 볼 때, 유일한 동일 계통발생의 계통, 관념적으로 연속적인 유일한 기계문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즉, 운동-물질의 흐름, 특이성과 표현의 특질을 짊어지고 연속적으로 변주되는 물질의 흐름 말이다. (506, 781)
따라서 문에 대한 배치물의 선별적 작용과 함께 하나의 배치물에서 다른 배치물로 이동하거나 또는 배치에서 벗어나 이를 유도해 외부로 열어주는 지하선(fil souterrain)으로 문의 진화적인 반작용을 고려해야만 한다. 생명의 도약(Elan vital)? 르화-구르앙은 생물학적 진화 일반을 기술적 진화의 모델로 삼아 기술적 생명론을 최대한 밀고 나갔다. 그에 따르면 온갖 특이성과 표현의 특질을 가진 보편적 경험이 기술적 환경과 내부 환경들을 가로지르고 있으며, 다시 이러한 환경이 제각각 드러내고 선별하고 통일시키고 수용하는 특이성과 표현의 특질에 따라 이 보편적 경향을 굴절시키거나 분화시킨다. .. 그러나 양자(문과 배치물들)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507, 782)
그런데 배치물들 속에 들어왔다가 나가버리는 이 운동-물질, 에너지-물질, 흐름-물질, 이 변화하는 물질을 과연 어떻게 규정하면 좋을까? 그것은 탈지층화되고 탈영토화된 물질이다. 후설은 계량적이고 형상적인 고정된 본질과 구별되는 질료적이고 모호한, 즉 유동적이고 비정확하지만 아주 엄밀한 본질의 영역을 발견함으로써 우리 사유의 결정적 일보를 내딛었다. (507, 782-783)
이것은 지성적인 형식적 본질, 형식화되고 지각된 감각적 사물성과도 구별되는 물체성(corporeité: 질료성, matérialité)을 끄집어낸다. 이 물체성은 두 가지 성격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는 상태의 변화로서의 극한화와 분리되지 않으며, 자체가 비정확한 시공에서 발생하는 사건(절삭, 부가, 투사 등)으로서 작용하는 변형 또는 변용 과정과 분리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변적인 변용태(저항, 경도, 무게, 색채 …)의 방식으로 생산된, 양적으로 변화가능한 표현적이고 강렬한 질과 분리될 수 없다. (507, 783)
시몽동(Simondon, 1924-1989)이 제시한 몇 가지 구분을 후설의 구분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몽동은 질료-형상 모텔은 고정된 형상과 등질적인 것으로 여겨진 질료를 전제하는 한 기술론의 입장에서 불충분하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508, 783)
그런데 시몽동은 질료 형상적 모델은 작용적이고 변용태적인 많은 것을 무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형식화되거나 형식화될 수 있는 질료에 독자성들이나 “이것임”들을 갖고 있는 운동 중에 있는 에너지적 질료성을 첨가시켜야만 한다. 이것드은 이미 기하학적이라기보다는 위상학적인 암묵적 형상으로서 다양한 변형과정과 조합된다. .. 다른 한편으로는 형상적 본질에서 질료로 흘러가는 본질적 특성들에 강렬한 가변적 변용태들을 첨가해야 한다. (508, 784)
요컨대 시몽동이 질료형상 모델(le modèle hylémorphique)을 비판하는 이유는 이것이 형상과 질료를 각각 개별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두 항목으로, 어떻게 결합될지 모르는 두 개로 나뉜 체계의 반쪽-사슬의 끝과 같은 것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연속적인 변조과정을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단순한 주조관계와 같은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질료형상 도식(le schéma hylémorphique)에 대한 비판은 “형상과 질료 사이에 중간적 매개적 차원의 지대가 존재한다”, 또는 에너지적, 분자적 지대가 존재한다는 명제에 기반하고 있다. 즉 질료를 가로질러 물질성을 펼치는 고유한 공간, 형상을 가로질러 표현의 특질을 표현하는 고유한 수가 존재하는 것이다. (509, 785)
§12.13. 기계적 문과 기술적 계통들 785 Phylum machinique et lignées technologiques. 509
우리는 항상 다음과 같은 규정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즉 기계적 문(phylum machinique)이란 인공적이거나 아니면 자연적인 물질성이다. 또는 동시에 양자로서, 특이성과 표현의 특질을 가지면서 운동하고 흐르고 변화하는 물질이다. 이러한 흐름으로서 물질에는 그대로 따르는(suivre)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509 785) [숙명이다. 자연의 섭리는 따르는 수밖에 없다.]
직공이란 편력자(l’itinérant, 순회자), 방랑자(l’ambulant)인 것이다. 물질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이동하는 것이며 방랑하는 것이다. 이는 행동 중인 직관이다. (786) [상구보리는 쉽다. 하화중생은 물질의 흐름을 따르듯이 인민의 흐름을 따르는 것은 쉽지 않다. (50LMJ)]
이주민(le migrant, 이민자)는 우리가 보았던 대로 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모마드(유목민)는 불가피하게 그렇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우선 순회자(l’itinérant)으로도, 그리고 이동목축인(transhumant)으로도 이주민(migrant)으로도 정의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목민에 대한 기본적인 규정은 매끈한 공간을 점거하고 유지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510, 786-787)
그러나 우리는 이제까지의 논의에서 다음과 같은 물음을 회피해왔다. 즉 왜 기계적 문(phylum machinique), 다시 말해 물질의 흐름은 본질적으로 금속적인가 또는 야금술과 관련되는 것일까? 여기서도 역시 명료하게 구분된 개념만이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는데, 이동생활과 야금술(冶金術) 간에는 특별한 기본적 관계(탈영토화)가 존재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510, 787)
질료형상모델이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조작의 종료를 나타내는 구체화된 형상은 다시 새로운 조작을 위한 질료로 기능하는데, 여기서는 연속적 문턱을 나타내는 고정된 순서를 따라 그렇게 한다. 그러나 야금술에서 여러 가지 조작들은 항상 다양한 문턱들 사이에 걸쳐 있기 때문에 에너지를 내포한 물질성은 준비된 질료를 표출하고, 질적인 변환이나 변형은 형상을 표출하게 된다. 가령 담금질과 형틀을 넘어서 단조와 연쇄하고 있다. (511, 788)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해, “환원자(réducteur)”라는 야금술의 관념은 준비된 물질로부터의 물질성의 해방과 구체화할 형상으로부터의 변형의 해방이라는 이중의 해방을 표현하고 있다. (511, 788)
확대된 반음계법이 음악과 야금술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고 있다. 음악가로서 대장장이는 최초의 “변형자(transformateur)”였다. 요컨대 금속과 야금술에 의해 빛을 보게 되는 것은 물질에 물질 특유의 생명, 물질 그 자체의 생명적인 상태로서 설령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통상 질료형상모델에 의해 분리되어 은폐되고 숨겨져 있어 인식되지 않는 물질적인 생명성이 밝게 드러나게 된다. 야금술은 “물질-흐름”의 의식 또는 사유이며, 금속은 이 의식의 상관물이다. (511-512, 789)
사유는 돌보다는 오히려 금속과 더불어 발생한다. 야금술은 인격화된 소수자 과학자체이며, “모호한”과학 또는 물질의 현상학이다. 비유적 생명(Vie non organique)이라는 경탄할 만한 관념 – 보링거는 이것을 특히 북방 야만족의 고유한 관념으로 여겼다 – 은 야금술의 발명품이자 직관이다. 금속은 사물이 아닐뿐더러 유기체도 아니라 기관없는 몸체(CsO)이다. (512, 789-790)
야금술과 연금술의 관계는 융(Jung, 1875–1961)이 믿었던 대로 금속의 상징적 가치에, 그리고 이 가치와 유기적인 혼(une âme organique)에 대응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물체에 들어있는 물체성의 내재적 역량(la puissance immanente)과 이 역량에 수반되는 단결심(l’esprit de corps)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다. (512, 790) [단결심? 물체정령?] ,
최초의 가장 중요한 편력자(l’itinérant)는 장인(l’artisan)이었다. 그러나 장인은 수렵인도 농민도 목축인도 아니다. 또한 이차적인 활동에 종사하는 바구니 짜는 사람이나 도공도 아니다. 오히려 순수한 생산성을 지닌 물질-흐름에 순종하는 사람으로서, 따라서 식물이나 동물 형태가 아니라 광물적 형태에 순종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지나 토지 위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하 생활자들이다.(512, 790) [미하일 솔로호프의 고요한 돈강에 털보 할배를 선전하며 돌아다니는 편력자로서 공산주의자인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바퀴를 고치는 장인이다.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면서 곧 인민을 해방시키는 인자한 털보 영감(맑스)가 올 것이라고 한다. (50LMJ)]
고든 차일드가 잘 보여주었듯이 대장장이(le métallurgiste, 야금장이)는 최초의 전문화된 장인이었고, 이러한 의미에서 직공으로서 하나의 단체(corps, 비밀결사, 길드, 직공조합)를 형성한다. 장인-대장장이[야금장이]는 지하의 물질-흐름에 순종하기 때문에 편력자(l’itinérant)이다. .. 다시 말해 정주 공동체의 농민들이나 그러한 공동체를 덧코드화하고 있는 제국의 관료들과 관계를 맺는다. 생존을 위해서는 이들이 필요하며, 살아남기 위해서 제국의 저장 농산물에 의존해야 한다. (513, 790)
광맥을 찾으려면 사막을 가로지르고 산맥 쪽으로 다가가야 했다. 그리고 광산 관리에는 항상 유목민이 얽혀 있다. 모든 광맥은 도주선이며, 매끈한 공간과 통해있다. 현재 석유를 둘러싸고 같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513, 791) [석유도 광물질에 속한다고 보네.. ]
고고학과 역사학은 기묘하게도 이러한 광산 관리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강력한 야금술 조직은 갖고 있었으면서도 광산은 갖고 있지 못한 제국도 있었다. 중동 근방에는 청동 제조에 필요불가결한 주석이 없었다. (513, 791) [현대에 와서는 우라늄 광산(콩고), 그리고 희토류(중국과 내몽고) 등도 문제거리이다. 북한에는 우라늄이 출토되고 희토류가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50LMJ)]
전쟁이나 광물을 구하기 위한 원정이 행해졌다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또 “중국의 해안 지대부터 서구의 해안지대까지 유목민의 대장간은 유라시아 대륙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통합되었다.”고 주장하고 “유목민들은 선사 시대부터 구대륙의 주요한 야금술 중심지와 관계를 맺어왔다”고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불충분하다. 유목민들이 이러한 중심지들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이들이 고용하거나 교섭하고 있던 대장장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본래 야금을 했던 이웃 주민이나 집단과는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513-514, 791-792)
대장장이는 존경과 경외의 대상인 동시에 경멸의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다소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유목민들로부터는 경멸당하고 정주민들로부터는 존경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이처럼 양가적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 대장장이들이 특수한 지위를 갖게된 이유, 유목민이나 정주민과의 관계가 비대칭적인 이유, 그리고 이들이 발명하는 다양한 유형의 변용태(금속적 변용태)등을 시야에서 놓치게 된다. (514, 792-793)
§12.14. 매끈한 공간, 줄파인 공간, 구멍 뚫린 공간 793 - Espace lisse, espace strié, espace troué. 514 -
대장장이들(des forgerons)은 유목민도 정주민도 아니며, 순회하는 자(ambulant), 이동[편력]하는 자(itinérant)이다. 이와 관련해 특히 중요한 것은 대장장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 하지만 이들은 이곳에 마치 “광상(鑛床)” 속에 들어 있는 광물자체처럼, 즉 동굴이나 구멍처럼 반지하나 지하 오두막에서 사는 것처럼 이러한 천막이나 집에 산다. 원래부터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필요와 기술에 의해 이런 식으로 혈거(穴居) 생활을 하는 것(troglodytes)이다. (514, 793) [“suida”를 쓴 이가 들뢰즈를 혈거인이라 했는데..]
엘리 포르(Elie Faure, 1873-193)의 빼어난 텍스트는 공간에 구멍을 뚫고, 이렇게 뚫린 구멍들에 대응하는 경이로운 형태들, 즉 비유기적인 생명의 생기있는 형태들을 만들어내면서 사방으로 이동하는 인도의 순회 민족들의 모습을 훌륭하게 환기시키고 있다. “그들은 해변이나 산기슭에서 거대한 화강암 벽을 만나면 모두 암벽의 한 가운데로 파고 들어간다. ... 3-4세기 후에는 산 전체를 뚫고 지나가 멀리 떨어진 정반대 쪽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 인간은 여기서 아무런 저항없이 인간의 강인함과 무력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는 형태로 하여금 이미 정해진 이상대로 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바위의 절단된 면들이나 우연한 형태를 이용해 무형태의 요구에 따라 그것으로부터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야금술적인 인도. (515-516, 793-794) - [홍해 바다의 해안면 동굴들(구멍이 깊은지? 모르지만)은 인도 수행자들의 것이라고 들었다. 시리아에 지하로 구멍을 뚫은 수행자들에 관한 TV 기록물을 본적이 있다. 우리 석굴암이 구멍 뚫은 암굴 사원의 모습이라 하지 않았던가? - 암석에 대한 야금술의 변양태인가?]
515쪽 사진: 구멍 뚫린 공간(l’espace troué) (515, 795): 출처, Eisenstein, La grève, coll. Cahiers du Cinema. - [아이젠슈타인(Sergueï Mikhaïlovitch Eisenstein 1898-1948), 파업(La grève, 1924)]
카인의 일족이라는 이름은 역사의 배경에서 출몰하는 이들 야금술적 민족에게만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선사시대의 유럽에는 스텝의 유목민에서 떨어져 나온 야금술적 집단인 전투용 도끼를 든 민족들이 사방을 가로질러 다녔다. 그리고 거석농업 문화에서 떨어져 나온 한 분파로 안달루시아 출신으로 종 모양의 도기로 잘 알려진 종-민족들도 사방으로 돌아 다녔다. (516, 794)
대장장이는 유목민들이 있는 곳에서는 결코 유목민이 될 수 없으며, 정주민들이 있는 곳에서는 정주민이 될 수 없다. 또는 유목민들이 있는 곳에서는 절반 유목민이거나 정주민들이 있는 곳에서는 절반 정주민이 될 수도 없다. (516, 795) [불교에서 걸승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내가 고원을 만들겠다는 처지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50LMJ)]
이들 자체가 이중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즉, 잡종이고 합금이며, 쌍생아적인 형성체이다. 그리올의 말대로 도곤 족의 대장장이는 “불순한 자”가 아니라 “혼합된 자”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족내혼을 실천하고, 단순 생식을 행하는 순수혈통과는 혼인하지 않으며, 오히려 쌍생아적 생식을 재구성 한다. 고든 차일드(Gordon Childe, 1892–1957)에 따르면 대장장이는 필연적으로 이중화된다. 즉 두 번 존재한다. 한번은 동양의 제국 장치에 의해 포획되고 키워지는 인물로서, 다른 한번은 에게 해(海)의 세계에서 이보다 훨씬 더 유동적(mobile)이고 자유로운 인물로서 이다. (516-517, 795-796)
따라서 대장장이가 유목민과 정주민들과 맺는 관계는 이들이 다른 대장장이들과 맺고 있는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잡종적인 대장장이, 무기제조자와 도구 제조자 대장장이는 정주민들과 동시에 유목민들과도 교류한다. 구멍투성이 공간 자체가 매끈한 공간과 홈이 패인 공간과 교류하고 있다. (517, 796)
보링거(Worringer)는 미학의 영역에서 추상적인 선은 전혀 다른 두 개의 표현을 갖는데, 하나는 고딕의 야만적인 선이며 다른 하나는 고전주의의 유기적인 선이라고 말했다. (517, 797) [Wilhelm Robert Worringer, 1881-1965) 독일역사가 예술사가]
[유목적 배치와 전쟁 기계... 정주적 배치와 국가 장치...]
§12.15. 전쟁기계와 전쟁: 연관의 복잡성 797, La machine de guerre et la guerre: complexité du rapport. 518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로켓맨이라고 하고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dotard(노망난 사람)’이라 하였다(170922). 전면전과 제한전, 총력전과 국부전의 암시에 앞서서 설전을 벌인 것이다. 중국의 마오(毛, 모)는 세계전쟁이 일어나도 남는 중국인은 세계의 1/4이라고 했다. 인민은 오도가도 못하는 현실에서 인간 평화의 띠로 연결접속이 답일 것이다. (50TMI)]
공리3. 유목적 전쟁 기계는 소위 표현의 형식이며, 이것과 관련된 내용의 형식이 바로 이동적 야금술(冶金術)이다.
내용 표현
실체 구멍 뚫린 공간 매끈한 공간
(기계적 문 또는 물질-흐름)
형식 이동식 야금술 유목적 전쟁기계
명제9. 전쟁(la guerre)은 반드시 전투(la bataille)를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며, 특히 전쟁기계는 무조건 전쟁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정한 조건 하에서 전투와 전쟁이 어쩔 수 없이 전쟁기계로부터 유래하더라도 마찬가지다). (518, 797-798)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에 연속적으로 직면하게 된다. 먼저 전투는 전쟁의 “목적(l’objet)”인가? 두 번째로 전쟁은 전쟁 기계의 “목표(l’objet)”인가? 마지막으로 어느 정도까지 국가 장치의 목표(objet)가 되는가? (518, 798) [역자는 목적과 목표를 구분하였다. ... ]
실제로 첫째 질문 즉 전투(la bataille) 문제는 곧 두 가지 경우를 구별할 것을 요구한다. 즉 전쟁기계가 전투를 추구하는 경우와 전투를 본질적으로 피하려고 하는 경우를 말이다. 하지만 두 경우가 공격과 방어가 일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쟁은 꼭 전투만으로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소위 말하는 전쟁은(포슈에 의해 정점에 달하는 [전쟁]개념에 따르면), 전투를 목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반면에 게릴라는 분명히 비-전투(non-bataille)를 지향한다. [게릴라란 전장 또는 전선이 없는 전투가 아닌가? 게릴라도 전쟁이지...]
그러나 전쟁이 기동전으로, 그리고 총력전으로 발전하면서 공격이라는 관점에서건 아니면 방어라는 관점에서건 전투라는 개념자체가 의문시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비-전투라는 개념은 기습의 속도와 즉각적인 대응의 대항-속도를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게릴라전의 발전은 내외의 “거점(據點, points d’appui)”과 접속하면서 실제로 전투를 추구해야만 하는 계기와 형태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게릴라전과 본래적인 전쟁은 끊임없이 상대방의 방법을 빌려오며, 이러한 차용은 양방향으로 동등하게 이루어진다(예를 들면 지상의 게릴라전은 해전에서 많은 힌트(les inspirations)를 얻어왔음이 지적되어 왔다). (518-519, 798-799) [해전일까 사막전일까? 그리고 마오에서 중국처럼 넓은 영토에서 양방향성은 있음이 분명하다.]
[둘째 질문] 일단 첫째 문제를 논외로 하고 전쟁자체가 전쟁기계의 목표가 아닌지를 질문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아주 자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전쟁(전투를 동반하든 그렇지 않든)이 적대 세력의 섬멸(l’anéantissement) 이나 항복(la capitulation)을 지향하는 한 전쟁기계는 반드시 전쟁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가령 약탈razzia은 전쟁의 특수한 형태라기보다는 전쟁기계의 다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 이미 언급한 태도 전쟁기계는 유목민이 발명한 것이다. (519, 799)
일단 이렇게 충돌[국가나 도시의 세력들 간의 충돌]하고 나면 전재 기계는 국가와 도시, 국가적ㆍ도시적 현상을 적(pour ennemi)으로 간조하고 이들의 섬멸을 목표로 삼는다. 이때야 비로소 전쟁기계는 전쟁이 되어 국가의 힘들을 섬멸시키고 국가-형식을 파괴하려고 한다. 아틸라(Attila)나 징기스칸(Gengis Khan)의 모험은 적극적 목표로부터 소극적 목표로의 이러한 연속적 전환을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식으로 말하자면, 전쟁은 전쟁기계의 조건도 또 목적도 아니지만 필연적으로 말하자면 전쟁기계에 수반되거나 이 기계를 보충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데리다(Derrida) 식으로 말하면, 전쟁은 전쟁기계의 “보충물(supplément, 보완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보완성은 점진적으로 고뇌에 가득 찬 과정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날 수도 있다. (519-520, 800)[다음은 이어지는 문장]
이러한 보완성(supplémentarité)은 점진적으로 고뇌에 가득 찬 과정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모세(Moïse)의 모험이 그러했다. 이집트 왕국을 탈출해 사막에 몸을 던지는 그는 유목민이었던 히브리인들의 오래된 과거에서 영감을 얻는 동시에 유목민 출신인 장인의 충고를 받아들여 전쟁기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정의(Justes)’의 기계로서, 이미 전쟁 기계이지만 아직 전쟁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모세는 차츰 몇 가지 단계를 밟으면서 전쟁이 전쟁 기계의 필연적인 보완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전쟁기계는 도시와 국가를 마주치거나 가로지르지 않으면 안 되며, 또 그곳으로 스파이들(les espions)(무장정찰, observation armée)을 파견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 다음으로 극단적인 수단에 호소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섬멸전, guerre d’anéantissement). 따라서 그때 유대인들은 방황했으며, 그렇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강하지도 못하다고 두려워했지만, 모세 역시 방화하면서 전쟁이 전쟁 기계의 보완물이라는 계시를 앞에 두고 망설였다. 그래서 전쟁을 이끈 것은 여호수아(Josué)였지 모세가 아니었다. 칸트 식으로 말하자면 전쟁과 전쟁기계의 관계는 필연적이지만 ‘종합적(synthétique)’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종합하려면 야훼Yaveh가 필요하다). (519-520, 800-801)
[셋째 질문] 이리하여 둘째의 전쟁 문제 역시 배제되어 전쟁 기계와 국가 장치의 관계를 묻는 셋째 질문에 종속되게 된다. 최초로 전쟁을 한 것은 국가들이 아니었다. 물론 전쟁은 어떤 폭력처럼 “자연(la Nature”의 보편성 속에서(dans l’universalité) 재발견되는 현상이 아니다. 국가도 전쟁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다. 고대 국가들은 심지어 전쟁 기계를 소유하는 것을 생각조자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지배는 전쟁기계와는 전혀 다른 권력기구(당연히 경찰과 감옥을 포함한다)를 통해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고대라고는 해도 아주 강력했던 국가들이 홀연히 사라진 신비스런 이유 중의 하나는 다름아니라 외부적인, 즉 유목적인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520, 801)
따라서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제기되는 가장 중요한 질문 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다. 즉 국가는 어떻게 전쟁기계를 전유할(s’approprier) 수 있었을까? 다시 말해 어떻게 국가 자신의 척도와 지배와 목적에 부합하게 전쟁기계를 구성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어떠한 위협을 무릅쓰는가?(군사제도나 군대로 불리는 것은 결코 전쟁기계 그 자체가 아니라, 국가가 전쟁기계를 전유하는 형태에 불과하다). (520, 801)
이러한 시도가 가진 역설적 성격을 파악하려면 가설 전체를 이런 식으로 재요약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 유목민의 발명품인 전쟁기계는 전쟁을 최우선 목표가 아니라 이차적이고 보충적인 또는 종합적인 목표로 한다. 즉 전쟁기계는 반드시 이 기계와 충돌하는 국가-형식과 도시-형식을 파괴하게 되어 있다. 2) 국가가 전쟁기계를 전유할 때 이 기계는 반드시 성질과 기능을 달리하게 된다. 국가가 소유한 전쟁기계는 이제 유목민과 모든 국가 파괴자들을 겨냥하거나 아니면 다른 국가를 파괴하거나 정복하려고 하는 국가들 간의 관계를 표현하게 되기 때문이다. 3) 그러나 이런 식으로 국가에게 전유되고 나서야 비로소 전쟁기계는 전쟁을 직접적이고 일차적인 목표, “분석적” 목적으로 삼는 경향을 보인다(그리고 전쟁은 전투를 목표로 삼는 경향을 지닌다). 요컨대, 국가 장치가 전쟁기계를 전유하는 것과 전쟁기계가 전쟁을 목표로 하는 것, 그리고 전쟁이 국가의 목적에 종속되는 것은 모드 동시에 진행된다. (520-521, 801-802)
이러한 전유 문제는 역사적으로 너무나 변화무쌍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몇 가지 문제 영역을 분명하게 구별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전유]문제는 {이러한 전유라는} 조작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전쟁기계는 자기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함에도 불구하고 주저하고, 역으로 국가 장치가 전쟁에 끼어들어 전쟁기계가 다시 유목적 전쟁기계의 보충적이고 종합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521, 802) [첫째 국가의 전유가 가능한가? 나로서는 부분적으로..]
가령 징기스칸과 그의 추종자들은 정복한 여러 제국에 부분적으로 통합되면서도 스텝의 매끈한 공간 전체는 그대로 유지해 제국의 중심을 바로 이 공간에 종속시켰기 때문에 오낼 세월 동안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이들의 천부적인 소질을 발휘한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의 핵심적인 비밀이었다. 어째든 유목민이 정복한 제국에 역으로 통합된 것이야말로 국가 장치가 전쟁기계를 전유할 수 있도록 해준 가장 강력한 요인 중의 하나였다는 것만은 변함이 없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위험으로, 유목민들은 이에 희생되어왔다. 그러나 또 다른 위험, 즉 국가가 전쟁기계를 전유할 때 국가를 위협하는 위험도 있다(모든 국가는 이러한 위험의 무게와 함께 이처럼 전유할 때 감수해야 할 위험을 감지해 왔다).
티무르(Tamerlan)가 이를 잘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로, 그는 징기스칸의 후계자가 아니라 정반대되는 자였다. 즉 유목민에 반격을 가할 수 있는 경탄할 만한 전쟁기계를 만들어낸 티무르는 이로 인해 이전 어느 때보다도 한층 더 무겁고 비생산적인 국가 장치를 수립해야만 했다. 이 국가는 전쟁기계를 전유하기 위한 공허한 형식으로서밖에 존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가에게는 전쟁기계를 다시 유목민에게 되돌리는 것이 국가를 향해 전쟁기계를 돌려세우는 유목민들이 무릅쓰는 위험 못지않게 위험한 것이다. (521-522, 803)
둘째 유형(type)의 [전유]문제는 전쟁기계의 전유가 이루어지는 구체적 형태에 관한 것이다. 즉 용병인가 토착 병사인가? 아니면 직업 군인인가 징집군대인가? 또는 전문집단인가 아니면 전국적으로 모병된 국민군인가? 이러한 구별은 서로 미묘한 차이를 보일 뿐만 아니라 이들 간의 온갖 혼합 형태도 존재한다. 따라서 가장 적절하고 가장 일반적일 수 있는 구별은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단지 전쟁 기계의 “카스트화(encastement)”일 뿐인가 아니면 본래적 의미에서의 “전유”인가. 실제로 국가 장치에 의한 전쟁기계의 카스트화는 두 가지 경로로 이루어진다. .. (522, 804) [전유의 성립은 위계화 또는 분류화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셋째 유형의 [전유]문제는 이러한 전유의 수단과 관련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국가 장치의 기본적 측면, 즉 영토성, 노동이나 공공사업 세제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검토해야 한다. 군사제도, 즉 군대의 제도화는 반드시 전쟁기계의 영토화, 다시 말해 토지의 수여를 수반하는데, 이 토지들은 아주 다양한 형태를 띠기 때문에 “식민지”에 있는가 아니면 국내에 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토지를 하사받은 전사의 의무인 봉사와 세금의 성질, 특히 군대를 재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사회 전체 또는 일부가 지불해야 하는 시민세의 종류는 납세 제도에 의해 결정된다. .. 여기서 군대는 요새 건설이나 성곽의 구축뿐만이 아니라 전략적 교통로들이나 보급로들, 산업의 하부구조 등에서 결정적인 역학을 담당한다(이러한 형태의 전유에서 엔지니어가 담당하는 역할과 기능). (522, 804) - [국가의 전유는 전쟁기계 뿐만 아니라 총력전에 필요한 시설 기반과 군사비에 필요한 자원과 세금을 포함한다. 분절들의 연접과 이접을 함께 포함한다. - 그럼에도 국가에 포획되지 않은 추상기계들이 존속한다. 국가는 전쟁 발생 시에 이 추상기계들을 잠정적 적으로 또는 거추장스런 장애물로 간주하여 감옥 또는 킬링필드를 시행한다(노근리, 보도연맹). 미군정은 한편으로 일제부역자 재판을 무화시키고, 다른 한편으로 제주도 지슬의 저항, 여순 군대의 봉기를 제압하여, 식민지 지배를 공고히 하면서 국가에 의한 전쟁기계의 전유를 시도하고자 하다가, 남북 전쟁을 통해 전유를 확정하기에 이른다. 이런 전유의 전형(type)을 토대로 박정희 군사구데타가 식민지 공고화에 기여하게 된다. 이로부터 60여년이 지나 적폐청산이 쉽게 이루어 질 것은 아니지만 시간의 경과를 통해 적폐청산을 이루어봐야 저항, 봉기, 혁명의 표현 방식을 창발해 낼 것이다. (50TMH)]
그러면 여기서 이러한 가설 전체와 “전쟁은 다른 수단을 통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클라우제비츠(Clausewitz, 1780-1831)의 정식을 대조해 보기로 하자. .. 1) 전쟁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것이라는 순수한 전쟁관, 즉 경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념’이 전쟁이라는 생각(적이라는 것 외에는 어떠한 규정도 갖지 못한 적을 정치적ㆍ 경제적ㆍ사회적 고려는 전혀 배제하고 타도해버리는 것 또는 “몰살시켜버리는 것”). 2) 국가의 목적들(des buts, 목표들)에 종속된 실제의 다양한 전쟁들만이 주어진다. 국가의 목적들은 잘하건 못하건 절대 전쟁과의 관계에서는 “지휘자(conducteurs)”가 되는 것이며, 어쨌든 경험상 절대 전쟁의 실현을 조건 짓는다. 3) 실제 전쟁은 섬멸전과 제한전이라는 양극을 왔다 갔다 하는데, 이 두 극 모두가 국가의 정치에 종속되어 있다. 즉 섬멸전(섬멸의 목표에 따라) 총력전으로 상승될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극한을 향해 상승해 가다보면 무조건적인 전쟁이라는 절대 전쟁에 근접해 가는 경향이 있는데 반해, 제한전은 가능하면 “전쟁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제한적 조건을 향해 하강적으로 근접하기 때문에 단순한 “무장 감시(observation armée)” 형태를 띨 가능성도 있다. (523, 805) [무장 감시 또는 무장정찰이란 미국이 북한에 대해 시행하는 방식의 하나일 것이다. 2017년 9월 23일 미국의 B-1B 전략 폭격기가 북한 동해 상공을 비행했다.]
무엇보다 먼저 ‘이념(Idée)’로서 절대전쟁과 현실전쟁 간의 이러한 구분은 상당히 중요해 보이지만 클라우제비츠와는 다른 기준을 적요할 때만 그러하다. 즉 순수 ‘이념’은 적의 추상적 섬멸이라는 이념이 아니라 반대로 전쟁을 목표로(pour objet) 삼지 않으며 전쟁과는 잠재적이고 보충적이며 종합적인 관계만을 갖는 전쟁기계의 이념이다. 따라서 유목적인 전쟁기계는 클라우제비츠가 언급한 바와 같이 많은 현실 전쟁 중의 단순한 한가지 사례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이념’에 완전하게 적합한 내용으로, ‘이념’과 이 이념에 고유한 목표와 공간, 즉 노모스 공간과 구성의 발명이다. (523, 806)
오히려 유목민이야말로 추상, 하나의 ‘이념’, 즉 실재적이면서도 현재적(actuel, 현실적)이지는 않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로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실제의 유목 생활의 요소들이 이주나 이동이나 순회, 이동 목축의 요소들과 혼합되기 때문이다. .. 둘째로 유목적인 전쟁기계는 그 순수한 개념에조차 필연적으로 보완물로서의 전쟁과 맺는 종합적 관계를 현실화하고(effectuer), 이 관계를 파괴해야 할 국가 형식에 대항하는 것으로서 발견하고 전개하기 때문이다. (523-524, 806)
따라서 문제는 전쟁을 어떻게 수행하는가라는 것이라기보다는 국가 장치가 어떻게 전쟁기계를 전유하는가 하는 것이다. 국가 장치가 전쟁기계를 전유하고(s’approprie), 이것을 “정치적” 목적(des buts)에 종속시키고 이 기계에 전쟁을 직접적인 목표로(pour objet direct) 부여하는 일은 모두 동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전쟁기계를 카스트화하는 다양한 형태로부터 본래적 의미에서 전유 형태들로 이행하고, 제한전(la guerre limitée, 국부전)으로부터 소위 총력전(la guerre totale, 전면전)으로 이행하고, 그리고 목적과 목표의 관계를 변형시키는 등 3중의 관점에서 국가가 진화해가는 것 또한 동일한 역사적 경향을 보여준다. 그런데국가의 전쟁을 총력전으로 만드는 요인들은 자본주의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524, 807)
그런데 국가의 전쟁을 총력전으로 만드는 요인들은 자본주의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즉 전쟁 관련 시설, 산업 그리고 전쟁 경제에 대한 고정 자본의 투자, (전쟁을 수행하는 동시에 희생자가 되는) 육체적ㆍ정신적 측면에서 인구라는 가변 자본에 대한 투자와도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총력전은 단지 섬멸전일 뿐만 아니라 섬멸의 “중심”이 이미 적군이나 적대국뿐만 아니라 적국의 인구 전체와 경제가 되었을 때에서야 비로소 출현한다. 이러한 이중적 투자는 오직 이에 앞서 제한전이라는 선행조건이 충족되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은 자본주의가 어쩔 수 없이 총력전을 발전시키는 저항하기 어려운 성격을 갖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총력전은 국가의 정치적 목적에 종속되어 있으며, 단지 국가 장치가 전쟁 기계를 전휴하기 위한 모든 조건을 최대한으로 실현하고 있을 뿐이다. (524-525, 807-808)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로부터 소위 “재출현”하는 이 전 세계적 전쟁 기계는 두 가지 형태를 계속해서 보여준다. 먼저 파시즘. 이것은 전쟁을 전쟁자체 외에는 다른 목적을 갖지 않은 무제한적 운동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파시즘은 둘째 형태를 위한 어렴풋한 윤곽에 불과했다. 둘째로는 파시즘 이후 형태. 이것은 ‘공포’의 평화(paix de la Terreur) 또는 ‘생존’(la Survie)의 평화로서 평화를 직접적인 목표로 삼는 전쟁 기계이다. 이 전쟁기계는 지금 지구 전체를 통제하고 이를 둘러싸고 있는 매끈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총력전 자체를 초월해 훨씬 더 무시무시한 형태의 평화가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808) [둘째 파시즘은 핵의 공포에 의한 평화인 셈인데, ... 미국이 북한을 상대하는데 남한이 공포의 평화를 유지한다. 전쟁기계는 자본의 작동인 군수산업체가 되는가 보다. (50TMH)]
오히려 현실 운동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운동이 끝날 대 전쟁기계를 전유하고, 이 기계를 자기 목적에 맞게 변경시킨 국가는 이번에는 스스로를 목적으로 설정하고 국가들을 역으로 전유하고 점점 더 많은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게 되는 전쟁 기계를 다시 풀어놓는 것이다. (525, 809)
의문의 여지없이 현재의 상황은 아주 절망적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우리는 지금 세계적 규모의 전쟁 기계가 마치 공상과학소설처럼 점점 강력하게 구성되어 파시즘적 죽음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평화를 자신의 목표로 삼고, 극히 처참한 국지전들(les guerres rocales)을 자신의 일부로 유지하거나 유발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또 결코 다른 국가나 체제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유형의 적, 즉 “임의의 적(l’ennemi quelconque)”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목격할 수 있다. (525-526, 809) [공상과학처럼이란, 미국이 이라크 공격에서 썼던 전자무기(일본제품포함)들은 공상과학이 아니라 현실과학이었다고 사람들은 기억한다. 그리고 한국은 미국의 요구대로 이라크 파병을 하고서 남북 간의 공포의 평화를 얻었다. 2017년에는 사드를 배치하면서 공포의 평화를 얻으려 한다. 그런데 정작 해외피난이 불가능한 인민은 핵이든 사드든 죽음을 내놓고 인간 평화의 띠를 만들면서 전쟁불가를 외칠 수밖에 없다.(50TMH)]
“임의의 적”에 대한 아래와 같은 규정이 이미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이(임의의 적)는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책략을 꾸미고, 경제적ㆍ반체제적ㆍ정치적ㆍ도덕적 영역 모두에서 편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태만의 실천자(Saboteur), 또는 계속해서 다양한 모습을 바꾸는 도망자(Deserteur)” 이론적으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전쟁 기계는 정말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이지만 그것은 전쟁기계가 전쟁 자체와 극히 다양한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전쟁기계는 한 가지 형태로 정의될 수 없으며, 증가하는 힘의 양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포함하고 있다. (526, 809-810)
앞에서 우리는 전쟁 기계의 양국을 정의해 보았다. 한 극에서 그것은 전쟁을 목적으로 하며, 우주의 끝까지 연장될 수 있는 파괴선을 형성하고 있다. .. 다른 한극은 전쟁기계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의 전쟁기계는 첫째 극에 비하면 무한히 작은 “양”을 지니며, 전쟁이 아니라 창조적인 도주선을 그리는 것, 매끈한 공간을 그리고 이 공간 속에서 인간의 운동을 위한 매끈한 공간을 편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810)
우리는 유목민이야말로 이러한 전쟁기계의 발명자라고 생각해왔다. .. 하지만 이 기계의 본질에 비추어 보자면 비밀을 쥐고 있는 것은 유목민들이 아니다. 예술적, 과학적, “이데올로기적” 운동도 잠재적인 전쟁기계가 될 수 있는데, 다름 아니라 문(un phylum)과 연동되면서(en rapport) 고른판, 창조적 도주선 또는 이동을 위한 매끈한 공간을 그리는 정도에 따라 그러한 기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유목민이 이러한 특성의 전체적인 배치를 규저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이러한 배치가 유목민들을 그리고 동시에 전쟁기계의 본질을 규정한다. (526-527, 810-811) [1227년대에는 유목민이 전쟁기계였다면, 21세기 촛불시위 전후에 전쟁기계는 역사계(검정교과서), 예술계(블랙리스트), 언론계(배제된 언노조원), 지역운동(강정, 밀양, 원자로, 성주), 소수 학계(사대강 반대), 법조계(민변), 심리학계(분열분석), 의학계(생체시계), 빨강이(맑스레닌, 마오, 쟈꼬방) 등등의 다양체들이 전쟁기계로 서울과 더불어 전국을 매끈하게 흐르게 만들었고 만들고 있다. (50TMI)]
게릴라전이나 소수자 전쟁, 인민전쟁이나 혁명전쟁이 전쟁기계의 이러한 본질에 합치하는 것은 이들 전쟁이 “보충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필연적인 목표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설령 새로운 비조직(=비유기적)인 사회적 관계라고 하더라도 동시에 다른 무엇인가를 창조할 때만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양극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는데, 심지어 또는 죽음의 관점에서 볼 때도 그러하다. 창조하는 도주선이냐 아니면 파괴선으로 전화하는 도주선이냐. 설령 한 조각 한 조각씩이더라도 스스로 구성되어 가는 고른판이나 아니면 조직과 지배의 판으로 전화해버리는 고른판이냐. 이 두 가지 선 또는 판은 서로 교류하며, 서로 보완하면서 차용한다는 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인식해 온 사실이다. 최악의 세계적인 전쟁기계조차 지구를 둘러싼 환경을 관리하기 위한 매끈한 공간을 재구성한다. (527, 811)
그러나 지구는 새로운 지구를 향한 길을 개척하면서 앞으로 나날 수 있는 독자적인 탈영토화 역량과 도주선과 매끈한 공간을 만들어 낸다. 중요한 것은 양들의 문제가 아니라, 양극에 따라 두 종류의 전쟁기계에서 서로 대결하는[대치되는] 통약불가능한 질[양들]의 성격(le caratère incommensurable des quantités)이다. 전쟁기계[다양체]들은 이 기계를 전유함으로써 전쟁을 주요사업과 목표로 만드는 국가 장치[기구]들에 대항하여 구성된다. [그래서] 전쟁기계들은 포획장치와 지배장치들의 대규모 결합접속(la grande conjonction)에 맞서 다양한 연결접속들(des connextions)을 만들어낼 만하다. (527) [전쟁기계를 전쟁기구로 만드는 국가주의에 대항하여, 다양체(각 분야별 전쟁기계들)가 연대하며 저항, 봉기, 혁명을 창발할 필요가 있다. 국가에 대항한다고 아나키스트라고 보면 안 되고, 국가주의의 위협과 위험에 저항하면서 탈주선을 만드는 작업이 인민들의 자유의지의 실현이다. 그리고 인민 지도(권력)이 창출되는 것이다. (50TMI)] - (11:41, 예전노트 40NKJ) (진행, 16:28 50LMH) (21:17 50LMI) (25:37 50LMJ) (27:2 50MKB) (37:36, 50SLC) (39:15, 50TMJ) (46:35 50UKF) (57:05, 50U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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