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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몬세라트(Monserrat) 수도원과 성당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몬세라트 수도원(Monestir de Montserrat).... 몬세라트 수도원은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열차를 타면 북서쪽으로 1시간쯤 거리에 있는데 열차가 도시를 벗어나 평화스러운 농촌 풍경을 즐기며 달리다보면 갑자기 엄청난 바위산을 만나게 되는데 그 바위산 중턱에 수도원이 있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인 바위산은 둥글둥글 기묘한 형상들로 둘러서 있고 그 중턱에 수도원과 성당이 있는데 열차에서 내려 쳐다보면 까마득하다. 이 몬세라트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우리처럼 열차를 타고 가는 방법과 1일짜리 패키지 관광버스로 가는 방법이다. 또, 열차를 타고 가서도 몬세라트역에서 내려 케이블카를 타는 방법이 있고 한 역을 더 가서 등산열차(푸니쿨라)를 타는 방법이 있다. 우리는 몬세라트역에서 내려 케이블카를 탔는데 기차역 안내판에는 스페인어와 카탈루냐어 두 가지 언어로 씌어져 있다.
몬세라트 수도원 건물 / 수도원 앞 광장 / 케이블카에서 본 풍경
케이블카는 30명 정원의 꼭 새장 같은 모양인데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가서 얼른 줄을 서야한다. 시내에서 열차표를 살 때 이미 포함이 되었기 때문에 따로 표를 살 필요는 없고, 케이블카는 30분마다 한 대씩 운행되는데 오르는데 걸리는 시간은 5분 정도이다. 이곳의 역사는 서기 800년대, 기독교 은둔자들이 이곳 바위산에 은거하고 있던 데서 시작되는데 가톨릭 수도회인 베네딕토(Benedictus) 수도원이 이 지역에 대한 관할권을 부여받았다고 한다.
11세기에서 15세기 초까지 번창하던 베네딕토회는 1410년 대수도원으로 독립하여 1560년 현재의 수도원을, 1755년에는 바실리카 성당을 지었는데 1811년 프랑스 나폴레옹의 군대에 의해 상당한 부분이 파손되고 많은 수도사들이 처참한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그 후 19세기 중반에 재건하여 수도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20세기 초에 들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는데, 지금은 베네딕토 수도회의 수도원으로 약 80여 명의 수도사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검은 성모님 뵈러가는 통로 / 몬세라트 성당 제단 / 성당 내부 모습
정식명칭은 베네딕투스 수도회의 ‘산타마리아 몬세라트 수도원(Santa Maria of Montserrat Abbey)’으로, 치유의 기적을 베푸는 오래된 ‘검은 성모자(聖母子) 목조상(像)’으로 유명한데 이 목조상은 성 누가(St. Luke)가 조각하고 사도 베드로(St. Peter)가 스페인으로 가져온 것으로 전해지며, 무어(Moor)인이 지배할 당시 동굴 속에 감춰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잊어버렸는데 서기 880년 목동들에게 밝은 빛과 함께 천상의 음악이 들려 빛이 있는 쪽을 따라가 보았더니 동굴 안에 검은 성모상이 있었다고 한다.
목동들은 놀라 만레사 주교님에게 알렸고 주교님은 성모상을 옮기려 하였지만 꼼짝도 하지 않아 성모상이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라며 이곳에 작은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만레사(Manresa)는 이냐시오 성인이 살던 곳이다.
에스콜라니아 성가대 / 성당은 미사 중 / 검은 성모님을 뵙다.
검은 성모상을 알현하려면 성당으로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으로 뵈러가는 문이 있는데 이곳으로 들어가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본당 정면의 제단 뒤쪽으로 가는 좁은 통로가 이어진다. 이 통로는 참배객들로 항상 기다란 줄이 늘어서는데 제단 바로 뒤쪽 2층의 작은 방에 검은 성모님이 모셔져 있다. 본당에 있는 사람들도 머리를 들어 제단 뒤쪽을 보면 검은 성모님을 알현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검은 성모님은 둥근 유리로 막아놓고 오른쪽에 작은 구멍을 뚫어놓았는데 그곳에 구슬을 들고 있는 성모님의 손이 보이는데 이 구슬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성모님이 계시는 이 작은 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잠벌(暫罰)을 사해주는 전대사(全大赦)의 은혜를 내리는 ‘자비(慈悲)의 문’으로 지정해 주신 문이다.
성모님을 모신 작은 방으로 오르는 계단 바로 옆에는 성가대 복장의 소년 조각상이 있는데 슬픈 일화가 있다. 이 근방에 살던 한 소년이 큰 병을 앓고 있었는데 소년은 에스콜라니아 성가대에 들어가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한다. 소년의 사연을 알게 된 수도원에서는 단 하루지만 에스콜라니아 성가대원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고 소년은 그토록 원하던 성가대 복장을 입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안타깝게도 얼마 뒤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소년의 부모는 아들의 소원을 이루어 준 성당과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에 에스콜라니아 성가대 복장을 한 아들의 조각상을 만들어 수도원에 기증했다고 한다.빈 소년합창단, 파리 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과 더불어 세계 3대 소년합창단으로 꼽히는 에스콜라니아 소년합창단은 이곳을 방문하는 순례객들과 관광객들을 위하여 무료로 매일 오후 1시에 2곡을 부른다고 하는데 한 곡은 하느님께, 또 한 곡은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순례자들을 위하여 부른다고 한다. 그리고 에스콜라니아 성가대는 이곳에서만 노래를 부르고 성당 바깥에서는 절대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하느님 앞에 너무나 부족한 제가 이 영광스러운 하느님의 은총을 모두 입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 멘~
예수님과 12사도(성당입구) / 성당 입구 / 소년 조각상
성모님께 촛불 봉헌 / 수도원 산의 뒤편 순례길 / 길옆 모든 곳에...
검은 성모님을 알현하고 뒷문으로 나오면 성당 뒤편에 둘러서 있는 바위절벽을 만나게 된다.그 절벽 아래로 순례자들이 봉헌한 색색의 촛불들로 온통 꽃밭을 이루고 있다. 초 하나에 2유로....나는 물론 기꺼이, 그런데 장로교 장로님이신 임교장도 선뜻 초를 봉헌한다. 그것도 진지한 모습으로 머리를 숙이고 간절한 모습으로 기도를 드리고.... 임교장은 나를 여러 번 놀라게 한다.
수도원 앞 광장으로 나오니 마침 일요일이라서인지 민속공연단이 와서 카탈루냐지방 민속무용을 공연한다. 남녀 무용단의 공연은 물론 성극도 하고 어린이들 무용도 공연하는데 관광객들을 위한 무료공연이다.30분 정도 관람 후 수도원 뒤쪽으로 돌아가 보았는데 절벽 끄트머리에 몇 가지 기념 조형물들이 있고 산 뒤쪽으로 돌아가면 산허리를 돌아가는 오솔길이 보인다. 호기심에 오솔길로 들어섰는데 길옆의 모든 바위에 성인들과 성모님 그림이 붙어있고 하나같이 꽃들로 장식되어 있는... 그야말로 순례길이다. 20분 쯤 가다가 되돌아섰는데 계속 가면 아마 산 중턱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수도원이 나올 것 같은데 한 시간 정도로는 될 것 같지도 않아서 포기하고 말았다.
수도원 옆 절벽 위쪽에는 공연장인가 반원형 아치로 둘러싼 마당도 보이고 기묘한 조각도 보인다. 광장에서 보면 훨씬 위쪽 절벽 끝에 십자가상이 보이는데 산 호안(Sant Joan) 성당이라고 한다. 멋져 보였지만 올라갈 자신이 없어 포기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아쉽다. 1881년, 교황 레오 13세는 이 검은 성모상을 카탈루냐의 수호성물로 선포하였다고 한다.
카탈루냐 전통무용(수도원 앞 광장) / 수도원 앞 절벽위의 공연장 / 아슬아슬한 조각 작품
21. 콜롬비아 대성당과 씨파키라(Zipaquira) 소금성당
보고타 관광의 중심인 볼리바르 광장(Bolivar de Plaza)은 남아메리카의 혁명 영웅 볼리바르(Bolivar)의 동상이 광장 가운데 우뚝 서 있는데 광장 동쪽에는 1823년에 지어져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콜롬비아 대성당(Catedral Primada de Colombia)이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웅장하게 들어서 있고, 그 뒤로는 몬세라테(Monserrate: 3,150m) 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콜롬비아 대성당은 1556년 스페인 식민시기에 처음 세워졌는데 지진으로 수차례 파괴되었다가 현재의 건물은 1823년에 재 건축된 것이라고 한다. 콜롬비아 성당의 역사를 살펴보면 재미있다.
콜롬비아 대성당 / 볼리바르 동상 / 볼리바르 광장
1556년, 원주민 인디오들이 짚으로 지붕을 덮은 허술한 성당을 지은 것이 첫 번째로 너무 허술하여 지진으로 무너져버렸다. 같은 자리에 두 번째 성당을 건축한 것이 1572년인데 1785년 다시 지진으로 붕괴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807년에 짓기 시작하여 1823년에 완공되는데 제수이트(Jesuit) 교단 전도사들의 후손들에 의해서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원래 인디오들의 말로 지명이 바카타(Bacata) 였는데 스페인 정복자들이 보고타(Bogotá)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한다.
웃기는 것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처음 이곳에 12채의 짚으로 지붕을 덮은 허술한 오두막 성당을 짓고 ‘보고타 대주교좌 성당(Archbishopric Cathedral of Bogotá)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현재의 이 성당은 건평이 5,300㎡로 콜롬비아에서는 물론 남미에서 가장 큰(넓은) 성당이라고 한다.
성당앞 볼리바르 광장 / 사람보다 많은 비둘기 떼 / 황금(Oro)박물관 안내양들
밀림 속에 있는 숨겨진 전설의 황금도시 엘도라도(El Dorado)는 유럽의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 수많은 모험가들과 탐험가들이 이 도시를 찾아 나섰다가 목숨을 잃는다.
이야기는 밀림 속에 황금으로 된 도시가 있는데 모든 것이 황금으로 이루어진 지상낙원으로 묘사되는데, 사람들 추측으로 스페인 정복자들이 원주민들로부터 무자비하게 황금을 빼앗아 배에 가득 싣고 유럽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놀라며 어떻게 이 많은 황금을??? 차마 무자비하게 빼앗았다는 말을 못하고 남미의 밀림 속에 엘도라도(El Dorado)라는 도시가 있는데 모든 것이 금으로 이루어진, 황금도시로 그냥 주워오고 얻어온 것이라고 거짓말을.... 혹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금이 있는 곳을 대라고 원주민 인디오들을 다그치자 밀림 속에 황금도시가 있다고 둘러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탐험가들 사이에서 그 엘도라도로 지목된 장소가 바로 이곳 콜롬비아라고 하며, 그래서 그런가 이 부근 나라들에서 황금과 에메랄드 등 보석과 금은이 많이 생산되고 인디오들 유적에서 황금 장신구들이 엄청나게 많이 발견된다고 한다. 그 황금 유물(황금 장신구)들을 모아 놓은 곳이 황금박물관(Museo del Oro)으로 5만여 점이나 소장하고 있는데 볼리바르 광장 바로 몇 블록 거리에 있다.
동굴입구 부근의 기념 조형물 / 소금성당 입구 / 이런 십자가가 수 십 개
소금광산이 있는 작은 도시 씨파끼라(Zipaquira)를 가겠다고 했더니 호스딸 주인인 존(John)이 교통카드를 내주고 가는 방법을 소상히 일러주며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한다.
도심을 벗어나면 위험하니 귀중품은 절대로 사람 눈에 띄지 않게 하라는데 특히 카메라와 핸드폰은 표적이 되기 쉬워 빼앗으려고 사람을 해친다고 한다. 가방도 뒤로 메지 말고 앞으로 메고 다니라는데 강도들은 물건을 뺏으려고 돌로 치고, 칼로 찌르고 한단다.
시내버스 트랜스 밀레니오(TransMilenio) B75를 타고 보고타 시 북부 종점인 북부정류장(Portal Norte/ 2,200페소)으로 향하는데 내가 카메라를 메고 있었더니 백인 노인 한 사람이 영어로 가만히 내 귀에 대고 카메라를 조심하라고 한다. 마침 자리가 났기에 카메라를 안고 앉았더니 또 뒷좌석에 앉았던 젊은 백인 부인이 카메라를 조심하라고.... 카메라를 점퍼 속에 감추고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도 얼른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북부정류장에 도착해서 다시 시골버스(차비 5,400페소)를 갈아타고 2시간쯤 시골길을 달리면 씨파끼라(Zipaquira) 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한다.
시골길을 달리다보면 차창으로 스치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스럽다. 녹색 밀림으로 뒤덮인 산들이 연이어 지나가고 드넓은 산 밑 초원에는 목장이 많은데 말과 소, 양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이 목가적이고 이름 모를 열대지방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어 위험한 지역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다.
마을에 도착하니 작은 광장이 보이는데 내가 가던 날만 그런지 항상 그런지, 그 주변은 관광기념품을 파는 수십 개의 노점상 천막들이 가득 들어서 있는데 관광객이나 사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광장을 지나 20분쯤 언덕 골목을 걸어 오르면 산자락이 나타나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정비된 소금광산 진입로가 나타나며 한쪽 옆에 씨파키라 소금성당의 매표소가 있다.
이 소금성당(소금광산)은 콜롬비아 식민시기의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 산 이름이 씨파키라 소금산인데, 스페인 식민시대 인디오 노예 광부들의 피땀과 목숨을 건 노역의 현장으로 자신들의 비참한 처지를 한탄하고 또 안전을 기원하며 틈틈이 소금이 박혀있는 암벽을 쪼아 십자가와 기도처를 조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천연 암벽과 소금으로만 조각된 성당과 수많은 십자가들이 있는데 제일 큰 십자가는 높이만 16m라고 한다. 맨 아래 대성당으로 내려가는 통로에는 열네 개의 작은 예배당이 있는데 이는 ‘십자가의 길’을 상징하고 ‘I처’부터 ‘ⅣⅩ처’까지의 숫자가 돌에 새겨져 있다.
가브리엘 천사상 / 수 십 갈래의 동굴 / 맨 아래의 대성당
나선형으로 휘감기며 내려가는 지하 동굴은 총 길이가 2km에 달한다고 하는데 지하 200m 지점에 다다르면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놀라운 건축물인 소금 대성당을 마주하게 된다. 높이 솟아오른 웅대한 지붕과 기둥, 세례를 주는 분수, 설교단, 그리스도 예수수난상을 갖추고 있다.
굴속에 처음으로 십자가와 성당을 조각한 것은 에메랄드를 채취하던 광부들이었다고 하는데 1954년에 첫 번째 성당이 완성됐지만 동굴의 구조적 안전성에 때문에 1991년부터 4년간의 재정비를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소금성당은 훌륭한 예술 작품으로, 또 남미를 찾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는 성지이자 순례지로 유명하게 되었다. 입장료는 1인당 55,000페소(약 19,000원)로 다소 비싼 편이었지만 가톨릭 신자인 내게는 큰 감동을 주는 성스러운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