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0년 2월 23일 경인년 새해를 맞이하여 용대초등 친구와 함께 대학로에서의 보냈던...
이재는 추억이 되어버린 삶의 단상을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자 이곳에 올리니 혜량하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용대 18회 동무님들!
경인년 설 떡국(첨세병)은 잘 드셨는지요?
해서 나이 한살 더 먹었지만, 남자는 49세, 여자는 39세로 멈추는 것이 우리들 나이 셈법이니
앞으로 우리들은 영원히 40대와 30대로 머물러야 겠습니다.
(허지만... 그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마음만이라도....)
지난 일요일(2/21) 오랫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친구와 대학로에서 동부인 하여 점심으로 칼국수를 함께 먹었습니다.
이 친구는 카페 닉네임이 다사랑인 김시현입니다.
소식이 이어진 지난 1월 22일(금) 이후 몇번의 만남<2월 7일(일요일) 남한산성 투어 모임(5명 : 시현,주성,준식,석필, 세준),
두 세번의 저녁 만남 등>이 있기도 했지요.....
소식 끊고 살아온 그동안의 무심함과 세월의 무상함을 일 순간에 지우고 자꾸만 보고 싶은 그러함은 아마도 우리 용대 18회
동무 모두의 하나 같은 마음들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대학로는 아시는 바와 같이 행정구역상 종로구에 위치하고 있고, 문화와 역사 그리고 젊음과 예술이 함께 하는 곳으로 마로니에
공원과 서울대 문리대가 있었던 곳이며, 지금은 서울대 의대, 치대, 간호대와 보건대학원과 서울대병원 등이 있지요..
물론 방송대학도 있고요...해서 이화사거리에서 부터 혜화동 로타리(동숭고교 앞) 까지를 흔히들 대학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현재 마로니에 공원 주변의 각종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건물은 대학 캠퍼스였던 공간을 단독주택자리로 일반인에게
분양한 곳이었습니다. 당시의 분양가를 지금의 가치로 비유하자면 아마도 대치동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유추해봅니다.
(마로니에는 서양밤이라고도 하며 이곳에 우리나라 최고 수령의 마로니에 나무가 있어 이곳을 마로니에 공원이라 칭 함)
그러나 지금엔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되었지요.... 국적 불명인 요상한 간판들.... 분위기들 연극, 공연장, 소극장 등등
그리고 특히 최근에 일본 진출을 앞두고 연일의 매진과 연장 공연을 하고 있는 조금은 요상한 "교수와 여제자"라는 연극 한편이
공연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당초에는 공연장이 평지 부근에 즐비하게 있었으나, 열악한 공연장의 재정 여건상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득이 중심부가를
벗어나 후미진 곳의 지하나, 고지대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으니,... 상업자본주의에 밀려난 서글픈 문화자본주의의 현실은 대학로
에도 예외는 아닌듯 싶습니다.(연극 관람료가 2-3만원 이상은 족히 되니 문화자본주의라 해도 되는건지.......)
특히 연건동 서울대학교가 1975년 지금의 관악산 기슭으로 옮겨가기 전에는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상아탑의 전당이었고,
그 이전인 1907년에는 국운이 기울었던 한말 우리나라 공업기술인 양성을 목적으로 건립된 "공업전습소"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지요... 또한 서울대 의과대학, 간호대학, 치과대학 등과 병원 자리는 일제강점기 황실의 진료를 위해 최신 의료시설이 필요
하다는 명분으로 궁궐앞에 병원을 건립하고, 궁궐 정문(창경궁)에 시신을 안치하는 영안실을 두어 조선 왕실의 맥을 끊으려는
의도를 내비쳤을 뿐만 아니라,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켜 동물들의 오물과 냄새를 진동케 하고, 놀이터로 하여 조선의
정신을 뺏으려 했던 그네들의 만행이 남아있어 저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자리는 창경궁에서 바라보면, 봄에는 진달래, 개나리 피고 파릇 파릇한 봄 잎내음을 맡을 수 있는 야트막한 동산으로
함춘원이라 불리는 아늑한 동산이었답니다. 이러한 연유가 남아 지금의 서울대 병원 들어가는 입구에 서울대의대 동문회관이
있는데 이 건물 이름이 "함춘회관"이라 하고, 2-3층에 중국집 음식점 상호 또한 함춘원이기도 하지요...
의대 캠퍼스(간호대 앞) 안에는 함춘원이라는 누각의 터도 있답니다. 아마도 복원 중에 있을 겁니다.
마로니에 공원에는 어부사시가로도 유명한 고산 윤선도님의 생가터가 있기도 하고요, 방송대 정문 길 건너편에는 남이 장군의
생가였다는 표지판 이 외로이 오가는 행인들을 맞이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대학로 예기가 너무 장황 했습니다만, 암튼 대학로에는 교육과 문화, 그리고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며, 지금은 여기에 젊음과
예술이 함께 어우러져 사계절 생동감이 넘쳐나는 그러한 곳이기도 하답니다.
(물론 저만 유별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요....)
암튼 이곳 부근에 있는 오래되고 허름한 칼국수집에서 친구 내외와 점심을 먹었습니다.
혜화동 로타리에서 성북동 가는 방향 골목 안쪽에 위치한 혜화 칼국수집이지요?
이집은 국수로도 유명하지만, 이보다는 몽양 여운형 선생님께서 거쳐하셨던 곳이기도 해서 나이 지긎하신 분들과 유명
정치인들이 한때 문정성시했던 그런 곳이라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요. 해서 유추해 보건데 ....
진입로에 일제시대때 건립되었을성 싶은 파출소가 있기도 하지요.
몽양 선생께서는 혜화동 로터리에서 암살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저는 이곳을 찾을 때마다 암울했던
그 시절과 당시의 정황속에서 사셨던 분들을 생각하며, 칼국수 한올 한올의 면면을 어릴적 우리 어머님 손칼국수와 비교하기도
하는 등 향수에 젖은 기분을 덤으로 느끼기도 한답니다.
혜화종 로타리에서의 개인적인 추억은 77년 어느 겨울 새벽 선친께서 계셨던 혜화동을 찾아가 일주일간을 기거하다가 부득이
고향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가슴쓰린 일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지요....
해서 저는 대학로와 동숭동, 혜화동, 연건동 등 주변 모두에 대한 애정이 다른 곳 보다 조금 더 있다고나 해야 할까요......
그리고 이곳 부근에는 칼국수가 특색있게 하는 네집이 있으니, 혹 동기생님들께서 생각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하시면
가이드와 칼국수 제공도 함께 준비할 준비 되어 있으니 오가는 도중에 연락주시면 기꺼이 나아가려 합니다.
이곳에서 생선튀김 안주와 정구지(솔, 졸, 부추, 월담초, 파옥초 등등) 김치, 그리고 매실주를 곁들인 국수 한사발의 점심은
그야말로 마음의 점을 찍기에 적합한 시간이었고, 그동안 소원했던 세월의 아쉬움을 달랠수 있었던 그러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소화와 얼콰한 술기운도 깰겸해서 동대문 성곽과 연결된 낙산공원에 잠시들러 북악산과 도봉산 등 서울 북쪽
산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팔각정에 올라 잠시 상념에 젖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낙산공원의 낙산은 낙타등을 닮았다 하여 낙타산이라 부르기도 하며, 공원 조성은 고건 서울시장 재직 당시 시영
아파트를 철거하고 지금의 공원을 조성하여 옛 모습을 일부 복원하기도 했습니다.
이곳 공원에는 국사책에도 일부 거론되기도 한적이 있지만, 청렴결백한 정승 예기(비가 새어 우산으로 비를 피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찌 정승이라는 자의 형색이 그러하냐 했더니, 비가 새도 비를 피할 수 없는 지경인 백성이 있다며,
우산이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라 했답니다.)와 흥덕이 밭과 효종의 예기가 전해오고 있는 현장을 복원하여 이러함이 사실임을
알리고 있기도 하답니다.
(혹 생각들 나시는지요...) 인조 반정으로 등극한 인조 임금은 청나라에 항복하여 남한산성과 삼전도비 등 치욕의 역사를 남긴
분으로 알고 있기도 하지요(주전론의 김상헌과 주화론의 최명길 등등).......아마도 지금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추노라는
드라마에 송태하 역을 맡고 있는 오지호와 언년이가 보호하고 있는 어린 왕세손이 아마도 소현세자(인조의 맏아들로 세자로서,
청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돌아와 독살되었다는 설이 있음)의 아드님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마도.....
이외에도 초대 대통령이신 우남 이승만 박사님의 사저인 이화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암튼 역사적 이야기와 문화적 컨텐츠가 무궁무진한 곳입니다.
이제 계절은 완연한 봄입니다. 스잔님께서 전해준 남쪽 소식은 이곳에도 어느덧 생동감 넘치는 봄을 맞이하고 있는 듯 합니다.
지난 일요일 친구와 가진 따스한 봄날 같은 시간은 너무나도 소중했습니다.
조만간 서울에서 용대 초등 18회 동기생 모두가 함께 만날 수 있는 날(?)이 다시 오기를 기대하며.......
두서 없이 적어 올립니다.
혜량하시길.......
2010. 02. 23
함춘재 권세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