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을 차리고 양초와 향을 피우고 난 후
(사회자) : 지금부터 2014년도 “인우산악회” 산신제를 올리겠습니다.
모든 회원님들은 모자를 벗고 휴대폰은 진동으로 해주시고
경건한 마음으로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그동안 국내외에서 등반사고로 인해 저 세상으로 가신
산악인의 명복을 기원하는 묵념을 올리겠습니다.
(사회자) : 일동 묵념 - 10초 후 바로
(회 장) : 첫잔을 올림 (등반대장이 술을 따름)
(사회자) : 다음은 회장께서 2014년 인우산악회 회원들의 안전 산행과
회원 간 상호 화합을 기원하는 초헌례를 행하시겠습니다.
모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회 장) : [초 혼 문]
2014. . "인우산악회" 회원 일동은 산에서 지난 한해
동안 안전 산행을 하도록 보살펴 주신데 대해 감사드리며,
금년에도 안전 산행을 할 수 있도록 술과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여 이렇게 산신령님께 바치오니 인간 세상에 내려
오셔서 우리의 소원을 기쁘게 들어 주시고, 받아 주소서 !
(사회자) : 다음은 수석 부회장께서 축문을 낭독하시겠습니다.
(부회장) : [축 문]
“ 유 - 세 - 차 ”
2014년 새해를 맞이하여 오늘 "인우산악회" 회원 일동은 이곳
산 산자락에 모여 전지전능하신 산신령님께 제를 올리나이다.
우리는 산과 자연을 사랑하며, 가까운 지인들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겠으니 올 한해도 모두 안전 산행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산신령님께 비나옵니다.
또한 우리 회원들이 모두 건강하고, 회원 상호간 화합하여
사랑과 우정이 돈독해지도록 도와주시고, 회원들 가정의
평안과 사업이 번창해 질 수 있도록 산신령님께서 저희들을
자애로우신 은덕으로 인도하소서!
아울러 오늘 사정으로 참석지 못한 산우회원은 물론, 주변
지인들까지 잘 보살펴 주시길 간절히 기원하며 회원 일동은
큰 절과 함께 술잔을 올리나이다.
2014. . 인우산악회 회원 일동 (상 - 향 )
* 모두 일어나 회장이 올린 잔에 전원 2번반 절을 함
(사회자) : 다음은 회원 모두 절을 하시겠습니다. 절은 2번 반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 회장, 등반대장, 명예회장, 고문, 부회장, 감사, 총무 순으로
참여회원 모두 절하시면서 돼지머리에 돈을 올려놓음.
(사회자) : 다음은 축문 소지(燒紙) 순서입니다.
* 회장이 축문을 불태움
(사회자) : 다음은 고시래(高矢來) 순서입니다.
* 회장이 음식 일부와 새로운 잔에 따라 술을 바침
(사회자) : 끝으로 음복을 하시겠습니다
* 제주를 컵에 따라 조금씩 전원 돌려 마심
(사회자) : 오늘 이것으로 2014년도 인우산악회 시산제를 마치겠습니다.
수고해 주신 회원님들, 특히, 후원해 주신 님 감사드립니다.
[고시래(高矢來)]의 유래에 대하여..
[고시래]에는 한민족의 더불어 사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산에 가서 식사나 간식을 할 때나 들에 나가 일을 하다 새참이나 점심을 먹을 때 또는 야외에서
식사를 할 때 첫 숟가락을 떠서 들판에 던지며 [고시래]라고 말하는 풍속이 있다.
또 초겨울이 다 되도록 감나무 끝에 감이 몇개씩 탐스럽게 달려있다.
그 감들은 높아서 따지 못한 것이 아니라, 까치의 밥으로 일부러 남겨놓는 것이란다. 그렇게 남아있는
감을 [까치밥]이라고 하며, 이것 역시 조상 대대로 내려온 [고시래] 풍속의 일종이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조상들은 콩을 심을 때 3알을 심었다.
하나만 심어도 될텐데 3알을 심은 뜻은 한 알은 새가 먹고, 또 한 알은 땅속의 벌레에게 먹이기
위한 배려이다. 고시래는 뭇 생물과 더불어 나누어 먹고자 한 생명 사랑의 미풍양속이다.
◈ 고시래의 원뜻은..?
우리나라는 수천년을 농본국가로 이어온 민족이다.
그래서 아마 가장 받들어 모셔야 하는 신은 역시 농업의 신이고..
[고시래]에서 나오는 [고시(高矢)]는 다름 아닌 단군시대부터 내려온 우리의 농신(農神)이고,
단군조선 시기에 농업을 관장하는 최고관리 명칭이기도 했다.
그리고 [고시래(高矢來)]는 [고시 농신이여,오십시요]라는 말이다.
이는 농신이 돌보아 농사가 잘 되게 해 달라는 주문이기도 한데, 뜻을 모르고 사용하다 보니,
어느 곳에서는 [고수레]로 변하기도 한 것같다. 이는 [한단고기]의 삼성기에 기록되어 있고,
또 북한에 단군릉 앞에 고시의 석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종묘 사직이라고 하여 종묘에서는 역대 왕의 제를 지냈으며,
현재 사직동에 사직공원이 남아 있는 사직단에서 제를 올리고 풍년을 빌었다.
그렇다면 고시 농신에게 빌어야 할 풍년 기원을 왜 사직단에서 빌었을까..?
사(社)는 중국 고대의 토지신이고, 직(稷)은 중국 고대의 곡식신이다.
사대모화사상에 의해 우리 본디의 고시 농신은 버려지고 사와 직이라는 중국 신이 받들어진 것이다.
철따라 종묘와 사직단에 배향하여 남의 나라 농신에게 제사를 올려진 셈이다.
한문을 터득하고 나라를 통치하던 지배계급에서는 사직신을 모셨지만, 무지렁이 농민들은 대를 이어
먼 조상들이 해오던 대로 뜻도 모르면서 [고시래~!]를 외쳐 왔다.
정말 땅에다 조금 음식을 준다고 해서 풍년이 드는 것이 아니므로 그런 풍습은 미신이라고 매도해야 할까..?
그것은 땅에 희망을 걸고, 땅에 목숨을 건 농사꾼의 기원이고 다짐이다.
◈
고시래의 유래
고시래에 대한 설화를 몇가지 들어 보자~!
여기서는 대부분이 고씨성을 가진 어머니에 대한 제사로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 유래 : 1
한 마을에 고씨 성을 갖인 사람이 부유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손이 없어서 늘걱정으로 지내야했다. 그렇지만 그는 이웃들에게 많은 도움을 베풀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면서 살았다. 그렇지만 그는 끝내 자손을 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 후 그에게 도움을 받았던 이웃사람들이 제사는 못지내어 줄망정 영혼이 굶주리게 할수 없다해서
고씨네 하고 불러 음식을 함께 나누는 뜻으로 음식을 골고루 조금씩 떼어서 던져 준것이 유래가 되었는데..
그 후 부터는 고씨가 살던마을이 부유해지고 가난을 면하게 되자 고씨의 혼백이 도와서 그런 것이라
여기고 차츰 번져가서 모든 사람들이 따라하게 된 것이라한다.
고씨네가 고시네로 다시 고시레로 변한 말이라한다.
◈ 유래 : 2
진묵대사는 一玉스님이라는 분으로 1562년(명종 17)때 태어나서 1633년(인조 11년)에 열반하신
조선 중기의 고승(高僧)으로 호는 진묵(震默)이라하여 진목대사라 불리신 분으로자신의 출가로
후손이 없어 불거촌에 어머님 묘소를 관리를 못하니, 들에나가 음식을 먹기 전 [고시래]하면서
음식을 조금 주위에 뿌리게 해 제사를 대신하였다는 거다.
이렇게 [진언]으로 제사지내는 방편을 삼으므로서, 자신의 어머니를 후세 천 년을 돌봐 줄 것이라하였다.
고로 제주 고씨(高氏)인 어머님께 예(禮)를 드린다는 데서 [고시래]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 유래 : 3
고씨 성을 가진 예쁘고 착한 처녀가 있었다.
하루는 냇가에서 빨래를 하는데 탐스럽게 생긴 복숭아가 하나 떠 내려와 남몰래 건져서 먹었다.
그런데 그 후로 잉태하여 배가 불러오더니 아들을 낳았다. 처녀의 부모가 이를 망측한 일이라 하여
어린아이를 개울가에 갖다 버렸다. 그때는 마침 엄동설한이라 몹시 추운 날이었는데 갑자기
까마귀 수천 마리가 무리를 지어 날아와서는 날개를 서로 이어 어린 아이를 덮어주고 먹이를 구해
다 주어 수십 일이 지나도 어린아이가 죽지 않았다. 이를 보고 처녀의 부모가 이상히 여겨 다시 데려다 길렀다.
그리고 복숭아를 먹고 낳은 아들이라 하여 이름을 도손(桃孫)이라고 지어 주었다.
도손은 자라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으며, 중국에 건너가 도통한 스승으로부터 천문과 지리와
음양의 비법을 배워 풍수지리에 통달하게 되었다. 그가 귀국하자 시집도 못 가고 혼자 산 어머니가 죽었다.
도손은 명당을 찾아 어머니를 묻기로 했다. 그러나 다른 자식도 없고 복숭아를 먹고 태어난 자신도 중이
되었기 때문에 발복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면서 어머니를 산에 묻지 않고 들 한가운데에 묻었다.
사람들은 풍수지리에 통달한 사람이 어머니를 산에 묻지 않고 들에 다 묻었다고 욕하였다.
그러나 도손은 [여기가 배고프지 않은 명당이다.]하며 그대로 두었다.
농사철에 근처의 농부가 일을 하다가 점심을 먹을 때 제사를 지내주는 자손도 없는 묘를 보니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농부는 들에서 일하다가 밥을 먹을 때면 [고씨네-]하면서
그 여자의 성을 부르며 밥 한술을 던져주었다. 그런데 그 해에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 다른 집들은 농사가
다 망쳤는데, 그 농부의 농사만 풍년이 들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고씨네 무덤에 적선을 했기 때문이라며,
그 다음 부터는 서로 묘에 음식을 갖다주며 [고씨네-]하고 불렀다.
이상 작자 미상의 글들을 수집 해 옮겨 보았으니 [고시래]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각자 알아서 판단하시기 바람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