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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가멀란 (Gamelan)에 대하여
김영수/KBS 국제방송국
I. 들어가는 말
문화의 국제화 시대를 맞이하여 지금까지 멀게만 느껴졌던 세계 각국의 다양한 예술 장르가 우리의 눈과 귀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권에 속해 있는 동남아시아 지역 예술에 대한 접근과 향유는 상대적으로 뒤떨어지고 있음은 사실이다. 이는 아직도 서구 중심의 예술 장르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의 시청각과 동남아시아권 예술 장르에 대한 대중 매체들의 무관심과 몰이해에서 비롯된 경향이라고 생각된다.
각 민족과 종족들이 오랜 기간 전승, 발전 시켜 온 예술 장르는 그들만의 심성과 감성을 기저로 하여 나름대로의 고유한 척도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타 민족 또는 다른 종족들의 예술 분야에 대한 접근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핵심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요체는 우리의 잣대가 아닌 것이다. 예를 들어 외부와 격리된 채 오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 종족의 조악한 타악기 소리는 그들을 이해하는 귀와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타악기 소리가 우리에게 있어 보편화, 친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우리의 타악기 소리와 비교를 통해 우열과 선악이라는 양분법으로 선을 긋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에게 점차 그 중요성을 더해 가는 동남아 지역에 대한 연구와 이해는 언어학과 지역학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체계가 확립되고 그 영역을 정치, 경제, 사회 분야까지 확대해 나가는 추세이다. 그러나 동남아 지역의 특정 분야, 특히 문화, 예술 분야에 대한 우리의 연구와 접근은 아직 실상을 소개하는 초기 단계라고 말할 수 있겠다.
동남아 지역 연구에 있어 듣는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음악분야에 대한 접근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일천한 역사 속에서 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제한성을 노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시적인 득실을 바탕으로 부침할 수밖에 없는 우리와 동남아지역 간의 정치, 경제, 사회분야의 협력 관계도 중요하지만, 정서 공감대를 항구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음악에 대한 협력관계야 말로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음악문화는 놋쇠로 만든 공(gong) 종류의 유율타악기를 중심으로 한 가멀란(gamelan)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독특한 음색을 각기갖는 다양한 타악기 군으로 이루어진 가멀란 음악은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발달되어 왔으며 그 영향이 주변 국가로 파급된 양태를 띄고 있다. 본고에서는 가멀란의 역사와 인도네시아와 같은 언어권에 속해 있는 말레이시아의 가멀란 종류와 가멀란에 대한 이슬람교의 영향 등에 대해 접근, 동남아시아 지역의 다양한 음악 장르 중, 대종을 이루고 있는 가멀란의 한 단면을 밝혀 보고자 한다.
II. 가멀란의 역사
1. 인도네시아 가멀란
가멀란은 놋쇠로 만든 대소의 공(gong) 종류와 금속편으로 이루어진 유율타악기를 중심으로 다성(多聲) 음악적 특징이 있는 오케스트라 성격이 강한 악기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인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말레이시아, 필리핀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 만날 수 있는 공 오케스트라가 가멀란인 것이다.
인도네시아 가멀란은 서부 자바, 중부 자바, 동부 자바, 발리, 칼리만탄, 남부 수마트라 지역이 유명하며 서로 간에 각기 다른 악기의 규격과 편성을 갖고 있지만 기본 연주법은 동일하다.
인도네시아 자바 지역의 전설에 따르면 가멀란이 최초로 만들어진 배경은 세상을 주재하는 신이 여러 신들을 그의 신전에 불러 모으기 위해 공을 만들어 그 소리로 신호를 삼은 것이라고 한다. 그 후 다른 의미의 신호를 위해 음정이 서로 다른 두 개의 공을 추가로 만들었는데 이 세 개의 공 세트를 로까나타(Lokanata), 또는 로까난타(Lokananta)라고 불렀으며 그 의미는 자바어로 ‘세상의 왕’이라는 뜻이며 이때가 자바력으로 167년 즉 서기 230년이 된다.
초기 자바의 가멀란의 용도는 고대 자바어인 까위(Kawi)어로 쓰여진 시에 음율을 붙여 노래하는 끼둥(Kidung)이라는 문학 장르의 반주 음악으로 사용되어졌으며 3 음계로 조율되는 슬렌드로(selendro)와 펠로그(pelog)음계로 가멀란을 연주하였다. 현재 인도네시아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3 음계 가멀란은 347년에 제작된 뭉강(Munggang) 가멀란을 들 수 있으며 현재 욕야카르타(Yogyakarta)수라카르타(Surakarta) 술탄(sultan) 왕국에 각각 1세트씩 보존 되고 있다.
3 음계인 뭉강 가멀란은 음색이 온화하지 못한 특색이 있고 악기의 배열은 목재로 만들어진 상자 위에 작은 공을 올려놓은 타악기인 께농(kenong)을 두 줄로 틀 위에 늘어놓은 거와 흡사한 보낭(bonang)이 4 세트, 2개의 큰 공, 한 개의 큰 북인 버둑(beduk)과 한 개의 작은 북인 끈당(kendang), 한 개의 심벌즈 그리고 한 개의 께농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 16세기경 세까티(Sekati) 가멀란이 등장하게 된다. 그 어원은 이슬람교 창시자인 마호메드의 탄생을 축하하는 세까탄(Sekatan)에서 유래되었으며 일 년에 한번 세까탄 기간 동안, 즉 자바력으로 3월, 제 6일 밤부터 제 12일 밤까지, 목요일 밤부터 금요일 아침까지를 제외하고는 계속 연주되어진다. 세까티 캬이 군투르 마두(Sekati Kyai Guntur Madu) 가멀란과 세까티 캬이 나가윌라가(Sekati Kyai Nagawilaga) 가멀란은 왕궁 정원에서 연주된 후 왕궁의 경비대에 의해 대 회교사원으로 옮겨진다. 첫 번째 세까티 가멀란은 16세기 인도네시아 동부 자바에 위치했던 드막(Demak) 왕조의 궁정 고문인 9인의 이스람교 성인(Wali Songo)들의 노력에 의해 제작되었다. 세까티 캬이 군투르 마두 가멀란의 아들격인 세까티 캬이 나가윌라가는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 욕야카르타(Yogyakarta) 지역 왕국의 초대 술탄인 하멍꾸부오노(Hamengkubuwono) 1세에 의해 약 200년 전에 제작되었다. 세까티 가멀란은 음색이 무거운 소리를 갖고 있으며 따라서 연주용으로만 사용되어지고 성악 반주용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세까티 가멀란에 있어 보낭은 독주할 수 있으며 북과 사론은 보낭이 만들어 내는 선율을 연주하게 된다. 이러한 연주법은 처음 도입부의 대위법 중심이 되는 정선율(Cantus Firmus)에 따르는 것을 어렵게 한다. 세까티 가멀란의 악기 배열은 한 개의 보낭, 한 개의 버둑, 실로폰 형태의 4개의 사론(saron), 한 개의 작은 사론인 뻬킹(Peking), 2개의 공, 작은 께농을 줄에 걸어 놓은 형태인 켐퍙(kempyang)과 한 개의 심벌즈로 구성되어 있다.
가멀란의 음계는 초기 3음계에서 발전하여 4세기경 5음계인 슬렌드로(1, 2, 3, 5, 6, i, 또는 panunggul, gulu, dada, lima, enam, panunggul)가 나타나게 되었으며 15세기경 7음계인 펠로그(1, 2, 3, 4, 5, 6, 7, i, panunggul, gulu, dada, pelog, lima, enam, barang, panunggul)가 출현하게 되었다.
즉 슬렌드로는 4세기경 기리 나타(Giri Nata)신이 푸루와차리타(Purwacarita) 왕국의 까노(Purba Kano) 왕에게 전해준 선물이라고 전해지며 펠로그는 서부 자바에 있었던 파자자란(Pajajaran) 왕국의 반자란사리(Banjaransari) 왕에 의해 창제 되었다는 설과 동부 자바에 있었던 꺼디리(Kediri) 왕국의 자야바야(Jayabaya) 왕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다. 그 설에 따르면 자야바야왕은 3음계(barang, enamm, lima) 가멀란에 2개의 음계 즉, 다다(dada) 음과 굴루(gulu) 음을 첨가하여 5음계를 만들었다고 하며 파자자란의 반자란사리왕은 5음계에 만족하지 않고 리마(lima) 음과 다다(dada) 음 사이에 펠로그(pelog) 음을 삽입하여 6음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완벽한 가멀란 오케스트라는 슬렌드로와 펠로그 음계로 조율된 두 세트의 가멀란이 같은 비율로 양분되어 배치된다. 과거 인도네시아에서 와양 쿨릿(wayang kulit, 그림자 연극) 공연 시, 슬렌드로 음계의 가멀란이 배경음악을 전담했으나 현재는 슬렌드로와 펠로그 음계인 가멀란이 교대로 그 음악을 담당하고 있다. 한편 그 역사가 와양 쿨릿 보다 짧은 와양 골렉(wayang golek, 인형극)에 있어서는 배경음악을 펠로그 가멀란이 맡고 있고 와양 토펭(wayang topeng, 가면극)에 있어서는 슬렌드로 가멀란이 전담하고 있다. 역사가 가장 짧은 와양 옹(wayang wong, 배우가 실연하는 극)은 그 배경음악을 슬렌드로와 펠로그 음계가 교대로 전담하고 있다.
특히 와양 공연에 있어 가멀란은 각기 3종류의 파텟(pathet) 음조로 연주되는데 슬렌드로에 있어서는 굴루(2) 음을 기본음으로 하는 파텟 넴(pathet nemm), 리마(5) 음을 기본음으로 하는 파텟 상아(pathet sanga), 어남(6) 음을 기본음으로 하는 파텟 만뉴라(pathet manyura)를 들 수 있다.
파텟 넴은 보통 밤 9시경부터 밤 12시경까지, 파텟 상아는 밤 12시경부터 새벽 3시경까지 그리고 파텟 만뉴라는 새벽 3시경부터 새벽 동이 틀 때까지의 음조를 말한다. 이에 따라 와양 공연은 3부로 나뉘어지며 넴은 인간의 청소년기, 상아는 장년기 그리고 만뉴라는 노년기를 상징하게 된다.
펠로그 음계는 파텟 리마(pathet lima), 파텟 어남(pathet enam), 파텟 바랑(pathet barang)의 3종류의 음조가 있다. 각각의 연주 시간대는 파텟 리마가 대체로 밤 9시경부터 밤 12시까지, 파텟 넴은 밤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 그리고 파텟 바랑은 새벽 3시 이후부터 연주된다.
파텟 리마는 리마(lima)음 (5)음을 기본음으로 고귀하고 조용한 멜로디를, 파텟 넴은 굴루(gulu)음 (2)음을 기본음으로 쾌활한 멜로디 그리고 파텟 바랑은 어난(enam)음 (6)음을 기본음으로 쓸쓸함, 우울함을 멜로디로 나타낸다.
인도네시아 가멀란은 주로 궁중에서의 연회나 행사 때 배경음악이나 특정의 종교행사 때 의식을 이끄는 역할을 담당했고 특히 와양 공연에 있어 변사인 달랑(dalang)의 이야기 전개에 극적 효과나 분위기설정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 말레이시아 가멀란
말레이시아에 있어서도 가멀란의 어휘 의미는 인도네시아의 가멀란의 뜻과 같다. 이는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가 같은 멀라유(Melayu)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멀란 음악이 오랜 기간 다양하고 깊이 있게 발전한 인도네시아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말레이시아의 가멀란 역사는 매우 짧다. 즉 약 18세기 말엽, 인도네시아로부터 전해진 말레이시아 가멀란은 궁정의 예식에 특히 무용 공연의 반주음악으로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졌으며 일반 대중들에게는 매우 낯선 악기의 집합체로 받아 드려졌다. 그 이유로는 말레이시아에서는 인 도네시아처럼 힌두교가 대중들에게 신봉된 적이 없었으며 따라서 마하바라따(Mahabharata)와 바라따유다(Bharatayuddha) 등 힌두교 설화를 근간으로하는 와양 공연이 말레이시아에서는 발달되지 못했다. 즉 가멀란 음악이 주요 요소가 되는 와양 공연이 말레이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에서 건너 온 자바족을 중심으로 한 극히 일부 계층만을 위해 행해졌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가멀란을 크게 대별하면 궁중에 속한 가멀란과 일반 대중들이 즐기는 가멀란으로 나눌 수가 있다. 궁중의 가멀란을 뜨렝가누(Trengganu) 지역 가멀란이라 하고 대중의 가멀란을 조호르(Johor) 지역 가멀란 또는 파항(Pahang) 지역 가멀란이라고 부르고 있다.
인도네시아 자바 지역에서 유래된 말레이시아 가멀란은 리아우(Riau, 남부 수마트라 지역)와 링가(Lingga, 말라카 해협에 위치한 섬) 지역을 경유하여 말레이시아 조호르 지역과 파항 지역을 거쳐 뜨렝가누 지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말레이시아로 가멀란을 소개한 주체는 말레이시아로 이주한 인도네시아 자바족들이며 그들은 자바어로 공연되는 와양을 위해 가멀란을 말레이시아로 가져 오게 된다. 따라서 초기 말레이시아에서의 가멀란 연주는 말레이시아인들로부터 이질감 있는 음악 장르로 받아 드려졌고 오히려 말레이시아의 술탄 궁정에서 의식용 배경음악으로 제한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즉 18세기말엽, 인도네시아 자바의 가멀란은 조호르 지역에 소개 되었고, 다시 파항과 뜨렝가누 지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뻔녱앗(Penyengat) 지역을 통치했던 자이날 아비딘(Zainal Abidin) 1세 술탄에 의해 가멀란 음악은 보호를 받게 되면서 궁정을 중심으로 정착, 발전하게 된다. 말레이시아 궁정 가멀란이 최대 융성기는 19세기 중엽부터 아흐맛(Ahmad) 술탄 통치 시기이다. 이때 3개의 대규모 궁정 무용단을 위해 가멀란 악단을 이끌었다. 그러나 1914년 아흐맛 술탄이 사망한 후 말레이시아 궁정 가멀란은 급속한 쇠퇴기를 맞이하게 되며 그 배경으로는 궁정 무용단과 함께 가멀란 악단의 동반 해체를 들 수 있다.
1930년대에 들어 와서 아흐맛 술탄의 아들인 떵쿠 아부 바까르(Tengku Abu Bakar)에 의해 해체된 가멀란 악단의 재구성이 이루어지게 되며 이를 통해 말레이시아 가멀란 음악의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에 의한 말레이시아 침공은 다시 가멀란 음악의 침체기를 가져 왔고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말레이시아 가멀란에 대한 재해석과 발전 방안이 음악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일반 대중으로부터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가, 뜨렝가누 가멀란
조호르 지역을 거쳐 뜨렝가누 지역에 전래된 가멀란은 술탄 왕궁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다. 궁중의 중요 행사, 예를 들면 결혼식, 종교의식 등이 거행될 때 가멀란 음악은 연주되기 시작했으며 초기에는 자체 가멀란 악단이 없어 링가 지역에서 있는 가멀란 악단을 초빙, 연주하게 했다. 뜨렝가누 지역 가멀란 음악의 최고 융성기는 20세기 초엽 술라이만 바드룰 알람 샤(Sulaiman Badrul Alam Syah) 술탄 통치시기로 볼 수 있다.
뜨렝가누 가멀란은 주로 밤 9시경에 시작하여 밤 12시경에 끝이 난다. 가멀란의 악기 편성은 각기 다른 2개의 사론(saron)과 께농(kenong), 끄로몽(keromong), 근당(gendang), 감방(gambang) 그리고 공(gong)으로 6종류의 악기로 구성되어 있다.
뜨렝가누 가멀란의 연주는 일반적으로 서곡으로 전쟁에 관련된 곡이 연주되며 그 다음 무용수들이 정연하게 무대에 등장하는 순서가 이어진다. 서곡 연주가 끝난 다음 롤로(Lolo) 또는 로낭(Lonang)이라는 노래가 가멀란 음악에 맞춰 불려지며 끝으로 본 공연이라 할 수 있는 무용수들의 춤이 가멀란 음악 반주에 의해 이끌어지게 된다.
뜨렝가누 가멀란의 교습과 전수 노력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주로 술탄 궁전을 중심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가멀란의 연주자들은 어린 나이 때부터 연주법을 배우기 시작하게 된다. 전통에 따라 뜨렝가누 가멀란은 악보가 없으며 교습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간에 실기, 실습을 통해 이루어진다. 처음 가멀란을 접하는 학생에게는 가멀란 악기 중 상대적으로 손쉽게 연주법을 배울 수 있는 사론이 주어지게 되며, 연주법과 음계를 터득한 후에는 연주가 쉬운 가멀란 곡, 예를 들면, 또곡(Togok), 또는 띠망 사리(Timang Sari) 등과 같은 곡을 연습하게 된다. 초기에는 가르치는 사람의 연주법을 보고 따라 배운 학생은 점차 다루는 가멀란의 악기 종류를 확대하면서 능숙하게 자기만의 가멀란 음을 찾는데 주력하게 된다.
나, 조호르 가멀란
조호르 가멀란은 슬렌드로와 펠로그 음계 모두를 연주한다. 조호르 가멀란은 말레이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자바족들을 위한 와양 공연 시, 그 반주 음악을 위해 연주되어지며 무용 공연의 특성상 화려한 톤으로 연주되는 뜨렝가누 가멀란과는 다르게 소박한 톤을 갖고 있다.
와양 공연이 있기 전에 조촐한 의식이 행해지는데 주로 와양을 이끄는 달랑(dalang, 변사)에 의해 주관된다. 이때 등장하는 제물로는 한 다발의 바나나, 한 마리의 닭, 한 개의 침, 약간의 기름 그리고 시리(sirih) 열매가 준비되어진다.
연주가 주로 이루어지는 시간은 한 밤중에 시작하여 다음 날 새벽 5시경까지이며 그 이유로는 와양의 이야기가 기, 승, 전, 결의 구성으로 인과응보와 선악의 대결이 주종을 이루고 있고 태양의 운행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와양에서는 한 밤중을 악의 세계가 가장 힘을 발휘하는 시점으로 보았고, 해가 뜨는 새벽을 선의 승리 시점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양이 떠 있는 낮 시간대에는 와양은 공연되지 않으며 인도네시아의 와양과 마찬가지로 말레이시아 와양 공연도 밤 시간대에 이루어진다.
악기의 편성은 뜨렝가누 가멀란 보다 악기의 종류가 2개 더 많다. 즉 각기 다른 규격의 사론(saron), 보낭(bonang), 께뚝(ketuk), 근당(gendang), 공(gong) 그리고 께농(kenong)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뜨렝가누 가멀란과는 다르게 조호르 가멀란은 악보가 이용되고 있으며 그 이유로는 춤사위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는 뜨렝가누 가멀라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자의적 연주법이 허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이야기 중심의 와양 공연의 반주음악으로 사용되는 조호르 가멀란에 있어서는 완벽한 악보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 악보의 원류는 인도네시아 자바 지역 가멀란 악보이며 악보 언어는 자바어로 표기 되어 있다.
따라서 초기 조호르 가멀란은 말레이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자바족들을 위한 자바어 와양 공연의 반주음악을 담당했기 때문에 공연 언어의 이질감으로 말레이시아 현지인들로부터는 와양 자체가 받아 드려지지 않았고 그 결과로 가멀란 음악 자체가 말레이시아 대중 속으로 파급되지 못했다.
다. 말레이시아 가멀란과 이슬람
힌두교가 전래되기 전부터 존재했던 인도네시아 가멀란 음악은 6세기경 힌두교가 인도네시아에 들어오면서 점차 그 종교의 영향을 직접 받게 된다. 특히 힌두교 설화를 중심으로 하는 와양 공연은 대중들의 전폭적인 호응에 힘입어 자바 지역을 중심으로 꽃을 피게 된다.
한편 말레이시아의 가멀란은 제한된 장소, 즉 술탄 궁정과 특정 계층인 자바족 사이에서 연주되는 제약 때문에 일반 대중에게 넓게 파급되지는 못했다. 이러한 제한성을 타개하기 위해 가멀란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말레이시아인들이 신봉하는 이슬람교와 가멀란 사이의 작의적인 의미 부여를 통해 가멀란의 대중화에 노력했다.
즉 알라(Allah)의 지시에 따라 아브라함이 세운 까바(Ka'bah) 성지로 이슬람의 순례를 이끌기 위해 아브라함은 잡발 카비(Jabbal Qabih) 산 정상에 올라 손에 천 조각을 들고 까바의 위치를 가르켰다고 한다. 그러나 큰 효과를 보지 못한 아브라함에게 천사장 가브리엘이 와서 3마리의 새를 주면서 그 살점을 잘게 썰어 땅에 흩뿌리면 그 살점들이 다시 새로 변해 여러 지역으로 날아가 까바의 위치를 사람들에게 알려 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노력 역시 큰 결실을 얻지 못했다. 그 때 세이크 아부 바까르 아다니(Syeikh Abu Bakar Adani)라는 사람이 큰 소리를 냄으로써 사람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악기를 가져와 아브라함을 돕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 방법은 당시 실력자인 세이크 이브누 하자르(Sheikh Ibnu Jahar)에 의해 받아 드려지지 않았고 그 악기들은 방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알라의 뜻에 따라 그 악기들은 스스로 소리를 내면서 성지인 까바 주위를 돌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이슬람교에서는 최초의 악기 출현으로 여기고 있으며 가멀란의 역사도 이때부터 시작된다고 여기게 된다.
그 영향은 가멀란 음악에 맞춰 무용수가 춤을 출 때 흔히 어깨에 두르는 긴 천은 아브라함이 산정에 올라 흔든 천을 상징하며 음악 강약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람방 사리(Lambang Sari) 곡은 아브라함이 신도들에게 성지 순례를 권하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 띠망 부룽(Timang Burung) 가멀란 곡은 아브라함에 의해 수많은 숫자로 다시 태어난 새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 가멀란의 소리를 의성어로 표현할 경우 “넹”과 “농”이라는 소리로 크게 양분할 수 있으며 5음계인 슬렌드로로 그 음들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즉 5라는 숫자의 의미는 이슬람교도들이 하루에 다섯 번 메카(Mecca)를 향해 기도하는 숫자와 같음을 들어 신성시하고 있으며 7음계인 펠로그는 알라가 세상을 만든 7일 이라는 숫자와 같다고 여기고 있다.
한편 “넹”과 “농”으로 크게 양분되는 슬렌드로 음계에 있어 다음과 같이 인간의 죽음과 관련된 이슬람의 금언이 전해지고 있다.
“Neng, neng, neng itu bukan bunyinya saron.
Neng, neng, neng itu artinya hati yang mencari kebeningan, iaitu bersih
Nong, nong, nong itu bukan bunyinya kenong
Nong, nong, nong kubur itu bukan tempat orang yang sudahh mati
Gong, tetapi tempat menyembah Tuhan yang maha agung"
"넹, 넹, 넹 그것은 사론의 소리가 아니다
넹, 넹, 넹 그것은 깨끗하고 순결함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다
농, 농, 농 그것은 께농의 소리가 아니다
농, 농, 농 그것은 이미 죽은 자를 위한 무덤이 아니다
공, 위대한 알라를 찬양하기 위한 장소인 것이다“
III. 나오는 말
지금까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가멀란 음악에 관련된 역사를 중심으로 언급하였으나 문외한적인 시각으로 접근,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제한성을 노정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가멀란 음악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기보법과 조율법 등에 관한 언급이 박약한 음악적 지식 때문에 접근하지 못했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음악에 대한 접근과 감상은 결국 그 음악을 만들어낸 민족이나 종족을 가장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다성적 음악의 진수인 가멀란 음악에 있어 동원되는 각각의 악기는 주-객의 구분 없이 모두가 주체가 되어 그 역할을 다하고 서로 주고받으며 내는 음율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심오한 내면의 세계로 침잠할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전통적인 음악에 대한 이해와 감상은 궁극적으로는 동남아인들에 대해 우리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는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인도네시아의 가멀란은 와양이라는 매체를 통해 활발히 발전, 계승되고 있는 반면에 말레이시아 가멀란은 일천한 역사 속에서 제한적으로 그 기능이 보존 되고 있음을 본고를 통해 정리, 파악할 수 있었다. 운반의 어려움과 우리들의 무관심 때문에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가멀란에 대한 직접적인 접촉과 감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음을 아쉽게 생각하며 본고를 통해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음악, 특히 가멀란 음악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참고 문헌>
1. 김영수, 인도네시아 가멀란(Gamelan)에 대한 소고, (서울 : 중앙대학교 중앙음악연구소 중앙음악연구 제4집, 1993)
2. 한만영, 전인평, 동양음악 (서울 : 삼호출판사, 1991)
3. Dr. Septy Ruzui, Kesenian Gamelan Nusantara Dalam Perbandingan Gamelan Malaysia, (Kuala Lumpur : Kementerian Kebudayaan, Belia dan Sukan, 1983)
4. Harun Mat Piah, Tradisi Gamelan dii Malaysia ; Aspekk Tradisi dan Pensejarahan (Kuala Lumpur : Kementerian Kebudayaan, Belia dan Suna, 1983)
5. Colin Mcphee, The Five-Tone Gamelan Music of Bali, (New-York : G. Schirmer. Inc.m 1949)
게재 : 전인평 외 (아시아 문화, 아시아 음악)(중앙음악연구소-아시아음악학회,아시아음악학회 총서 1, 2001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