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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4. 15. 동시집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화술
제5시집
동시집 ㅡ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1989년
머릿말
아름답고 착한 것을 꿈꾸며
어린이를 위한 글을 쓴지 15년으로 접어들었다. 꼭 어린이를 위해서만은 아닌 것이었지만 요즘들어 정말 아름다운 동시 쓰기를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 같다.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는 글이 동시라고 한다면 동시는 「동심의 시」요, 「꿈의 시」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고도로 발달해가는 기계문명 앞에 우리들은 사람 보다 물건(또는 물질)을 중시하게 되는 모습과 남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때일수록 서로가 서로를 믿고 돈이나 물건 보다 믿음과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아름다운 마음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세상이 되어야겠다.
이번에 펴내는 시집은 내게 있어 다섯 번 째로 엮는 책이 다. 샘물을 퍼내면 새로운 샘물이 솟아나오듯 더욱 좋은 글샘을 길어 올리기 위한 나의 작은 바램이 있었기에 그동안 발표되고 정리 작품들을 한데 묶었다.
아무쪼록 나의 동시가 어린이 여러분에게 감동을 주고, 동심을 가진 어른들에게도 기쁨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번의 시집 발간을 계기로 하여 다시한번 탐욕스럽고 고집스러운 마음을 버리고 아름답고 착한 것을 꿈꾸며 살고 싶다.
- 교동 서재에서 지은이 -
▉남진원 동시집 –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목차
봄눈 9 . 들판에 서면 10. 봄비 11. 봄밭 12. 꽃밭 14. 학교가는 아침 16. 이슬 17. 봄빛 3장 18. 꽃모종을 하고 20.
아침은 햇빛과 새와 나무와 바람속에서(1) 21
아침은 햇빛과 새와 나무와 바람속에서(2) 22
아침은 햇빛과 새와 나무와 바람속에서(3) 23
아침은 햇빛과 새와 나무와 바람속에서(4) 24
옹달샘 25. 안개와 산 26. 꽃밭에서 27. 오솔길 28. 산골아이 30. 시골버스 31. 해바라기 32. 해님이 꽃밭에 33. 아버지 34
아기의 잠속에(1) 36. 아기의 잠속에(2) 37. 아기의 잠속에(3) 37. 아기의 잠속에(4) 38. 엄마와 아기 39. 누구인가요 40. 어머니(1) 42. 어머니(2) 44. 어머니(3) 46. 가을바람 47. 가을꽃 48.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49. 코스모스(1) 51. 코스모스(2) 52. 코스모스(3) 53. 코스모스(4) 54. 코스모스(5) 55. 산길 56. 기차가 다니는 산마을 57. 기차를 타고 59. 과수원 60. 이슬과 코스모스에게 62. 별 63. 가을엔 나무들이 64. 대추가 여물때면 65. 고향집(1) 66. 고향집(2) 68. 고향집(3) 70. 고향집(4) 71. 고향집(5) 73. 고향집(6) 75. 고향집(7) 77. 고향집(8) 78. 고향집(9) 79. 고향집(10) 80. 고향집(11) 82. 고향집(12) 84. 고향집의 해저문 저녁처럼 86. 고향 이야기 88. 저녁상 90. 여름밤 종소리 91. 저녁강가 93. 강가에 서면 94. 밤 한톨 95. 별밤 97. 편지 99. 곁에 있어도 100. 친구 101.
[동요]
봄눈
봄눈이 소올솔 내려와서요
나무마다 꽃송이를 달아놓았지
그리고 그리고 무얼했을까
봄 냄새를 사뿐사뿐 뿌렸답니다.
봄눈이 소올솔 내랴와서요
땅 속을 가만가만 열어보았지
그리고 그리고 무얼했을까
꽃씨들의 겨울잠을 깨웠답니다.
봄눈이 소올솔 내려와서요
들판은 연두색 꿈을 꾸었지
그리고 그리고 무얼했을까
모두들 봄마중을 떠났답니다.
[동시]
들판에 서면
새들이 지저귀는
저 소리는
포름한 연두색이다.
땅에선
물컹 솟아나는
흙냄새
나무는
가지마다
분홍 꿈을 꾸고
고개 들면
어디선가
꽃내음으로 다가오는
봄 오는
봄 오는 소리.
[동시]
봄비
나무의 새 순마다
잎이 돋아나는 날
나무의 가슴 속에까지
솔솔 내리는
손이 파란
봄비.
[동시]
봄밭
사립문을 열고 나와
밭둑에 서면
햇살이 먼저 와
기다리는 이랑 이랑
새들이
아침을
파랗게 물들입니다.
밭두렁에 온통
옹글옹글 묻어나는
송아지 울음
함찬 괭이질에
숨가쁜 초록빛 숨결이
찍혀 나오고
팬히 트여가는 밭고랑에
기름기가 흐르는
햇살을 다져넣으며
거름을 뿌리시는
어머니
푹푹 갈아엎은 흙더미에서
싱싱한 봄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언제 왔는지
무럭무럭 김이 나는
참을 내려놓고
누나가 어머니를 부르고
따뜻한 봄볕으로
가득한 일터엔
땀에 밴
아버지의 소 모는 소리가
평화롭게 풀어지고 있습니다.
[동시]
꽃 밭
꽃밭 가득 피어있는 꽃들은
얼굴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정다운 친구일거야.
정다운 친구가 아니라면
그들의 향기가 그렇게 곱지는 못할거야
그들의 얼굴이 그렇게 예쁘지는 못할 거야.
그들의 고운 향기는
하나 같이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일 거야.
그들의 예쁜 얼굴은
하나 같이 정다운 이야기만
하기 때문일 거야.
그들이 만일
아름다운 마음을 잃어버린다면
정다운 이야기를 내동댕이 친다면
햇살은 울고 싶은 마음으로
따스한 손길을 거두어 들이고
구름은 슬픈 일이지만
가슴 속 깊숙히 간직한
금비 단비를 보내주지 않을 거야.
그러면
그들의 고운 향기도
예쁜 얼굴도
영영 잃어버릴 거야
다시는 피지도 못할 거야
나비도 꿀벌도 모두
마음 아파하며
다시는 찾아오지도 않을 거야.
[동시]
학교가는 아침
사랑스런 것은
모두 모아
내 책가방에 싸 주시고
기쁨은 모두 모아
내 도시락에
넣어주시고
그래도 어머니는
허전하신가 봐요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문밖에서 지켜보십니다.
[동시]
이슬
너무 맑아서
톡
건드리면
밤내 스며든
풀벌레 노래가
들릴 것 같다.
너무 고와서
톡
건드리면
밤 내 스며든
별빛이
막 쏟아질 것 같다.
풀잎에 매달린
아침 이슬.
[동시조]
봄빛 3장
손 시린 산 물소리
마을로 오고 있다.
들판은 귀가 아픈
새떼 속에 일어서고
희디흰 아지랑이에
뿌리 젖는 나무들
미루나무 잎새들이
부풀어 오른 한낮
따뜻한 것에 닿아
살 섞이는 풀과 흙
어머닌 몇 광주리
바람이고 나섰다.
보릿대궁 입에 물고
하늘 동동 나는 새떼
꽃잎 파란 숨결도
햇빛 속에 날려가고
아이들 눈썹까지 말간
풀피리도 뜨고 있다.
[동시조]
꽃모종을 하고
이른 봄날 양지 볕을 소복히 모아논 밭
보송한 흙을 헤쳐 꽃씨들을 뿌렸어요.
꿈꾸며 살며시 크라고 가만히 덮어준 흙 이불
잠깬 꽃씨들이 시샘하며 크고 있어요.
연두빛 바람 불면 옴짓옴짓 말을 할 듯
연하디 연한 얼굴로 반기는 저 새잎들
비 맞으며 아빠와 꽃모종을 하였지요.
해바라기는 맨 윗줄에 채송화는 맨 앞줄에
이제는 대접을 받는 어엿한 식구가 되었어요.
이사한 꽃님들 꽃밭에서 하마 잘까
아직도 잎 적시는 단비가 오시는데
문 열고 내려다 보니 다소곳이 섰어요.
살금이 문을 닫고 밤에 누워 있으려니
비님이 보내시는 은빛 나라 은빛 노래
내 마음 무지개 꽃밭에 송송 날고 있었지요.
[동시]
아침은 햇빛과 새와 나무와 바람 속에서
1
엄마
너무 고요해요.
모두
누구를 기다리는 건가요?
아니면 꿈을 꾸는 건 가요?
바람은 잠꾸러기에요
풀잎을 덮고
아직 자고 있어요.
단 잠
깨울 까 봐
새 한 마리
조심조심 빠져나가고
조금씩 조금씩
개울도 물소리를 풀어놓고 있어요.
2
안개
걷히면
파아란 하늘
하늘 아래
보셔요.
새들이
누굴 부르고 있잖아요.
들리지 않으셔요?
숲들이 무어라 대답하잖아요.
저 귀여운 것들 끼리
저 귀여운 것들 끼리 말이어요.
3
무엇인지는 몰라도
살결에 닿기만 해도
기쁨 같은 것이기도 하고
엄마의 사랑 같기도 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움직이고 있어요.
아,
잠깬 바람이었어요.
보드라운 바람이었어요.
그런데 누가 누가
바람을 깨웠을까요.
엄마, 지금은
바람이 나무의 팔을 붙잡고
심호흡을 시키고 있어요.
보셔요,
어린애처럼 모두들
즐거워하고 있어요.
4
눈이 부셔요.
어쩌면 좋아요.
가슴이 부셔서 견딜 수 없어요.
이제 숲속 마을도 나도
꼼짝없이
해님 품에 안겨버렸잖아요.
그런데
얄미운 해님이 뭐라는지 아세요?
너희들이 사랑스러워서 그런단다.
사랑스러워서.
[동시]
옹달샘
퐁퐁
솟는
샘 속에
초롱초롱
눈 뜬
샛별 아기
고 반짝이는
눈망울
나는 보았네.
[동시]
안개와 산
나무와 새와 바람이
안개 속에 묻혀
몸을 씻고 있다.
어느새
알몸을 드러낸
산
더 한층 파래진 잎새 속에서
상쾌한
바람이 내려오고 있다
유리 구슬 같은 새소리가
날아다니고 있다.
[동시]
꽃밭에서
철모르고
부끄러움도 없는
그런 세상이다.
벌이 한 마리 날아와
닮는 연습을 하고 있다.
[동시]
오솔길
오솔길은
내 마음의 고향
평화로운 햇살
가지에 비껴
흔들리고
언제나
훈훈한
바람이 분다.
처음 걷는 길이지만
늘 보던 것처럼
정다와
신 벗고
맨둥발로
길을 걸으면
숲은
아늑한 어머니 품
나는 한 마리 사슴이 된다.
[동시]
산골 아이
산에서 하루 해
다 보내고
들에서 하루 해
다 보내고
풋나물 냄새가 나는
산골 아이는
소를 닮아
미움을 모르고 산다.
그래서
산골아이와 같이 있으면
흙처럼 훈훈한
정이 감긴다.
[동시]
시골버스
산과 버스가
숨바꼭질 한다.
굽이굽이
숨었다 나타나고
나타났다 숨고
또 찾았다
또 숨었다
종일
산과버스가
숨바꼭질 한다.
[동시]
해바라기
땅에도
하늘 말씀
좀 주소서
지금 토지신께서
활활
봉화를 올리고 있는 중
[동시]
해님이 꽃밭에
해님이
아주 가만히
꽃송이를 열어 보고 간다.
늘 웃고 사는 가슴 속에
고인 눈물부터
먼저 만나 보시고 가신다.
[동시조]
아버지
조상이 물려주신
아버지의 아버지 땅
가꾸고 거두시느라
허리펼 참 없어도
흙처럼 푸근한 마음
고향 지켜 사셨네.
이마에 또 한금
잔주름 늘어날 때면
주름처럼 시름 겨워
더욱 붉은 황토 마루
봄 한낮 뻐꾸기 울어
가뭇가뭇 멀어지고
여름내 타는 햇살
동허리에 따가와도
아린 속살 감추신 채
굵고 튼튼한 저 힘줄
산보다 우뚝한 마음
거기 스며 계셨네.
[동시]
아가의 잠 속에
1
엄마 품에 안겨서
포근한
엄마 사랑
꼬옥 물고
아가는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그리
좋은 일이 있는지
싱긋이
자면서도
웃는다.
자면서도
웃는 아기는
얼마나 아름다운 꿈을 꿀까.
2
그 재롱
고 귀염
어디 감춰 두고
잠이 들었다.
무지개 환한
아기 꿈밭
나도 걷고 싶다.
3
엄마가 창문을 열어 놓으니
해님이 살금 들어와
‘ 아직도 자누?’
잠든 아가를 들여다보다
아가 꿈 속으로
쏘옥 쏙 들어갑니다.
4
아침이면
우리 집엔
해가 두 개나 뜬다.
크고 둥그런
아침 해와
아가의 잠 속에서
방글방글 솟아오르는
귀엽고 동그란 해.
[동시]
엄마와 아기
(1)
울다가
밥풀처럼
얼굴에 붙어 있는
기다림의 저 덩어리
이리 온
엄마가 두 손을 벌리니
눈동자가 뚝뚝 떨어질 듯
기어 온다.
(2)
엄마가 아기 옆에서
아기가 엄마 옆에서
잠이 들고
난로가 조심조심
어둠을 지키는 밤
아가 옆에서 자는
엄마 얼굴도 빙그레
엄마 옆에서 자는
아기 얼굴도 빙그레
[동시]
누구인가요
우리 엄마 품속은
웃음이 솟아나는
작은 샘입니다.
엄마가
눈짓만 해도
아기는 금방 방글거립니다.
누가
웃음이 솟는
엄마의 가슴을 주셨을까요.
우리 엄마 손은
약손입니다.
어디가 아픈가
만져만 봐도
아기는 금세 병이 낫지요.
누가 누가
신비로운 엄마의 손을 주셨을까요.
우리 엄마 등은
꿈밭입니다.
아기를 업고
뜰에 나서면
어느새 새록새록 잠이 듭니다.
누가 따듯한
엄마의 등을
주셨을까요.
엄마와 아기
아기와 엄마
세상에서 아름다운
그 이름을 주신 분은 누구인가요.
그 사랑을 주신 분은 누구인가요.
[동시]
어머니(1)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햇살을 함지에 이고
고기를 파신다
아기를 업고
그래서 더욱
무거운 고기를 파시는
우리 어머니
가난한 불빛 아래
흔들리는 발걸음이
몇 번이고 몇 번이시었던가
들판을 돌아오시는
어머니 함지 속엔
오늘도
눈물처럼 달빛이 출렁거리고
어머니 등엔
땟물 콧물 범벅이 된 아기가
피곤하게 잠이 들었다.
[동시]
어머니(2)
몸도 아프신데
좀 쉬세요.
그래도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일로 얻은 병은
일로 고쳐야 된다고
밤이면 피곤과 병이
어머니 친구처럼 찾아오지만
아침이면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우리들을 위해
품팔이를 나섰다.
쉬는 시간
교실에서 내려다보면
땡볕 아래에서 아기를 달래시며
일을 하시는
어머니 모습이 보인다.
오늘은
저녁을 차려드린 후
주무시는지 앓는지 모르는
어머니 곁에서
마른 소나무 껍질처럼
꺼칠한 손을 만지면서
몰래 울었다.
[동시]
어머니(3)
어머니!
부르면 부를수록 다정하신
젖꼭지 물고 잠드는
나를 보신 후
그제사 새우잠을 재촉하셨단던
그때 그
사랑을 지피시던 팔베개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마냥 어머니의 아들
어릴 때 말썽꾸러기로 되고 싶어요.
그래서 화내셨다가 웃다가 하시던
젊으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싶어요.
이제는 얼굴에
잔주름이 가득하신
우리 어머니
[동요]
가을 바람
(1)
바람은 바람은
집배원 아저씨
풀벌레가 붉게 쓴
단풍잎 편지
이산 저산 다니며
전해줍니다.
(2)
바람은 바람은
집배원 아저씨
산 열매 노오랗게
익은 냄새를
한 아름씩 마을로
가져옵니다.
[동시]
가을 꽃
아무렇게나 서서
쬐그만 꽃잎들
손 흔들어요.
막 1학년 들어온
우리 학교 애들처럼
웃는 모습도
삐뚤 빼뚤
그래서 더 정다워요.
[동시]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앞산이 발긋발긋 바람이 엷은 풀빛으로 술렁거리며 산에서 내려오는 날이면 맑게 씻긴 물소리를 퍼담아 오는 누나의 발자국 소리도 들리고 풀꽃의 작은 웃음 소리 몇 개도 살결에 와 기댄다.
눈에 닿는 돌 하나도 친근해지지 않고는 서운한 가을 바람 가을 속셈
여름이 떠나간 자리마다 잔잔한 햇빛이 닿아 그리움에 반짝이고 그리움은 풀꽃에 닿아 향기로 번져나고 어디에서도 탐스러운 가을 냄새가 난다.
고개를 들면 작은 내 손 하나 잡아 줄 수 있을 것 같이 파아란 하늘.
잠자리 눈망울에 깃든 고요로움을 흔들며 교회 종소리가 번져나면 밀물드는 예븐 빛깔과 소리가 마을에 동그랗게 내려앉는다.
보렴
노을이 미끄러지는 하늘 아래 새소리도 귤빛으로 익어갈 때면 산에서 내려온 나무들이 잿빛 그림자를 마을마다 풀어놓고 무엇이라도 나누어주고 싶은 얼굴을 한 과수원이며 언덕이며 들길을 서로가 서로에게 아름다운 빚을 지우려고 준비하는 환한 서두름을.
그럴 즈음이면 나는 예쁜 크레용 하나 씩 들고 풀잎을 찾아가는 꿈을 꾼다.
[동시]
코스모스 (1)
인적 드문
외딴 길
가을이
쌓인
길목에서
하늘하늘
손 흔드는
코스모스
아는 이
모르는 이
모두 반긴다.
[동시]
코스모스 (2)
초저녁
휘파람을 불며
냇둑에 앉으면
가슴에
홍건히 차오르는
외로움
꽃잎은 하나 하나
그리운 얼굴이 되어
스며들고
멀찍이 서서 바라보는
거기
온통 내 마음처럼
코스모스가 흔들리고 있다.
[동시]
코스모스 (3)
은은한 그리움으로
티 없이 맑게 피었다가
가을 바람에
호젓이 지고 있다.
네가 운다면
눈물은 얼마나 맑으랴
네가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동시]
코스모스 (4)
바람이 조금만
스쳐도
아파서
흔들리며
산다.
[동시]
코스모스 (5)
걸어가다
뒤돌아보고
걸어가다
뒤돌아보고
그래도
무엇인지
잃어버린 듯한
늦가을
아쉬움인 듯
아쉬움인 듯
코스모스가 지고 있다.
[동시]
산길
산새
울음도
저물고
아이의
휘파람 소리도
멀어져 간
늦가을
산길
친구 잃고
바람이
혼자 돌아와
도토리 굴리며 논다.
가랑잎 굴리며 논다.
[동시]
기차가 지나는 산마을
내가 사는 마을에
기차는 참 반가운 손님이다.
마을이 늘 고요한 아름다움 속에
잠길 수 있는 것은
가만가만히 기적을 울리며
마을을 지나가는
기차가 있기 때문이다.
저 안에 탄 사람들은 누구일까
한 칸 두 칸 세 칸 …
참 길기도 하다.
푸른 미루나무 숲을 헤치고
빠 -- 0
기적을 울리며 다가오는
기차를 보고 있으면
나도 기차를 타고
먼 먼 곳으로 가고 싶다
착한 사람들만 사는
아름다운 나라로 가고 싶다.
[동시]
기차를 타고
산산산
산을 지나고
들들들
들을 지나고
빨간 고추잡자리들이
맴을 도는 마을을 지날 때면
가슴이 막 뛰어요.
[동시]
과수원
어머니
푸른 산 너머 솔바람 소리는
사과나무의 잠 속에서 반짝이던
잎새들의 손짓이었어요.
봄비가 내리던 날
나무들의 가슴 속엔
아지랑이도 숨어
별처럼 아름다운 꿈을 꾸었어요.
푸른 물이 잎새마다 흐르는 과수원에
여름 내내
햇빛이 달게 익어가고
바람의 손길에
나무들은 온통
술렁이며
크고 있었어요.
어머니
이제 나무들은
가지마다 붉은 등을 달고
무겁게 서 있네요.
눈물겹도록 고운
가을 하늘 아래
고요히 고개 숙인 채
누군가를 기다리듯 서 있는 저 나무들을
보세요.
어머니는 말해 주셨지요.
저건 나무들이
봄부터 여름 내내
사랑으로 열매를 익혀왔듯이
얼마 안 있어
모든 것을 그렇게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요.
[동시]
이슬과 코스모스에게
코스모스가 울 때
하나도 모습이 안 보이지만
가을 바람 부는 저녁 들길에 서면
나는 다 안다
네가 얼마나 아름답게 울고 있는지를
이슬이 울 때는
하나도 소리가 안 나지만
아침 풀잎에 가 보면
다 안다
이슬이 얼마나 맑게 울었는지를
이슬아, 코스모스야
내게도
우는 법을 가르쳐 주렴.
[동시]
별
잎사귀에 매달린 물방울
둥지 속에서 꿈꾸던 아기새
풀잎 속에 숨어
가만히 울던 풀벌레
그들이
내가 그려놓은
초록색
작은 별을 보여 달라고 졸라요.
내가 사랑하는 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고 싶대요.
나는 부끄러워 대답을 못 했지만
그들이 잠든 틈에
살그머니
그들 곁에 놓아 두기로 했어요.
물방울과 아기새와 풀벌레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거든요.
( 동시집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화술. 1989. )
[동시]
가을엔 나무들이
본색이
드러난다.
욕심쟁이도
심술쟁이도
꼬두머리도
대머리도
가을엔
숨길 수가 없어
정말로
착한 나무도
절로
드러난다.
[동시]
대추가 여물 때면
대추가 여물 때면
물소리가
더 파래진다.
대추가 여물 때면
잠자리가
더 높이 날아다닌다.
대추가 여물 때면
코스모스가 더 맑게 피어나고
대추가 여물 때면
고향 마을 뒷산에는
통통한 보름달이 떠오른단다.
[동시]
고향집(1)
이 맘 때면
내 고향
여름 집
풀냄새
짙은
모깃불 피고
멍석 위에
풍성하게
쏟아지는 별빛
아늑하게
흐르는
바람
모두가
참으로
평화로워
이 맘 때면
내 고향
여름 집
나는
지붕 위
하얀 박꽃이 핀다.
[동시]
고향집(2)
보리밥 시래기 국 앞에
식구들이
모여 앉으면
가난한
살림에도
웃음이 솟고
숭늉그릇
모락모락
깊어가는 정
질화로에선
잉걸불이
환하게 타오르고
사락눈
사락사락
깊어가는 밤
호롱불 밝혀놓고
글을 읽다가
할머니 무릎 베고
잠이 들던 집.
[동시]
고향집(3)
싸리울
포근히
감싸고 있다.
봄, 가을
싱그러운
바람이 살고
새들이
천진스레
노래하는
내 고향
시골 집
모두
한 식구 되어
살아간다.
[동시]
고향집(4)
파아란
하늘 아래
고추잠자리 날고
해바라기
한나절
해따라 도는
마당엔
채송화도
곱게 피어서
봉숭화
손톱마다
꽃물 들이며
담밑에
모여앉아
소꿉장난 하던
어린 날
꿈이 사는
고향 시골집
[동시]
고향집(5)
문을 열면
앞산이
성큼 달려든다.
매미 소리가
몇 줄기
대추나무에 걸린 채
푸르게 흔들리고
어머니 목소리에
반들반들 닳은
부뚜막
반갑지 않은 것 있으랴.
봇도랑 물소리가
저 혼자
뒹굴며 놀 때
달님은
노오란 물감을
밤 내내 칠해 놓고 갔다.
[동시]
고향집(6)
한밤중에
우리 엄마가
순희네 울 너머로
가만가만 순희 엄마를 부른다.
마루 밑에 있던 봉당개가
반가와 콩콩콩
먼저 짖어댄다.
얼기설기 엮어놓은 싸리울 너머
슬그머니 밀어넣는
엄마 손엔
김 오르는 인절미 한 접시
철철 넘치는
인정을 받아 쥔 순희 엄마가
달빛처럼 웃는데
지붕 위 박꽃도
흐뭇해서
내려다본다.
[동시]
고향집(7)
어릴 때 나를 찾아보고 싶어
어릴 때 살던 집을
찾았습니다.
세월은 흘러
흘러 갔어도
고향집 풀포기는 그대롭니다.
배나무 집 순희는
시잡을 가고
없어도
순희네 배나무엔
올해도 배꽃이
피었다 지고
산 너머
뻐꾸기가
자꾸 웁니다.
[동시]
고향집(8)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고
글썽글성 눈물만 고였다.
신 잃어버리고
꾸중 들을 일
너무 무서워
울 밖에 서서 울먹이다
눈물젖은 얼굴을
울에 기댄 채
나는 그냥 잠이 들었다.
아, 달님이 혼자
내 눈물을
닦아주던 …
나는 지금
고향집 울타리를
만지고 섰다.
[동시]
고향집(9)
강변에 누우면
물소리 바람소리
다
내것이다.
논두렁 밭두렁
길을 지나면
흙냄새 풀냄새
모두
내 것이다.
잠들면
창문엔
혼한 달빛
잠깨면
싱싱한 닭 울음소리
그 모두
그 모두
다 내것이다.
[동시]
고향집(10)
바람은 바람 끼리
물은 물 끼리
이때 쯤이면
귓속말을 한다.
나무는 나무끼리
꽃은 꽃 끼리
이때 쯤이면
서로 몸을 기댄다.
별이 몇 개
문을 열고
살며시 내려다보는
꿈을 꾸듯
조용한
시골 밤마을
달님이
시골집 봉창에
밤 깊도록
동양화를 그리고 있다.
[동시]
고향집(11)
마음이 외로울 때
언덕에 올라
그리운 내 고향
불러 봅니다.
가도 가도 끝 없는
저 하늘 너머
흰구름 뭉게뭉게 떠도는 그곳
울밑엔 채송화 맨드라미가
노을처럼 붉게 타는
머언 고향집
대추나무 잎새마다
노래가 익어
매미소리 치렁치렁
늘어지는 한낮
파아란 하늘 속에
고추잠자리
검둥소 한가로이
풀 뜯는 마을
밤이면
꿈속에서
찾아갑니다.
[동시조]
고향집(12)
키 큰 나무 그리고 울
술래 잡던 넓은 마당
뒤란엔 잡초만
키자랑 하고 섰고
빗물 괸 오지그릇에
숨어 웃는 어린 날
뽀얗게 볕이 묻은
터밭의 깨나무 밑
순희와 소꿉놀던
발자국도 찾아보고
그 속에 깔깔거리던
웃음소리도 찾아본다.
청솔 태우며 밥 지으시던
새댁 때 엄마 모습도
한 여름 대추나무에
푸르게 울던 매미소리도
품어서 안고 살아가는
고향 옛집 싸리울.
[동시]
고향집의 해 저문 저녁처럼
박 넝쿨 주저리 주저리
감겨 올라간 지붕 위로
핏빛 노을이 흐르고
청솔 타는 냄새
자욱한
울 너머로
순희가 나를 부르던
고향집도
싸리울도
이젠 먼 얘기지만
아직도 깊은 산
외딴 집 뒤란엔
왕거미줄이 걸리고
방안엔
몇 식구 옹기종기 모여
등잔불처럼 훈훈한
저녁을 나누고 있을 게다.
[동시]
고향 이야기
우리 어머니가 살던 고향 마을에 크고 작은 샘이 솟고 있었다. 어머니가 이고 오는 물동이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하늘이 컴컴한 부엌 한 쪽에 웅크리고 있었는데 저녁이면 뒷산에서 우는 부엉이 소리가 물동이에 고인 하늘을 몰래 퍼나르고 어머니는 꿈속에서도 훠이 훠이 부엉이를 쫓고 있었다.
선사시대부터 살던 바람소리가 이따금 동구밖에서 들릴 때가 있다. 내 꿈 속에서도 가끔 낯익은 얼굴로 만나는 바람의 손, 고향 사람들은 잠 속에서도 바람이 앞산에서 내려오는 시간을 안다. 그런 밤이면 마을은 녹말처럼 가라앉았다.
송화가루가 뻐꾸기 울음처럼 날리던 날, 영자 누님은 보따리에 어머니 한숨을 싸 담고 떠났다. 다음 해 보리가 패면 돌아온다던 누님은 속초 어디에서 바다를 파는 비린내 나는 소문만 들려오고 산도라지처럼 뿌리 박고 살자던 할아버지는 대대로 함께 늙어온 고향 달빛을 지고 그해 가을 홀연히 운명하셨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는 어머니 고무신에 성황당 고갯마루 푸른 달빛만 쌓이고 쌓였다. 열병으로 죽어가는 막내 곁에 침묵으로 더욱 붉게 고이는 어머니 가슴앓이
날이 새자, 산 너머 쏟아져내린 생생한 햇살에 파랗게 잠이 깬 까치들이 소금처럼 익은 어머니 눈물을 고향 뒷산에 묻고 있었다.
지금 내리는 눈은 대낮처럼 밝아 와도 저 벌판의 끝에서 맨살 떨고 선 나무들, 한 덩이 매운 맛으로 겨울 낮달이 뜬 채 그날 고향 어른들은 들새처럼 떠나가고 있었다.
[시]
저녁 상
산마을 이야기가
개구리 울음으로 피어 술렁이는
초여름 저녁
한타래 피곤을
괭이자루에 걸어놓고
푸른 맛으로 둘러앉은
식구들
땀 냄새 흙냄새로 섞여가며
앞 단추 한하게
마음을 헤쳐놓고
상치쌈에
풍성한 웃음을 싸 담는다.
땡볕에 익은
하루를 싸 담는다.
[동시]
여름밤 종소리
잎새마다
초록이
엷은 어둠의 비닐을 쓰기 시작하고
방울방울
개구리 울음이
눈 뜨기 시작할 때
마을 가운데 들어서ᅟᅥᆫ
교회당
그 위에서
맑은 숨결로 쏟아지고 있는
귀가 푸른 종소리
여름밤은
황토길 위로
무수한 별을 뿌리기 시작하고
산마루엔 종소리가 익어
노오랗게 물든 달님이
환하게 피어오르고 있다.
[동시]
저녁 강가
조용한
강가에
노을이
지고
보일 듯
말 듯
아련한
강둑
그
위에
혼자
흔들리고 선
송아지
울음
[동시]
강가에 서면
나는
바구니
강가에 서면
건질 것이
없어도
강가에 서면
물새가 울며
혼자 지날 땐
그 울음 외로워
담을 수 없는
나는
비인 바구니
강가에 서면.
[동시]
밤 한 톨
영희가 내게 준
밤 한톨
만져본다.
껍질마다 매끌매끌
흐르는 윤기
그걸 들여다 보면
호수처럼 맑은
네 눈빛
아롱아롱 떠오르고
손톱에 꽃물 들인
노을처럼 고운 손
생각이 나서
창가에 기대
자꾸만
만져보다
내 가슴에
따뜻하게 고이는
밤 한톨.
[동시]
별 밤
깊은 밤에 깨어나
하늘을 보면
알알이
내 가슴이 젖는
아름다운 눈빛
별처럼
아름답게
살고 싶어라
깊은 밤에 깨어나
하늘을 보면
여린 몸짓으로 부르는
초롱한 음성
네 모습
너무 고와
울고 싶은 밤
너를 닮은
꽃이 되어
살고 싶어라.
[동시]
편지
무엇을 쓸까
턱을 고이면
지난 여름 동해 바닷가를 걷던
네 발자국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 온단다.
무엇을 쓸까
창밖을 보면
이마를 마주 하고 듣던 얘기들이
박꽃처럼 가슴에서 피어난단다.
무엇을 쓸까
눈을 감으면
아아
하나 가득 네 얼굴만 떠오른단다.
무엇을 쓸까
턱을 고이면.
[동시]
곁에 있어도
풀잎들이 사는 마을에
찔레꽃이 피고
나비와 새들이 날아다닙니다.
마음이 맑아
저들끼리 사랑하는 모습을
나는 곁에 있어도
닮을 수가 없습니다.
[동시]
친구
지난밤에 좋은 꿈도 꾸지 못했는데
정말인가
진주야, 네가 오다니
안 먹어도 배부른 오늘을
소풍날에다 비기랴
생일날에다 비기랴
안개처럼 아스라한
먼 곳에서
나를 위해 진주야 네가 오다니
새야
노래하는 새야
냇물아
우물쭈물 흐르는 냇물아
아아 오늘은 그저
깡총거리며 까불고 싶구나.
덕수야, 경호야 오늘은
아무데나 막 뒹굴고 싶구나.
▉ 약력
•강원 정선 골지 출생
•호: 물내
•정선 문래국(‘65), 강릉 경포중(’68), 강릉고(‘71), 강릉교육대학(’73)
한국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86) 졸업
•태백 화전, 정선 문래, 벽탄, 증산 국민 학교에서 교편 생활 15년
•샘터시조상 수상 (‘76)
•아동문예 동시 천료 (‘77)
•제7회 기독교 교육 동요 동시 부문 입상. (‘78)
시조문학 초회 추천 ‘저녁 산길’ (‘78)
•월간문학 신인상 시조 당선 (‘80)
•시조문학 시조 천료 (‘80)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83)
•계몽사 어린이문학상 수상(‘83)
•제4회 강원아동문학상 수상(‘84)
•강원도 교육감 표창 (‘80)
•정선군 교육장 표창 (‘84)
•문교부장관 표창 (‘87)
•현장교육연구 국어교육분과 도 2등급 임상(‘87)
•현장교육연구 국어교육분과 도 3등급 입상(‘88)
•학습지도 우수 강원도 교육감 상장 (‘88)
•조약돌, 감자, 해안문학 회원
•강원아동문학회 사무국장 역임 (‘85 - ’88)
•강원시조문학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정선지부 사무국장, 부지부장 역임 (‘87 - ’88)
•정선아라리문학회장 역임 (‘87 - ’88)
•관동문학회원
•한국글짓기지도회원
•한국아동문학회 이사
•한국시조시인협회원
•한국문인협회원
•정선장학 편집위원 역임 (‘86 - ’88)
•강릉 명주 국민 학교 교사. •한정동아동문학상 수상 (‘89. 5)
지은 책:
제1시집. 동시집: 싸리울 (‘82)
제2시집. 시집:나비, 청산의 나비 (‘85)
제3시집. 시집: 넘치는 목숨으로 와서(‘87)
제4시집. 동시집: 풀잎과 코스모스에게(‘88)
☘주소: 강릉시 교1동 972-2. 교동연립 B동 1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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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술어린이문고 9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1989년 4월 10일 인쇄
1989년 4월 15일 발행
지은이 남진원
펴낸이 고재갑
펴낸곳 도서출판 화술
서울특별시 쫑로구 평창동 462(화술회관)
전화: 352 – 1505. 1683. 3810. 1731
출판등록번호 제 1 – 6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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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표지 하단: 본 동시집은 문예진흥원의 발간비 지원을 받은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