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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경 제3권
10. 보시복덕품(布施福德品)
그때 세존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였다.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무리들이 적은 선근을 심는 것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며,
한 번 마음을 내어 한결같은 믿음을 가진다면 이런 사람은 모두 열반을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한다고 나는 말하겠거니와,
이런 이유로 해서 비유를 든다면,
모든 청정하게 믿는[淸信] 남자와 여인들로 하여금 깊이 청정한 믿음을 내고, 그리하여 다시 공경하고 소중하게 큰 사랑과 기쁨을 일으켜서 뛸 듯이 즐겁게 하겠다.
아난아, 이는 어부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 큰 못 속에다 미끼를 설치하고 물고기가 물도록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면 아무리 못 속에 있다 하더라도 오래지 않아서 마땅히 나와야 할 것이다.
어째서인가?
이처럼 물고기가 견고하게 낚시 바늘에 물렸으니, 비록 아직 못 속에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땅 위로 끌려나올 것이란 것은 당연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이 낚싯줄이 못 둑의 나무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이때 어부는 이리로 와서 고기가 물렸다는 것을 알고는 바로 낚싯줄을 당겨서 당장 못 기슭의 적당한 곳으로 끌어내어 잘 둘 것이다.
이와 같이 아난아, 모든 중생들이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공경하고 믿는 마음을 내어 모든 선근을 심고 보시를 수행하여 드디어 마음을 내어 한결같이 생각하고 믿게 된다면,
비록 다른 선하지 못한 악업이 방해를 놓아 지옥ㆍ축생ㆍ아귀와 기타 모든 곤란한 곳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만일 불세존이 이 세상에 나온다면, 그 부처님의 눈으로 모든 중생들을 볼 것이니,
이 중생들이 보살승을 행하였는가, 연각승을 행하였는가, 성문승을 행하였는가를 볼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 모든 중생들은 여러 선근을 심었고 이들 모든 중생들은 여러 선근을 끊었으며,
이들 모든 중생들은 물러나는 분(分)에 떨어졌고 이들 모든 중생들은 좋은 나아가는 분에 있으며,
이들 모든 중생들은 여러 종자를 성현의 지위에 심어 두어서 부처님의 복전에 드디어 마음을 내어 한결같이 믿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서 보시를 수행하였다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근으로 해서 모든 불세존이 그 부처님의 눈으로 이들 중생들의 마음을 내 훌륭함을 보시기 때문에 지옥으로부터 이들을 끌어내며,
끌어낸 뒤에는 열반의 언덕에 이들을 둘 것인 바, 열반의 경계에 둔 뒤에는 그들의 기억을 되살려서 본래 여러 부처님의 처소에서 선근을 심었다는 것을 깨닫게 할 것이다.
이처럼 생각해 내면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바가바시여. 그렇습니다, 수가타시여.’
그러면 부처님께서 말씀할 것이다.
‘선남자야, 너희들은 이와 같은 선근으로 해서 큰 과보를 얻고 큰 이익을 얻었으니, 부처님에게 보시를 수행하여 선근을 심었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이처럼 기탁한 것을 끝내 훼손하지 않는다면, 가령 그 오래가기가 심지어 백천억 나유타 겁을 지난다 하더라도 저 하나의 선근은 반드시 열반을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하는 것이다.’
아난아, 여기서 말한 물고기는 여러 범부(凡夫)에 비유한 것이며,
못은 생사(生死)의 바다를 말한 것이며,
낚시 바늘은 부처님의 처소에서 하나의 선근을 심는 것을 말한 것이며,
낚싯줄은 4섭(攝)을 말한 것이며,
고기잡이는 불ㆍ여래를 말한 것이며,
뜻에 따라 물고기를 사용한 것은 모든 여래가 중생들을 열반의 과보에 편히 두는 것을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은 차례를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일 부처님의 복전(福田)을 베풀어서 설사 오래 되어도 끝까지 이를 망가뜨려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마침내 다함이 없고 끝남이 없어서 반드시 열반의 과보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아난아, 내가 지금 다시 비유를 들어 불전을 베풀어 제일(第一)열반을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하는 것이다.
아난아, 만약 중생들이 세간의 과보를 탐내어 세간의 행을 행하고 세간을 사랑하여 세간을 바란다 해도,
여러 부처님의 처소에서 보시를 행한다면,
이러한 선근으로 해서 인천(人天)의 선도(善道)를 바라는 것으로 되돌려 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중생이 모든 부처님에 대하여 모든 선근을 심으면서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이 선근을 인하여 제가 세세(世世)로 열반에 들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아난아, 그러나 이들 중생들이 이러한 선근을 가지고도 열반에 들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째서 그런가?
아난아, 이와 같은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복전(福田)은 황폐하지도 않고 잡초가 나지도 않나니 욕심과 때[垢]와 허물을 여의어서 지극히 청정하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밭에다 적은 선근과 복덕의 종자를 심는다면 나머지 밭에서 생장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세 종류의 보리 종자를 만들 수 있으니 위없는 보리와 연각의 보리와 성문의 보리이다.
저들 모든 선근들이 끝내 어긋나거나 잃게 되지 않으니 이러한 보시로 해서 마음에는 믿고 존경함이 생겨서 인연을 늘리게 되는 것이며,
이로 하여 선도(善道)에 나아가 청정한 법을 얻어서 반드시 열반에 들게 되는 것이다.
아난아, 비유하자면 이는 장자가 논밭을 경영함에 있어, 그 땅이 거칠지 않고 잡초나 자갈 등도 없는데다 더욱 거름을 주어 기름지게 하고, 갈아주고 김매어서 부드럽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상하지 않은 싱싱한 새 종자를 좋은 그릇에 담아 와서 제철에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때에 따라 물을 주고 김을 매어 가꾸어서 모든 시기를 언제나 잘 보살피는 것이다.
아난아, 그런데 만일 이 장자가 농사를 짓는 농부이면서 여유가 생긴 시간에 그 논밭에 나가서 밭둑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쯧쯧, 이 종자들이여, 너희들은 싹이 트지 말고 나서 자라지도 말라.
나는 아무런 이익도 구하지 않고 보답도 바라지 않는다.’
아난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농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과연 씨앗이 싹트지 않고 나서 자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아난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바가바시여.
아닙니다, 수가타시여.
저 곡식들은 반드시 열매를 맺을 것이고 열매가 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 그렇다, 아난아.
이와 마찬가지로 설사 중생들이 즐겨 생사에 집착하여 삼계(三界)에 애착하는 과보를 가져서 부처님의 복전에 선근을 심고는,
‘부디 바라건대 이 선근으로 해서 제가 열반하는 일이 없게 하여 주소서’ 한다 해도 이 사람이 열반하지 못하는 이치는 없는 것이다.
아난아, 이 사람이 비록 열반을 즐겨 구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그러나 부처님 처소에서 선근들을 심었기 때문에,
나는 이런 사람은 반드시 열반을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의 처소에서 한 번이라도 마음을 내어 한결같이 공경하여 믿는 마음이 생겨서 선근을 심은 자라면, 모두 마땅히 열반을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하는 것이다.
아난아, 오는 세상에 변지(邊地)의 왕이 있어서 그가 비록 불법(佛法)의 공덕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의 정사(精舍)나 형상을 보고 마음에 믿음을 내니,
내가 옛날에 다섯 가지의 길[五道]의 곳곳에서 생(生)을 받아서 모든 보살행을 닦을 때에 4섭법(攝法)인 보시ㆍ애어(愛語)ㆍ이행(利行)ㆍ동사(同事)를 가지고 이미 저 변지의 왕을 포섭했기 때문이다.
아난아, 따라서 저 변지의 왕이 만일 나의 정사와 형상을 보고 공경하여 믿는 마음을 낸다면, 이러한 선근으로 해서 그는 반드시 열반을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하게 될 것이다.
아난아, 저 변지의 왕은 마땅히 여러 신하가 있고 왕자들과 대신들이 있어서 도울 것이며, 친척과 동기와 여러 반려(伴侶)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내가 멸도(滅度)한 뒤에 나의 정사(精舍)와 형상을 보고 비록 모든 부처의 공덕이나 부처의 바른 법은 이해하여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조금이나마 선근을 닦아서 믿는 마음을 낸다고 한다면,
내가 본래 보살행을 닦을 때에 또한 4섭법으로 저들을 포섭해 보호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선근을 지닌 그들은 마땅히 열반을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하게 될 것이다.
아난아, 나는 긴긴 밤에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 4섭법으로 밤중 내내 그들을 거두어들이고 모든 불법으로써 이들을 이롭게 하고 양육하는 것이다.
아난아, 너는 보아라. 여래가 길을 갈 때에 크고 높은 곳을 낮게 하고, 낮은 곳을 높게 하여 높고 낮은 여러 곳들을 모두 평평하고 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래가 지나가고 나면 땅은 금방 전과 같이 된다.
그리고 모든 나무들이 부처님을 향하여 몸을 기울이고, 나무의 신이 몸을 나타내어 머리를 굽혀 예배를 드리지만, 여래가 지나가고 나면 나무들은 곧장 본래대로 돌아간다.
언덕이나 구덩이, 냄새나는 오물, 가시덤불과 무성한 수풀과 모든 기와나 돌자갈 등이 모두 말끔히 사라지고 편안하고 깨끗한 길에 꽃다운 향기가 짙어서 무척이나 즐겁다.
온갖 꽃들이 아름답게 수놓은 찬란한 길을 여래가 밟고 지나가는 것이다.
아난아, 여래가 본래 수행한 온갖 선한 공덕으로 해서 길을 갈 때에 중생으로서 몸을 굽혀 머리를 조아리고 예를 올리지 않는 자가 없다는 것을 너는 보았을 것이다.
감정이 없는 모든 사물이나 대지와 산하, 나무와 풀들 또한 지나가는 부처님을 향해 몸을 굽히지 않는 자가 없다.
어째서 그런가?
아난아, 내가 본래 보살행을 닦을 때에 모든 스승에 대하여 몸을 굽혀 예배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부모에 대하여 최고로 존중하고 몸을 굽혀 예배하였으며,
늙은이ㆍ나이 많은 분ㆍ중년(中年)인 자ㆍ소년인 자ㆍ친구ㆍ형제들에 대하여 누구에게나 몸을 굽혔고,
부처님과 보살 및 선지식(善知識)ㆍ성문ㆍ연각 및 외도(外道)와 5통(通)의 모든 선인(仙人)들, 사문ㆍ바라문 등 모든 공양을 받아야 될 자들에 대하여 그렇게 하였다.
이처럼 모든 부처님과 보살ㆍ선지식ㆍ성문ㆍ연각ㆍ외도 모든 선인들, 사문과 바라문, 부모ㆍ형제ㆍ친구ㆍ형제, 및 기타 나이 많은 사람ㆍ중년인 사람ㆍ나이 어린 사람ㆍ같은 스승을 모시는 벗들에 대하여,
누구에게나 모두 몸을 굽히고 겸손히 낮추어서 예배하여 공경하였던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와 같은 선업(善業)의 과보로 해서 위없는 보리를 얻어 성불하였기 때문에,
저들 모든 사물(事物)과 유정(有情)과 무정(無情)이 모두 여래가 갈 때에 몸을 굽히고 머리를 숙여 예배하는 것이다.
아난아, 내가 본래 청정하고 미묘한 마음에 맞는 자산을 가지고 지극한 마음으로 손수 모든 스승과 어른과 다른 중생에게 보시하였다.
아난아, 이러한 업보(業報)로 해서 여래가 다닐 때에, 대지가 고르고 바르게 되고 깨끗이 청소되어 청정하여 티끌이 없으며, 또 자갈이나 기와조각 같은 것들이 없는 것이다.
아난아, 나는 옛날에 한량없는 모든 여래의 처소에서 보살ㆍ선지식ㆍ성문ㆍ연각 및 외도의 모든 선인(仙人)들이 길을 갈 때에 그 길을 청소하고 방사(房舍)를 손질하였으며,
만약 길을 가거나 부처님께서 정사(精舍)에 머물게 되면 나는 자애롭고 평등한 마음, 위아래가 없는 마음과 아첨이 없는 마음과 청정한 마음으로, 이를 청소하여 깨끗이 하였다.
나는 모든 시간을 통해서 언제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여 모든 중생을 위하고 모든 중생을 안락하게 하며,
모든 중생을 가엾게 여기고 모든 하늘과 사람들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려고 했었다.
아난아, 이와 같은 선근으로 해서 불ㆍ여래가 어떤 곳에서든, 길을 가든, 서든 앉든 간에, 길거리에 나서려는 생각을 하기만 하면 자연히 길거리가 깨끗해지고 땅이 손바닥처럼 고르게 되는 것이다.
아난아, 여래가 가진 신업(身業)의 공덕은 훌륭해서 알기가 어려우며, 그 끝을 얻을 수가 없다.
아난아, 지금 내가 이러한 이치를 충만하게 하니 나중에 청정하게 믿는[淸信] 선남자와 선여인이 있어 전에 없이 여래의 처소에서 깊이 공경하고 믿는 마음을 일으킬 것이다.
아난아, 수미산왕(須彌山王)은 높이가 8만 4천 유순이며, 바다 속으로도 역시 8만 4천 유순이다.
아난아, 그런데 내가 멸도할 때는 설사 이처럼 견고하고 높고 큰 산왕(山王)이라 해도 몸을 굽히지 않음이 없다.
하물며 다른 흑산(黑山)이나 그 풀과 나무들은 어떻겠느냐?
몸을 굽히지 않는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아난아, 견고한 수미산왕은 그만두고라도 저 철위산(鐵圍山)으로 말하면 높이가 16만 8천 유순인데 저들 또한 금강(金剛)처럼 견고하다.
그러나 부처님이 열반할 때는 이들이 모두 하나같이 몸을 굽히고 머리를 숙여 공경히 예배한다.
그러니 만일 멀리 이를 피하여 몸을 굽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있다면 역시 이치에 맞지 않는다.
어째서 그런가?
아난아, 내가 본래 보살행을 닦을 때에 모든 중생들이 짓는 일과 업에서 끝내 떠나지 않았으며,
만일 어떤 중생이 화를 내고 어그러졌으면 내가 이들을 화합시키되,
예전에 화합하지 않던 자라도 이를 화합시켜 견고하고 편히 머물러 허물어짐이 없이 다들 자애롭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하였다.
아난아, 이와 같은 선근의 인연의 힘으로 해서 여래는 허물 수가 없는 몸을 얻는 것이며 또한 그 권속들로 하여금 견고하여 허물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아난아, 여래와 또한 그 권속들이 견고하여 허물 수 없는 법을 얻으니,
이른바 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분(覺分)ㆍ8성도(聖道)가 그것이다.
아난아, 이 서른일곱 가지 보리를 돕는 법은 바로 불ㆍ여래의 큰 권속으로 모든 세계의 부처님과 성문과 연각이 그 가운데 안주하게 되니 모든 세간의 하늘과 사람의 무리들이 이를 허물 수가 없다.
어째서 그런가?
아난아, 부처님께서는 바로 이 법으로 해서, 모든 세간의 하늘들과 마천(魔天)ㆍ범천(梵天)ㆍ사문ㆍ바라문 및 여러 권속들,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와 수미산과 대철위산과 넓은 땅의 풀과 나무들이 부처님께서 열반할 때에 머리를 숙이고 몸을 굽혀 향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이를 깨뜨려 허물겠는가?
만약 이를 허물 수가 있다 한다면 그런 이치는 없다.
어째서 그런가?
아난아, 여래의 몸은 깨뜨릴 수가 없는 것이며 부처의 사리도 깨뜨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난아, 그러나 여래는 모든 중생을 가엾게 여긴다.
그래서 이와 같은 본래의 염원으로 해서 자신의 사리를 겨자씨처럼 부수어서 이를 통해 불법을 더욱 널리 유포하는 것이다.
아난아, 여래는 본래 보살행을 닦을 때에 이렇게 발원하였다.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정각(正覺)을 이루어서 열반에 든 뒤, 나의 사리가 더욱 널리 유포되도록 하소서.’
아난아, 이와 같은 본래의 염원으로 해서 내가 멸도한 뒤에 이 사리가 더욱 널리 유포되게 되니 저들 모든 중생들은 불ㆍ여래가 열반하는 것을 보고 성도(聖道)의 과보를 얻으며 부처님께서는 저들 중생들을 가엾게 여기어 이 사리를 마치 겨자씨처럼 조금씩 나누어 주는 것이다.
아난아, 여래ㆍ응공ㆍ정변지가 열반함에 임하여 세간의 모든 중생들을 가엾게 여기기 때문에 이처럼 삼매에 들 때에 이들 사리를 겨자씨처럼 조금씩 나누어 준다.
그러나 여래의 몸은 어떤 고통도 받지 않으며, 모든 지절(支節)이 나뉘어 흩어져서 그 사리가 겨자씨처럼 되지만 그럼에도 불ㆍ여래께서는 아무런 고통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저들 중생들을 가엾게 여겨 포섭하고 미래의 모든 중생들을 포섭하여 이들로 하여금 모든 선한 길[善道]에서 편안함을 얻게 하기 때문에 사리를 공양하고 소중하게 맞이하고 보내며 겸손히 낮추어 공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갖가지로 장엄하되, 온갖 꽃과 향, 바르는 향ㆍ가루향ㆍ의복ㆍ깃발ㆍ무수한 보배가리개와 노래와 춤과 음악으로 장엄한다.
그러면 나는 저들이 마땅히 열반의 과보를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난아, 내가 멸도한 뒤 일백 년 안에 바리불(波離弗)성에 아수가(阿輸迦)라는 국왕이 있어서 공작호(孔雀戶)의 종성(種姓)의 가문에 태어나서 법으로써 세상을 다스릴 것이니,
그는 나의 법에 대해 마땅히 공경해 믿을 것이며,
공경해 믿고서는 나의 사리를 더욱 널리 유포하되 같은 날의 같은 시간에 8만 4천의 탑을 세워서 나의 사리를 편히 둘 것이다.
아난아, 너는 근심하고 걱정하지 말라. 나의 사리를 마땅히 하늘과 사람들에게 널리 유포하여야 한다.
아난아, 현재에 여래에 대하여 공양하는 일이나 내가 멸도한 뒤에 그 겨자씨 같은 사리에 공양하는 일은 그만두고라도,
아난아, 만일 꿈에 부처님의 정사(精舍)를 보고 이를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낸다면,
나는 그런 사람은 이러한 선근으로 해서 마땅히 열반을 얻으며, 제일의 열반을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난아, 미래의 세상에 있을 모든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온다면 이들 모든 여래들은 한결같이 나의 공덕의 행을 칭송할 것이니,
내가 지금 과거의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칭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미래의 부처님들도 역시 그처럼 나의 이름을 일컫게 될 것이다.
아난아, 내가 법을 설할 때면 모든 중생들은 먼지와 때[번뇌]를 멀리 여의고 법의 눈을 얻을 것이다.
아난아, 저들 중생들은 내가 본래 보살행을 닦을 때에 모두가 다 이미 [근기가] 성숙(成熟)하였다.
아난아, 스님들 복전에 베푼 공덕은 다함이 있으며, 사방승(四方僧)에 베푼 공덕도 다함이 있지만,
벽지불에 베풀어서 지은 공덕은 다함이 없으니, 만일 부처님 처소에서 공덕을 짓는다면 이는 다하여 끝낼 수가 없다.
그리고 또 아난아, 내가 전에 말한 것처럼 모든 복전을 지은 공덕은 모두 다 같이 열반의 과보를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하는 것이다.
아난아, 나를 직접 받들어 공양한 자나, 내가 멸도한 뒤에 나의 사리에 공양한 자는 그만두고라도
아난아, 만일 부처님을 염(念)하고 한 송이의 꽃이라도 공중에 뿌린다면 말이다.
나는 나의 깨달은 지혜로써 그 자의 선근이 가히 헤아릴 수가 없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을 보는 것이다.
아난아, 저들 중생들이 선근을 짓되 부처님을 마음으로 염하고 한 송이 꽃이라도 공중에 뿌린다면,
설사 이 겁이 다하도록 윤회하고 달리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를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윤회하는 가운데 여래의 처소에서 한 송이의 꽃을 뿌리기만 한다면,
그가 얻는 과보는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어서,
더러는 범천왕(梵天王)이 되고 더러는 석천왕(釋天王)이 되고 더러는 전륜성왕이 되리니, 그 선근은 다할 수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열반을 얻어서 열반의 경계를 다할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아난아, 이와 같이 크게 신통한 여러 부처님들께 한 송이의 꽃을 바치면 이러한 한량이 없는 복덕의 과보인 광대한 이익과 큰 공덕의 모임을 얻게 되니 일컬어 헤아릴 수가 없으며 그 끝이 없으며 반드시 열반의 경계에 나아가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부처님께 공덕을 지으면 마땅히 이와 같이 이루 헤아릴 수가 없고 끝이 없는 복덕의 과보를 얻게 되니,
그리하여 부처님께 한 번이라도 발심하여 한결같이 믿는 마음을 낸다면,
나는 그가 청정한 행을 다하고 안온함을 끝까지 얻어 궁극의 경계를 다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아난아, 만일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이 범천왕ㆍ전륜성왕ㆍ호세사천왕ㆍ삼십삼천ㆍ야마천(夜摩天)ㆍ도솔타천(兜率陀天)ㆍ화락천(化樂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및 나머지 모든 하늘과 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인비인(人非人) 등 모든 세간의 주인으로 자재함을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와 같이 모든 불세존을 소중히 맞고 보내며 공경하게 공양하여야 한다.
그리고 만약 성문의 지위와 벽지불의 지위를 바라거나 또는 위없는 삼먁삼보리를 구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선남자와 선여인은 또한 마땅히 이처럼 공경하고 존중하여 겸손히 낮추어서 공양하여야 한다.
아난아, 내가 전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할 때에, 한량없는 부처님, 한량없는 백의 부처님, 한량없는 백천의 부처님과 내지 한량없는 억 나유타의 백천 부처님의 처소에서 공경하여 존중하고 겸손히 공양하였다.
의복과 음식과 침상과 자리, 와구(臥具)와 병들고 여윈 데 필요한 탕약 등을 다니시든 머무시든 앉든 눕든 간에 공양하였으며,
여러 꽃다발ㆍ바르는 향ㆍ가루향ㆍ전단향ㆍ침수향(沈水香)과 깃발과 보배 가리개를 부처님께 공양했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는 탑묘(塔廟)를 세워서 갖가지로 장엄(莊嚴)했으니 온갖 꽃ㆍ향ㆍ바르는 향ㆍ가루향과ㆍ노래ㆍ춤ㆍ놀이와 백천의 기악(伎樂)으로 공경하여 존중하고 겸손히 공양하였다.
세간의 모든 중생들을 가엾어 하시며 모든 하늘과 사람들을 안온하고 이롭게 하기 위해서이며,
득도(得度)하지 못한 자를 득도케 하기 위해서이며,
해탈하지 못한 자를 해탈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안온하지 못한 자가 안온함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이며,
열반하지 못한 자가 열반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아난아, 내가 다섯 줄기의 우바라화(優波羅華)를 연등불(然燈佛)에게 뿌린 뒤 거기서 즉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깨달았으니 이와 같은 선근은 바로 작은 과보인 것이다.
아난아, 내가 연등 여래ㆍ응공ㆍ정변지께 뿌린 다섯 줄기의 꽃과 다른 선근의 작은 복덕의 과보에 대하여 너는 알고 싶으냐?”
아난이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즐겁게 듣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바가바시여. 그렇습니다,
수가타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 부디 연등불께 자그만 선근을 심어서 얻은 과보에 대하여 분별해서 보여 주소서.”
그러자 세존께서 금빛의 오른쪽 팔을 펴서 새끼손가락으로 하늘에다 우바라화꽃을 피우니 그 향기가 삼천대천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 가득 찼다.
그리하여 백억의 해와 달이 운행하는 모든 곳이 어디나 두루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때 세존은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들 속에서 이와 같은 일찍이 없던 기특함을 나타내 보였으니,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작은 선근을 심어서 그 얻는 복덕의 과보가 허망하지 않음을 보인 것으로서, 이지러지거나 덜어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존께서 다음과 같이 게송을 설하였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부사의하니
여래의 법이 또한 그러해라.
부사의를 믿는 자는
부사의한 과보를 얻으리라.
생각이 있는 것이든 생각이 없는 것이든
모든 중생들이
한량이 없는 백억의 겁 동안
모두 다 공양해라.
세상에 계시는 벽지불과
번뇌가 없는 아라한을
부사의한 겁을 통해서
그들 모두에게 공양해라.
정각(正覺)이 세상에 계시거나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이거나
한 번의 합장이라도 하기만 한다면
앞의 것보다 이 복덕이 나으리라.
부처님의 계율을 빠뜨리지 않으면
자재하게 삼매(三昧)를 얻으리.
법에 대해 의혹이 없으니
부처님의 눈이 환하지 않음이 없어라.
낮이든 밤이든 적은 시간이라도
만일 선서(善逝)께 자애로운 마음을 닦는다면
이런 공양의 복은 끝이 없으리니
삼계(三界)에 같은 이 없고 짝이 없으리라.
지나간 아승기의 겁 동안
모든 세간의 도사(導師)께
모든 천인(天人) 가운데 광명을 내어
닦으신 착한 업은 셀 수가 없어라.
아승기의 겁을 윤회할 때에
저 받을 복의 과보는 끝이 없어라.
나는 저 복의 인연으로 해서
이 같은 훌륭한 보리를 얻을 수 있었네.
내가 옛날에 중생을 가엾게 여겨
한량없는 백천억의 부처님 앞에
세세생생 늘 훌륭한 공양을 닦았는데
부처님께서는 내게 기별(記別)을 주시지 않았네.
부처님 세존은 사람 중에 높아라.
나의 선근이 순일하게 익지 않음을 아셨다네.
아무리 여러 선을 행해도 기별을 못 얻으니
뛰어난 인(忍)이 나에게 없는 까닭이어라.
그래서 내가 또 연등불(然燈佛)을 뵙고
다섯 줄기의 우바라(優波羅)를 뿌리고
진창을 머리로 덮어 부처님께서 밟고 가니
무생(無生)의 훌륭한 법인(法忍)을 바로 깨달았네.
이때 저 도사(導師)이신 연등불께서
기별을 주시어 허공에 올랐다네.
너는 미래의 아승기의 세상에서
마땅히 성불(成佛)해서 석가라고 부르리라.
이처럼 죽고 삶에 흐르고 돌면서
한량없는 선업(善業)들을 닦아라.
중생을 가엾게 여겨 여러 고통을 받으며
이 같은 훌륭한 보리를 구하라.
세간의 고독한 괴로움을 보고는
슬프고 가엾게 여겨 언제나 보시했네.
저 복은 한이 없어 헤아릴 수 없으니
도사(導師)가 널리 말해도 다할 수가 없어라.
보살의 수행을 내가 닦을 때에
모든 부처님과 선서(善逝)와 세웅(世雄)께
밤낮으로 부르며 드린 공양이
한량없는 억겁으로도 셀 수가 없어라.
한 번ㆍ두 번ㆍ세 번ㆍ네 번ㆍ다섯 번ㆍ열 번
스무 번ㆍ서른 번 이름만을 불렀다네.
중생들이 불쌍해서 수행을 닦아
가장 훌륭한 부처님께 공양했네.
내가 본래 고행을 닦던 시절에
한량없는 고통들을 참고 받았다네.
세세생생 보리심을 버리지 않았으니
모든 부처님께서는 비할 데가 없어라.
세세생생 내가 유전(流轉)할 때에
백천만억의 머리를 수없이 버렸다네.
보배도 나라도 왕위도 버리고
많은 착한 말과 법 듣기를 구하였다네.
위없는 바른 법을 내가 구했을 때
마음으로 깊이 즐거워하며 구함이 헤아릴 수 없었네.
보시와 지계(持戒)와 그리고 인욕(忍辱)과
정진(精進)으로 훌륭한 보리를 깨달았네.
모든 부처님들 세력은 생각할 수 없어라.
모든 공덕들이 세운 것이어라.
생각할 수 없는 바른 법을 풀어 설하시며
훌륭한 보리도 나타내어 보이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