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토학의 개념과 정의
정토학(淨土敎學, the study of the buddhist elysium field;the study of the pure-land)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학자들 간에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겠으나 간략하게 말하면 불교 내부에서 성립 전개된 부처님의 정토(淨土)에 관한 교설(敎說)을 조직적으로 종합해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정토학에서 말하는 정토의 넓은 의미로는 모든 경론(經論)에서 언급하고 있는 여러 부처님의 국토를 말하고, 좁은 의미로는 무량수(無量壽) 또는 무량광(無量光)인 아미타불께서 상주하는 서방극락정토를 말한다. 한국, 중국, 일본의 삼국에서는 정토학이라고 말하며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좁은 의미의 정토에 관해 주안점을 둔다.
이러한 정토란 번뇌가 없는 안락하고 청정한 세계라는 의미다. 그 의미 해석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먼저 정토(淨土)의 토(土)는 ‘국토’ 또는 ‘세계’라는 의미다. 정토와 불토, 예토라고 하여 깨달은 부처님이 거주하는 국토, 나라, 세계, 찰토, 청정한 나라, 청정한 찰토라는 의미가 있고, 미혹한 중생이 사는 예토, 감토, 인토, 사바세계라는 의미가 있다. 즉, 불토라는 의미에는 깨달은 부처님이 거주하는 세계와 오염되고 미혹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출현한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이 거처하는 곳이 불토다. 이는 청정과 더러움을 가리지 않고 부처님이 머무시는 세계다. 이에 반해서 정토는 부처님의 본래의 원력에 의해서 이루어진 청정하고 깨끗하며 해맑은 세계라는 것이다.
다음에 정(淨)의 의미를 해석함에도 정(淨)을 동사로 해석하는 경우와 형용사로 해석하는 경우로 나뉜다. 먼저 동사로 해석하는 경우는 ‘국토를 청정하게 한다.’, ‘맑게 한다.’, ‘정화한다.’는 clear와 purify의 의미가 있다. 여기에는 ① 중생이 사는 세계를 맑게 하여 청정한 나라로 만든다는 의미와 ② 이 세상과는 다른 청정한 국토를 건설하여 그 곳으로 중생을 인도한다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①의 경우는 현세에서 부처님의 교화 활동을 위주로 대승보살들의 중생제도와 수행을 말한다. 『방광반야경』에서는 중생의 몸과 입과 뜻의 삼업(三業)을 깨끗이 하는 것이 바로 국토를 청정하게 한다는 것이며, 그 실천 덕목이 육바라밀(六波羅密)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정토를 깨끗이 한다는 것은 바로 대승 보살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②의 경우 이 세계는 오탁악세(五濁惡世)로 고통이 극심하여 수행이 용이하지 못하므로 과거 법장비구가 보살행을 닦을 때 세자재왕여래의 가르침을 받아 5겁 동안 사유한 결과 48대원을 세우고 극락정토를 건립한 것이라고 『무량수경』에 설해져 있다.
이와 같이 국토를 깨끗이 한다는 동사적 의미의 정토수행은 보살도로서 현세를 청정한 나라로 만들고자 하는 정토의 수행과 현세와는 다른 별도의 다른 곳에 제불의 정토를 장엄하는 청정한 수행이 있다. 이러한 정토 수행은 모두 보살의 수행을 말하기 때문에 정(淨)을 동사로 해석한 경우이고 자력이 강한 수행이다.
다음에 정토(淨土)의 정(淨)을 형용사로 해석하는 경우는 청정한 국토 또는 청정한 세계라는 의미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주로 여러 부처님의 본래 원력과 보살 수행으로 이루어진 부처님 나라를 말한다. 예를 들면 『아미타경』이나 『무량수경』에 설해져 있는 시방의 무수한 정토로 타력이 강한 수행을 전제로 한다.
또한 깨달은 마음의 청정한 세계를 나타내는 『화엄경』의 연화장세계와 『유마경』의 유심정토(唯心淨土), 『삼천불명경』에 설해져 있는 과거, 현재, 미래 장원겁의 삼천불국토, 아촉불의 묘희세계, 미륵보살의 도솔정토와 미래 용화세계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불국토가 대승불교 경전에 다양하게 설해져 있다. 이를 정토학적으로 분류해보면 타방정토, 영장정토, 유심정토, 범신론적 정토, 법성정토, 밀엄정토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러한 정토는 유식교학에서는 자수용의 법신불이 거처하는 법성토, 과거의 원력을 성취한 보신불의 과보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화현한 화신불의 변화토로 구분한다. 나아가 천태학(天台學)에서도 범성동거토(凡聖同居土)와 방편유여토(方便有餘土), 실보무장애토(實報無障礙土), 상적광토(常寂光土)로 구분하여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정토학은 좁은 의미의 정토학만을 지칭한다.
2. 정토학의 연구 목적과 방법
정토학은 불교교리에서 표현방식의 발달과정에서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그 주체들은 누구였으며, 그 위치와 위상은 어떠한가를 이해하고 지극한 믿음을 다져서 염불수행을 실천하여 깨달음을 실현하는 데 그 목표를 둔다. 특히 원시불교와 초기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의 믿음과 실천수행 속에 녹아있는 정토장엄사상과 신앙을 추적하고 정토학의 근본 개념과 수행방법을 고찰하여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을 고찰한다. 이와 동시에 지나치게 의타적이고 신비적이며 환상적으로 치우칠 수 있는 단점을 보완하여 왕생과 더불어 깨달음을 개인과 사회의 모든 존재들이 최상의 행복을 실현하며, 일상생활 속에서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실천수행할 수 있도록 계도하여 현세나 내세에도 행복한 깨달음을 구현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즉, 아미타불이란 바로 저 영원한 행복의 조건이 구현된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스승을 이야기한 것이다. 과거 법장보살로 48대원으로써 믿음과 발원과 염불하는 중생을 이끌어 더 없이 행복한 극락세계에 태어나 영원히 불교수행의 모든 계위에서 물러나지 않게 한다. 범어로 아미타불이란 여기서 ‘무량수’ 또는 ‘무량광’이라고 설한다. 요점을 들어서 그것을 말하면 공덕과 지혜, 신통과 도력, 정보와 의보의 장엄, 중생을 제도하는 설법과 교화가 하나하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오직 광명과 수명, 지혜와 자비 두 가지 공능을 들어서 논의의 단서로 삼아 설한다.
연구방법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크게 문헌적 방법과 실천적 방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문헌적 방법에는 정토학의 이론적 근거인 정토삼부경과 왕생론의 역사적 고찰과 더불어 인도와 중국, 한국, 일본의 정토가의 저술과 이 정토학의 내용을 검토하는 방법 등이 있다. 다시 말해서 서방정토의 장엄사상과 아미타불에 대한 명의와 신앙을 고찰하여 정토왕생의 요인을 연구한다. 다음의 실천적 방법에는 불교역사에서 발전한 수행법인 삼념(三念)과 육수념(六隨念), 십념(十念), 오념문(五念門), 삼배왕생(三輩往生)과 삼복왕생(三福往生)의 수행방법, 그리고 사종염불(四種念佛)을 비롯한 16관법(觀法)과 염불삼매와 관불삼매의 연구가 있다. 아울러 다양한 종교가 산재한 세계종교의 실정에 어울리는 조화로운 신행방안을 모색해 보는 것이다.
3. 정토학의 형성과 전래와 전개
일반적으로 종교의 형태를 청원(請願)과 희구(希求), 체주(諦住)의 형태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기복이나 통속적인 신앙체계에서 자기 내면에 종교성을 재정립하여 행복한 삶을 희구하고, 나아가서 궁극적인 초월적 가치의 실현 또는 깨달음을 실현하려는 형태다. 이러한 종교 형태는 종교적 체험인 신행(信行)의 발전단계를 말한다. 즉, 믿음과 신념의 단계를 거쳐 확신하는 문신(聞信, śraddhā)과 의심이 없는 청정한 믿음의 정신(淨信, prasāda), 모든 번뇌와 집착을 놓아버린 믿음의 신해(信解, adhimukti)를 이룬다고 하겠다. 여기서 청원은 타력에 속하고, 체주는 자력에 속하며, 희구는 자력과 타력에 공통한다고 하겠다.
1) 염불의 형성
초기불교에서는 불교의 궁극적 목적을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涅槃)이라고 하고, 대승불교에서는 4가지 열반을 체득한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이라고 하여 궁극에 성불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와 더불어 정토신앙도 예외는 아니다. 정토신앙의 연원은 정토삼부경이다. 이에 앞서 아함경에 언급된 단편적인 내용을 보면, 먼저 나무불(南無佛)이란 칭념으로부터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삼념과 염계를 첨가한 사불괴정(四不壞淨)의 사념(四念), 그리고 염시(念施)와 염생천(念生天)을 더한 육수념(六隨念), 염휴식(念休息), 염안반(念安般), 염신비상(念身非常), 염사(念死)를 더한 십념(十念) 등으로 발전하였다.
2) 아미타불의 의미
아미타불은 산스크리트어의 음을 그대로 한자에 맞춘 음역이지만, 일반으로 ‘무량수불(無量壽佛)’,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고도 한다. 현존하는 산스크리트어 경전의 어느 것을 보아도 아미타불이라는 명칭은 없고 ‘아미타바(無量光, amitābha)’ 또는 ‘아미타유스(無量壽, amitāyus)’라고 되어 있다. 아미타바란 무량한 광명이 있는 것이란 의미며, 아미타유스는 무량한 수명이 있는 것이란 의미로서 아미타(amita)는 무량이란 의미이다. 따라서 아미타불의 원래 의미로는 ‘무량한 부처님’이란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아미타경』에서는 “이 부처님을 어떤 연유로 아미타불이라고 부르는가? 사리불아! 이 부처님의 광명은 무량하여 시방의 세계를 비추어도 장애가 없기 때문에 아미타라고 부른다. 또 사리불아! 이 부처님의 수명과 그 나라 백성의 수명은 무량무변 아승기겁이기 때문에 아미타라고 부른다.”라고 하였다. 무량한 광명과 무량한 수명의 덕성을 가진 부처님이기 때문에 아미타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여기서 상징적 의미는 각기 광명의 지혜와 수명의 자비다.
이러한 광명과 수명의 두 덕성을 가진 부처님이란 의미를 제외하고 아미타불이라고 부르며 산스크리트어를 그대로 음사하여 사용했는가에 대해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생각된다. 원래 아미타불의 명칭이 중국어로 번역한 불교경전에 사용된 최초는 오나라의 지겸(支謙)이 번역한 경전에서 나온다. 여기에는 일명 『대아미타경(大阿彌陀經)』이라고 이름하고 있다.
또 『반주삼매경』 3권 본이나 1권 본은 모두가 지루가참(支婁迦讖)의 번역에도 아미타불의 명칭을 사용하기 때문에 중국 번역의 경전으로는 대개 3세기경부터 사용되어 왔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초기경전 번역자의 번역어에서 사용된 예를 보면, 지겸(支謙)은 아미타불, 무량광불, 무량수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고, 지루가참은 아미타불, 무량청정불이라고 번역하였으며,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인 각현(覺賢)은 『화엄경』에서 아미타불, 무량수불, 무량광불의 3종류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때는 아미타불이란 고유의 원어가 있지 않았는지 유추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원어로 보이는 산스크리트 경전은 볼 수가 없다. 아마도 아미타불이란 불명은 번역자가 경전을 역출할 때에 만든 단어로서 아미타가 무량한 광명과 무량한 수명 및 무량한 권속과 청정 등의 많은 덕성을 가진 부처님이기 때문에 이러한 덕성을 모두 포함한 부처님을 나타내기 위해 ‘아미타 붓다(amita-buddha)’란 단어를 창작하여 이것을 그대로 음사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아미타불은 매일 아침마다 시방삼세의 한량없는 부처님께 꽃 공양을 올리고 돌아와 산책한다고 설해져 있기 때문에 그 숫자에서도 동일하고 의미에서도 무량한 부처님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무량한 광명과 무량한 수명의 두 덕성을 가진 부처님으로써 한량없는 부처님이라는 의미의 아미타불이라고 공경되어지고 있다.
3) 아미타불의 신앙기원
정토학에서 신앙 대상인 아미타불과 극락정토의 사상은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떠한 이유로 발생하였는가? 이는 정토학을 연구하는 주제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 과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학자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렇지만 문헌 자료의 대부분이 없어진 고대 인도에서 이 신앙의 기원을 탐색하는 것은 지극히 곤란한 일이다. 아마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원의 문제에 관해서 그 중에 대표적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을 간추려 보기로 한다.
아미타불의 신앙이 인도 본토를 비롯하여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등 남방의 여러 지역에서는 발견할 수가 없다. 또한 중국으로부터 멀리 육로 또는 해로로 인도를 여행한 법현(法顯), 현장(玄奘), 의정(義淨) 등의 인도여행기의 기록에서도 아미타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에 전래된 불교 가운데 특히 대승불교 경전 중에서 많이 설해지고 있다. 이러한 대승불교 경전은 주로 카시미르와 네팔 지역으로부터 전래된 것이 다수이기 때문에 이 지방에서 아미타불에 대한 신앙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설이다.
원래 이 카시미르(kashmir)와 간다라(gandhādra) 등의 서북인도는 일찍부터 이란의 종교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기 때문에 아미타불에 대한 신앙의 기원을 이란의 고대 신앙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학설은 주로 유럽의 동양 연구 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아미타불의 일명인 아미타바(amitābha)는 무량한 광명을 가진 부처님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 관념은 원시 대승불교의 보호자인 스기샤족과 이란인은 모두 태양 숭배의 종족이었기 때문에 아미타불신앙은 태양신화에서 유래하였다고 말한다. 또 아미타불은 석가세존으로부터 연상된 부처님이지만, 이란의 오르마쯔 신은 무한한 광명을 가진 신이기 때문에 이 신의 관념이 불교의 가운데 들어와 발전하고 변천해서 아미타불을 발생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에 아미타불의 기원을 인도 내부의 사상에서 찾으려는 학자들도 있다. 이는 주로 일본의 불교학자들이다. 베다성전에서 설한 야마라는 하늘은 위없이 행복한 곳이며, 또 안온한 불사의 세계로 되어 있다. 따라서 야마의 본체는 태양으로 무한의 광명을 가졌다고 되어있다.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의 광경은 야마천의 상황을 좀 더 과대하게 기술했다고 생각되는 곳이기 때문에 아미타불신앙의 기원을 이 야마천에서 찾으려고도 한다.
이 밖에 범천의 신화에서 기원을 찾으려는 설도 있다. 범천의 세계에서 서술하는 범천왕 옥좌의 관념이 무량광의 관념으로 계속되며, 또 옥좌를 푸라나(生氣, purana)라고 부르는 점이 무량수의 관념에 결합된다고 한다. 어떤 학자는 인도의 비슈누(viṣṇu) 신화에서 기원을 찾아, 이 신의 신앙이 아미타불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이 외에 서방의 수호신 바루나(varuṇa)와의 연관해서 찾아보는 설이나 인도 아그니(Agni) 신의 호칭과 연관시켜서 찾아보는 설도 있다. 또는 이것을 불교 내부에서 찾아보면 네 가지 선정 가운데 제2선의 광명과 제3선의 청정한 내용을 합성한 것으로도 보인다.
이와 같이 아미타불의 기원에 대하여 유럽 학자는 주로 이란의 고대 종교에서 연원을 찾으며 일본의 학자는 인도의 고대 종교에서 찾고 있으나 지금 바로 어느 것이 적절한가를 결정할 수는 없다. 아미타불신앙이 인도 문화권 가운데서 흥기하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서북인도는 고대의 인도 문화의 발생지임과 동시에 이란 문화와의 접촉 지대였기 때문에 불교사상이 발전된 인도사상에 이란과 그 밖의 외래사상이 첨가되어 아미타불인 부처님의 성격이 생겨났다고 여겨진다.
4) 아미타불신앙의 발생지
다음으로 아미타불신앙이 발생한 옛 지역이 서북인도라는 것은 중국에서 아미타불경전을 전한 번역승의 전기로부터 충분히 살펴볼 수가 있다. 아미타불경전을 전한 지루가참과 축법호(竺法護), 구마라집(鳩摩羅什), 불타발타라(覺賢) 등의 4세기 이전에 번역승의 전기를 보면 언제나 서북인도와 인연이 깊다. 이렇게 아미타불에 관한 경전을 전한 사람은 그 출생지나 번역한 지역에서 아미타불신앙을 설한 경전을 전해들은 것으로 여겨진다. 만약 듣지 않았거나 전혀 보지 못했던 경전을 번역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더구나 인도 본토나 스리랑카 혹은 서방아시아 방면에서 이러한 신앙이 있었다는 사실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서북인도를 가지고 아미타불신앙의 발생지라고 결정하는 점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북인도의 어떠한 곳에서 발생하였는가라는 정확한 지점은 밝힐 수가 없다. 시기적으로도 언제부터 이러한 신앙이 발생하였다는 성립연대에 대해서 볼 때도 역시 다른 설이 많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대체로 기원전후에 일어났다는 설이 결정적이다. 이것은 중국에서 번역된 경전을 바탕으로 유추하는 설이다. 아미타불에 관한 경전이 중국에서 번역된 최초는 지루가참이 『반주삼매경』과 『무량청정평등각경』이다. 계속해서 지겸에 의해 『아미타삼야삼불살루불단과도인도경(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 2권이 번역되었다.
따라서 2세기 중엽 또는 2세기 초에는 대개 아미타불의 경전이 중국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정토신앙의 성립 연대는 어느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명확한 자료가 현존하지는 않지만, 중국에서 경전의 번역 역사에서 불교경전과 논서가 인도에서 편찬되어 중국에 전래되기까지 대략 100년 내지 200년을 경과하였다. 이렇게 볼 때 이런 경전은 대체로 기원 전후에 편찬된 것으로 유추된다. 역시 이 정토신앙은 다시 소급해서 생각해보면 대체로 기원전 1세기경에 소박한 아미타불신앙이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므로 다음에 어떠한 이유에 의해 이러한 신앙이 불교교단의 내부로부터 발생하였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불교교단은 크게 출가교단과 재가교단으로 나눌 수가 있다. 출가교단이란 석가세존의 가르침을 받들고 전심으로 불도의 수행에 힘쓰는 출가자인 비구의 집단이다. 재가교단은 출가교단을 지지하고 귀의하여 그 출가자의 가르침을 받드는 재가신자의 집단이다. 대체로 기원 전후 경부터 불교교단 가운데 출가비구의 교단과는 다른 재가의 불교신자 단체가 인도 각지에서 성립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인 ‘보리살타(bodhisattva)’라고 불렀다. 이 보살이란 명칭은 원래 석가세존의 전생을 말하는 이야기인 본생담 중에 석가세존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자기들도 석가세존과 같이 ‘붓다’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확신하여 사용하는 용어다. 이러한 재가신자의 집단과 더불어 출가비구도 교단에 참가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대승불교운동이 흥기하였다.
이와 같이 대승불교는 재가와 출가불자의 교단이 결합해 일어난 것이다. 이때 편찬된 대표적인 불교경전은 『반주삼매경』과 『수능엄경』을 비롯하여 『반야경』, 『화엄경』, 『법화경』, 『유마경』 등이다. 아미타불신앙도 이러한 재가교단의 사람들이 제창한 새로운 대승불교운동의 일환으로 흥기하고 『무량수경』 등의 대표적인 아미타불에 대한 경전은 이런 사람들에 의해 편찬되었다.
다시 말해서 이 새로운 불교운동은 석가세존의 유교적 가르침을 보수적인 출가교단의 사람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일부 진보적인 출가교단의 사람들과 재가신자가 석가세존의 참다운 정신을 드러내려는 의도에서 나타난 것이다. 석가세존의 참된 자비구제의 모습으로 아미타불을 이해한 것이며 다른 어떤 불교보다도 석가세존의 참다운 정신을 파악하고 있다는 신념과 함께 생각해 낸 것이다. 보수적인 출가교단에 없었던 재가교단의 사람들과 일부 진보적인 출가교단의 사람들에 의해 석가세존의 참된 자세로서 묘사된 것이 아미타불인 것이다.
5) 아미타불신앙의 확립
다음에 아미타불신앙의 흥기가 대승불교의 흥성과 관계있는 곳으로부터 『무량수경』에 설한 법장비구의 출가와 성도,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국토로부터 보살이 서방의 정토에 왕생한 설법과 관련하여 대승불교도가 보살도를 닦는 이상적인 사람으로 법장비구를 보살도의 완성자로서 아미타불을 생각해 내었다. 현세에는 쉽게 보살도를 완성할 수 없기 때문에 정토를 보살도 완성의 도량으로 간주하여 시방의 모든 국토보다 서방정토에 많은 보살의 왕생을 예시하고 서방왕생을 설한 것이 그 처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불교교단의 내부에서 아미타불신앙이 발생하여 이 부처님을 섬기는 아미타불교도에 의해 경전이 편찬되기에 이르렀다. 편찬된 아미타불에 대한 경전은 시대와 함께 점차 증보·개찬되고 또 별종의 경전도 편찬되었다. 점차로 인도의 서역지방에 널리 유통되었고, 많은 대승경전 가운데에 산설되었다. 이것이 중국에 전래되어 현존하는 수많은(약 270여부) 아미타불에 관한 경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정토학에서 밝히는 아미타불의 서방정토는 안락·극락·안양·낙방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이것은 산스크리트어의 수카바티 뷰하(sukhāvati-vyūha)의 번역으로 직역하면 즐거움이 있는 장엄한 낙유(樂有)라는 의미다. 안락과 극락이란 의미를 중심으로 생각하여 번역한 의역이다. 정토학의 근본 성전인 『무량수경』에서도 안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관무량수경』과 『아미타경』은 극락이라고 일컫고 있다. 이외의 경전에서는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 무량수국(無量壽國), 아미타유국(阿彌陀由國)이라고 칭하는데 무량청정불 또는 무량수불이란 아미타불의 다른 칭호로 국토에 머무는 의미이다.
본래 정토라는 말은 청정한 국토라는 의미 외에 상술한 바와 같이 ‘국토를 청정하게 한다’는 의미를 밝힌 경우도 있다. 지금 말하는 곳은 인간이 머무는 세계가 더러워진 미혹의 세계이며 부처님이 머무는 세계는 깨달음에 의해 형성된 국토이기 때문에 이것을 청정국토나 정토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정토라는 말은 정토삼부경에서는 볼 수가 없다. 『아미타경』을 이역하여 현장이 번역한 『칭찬정토불섭수경(稱讚淨土佛攝受經)』이라는 명칭이 사용되는 것에서만 정토라는 말이 보일 뿐이다.
원래 대승불교에서 설하는 보살도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라도 가르침을 받들어 육바라밀의 수행을 닦으면 깨달음으로 부처가 될 수 있으며, 정토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며 시방세계에 많은 부처님과 정토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정토라는 경우에 광의의 제불정토를 가르치고 있지만, 아미타불신앙이 성행되고부터는 오직 이 명칭을 독점하게 되었다. 현재는 정토라고 말하면 단지 아미타불의 서방극락 정토를 가르치게 되며, 또는 정토학이라면 서방정토에 관한 가르침을 말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다음에 안락(安樂)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진 단어인가 하는데 대해서 『무량수경』에서는 “법장보살은 이미 성불하여 서방에 계신다. 여기서 가려면 10만억의 찰토를 지나야 된다. 그 국토를 이름하여 안락(安樂)이라고 한다.”라고 설하고 그 명칭을 해석하고 있다. 정토학은 중국에서 정토종(淨土宗) 또는 정토문(淨土門)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토학은 아미타불의 구원을 믿고, 염불을 외어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에 왕생하여 깨달음을 얻는다고 설하는 종파다. 정토학은 『무량수경(無量壽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아미타경(阿彌陀經)』 이른바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에 바탕을 두고 인도불교에서 용수(龍樹)의 『대지도론』과 세친(世親)의 『정토론』의 사상적 조직화를 거쳐서 중국불교에 이르러 발달하였다.
6) 정토신앙의 전래와 전개
중국불교에서 정토학은 남북조의 여산혜원(廬山慧遠)을 비롯하여 당나라의 담란(曇鸞)과 도작(道綽)과 선도(善導) 등에 의해서 대성되었다. 여기에서 극락이라는 말은 『관무량수경』과 『아미타경』에서 사용된 명칭이다. 『관무량수경』에서는 “우리는 지금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의 정토에 태어난다.”라고 말하고, 『아미타경』에서는 “그 나라를 어떠한 연유로 극락이라고 하는가? 그 나라의 중생은 어떤 고통도 없고 오직 모든 즐거움만을 받기 때문에 극락이라고 부른다.”고 아미타불의 국토를 극락이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극락의 극(極)이란 궁극이나 최상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이 이상의 즐거움은 없다는 절대적이고 궁극적이며 최상의 즐거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래서 안락(安樂)이나 극락(極樂)이라고 말하는 경우의 낙(樂)이란 인간 세계와 같이 괴로움과 즐거움의 상대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상대를 초월한 절대적인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다. 정토삼부경에서는 지하, 지상, 허공에 걸쳐서 칠보로 장엄된 풍광이 화려하고 미묘한 극락세계를 필설을 다해도 설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왕생한 사람들의 불퇴전의 계위, 무생법인의 계위, 일생보처의 덕, 제불계양의 덕, 문법의 덕, 자리이타의 덕 등이 얻어짐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언제나 정토의 절대적인 즐거움을 표상하여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외의 경전과 주석서에서도 여러 가지 표현으로 정토의 절대적인 즐거움을 설하고 있지만, 이것은 인간세계와 같은 고락의 상대적인 즐거움이 아니고, 인간의 사유를 초월하는 절대적인 즐거움을 나타내고 있다.
이상의 불신관과 정토관은 진리 자체의 자성신(自性身)인 법신불(法身佛)과 자수용신(自受用身)과 타수용신(他受用身)의 보신불(報身佛),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정토(淨土)와 예토(穢土)를 가리지 않고 화현한 변화신(變化身)의 화신불(化身佛) 등으로 정리된다. 또한 천태학에서 범성동거토와 방편유여토, 실보무장애토, 상적광토로 구분하여 나타내고, 나아가 화엄학(華嚴學, science of huayan)의 연화장세계라는 법성정토로 무소부재의 정토를 나타낸다. 그러나 극락정토의 아미타불은 삼신에 회통하지만 일반적으로 보신불로 불린다.
한국 고대 불교에서 정토학은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에 유행하였는데 원효(元曉)와 경흥(憬興), 법위(法位), 현일(玄一) 등이 연구하고 신앙하며 실행하였다. 단순한 염불만으로 죽은 후 서방정토의 극락세계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하며 하층사회에서 환영받은 정토신앙은 현세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를 고해(苦海)라 여기고, 내세인 극락에 왕생하는 것을 소원한다. 이리하여 많은 민중이 현세를 등지고 입산하였으며, 육신의 산몸으로 하늘을 날아 서방정토로 왕생한다는 설화가 많이 전하게 되었다.
한국 고대 불교에서 정토신앙이 유행한 것은 신라의 사회적 모순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원효성사가 일반 민중을 위해 주창하였다. 비록 고대 한국의 정토학은 하나의 종파로 성립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교학과 수행에 침투되어 민중의 신앙과 수행에 깊은 영향을 발휘했다. 나아가 건봉사(乾鳳寺)에서 비롯된 염불결사는 면면히 이어져 오늘날에도 불교신앙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고려와 조선에서 선과 염불이 결합하여 선정일치(禪淨一致)의 염불선(念佛禪)이 확립된다.
4. 정토학에서 수행의 요체
1) 정토와 아미타불의 믿음
정토신행의 요체는 관불(觀佛)과 왕생을 목적으로 하는 믿음(信), 발원(發願), 수행(修行) 의 삼법(三法)이 하나로 어우러진 신행 체계를 말한다. 정토신행에서 첫째로 믿음이란 서방정토를 믿고, 아미타불께서 중생을 섭수해준다는 본래 원력을 믿는 것이며, 여러 형태로 설해진 왕생의 방법을 믿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중생을 섭수하는 아미타불의 본래 원력에 따라서 왕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닐 뿐만 아니라, 이는 자신의 마음에 따라서 스스로 드러난 감응이 서로 교차하는 것이므로 결코 자기 마음 밖의 부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를 보다 상세하게 살펴보면 먼저 믿음에 대해서다. 『무량수경』의 상권은 여래정토의 인과를 설하고 있으며, 하권은 중생왕생의 인과를 설하고 있다. 여래정토의 요인이 48원이며, 과보는 극락정토다. 중생이 왕생하는 정인은 발보리심과 지극하고 정성스런 마음인 지심(至心)과 깊이 믿는 마음으로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데에는 발원과 염불수행이다. 즉 지심신요(至心信樂) 욕생아국(欲生我國) 내지십념(乃至十念)이다. 여기서 정인(正因)은 보리심이고, 조인(助因)은 염불이며, 과보는 왕생극락이다.
그 이유는 아미타불의 덕을 『무량수경』과 『아미타경』에서도 광명의 불타로서 나타내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무량광불 등 12광불이다. 이 ‘광명의 불타’라는 것이 인도의 세친보살이 아미타불을 이해한 중요한 요점이 되어 있다. 여래의 불가사의한 광명에 자기가 그 광명을 받고 있다는 체험이 정토신앙의 중핵이다. 우리는 아미타부처님께 ‘당신의 자비광명을 섭취한 우리 마음을 항상 비추어 보호해주소서!’라고 발원하고, 또 ‘우리가 번뇌에 눈이 가리어 비록 볼 수 없을지라도 대비하신 효력을 느끼지 못할지라도 항상 우리를 비추십니다.’라는 믿음이 정토신행의 바탕이 된다.
여래대비의 광명에 자기가 비추어져 보호되고 있다는 종교체험이 『무량수경』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무량수경』에는 “그 중생으로 하여금 이 광명을 만나는 자는 삼구(三垢)인 탐진치(貪瞋癡)가 소멸해서 몸과 마음이 유연해진다. 환희용약해서 착한 마음을 낸다. 만일 삼악도의 괴로운 장소에 있으면서 이 광명을 보고자하면 모두 휴식을 얻어서 또한 고뇌도 없다.”라고 설한다. 여래의 광명은 온갖 중생의 고뇌를 가라앉히는 공능이 있다. 여래의 광명을 받아내어 받아들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중생은 번뇌에 지혜의 눈이 가리어 여래의 광명에 섭취되어져 자기가 비추어지고 있는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석존께서 극락정토의 구조를 설하신 뒤에 아난(阿難) 등에게 무량수불을 예배하는 것을 권하고 있다. 그 권고에 응해서 아난은 의복을 정제하고 몸을 바르게 하고 서쪽을 대면하고서 무량수불을 예배한다. 그리고 그 부처님의 국토 보기를 발원한다. 그 말에 응해서 무량수불은 크나큰 광명을 놓아서 널리 일체 제불의 세계를 비춘다. 그리고 이 땅의 금강철위산과 수미산, 크고 작은 일체 산에 모든 것이 부처님의 광명에 비춰져 일색으로 된다. 예를 들면 겁수가 세계를 더욱 가득 채워서 만물이 그 가운데 침몰하면서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아미타불의 광명에 일체는 은폐되어 부처님의 광명만이 찬란히 빛나 일체를 비춘다. 그리고 아미타불은 위덕이 우뚝하여 수미산과 같이 일체세계 위에 높이 치솟아 서로 광명이 비추어 빛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아미타불의 광명을 이 땅의 일체중생은 부처님의 위대한 힘에 의해서 볼 수 있다.
2) 극락왕생의 발원
둘째로 발원(發願)이란 아미타불의 48대원과 수행자의 원이 각각 상응하여 수행자 자신의 발원과 일치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미타불의 48대원은 오겁(五劫) 동안의 사유와 조재영겁의 수행 결과이기 때문이고, 이 대원에는 중생을 섭수하려는 원력에 그들이 편승하기만하면 왕생이 기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량수경』의 특색은 극락에 왕생을 발원하는 방법이 설해져 있다. 중생이 극락에 왕생할 수 있는 근거는 법장보살의 48본원에 있다. 법장보살이 중생을 제도할 본원을 세웠기 때문에 그 본원에 의탁해서 중생이 극락에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속의 일은 자연의 도리에 기초해서 살아간다는 것과 인간의 의지에 기초해서 살아간다. 예를 들면 인간은 자연의 도리를 등지고 살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보다나은 생활을 실현하려고 생각하면 그 위에 노력이 필요하다. 현대 문명사회의 성립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 의존하는 점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원자폭탄 등도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인간이 만들려고 생각하지 않으면 원자폭탄은 만들어질 수 없다.
특히 부처님의 본원에는 총원과 별원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본원은 아미타불께서 법장비구로 인행(因行)하실 때에 세자재왕 부처님 처소에서 세운 별원을 말한다. 중국 정영사 혜원(慧遠)스님은 이를 요약해서 섭법신원(攝法身願), 섭정토원(攝淨土願), 섭중생원(攝衆生願)이라고 하였다. 48대원 가운데 부처님에 관한 내용은 제12 광명무량원(光明無量願), 제13 수량무궁원(壽量無窮願), 제17 제불칭양원(諸佛稱揚願)이다. 또 극락정토에 관한 내용은 제31 국토청정원(國土淸淨願,) 제32 국토엄식원(國土嚴飾願)이며, 나머지 모든 본원은 우리 중생에 관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18 십념왕생원(十念往生願), 제19 임종현전원(臨終現前願), 제20 회향개생원(回向皆生願)이다. 그리고 아미타불에 의해서 장엄한 극락세계에 왕생한 중생은 반드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생사가 없는 진리를 깨달아 불퇴전(不退轉)의 정정취(正定聚)한 법신을 성취한다는 것이다.
3) 정토의 염불수행
셋째로 수행이란 육근(六根)을 섭수해서 청정한 정념(正念)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방편을 빌려서 자기 마음을 계발하는 것이다. 그 방편은 바로 정토경론에 설해진 여러 설법과 왕생의 교설에 따라서 관상하고, 아미타불의 명호(名號)를 집지(執持)하여 일심불란(一心不亂)하게 정념(正念)을 유지하는 것이다. 여기서 정념에 의한 정심(淨心)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바로 오로지 정토를 생각하고 계속 기억해야 한다는 것으로서 아미타불의 명호에 생각을 매어 두는 것을 매우 중시하는 정토신행이다. 이 밖에 정토신행에서는 예배와 참법, 독송, 지계, 각종 장엄불사, 각종 바라밀행도 중시하지만, 특히 칭명염불(稱名念佛)을 비롯한 관상염불(觀想念佛), 실상염불(實相念佛)이 중시된다.
다음으로 보다 자세하게 종합하면서 염불수행을 살펴보기로 한다. 극락정토의 건립은 법장보살의 본원에 의해서 닦여진 것이라고 설해져 있다. 특히 중생이 극락에 왕생하는 것은 『무량수경』의 48원 중의 제18원, 제19원, 제20원 세 가지 본원에 나타나고 있다.
즉 제18원에는 “시방의 중생이 지극한 마음으로 즐겨 믿으면서 내 국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적어도 열 번을 염불하여 만약 태어나지 않는다면 정각(正覺)을 이루지 않으리라.”라고 맹세하고 있다. 다만 여기에는 “오역죄(五逆罪)와 정법(正法)을 비방하는 사람은 제한다.”고 설하고 있다. 즉, 어떤 중생이라도 지극한 마음의 정성스런 마음으로 즐거이 믿으면 적어도 십념(十念)만이라도 수행하면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19원에는 “시방의 중생이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고 모든 공덕을 닦고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해서 나의 국토에 태어나고자 하면 목숨을 마칠 때에 즈음해서 성중에 의해 둘러싸여서 그 사람의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정각을 이루지 않으리라.”라고 맹세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보리심과 신심을 발한 중생과 선근을 닦고 지심으로 발원하여 극락왕생을 발원하면 임종할 때에 아미타 부처님께서는 대중의 둘러싸여서 그 사람 앞에 나타나시어 극락으로 인접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임종 시에 아미타불께서 영접하러 오신다는 의미다.
제20원은 “시방의 중생이 나의 명호를 듣고 염하여 나의 국토에 이어져서 모든 공덕의 근본을 심어서 지심으로 회향해서 나의 국토에 태어나려고 하는데 과보가 드러나지 않으면 정각을 이루지 않으리라.”라고 맹세하고 있다. 이것은 극락에 태어나고 싶은 사람이 왕생을 발원하면서 공덕의 근본을 심어서 이것을 지심으로 회향해서 왕생을 발원하면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삼원(三願)에 대해서는 정토교의 논사들이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하는데 본원에 의지한 신심과 발원 그리고 염불수행이 중요하다. 따라서 믿음과 발원과 명호를 집지함으로써 수행의 근본적인 요체로 귀결된다.
또한 『관무량수경』에서는 염불과 선수행의 통로를 열어주는 경전으로 상상관(像想觀), 진신관(眞身觀), 관음관(觀音觀), 세지관(勢至觀), 보관(普觀), 잡상관(雜想觀), 삼배관(三輩觀)을 들 수 있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의보관법인 일상관(日想觀), 수상관(水想觀), 보지관(寶地觀), 보수관(寶樹觀), 보루관(寶樓觀), 화좌관(華座觀)이다. 다음에 『불설아미타경』에서도 극락왕생의 신앙을 중점으로 발원과 칭명염불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왕생론』에서도 이를 종합하는 정토장엄, 불장엄, 보살장엄의 3장엄 29가지 장엄 가운데 오인문인 예배문(禮拜門), 찬탄문(讚歎門), 작원문(作願門), 관찬문(觀察門), 회향문(廻向門)의 오념문(五念門)과 근문(近門), 대회중문(大會衆門), 택문(宅門), 옥문(屋門), 원림유희지문(園林遊戱地門)의 오과문(五果門)으로 게송을 설하고서 다시 게송에 대해서 자세하게 논하고 있다.
이러한 논서의 핵심은 극락정토와 부처님과 보살의 공덕을 장엄한 성취를 설하였다. 이 세 가지는 본원심(本願心)의 장엄을 성취한 것이다. 간략히 말하면 일법구(一法句)에 들어가기 때문에 일법구란 이른바 청정구(淸淨句)이고 청정구란 이른바 진실한 지혜의 무위법신(無爲法身)이기 때문이다. 이 청정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기세간청정(器世間淸淨)이요, 둘째는 중생세간청정(衆生世間淸淨)이다. 이것은 바로 열반을 체득하는 구경의 목적이다. 여기에 네 가지 부처님의 지혜로 상징되는 부처님의 광명을 믿고 체득하는 종교적 체험에서 정토수행은 완성된다.
5. 주요 용어 및 관련 직업군
1) 주요 용어
• 극락세계: 극락세계란 서방정토극락세계를 말한다. 이 사바세계에서 10만억 국토를 지나는 곳에 극락세계가 있는데, 정국(淨國), 정토(淨土), 악락(安樂), 칠보로 장엄한 국토다. 일반적으로 정토의 왕생은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을 말한다.
• 아미타불: 아미타불의 본래 명칭은 무량수불(無量壽佛) 또는 무량광불(無量光佛)을 의미한다. 아미타불은 극락세계의 교주이고 지금도 설법하여 중생을 완전한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는 부처님의 명호다. 뿐만 아니라 아미타불은 무량한 지혜와 자비로 일체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일체중생을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우주법계의 유일한 부처님이다.
• 극락왕생: 극락에 왕생하는 것은 깨달음을 성취하여 고통을 받는 자신을 제도하고 다른 중생을 제도하여 구제하기 위해서다. 왕생의 의미에는 현세에서 스스로 깨닫는다는 의미와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깨닫는다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따라서 금생에 깨달음이 어려운 중생을 아미타불의 본원력을 의지해서 깨달음을 구현하는 것이 극락왕생의 의미다.
• 왕생요인(정인, 조인): 왕생의 요인에는 보리심을 발하는 것이 정인(正因)이고, 여타의 수행은 모두 조인(助因)이다.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용시하는 것이 깨달음을 실현하는 것이다. 정토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깨달음을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인이 발보리심이고, 여타의 수행은 조인으로 간주한다. 여기서 조인은 여러 가지 염불을 비롯하여 극락에 태어나기를 발원하고 각종의 공덕을 짓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보리심(菩提心)은 갖추어 말하면 발아눗다라삼먁삼보디찟다(發阿耨多羅三邈三菩提心)이다.
이를 의역하면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心)을 발하는 것, 또는 무상정진도의(無上正眞道意)을 발하는 것이다. 이는 위 없는 최상의 완전한 깨달음을 완성하려는 마음이다. 그 내용은 진여성(眞如性) 또는 여래성(如來性)인 부성(佛性)을 발현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인(正因)이 되어 초지(初地)인 불퇴전지(不退轉地)에 올라 마침내 본각(本覺)에 이르는 것이다. 수행은 바로 칭명염불을 비롯하여 육바라밀과 각종 관법을 수행하는 것이다.
• 수행요체(믿음, 발원, 수행): 정토학에서 수행의 요체로 삼는 것이 극락세계와 아미타불의 존재를 믿는 것이고,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는 것이며, 칭명염불을 비롯하여 관상(觀像)염불, 관상(觀想)염불, 실상(實相)염불을 수행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토학의 수행하는 요체가 되는 것이다. 믿음에는 문신(聞信)과 정신(淨信)과 신해(信解)가 있다. 그리고 또한 발원에는 총원(總願)과 별원(別願)이 있다.
총원은 사홍서원을 말하고, 별원은 아미타불의 48원과 약사여래불의 10원이 있으며, 석가모니불의 5백대원이 있으며, 각각의 보살들에 세운 개별적 원들이 있다. 다음에 수행에서 염불과 각종수행이 있다. 먼저 염불은 아미타불을 생각하면서 입으로 그 명호를 지극정성으로 생각하면서 입으로 외우는 것이다. 다음에 입으로 아미타불을 염하면서 생각으로 정보와 의보를 관상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정보(正報)의 관법(觀法)으로 상상관(像想觀)·진신관(眞身觀)·관음관(觀音觀)·세지관(勢至觀)·삼매관(三輩觀)을 들 수 있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정보(依報)의 관법(觀法)인 일상관(日想觀)·수상관(水想觀)·보지관(寶地觀)·보수관(寶樹觀)·보지관(寶池觀)·보루관(寶樓觀)·화좌관(華座觀)이다. 이 밖에도 수행에 부모님께 효도하고, 육바라밀과 육수념을 수행하면서 각종 공덕을 수행하는 것이다.
• 장엄사상(정보와 의보): 극락장엄(sukhāvati-vyūha)에는 크게 정보(正報)장엄과 의보(依報)장엄으로 나눈다. 극락세계의 장엄에는 17가지 의보장엄과 12가지 정보장엄으로 나눈다. 여기서 자세한 내용으로 정보장엄은 8가지 불장엄(佛莊嚴)과 4가지 보살장엄(菩薩莊嚴)을 말한다. 이 밖에도 연각장엄(緣覺莊嚴), 성문장엄(聲聞莊嚴), 중생장엄(衆生莊嚴)을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 의보장엄은 불국토장엄(佛國土莊嚴)이라고도 하는데 17종류가 있다.
말하자면 [① 청정(淸淨), ② 무량취(無量), ③ 성(性), ④ 형상(刑相), ⑤ 종종사(種種事), ⑥ 묘색(妙色), ⑦ 촉(觸), ⑧ 삼종(三種; 물과 땅과 허공), ⑨ 우(雨), ⑩ 광명(光明), ⑪ 묘성(妙聲), ⑫ 주(主), ⑬ 권속(眷屬), ⑭ 수용(受用), ⑮ 무제난(無諸難), ⑯ 대의문(大義門), ⑰ 일체소구만족(一切所求滿足)]공덕성취장엄(功德成就莊嚴)이다. 나아가 정보장엄의 불장엄(佛莊嚴)에는 8종류가 있다.
즉, [① 좌(座), ② 신업(身業), ③ 구업(口業), ④ 심업(心業), ⑤ 대중(大衆), ⑥ 상수(上首), ⑦ 주(主), ⑧ 불허작주지(不虛作住持)] 공덕성취장엄(功德成就莊嚴)이다. 보살장엄(菩薩莊嚴)에는 4종류가 있는데 명칭이 없었으나, 후대에 붙여진 이름을 들면 ① 부동이지(不動而至), ② 일념편지(一念遍至), ③ 무상공양(無相供養), ④ 시법여래(示法如來) 등의 공덕성취장엄(功德成就莊嚴)이다.
이상 3엄29종의 장엄 가운데, 처음의 불국토장엄 공덕은 중생이 극락정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원하는 마음을 냄에 응해서 정토의 모습을 설하고, 부처님의 장엄공덕은 정토왕생이 부처님의 원심에 의해 가능함을 나타내며, 마지막 보살장엄은 정토에 왕생한 보살의 원심은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곳에 태어나 중생을 구제하기를 원하고 있다.
• 삼매(염불삼매, 관불삼매, 보등삼매): 삼매는 마음을 집중하여 마음에 산란이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관불삼매(觀佛三昧)는 부처님을 관상(觀想)하는 삼매다. 생각을 가다듬어 부처님의 상호와 공덕을 생각하고 관찰하는 선정이다. 이 삼매에 들어 한 부처님을 보게 되면, 시방의 모든 부처님도 볼 수 있고, 그 자리에서 수기(授記)를 받는다고 한다. 다음에 염불삼매(念佛三昧)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염불(理念佛)이고, 둘째는 사염불(事念佛)이다. 진리를 직접 체득하는 염불은 법계의 법신을 일심으로 기억하고 생각하면서 부처님의 상호장엄을 관하고, 그 관이 성숙하여 법계에 편만한 진리의 몸인 제법실상을 관하여 이르는 삼매다. 또한 보등삼매(普等三昧)는 산스크리트어로 삼만다아누가다(samantā anugata)로 평등삼매(平等三昧), 보편삼매(普遍三昧)라고도 한다. 이것이 바로 한 부처님만을 염하면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을 일시에 친견할 수 있는 선정이다. 따라서 관불삼매와 보등삼매, 일행삼매, 반주삼매 등은 모두 염불삼매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일행삼매(一行三昧) 또는 일상삼매(一相三昧), 일상장엄삼매(一相莊嚴三昧)라고도 한다. 이는 전 우주의 온갖 사물과 마음의 현상은 평등하고, 한 모양인 것으로 관찰하는 삼매다. 그리고 또 부처님의 가피력에 의존해서 현상적인 염불은 정토문에서 아미타불 한 분만을 일컬어 기억하고 생각하면서 이 생각이 다른 곳에 흩어지지 않고, 일심불란으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다.
• 삼배왕생: 삼배왕생(三輩往生)이란 상배자(上輩者)와 중배자(中輩者)와 하배자(下輩者) 등 극락에 왕생하는 자들을 말한다. 먼저 상배자(上輩者)는 출가하여 무상보리심(無上菩提心)을 발하고. 일향전념무량수불(一向專念無量壽佛)을 염하면서 갖가지 공덕을 닦아 극락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자들이다. 그러면 칠보로 된 연꽃에 화생(化生)하는 자들이다. 다음에 중배자(中輩者)는 비록 출가는 하지 않았지만 왕생발원(往生發願)하고 무상보리심(無上菩提心)을 발하여 일향전념무량수불(一向專念無量壽佛)를 염하면서 조탑(造塔)과 조상(造像)과 삼보(三寶)에 향(香)과 등(燈) 갖가지 공양물을 공양하는 이들이다.
하배자(下輩者)란 지극한 마음으로 왕생발원(往生發願)하고 무상보리심(無上菩提心)을 발하여 일향전념(一向專念)하면서 적어도 아미타불 열 번을 염하면서 왕생을 기원하는 자들이다. 또한 법문을 듣고 의혹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한 생각만이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극락세계에 왕생을 발원하는 자들을 말한다.
• 삼복왕생: 극락왕생의 요인을 삼복(三福)으로 설정하고 있다. 즉, ①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과 어른을 섬기며 살생하지 않고 십선업(十善業)을 닦으며, ② 삼보(三寶)에 귀의하여 계를 지키고 불자의 위를 무너뜨리지 않고, ③ 보리심(菩提心)을 발하여 인과의 도리를 믿는 것으로 설정하여 위제희 부인과 미래 중생을 위한 16관법을 설한다. 특히 염불수행과 선수행의 겸수(兼修)를 강조하고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신력과 지혜를 불퇴전(不退轉)의 믿음으로 강조하고 있다.
• 불퇴전(不退轉): 보살의 수행에서 물러남이 없는 경지를 얻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불퇴전(不退轉)의 경지에 머무는 극락왕생이다. 극락세계에 왕생한다면 다섯 가지 인연의 불퇴전이 있다. 첫째, 아미타불의 대비한 원력에 섭수되어 지켜주시기 때문에 불퇴전을 얻을 수 있다. 둘째, 부처님의 광명이 항상 비추기 때문에 보리심이 항상 증진하여 물러나지 않는다.
셋째, 물과 새, 나무와 바람 소리, 음악의 음향이 모두 고(苦)와 공(空), 무상(無常), 무아(無我)의 설법을 설하고, 듣는 자는 항상 염불(念佛)과 염법(念法)과 염승(念僧)의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물러나지 않는다. 넷째, 극락세계에서는 순수한 보살이 선량한 벗이 되기 때문에 사악한 반연의 경계가 없어 밖으로는 사악한 귀신이나 마장의 삿됨이 없고, 안으로는 삼독(三毒) 등의 번뇌가 없어서 마침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물러나지 않는다. 다섯째, 저 극락국토에 왕생하면 수명이 영겁이고 보살과 함께 부처님과 가지런히 같기 때문에 물러나지 않는다.
• 청정무위법신: 수행자가 모든 수행을 행하되 그 행위에 집착하지 않고 진리를 직접 체득하는 법계의 법신을 일심으로 기억하고 생각하면서 부처님의 진리 자체가 텅 빈 공성의 청정임을 관찰하고, 그 관찰이 성숙하여 법계에 편만한 진리의 몸인 제법실상(諸法實相)을 관찰하여 법계가 모두 진여의 진리 자체로 청정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 나라와 부처님과 보살의 공덕이란 모두 불보살의 본원심(本願心)을 구현한 장엄을 성취한 것이다. 이것을 간략히 말하면 일법구(一法句)에 들어가기 때문에 일법구(一法句)란 이른바 청정구(淸淨句)이고 청정구란 이른바 진실한 지혜의 무위법신(無爲法身)이기 때문이다.
이 청정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기세간청정(器世間淸淨)이요, 둘째로는 중생세간청정(衆生世間淸淨)이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의보와 정보가 청정한 것이 청정무위법신이다. 이것이 바로 오염이 없는 청정, 평안한 청정, 즐거운 청정이다.
2) 관련 직업군
• 종교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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