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중본기경 하권
10. 바사닉왕을 제도하는 품[度波斯匿王品]
이때 여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돌아오셔서 비구승 1,250인과 함께 계셨다.
바사닉(波斯匿)왕은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바로 석가 성바지로서 집을 떠나 산에 있으면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시었기에 거룩한 빛은 신령하고 미묘하며 하늘ㆍ용ㆍ귀신들까지도 우러르지 않음이 없고, 사람들을 위하여 법을 말씀하면 위나 중간이나 아래의 말씀이 다 좋으며, 그 말씀하는 바를 듣고 기뻐하지 않음이 없으며, 복을 열고 재앙을 막으며 열반에 드는 것을 말씀하신다.’
곧 차리고 나와서 인도하고 따름을 평상시처럼 하여 문에 도달해서는 수레에서 내리고 뭇 신하들과 함께 나아가 똑바로 읍을 하고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근래에 듣건대, 석가 태자께서는 단정히 앉은 지 6년 만에 도가 이룩되어 부처님이라 하신다는데 사실이 그러합니까? 이것은 세상에서 아름다운 일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왕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바로 참으로 부처님입니다. 세상에서 헛되게 전한 것이 아닙니다.”
왕은 다시 말하였다.
“구담이여, 자칭 부처님이 되었다 하기 때문에 부처님이 아닐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왕에게 대답하셨다.
“과거 오랜 옛적에 세상에 부처님이 계셔서 명호가 정광(定光)부처님이었는데, 나에게 수기하시기를,
‘너는 오는 세상의 91겁 만에 부처가 될 터인데 명호는 석가문(釋迦文)이리라. 32가지의 몸매와 80가지의 잘 생긴 모습과 18가지의 특별하고 미묘한 법과 10가지의 신력(神力)이며 4가지 두려운 바 없음[無所畏]을 지니리니, 한 가지 일이라도 부족하면 부처님이 되었다고 못하리라’고 하셨는데,
나는 지금 갖추어 있기 때문에 여래ㆍ무소착(無所着)이며 바르고 참된 깨달음이 되었습니다.”
왕은 헷갈리고 뜻에 의심이 나서 거듭 질문하였다.
“구담께서는 나이도 젊고 배운 날이 아주 얕으십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어떤 바라문은 물과 불을 닦고 다스리되 애를 써서 몸을 괴롭히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96가지 술법을 겪지 않은 것이 없느라고 나이가 높고 덕이 멀기 때문입니다.
불란가섭(不蘭迦葉) 등의 여섯 분들은 이름이 세상을 덮었는데도 아직 부처님이 되지 못하였으니, 부처님이란 참으로 높으신 것입니다. 이로써 미루건대 의심이 나며 믿어지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왕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왕을 위하여 법을 말하겠으니 참으로 자세히 듣고 의심하지 마십시오.”
왕은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왕에게 말씀하셨다.
“작은 것에 네 가지 일이 있는데 모두가 업신여길 수 없습니다.
무엇이 네 가지 일인가?
첫째 태자가 비록 작다 하더라도 장차 정식의 임금이 될 터이므로 이도 업신여길 수 없음이요,
둘째 작은 불이지만 풀을 태우며 풀이 다하여야 비로소 그치므로 이도 업신여길 수 없음이요,
셋째 용의 새끼가 비록 작기는 하나 능히 바람ㆍ비ㆍ우뢰ㆍ번개며 벼락을 칠 수 있으므로 이도 업신여길 수 없음이요,
넷째 도를 닦는 선비가 비록 작다 하더라도 이미 도의 요긴하고 깊고 미묘한 지혜에 들어서 날아다니며 교화하고 인민을 제도 해탈시키므로 이도 업신여길 수 없습니다.”
이에 세존께서는 왕을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태자의 복이 이룩되어서
장차는 정식의 임금이 되거늘
어리석은 사람이 업신여긴다면
재앙이 바로 일어나나니
바로 마음으로 말미암아 나오기에
중할 수도 있고 가벼울 수도 있느니라.
전생의 행으로 얻어진 바라
복은 저절로 몸을 따르나니
능히 덕의 근본을 살핀 연후에
그 사람에게 도의 요체가
갖추어졌는가를 살필 것이니
대왕은 생각해 보셔야 하리라.
작은 불이 풀을 만나
타게 되면 한없으며
수미인 보배산도
조그마한 것으로부터 생겼느니라.
슬기로운 이는 사물을 살필 적에
작은 것도 없고 큰 것도 없나니
용을 만나서 피하지 않으면
작은 독이 사람을 해치느니라.
비구는 악을 깨뜨리고서
힘써 나아가 선정에 들며
도가 이룩되면 신통으로
변화를 하여 사람들을 제도하느니라.
진리를 보고 깨끗하여 때가 없어서
이미 5도(道)의 못을 건넜나니
부처님이 나와서 세간을 비추어
중생을 위해 근심 걱정을 없애느니라.
왕은 이 바른 말씀을 듣고도 때[垢]가 중하고 뜻이 가리워져서 남아 있는 의심을 아직 깨지 못하고서 나아가 부처님 발 아래 예배하고 하직하고는 물러나 왕궁으로 돌아갔다.
이때 나라 안에 어떤 바라문이 부자로 살며 보배는 많았으나 늙도록 아이가 없었으므로, 사당에 힘을 다하여 빌었더니 얼마 안 되어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일곱 살이 되자 병이 들어 갑자기 죽어버리는지라,
그의 아버지는 몹시 괴로워서 누워도 자리가 편하지 못하고 음식조차 들지 못하다가 부처님께서는 걱정과 근심을 없앨 수 있다 함을 듣고 즉시 기원에 나아가자,
부처님께서는 범지에게 물었다.
“무슨 근심 걱정이 있기에 얼굴빛이 파리합니까?”
바라문은 말하였다.
“저의 나이 늘그막에 오직 하나의 아들이 있었사온데 저를 버리고 죽어버렸으므로 슬프고 가엾어서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에게 은혜와 사랑이 있으면, 곧 근심하고 슬퍼하게 되느니라.”
범지는 뜻이 헷갈려서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은혜와 사랑의 즐거움에 무슨 근심과 슬픔이 있겠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느니라.”
이렇게 세 번까지 하셨는데도 바라문은 이해하지 못하고 기원에서 달려 나가다가 두 사람이 노름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는 생각하기를,
‘이들은 반드시 슬기로운 이들이므로 나의 의심을 풀 수 있으리라’ 하고,
곧 두 사람에게 물었다.
“은혜와 사랑은 즐거운 것입니까, 근심되고 슬픈 것입니까?”
그러자 즉시 범지에게 대답하였다.
“천하에서 즐거운 것은 은혜와 사랑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범지는 다시 말하였다.
“나는 구담을 보았더니, 나를 향하여 그것을 말합니다.”
두 사람은 대답하였다.
“사문 구담은 세상을 반대하고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데 부디 믿지 마십시오.”
나라 안의 어리석은 이들은 같이 부처님의 말씀을 비웃었는데 이에 위로 왕에게까지 들리자
왕은 뜻이 헷갈린지라 곧 부인 말리(末利)에게 말하였다.
“구담은 몹시 우스꽝스럽소. 논리에 거슬리고 이치에 잘못되었소. 어째서 은혜와 사랑이 있으면 근심과 슬픔이 생깁니까?”
부인은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거짓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그와 같습니다.”
왕은 다시 말하였다.
“당신은 구담을 높이어 그렇게 앙모하고 친히 하므로 그를 믿게 되는 것이오.”
부인은 왕에게 아뢰었다.
“왜 스스로 가시거나 지혜로운 신하를 보내거나 하여 물을 바를 여쭈어 보지 않으시고, 세상의 미치고 헷갈림만을 증험하십니까?”
왕은 그 말을 듣고, 곧 지혜로운 신하 나리승(那利繩)을 불렀다.
“그대는 나의 말을 가지고 구담에게 문안하고,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고 헷갈려서 망령되이 높으신 뜻을 전하면서 멋대로 말하기를, 은혜와 사랑이 근심과 슬픔을 낸다 함은 괴이하고도 그 이치가 어긋났다고 하므로 심부름을 보내어 교화를 받자옵니다’고 하라.
만약 부처님께서 가르침이 있거든 그대는 자세히 받을지니라.”
신하는 왕의 명을 받고 곧 기원에 나아가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났다가 잠깐 만에 나아가 길게 꿇어앉아 아뢰었다.
“국왕 바사닉이 자리 앞에 머리 조아리며 모르는 것을 묻자오니, ‘원컨대 가르치심을 보이소서’라고 하였나이다.”
감히 사실대로의 말을 아뢰자,
이에 여래께서는 신하에게 명하여 자리에 앉게 하고 말씀하셨다.
“은혜와 사랑의 근본은 흐름이 깊어서 다하기 어렵나니, 근심과 슬픔의 괴로움은 한결같이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느니라.”
또 대신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그대에게 물으리니 뜻이 풀리면 곧 대답하라.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부모가 돌아가시고 처자가 죽어버리며 재산은 관청에 몰수되었다면 이 사람의 근심과 괴로움은 견뎌낼 수가 있겠느냐?”
대신은 대답하였다.
“진실로 높으신 가르침과 같습니다.”
또 대신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어떤 사람이 가난하게 살다가 장가를 들면서 부잣집 딸을 얻었었는데 게을러서 하는 일이 없는지라 날로 다시 가난해져서 집에 먹는 것조차 허덕이게 되자 빼앗아다가 다시 시집을 보내려 하므로
아내가 집안의 의논을 듣고 곧 남편에게 말하기를,
‘우리 집의 세력이 강한지라 반드시 빼앗기게 될 터인데, 당신은 장차 어떤 계교를 쓰겠습니까?’ 하자,
남편이 부인의 말을 듣고 데리고 함께 방에 들어가서는,
‘이제 당신과 함께 한 곳에서 죽어버리고 싶소’ 하고,
바로 부인을 찌르고 돌아와 다시 자기를 찔러 자살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는 나리승에게 말씀하셨다.
“은혜와 사랑이 서로를 죽이기까지 하였거늘 어찌 근심하고 슬플 뿐이겠느냐?”
그러자 신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예배하고 물러나 궁중으로 돌아와서 자세히 부처님의 뜻을 말하였으나
왕은 뜻이 깨치지 않아 오히려 이 말씀을 비웃으면서 다시 말리에게 말하였다.
“구담은 무엇 때문에 다만 이런 말씀을 하실까?”
그러자 부인은 왕에게 아뢰었다.
“한 가지 일을 여쭙고자 하는데, 원컨대 받아 살펴보십시오.”
왕은 말하였다.
“말하여 보시오.”
부인은 물었다.
“저쪽의 두 고을이 하나는 가이군(迦夷郡)이요, 하나는 구달로군(拘達盧郡)인데
만약 어떤 이가 왕에게 이르기를,
‘저 두 나라를 다른 나라 왕이 빼앗아 갔습니다’고 하면, 왕은 어떻다 하시겠습니까?”
왕은 부인에게 말하였다.
“나의 재물이 많고 즐거움은 이 두 나라 때문인데, 만약 이런 질문이 있다면 뜻에 근심되고 심란하리다.”
부인은 다시 말하였다.
“태자 유리(琉璃)와 황녀 금강(金剛)이 병들거나 죽거나 하면, 왕은 어떻다 하시겠습니까?”
왕은 부인에게 대답하였다.
“이 심정은 견디기조차 어려우리다.”
부인은 왕에게 물었다.
“이것이 은혜와 사랑은 근심과 슬픔이 생긴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천첩(賤妾)이 잘못 생겼기는 하오나 휘장에서 모시게 되다가 하루아침에 병들어 죽으면, 왕은 어떻다 하시겠습니까?”
왕은 말리에게 대답하였다.
“나의 심정은 헷갈리고 쓸쓸해져서 목숨도 장차 보전을 못하리다.”
부인은 다시 말하였다.
“이것이 은혜와 사랑은 근심과 슬픔이 생긴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왕의 뜻이 비로소 풀려서 곧 평상을 내려오며 멀리 기원에다 예배하고 3존(尊)께 귀명하며 참회하고 사과하면서 말하였다.
“형상이 다하고 목숨이 끝나기까지 높으신 가르침을 머리에 받들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