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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문수사리현보장경 하권
[문수사리의 신통 4, 외도 5백 인을 화작하다]
그때 현자 빈누문타니자(邠耨文陀尼子)가 또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나 역시 문수사리가 나타내는 그 변화를 보았습니다.
기억하건대 옛날 부처님께서 유야리(維耶離)에서 유행하실 때에 6만 비구 대중과 더불어 부처님을 둘러싸 공양하였습니다.
이때 내가 삼매에 들어 모든 이도(異道)를 관찰한 끝에 제도 받아야 할 무수한 백천 사람들을 보고 내가 곧 이도들의 처소에 가서 설법했으나
그들이 내가 강하는 것을 듣고서 잘 받아 행하지 않고 생각하여 뜻에 간직하지 않을 뿐더러 도로 비방하고 비웃고 욕하고 성내는지라,
거기에 석 달 머무는 동안 한 사람도 가르쳐 깨우치지 못한 채 싫증이 나서 그대로 버리고 물러났습니다.
그때 문수사리가 외도 5백 인을 화작(化作)하고는 스스로 스승이 되어 그 5백 권속들을 때리고 함께 살차니건불(薩遮尼犍弗) 처소에 나아가 엎드려 예배하고 한쪽에 서서 말했습니다.
‘제가 대사의 공명이 멀리 떨침을 들었기에 이제 일부러 다른 대국으로부터 유야리에 왔습니다.
이제는 대사가 바로 저희들의 세존이신 만큼, 원컨대 화상의 교훈을 받기 위해 그 명령을 받들되 마치 구담(瞿曇)을 뵙듯이 하겠으니,
저희들은 아직 큰 사문께서 유순한 묘법을 설하시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때 심나형자(審裸形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좋구나, 좋구나. 그대는 오래지 않아서 곧 나의 법률의 행을 요달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극한 마음을 쓰기 때문이다.’
이에 심나형자는 스스로 그의 대중들에게 고했습니다.
‘너희들은 이 5백 학지(學志)와 함께 즐거이 화합하여 행동을 같이하되
서로가 법화(法化)를 받고 경전의 이치를 공동으로 배워야 하며,
설령 이 5백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너희들은 자세히 받아서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때 문수사리가 5백 학지들을 데리고 한데 모여 점차 그 행을 나타내매, 그 참된 공덕과 계행이 드디어 본래보다 뛰어나서 두루 스스로 나타내는지라,
그 중에 삼보를 찬탄하여 말하기도 하고, 혹은 또 심나형자의 바른 덕의 행을 읊어 칭찬하기도 하여 이 인연을 제외하고, 다른 강(講)하던 것은 모두 중지하였습니다.
그때 외도 사람들과 다른 날 다시 만나서 문수사리는 말했습니다.
‘우리들로서 그대 같은 이가 경전을 풍송(諷誦)하고 강의한 그 말씀을 관찰해 본다면, 사문 구담이야말로 진실한 덕이 있다 할 것이다.
왜냐하면 크고 호귀(豪貴)한 집에 태어나 종성(種姓)이 구족하고 부모와 후예가 청정한 제왕으로서 전륜(轉輪)의 성종이며, 한 가지 상(相)에 백 가지 복과 공덕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듣건대 처음 출생하실 때에 제석ㆍ범천이 받들어 공경하고 온 천지가 진동하여 삼천대천세계에 수취(受取)할 이가 없었으며,
땅에 떨어지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시면서 손을 들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천상천하에 가장 높으니 마땅히 중생들을 위해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끊으리라.≻라고 하셨다.
그리고 용왕이 물을 토해내어 제석ㆍ범왕이 함께 목욕하고 모든 하늘과 인민들이 기악(伎樂)을 두드리는지라
큰 광명을 놓아 뭇 나쁜 갈래[惡道]를 쉬게 하고 일체 감관이 다 구족하여 그 구족하지 못한 중생들로 하여금 다 번뇌를 버리고 안온하게 함으로써
관상쟁이 범지(梵志)가 미리 서응(瑞應)을 말하기를,
≺만약 재가(在家)한다면 전륜성왕이 될 것이고, 출가한다면 곧 부처가 되어 법왕(法王)으로서 법 바퀴를 굴리리라≻고 하였다.
[처음과 중간도 마지막도 훌륭하다]
그 뒤에 나라와 왕위를 버리고는 보리수 밑에서 억백천 마군과 관속들을 항복 받고 바로 깨달음을 이룩하여 곧 법 바퀴를 굴리시매 그 누구도 당할 이가 없었으며,
여러 사문ㆍ범지와 하늘ㆍ용ㆍ귀신ㆍ범천과 세간 인민들을 위해 경전을 설하여 강의하시매
처음과 중간도 훌륭하고 그 마지막도 역시 훌륭하셨다.
이른바 처음도 훌륭함이란 몸의 행이 착하고 입의 말씨가 착하고 마음의 생각이 착함이며,
중간도 훌륭함이란 그 뜻이 매우 참되고 계행을 구족하여 뭇 지혜를 초월함이며,
마지막도 훌륭함이란 공하고 상(相)없고 원(願) 없는 해탈의 법문을 얻음이다.
또 처음도 훌륭함이란 고요함을 믿어 방일하지 않음이며,
중간도 훌륭함이란 뜻이 안정되어 한결같이 평등함이며,
마지막도 훌륭함이란 바로 지혜를 봄으로써 슬기를 깨달음이다.
또 처음도 훌륭함이란 부처님에 대해 신심을 무너뜨리지 않게 함이며,
중간도 훌륭함이란 법에 대해 청정함을 어지럽히지 않게 함이며,
마지막도 훌륭함이란 대중 스님들에 대해 신심을 없애지 않게 함이다.
또 처음도 훌륭함이란 다른 음성을 따르지 않음이며,
중간도 훌륭함이란 적정(寂靜)함을 염함이며,
마지막도 훌륭함이란 성현을 평등하게 보게 함이여,
또 처음도 훌륭함이란 괴로움을 끊고 쌓임을 제거함이며,
중간도 훌륭함이란 여덟 가지 길을 받들어 행함이며,
마지막도 훌륭함이란 사라짐의 진리를 극진히 하여 취증(取證)함이니,
이상은 여러 제자들을 위해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마지막도 훌륭하신 것이다.’
문수사리는 이어 말했습니다.
‘여러 보살들을 위해 처음도 훌륭함이란 큰 도의 뜻[道意]을 따르게 함이며,
중간도 훌륭함이란 작은 도의 뜻을 좋아하지 않게 함이며,
마지막도 훌륭함이란 일체의 지혜를 권조(勸助)함이다.
또 처음도 훌륭함이란 모든 중생에게 평등한 뜻의 대자(大慈)를 내게 함이며,
중간도 훌륭함이란 일체 사람들 때문에 대비(大悲)를 싫어하지 않게 함이며,
마지막도 훌륭함이란 평등한 뜻의 행을 즐겁게 옹호하게 함이다.
또 처음도 훌륭함이란 모든 계율을 범한 자를 거두어 주기 위해 그 잘난 체하여 수행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아가 바른 이치를 받들게 하고, 그 성품 어지러운 자로 하여금 평등한 행을 얻어 삿되거나 나쁜 지혜를 제거하게 함이며,
중간도 훌륭함이란 이른바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를 말함이며,
마지막도 훌륭함이란 6바라밀을 이어받음으로써 일체의 지혜를 관하게 함이다.
또 처음도 훌륭함이란 4은(恩)을 행하여 뭇 사람들을 가르쳐서 포섭함이며,
중간도 훌륭함이란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서 법을 구호함이며,
마지막도 훌륭함이란 모든 어두움과 사라짐에 떨어지지 않게 함이다.
또 처음도 훌륭함이란 마음 가지기를 땅처럼 하여 보살행을 받들되 회합이 없음이며,
중간도 훌륭함이란 지혜에 흔들리지 않아 퇴전하지 않는 지위에 서는 것이며,
마지막도 훌륭함이란 마음이 집착된 바 없이 한 생만 지나면 부처님에 후보되는 지위[一生補處]를 얻게 함이니,
이상은 모든 보살들을 위해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마지막도 훌륭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문수사리가 여러 외도들을 위해 알맞게 설법하여 5백 사람들로 하여금 번뇌를 멀리 여의고 법의 눈을 얻게 하며, 8천 사람들로 하여금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게 하였는데,
그때 5백의 만들어 낸 사람들이 곧 땅에 엎드려 다섯 가지 마음으로 스스로 귀의하면서 음성을 높여 말하기를,
‘부처님께 귀의하고 깨달은 이에게 귀명합니다.’라고 함으로써
여러 사람들도 다시 만들어 낸 사람들을 본받아 곧 땅에 엎드려 다섯 가지 마음으로 스스로 귀의하여 말하기를,
‘부처님께 귀의하고 깨달은 이께 귀명합니다.’라고 하며,
제석천은 곧 꽃을 뿌려 말하기를,
‘그대들은 이 꽃을 가지고 세존께 공양하여라.’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문수사리가 대중들과 권속들과 함께 둘러싸고서 가리라(迦梨羅) 강당에 나아가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 엎드려 예배한 다음 한쪽에 물러서 있으며,
[외도들]
여러 외도와 그의 많은 제자가 이 꽃들을 가지고 부처님께 올림과 동시에 세 번 부처님을 돌고는 한쪽에 물러서 있는데,
5백의 만들어 낸 사람들이 문수사리의 덕을 이어받아서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부처님을 보려고 하지 않음은 여래가 바로 법의 몸[法身]이기 때문이고,
저희들이 법을 들으려고 하지 않음은 그 법이란 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저희들이 또 여러 스님들의 공덕을 쓰지 않음은 세존과 현성(賢聖)들은 회합하는 행이 없기 때문이고,
저희들이 또 부처님의 공덕을 쓰지 않음은 그 법계란 것이 덕행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이 또 세존의 미묘하신 거느림[御]을 쓰지 않음은 일체 법이 아주 고요하여 거느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이 여래 토지(土地)의 이치를 쓰지 않음은 그 해탈하는 것은 이미 꽃과 잎이 열매를 여의기 때문이며,
저희들이 또 괴로움의 이치를 알려고 하지 않음은 그 원(願)에 두 가지가 없기 때문이고,
저희들이 습기[習]를 끊으려고 하지 않음은 일체 법이 본래 습기가 없기 때문이고,
저희들이 도를 행하려고 하지 않음은 그 도가 행이거나 행이 아님을 여의었기 때문이고,
저희들이 끝까지 증득하려고 하지 않음은 모든 법이 모두 아주 고요하기 때문이며,
또한 머무는 뜻을 쓰지 않음은 일체 법의 머묾이 머무는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평등을 쓰지 않음은 덕이거나 덕이 아님을 끊고서 덧없는 생사를 위해 뭇 행을 이룩하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이 또 신족(神足)을 쓰지 않음은 망설이는 행동이 없는 동시에 의심이 없고 오가거나 일어남이 없기 때문이고,
저희들이 모든 근(根)을 쓰지 않음은 그 근을 믿음으로써 올바름을 잃기 때문이고,
저희들이 힘을 쓰지 않음은 일체의 만물이 모두 힘이 없어 여위고도 약하기 때문이고,
저희들이 또 깨닫는 뜻[覺意]을 쓰지 않음은 모든 유(有)가 아주 공하여 깨달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이 또 도를 쓰지 않음은 수(數)도 없고 세간도 없고 구할 것도 없어 이로움이 아니기 때문이고,
저희들이 또 적멸(寂滅)을 쓰지도 않고 또한 담박하지도 않고, 저희들이 또 세간을 제도하는 지혜의 견(見)을 갖지도 않고, 저희들이 또 이치를 알려고 하지도 않으니, 이와 같이 함은 항상 해탈의 이치를 가짐으로써 법계에 얽매임이 없기 때문이며,
저희들이 또 사문(沙門)의 이치를 쓰지 않음은 고요한 뜻이란 여섯 가지 거리낌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이 또 범지의 빛과 형상을 끊지 않음은 이러한 것을 범지로 여겨 비방을 끊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이 또 비구를 쓰지 않음은 그 자연이란 파괴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며,
저희들이 또 모든 바라밀을 쓰지 않음은 이러한 6입(入)이란 모두 아무것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고,
저희들이 또 지족(止足)을 쓰지 않음은 어떠한 행을 하여도 지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은 또 하고자 하는 것도 없고, 저희들은 만족하게 여기는 것도 없으며, 모든 법에 느낄 것이 없으며, 또 말에 있어서 아무런 말이 없으며, 몸도 없고 뜻도 없고 말 자체도 없기 때문이고,
저희들은 또 머묾이 없지도 않으니 이와 같이 함은 삼계가 다 평등하기 때문이며,
저희들은 또 수습[習]하는 것이 없지도 않으니 즐거움도 없고 평등한 소견도 없기 때문이며,
저희들은 또 한거(閑居)가 없으니, 일체 삼계에 한거를 행할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이 또 공을 행하지도 않고 행할 것도 없음은 모든 행하는 일이 모두 공이기 때문이며, 저희들은 또 걸식하지 않으니 모든 생각을 제거하기 때문이며,
저희들은 또 생사의 두려움이 없으니 모든 것을 진리 그대로 평등하게 보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은 또 음욕ㆍ분노ㆍ우치가 없고 비방함도 없으니 생각이 있지도 않고 생각이 없지도 않기 때문이며,
저희들은 또 번뇌의 행을 끊지 않고 모든 것에 집착함이 없어 자연 그대로 응하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은 또 몸의 존재를 갖지 않고 몸으로부터 어떤 생각을 내지도 않으니, 몸이 곧 몸이 아니기 때문이며,
저희들은 또 과거를 관하여 보지 않고 보는 것이 있지도 않으니 그 출발된 상(相)을 존중하기 때문이며,
저희들이 또 모든 결함과 더러움을 제거하지 않음은 덧없음과 괴로움과 즐거움과 청정함과 나를 모두 평등하게 하여 저절로 해탈하기 때문이고,
저희들이 또 번뇌의 물[使水]을 건너지 않음은 이와 같이 하여 저희들은 이 언덕과 저 언덕을 보지 않기 때문이며,
저희들은 또 다른 이를 끊지도 않고 평등하게 제도할 것을 구하지도 않으니 말 없는 그 해탈이란 생각도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이 또 처소를 느끼지 않아 일으키는 것도 없고 구하는 것도 없음은 그 본제(本際)에 이르고자 기주(起住)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고,
또한 주저함을 제거하지 않음은 그 고요한 뜻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고,
저희들이 또 바른 마음과 질투가 없지 않음은 믿음을 벗어났기 때문이며,
저희들은 또 언설(言說)을 끊으려 하지 않으니, 과거를 벗어나므로 아무런 생각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무위의 경계를 건너려 하지 않음은 바로 이 일체 법이 모두 고요하여 무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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