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의족경 상권
10. 이학각비경(異學角飛經)
이와 같이 들었다.
부처님께서 왕사국(王舍國) 다조죽원(多鳥竹園)에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국왕과 대신ㆍ장자(長者)ㆍ백성들의 존경을 받아 음식과 의복과 이부자리, 침상과 의약품 등을 이들이 모두 바쳤다.
이때 범지(梵志)들 중 여섯 존자(尊者)가 있었으니, 불란가섭(不蘭迦葉)ㆍ구사마각리자(俱舍摩却梨子)ㆍ선궤구타라지자(先跪鳩墮羅知子)ㆍ계사금피리(稽舍今陂梨)ㆍ라위사가차연(羅謂娑加遮延)ㆍ니언약제자(尼焉若提子) 등이었다.
이 여섯 존자는 다른 범지들과 강당에 모여 의논하였다.
“우리들은 본디 세상의 존경을 받아, 국왕과 백성들로부터 공경스런 대우를 받아 왔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어찌된 셈인지 이들이 우리를 거들떠 보지 않고 도리어 사문(沙門) 구담(瞿曇)과 그의 제자들을 섬기고 있다.
생각해 보면 석가 구담은 나이가 어리고 학문한 기간도 얼마 되지 않으니, 어찌 우리를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 함께 시험하여 승부를 겨뤄보기로 하자.
구담이 한 가지 변화를 부리면 우리는 두 가지 변화를 부리고, 구담이 열여섯 가지 변화를 부리면 우리는 설흔두 가지 변화를 부려서, 그보다 배로 변화를 부리기로 하자.”
의논을 마친 이들은 함께 빈사왕(頻沙王)의 측근 대신(大臣)에게 정중하게 말하여 자신들의 생각을 왕에게 전달해 주길 청하였다.
대신이 왕에게 그대로 아뢰자 왕이 듣고 크게 노하였다. 대신에게 여러 차례 부탁을 한 뒤 자기들의 마을의 숙소로 돌아갔다.
범지들은, 부처님께서 홀로 우뚝이 공경스런 대우를 받는 것을 보고 곧 대궐문으로 가서 부처님과 실력을 겨뤄보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왕은 곧 범지들의 여섯 존자를 만나 보고는 크게 화를 내었다. 왕은 이미 진리를 보아 과위(果位)를 증득했기 때문에 끝내 이학(異學:異敎)에 현혹되지 않았다.
왕은 곁에 있던 신하에게
“속히 이 범지들을 데리고 나가 나라 밖으로 쫓아내라”고 명령하였다.
쫓겨난 범지들은 서로 무리지어 사위국(舍衛國)으로 갔다.
부처님께서는 왕사국에서 교화를 마치시고 비구들을 모두 거느리고 여러 고을들을 돌아다니다가 사위국 기원(祇洹)으로 돌아오시게 되었다.
범지들은 부처님께서 우뚝히 존경받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여섯 스승이 모여 다른 이학(異學)들과 함께 파사닉왕(波私匿王)에게로 가서 부처님과 실력을 겨뤄보겠다고 하였다.
이에 왕은 곧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말을 타고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갔다.
왕은 부처님의 발에 얼굴을 대어 예배한 다음 한쪽으로 가서 앉더니 손을 모아 부탁을 드렸다.
“세존께서는 도덕이 깊고 오묘하여 신통 변화를 나타낼 수 있으시니, 아직 듣고 보지 못한 이들은 신심을 내고, 이미 듣고 본 이들이 거듭 의혹을 풀게 하시고, 이교도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칠 일 후에 신통 변화를 나타내겠다고 말씀하셨고,
왕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서 부처님의 주위를 세 바퀴 돌아 경의를 표하고 돌아갔다.
왕은 약속한 날이 되어 부처님을 위하여 십만 개의 좌상(坐床)을 만들고, 불란가섭 등 범지들을 위해서도 십만 개의 좌상을 만들었다.
이때 사위국의 백성들은 모두 성을 비우고 나와 구경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위신(威神)이 넘치는 모습을 나타내시고,
범지들도 저마다 자기 자리로 가서 앉자 왕이 일어나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자리에 앉아 위신력(威神力)을 보이소서.”
이때 반식귀(般識鬼) 장군(將軍)이 마침 이곳에 와서 부처님께 예배드리던 차에 범지들이 부처님과 도를 겨루려 한다는 말을 듣고 세찬 비바람을 몰아 범지들의 자리로 보내고, 다시 모래와 자갈을 비처럼 퍼부어 범지들의 무릎과 다리에 떨어지게 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조금 위신력을 내어 부처님의 자리가 온통 불꽃에 휩싸이고 그 불길이 팔방(八方)을 진동하게 하셨다.
불란가섭 등은 부처님께서 앉아 계신 자리가 이처럼 화염에 휩싸인 것을 보고 모두 기뻐하며 자신들의 신통력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위신력을 거두시자 불꽃도 따라서 사라졌다.
범지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신통력 때문이 아닌 줄을 알고 마음 속으로 근심하고 후회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사자좌(獅子座)에서 일어나셨다.
이때 좌중(座中)에 신족통(神足通)을 갖춘 한 청신녀(淸神女)가 있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모으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몸소 수고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이학(異學) 범지들과 신통을 겨루어 보겠습니다.”
“그럴 것 없으니 자리에 가서 앉도록 해라. 내가 직접 신족통을 보이겠다.”
그러자 이번에는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청신사(淸信士) 수달(須達)의 딸이 전화색(專華色)이란 이름의 사미(沙彌)로 변하여 목건란(目蘭:목련)과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몸소 위신력을 보이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가 이제 저들과 도를 겨뤄보겠습니다.”
“그럴 것 없으니 자리로 돌아가도록 해라. 내가 직접 신족통을 보이겠다.”
부처님께서는 직접 신통력을 보임으로써 뭇 사람들에게 안온한 복을 얻게 하고, 인간과 천상을 불쌍히 여겨 해탈을 얻게 하고, 범지들을 항복시켜 후세의 배우는 사람들을 위해 지혜를 밝히고, 우리 불도(佛道)가 미래에 영원히 존속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신족통을 크게 펼치셨다. 그리하여 사자좌에서 날아 올라 동쪽 허공으로 가서는 걷다가 다리를 펴고 앉았다가 오른쪽 옆구리를 아래로 하고 누우셨다.
그런 다음 곧 화정신족통(火定神足通)을 나타내시니, 오색 광명을 쏟아 온갖 빛으로 휘황찬란하게 뒤섞인 가운데 하반신에서는 불이 나오고 상반신에서는 물이 나왔다가 다시 상반신에서는 불이 나오고 하반신에서는 물이 나오게 하셨다.
그리고는 모습을 감추었다가 남쪽에서 나타나고,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가 서쪽에서 나타나고,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가 북쪽 허공에 머무셔서는 또 위와 같은 온갖 변화를 보이셨다.
그리고 이번에는 허공에 앉아 계시는데, 양쪽 어깨에는 각각 일백 잎의 연꽃이 솟고 머리 위에는 일천 잎의 연꽃이 솟아 꽃마다 그 위에는 부처님께서 좌선하고 계시고, 광명이 시방 세계를 두루 비추었다.
이에 천인(天人)들이 공중에서 부처님의 머리 위로 꽃을 뿌리며
“장하십니다! 부처님의 위신력은 시방을 모두 진동시킵니다”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신족통을 거두고 사자좌로 돌아가셨다.
범지들은 모두 졸고 있는 비둘기처럼 아무 말 없이 잠자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화이철(和夷鐵:金剛杵)을 들고 허공에 날아 올라 환하게 화염을 내뿜어 매우 위엄 있는 모습을 나타내셨는데, 이 모습은 범지들만 볼 수 있게 하셨다.
이에 범지들은 옷과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크게 두려워 떨며 저마다 흩어져 달아났다.
부처님께서는 대중들을 위하여 감로비를 내리어 경법(經法)을 자세히 설명하셨다.
그리하여 보시를 하고 계율을 지키면 천상에 태어나는 반면 애욕을 지니면 고통을 받게 마련이라고 하시고, 아울러 애욕이란 재난의 원천이요 견고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지혜로운 생각으로 대중들의 뜻을 아시고 사성제(四聖諦)를 말씀하셨다.
그러자 대중 가운데는 온 몸을 바쳐 부처님께 귀의하는 사람, 진리에 귀의하는 사람, 비구승께 귀의하는 사람, 무릎을 끊는 사람, 계율을 받는 사람, 구항(溝港)을 얻은 사람, 빈래과(頻來果:斯陀含)를 얻은 사람, 불환과(不還果)를 얻은 사람 등이 있었다.
이때 사람들은 모두 마음 속으로
‘무슨 이유로 해서 집을 버리고 떠나 도를 닦는가’라는 의심이 생겨 다시 언쟁을 벌였다.
부처님께서는 이들이 의심하는 줄 알고 신통력으로 삼십이상(三十二相)을 갖추고 법의를 걸친 또 한 분의 단정한 모습의 부처님을 만들어 내셨으며, 제자들도 신통력으로 사람을 만들어 내었다.
만들어 낸 사람이 말을 하면 제자도 말을 하고,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시면 만들어 낸 사람은 묵묵히 있고,
만들어 낸 사람이 말을 하면 부처님께서는 묵묵히 계셨다.
무슨 까닭인가? 부처님께서 정각(正覺)으로 바른 생각을 가진 제자들이 만들어 낸 사람을 곧바로 건지는 셈이 되기 때문에 상호간에 의문이나 질문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들어 낸 부처님이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부처님을 향하여 손을 모으고 게송으로 질문하였다.
이러한 언쟁은 어디로부터 생기는가.
근심과 고통에 시달린 나머지 병을 얻네.
망령된 말을 하여 서로 상대를 헐뜯나니
본래 원인을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소서.
근심을 한 나머지 언쟁을 마구 벌이나니
서로 미워한 나머지 근심과 고통을 받네.
서로 상대를 헐뜯고자 망령된 말을 하니
서로 헐뜯는 것이 언쟁의 근본이 되네.
세상의 애착은 어디로부터 생기며
이 세상 그 무엇을 탐착할 것인가.
모든 것 버려 두고 다시 욕심 버린다면
따라서 다시는 업(業)을 짓지 않게 되리.
본래 욕심 때문에 세상에 애착을 두고
이익을 탐내기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되네.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욕심이 일어나니
이 때문에 뒤에도 계속 고통을 받게 되네.
세상의 온갖 욕심 본래 어디에서 생기며
선과 악인들 어디로부터 분별할 수 있으리요.
무엇으로 인하여 본말(本末)이 생기는가.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법을 스님들이 말하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있기도 없기도 하기에
이로 인하여 곧 욕심이 생겨 나게 되니
좋은 대상[色]을 보고 싶은 마음 언제 다하랴.
세상 사람들은 모두들 분별하는 마음이 있네.
남에게 속임을 당하고 의심하는 마음 생기니
부처님의 이 진리의 비를 기꺼이 받아야 하리.
생각하건대 어디로부터 지혜의 자취를 배울건가.
원컨대 법을 설명하여 배울 바를 밝혀 주소서.
있음과 없음은 본래 어디로부터 생기며
친애할 바 없거니와 어디로부터 소멸하는가.
융성도 감소도 알고 보면 모두 마찬가지이니
원컨대 이 뜻을 설명하여 근본을 밝혀 주소서.
있음이건 없음이건 접촉[細濡] 때문에 생기니
오고 감이 사라지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융성도 소멸도 실상이 이와 같으니
뜻을 풀어 근본을 밝히면 이 밖에 할 말이 없네.
세속적인 접촉은 본래 무엇에서 기인하며
세속적인 대상에 집착하는 것은 무엇에서 생겨나는가.
무슨 생각으로 인하여 집착하지 아니하며
무슨 인연으로 인하여 좋은 대상에 집착하나
이름과 대상에 조금이라도 접촉하게 되면
본유(本有)가 생겨나 대상[色]이 일어난다네.
어찌 어리석은 이를 건져 해탈하게 하리요.
대상에 반연하여 언제나 접촉이 있는 것을.
어떻게 하면 좋은 대상에 집착을 버리고
사람들에게 받는 사랑은 어디로부터 생기는가.
마음에 집착일랑 모두 없애 버리고서
진실된 행동과 지식을 지니면 해탈과 마찬가지.
생각을 생각하지도 말고 색상(色想)도 버리고
생각하지 않지도 말고 행상(行想)도 생각하지 않아
일체를 끊어 버리고서 집착하지 말아야 하니
생각으로 인하여 근본을 어그러뜨려 고통이 따른다네.
제가 질문한 바는 모두 알았거니와
이제 다시 여쭈오니 원컨대 설명하여 주소서.
수행하여 모두 다 성취하고
존귀한 덕(德)에는 뛰어나지 않은 것이 없네.
이는 지극히 바르거니 무슨 사특함이 있으랴.
방편으로 신통력을 나타내어도 결과로는 지혜를 얻나니
부처님께서 숲 속에서 선정에 들어 계시면
이보다 더 훌륭한 말씀 다시는 없다네.
이와 같은 법을 알아서 일심으로 향하여 가면
존귀함이 이미 나타나 계율대로 수행할 것도 없다네.
어떻게 세간을 건지는지를 급히 묻나니
세속을 끊고 저 욕심을 버려야 하리.
부처님께서 『의족경』을 말씀하시고 나자 비구들은 모두 환희에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