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론석 중권
[선법]
그 밖에 모든 보리는 여러 가지 선한 법을 닦지만 원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곧 이 방편은 진실로 위없는 것은 아니므로 여래께서는 법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으며 이것으로 말미암아 선법이라고 말했다.
여기엔 무슨 뜻이 있는가?
게송으로 대답하리라.
유루(有漏)의 성품으로 말미암는 것은 법이 아니니
그런 까닭에 선법(善法)이 아니라도
이것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선(善)하다고 이름한 것이다.
유루의 성품으로 말미암지만 저것은 곧 유루의 모습을 지니고 있지 않다.
유루의 모습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선법이라고 말한 것이다.
무루(無漏)의 성품으로 말미암아 결정코 이 선한 성품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무기]
‘만약 선법을 닦아서 큰 보리(菩提)를 얻는다고 한다면 존재하는 선법으로도 마땅히 보리를 획득하지 못해야 할 것이니, 이것은 무기성(無記性)이기 때문이다’라고 의심을 낼 것이므로
이 의문을 차단하기 위하여 다시 차별이 있는 복을 말씀하신 것인가?
대답하기 위해 설법하신 것이 비록 무기(無記)라 하더라도 마침내 얻을 것이 있는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말씀하신 법이 비록 무기(無記)라 하더라도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님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리는 얻을 수 없다]
이것을 떠나서는 보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힘입어 보리의 방계(方契)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게송으로 말하리라.
이 한 법의 보배만을 따르면
저 한량없는 보배보다 뛰어나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선설(宣說)한 법보는 앞의 무수한 수미산[妙高]과 같이 한량없는 보배에 비해 현격한 복의 차별이 있다.
“가령 백 등분을 하였다면 그 중에 하나에도 미칠 수 없다.
……(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라고 한 것은
장차 무슨 뜻을 나타내려고 한 말인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모든 산수[筭]와 세력[勢] 따위와
그리고 인과(因果)에도 차별이 있으니
세간에서 자세히 살펴 생각하거나
어떠한 비유를 하더라도 미칠 수 없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이 복으로써는 앞에서 일컬은 복의 덩어리에 비해 산수나 세력의 종류와 차별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그 인과에 네 가지 차별이 있으며, 이 세간에서 두루 찾아보고 생각해 보아도 거기에 대해서는 어떤 비유로도 비교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산수로 말미암아 차별을 말한 것은 백분(百分)으로부터 시작하여 나아가 혹 산분(算分)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것으로도 그 차이를 나타낼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다만 산수라고만 말한 것은, 이것이 곧 통틀어 포섭하고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밖에 다른 산수(算數)가 있으니, 혹 세력으로 나뉜다는 것은 그 세력에 차이와 다름이 있기 때문이니, 마치 강하고 약한 사람이 일을 서로 합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혹은 비수(比數)라고 하니 이것은 품류(品類)가 다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복의 종류는 원래 앞의 복에 대하여 어떤 수로도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니, 마치 귀하고 천한 사람을 서로 숫자로 비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인(因)이란 것은 그 원인을 밝힌 것이며 과(果)도 또한 서로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저것도 또한 이것의 인(因)이 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오파니살담(鄔波尼殺曇)을 인(因)자로 번역하였으나 개자(芥子)의 씨와 같은 것으로 송백(松栢)에 비유된다.]
이 세간에서는 끝내 그 어떤 비유로도 가히 그 복에 견줄 수 없으니, 이 앞의 복은 이 복보다 감소하므로 실로 이루 다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아가 어떠한 비유를 한다 해도 미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법계는 평등하다]
‘만약 저 법의 성품과 모양[性相]이 평등하기 때문에 평등하지 않음이 없다고 한다면 중생을 제도하는 사람[能度]도, 제도할 중생[所度]도 모두 없을 터인데 어째서 여래께서는 유정(有情)들을 해탈시킨다고 하는가?’ 하는 의혹이 생길 것이므로
이 의혹을 제거하기 위한 까닭에 뒤의 글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장차 무슨 뜻을 나타내려고 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리라.
법계는 평등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선 중생을 제도하지 않으니
모든 이름은 취(聚)와 함께 하지만
법계를 벗어나서 존재하지도 않네.
‘유정(有情)’이라고 이름한 것은 저 5온(蘊)이 있는 곳에서 5온과 함께하는 것을 말함이며 법계의 밖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곧 이 법계의 성품이 평등하니, 그런 까닭에 어떤 한 중생도 부처님께서 제도하여 해탈시킬 대상이 없다.
[아집이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아집(我執)이 있겠는가”라고 한 것에는
무슨 뜻이 담겨져 있는가?
만약 다만 그 5온만을 벗어나게 할 뿐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곧 중생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이와 같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하리라.
만약 법집(法執)이 일어난다면
아집(我執)의 허물과 같으니
결정코 유정(有情)들을 해탈시켜야 한다고 집착하는 것도
곧 집착해서는 안 될 망집(妄執)이라네.
경에 이르기를
“묘생아, 아집이라고 말하는 것을 여래께서는 집착이 아니라고 설하셨으며, 망집이라고 말하는 것을 여래께서는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고 설하셨다”고 한 것은,
이것들이 곧 성인의 법을 생겨나게 할 수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