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보살소문경론 제3권
3.1. 깊은 마음을 성취함
[문] 깊은 마음이라는 뜻을 말씀해야 하리라.
어떤 것이 깊은 마음의 이치인가?
[답] 깊은 마음이라 함은 마음이 실로 머무르지 않으며 마음이 오만한 번뇌와 서로 응하지 않는 것이다.
달라지는 형상[異相]인 다섯 가지 쌓임[五陰]이 서로 응하여 업을 일으키고, 인과와 깊은 마음을 수행하여 더욱 자라게 한다.
원인이 열반과 서로 어긋나고 결과가 수행과 서로 어긋나는 것은 선한 뿌리가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과는 서로 응하지 않고, 지어감[行]이 쌓임[陰]이라는 무더기의 바탕에 매달려서 열반의 결과를 따름이 마치 들음의 지혜[聞慧]로 인하여 다른 지혜 등을 내는 것과 같나니, 이를 깊은 마음이라 한다.
또 깊은 마음이라 함은 마음이 잠깐 동안 머물러도 마음과 서로 응함을 여의며 선한 뿌리는 행의 바탕에서 행을 의지하여 행을 일으킴이 마치 흐르는 물이 차례로 나게 되는 법과 같나니, 이를 깊은 마음이라 한다.
또 깊은 마음이라 함은 종자에 의지하여 나는 것이 마치 젖 따위와 같아서 온갖 흰 법[白法]이 인연을 따르며 선법을 닦고 행하면, 이를 깊은 마음이라 한다.
또 깊은 마음이라 함은 마치 오랫동안 말아놓은 물건을 잠깐 동안 당기면서 풀어놓아도 도로 본래대로 되는 것처럼,
깊은 마음도 그러하여 본래의 원인을 따라 법을 지어도 도로 계속하여 본래대로 되므로 동일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다르다고 말할 수도 없나니, 이를 깊은 마음이라 한다.
또 깊은 마음이라 함은 흰 법을 닦고 배우면 깊은 마음이라 한다.
또 깊은 마음이라 함은 온갖 선법을 닦고 행하며 큰 열반의 법을 성취하여 잃지 아니하되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으면 깊은 마음이라 한다.
[문] 『비마라길리치소설경(毘摩羅吉利致所說經)』에서의 말씀과 같이
“보살마하살은 한량없는 행을 닦고 한량없는 마음을 지니느니라”고 하셨다.
이 깊은 마음은 어떠한 행을 일으키게 되는가?
[답] 이 깊은 마음은 모두 부처님 보리를 구하는 온갖 행을 일으킬 수 있나니, 이를 깊은 마음이라 한다.
왜 그러한가?
이 깊은 마음으로써 온갖 보리의 원인이 발생하기 때문이며 모든 공덕의 힘을 모두 더욱 자라게 할 수 있음은 마치 시라와 같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마치 계율을 지닌 사람은 선한 뿌리의 시라를 얻는 것과 같다.
온갖 선법은 한량없이 차별되며 모두가 시라라고 하나니,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업이 성취되면 시라라고 한다.
왜 그러한가?
몸과 입과 뜻의 업은 모든 선법과 함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니, 깊은 마음도 그러하여 부처님 보리의 인연인 온갖 선한 행과 함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가야산정경(伽倻山頂經)』에서 월정광덕천자(月淨光德天子)가 문수사리에게 묻기를
“모든 보살마하살의 깊고 깨끗한 마음은 무엇으로써 근본이 되나이까?” 하자,
문수사리는 대답하기를
“천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의 깊고 깨끗한 마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으로써 근본을 삼느니라”고 하셨다.
이 이치 때문에 이 수다라에서 말씀한 깊은 마음은 보리심이 근본이 된다.
『금강밀적경(金剛密迹經)』에서의 말씀과 같이
“모든 보살마하살의 깊은 마음의 공덕은 세간을 속이지 않느니라”고 하셨으니,
그러므로 보리의 원인이 된다고 말하는 것인 줄 알아야 한다.
[문] 무슨 뜻 때문에 보살은 깊은 마음을 성취한다고 말하게 되는가?
[답] 온갖 다스리는 법으로써는 움직이거나 옮아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갖가지 괴로움으로써 온갖 보살이 보리심을 구하는 것을 움직이거나 옮아가게 할 수 없다. 그때의 보살을 깊은 마음을 성취하였다고 하나니, 그런 줄 알아야 한다.
또 모든 보살이 다른 이를 즐겁게 하려는 마음에 힘이 있고 자신을 즐겁게 하려는 마음은 항복받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그 보살이 스스로가 구하는 즐거운 마음으로써 남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하여 깊은 마음으로 항복하는 그때의 보살을 깊은 마음을 성취하였다고 하나니, 그런 줄 알아야 한다.
또 깊은 마음을 성취한다 함은 마지막[究竟]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깊은 마음에 의지함으로써 아래와 중간이며 위의 법을 차례로 더욱 자라게 하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견고하므로 깊은 마음을 성취하였다고 하나니, 그런 줄 알아야 한다.
또 깊은 마음을 성취한다 함은 버리기 어려움을 능히 버릴 수 있는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만약 모든 보살이 보시[檀] 등의 행하기 어려운 보시를 닦으며 깊은 마음으로 평등한 법 수행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그때의 보살을 깊은 마음을 성취하였다고 하나니, 그런 줄 알아야 한다.
『성자무진의경(聖者無盡意經)』에서의 말씀과 같아서, 머리를 보시하는 것 등의 버리기 어려운 것을 능히 버리면 깊은 마음을 성취하였다고 하나니, 그런 줄 알아야 한다.
또 깊은 마음을 성취한다 함은 인색함과 질투 등의 마음을 항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든 보살이 필경에 깊은 마음을 성취하게 되면 인색함과 질투 등의 보리의 도와 서로 어긋나는 법을 항복받을 수 있다. 그때의 보살을 깊은 마음을 성취하였다고 하나니, 그런 줄 알아야 한다.
『성자무진의경』에서의 말씀과 같나니,
“대덕 사리불(舍利弗)이여, 모든 보살의 깊은 마음이라 함은 질투를 항복받음이니, 인색하고 시샘하는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니라”고 하셨다.
이와 같은 것 등을 깊은 마음을 성취하였다고 하는 줄 알아야 한다.
또 깊은 마음을 성취한다 함은 인과가 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든 보살의 깊은 마음의 인과는 다함이 없다. 그때의 보살을 부드러움[柔軟]의 보살이라고 하는 줄 알아야 한다.
원인[因]이 다하지 아니함은 닦고 행함이 넓고 커서 한량없고 그지없기 때문이며, 과(果)가 다하지 아니함은 온갖 부처님 법이 한량없고 그지없어서 3보(寶)의 원인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무진의경』에서 말씀하기를
“보살은 깊은 마음으로 보시 등을 수행하여 그로써 온갖 물건을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보살로서 수행을 성취하였다고 하느니라”고 하는,
이와 같은 것 등이다.
또, 말씀하기를
“대덕 사리불이여, 모든 부처님 여래의 열 가지 힘과 네 가지 두려움이 없음과 열여덟 가지 특수한 법이며, 내지 온갖 부처님 법이 모두가 다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깊은 마음 역시 다할 수 없음은 수행의 결과가 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보살은 깊은 마음을 성취하였다고 한다.
또 깊은 마음을 성취한다 함은 이 경전에서의 말씀에 의지한 줄 알아야 하며, 이 경전에서 말씀하셨다.
“미륵이여, 어떤 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을 찬탄함과 부처님 헐뜯음을 들어도 그 마음은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견고하여 움직이지 않으며, 이와 같이 가르침[法]과 승가[僧]를 찬탄하거나 가르침과 승가 헐뜯음을 듣거나 간에 역시 그와 같으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사실대로 열두 가지 인연을 보고 알면 곧 모든 부처님 여래의 법신을 알고 3보 중에서 견고한 마음을 이룩하며 샘이 없는 지혜의 마지막 깊은 마음을 얻기 때문에 온갖 외도와 악마와 원수와 저들이 물러나게 하거나 옮아가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보살은 깊은 마음을 성취한다.
[문] 무슨 이치 때문에, 먼저 깊은 마음을 말하고 다음에 수행(修行)을 말하는가?
[답] 저 수행은 바로 지혜를 증득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수행하는 마음은 깊은 마음에 증득하는 원인이 되어 주기 때문이며, 크게 사랑함과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마음이 곧 부처의 결과를 보호하고 지니는 것인 줄 알아야 한다.
그 깊은 마음은 얻어 볼 수 없지만 깊은 마음에 의하기 때문에 눈과 귀 등의 식(識)이 경계 안에서 손해되는 따위의 마음을 일으킬 수 없고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살생을 여의는 등의 행으로 그 마음을 나타내 보이나니, 이 이치 때문에 깊은 마음을 말한 뒤에 수행을 다음에 말하는 줄 알아야 한다.
또 다시, 차례의 이치를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온갖 법들은 으레 이와 같이 차례로 나기 때문이니, 먼저 깊은 마음을 말하고 뒤에 수행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