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편불보은경 제3권
5. 서로 의논하는 품
[물속의 벌레]
그때에 세존께서 아난과 함께 왕사성에 들어가 걸식하신 뒤에 도로 성을 나오시는데,
성문 밖에 크고 깊은 구덩이가 있었으므로 왕사성 사람들은 대변과 소변을 등에 메고 가져다 이 구덩이 안에 버렸으며, 비로 인한 나쁜 물까지도 역시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 넓은 물 안에 한 마리 벌레가 있었는데, 그 형상은 사람과 비슷하였으나 손발이 여러 개였다. 멀리서 여래를 보고는 머리를 들고 물에서 나오더니 여래를 보면서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으므로, 여래께서 보시고는 가엾이 여기시어 슬픈 듯 언짢아하시며, 곧 기사굴산으로 돌아오셨다.
[유나]
그때 아난이 니사단(尼師檀)을 깔자 여래께서 그 위에 가부하고 앉으시니, 아난이 대중들의 마음을 자세히 살피며 여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아까 보셨던 넓은 물속의 벌레는 전생에 무슨 업행을 지었기에 이 물 속에 산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또 어느 때에야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과 여러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잘 들어라, 너희들을 위하여 말하리라.
아난아, 오랜 과거 한량없는 천 겁 전에 그때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어 교화하신 뒤에 열반하셨는데 열반하신 뒤의 상법 동안에 어느 한 바라문이 절을 만들어서 뭇 승가를 공양하였느니라.
어떤 단월이 소유(酥油)를 많이 보냈는데 때에 객 비구들이 와 있었으므로
일을 맡은 유나(維那)가 마음으로 성을 내며 객승이 많이 오는 것을 싫어하여 소유를 숨겨 두고 가져다주지 않는지라
객승들이 말하기를,
‘왜 소유와 꿀은 주지 않습니까?’라고 하자,
유나가 대답하기를,
‘그대들은 객이요, 나는 옛날부터 있던 사람입니다.’라고 하므로,
객 비구들이 말하기를,
‘이는 바로 단월이 현재 있는 승가들에게 보시한 것이오’라고 하였더니,
유나가 흉악하고 두려워할만하게 되어 욕을 하되
‘너희들은 어째서 똥과 오줌이나 먹지 않고 어떻게 나에게서 소유를 찾는 게냐?’라고 하였느니라.
이 나쁜 말 때문에 이로부터 90억 겁 동안 언제나 이 넓은 물속에 태어났으니, 그때의 유나가 바로 지금 이 넓은 물속에 벌레이니라.
이는 과거 세상에 한 번 나쁜 말로 뭇 승가를 꾸짖고 욕을 한 탓으로 한량없는 천 년 동안 이 똥 안에 머무르게 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입을 지켜야 하나니, 입의 허물은 사나운 불보다 더 심하니라.
부모와 뭇 승가를 부드러운 말로써 찬탄해야 하고 언제나 그 은혜를 생각할 것이니, 뭇 승가는 삼계(三界)를 벗어나는 복밭[福田]이요, 부모는 삼계 안에서 가장 훌륭한 복 밭이니라.
왜 그러힌가?
뭇 승가 안에는 4쌍(雙) 8배(輩)의 열두 가지 어진 선비가 있으므로 그를 공양하면 복을 얻어서 나아가 도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요,
부모는 열 달 동안 배 안에 품었고 마른 데로 밀어서 진자리 갈아 주며 젖을 먹여 자라게 하고 키우면서 재주를 가르치고 때를 따라 보호하여 기르며, 그러다가 출가하면 닦아서 해탈을 얻고 생사의 바다를 건너서 자기도 이롭고 겸하여 일체 중생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부모와 뭇 승가는 바로 일체 중생들이 두 가지 복을 심는 밭이니, 이른바 사람과 하늘은 열반과 해탈의 미묘한 과보를 이로 말미암아 이루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전을 말씀하실 때에 한량없는 백천의 중생과 사람이나 사람 아닌 것들이 혹은 첫 번째 과위에서 네 번째 과위까지 얻기도 하였고, 혹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기도 하였으며, 혹은 성문과 벽지불의 마음을 내기도 하였으니, 저 마다 합장하고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나서 오른편으로 돈 뒤에 기뻐하면서 떠나갔다.
[균제 사미]
다음으로 또 바라나국에 어떤 한 재상인 바라문이 있었는데, 그 집은 크게 부자라 재물과 보배가 많고 넉넉하였으며, 금ㆍ은ㆍ유리ㆍ산호ㆍ호박ㆍ코끼리ㆍ말ㆍ소ㆍ양과 밭이며 종들이 곳곳마다 충분히 있었다.
나이 여든이 지나서야 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아름다운 빛깔에 단정하고 상호를 완전히 갖추었으므로, 부모는 기뻐하며 여러 관상쟁이를 불러 상의 길흉을 점치고서 그 이름을 짓되 균제(均提)라고 하였다.
나이 일곱 살이 되자, 부모는 사랑하고 생각하여 놓아서 출가 시키려고 찰제리인제라산(刹提利因提羅山)에 나아가 여래의 처소에 이르렀다.
그때에 여래께서는 사부(四部) 대중들에게 둘러싸여 여러 하늘과 용이며 귀신들을 위하여 널리 세상의 말씀과 세간을 벗어나는 법을 말씀하고 계셨다.
때에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거의 늙은 나이에 이 아이를 낳아 길렀사온데, 세존께서는 크게 사랑하시어 일체를 널리 덮으시니, 이제 이 아이를 부처님의 제자가 되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왔도다, 비구야.”
이 말을 마치자마자 수염과 머리칼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졌으며, 부처님께서 그를 위하여 법을 말씀하시어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시니, 곧 도의 과위를 얻고 3명(明)과 6통(通)이며 여덟 가지 해탈을 갖추었다.
[삼장 비구]
그때 아난이 대중의 마음을 자세히 살폈더니 모두가 의심이 있었으므로, 곧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정돈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서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균제사미는 지나간 세상에 무슨 공덕을 지었고 어떠한 행업을 닦았기에 세존을 만나서 도의 과위를 얻음이 그렇게 빠른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균제사미는 마침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니라. 과거 세상에 부모와 뭇 승가를 공양하고 미묘한 공덕을 닦았으며 선지식을 만났기에 지금 도의 과위를 얻은 것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원하오니,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잘 들어라. 오랜 과거 한량없는 천년 전에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셨는데, 명호는 비바시여래였느니라.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하여 하늘과 사람을 이롭게 하시다가 교화의 인연이 다하시자 열반에 드셨는데, 열반하신 뒤 정법(正法)이 남아 있는 동안에 한 나이 젊은 비구가 있었으니 3장(臧)인 아비담장(阿毘曇藏)과 비니장(毘尼藏)과 수다라장(修多羅藏)을 통달하였으며 얼굴이 단정하고 상호가 완전히 갖추어졌으며 말솜씨와 설법에 미묘한 음성을 지녔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며 찰제리와 바라문들에게 공양을 받았느니라.
때에 어느 한 비구는 형체가 누추하고 상호가 넉넉하지 못했을 뿐더러 음성까지 무디고 무거웠으나 언제나 삼보를 찬탄하기 좋아하였는데,
그때에 삼장인 나이 젊은 비구가 그의 음성이 나쁜 것을 보고는 곧 헐뜯고 꾸짖기를,
‘이와 같은 음성은 개가 짖는 것보다 못하구나.’라고 하였느니라.
그러자 늙은 비구가 말하기를,
‘그대는 어째서 헐뜯고 욕을 하는가, 그대는 나를 알지 못하는가’라고 하므로,
삼장 소년이 말하기를,
‘나는 그대를 압니다. 그대는 바로 비바시부처님의 정법 동안에 마하라(摩訶羅)라는 늙은 비구입니다. 어째서 모르겠습니까?’라고 하자,
마하라가 말하기를,
‘나는 할 일을 다 마치고 맑은 행을 이미 이룩하였으며 후생의 몸을 받지 않느니라.’라고 하므로,
삼장 비구는 이 말을 듣고 나서 마음으로 놀라서 털이 곤두섰느니라.
그때 마하라가 곧 오른 손을 들고 큰 광명을 놓아 시방을 널리 비추었으므로,
삼장은 곧 나아가 땅에 엎드려 얼굴을 발에 대어 예배 공경하고 가엾이 여길 것을 구하며 참회하면서
‘제가 어리석어서 성현을 몰라보고 이런 나쁜 업을 지었나이다.
제가 오는 세상에는 착한 벗을 가까이 할 수 있고 거룩한 스승을 만나게 하시어 번뇌가 다하고 맺음이 풀리는 것이 마치 대덕과 같게 하옵소서’라고 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때 삼장 비구는 한 마디 나쁜 말로 상좌(上座)를 꾸짖었기 때문에 5백의 몸 동안 언제나 개의 몸이 되었느니라.”
일체의 대중들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법을 듣고 모두가 놀라고 두려워 떨면서 함께 소리 내기를,
‘괴이하고 괴이하도다. 세간의 독한 재앙은 입보다 더한 것이 없겠구나.’라고 하였다.
그때 한량없는 백천의 사람들이 모두가 서원을 세우며 게송으로 말하였다.
설령 뜨거운 쇠 수레바퀴가
나의 이마 위에서 돌아간다 하더라도
마침내 이러한 고통 때문에
나쁜 말을 내지 아니하리라
설령 뜨거운 쇠 수레바퀴가
나의 이마 위에서 돌고 있다 하더라도
마침내 이러한 고통 때문에
성인과 착한 사람을 헐뜯지 않으리라
[흰 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은 여러 중생들을 위하여 착한 벗이 되어 주었나니, 밤과 낮의 여섯 때에 언제나 도의 눈으로 다섯 갈래 중생들을 자세히 살피다가 제도해야 할 이는 곧 가서 제도하였느니라.
그때 마가다[摩竭提]의 두 나라 중간에서 5백 명의 장사하는 이들이 험한 길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장사꾼들의 우두머리가 한 마리 흰 개를 데리고 있었느니라.
따라가던 이가 초저녁에 고기를 삶아 음식을 만들어 놓은 것을 새벽녘에 개가 몰래 훔쳐 먹었는데, 다음 날 따라가던 이가 일찍 먹으려고 찾았지마는 없는지라 매우 굶주려서 속으로 성을 내어 손수 칼을 가지고 개의 네 발을 끊어 몸은 구덩이 속에 던져 버리고 떠나갔느니라.
그 개는 뒹굴며 큰 고통을 받았는데, 때에 사리불이 초저녁에 도의 눈으로 멀리서 보았다가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옷을 입고 바루를 가지고 성에 들어가 걸식한 뒤에 험한 길로 나아가 그 개가 있는 곳에 이르러 가지고 간 밥을 주고, 그대로 그를 위하여 법을 말하며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였으므로
개는 법을 듣고 나서 부끄러워 언짢아하다가 그로부터 7일 만에 죄를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때의 흰 개가 바로 지금의 균제사미이니,
지난 세상에서 성현을 헐뜯고 꾸짖은 탓으로 악취(惡趣)에 떨어진 것이며,
곧 고쳐서 부끄러워하고 참회하며 서원을 세웠기 때문에 착한 벗을 만날 수 있었고,
착한 벗을 만났기 때문에 죄가 다하여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었으며, 부처님 세존을 만나고서 번뇌가 다하여졌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부모와 착한 벗의 은혜를 생각해야 하나니, 그러므로 은혜를 알고 언제나 은혜를 갚아야 하느니라.
착한 벗이란 바로 큰 인연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한량없는 백천의 중생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과 내지 성문ㆍ벽지불의 마음을 내었다.
일체 대중들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법을 듣고는 기뻐 뛰놀며 예배하고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