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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공덕론 제4권
[마사ㆍ사리불ㆍ구율ㆍ이십억이ㆍ가섭ㆍ아나율ㆍ이왈ㆍ마라ㆍ뢰타화라ㆍ가전연]
내 성문 중에 제일가는 비구로서, 얼굴이 단정하고 걸음걸이가 조용한 이는 바로 마사(馬師) 비구요, 지혜가 끝이 없어 모든 의심을 분명하게 푸는 이는 바로 사리불(舍利弗) 비구이며, 신령스런 발을 가져 가볍게 들어 시방 곳곳을 날아다니는 이는 바로 마하목건련(摩訶目揵連) 비구요, 용맹스럽게 정진(精進)하여 고행을 견디어내는 이는 바로 이십억이(二十億耳) 비구이며, 얻기 어려운 행인 12두타(頭陀)를 행하는 이는 바로 마하가섭(摩訶迦葉) 비구이니라. 천안(天眼)이 제일이어서 시방을 두루 보는 이는 바로 아나율(阿那律) 비구요, 좌선하여 선정에 들어 마음이 어지럽지 않은 이는 바로 이왈(離曰) 비구이며, 능히 두루 권해 재강(齋講)을 베푸는 이는 바로 타라바마라(陀羅婆摩羅) 비구요, 스님이 거처할 방사(房舍)를 세워 초제승(招提僧)에게 주는 이는 바로 작은 타라바마라 비구이며, 귀하고 큰 종족으로 출가하여 도를 배운 이는 바로 라타파라(羅吒婆羅) 비구요, 진리를 잘 분별해 도를 펴 연설하는 이는 바로 대가전연(大迦旃延) 비구이니라. |
[마사, 위의(威儀) 제일]
마사(馬師) 비구는 부처님을 따라 수학하였다. 바야흐로 7일이 지나 곧 위의를 갖추었다.
비사리성에 들어가 걸식하고자 하였을 때, 성문 밖에서 우바제사(優波提舍)를 만났다.
멀리에서 마사 비구의 위의가 단정한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나는 사문이다.”
“그대는 스스로 아는 자인가, 스승이 있는가?”
“스승이 있다.”
“스승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설법을 하는가?”
“나의 스승은 석가문(釋迦文)이다. 천(天) 중의 천이며, 삼계의 극존(極尊)이다.
그 가르치는 바는 공무(空無)로써 주를 삼고, 마음을 쉬며, 근본에 달한다. 그래서 사문이라 한다.”
우바제사는 이 묘한 말을 듣고, 곧 도적(道迹)에 이르렀다.
우바제사는 동학(同學)과 본래 서원이 있었다. 먼저 감로를 얻은 자가 마땅히 서로 알려주는 것이었다.
곧 마사를 떠나 구율타(拘律陀)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구율타는 우바제사의 안색이 평소와 다름을 보고 감로를 얻었는지를 궁금해 하며 물었다.
“감로를 얻었는가?”
“얻었다.”
“감로란 무엇인가?”
“감로란 제법의 공무(空無)에 도달하는 것이다.”
구율은 깊이 생각해 또 도적을 얻었다.
마사가 위의(威儀) 제일인 까닭은,
과거 500세에 원숭이였는데, 지금 사람이 되었어도 성격이 조급하고 분주했으나 출가 7일 만에 곧 본심을 바꾸었고, 배움이 처음에는 비록 얕았으나 가르침을 잘 선양했기 때문이다.
앞에서 보는 자로 하여금 얼굴을 기쁘게 하고 가르침에 이르게 했다.
위의로써 깨닫게 하는 까닭에 제일이라 칭한다.
[신자, 지혜 제일]
신자(身子)를 지혜 제일이라 칭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세존께서 또 말씀하셨다.
“신자의 지혜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수미(須彌)를 벼루로 삼고, 4대의 바닷물을 먹물로 삼으며, 4천하의 죽목(竹木)을 붓으로 삼고, 가득 찬 사람을 서사(書師)로 삼아 신자의 지혜를 베끼려 해도 오히려 능히 다하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범부의 5통(通)으로 능히 측량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지혜 제일이라 칭한다.
[목련, 신족 제일]
목련을 신족 제일이라 칭하는 까닭은,
세존 또한 증험이 있음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옛날 3재(災)가 유행했을 때, 인민은 크게 굶주렸다. 목련은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이 땅 아래에는 옛적의 비옥한 땅이 있다. 지금 사람들이 굶주리니, 이 땅을 뒤집어 아래의 비옥한 땅을 취하여 사람에게 제공하여야 하겠다.’
그와 같이 생각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4신족으로써 땅을 뒤집어 아래의 비옥한 땅을 취하여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자 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 하여도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목련아, 너의 신족으로는 능히 그와 같이 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그 중생은 한 손으로 벌레를 잡고, 한 손으로 땅을 판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왜냐하면 후세의 비구 대부분은 신족이 없다.
가령 나중에 기근이 있을 때 국왕과 신민이 사문에게 땅을 바꾸도록 명하였는데 만약 불가능하다면, 사문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이 신족으로써 증명하는 까닭에 목련이 제일이라고 칭한다.
[이십억이, 고행 제일]
이십억이(二十億耳) 비구를 고행 제일이라 칭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옛날 점파국(占波國)에 대장자가 있었다.
한 아들이 태어났는데, 단정하고 뛰어났으며, 발바닥에 털이 나서 길이가 4치나 되었으며, 일찍이 땅을 밟아본 적이 없었다.
발바닥에 털이 생겨난 까닭은, 옛날 가섭불 때에 대장자가 되어 재보가 한이 없고, 대중 스님들을 위해 정사와 강당을 짓고, 백첩(白氎)으로 땅을 덮어 대중 스님들로 하여금 그 위를 밟게 했기 때문이다. 이 인연으로 인하여 발바닥에 털이 생겼다.
이십억이라고 하는 까닭은, 태어날 때 저절로 귀에 보주(寶珠)가 생겨났는데, 그 가치가 20억이 되는 까닭에 그와 같이 칭한 것이다.
그때 병사왕(甁沙王)이 그 기이함을 듣고, 보기를 원하여 데려오도록 명령했다. 15일간 마차를 타고 와서 마차에서 내리려고 하자마자 첩(氎)이 땅을 덮었다. 그런 뒤에 내려 왕의 처소에 이르렀다.
왕은 앉도록 명한 뒤 여러 가지 묻고 나서 비파를 잘 탄다는 이야기를 듣고, 즉시 비파를 타도록 명령하였다.
서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에 함께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렀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대중에게 널리 묘법을 말씀하시고 계셨다.
부처님을 보고 환희하여 머리를 숙여 발에 예배했다.
부처님께서 앉게 하시자, 법을 듣고 기뻐하여 곧 출가하고자 하였다.
부처님께서 그 출가의 뜻을 허락하시어 곧 사문이 되었다. 용맹 정진하며, 경행하는 데 나태함이 없었다. 피부가 연약하여 발바닥에 상처가 나고 찢겨 경행하는 곳에 피가 흘러 진창을 이루었다.
경행이 쌓여 오래되었지만, 누(漏)가 여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피곤하고 나태한 마음이 생겨 재가인[白衣]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나는 집의 재산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널리 복덕을 위하면 또 3악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그 마음을 아시고 홀연히 땅에서 솟아나 그의 앞에 나타나 물었다.
“네가 본래 비파를 탈 때, 그 줄을 너무 팽팽하거나 느슨하게 하면 좋은 곡을 얻을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얻지 못합니다.”
“만약 줄을 완전히 느슨하게 하면 또 얻을 수 있겠느냐?”
“얻지 못합니다.”
“만약 느슨하지도 않고 팽팽하지도 않아 줄과 기러기발이 잘 상응하면 좋은 소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얻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행도 또한 그와 같다. 급하지도 않고 느슨하지도 않아 그 중도의 적절함에 처하여 조화가 마땅한 자리를 얻으면 도를 성취할 수 있을 따름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사유하여 마음이 활짝 열려 깨치고 곧 나한을 이루었다.
이러한 인연으로써 고행 제일이라 칭하는 것이다.
[아나율, 천안 제일]
아나율을 천안(天眼) 제일이라 칭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 큰 모임에서 설법을 하실 때, 아나율이 자리에서 자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대저 잠자는 자는 마음과 뜻이 닫혀져 있는 것이니 죽은 자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아나율은 부끄러워하며 마음을 억누르고, 스스로 지금부터 다시는 자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자지 않은 것이 오래되어 눈이 실명되었다.
그 이유는 무릇 6식(食)이 있는데, 눈에는 2식이 있다.
첫째는 색을 보는 것이고, 둘째는 수면이다.
5정(情)에도 각기 2식이 있다. 식을 얻으면 6근이 온전한데, 눈이 면식(眠食)을 잃은 까닭에 안근(眼根)을 상실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기역(耆域)에게 명해 그것을 치료하도록 하니, 그
가 말하였다.
“자지 않는 것은 치료할 수 없습니다. 이미 육안(肉眼)을 잃어버리면 다시는 볼 수 없습니다.”
500의 제자가 각기 흩어져 사람을 고용해 침을 놓았다. 어루만지며 옷을 더해 선(線)이 다하자 거듭 찔렀다.
가히 고용할 사람이 없어 좌우를 불러 말하였다.
“누군가 복을 구하고자 하는 자는 나를 위해 침을 놓아라.”
세존께서 홀연히 그 앞에 나타나 말했다.
“내가 너를 위해 놓으리라.”
그러자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부처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복을 구족했는데 또 복을 구하고자 합니까?”
“복덕을 싫어할 수 있겠느냐?”
아나율이 사유하기를
‘부처님께서도 오히려 복을 구하는데 하물며 범인(凡人)이랴’라고 하였다.
그리고 마음으로 결(結)을 느껴 빨리 부처님을 쳐다보았다.
지심(至心)으로 하였던 까닭에 홀연히 천안을 얻었다.
천안을 얻고 다시 거듭 사유하여 곧 나한을 얻었다.
무릇 나한에게는 모두 3안(眼)이 있는데, 육안(肉眼)ㆍ천안(天眼)ㆍ혜안(慧眼)이다.
아나율은 바로 2안을 가졌으니, 혜안과 천안이다.
3안으로 보는 자는 혼란스럽다. 육안과 천안이 공(功)을 다투며, 정밀한 것과 거친 것을 섞어서 관하는 까닭에 혼란스럽다고 한다.
아나율은 오로지 천안만을 사용해 대천세계를 관하며, 정밀한 것과 거친 것을 모두 보며, 형질과 다른 것 가운데 식(識)이 있고 없음을 모두 남김없이 구별한다.
천인이 보는 것에는 깨끗한 것[淨]과 깨끗하지 않은 것[不淨]이 있다.
매우 깨끗한 것을 관하는 자는 세계 가운데 모든 형류(形類)를 가진 것을 보는데, 식이 있고 없음과 모든 동요를 본다. 의심하여 이것을 벌레라고도 하고, 벌레가 아니라고도 한다.
깨끗하지 않은 것을 관하는 자는 쌀알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도 모두 벌레라고 말한다. 우열의 다름은 스스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안 제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월, 좌선하여 정에 듦이 제일]
이월(離越) 비구를 좌선하여 정에 드는 데 제일이라 칭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옛적에 바사닉왕이 청하여 좌선을 시켜 한 나무 아래에 있게 했다.
그때에 왕이 궁에 들어와 식사하기를 청하였다.
6년 동안 다른 나무에 돌아다니지 않았다. 바로 다른 나무로 옮기고자 하였지만, 수신(樹神)이 허락하지 않았다.
무엇으로써 증거를 삼는가?
장차 옮기려고 할 때, 수신이 곧 꽃을 뿌려 공양하였는데, 이것으로써 증거를 삼고 그 허락하지 않음을 안다.
어떻게 그 뜻에 다른 생각이 없는 것을 아는가?
그때 구치라(拘絺羅)가 이월의 처소에 와서 말하였다.
“어찌하여 훌륭한 나무 아래에 앉지 않고, 이 마른 나무에 앉는가?”
대답하였다.
“그대를 4변(辯) 제일이라 하는 것은 능히 법의(法義)를 분별하고 사(辭)에 응하는 까닭이다.
모르겠구나, 마른 나무를 분별하는데 이것은 어떠한 변(辯)에서인가?
나는 이곳에 앉아 이미 6년이 지났지만 산 나무인지 마른 나무인지 분별하지 않는데 너는 오자마자 곧 분별하는가?”
왕이 궁에 들기를 청해 매일매일 공양하고, 모든 부인에게 각자 시중들도록 시켜 6년간 보시하도록 했다. 마땅히 보시할 때에 주인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왕이 말하였다.
“6년간이나 청을 받았음에도 사람의 이름을 알지 못하니, 어떠한 정(定)이기에 이와 같은가?”
대답하였다.
“나는 나무 아래 앉아 오히려 나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하물며 사람의 이름을 알겠는가?”
선복(禪福)을 공양하고 그 덕이 지순(至淳)하니 왕이 원하는 바에 따라 가히 열반에 이를 것이다. 이는 복전이 훌륭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선을 즐기는 데[樂禪] 제일이라 칭한다.
[타라바마, 권유하여 성취시킴이 제일]
타라바마(他羅婆摩) 비구가 무리를 이끌어 재강(齋講)에 시립(施立)했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승사(僧事)를 맡겨 각 부분을 합당하게 나눈 것이다.
계경(契經)은 계경 하나로, 비니(毘尼)는 비니 하나로, 대법(大法)은 대법 하나로, 좌선은 좌선 하나로, 고좌(高座)는 고좌 하나로, 걸식은 걸식 하나로, 교화는 교화 하나로, 일에 따라 범위를 나누고 각기 서로 따르게 했다.
만약 단월로서 와서 청하는 자가 있으면, 차례대로 보내어 높고 낮음을 묻지 않았다.
만약 개인적으로 청하는 자가 있으면, 이 예(例)에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단월이 다 청하고 났을 때, 육군(六群) 비구는 가난한 집에 차례가 돌아와 원한만 품고 돌아왔다.
부처님을 향해 원망하며 말하였다.
“마라(摩羅)에게 속았습니다. 자신은 좋은 곳을 받고, 저는 가난한 집에 보내졌습니다.
이것이 어찌 평등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마라에게 명하셨다.
“네가 실로 그러하였느냐?”
“아닙니다.”
그때 음식이 없이 햇볕이 내리쬐는 중에 소똥을 섞어 먹고 재(齋)에 임하였다.
육군의 말을 듣고 자명한 것이 없자, 곧 부처님 앞에서 이 똥오줌을 토했다.
육군은 부끄러워했고 두 사람은 결(結)과 누(漏)가 다함을 느꼈으며, 돌아가 재가인[白衣]이 되었다.
두 사람은 얼굴에서 피가 흘러나와 목숨을 마쳐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떨어졌다.
재강(齋講)이란 부중(部衆)을 재집(齋集)하여 소의(所宜)를 종습(綜習)한다.
능히 잘 권유하여 성취시키는 까닭에 제일이라 칭한다.
[소타라바]
소타라바(小陀羅婆)는 주로 방실(房室)에 서서 초제승(招提僧)을 일으키며, 함께 그 공(功)을 성취했다.
달리 특별히 칭하지는 않는다.
[뇌타바라, 출가 제일]
뇌타바라(賴吒婆羅) 비구를 호귀(豪貴)라 칭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그는 왕의 종족으로, 사람됨이 총명하고 널리 사물에 통달하였고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어리석은 이들을 개화한다는 것을 듣고, 곧 기원정사에 가서 법언(法言)을 들었다. 가르침을 듣고 신(神)에 들어 출가하고자 하였다.
돌아와 부모에게 말하였지만 부모가 허락하지 않자, 마음속으로 혼자 말하였다.
“일체 중생이 모두 부모인데, 어찌 두 사람만이 부모이겠는가?”
이와 같이 생각한 뒤에 곧 부처님의 처소에 가서 사문이 되기를 구했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부모가 허락을 했는가?”
“아닙니다.”
형이 국왕이었기에, 또 왕에게 말하여 도를 구하고자 하였으나, 왕 또한 허락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요컨대 방편을 세워 출가하여 도를 구하여야겠다.
부모님은 하나뿐인 아들이 눈앞에서 잠시라도 떠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의자 하나를 찾아 부모 앞에 앉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6일을 보냈다.
부모는 어찌할 줄 모르고 아들이 죽을까 두려웠다.
만약 아들이 죽는다면 죽은 아들을 어찌할 것인가? 마땅히 그를 놓아 주어 도를 구하도록 허락하리라.
아들에게 일러 말하였다.
“지금 너를 놓아 줄 터이니 도를 구하라. 하지만 마땅히 수일 내에 돌아와야 한다.”
부모가 허락하자 곧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렀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너에게 허락하였느냐?”
“허락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곧 명해 말하였다.
“잘 왔도다, 비구여.”
손으로 그의 머리를 만지자, 머리칼이 저절로 떨어져, 머리를 깎은 지 7일이 된 사람과 같았다. 가사를 몸에 둘러 곧 사문이 되었다.
그를 위해 4제를 말해 주자 곧 나한이 되었다. 그것은 곧 근본의 요체였기 때문이다.
나아가 집으로 가서 옷을 입고 발우를 든 채 문에 서 있었다.
그때 노비가 쌀을 일어 쌀뜨물을 버리려고 하자 발우를 펴 음식을 찾았다.
노비가 머리를 들어 그를 보자 대가(大家)인 것을 알고 곧 들어가 말하였다.
“낭군(郞君)이 밖에 있습니다.”
부모가 기뻐하며 말했다.
“이 소식을 전한 너를 해방시켜 양인이 되게 하리라.”
나아가 맞이하여 음식을 준비했다.
그러나 아들은 말했다.
“해가 이미 넘어갔기 때문에 마땅히 먹어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말했다.
“오늘 그렇다면 내일 일찍 오라.”
곧 거처로 돌아갔다. 돌아간 뒤에 부모는 모든 여자에게 약속하며 명하였다.
“아들이 내일 온다. 너희들은 잘 단장하고 예쁘게 꾸며 각자 기예를 마음껏 다하여 능히 아들로 하여금 재가인으로 돌아오도록 하라. 그러면 너희들에게 크게 좋을 것이다.”
또 창고 관리인에게 명령하여 모든 보물을 꺼내어 금은 7보를 각각 따로 모아 아들의 뜻이 속세에 다시 젖기를 바랐다.
다음날 식사 때가 되어 발우를 들고 들어와 의자에 나아가 앉았다.
모든 여자들이 교태를 부리고, 꽃과 향을 던지며, 옷을 흔들고 몸을 꼬았다.
바라(婆羅)가 말하였다.
“모든 자매여, 어찌 수고를 하는가?”
모든 여자들이 생각해 말하였다.
“우리들을 자매라고 한다면, 장차 돌아갈 리가 없다.”
부모에게 일러 말하였다.
“이 보물을 무엇에 쓰려고 합니까? 이것들은 단지 사람을 미혹케 할 뿐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재화(災禍)에 이르는데, 어찌 산과 연못에 버리지 않습니까?”
부모가 간하여 말하였다.
“도덕은 마음에 있는 것인데 어찌 반드시 출가하는가?
질다(質多) 장자는 또한 집에 있으면서 도를 얻었다.”
“집에 있으면서 누(漏)가 다했다는 것은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질다가 얻은 것은 단지 한 생에 국한된 것입니다.
어찌 부귀에 만족하겠습니까?”
또 호진미옥(豪珍美玉)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버리는 것이 주는 것과 같았다.
그 까닭에 출가(出家) 제일이라 칭한다.
[가전연, 그 뜻을 잘 분별한다]
가전연(迦旃延)이 그 뜻을 잘 분별한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장차 법을 찬술하려고 할 때 마음속으로 생각해 말하였다.
“인간은 시끄럽고 혼란해 한결같이 사유하지 못한다.”
그 까닭에 땅 속에서 7일간 숨은 뒤에 대법을 찬집해 마치고 나서 부처님께 바치니, 칭찬해 말하였다.
“훌륭하도다.”
성(聖)이 인가하는 바로 그것으로써 일장(一藏)을 삼는다.
이 뜻은 미묘하여, 외도를 항복시키는 까닭에 제일이라 칭한다.
또 제일이라 칭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세존께서 석시국(釋翅國)에 이르러 한 나무 아래에서 지팡이를 잡고 앉아 있었다. 석종(釋種)이 모두 와서 부처님을 보았다.
“옛적 나와 너는 서로 누구보다도 좋아했다. 지금 뜻은 어떠하냐?”
대답하였다.
“뜻은 세간에 집착하지 않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다.”
범지가 말하였다.
“좋도다.”
이렇게 말한 뒤에 이해하고 떠나갔다.
그 뒤에 모든 비구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전연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당신을 변재절리(辯才折理) 해의(解義 제일)이라 칭하는데,
세존께서 범지에게 답한 불염불착(不染不著)이란 그 뜻이 무엇입니까?”
그때 가전연이 곧 그를 위해 해설하였다.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안(眼)은 색을 연하여 통(痛)을 일으키며, 통을 연하여 상(想)을 일으키며, 상을 연하여 내왕(來往)하며, 식을 일으켜 분별함으로써 염착심(染著心)을 일으킨다.
이에 염착에서 영원히 떠나야 한다.”
모든 비구는 이 말을 듣고 그 뜻이 분명해지는 것 같았다.
가전연은 모든 비구의 뜻이 명료하지 않은 것을 보고, 곧 비유를 인용해 말했다.
“여기에 한 사람이 있는데, 튼튼하고 단단한 것을 구하고자 하면서 도리어 근본을 버리고 지엽을 취한다면, 튼튼하고 단단한 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얻지 못합니다.”
“그대들 또한 그와 같다.
부처님께서 여기에 계시는데 도리어 물으니, 어찌 본을 버리고 말을 취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비구는 곧 부처님께 가서 가전연이 이해한 바를 물었다.
“이와 같은 것은 잘 모르겠지만, 이치에 상응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가전연이 말한 바와 같다. 그와 같고 다른 것은 없다.”
이런 인연으로써 또 제일이라 칭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