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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익범천소문경 제2권
6. 문담품[2]
[수기]
이때 사익범천이 망명보살에게 말했다.
“그대는 이미 부처님으로부터 수기(受記)를 받았습니다.”
망명이 말했다.
“일체의 중생들은 모두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았습니다.”
범천이 물었다.
“어떤 일 가운데서 수기를 얻습니까?”
망명이 대답했다.
“업에 따라 과보를 받아서 수기를 얻습니다.”
범천이 물었다.
“당신은 어떤 업을 지었기에 수기를 받았습니까?”
망명이 말했다.
“만약 업이 몸으로 짓는 것이 아니며, 입으로 짓는 것도 아니며, 뜻으로 짓는 것도 아니라면, 이 업을 보일 수 있겠습니까?”
범천이 대답했다.
“보일 수 없습니다.”
망명이 말했다.
“보리가 곧 짓는 모습[作相]을 일으킵니까?”
범천이 말했다.
“아닙니다. 왜냐하면, 보리는 무위(無爲)라서 짓는 모습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망명이 말했다.
“짓는 모습을 일으킴으로써 무위의 보리를 얻을 수 있습니까?”
범천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망명이 말했다.
“범천이여,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만약 업도 없고 업보도 없고, 모든 행(行)도 없고 모든 행을 일으킴도 없으면, 이것을 이름하여 보리(菩提)라고 합니다.
보리의 성품을 얻는 것도 역시 이와 같고,
성품을 얻어 수기를 받음도 역시 이와 같으니,
작법(作法)을 일으키는 것으로는 수기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범천이 물었다.
”선남자여, 당신은 6바라밀을 행한 뒤에 수기를 얻은 것이 아닙니까?”
망명이 대답했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보살은 6바라밀을 행하여 수기를 얻습니다.
범천이여, 만약 보살이 일체의 번뇌를 버린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단바라밀(檀波羅蜜)이라 하며,
모든 법에 대해 일으킴이 없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시라(尸羅)바라밀이라 하고,
모든 법에 대해 상해(傷害)함이 없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찬제(提)바라밀이라 하며,
모든 법에 대해 상(相)을 떠난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비리야(毘梨耶)바라밀이라 하고,
모든 법에 대해 머무름이 없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선(禪)바라밀이라 하며,
모든 법에 대해 희론(戱論)이 없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반야(般若)바라밀이라 합니다.
범천이여, 보살이 이와 같이 6바라밀을 행한다면, 어느 곳에서 행하겠습니까?”
범천이 대답했다.
“행하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릇 행함이 있는 것은 모두 행하지 않는 것이니,
만약 행한다면 곧 이것이 행하지 않음이며, 만약 행하지 않는다면 곧 이것이 행하는 것입니다.”
망명이 말했다.
“범천이여,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만 하니, 행하는 바가 없는 것이 곧 보리입니다.
그대가 질문한 바와 같이
‘당신은 보리의 수기를 얻었는가?’라고 한다면
여여(如如)한 법성(法性)이 수기를 얻듯이 내가 수기를 받음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범천이 말했다.
“선남자여, 여여한 법성은 수기가 없습니다.”
망명이 말했다.
“모든 보살의 수기상(受記相) 역시 그러하여 여여한 법성과 같습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
이때 사익범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어떤 행으로 모든 부처님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받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생겨나는 법[生法]을 행하지 않고 소멸하는 법[滅法]도 행하지 않으며,
선(善)도 행하지 않고 불선(不善)도 행하지 않으며,
세간(世間)도 행하지 않고 출세간(出世間)도 행하지 않으며,
유죄법(有罪法)도 행하지 않고 무죄법도 행하지 않으며,
유루법(有漏法)도 행하지 않고 무루법도 행하지 않으며,
유위법(有爲法)도 행하지 않고 무위법도 행하지 않으며,
도(道) 닦음도 행하지 않고 끊어 없애는 것도 행하지 않으며,
생사도 행하지 않고 열반도 행하지 않으며,
보는 법[見法]도 행하지 않고 듣는 법[聞法]도 행하지 않으며,
깨닫는 법[覺法]도 행하지 않고 아는 법[知法]도 행하지 않으며,
보시도 행하지 않고 버리는 것도 행하지 않으며,
계(戒)도 행하지 않고 덮임[覆]도 행하지 않으며,
인(忍)도 행하지 않고, 선(善)도 행하지 않으며,
발원[發]도 행하지 않고, 정진(精進)도 행하지 않으며,
선(禪)도 행하지 않고, 삼매(三昧)도 행하지 않으며,
지혜도 행하지 않고, 행(行)도 행하지 않으며,
지(知)도 행하지 않고 득(得)도 행하지 않는다면,
범천이여, 만약 보살로서 이와 같이 행하는 이가 있다면 모든 부처님께서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수기하실 것이다.
왜냐 하면 모든 행함이 있는 것은 다 그 상(相)을 취하는 것이니, 상도 없고 분별도 없는 것이 곧 보리(菩提)이기 때문이다.
모두 옳다고 여기는 바가 있으니, 옳다고 여기는 바가 없는 것이 바로 보리며,
모든 행함이 있는 것은 다 분별이니, 분별함이 없는 것이 바로 보리이며,
모든 행함이 있는 것은 다 작위(作爲)를 일으키니, 작위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바로 보리이며,
모든 행함이 있는 것은 다 희론(戱論)이니, 희론이 없는 것이 바로 보리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만약 보살이 모든 행을 초월한다면 수기를 얻을 수 있다.”
[수기의 뜻]
범천이 아뢰었다.
”그렇다면 세존이시여, 수기(受記)라는 것은 무슨 뜻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에서 두 가지 상(相)을 여읨이 바로 수기의 뜻이며,
생멸(生滅)의 도를 분별하지 않음이 바로 수기의 뜻이며,
몸과 입과 뜻의 업의 모습[業相]을 떠남이 바로 수기의 뜻이다.
범천이여, 내가 희견(憙見)이라는 과거세의 겁을 생각해 보니,
나는 이 겁에서 72나유타 부처님께 공양했으나 이 모든 여래께서는 수기(授記)를 주지 않으셨다.
다시 이 겁을 지나 선화(善化)라는 겁이 있었는데,
나는 이 겁에서 22억의 부처님께 공양했으나 이 모든 여래께서도 역시 수기를 주지 않으셨다.
또 이 겁을 지나서 범탄(梵歎)이라는 겁이 있었는데,
나는 이 겁에서 1만8천의 부처님께 공양했으나 이 모든 여래께서도 역시 수기를 주지 않으셨다.
또 이 겁을 지나 무구(無咎)라는 겁이 있었는데,
나는 이 겁에서 3만 2천 부처님께 공양했으나 이 모든 여래께서도 역시 수기를 주지 않으셨다.
또 이 겁을 지나 장엄(莊嚴)이라는 겁이 있었는데,
나는 이 겁에서 4백4십만 부처님께 공양하되 일체의 공양 도구로써 공양했으나 이 모든 여래께서도 역시 수기를 주지 않으셨다.
범천이여, 나는 옛날에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공경하며 존중하고 찬탄하였으며,
깨끗하게 범행(梵行)을 닦았으며,
일체의 보시와 지계(持戒)와 두타행(頭陀行)을 하였으며,
성냄을 떠나 인욕과 자심(慈心)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행하여 부지런히 닦고 정진하였으며,
일체의 들은 것을 받아 지니고 혼자 살면서 시끄러운 곳을 멀리하였으며,
모든 선정(禪定)에 들었으며, 듣고 얻은 지혜를 따라 독송(讀誦)하고 생각하여 물었으나 이 모든 여래께서는 역시 나에게 수기를 주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행한 바에 기대어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만약 모든 보살이 일체의 행을 초월한다면 수기를 얻을 수 있다.
내가 만약 한 겁(劫)에서 한 겁을 다할 동안 이 모든 부처님의 이름을 말한다 해도 다할 수가 없다.
범천이여, 나는 이렇게 한 뒤에 연등불(燃燈佛)을 뵙고 곧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연등불께서 그때 나에게 수기하시기를
‘너는 내세에 마땅히 부처가 될 것이니, 명호를 석가모니 여래ㆍ응공ㆍ정변지라 하리라’라고 하셨다.
나는 그때 일체의 행을 초월하여 6바라밀을 구족하였다.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모든 상(相)을 버리면 이를 이름하여 단바라밀이라 하고,
모든 받아 지닌 것을 멸할 수 있으면 이를 이름하여 시라바라밀이라 하고,
6진(塵)에 손상되지 않으면 이를 이름하여 찬제바라밀이라 하고,
모든 행한 바를 여의면 이를 이름하여 비리야바라밀이라 하고,
일체의 법을 기억하여 생각함이 없으면 이를 이름하여 선(禪)바라밀이라 하며,
모든 법의 생겨남이 없는 성질[無生性]을 참을 수 있으면 이를 이름하여 반야바라밀이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연등불이 계신 곳에서 이와 같은 6바라밀을 구족하였다.
범천이여, 내가 처음 보리심을 낸 이래로 지은 보시는 이 다섯 가지 꽃의 보시에 비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백천분, 백천만억분, 나아가 산수(算數)로 비유해도 미칠 수가 없다.
내가 처음 발심한 이래로 계를 받고 계를 지니며 두타(頭陀)를 행한 것이,
항상 계를 없애버린 것에 비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나아가 산수로 비유해도 미칠 수가 없다.
내가 처음 발심한 이래로 행한 부드럽게 화합하는 인욕[柔和忍辱]은
끝까지 참는 법[畢竟忍法]에 비하면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며, 나아가 산수로 비유해도 미칠 수가 없다.
내가 처음 발심한 이래로 부지런히 정진(精進)한 것은
이 취(取)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정진에 비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나아가 산수로 비유해도 미칠 수가 없다.
내가 처음 발심한 이래로 혼자 있으면서 선정에 든 것은
이 머무름이 없는 선정에 비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나아가 산수로 비유해도 미칠 수가 없다.
내가 처음 발심한 이래로 사유하고 헤아린 지혜는
희론이 없는 지혜에 비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분, 백천만억분, 나아가 산수로 비유해도 미칠 수가 없다.
범천이여,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나는 그때 6바라밀을 구족하게 되었다.”
[6바라밀을 구족함]
범천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이름하여 6바라밀을 구족하였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베푼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계(戒)에 기대어 머무르지 않으며, 인(忍)을 분별하지 않으며, 정진을 취하지 않으며, 선정에 머무르지 않으며, 지혜에 대해 둘이 아닌 이것을 6바라밀을 구족했다고 한다.”
범천이 다시 여쭈었다.
“6바라밀을 구족하고 나면 어떤 법을 만족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6바라밀을 구족하고 나면 살바야(薩婆若)를 만족할 수 있다.”
[살바야를 만족함]
“세존이시여, 어떻게 6바라밀을 구족하고 나면 살바야를 만족할 수 있습니까?”
“범천이여, 보시가 평등하면 곧 이것이 살바야가 평등한 것이고,
지계(持戒)가 평등하면 곧 이것이 살바야가 평등한 것이며,
인욕이 평등하면 곧 이것이 살바야가 평등한 것이고,
정진이 평등하면 곧 이것이 살바야가 평등한 것이며,
선정이 평등하면 곧 이것이 살바야가 평등한 것이고,
지혜가 평등하면 곧 이것이 살바야가 평등한 것이니,
이런 평등으로써 일체의 법을 평등하게 하는 것을 이름하여 살바야라고 한다.
또 범천이여, 보시상(布施相)ㆍ지계상ㆍ인욕상ㆍ정진상ㆍ선정상ㆍ지혜상을 구족하면 이를 이름하여 살바야라고 한다.
범천이여, 이와 같이 6바라밀을 구족하면 살바야를 만족할 수 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야 마땅히 살바야를 만족함을 알겠습니까?”
“범천이여, 만약 눈[眼]으로도 받지 않고, 색(色)으로도 받지 않고,
귀로도 받지 않고, 소리로도 받지 않고,
코로도 받지 않고, 냄새[香]로도 받지 않고,
혀로도 받지 않고, 맛으로도 받지 않고,
몸으로도 받지 않고, 감촉으로도 받지 않고,
뜻으로도 받지 않고, 법으로도 받지 않으며,
약 이 안팎의 12입(入)을 받지 않는다면, 이를 이름하여 살바야를 만족한다고 한다.
나는 이와 같이 살바야를 만족함을 얻었으니,
눈에는 집착하는 것이 없으며, 색ㆍ귀ㆍ소리ㆍ코ㆍ냄새ㆍ혀ㆍ맛ㆍ몸ㆍ감촉ㆍ뜻ㆍ법에 대해서도 집착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여래를 걸림없는 지견(知見)의 살바야라고 한다.
범천이여, 살바야는 법에 대해 받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작용이 없기[無用] 때문이다.
작용이 없다는 것은 곧 소유(所有)가 없다는 뜻이고,
소유(所有)가 없다는 뜻은 곧 비어서 허공과 같다는 뜻이며,
이 허공상(虛空相)과 같은 것이 바로 살바야이다. 그
러므로 법에 대해 받는 것이 없는 것이다.
범천이여, 비유하자면 일체의 작위(作爲)는 모두 허공을 인(因)하나 허공은 의지하는 것이 없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모든 지혜는 살바야로부터 나오지만 살바야는 의지하는 바가 없다.”
범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살바야를 말씀하셨는데 살바야란 무엇을 말합니까?”
“범천이여, 일체의 행위(行爲)는 이 지혜로 참지혜를 삼으니, 모든 성문과 벽지불이 미칠 바가 아니므로 살바야라고 한다.
모든 행위를 다 성취할 수 있으므로 살바야라고 하며,
일체의 생각하는 희론(戱論)을 부수어버릴 수 있으므로 살바야라 하며,
모든 교칙(敎勅)과 모든 방제(防制)와 이와 같은 중생들이 행하는 법이 모두 이 안에서 나오므로 살바야라고 하며,
모든 성인의 지혜를 얻되 학인[學]의 지혜나 무학인[無學]의 지혜나 벽지불의 지혜가 모두 이 안에서 나오므로 살바야라고 하며,
바른 행(行)이므로 살바야라고 하며, 일체의 약(藥)을 분별할 수 있으므로 살바야라고 하며,
일체 중생들의 병을 소멸할 수 있으므로 살바야라고 하며,
일체의 번뇌와 습기(習氣)를 없앨 수 있으므로 살바야라고 하며,
항상 선정[定]에 들어 있으므로 살바야라고 하며,
일체의 법 가운데 의심이 없으므로 살바야라고 하며,
일체의 세간과 출세간의 지혜가 이 안에서 나오므로 살바야라고 하며,
일체의 지혜와 방편상(方便相)을 잘 알기 때문에 살바야라고 한다.”
[보리심]
이때 사익범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일찍이 없던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과 여래의 지혜는 매우 깊고 마음에 인연하는 바가 없어서 일체의 중생들이 마음과 마음으로 행하는 바를 아십니다.
세존이시여, 살바야가 이와 같이 한량없는 공덕이 있으니 그 어느 선남자와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지 않겠습니까?”
이에 망명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보살이 공덕과 이익을 바래서 보리심을 낸다면 대승(大乘)을 발했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의 법에는 공덕과 이익이 없어서 대처(對處)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응당 공덕과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에 보리심을 발합니다.
단지 대비심(大悲心)을 위하기 때문이며,
중생의 모든 고뇌를 소멸하기 때문이며,
스스로 근심하고 고뇌하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선법(善法)을 내기 때문이며,
모든 삿된 견해에서 해탈하기 때문이며,
모든 병을 없애기 때문이며,
내 것에 탐착함을 버리기 때문이며,
증오와 사랑을 보지 않기 때문이며,
세간법[世法]에 빠지지 않기 때문이며,
유위(有爲)를 싫어하기 때문이며,
열반에 안주(安住)하기 때문에 보리심을 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중생들에게 은혜 갚음을 바라지도 않고,
또한 응당 지음[作]과 짓지 않음을 보지도 않으며,
또 괴로움과 즐거움에 대해 마음이 기울거나 움직이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일러 보살의 집은 청정하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집에 태어났다 해도 그 집을 청정하다고 하지 않으며, 만약 제석(帝釋) 가운데 태어나거나 만약 범왕(梵王) 가운데 태어났다 해도 역시 청정한 집이라고 하지 않는다.
태어나는 곳마다 짐승으로 태어나더라도 스스로 선근(善根)에서 물러나거나 잃지 않으며,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선근을 내게 하는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집은 청정하다고 한다.
또 망명이여, 자(慈)가 바로 보살의 집이니 마음이 평등하기 때문이며,
비(悲)가 바로 보살의 집이니 깊은 마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며,
희(喜)가 바로 보살의 집이니 법의 기쁨을 내기 때문이며,
사(捨)가 바로 보살의 집이니 탐착을 떠났기 때문이며,
보리(菩提)를 버리지 않음이 바로 보살의 집이니 성문과 벽지불의 지위를 탐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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