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평장사(始祖平章事) 도정공(道正公)께서는 신라말기(新羅末期)에 하동지방(河東地方)과 그 주변(周邊)을 관료(管掌)하는 호족(豪族)의 장(長)으로서 향병(鄕兵)을 단련(團練)하고 계시다 고려건국(高麗建國)에 참여(參與)하시어 평장사(平章事)를 지내셨다. 道正公께서 고려조정(高麗朝廷)에 출임(出仕)하셨으므로 수도(首都)인 개성(開城)에서 돌아가신 후 고향(故鄕) 도선산(都先山)에 반장(返葬)치 못하고 그 곳에 묻힌 것으로 추측(推測)만 될 뿐이다. 고려건국(高麗建國) 초기(初期)에는 고관직(高官職)에 출임(出仕)한 분들은 죄를 짓지 않는 한 생전(生前)이나 사후(死後)에도 반드시 개성(開城)에 남아야 한다는 제도(制度) 때문에 고향(故鄕)의 도선산(都先山)에 묻히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후손(後孫)들이 부민(不敏)하여 시조공(始祖公)부터 밀직부사(密直副使) 공(公) 이전까지의 선조(先祖)님들의 묘소(墓所)를 실묘(失墓)한 채로 오늘에 이르기 까지 찾지도 못하여 단(壇)을 모시고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 금(禁)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하동정씨(河東鄭氏) 선조묘소(先祖墓所) 中에서 제일 오래된 묘(墓)는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중직하신 국용조(國龍祖)의 묘(墓)이다. 밀직부사(密直副使) 公은 고려(高麗) 고종(高宗)(서기1214~1259년)때의 사람이고 묘소(墓所)의 위치(位置)는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리 (새우골,또는 새비골) 뒷산인데 이곳은 바로 하동정씨(河東鄭氏)의 도선산(都先山)이기도 하다.밀직부사(密直副使) 公 국용조(國龍祖)와 자제인 문충공(文忠公) 지연(芝衍)과 좌윤(左尹) 공(公)난연(蘭衍)의 묘 삼기(三基)는 고려중기(高麗中期)의 방형(方形) 석장묘(石葬墓)서 그 특징(特徵)이 있어 경상남도 문화재(文化財)에 등록이 되여 있다.
우리 하동정씨(河東鄭氏)의 묘소(墓所)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하동(河東) 새비골 뒷산에 모셔진 증(贈) 밀직사공(密直副使公) 국룡조(國龍祖)의 묘소(墓所)이다.이 묘(墓)는 자제분(子弟分)인 문충공지연조(文忠公芝衍祖)와 좌윤공(左尹公) 란연조(蘭衍祖)의 묘(墓)와 더불어 고려중기(高麗中期)의 정방형묘(正方形墓)의 특징이 있어 경상남도(慶尙南道)로부터 2005년 12월에 문화재(文化財)중 기념물(紀念物)로 지정(指定) 받았다.
도선(都先)은 선조(先祖)들께서 출생(出生)하실때부터 근거(根據)로 삼고 생전(生前)에 살았던 곳을 말하며, 도선산(都先山)은 돌아가신 조상(祖上)들을 사후(死後)에도 잘 모시기 위하여 묘소(墓所)를 두고 있는 산을 말한다. 마치 임금님 계신곳을 도성(都城)이라고 하는 것을 비유(比喩)해 봄직하다.
하동(河東) 정씨도선산(鄭氏都先山)이 언제부터 정해진 것인지 기록(記錄)은 찾을 길이 없다. 시조공(始祖公)부터 밀직부사공(密直副使公) 이전까지는 기록(記錄)도 불완전(不完全)하고 실묘(失墓)까지 하여 많은 것이 미상(未詳)인 상태이다. 다만 밀직부사공(密直副使公) 국용조(國龍祖0의 묘소(墓所)가 새비골 도선산(都先山)에 모셔졌으니 고려고종(高麗高宗)(서기 1214~1259년)때 부터는 확실(確實0하다고 생각한다. 자손(子孫)들은 미비(未備)한 사적(史蹟)을 찾는데 노력(努力)하고 시조(始祖)를 비롯한 조상(祖上)님들을 잘 모셔야 함은 물론(勿論) 도선산(都先山)을 잘 보전(保全)해서 길이길이 빛나는 종통(宗統)이 세우어져야 할 것이며 자손만대(子孫萬代) 번창(繁昌)하는 종문(宗門)을 이루어 가야할 것이다.
"시조고려평장사하동정공도정지단비,
"始祖高麗平章事河東鄭公道正之壇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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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馬溫公曰積陰德于冥冥之中以爲子孫之計如河東鄭氏始祖平章事公寔其人也公諱道正新羅之末與敬順王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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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歸順而後日麗王重用爲平章事其始公以河東戶長調鍊鄕兵然若以河東一鄕之勤王拒高麗乘勝長驅之大勢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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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禍必至盡爲魚肉塗炭矣以是公乃忍墳含辱以救生靈也所謂積陰德于冥冥之中者比也以故公之後孫其麗不億
이명공거경접종비견우려한천년지간봉군이휘성고려대광보국숭록대부봉금성군휘흥인조선조증의정부영의
而名公巨卿接踵比肩于麗韓千年之間封君而諱盛高麗大匡輔國崇祿大夫封錦城君諱興仁朝鮮朝贈議政府領議
정봉하성부원군휘종병조판서봉동평군휘인지오조판서성균관대사성양관대제학영의정봉하동부원군휘현조
政封河城府院君諱種兵曹判書封東平君諱麟趾五曹判書成均館大司成兩館大提學領議政封河東府院君諱顯祖
세조부마책좌리공신봉하성부원군휘숭조의금부사이조판서봉하남군휘세호사도관찰사오조판서영의정봉하
世祖駙馬策佐理功臣封河城府院君諱崇祖義禁府事吏曹判書封河南君諱世虎四道觀察使五曹判書領議政封河
동부원군휘윤숭정대부판중추부사봉금천군휘충신임란토왜적평괄란부원수판돈녕봉금남군휘빙송화현감벽
東府院君諱倫崇政大夫判中樞府事封錦川君諱忠信壬亂討倭賊平适亂副元帥判敦寧封錦南君諱빙松禾縣監碧
동군수죽산도호부사봉금평군시야유십육시휘지연고려도첨의찬성사판선부사시문충휘지예의판서문하평리
潼郡守竹山都護府事封錦平君是也有十六諡諱芝衍高麗都僉議贊成事判選部事諡文忠諱地禮儀判書門下評理
삼도체찰사시경열휘종시량양휘인지시문성휘현조시빈정휘숭조시장정휘여창무갑양사화화급천양증우상종
三道體察使諡景烈諱種諡良襄諱麟趾諡文成諱顯祖諡빈玎諱崇祖諡莊靖諱汝昌戊甲兩士禍禍及泉壤贈右相從
사문묘시문헌휘세호시효간휘운임란전순우몰운대증병조판서명정려시충장휘광적부제학대사성판중추지경
祀文廟諡文獻諱世虎諡孝簡諱運壬亂戰殉于沒雲臺贈兵曹判書命旌閭諡忠壯諱光績副提學大司成判中樞知經
연병란원훈증우상시익정휘봉수병난훈신병조판서시양무휘열임란부이순신막누립기공배어모장군역전순절
筵丙亂原勳贈右相諡翼正諱鳳壽丙亂勳臣兵曹判書諡襄武諱悅壬亂赴李舜臣幕累立奇功拜禦侮將軍力戰殉節
시충민휘득열임란사천현감수대공경순절증병조판서시충장휘기인임란좌부장종금천일전순우진주명정려시
諡忠敏諱得說壬亂泗川縣監樹大功竟殉節贈兵曹判書諡忠壯諱麒麟壬亂左部將從金千鎰戰殉于晉州命旌閭諡
충렬휘충신시충무휘택뇌이진사복궐청주이첨대비계폐항소극언졸우적소증이조판서명립의열사시충결시야
忠烈諱忠信諡忠武諱澤雷以進士伏闕請誅爾瞻大妃繼閉抗疏極言卒于謫所贈吏曹判書命立義烈祠諡忠潔是也
지약밀직부사휘국룡정당문학휘난연증병조판서휘익례조판서휘양명환휘윤서지현영한성좌윤휘육을모재휘
至若密直副使諱國龍政堂文學諱蘭衍贈兵曹判書諱翊禮曹判書諱穰名宦諱允서之顯榮漢城左尹諱六乙慕齋諱
여덕동해휘응두송재휘홍수지충의관찰사휘경호조참판휘인귀지은퇴진사휘국교현감휘흥도퇴복당휘현우둔
餘德東海諱應斗松齋諱弘壽之忠義觀察使諱耕戶曹參判諱仁貴之隱退進士諱國僑縣監諱興道退伏堂諱賢佑遯
재휘여해춘수당휘수민만강재휘덕하지도학하곡휘운용농포휘상기삼두휘동윤창주휘광연지문행모효재휘문
齋諱汝諧春睡堂諱秀民晩康齋諱德河之道學霞谷諱雲龍農圃諱尙驥三斗諱東潤滄州諱光淵之文行慕孝齋諱文
손지효행충청관찰사휘태현숭조화친지불승굴하기성재소위위자손무궁지계자비야수연후삼국전란지제각가
孫之孝行忠淸觀察使諱泰鉉崇祖和親指不勝屈何其盛哉所謂爲子孫無窮之計者比也雖然後三國戰亂之際各家
문헌탕일이자공이하휘석숭휘탁신휘의균휘연서사세지생졸배위무전지어분묘역개실호기위자손지재한하여
文獻蕩佚而自公以下諱碩崇諱卓申諱義均諱延敍四世之生卒配位無傳至於墳墓亦皆失護其爲子孫之齎恨何如
재영년추문의대기상여지언왈하동오시조득관지향칙기묘의재하동이밀직공묘상재하동칙상기조선지영왕래
哉令年秋門議大起相與之言曰河東吾始祖得貫之鄕則其墓宜在河東而密直公墓尙在河東則想其祖先之靈往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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依存于斯矣乃卜地于密直公祭室所稱鰕谷齋之後築始祖壇如主壁又築四位壇於其下如昭穆祭之以歲一之禮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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彿乎祖孫父子會食于一室之中而神理人情俱得其安誰敢以壇祭之儀無據于經而致疑其間哉懇請石文于余者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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霦誠行斯道竭力爲先感其孝心敍如右而傳之後世
단군기원사천삼백이십삼년경오신춘절
檀君紀元四千參百貳拾參年庚午新春節
後孫 淳霦 謹豎
成均館長 金敬洙 撰
後孫 周相 謹書
"시조 고려평장사 하동 정공 도정 지단비,
첫댓글 순빈 종현과 주상 종현의 노력에 감사,찬사를 보냅니다.
한글 번역을 실어주신 진채 종현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조상의 업적[業績] 잘 정리하여 보존함이 후손의 도리라 사료되며 반달곰님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