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학교 교관보직 2년을 못채우고 보직된 행정처정 으로 갈 때에도 교수부장 신 승언 대령은 나를 그리로 보내면 안된다고 하였고 행정부장 김형태 중령은 나를 달라고 하였고 . 교수부장이 나에게 최소령 꼭 행정처장으로 가고 싶으냐고 묻기도 했지만 저는 명령이 나는대로 따르겠다고 대답했다. 우여 곡절 끝에 행정처장직으로 갔는데 그 곳에서도 일년을 못 채우고 이제는 육군 본부 항공 감실로 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이동한 행정처장 보직을 1년도 못 채우고 또 육군 본부로 가게되었다. 삼각지에 있었던 육군 본부로 가게 되었는데 그 당시에 항공 감실의 편제가 감소 편성이 되면서 항공 감실 행정 실장이 중령이고, 감실 행정 장교 즉 항공감 보좌관이 대위가 1명 있었는데 그 두 자리가 소령 한 자리로 축소가 되었던 것이다. 감실에서는 똑똑한 소령 하나를 보직하여 중령1명과 대위 1명이 하던 일을 소령 한사람이 수행을 하게되 하었는데 전 육군 항공 병과의 소령 중에서 1~2년 고생을 하고 중령으로 진급을 시켜도 좋을 자력이 좋은 소령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그자리에 내가 선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행정처장으로 그리 힘들게 갔는데 또 이동을 하게되면 본인의 입장에서 보직이 중간에 단절되기때문에 경력 관리상 나쁘다고 해서 육군 인사방침상 어긋나는 일이라고 했지만 인사운영 감실 항공 보직 장교가 참모 총장 앞으로 재보직 이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결국 내가 항공 감실 행정 장교로 가게 되었다. 아침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고 마치 대위시절 군단장 전속 부관 시절처럼 날마다의 근무가 바빴지만 나는 육군 본부사령실 동기생이 본사실 비오큐관리를 하고 있을 때라서 육본 비오큐를 신청해 두고 한동안은 조치원으로 주말에 오락가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후임 행정처장으로 부터는 왜 전출 간 사람이부대 아파트를 빨리 비워 주지 않느냐고 한다는 말을 들으니 그것도 참 난감하였다. 그래서 광명시로 방을 얻어서 이사를 하였다. 광명시에서 삼각지로 출퇴근을 하려면 버스나 전철을 여러번 갈아타야 하였기에 출퇴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빙고 관사를 신청을 하였는데 입주 대기자가 하도 많아서 한동안 조치원에서 이사를 하지 못하고 주말마다 서울까지 오락가락하면서 근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