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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불사 세 성인을 영원히 사모하며 (내불삼성영사집 來佛三聖永思集) 9
제1장. 해경노화상: 성인은 무슨 일로 말이 없고자 하시는가? (聖人何事欲無言?)
20세기 80년대에 래불사는 그때까지도 아직 수돗물이 없어서 승려 대중들이 마시는 물은 전부 자신들이 직접 판 얕은 우물에 의지하였습니다. 가뭄을 만나기만 하면 그때마다 언제나 우물에서 물을 길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을까지 가서 물을 길어다 먹었습니다. 한번은 경공慶公께서 물을 길러 마을에 가셨다가 공교롭게도 큰 개에 물려 개에게 온몸이 긁혀 상처투성이가 되셨습니다. 그 개 주인이 그 소리를 듣고 급히 뛰어나와 손에 들고 있던 가죽 채찍을 휘두르며 그 개를 때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경공은 오히려 그 개 주인을 때리지 못하게 막으면서 말씀하시길, “개가 나를 보고서 물은 것은 내가 전생에 개였을 때 저 개를 물은 적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요. 지금 저 개가 나를 물었으니 이 빚을 다 청산하였는데, 만약 주인장께서 저 개를 때려 저 개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내게 한다면, 이 원한은 여전히 계속해서 맺어지게 될 것이요. 그렇게 되면 지금 내 이 몸의 상처 역시 헛되게 받은 꼴이 될 것이요.”(狗見了咬我, 說明我前世作狗的時候咬過牠, 現在牠把我咬了, 這個賬就正好了結了, 假如你打牠, 讓牠心生怨恨, 那麼這個怨就還要繼續結下去, 我這一身傷也就白受了.)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마을 사람에게 밀가루를 조금 얻어서 상처 위에 뿌리셨으며, 또 바늘과 실을 빌려서 찢어진 옷을 대충 꿰매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후 두 개의 물통에 물을 반쯤 길어 어깨에 메고 사원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경공은 글자를 알지 못하셨으며,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 이외에는 거의 어느 것도 할 줄 모르셨기 때문에, 경공을 존중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대전大殿에 올라갈 때에는 경공은 어쩔 수 없이 그저 대전 밖에 서서 염불을 하셨습니다. 사원 안의 가장 더럽고 가장 고된 일은 모두 경공께서 도맡아 하셨습니다. 당시에 사원에는 경작하는 척박한 밭이 몇 이랑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경공이 한쪽 팔에는 광주리를 걸고 어깨에는 삽을 메고서 어느 곳에서나 똥을 줍고 계신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경공께서 나귀 옆에서 똥을 줍다가 나귀의 발길질에 채여 곤두박질쳤습니다. 그 나귀 주인이 황급히 경공을 부축하여 일으키고는 다친 곳은 어떠신 지를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경공께서 오히려 대답하시길, “나는 아무 일도 없으니, 나귀 다리가 다치지나 않았는지 어서 살펴보십시오.”(我一點事都沒有, 你快看看把驢腿給傷著了嗎?)라고 하셨습니다.
1987년 겨울, 경공께서는 한차례 병을 크게 앓으셨습니다. 그때 마침 사원에 와서 기숙하고 있던 행각승이 자신이 사람의 운명을 점칠 줄 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행각승은 경공의 수명이 머지않아 곧 다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제당齋堂에서 밥 짓는 사람에게 경공께 다시는 음식을 드시게 하지 말고, 약도 드시게 하지 말며, 장을 깨끗하게 청소하여 죽음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하였습니다. 사흘 후에 왕춘생거사가 사원에 갔다가 평상에 누워서 숨이 곧 끊어질 듯한 경공을 보고 공양을 드셨는지 여쭈었더니, 경공께서 드셨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왕춘생거사는 그 즉시 해현노화상을 찾아 두 분이서 한 분은 불을 지피고 한 분은 밀가루 반죽을 밀어 국수를 뽑아 국수를 한 솥 끓였습니다. 현공은 경공의 평상 곁에 가서 자신의 등으로 경공을 받치고, 왕춘생거사는 사발을 받쳐 들고서 한 숟갈 한 숟갈 경공의 입안에 국수를 넣어드렸습니다. 경공은 단숨에 국수 네 그릇을 드시고는 차츰차츰 몸이 회복되셨습니다. 왕춘생거사가 경공께 좀 더 드시겠느냐고 여쭙자, 경공께서 대답하시길, “솥 안에 국수가 있으면 또 좀 더 먹어도 되겠네.”(鍋裏若是有, 再喝點兒也行.)라고 하셨습니다. 현공과 왕춘생거사는 마음이 너무 아픈 나머지 목이 메어 울음소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두 분은 경공에게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게 하다가 몸에 탈이 날까 걱정이 되어 더 이상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왕춘생거사는 운명을 점칠 줄 안다는 그 행각승을 찾아서 시비를 따지려고 하였지만, 경공께서 도리어 가로 막으며 하지 못하게 하면서 말씀하시길, “이는 모두 내 자신의 업장이니, 다른 사람을 탓해서는 안 되네.”라고 하셨습니다.
경공은 일생동안 좋은 일을 하시면서도 명성과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셨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본분을 지키면서 자신이 응당 해야 할 일이면 소리 소문 없이 하셨으며, 호기롭게 자신 있게 말씀하신 어떠한 말씀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음속으로, “저 어르신은 일생 동안 남의 나쁜 점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서 항상 남에게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고치고 스스로 새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남겨 주셨으며, 자비하신 마음으로 평등하게 동물들에게 능히 베푸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행은 만약 살타왕자(석가모니불의 전생의 몸)나 인욕선인(석가모니불의 전생의 몸)과 같은 부류가 다시 이 세상에 와서 응화應化하신 것이 아니라면, 결코 실천하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경공께서 금강의 무너지지 않는 몸(金剛不壞身)을 얻으신 것이 어찌 우연에 속하는 일이겠습니까!
경공의 법체를 모신 항아리를 7년반만에 개봉하니 썩지 않고 온 몸이 사리가 되어있는 모습. 이에 금을 입혀 모시었다.
(인연생거사)
나무아미타불! 말학은 경공과 서로 만날 인연이 없었기 때문에, 경공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의 세 가지 사건은 래불사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일이며, 말학 역시 직접 왕춘생대거사께 증명해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조금도 수식하지 않고서 여기에 그대로 서술하였습니다.
말학은 일찍이 연세가 많으신 거사들을 적지 않게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들은 모두가 거의 이구동성으로 경공께서 언제나 농기구를 어깨에 메고서 밭을 갈며 일하고, 잡목을 줍고 똥을 줍고, 다리를 고치고 길을 보수하는 모습을 본 것 이외에는 거의 달리 이야기할 만한 거리가 없다고들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경공은 말씀하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경공이 일찍이 무슨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지 기억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말학은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서 인지법사와 함께 특별히 시간을 내어 경공께서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신 나한산羅漢山 청량사清涼寺에 가서 연세가 69세인 구국부邱國富 호법거사를 예방하였습니다. 구거사의 부친은 경공과 동년배이시며, 또한 경공이 어렸을 때 같이 놀던 죽마고우라 말할 수 있으며, 게다가 지금도 여전히 건강하십니다.
말학이 구국부노거사에게 여쭙길, “어떤 사람이 인터넷에서 경공께서 열아홉 살에 출가하셨다고 말하는데, 제가 여러 해 전에 전해들은 말에 의하면 경공께서는 열한 살에 출가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어느 것이 진실로 신빙성이 있는 말인지 부친께서 혹 노거사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으신지요?” 그러자 구노거사가 아주 분명하게 대답하길, “부친께서 말씀하신 적이 결코 한 번만이 아닙니다. 경공께서 막 사원에 오셨을 때에는 키가 그다지 크지 않았으며, 여전히 어린아이였다고 말씀하셨으며, 또한 겨우 열 살 쯤 된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고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열아홉 살에 출가하셨다고 말하였다면, 그것은 완전히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말학이 다시 또 여쭙길, “인터넷에는 또 경공의 사진이 한 장 올라와 있는데, 그 사진은 경공께서 생전에 남기신 것이라 말합니다.” 그때 옆에 있던 거사 한 분이 끼어들며 말씀하시길, “맞아요. 저도 보았어요. 게다가 마치 칼라사진 같았어요?” 구노거사가 웃고는 여전히 매우 단호한 어투로 말하길, “경공께서 남기신 사진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칼라사진은 말할 것도 없고, 설사 흑백사진이라 해도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들이 인터넷에 그렇게 올린 것은 경공께서 그 시절에 얼마나 어렵고 힘들게 고생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학이 경공의 구체적인 사적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지 여쭈었을 때, 구노거사는 대답하기 조금 난처해하였습니다.
한참 생각한 후에 단지 한 마디 말씀하길, “경공께서는 성품이 좋으셔서 사람들의 기분을 건들려 번뇌를 일어나게 한 적이 한 번도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경공께서 말씀하실 때 좀 더듬거리며 말하여 무슨 말을 해도 매끄럽지 않았기 때문에, 한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경공께서 오직 ‘아미타불’ 명호를 부르실 때만은 더듬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저는 단지 경공께서 염불하시는 것을 좋아하셨다는 이것만이 기억날 뿐입니다.”
왕춘생거사와 같은 마을에 사는 당만당黨萬堂거사가 뜻밖에도 이야기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하나 들려주었습니다. 문화혁명 초기에 경공은 하방下放을 당하여 래불사 근처인 장장촌張莊村에 가서 노동에 참가하신 일이 있었는데, 그때 바로 당만당거사가 있던 생산대에 함께 계셨습니다. 그 당시에 당만당거사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경공과 함께 장난치며 노는 것을 좋아하였으며, 저녁에는 또 자신의 평상을 경공의 평상과 나란히 붙이고서 함께 자려고 하였습니다. 하루는 어느 여름날 밤에 당만당거사가 몽롱한 상태에서 화장실에 가려고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뜻밖에도 경공이 평상 위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당만당거사는 깜짝 놀라 급히 평상에 올라 경공의 등을 치면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경공이 대답하길, “낮에는 염불하지 못하게 하니, 밤 시간을 틈타 잠시 염불하네.”(白天不讓念佛, 我趁夜裏念會兒佛.)라고 하셨습니다. ……
(주) 하방下放 : 간부나 지식인들이 사상 단련을 위해 공장·농촌·광산 등지로 노동하러 가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외에 또 왕봉림거사가 있는데, 그가 말하길, 한번은 경공께서 인분을 한 짐 짊어지고 밭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근데 공교롭게도 때마침 어떤 한 젊은이가 자전거를 타고서 맞은편에서 오고 있었는데, 그 자전거의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에, 경공이 미처 몸을 피할 겨를도 없이 한 순간 달려오는 그 자전거에 몸이 부딪혀 옆에 있던 웅덩이에 넘어지는 바람에 짊어지고 있던 인분이 몽땅 쏟아져 온몸이 인분으로 뒤덮었답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 젊은이는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웅덩이에 넘어진 경공에게 자기가 가는 길을 막았다고 마구 욕을 퍼부었습니다. 그때 마침 왕봉림거사가 삽을 들고 이 길을 지나가던 중이었는데, 이 젊은이가 이처럼 난폭하고 무례한 행동을 보고, 그 순간 화가 나서 들고 있던 삽을 힘껏 휘둘러 그 젊은이를 때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물웅덩이에 누워있던 경공이 그 순간 거사에게 계속해서 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말씀하시길, “때리지 마시요! 때리지 마시요! 저 젊은이를 원망하지 않소. 모두가 다 내 잘못이요.”(不要打他! 不要打他! 不怨他, 都是我的錯.)라고 하셨습니다. ……
경공께서 왜 언교言敎를 조금도 남기지 않으셨는지 그 이유는 아마도 그 어르신께서 중생을 제도하시는 또 다른 일종의 대 자비심이며, 대 지혜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 염불하여(念佛) 성불하는 것(成佛)에 어찌 구태여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고덕의 선시禪詩에서 말하길,
성인은 무슨 일로 말이 없고자 하시는가? 이는 아마도 말로 인해 본원을 잃을까 두려워서 일 것이네. (聖人何事欲無言? 蓋恐因言失本源)
청정한 선의 마음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거늘, 불법을 분명하게 알지 못해 바람이니 깃발이니 하네. (清淨禪心非月指, 糊塗佛法是風幡.)
(주)清淨禪心 : 불교용어로, 맑고 텅 비고 안정된 마음을 가리킨다. 지금 현대 사람들은 대체로 이 말을 가지고 불법을 깨닫는 마음을 가리킨다.
정공노법사는 경공의 비범한 성취를 아신 후, 얻기 어려운 일이라 극찬하셨으며, 또한 희유한 일이라 찬탄하시면서 경공의 성취는 틀림없이 “깨달음을 종지로 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모든 이들이 다 함께 경축할 일이다.”(覺海同慶)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정공노법사는 친히 제자題字를 써서 찬탄하셨습니다.
(주) 제자 : 기념을 남기기 위해 쓰는 글자를 가리킨다.
한 평생 계율 지니고 수행하시어, 금강처럼 부서지지 않는 몸 원만하게 성취하셨네. (一生持戒修行, 圓滿金剛不壞體)
일심으로 염불하여 왕생하시어, 구경에 극락세계의 걸림 없는 몸 이루셨네. (一心念佛往生, 究竟極樂無礙身.)
완성의 대덕이신 섭진도聶振弢교수 역시 경공을 위해 시를 지어 찬탄하셨습니다.
(주) 섭진도 교수 : 한국경기대학객좌교수、중국풍우란연구회상무이사、하남성공자학회부회장、중국음운학연구회이사、남양사범대학교수.
산 역시 높지 않고, 물 역시 깊지 않으나, 풀이 저절로 무성하고, 나무는 저절로 숲을 이루었네. (山亦不高, 水亦不深. 草自豐茂, 木自成林.)
래불선사에 훈풍 불고 단비 내리고, 해경법사 어린아이처럼 앉아 계시네. (來佛禪寺, 薰風甘霖. 海慶法師, 童稚坐臨.)
여든 두 살에 자재하게 숨소리 멈추고, 7년을 항아리에 앉아 계시니, 웃으시는 얼굴 마치 읊조리는 듯하네. (八十二歲, 自在息音. 坐缸七載, 笑面如吟.)
육신은 썩지 않아 이 세상에 계합하고 저 세상에 계합하며, 하늘은 높고 구름 한 점 없나니, 오직 우리 스승의 마음일세. (肉體不腐, 副陽副陰. 天高雲淡, 唯吾師心.)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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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