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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SPACE 2005년 07월에 연재된 것임을 밝힙니다.
한옥 공간의 재구성
가회동 31-60번지 글_황두진 / 진행_김정은 / 디자인_정진주 / 사진_박영채
관찰
집은 작지만 공간은 다양하고 풍부하다 이 집은 31번지의 동북쪽 코너에 위치해 있다. 이 일대가 동북쪽에서 남서쪽으로 경사진 지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정점에 근접해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집들에 가려서 집 밖을 조망하기가 쉽지 않다. 위치의 장점을 건축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이것은 북촌 일대 한옥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전체 단지를 계획할 때 지형 조건을 적절히 이용했다면 훨씬 많은 집들이 더 풍부한 외부 경관을 누릴 수 있었을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울에서 가장 조망이 근사한 지역의 하나면서도 대부분의 집들이 내부 중정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그래서인지 밖을 내다보기 위해 집을 고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집의 높이를 키우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결국 필연적으로 수많은 민원이 발생하여 공사가 중지되기도 한다. 설혹 집이 그대로 완성된다 해도 전체적으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북촌 특유의 집합적 경관을 망가트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31번지 골목에도 이런 집들이 몇몇 있다 일단 이런 ‘나 홀로 한옥’이 들어서면 그 주변의 집들이 경쟁적으로 높아진다.
집은 작지만 공간은 다양하고 풍부하다
들어올린 분합문과 내외부 공간의 흐름
이는 건축적 경관 문제 이전에 사람 사는 동네의 인심이 흉흉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우리는 외부경관에 대한 욕심은 일단 접기로 했다. 사랑채 화장실 창을 통해 파도치는 한옥의 지붕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 집의 평면은 매우 특이했다. 전체적으로 e자형 배치인데 대문간에 들어서면 바로 앞에 사랑채 측벽이 가로막고 서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면벽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집이 사람을 맞이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또한 이 사랑채는 마당을 매우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다. 안채 대청에서 마당을 내려다보면 공간이 협소하여 깊이 있는 시선을 얻어내기 어려운 구조였다.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집의 느낌이 썩 양명하지 못했다. 굳이 말하자면 기(氣)의 흐름이 좋지 않은 집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공간의 흐름과 스케일을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건축적 과제였다.
이 집에는 다락과 그 아래의 부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것은 반가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이전의 형태를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사람의 키 등을 고려하여 높이도 조절해야 했고 부엌은 어차피 각종 집기 등의 위치를 고려해서 현대식으로 꾸밀 것이었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천연염색을 하는 분으로 이 집을 작업실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따라서 부엌은 취사 이외에도 부분적으로 염색과 관련된 작업을 하는 공간으로 마당과의 연계를 다시 고려해야했다. 이렇듯 이 집의 특색은 기존 상황을 해결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관찰로부터 시작한다.
제안
문간채에 달아낸 벽장
건넌방에 달아낸 벽장
실측조사를 마치고 집주인에게 한 가장 큰 제안은 온전히 방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기존 사랑채의 일부를 마루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그것도 벽에 창호를 설치하지 않고 완전히 개방공간으로 만들자는 내용이었다. 연면적 30평이 못되는 대부분의 한옥에서 이런 제안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제안을 통해 몇 가지 건축적인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우선, 내부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의 깊이가 비약적으로 등대된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안채 대칭에 앉아 남쪽의 사랑채를 바라보는 경우 기존 상태에서는 공간의 깊이가 불과 5미터 남짓하다. 하지만 사랑채의 일부를 개방공간으로 만들면 앞집 담장까지 무려 10미터에 이르는 공간이 형성된다. 소위 종심(從心)깊은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대문간에 들어섰을 때 코앞에서 벽과 마주치게 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염색과 관련된 공개행사를 할 때 이 마루를 일종의 강당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마당과 부엌, 사랑채 마루를 연계하여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제안은 부엌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마당을 통해 들어가게 되어 있는 기존 구성에 추가하여 안방에서 작은 계단을 통해서도 부엌에 출입할 우 있도록 했다 물론 안방에서는 다락으로도 올라가야 하므로 이 부분의 구성이 다소 복잡해질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작은 모형을 만들어 집주인에게 제시했다. 한옥의 특성상 일반적인 평면만으로는 공간의 구성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모형은 효과적인 수단이다. 부엌과 관련된 또 다른 제안은 식사공간에 대한 것이다. 한옥의 부엌은 전통적으로 순수하게 부엌 그 자체일 뿐,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식당-부엌(dining kitchen)은 아니다. 식사는 밥상에 올려져 마당을 거쳐 각 방으로 전해진다. 소위 ‘가내배달’이라고 할 만한 것인데 이 과정에서 여자들이 겪었을 고통은 가히 짐작이 된다. 한옥을 미학적 관조 대상이 아닌, 생활공간으로 접근하는 경우 이런 문제를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가장 쉬운 방식은 부엌에 테이블을 놓고 식사공간을 마련하는 것인데 개념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부엌은 이런 배치를 할 만한 공간적 여유가 없다. 그래서 일단 전통 부엌 속에 존재했을 다양한 가능성을 찾아 여러 한옥들을 보러 다녔다.
분합문을 들어올린 대청마루
이 집을 고치면서 즐거웠던 점은 집주인이 이런 나들이에 동행했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집주인 쪽이 더 열심이어서, 우리는 좋다는 한옥을 보러 충청도 일대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의외로 해결방법은 가까운 데서 나왔다. 남산 한옥마을 어떤 부엌 한쪽에 평상 비슷한 것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위에 좌식 탁자를 놓으면 훌륭한 식사공간이 될 수 있다. 상을 접어서 치우면 평상시에는 작업공간으로 쓸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그 하루에는 널찍한 수납공간을 집어넣을 수 있다. 우리식의 다이닝키친으로 입식 식탁을 놓는 것에 비해 장점이 많다. 이것은 공간을 수직적으로 활용하는 탁월한 방식이다. 또한 가능한 한 많은 수납공간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자꾸 벽체가 밖으로 밀리면서 결국 처마 아래 공간이 없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이 집의 기존 상태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런 집들을 길에서 보면 상자에 한옥의 입면을 붙인 것처럼 보인다. 결국 수납공간을 어느 정도 높이에서 끊고 그 이상은 그냥 벽체와 지중구조가 방해받지 않고 만나는 것으로 처리했다. 실내에서 보면 벽체 하부에 벽장이 생기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방식은 이전부터 민가에서 자주 사용되어 왔고, 덕수궁 석어당 후면에도 같은 방식으로 수납공간을 내달아 설치한 것이 있었다. 역시 벽장의 높이가 지붕구조까지는 미치자 않는 것으로 보아 그만큼 처마 아래 공간이 한옥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큰 것을 알 수 있다.
시공자
사랑채에서 경험하는 공간의 중첩
설계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관청 업무도 진행할 무렵 시공자를 선정해야 했다. 처음부터 우리는 우직하고 성실한 전통목수를 찾고 싶었다. 비록 전체 공정을 모두 다룰 수 있는 조직을 갖추고 있지 않다 해도 목수 고유의 일을 잘 하는 것이 중요했다. 주방이나 화장실처럼 현대적으로 디자인해야 하는 부분은 일할 사람만 붙여주고 고강도의 감리를 통해 진행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설계와 시공이 분리된 서양식 현대건축을 하는 사무실이라는 점이 유리하기도 했다. 역시 우리는 철저하게 설계감리자의 입장에서 한옥에 접근하려 했던 셈이다. 이렇게 선정된 분이 박석규 대목이다. 안국동 아름지기 사옥을 고쳤던 분으로 섬세하고 성실한 목수로 업계에 알려져 있었다.
공사전사진,사랑채벽이 가로막고 있다
박대목은 일을 시작하자마자 집 전체를 완전히 휘장막으로 싸버리더니 ‘비가 올 테면 와 봐라’ 하며 의욕을 보였다. 여름에 일을 시작하는 것을 감안하면 상식적으로도 올바른 접근이었다. 이렇게 해서 2004년 늦여름부터 가회동 한 구석에서는 우리가 설계한 한옥 두채의 공사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두 대목은 서로 개성이 뚜렸했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두 집의 구석구석에 그 흔적을 남겼다. 우리 역시 각 집에 대해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으며, 집주인들 또한 그 차이를 기꺼이 인정했다.
다양한 빛의 농담이 만드는 패턴
박대목은 장인으로서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다. 예를 들어 도면에는 그러한 표기가 없지만 자발적인 의사로 모든 기중에 민흘림을 주었다. 한옥은 그래야 맛이 난다는 것이 이유였다. 결과적으로 스스로 일을 어렵게 만들었지만 우리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런 시공자의 순수한 태도는 소위 서양식 현대건축을 하면서 쉽게 경험할 수 없던 것이다. 현장과의 마찰은 지금도 가장 괴로운 문제 중 하나다. 그래서 화가 날 때마다 아예 직접 공사를 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간의 일들을 돌이켜보면 한옥 일을 하는 분들에게 인간적인 면이 훨씬 많은 듯하다. 서세옥 화백의 성북동 한옥을 지은 고 배희안 목수의 글에도 이 같은 목수들의 심성에 대한 언급이 있다. 대목들은 설계자를 대하는 태도도 훨씬 유연했고 본인들이 어떤 부분에서 건물에 기여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연재에서 별도의 글을 통해 이야기하겠지만 대목들의 이런 태도 없이 좋은 한옥을 짓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토털 건축으로서의 한옥
안방의 두가지 수납공간
현대건축가가 한옥 작업을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우리 사무실의 한옥 프로젝트 담당자인 정재학씨에게 한 적이 있다. 한옥과 관련된 디자인적 판단은 우리 일상에서 시작하여 고차원의 건축적 담론에 이르는 광범위한 내용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건축가의 총체적 판단(multilayered decision)을 키우는데 매우 적합하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건축과 인테리어를 아우르는 다양한 상황을 복합적으로 접하는 기회로서 한옥만한 것이 없다. 게다가 우리의 전통건축이니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문화적 주체로서의 자각도 따른다. 아무리 잘나가는 세계적인 건축가라 할지라도 한옥까지 하겠다고 덤벼들지는 않을 것이니 이 일을 할 사람은 결국 우리밖에 없는 것이다.
공사전사진, 안방에서 바라본 다락
흰벽과 창호가 이루는 추상적인 구성
여담이지만 정재학 씨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에게 한옥은 좀 특별한 e가 있는 작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가회동 한옥 프로젝트의 담당자였지만 동시에 다른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일을 하는 태도가 사뭇 달랐다. 한옥 현장에서 이 친구는 상당히 권위가 있다. 무게를 잡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여러 가지를 고려해 좋은 판단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대목들도 그의 의견을 존중했다. 그런데 그런 권위가 양옥 현장에서는 나오기 어려웠다.m 그래서 내가 사수로서의 역할을 훨씬 더 많이 해주어야했다. 물론 개보수와 신축의 차이도 있었겠지만, 그만큼 한옥이 우리에게 체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직접적 체험의 유무와 무관하게 갖가지 경로를 통해 한옥은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통의 힘이다. 지금까지 해 오던 것에 자신이 무언가를 조금씩 더해감으로써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 좋은 의미에서의 전통이란 바로 이런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한옥은 젊은 건축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다.
사랑채 창문을 이용한 간접 조명
한옥에는 소위 건축과 인테리어의 구별이 없다. 한옥의 각 요수들은 서로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분합문은 실내에 설치하는 ‘인테리어’ 요소지만 이것은 전체 집안의 공간적 흐름과 전개, 심지어 프로그램에 대한 대응 방식을 조절하는 매우 건축적인 도구다. 조명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가급적 조명기구가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특히 천장에서 아래로 달아매는 펜던트 타입의 조명은 사용하지 않았다. 가급적 광원을 숨기고 눈에 드러날 때도 아주 단순하고 형태를 주장하지 않는 조명을 사용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조명은 있되 조명기구는 없는 방식으로 접근한 것이다. 이는 한옥이 전통적으로 방바닥에 호롱불 같은 것을 놓고 조명하던, 즉 광원의 위치가 매우 낮았던 집이라는 데도 이유가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하게는 한옥은 집 전체가 조명기구라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는 유리를 전혀 쓰지 않고 빛을 잘 분산시키는 창호지와 비단(전통식 방충망)으로만 청호마감을 했기 때문에 천장에서 내려쏘는 조명보다는 은근하게 비추는 조명이 훨씬 더 건축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31-32번지에서 수납공간의 창호지문 안쪽에 등을 달아 수납공간 전체가 조명기구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방식도 이런 필요에서 개발한 것이다. 이렇듯 한옥은 건축적 조명(architectural lighting)을 실험하기에 좋은 대상이다.
수납, 마루, 다락으로 구성된 공간의 수직적 활용
공사1과정
이집 역시 상량식을 했다. 집주인의 초대로 멀리 대구에서 서예하는 분이 올라왔고, 글씨 쓰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상량식이 진행되었다. 건축가 생활을 하면서 이런 행사에 여러 번 참석해 봤으나 한옥의 상량식만큼 엄숙하면서도 즐거운 행사는 없는 것 같다. 콘크리트 건물의 경우 ‘상량(上樑)’ 이라는 개념 자체의 적용이 어렵고, 철골에는 개념 적용은 가능하지만 평지붕인 경우 같은 높이에 설치되는 수많은 부재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문제가 있다. 물론 어느 경우에도 상량식이라는 이름의 행사를 종종 하기는 하지만 한옥의 상량식만큼 내용과 형식이 딱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이 집은 무려 8개월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었다. 늦여름에 공사가 시작되어 동절기를 만나 결국 일손을 잠시 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한편으로 공사를 맡았던 박석규 대목의 끝없는 일 욕심도 한몫을 했다. 예를 들어 박대목은 ‘깍기’라는 과정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것은 기존 구조를 그대로 세워 놓고 세월의 때가 묻은 목재의 표면을 긁어내는 것을 말한다. 물론 작업의 완성도로 보면 깎기를 하지 않고 부재를 모두 해체한 후에 공장에서 다시 표면을 손보거나 아니면 아예 교체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보수가 아닌 신축으로 간주되는 문제가 있다. 지금은 법이 다소 완화되었지만 대부분 폭이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한옥의 경우 신축 시에 적용되는 도로 폭 확보 등 건축법적 사항을 지키기가 어렵다. 이런 사실을 잘 모르고 구조를 모두 해체했다가 졸지에 낭패를 보는 경우도 보았다.
그래서 결국 아쉽지만 깎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박 대목은 접적으로 문제가 없는 선에서 부재들을 해체하여 재가공 내지는 교체하는 방법으로 일을 진행했다. 그러면 부재가 결구되었던 가죽 같은 것 또한 많이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손이 많이 간다. 우리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고친 집은 고친 흔적이 남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어서 굳이 깎기를 피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박대목이 스스로 완벽주의자가 되겠다는데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아쉬운 점은 민원에 대한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이 집을 공사하면서 특별히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을 한 기억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뒤에서 민원에 빈번히 발생하여 결국 몇 명 부분에서 집의 품위가 많이 손상되었다. 특히 안채 지붕의 동쪽 끝 맞배 처마를 안으로 들여야 했던 것은 두고두고 가슴이 아프다. 어느 정도 여유를 두고 처마가 나와 있어야 하는데 마치 퍼그 강아지 얼굴처럼 납작하게 붙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일이다. 민원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것도 디자인 품질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 건축을 하면서 종종 느끼는 바다. 우리와 시공자, 건축주가 열심히 해결하려고 했으나 결국 역부족이었다. 유감스럽지만 할 수 없다. 마치 축구경기에서 심판의 부당한 결정에 직면한 선수의 입장과도 같다. 잊어버리고 그 다음 할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마무리와 조경
집주인은 워낙 취미가 조경으로, 조경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직접 조경 작업을 하였다. 설계부터 시작하면 거의 일 년에 가까운 상당한 기간이 투자된 집이니 만큼 오랜 기다림에서 오는 기쁨이 더 클 것이다. 우리는 설계자로서 기본적으로 과도한 조경을 하지 않을 것, 그리고 집과 마당의 스케일을 고려할 것 정도를 조언했을 뿐이다. 조경에 관한 부분은 우리가 앞으로 더 배우고 관심 두어야 할 영역이다.
집주인은 그 동안 한옥에 살 경우를 대비해서 이런저런 소품들을 모아두었는데, 마당 한 구석에 땅을 파고 설치한 돌우물은 그러한 예의 하나다. 결국 집은 집주인에 의해 완성되는 것인데, 앞으로도 그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렇게 해서 가회동 31번지의 두 집 공사가 모두 일단락되었다. 이제 그 과정에서 떠올랐던 의문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한옥이 건축가에게 주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후 연재의 내용을 삼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