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가 30주년을 맞았다.
1989년 늦가을의 장벽 붕괴 충격을 생생히 기억하는 나로서는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는 사실이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더불어 함께 먹은 내 나이도. 동유럽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게 만든 것이 그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때만 해도 20대 중반을 지났을 때였는데, 어느덧 쉰을 훌쩍 넘은 나이가 되버렸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대대적인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며 대형 축하행사를 준비해온 독일에서 조차 올해는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공산체제 붕괴는 동유럽 보다는 독일에서 큰 행사였다.
체제이행으로 연금생활자, 공장 노동자, 농장 농부 등 많은 루저를 생산한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붕괴는 시간이 흐를수록
관이 주도하는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이 그 취지에 공감하는 기념일이 되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체제이행 과정에서 동유럽 남성들의 사망율이 12.8% 증가하였고,
체제 이행기에 태어난 아이들의 평균 신장이 그 전이나 후보다 1cm가 작다는 조사도 나왔다.
보통 사람들이 감내해야 하는 이행의 고통은 옴몸으로 전이되 나타날 정도로 큰 것이었다.
반면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통일까지 이룬 독일에서는 훨씬 더 대중적인 축하 분위기가 조성되곤 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공식행사 외에도, 다양한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문화 축제 등이 다양하게 열리곤 했다.
그런데 올해는 그런 분위기를 찾아보기는 힘든 것 같다.
통일 후 2등 시민으로 찬밥신세가 된 동독민들의 집단 분노가 계속 심각해지는 상황 속에서
더 이상 대형 축하행사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벌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같은 독일민을 동서로 나눴던 그 장벽도 붕괴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는데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마찬가지도 같은 유럽인을 동서로 나눴던 차별의 장벽도 사라지길 기대했는데, 여젼히 강건하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30주년은 마냥 축하할 일만은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