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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2월 4일 일요일 맑음.
아침 8시에 숙소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한다. 손님이 많다. 주말이라 손님이 많이 들어왔나 보다. 거기에 식당 음식이 맛있고 풍성하니 더 식당으로 몰려드는 것 같다. 계란 부침과 롤 튀김, 사과와 야채를 먹었다. 즐겁게 모여서 식사를 하니 모두가 밝다.
주일이라 간단하게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 찬송은 나의 갈길 다가도록, 성경은 시편 1편을 함께 읽었다. 핸드폰이 있으니 찾기가 쉽다. 오늘 하루의 일정을 시작한다. 머릿속에 대충 그려놓고 멀라이언 조형물을 중심 목표로 출발했다. 숙소에서부터 걸어간다.
걸어가는 길은 벤쿨렌 스트리트(Bencoolen St)다. 남쪽 방향으로 걸어간다. 아침 공기는 약간 시원하고 차분하다. 걷기 좋다. 거리는 높은 빌딩들로 그늘이 만들어지고 심어진 식물들로 깨끗하다. 거리 끝에는 싱가포르 국립 박물관(National Museum of Singapore) 건물이 버티고 있다. 훤하다.
고전과 현대 건축이 어우러진 이 활기 넘치는 대규모 박물관에는 싱가포르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전에 들어가 도자기 종류를 인상 깊게 본 것이 떠오른다. 박물관 오른쪽에는 감리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스템퍼드 로드로 들어서서 걸어가다 보니 예쁜 정원(First Botanic Garden on Armenian Street)이 나온다.
로스쿨(SMU Yong Pung How School of Law) 건물 앞에는 붉은 조형물이 보인다. 예쁜 정원에서 사진을 찍는다. 여러 명의 관광객들이 와서 정원을 둘러본다. 벽화가 그려진 오래된 건물이 중심을 잡고 있다. 박물관(Peranakan Museum)이다.
1912년에 지어진 역사적인 건물에서 체험형 멀티비전 전시를 통한 페라나칸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단다. 싱가포르를 여행하다보면 많이 만나는 것이 페라나칸이다. 싱가포르에는 대대로 여러 민족이 흘러들어와 사는 만큼, 다양한 문화가 혼합되어 생성된 페라나칸(Peranakan)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왠지 먹을 것과 관련된 단어 같다. 페라나칸(Peranakan)이란 단어는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로 ‘혼혈의 후손’이란 뜻으로 이것은 사전적인 의미이고 페라나칸의 함축적 의미는 ‘로컬 사람과의 사이에서 난 혼혈 후손들’이란 뜻으로 쓰인다.
혼혈은 중국계, 아랍계, 네덜란드계, 인도계, 포르투갈계 등 여러 부류가 있지만, 이 가운데 주로 무역상으로 영국이나 중국과의 중개상을 주로 하는 남방 중국계 이민자들이 가장 큰 집단을 이루므로 사람들이 페라나칸이라고 하는 말을 사용할 때는 주로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는 특히 중국인 남성과 무슬림이 아닌 말레이 여성 사이에서 생겨난 자손들과 그 집안에 국한 시키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아는 싱가포르 초대 수상인 리콴유의 집안이 바로 페라나칸이다. 페라나칸들은 남자는 바바(baba), 여자는 논야(nonya)라고 부른다.
이 말의 유래도 참으로 국제적이다. 바바는 페르시아에서 유래된 단어로 손자란 뜻이고 논야는 이탈리아어로 할머니란 뜻의 nona란 단어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페라나칸 식 주택은 동서양의 양식이 절충 혼합되어 있다.
윗부분에 아칸서스 잎으로 묶은 듯한 모양의 코린트 양식의 기둥, 지중해 스타일의 창문, 병렬로 배치된 셔터, 중국식 유약 처리된 화려한 타일 공예, 중국식 심볼을 넣은 미장이 대표적인 페라나칸 주택 스타일의 특징이다.
거기에 열대 지역에 맞게 바람이 잘 통하도록 만든 울타리로 된 대문도 빼놓을 수 없다. 싱가포르에서 페라나칸의 건축 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는 Emerald Hill, Tanjong Pargar, Koon Seng Road, Joo Chiat Road, East Coast Road 등에 있는 숍 하우스 등이 있다.
거의 1940년대에서 60년대 사이에 지어진 유럽의 아르데코 스타일로 파스텔 계열의 색상으로 달콤함을 안겨주는 건축물들로 보통 2층으로 된 유닛이 옆으로 연결된 구조로 예전에는 1층에 건어물상이나 공구상 등이 있고 2층은 주거용으로 사용했다.
커바야(kebaya)는 페라나칸 여성의 대표 의상이다. 화려한 색상의 얇은 실크나 면 혹은 벨벳 소재에 화려한 자수를 놓아 만든 블라우스 형태의 상의로 원래 아랍 지역에서 유래된 것으로 포르투갈 사람들에 의해 동남아시아에 소개된 후 현지에서 변형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현대식으로 개량된 스타일로는 재킷 같은 재단의 인도네시아 가루다 항공 여승무원 유니폼과 바틱 패턴이 화려한 싱가포르 항공과 말레이시아 항공의 여승무원 유니폼이 대표적이다.
현재 커바야는 말레이사아와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자바와 발리지역 그리고 브루나이, 미얀마, 태국 남부 지역 등에서 전통 복장으로 널리 입는다. 페라나칸 요리는 중국과 말레이는 물론 다른 여러 나라에서 영향을 받은 것을 음식에 조화롭게 버무린 것이 특징이다.
익히 보았던 익소라(ixora)라는 꽃나무 이름을 처음 확인했다. 붉은 꽃과 노란 꽃을 탐스럽게 가지고 있는 나무다. 아르메니안 스트리트라는 이름을 가진 정원길이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 된 교회와 박물관이 있는 거리다.
성경의 집(The Bible House)이라는 현대 식 교회 건물이 보인다. 어린이 박물관(Children's Museum) 건물도 나온다. 페라나칸 건축 양식이다. 예쁜 유치원 같이 생겼다. 유명한 소방서 및 박물관(Central Fire Station)도 눈에 들어온다.
건물들이 장난감 같이 예쁘다. 등 뒤로는 Armenian Apostolic Church of St. Gregory,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가 있다. 길을 건너 걷다보니 세인트 앤드류 성당(St Andrew's Cathedral)이 나온다. 낯익은 모습이다.
거대한 성당으로, 초기 고딕 양식으로 지은 성지를 둘러볼 수 있다. 커다란 잔디밭에는 고목나무가 있다. 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붉은색 하트모양의 열매가 너무 신기하다. 전에 주워서 몇 개 가져온 적이 있다. 잔디밭을 살펴보니 여전히 붉은 열매가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
교회를 들어가 구경한다. 깨끗하고 시원해 보이는 성당이다. 미국 워싱턴의 의사당 같이 생긴 건물이 나타난다. 미술관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National Gallery Singapore)다. 꼭 중심 시청사 건물로 착각을 했다. 싱가포르의 역사와 미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겉모양만 봐도 감동이다. 더해진 건축물이 특이하다. 미술관 앞에는 붉은색 하트 모양의 조형물이 반짝인다. 넓은 초록색 육상 경기장이 펼쳐진다. 역사적으로 많은 식민지 시대 행사와 전국적인 행사를 치른 경기장이다. 럭비 꿈나무 청소년들이 럭비를 배우고 있다.
그 뒤로 고층 빌딩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북쪽으로는 둥근 고층 빌딩 한 채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쇼핑몰 래플스 시티와 5성급 호텔 스위소텔 스템포드이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공원(Esplanade Park)로 들어섰다.
1943년에 지은 오랜 역사의 도심 공원으로 많은 국립 기념물과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다. 인도의 자유를 위해 싸운 싱가포르 주둔 인도국군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도 있다. 퀸 엘리자베스 워크 근처에 세워져 있다. 임보생 기념비도 있다.
1944년 일제 강점기 중 사망한 장군이다. 고목나무 그늘에는 쉬고 있는 주민들이 보인다. 멀리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이 보인다. 우리는 빅토리아 콘서트 홀(Victoria Concert Hall) 앞에 섰다. 시계탑이 중앙에 있는 오랜된 건물이다.
싱가포르 교향악단의 주 공연장으로 사용되는 복원된 빅토리아 시대의 건물이다. 스템포드 래플즈 경의 동상(Original Statue of Sir Stamford Raffles)이 있다. 동상은 래플즈 상륙지와 엠프레스 플레이스에 각각 하나씩 2개의 동상이 있다.
현대 싱가포르의 창시자다. 1819년에 싱가포르를 발견하고 상업항구로 개항했다. 관광객과 현지 주민 모두의 사진 속에 자주 등장하는 동상이다. 유명한 영국인 조각가이자 시인인 토마스 울너(Thomas Woolner)가 만든 이 동상은 1887년 6월 27일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동상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오랑 베시(말레이어로 ‘강철 인간’)라는 별명이 붙었다. 또 하나는 첫 번째 동상이 1919년에 원래의 위치인 파당(Padang)에서 옮겨왔단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군이 청동을 사용하기 위해 동상을 녹이려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늘날 이 동상은 국가적인 아이콘으로 현대 싱가포르를 상징하고 있다. 하얀색 동상은 기념품으로도 인기가 있다. 다리로 간다. 싱가포르 강에는 두 개의 다리가 있다. 먼저 앤더슨 브리지(Anderson Bridge)다.
1910년에 지어진 보행자 다리로 흰색의 금속 재질이 인상적이며 강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두 개가 나란히 있는 쌍다리다. 강을 따라 남쪽으로 걸어가니 조각상(From Chettiars To Financiers)이 보인다.
싱가포르 산업이 어떻게 70년대부터 현재까지 발전했는지의 역사가 보이는 조각상들이다. 이 조각 앙상블은 싱가포르의 번영에 많은 공헌을 한 금융가들을 기리는 것이란다. 3명의 캐릭터는 초기 및 현대 금융가를 대표한다.
인도인 체티어(대금업자), 은행 어음교환소를 관리했던 중국인 사무원, 현대적인 복장을 한 여성 금융가. 멋진 조각품이며 앤더슨 다리 가까이에 있다. 이어지는 조각상(A Great Emporium)이다.
이 조각 앙상블은 당시 싱가포르 부두에서 일했던 중국과 인도 노동자를 기리는 것이다. 조각품은 상품을 내리고 무게를 재는 장면을 묘사했다. 유럽 신사, 저명한 상인 알렉산더 로리 존스턴(Alexander Laurie Johnston)이 작업을 감독하고 있다.
그 옆의 작품(The River Merchants)은 리버 워크에서 만나는 조각품이다. 노동자들이 소달구지를 타고 물건을 옮기는 항구의 전형적인 하루 장면을 묘사한 동상이다. 싱가포르의 다민족 및 문화 사회를 잘 보여준다. 동상들이 친숙하고 재미있다.
강 건너 건물은 더 풀러턴 호텔(The Fullerton Hotel Singapore)이다. 1928년에 세워진 옛 우체국 건물에 자리한 고급 호텔이다. 싱가포르 국기가 많이 걸려있다. 카벤나프 다리(Cavenagh Bridge) 앞에 섰다. 1870년에 지어진 이 현수교는 보행자와 자전거가 지나갈 수 있다.
아름다운 전망을 자랑한다. 다리 옆에서 아이스크림 상인을 만났다. 길거리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입에 물었다. 바닐라 망고 등 종류도 많고 가격은 1.4달러(1400원)다. 다른 곳은 2달러씩인데 여기는 저렴했다. 벽돌 모양의 덩리에서 잘라준다.
싱가포르에 오면 꼭 먹어보라는 아이스크림이다. 잠시 그늘에 쉬면서 여유를 즐겨본다. 강뚝에 만들어진 조각상(The First Generation)을 발견했다. 독학으로 조각가가 된 Chong Fah Cheong은 아마도 이 기발한 조각품인 First Generation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싱가포르 강에 뛰어든 5명의 소년은 과거 강을 둘러싼 일상의 밝은 면을 보여준다. 이 강은 싱가포르의 역사와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강둑에 사는 아이들은 오염에도 불구하고 강에서 수영을 즐기곤 했다.
이 관행은 1983년 Clean Rivers 프로젝트가 완료되면서 중단되었으며, 가족, 행상인 및 범선이 이 지역에서 옮겨졌다. 소년들이 발가벗고 뛰어내리는 모습이 생동감있다. 조지프 콘래드(Joseph Conrad 1857~1924)동상을 만났다.
본명은 유제프 테오도르 콘라트 코제니오프스키(Józef Teodor Konrad Korzeniowski)다.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을 비롯 《로드 짐(Lord Jim)》,《비밀 요원(The Secret Agent)》의 작가로 유명한 조지프 콘래드는 영국 국적을 가지고 영국인으로서 영어로 소설을 발표한 폴란드인 소설가였다.
그는 소설을 무조건 영어로만 출간하고 폴란드어로는 소설을 집필하지 않았으나, 폴란드인의 정체성은 매우 강하게 유지하며 평생 고향 폴란드의 가족, 지인들과 교류를 하고 폴란드의 정세에 대해 많은 발언을 하며 살았다.
선원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배를 무대로 하는 작품을 많이 써서 해양소설가로 이름이 높다. 16년간 영국 상선에서 일했는데, 2등항해사 자격시험에 합격했고 1881년 4월에는 425t급 바크 범선 '팔레스타인 호'를 탔다.
이것은 그의 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 되었는데 처음으로 극동지방을 여행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험난했던 이 항해가 후에 작품의 소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강풍에 시달리고 갑자기 기선과 충돌하고, 상당수 승무원들이 하선한 뒤에도 팔레스타인 호는 멀리 동인도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이때 배에 싣고 가던 석탄에 불이 붙어 나머지 승무원들도 구명보트를 타야만 했다.
갑판 없는 작은 배를 타고 13시간가량 항해한 끝에 콘래드는 극동, 즉 수마트라 앞바다의 한 섬에 처음으로 발을 디디게 되었다. 그의 동상이 왜 여기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강변길을 간다. 배가 다리 밑으로 유유히 간다. 빌딩이 숲이다. 다리를 건너간다.
멀라이언 파크에 들어섰다. 멀라이언 파크는 싱가포르의 유명한 랜드마크이자 주요 관광 명소로, 중심업무지구(CBD) 근처의 싱가포르 원 풀러턴에 위치하고 있다.
멀라이언은 사자의 머리와 물고기의 몸을 가진 신화 속의 동물로, 싱가포르의 마스코트이자 국가적 의인화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두 개의 머라이언 동상이 공원에 있다.
원래 멀라이언 구조물은 높이가 8.6m이며 입에서 물을 뿜어낸다. 그 후 원래 동상 근처에 위치한 머라이언 새끼가 합류했으며 높이가 2m에 불과하다.
원래 멀라이언 파크는 싱가포르 관광청(STB)이 1964년 싱가포르 강 어귀 근처에 싱가포르의 상징으로 처음 설계했다. 1972년 9월 15일, 이 공원은 당시 싱가포르 총리였던 리콴유(Lee Kuan Yew)가 주관하는 동상 설치 식에서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원래 머라이언 동상은 싱가포르 강 어귀에 서 있었다. 싱가포르의 조각가인 고(故) 림낭 셍(Lim Nang Seng과 그의 8명의 자녀가 제작했다. 조각품은 높이 8.6m, 무게 70톤이다. 분출하는 시냇물이 있는 이 거대한 동상은 Stanley Mok 에 의해 건설되었다.
작은 멀라이언을 구경하고 새로 만들어진 큰 멀라이언을 구경한다. 사람들이 엄청 많다. 재미있는 모습으로 사진에 담는다. 우리도 물을 입에 넣는 모습으로 사진을 담았다.
주변을 살펴보며 감상을 한다. 탁 트인 항구와 세워진 빌딩들로 짜임새가 있다. 날씨는 엄청 덥다. 그늘을 찾아서 걸어가다가 스타벅스 커피 점에 들어갔다.
시원한 실내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쉰다. 얼음이 들어간 냉커피가 환상적인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