梧桐秋夜 달이 밝아 !!!
- 진 경 백 -
어제 직장에서는 인사이동으로 일과 후 직원들끼리 회식을 마련하여
돌려가며 마신 술잔에는 술기운으로 가득 차고 넘친다.
들이키는
술 한잔에 피로를 씻고
술 두 잔에 빈 가슴을 적시며
술 석 잔에 모든 시름 잊듯이
술 넉 잔에 만사가 내 세상이 된다.
비운 소주 한 병에 갈증을 느끼며
입 다심으로 마신 500cc 호프 한잔으로 기분은 딱 ! 이였다.
2~3차를 만류하고 돌아서 오던 길은 흔들리는 걸음에 좁아 보였고
싸늘한 밤공기 가득한 청명한 하늘높이 둥그런 보름달은
두 눈에 와 박힌 채 발길을 멈추게 한다.
가슴속을 후리듯이 스산한 가을바람에 마음을 적시며
오늘따라 노래방이라도 가서 마음껏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적막함에 가득한 이 밤거리가 홀로 서있는 듯 외로웠고
흘러나오는 노래 한가락에 오동추야는 달이 밝았다.
잊어버린 옛 일들이 불연 듯 떠오르는 이 노래는
옛 추억의 소야곡이 된 듯이 기억을 더듬는다.
아마 초등학교 3~4학년쯤 되었을까 ...
가을걷이를 끝내놓고 찬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날 하루 !
안의 읍내에 장이 서던 날인 듯싶다.
땅거미 짙은 어둠이 내리고 늦은 저녁밥을 가족들이 둘려 앉아 먹는
대청마루 밥 상위에 달빛이 어리면 처마 밑에 걸어둔 백열전구 불빛이
무색하던 밤 이였다.
늦도록 장에 가셨던 아버지가 돌아오질 않아서 서둘러 나서는
어머니를 따라 치마자락을 붙잡고 동구밖까지 마실을 나섰다.
길가 스치는 풀 섶에 내린 찬이슬로 발목이 젖은 채 얼마쯤 갔을까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가 어림짐작으로 아버지 목소리임을 감지한
어머니의 발걸음은 더욱 더 가속도가 붙듯이 내 딛는다.
추수가 끝나고 쌀말이나 지고 가셔서 5일 장에 내다 파시고
막걸리 두 대박 들이켜셨는지 ...
볼그레한 얼굴에 흰 두루마기를 펄럭이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오동동 술타령이 오동동이요 ~~
온 들녘이 떠나가도록 부르며 오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 그때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던 오동추야는 우리아버지 18번곡인지
아니 18번 곡이 아니라 아는 노래라고는 그 노래뿐이던 것 같았다.
아무튼, 그 어린 나이에 내가 들었어도 무진장 음치이셨던 아버지의 노랫소리가
그날따라 그 노랫소리가 어린 나에게 그렇게 구성지게 들렸는지 모른다.
아마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노래 소리를 들었다면
눈물을 찔끔 찔끔 흘리며 박장대소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만,
어머니는 아버지를 부축하여 오시다가 그 노래를 듣다 못 했던지
빌어먹을 그놈에 오동추야는 아따 그만 좀 하소 !!
동네사람들 부끄럽게 ...
그렇게 핀잔을 줄 때마다 아버지는 허허허 너털웃음으로 일관하며 듣기 안 좋나 ...
그럼 할망구 니가 한마디 해봐라
어머니는 억양이 좀 높아진 듯이 “나는 못하니까 입 다물고 있 째”라며
못 마땅한 투로 반박을 하신다.
어무이 놔두라 ~~ 아부지 오늘은 노래 쪼끔에 잘한다.
근데 아부지 ! 오동추야가 뭔데요 ?
오동추야가 달이 밝아서 오동추야지 머긴 뭣 꼬 ...
헤~~ 아부지가 그것도 모르나 ...
이 넘어 자슥아 너는 아나 ~~
내도 모르지만 아부지 나이가 되면 다 안다.
그렇게 부자지간에 주고받는 대화로 달빛이 밝은 가을밤길을 걸어오던 날이
엊그제만 같았는데 ...
유수 같은 지난 세월과 또 그 길목의 이 거리에 서 서
나는 오늘 그 날을 회상이라도 하듯이 오동추야의 달을 한없이 바라다보며
그 옛날 부친이 즐겨 부르시던 노래를 따라 읊조린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오동동 술타령이 오동동이요 ~ ~ ~
따라 부르면 부를수록 흥과 멋이 돋고 운치가 있는 곡이요
이 계절에 걸 맞는 노랫소리인 듯싶어
“오동추야 달이 밝아”를 음미해본다.
아마도 오동추야는 오동나무로 만든 거문고를 치며 뜯는 소리가 나는 가을밤이요.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는 청풍명월의 밝은 달빛이 좋아
오동나무 거문고가 동 동 동 소리를 낸다는 노래가사 인듯 싶고
깊어 가는 달빛 어린 가을밤에
부모님께서 즐겨 부르시던 노랫소리의 의미를 담아
잠시나마 추억 속으로 고향달빛을 쫓아 달려 보았던 그 날은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 밤하늘 가득였다.
2001.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