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주의 미술산책(15)] 한 그루 나무 같은 미술관, 이누지마 세이렌쇼미술관
강금주 이듬갤러리 관장
이미지 확대보기이누지마의 세이렌쇼(精練所)미술관으로 가는 길
나오시마에서 페리를 타고 40여분쯤 달리면 섬 이누지마(犬島)가 나온다. 이누지마는 개 모양을 닮은 커다란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나오시마와 함께 세토우치해에 위치한 이누지마는 2-3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는 작은 섬이다. 이곳에는 1909년부터 조업을 시작했던 구리 정련소가 세워져 구리를 만들어내며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던 곳이었지만 1920년대 이후 구리 가격이 폭락하면서 공장은 폐쇄되고 많은 노동자들은 이누지마를 떠났다. 버려진 섬 이누지마. 하지만 이후 이 가련한 섬의 아름다움에 첫눈에 반해 이곳을 미술의 섬으로 바꾼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일본의 현대미술가 야나기 유키노리(柳幸典)이다.
그는 1992년 나오시마의 베네세하우스 개인전에 초대받아 나오시마를 포함한 세토우치해의 섬들을 여행했었다. 현대미술가인 그는 당시 뉴욕에서 작업을 하며 세속화되고 자본화되는 현대미술에 회의를 품었고 우연히 이누지마의 구리 제련소를 보자마자 새로운 예술적 감흥을 받았다. 야나기 유키노리는 아름다운 이누지마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있는 구리 제련소, 그리고 20세기 일본 근대화의 모순과 슬픈 역사를 머금은 폐허가 된 이누지마의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인생에서 역작이라 할 수 있을만한 진정한 창작활동을 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이후 그는 이곳에 산업폐기장이 들어설 것이라는 계획을 듣고 후쿠타케 소이치로(福武 總一郎) 회장에게 이누지마를 예술의 섬으로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로 구리 정련소를 이용한 미술관 프로젝트를 제시하게 된다.
이미지 확대보기공기를 순환시키는 굴뚝과 유리벽
이미지 확대보기이누지마의 세이렌쇼(精練所)미술관으로 가는 길
이누지마의 세이렌쇼(精練所)미술관은 야나기 유키노리와 건축가 산부이치 히로시(三分一博志)의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로 2008년 완공되었다. 세이렌쇼미술관의 진정한 가치는 기존의 것을 부수고 그곳에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원래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한 채 재생되었다는 데 있다. 산부이치 히로시는 인위적인 냉난방 시설과 조명을 배제하며 자연 에너지만을 사용하고 공기와 자연광이 자연스럽게 통과하는 미술관을 만들었다. 이누지마 곳곳에 남아있는, 구리를 제련하고 남은 재료로 만든 벽돌을 최대한 이용하여 건축물을 만들고 화장실의 배설물은 미술관 밖의 식물에게 공급되는 처리 방식을 갖추었다. 산부이치 히로시는 한 인터뷰에서 그의 건축이 ‘지구에 파묻히는 식물과도 같은 것’, ‘호흡하는 건축’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양과 바람을 그대로 머금으며 숨 쉬는 세이렌쇼미술관은 그야말로 자연의 일부와 같은 예술 공간이다.
이미지 확대보기이누지마의 세이렌쇼(精練所)미술관의 입구
이미지 확대보기배에서 보이는 이누지마 풍경
이 호흡하는 미술관 곳곳에 야나기 유키노리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미술관 입구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용광로 이미지의 작품은 정련소와 함께 변화한 이누지마의 정체성과 역사, 나아가 근대 일본 산업화의 모순과 슬픔을 담아내고 있는 듯 보인다. 그의 작품 중 이누지마에서 거주했던 일본의 유명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에게 바치는 의미로 만들어진 것들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후쿠타케 회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누지마의 미시마 유키오의 집을 야나기 유키노리가 예술 작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흔쾌히 허락했고 그는 집의 자재들을 이용해 미술관 곳곳에 설치작품을 만들었다. 어디까지가 건축이고 어디까지가 작품인지 헷갈릴 정도로 건축과 유키노리의 작품은 서로 어우러져 독특한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이누지마 풍경
이미지 확대보기구리 정련소 흔적
세이렌쇼미술관에서 나오면 그대로 남아있는 구리제련소의 흔적을 보며 걸을 수 있다. 갈색의 벽돌이 미로처럼 쌓여 있고 그 진한 색깔의 벽돌담을 녹색 넝쿨들이 휘감고 있다. 몇몇 굴뚝들은 이미 넝쿨에 뒤덮여 있어 지나간 세월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다. 이누지마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함께 20세기 초 일본 산업화의 흔적과 현대 미술과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시도와 가능성을 볼 수 있는 흥미롭고 가치 있는 곳이다. 세이렌쇼미술관은 이누지마에 남겨진 것들을 그대로 이용하고 전기를 이용하지 않는 자연친화적인 건축물에 아티스트 야나기 유키노리의 예술적 영혼이 더해져 마치 스스로 숨 쉬는 한 그루 나무 같은 미술관이 되었다.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미술은 이렇듯 그 자체로 생활의 일부가 됨으로써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산부이치 히로시의 말처럼 그냥 그렇게 ‘지구에 파묻히는 식물과도 같은’ 고요한 멋이 더 깊은 울림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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