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살고 힘들고 더군다나 무장공비도 침투했었고 베트남전으로 청년들은 해외로 갔고 주한미군들이 주둔하던 기지촌의 밤무대에도 변화가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TV방송이 활성화되기전이었고 많은 가수와 연주자들은 극장이나 술집등에서 공연을 했는데 전국 각지의 기지촌은 다양한 가수와 연주자들의 돈줄이었고 무대였으며 미국의 대중음악과 문화를 받아들이는 통로였다.
그룹사운드란 말은 일본을 통해서 건너온 말이고 그전에는 보컬(보칼)그룹: 여럿이 노래를 하는 팀 그리고 캄보밴드(연주를 하는 팀) 라는 이름이 쓰였는데 직접연주하며 노래 화음을 넣는 형태의 팀이 만들어 졌고 애드포나 키보이스나 히식스 같은 팀이 생기면서 이들은 서울의 클럽이나 시민회관에서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의 관심을 받으며 연주를 했지만 서울이 아닌 지방의 기지촌 파주나 왜관 군산등지를 바닦부터 경험하며 주로 미군들이 출입하는 업소를 전전하며 바닥부터 치고 올라온 팀이 있었다.
바로 라스트찬스와 데블스로 특히 데블스는 록그룹이 아닌 소울이란 음악을 하는 그룹으로 처음엔 이상한 연주? 로 반응이 뜸했으나 곧이어 서울의 밤무대를 광란의 도가니로 집어 넣게 된다.
데블스가 소울이라는 흑인음악을 하게 된데에는 기지촌의 분위기에서 영향을 받은 듯하고 자라온 환경 또한 어둡고 힘든 그리고 전쟁의 영향에서 피해 갈 수 없었던 당시 상황을 대변하는 것 같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장발도 규제를 했고 이들은 심야에 나이트 클럽의 문을 걸어 놓고 연주를 했으며 유신체제 엄혹한 시대에도 자유를 갈구하는 음악을 선보였다.
그리고 '고고'를 유행시켜 관객들은 의자에 앉아 점잖게 구경만 하는게 아니라 춤추고 소리 지르고 통행이 금지된 시간 업소문을 잠그고 새벽이 다 되도록 놀았으니 당시 정부는 퇴폐풍조를 막는다며 이들에 대한 규제에 나서게 되며 활동을 접거나 해체되어 고난의 길을 겪기도 했다.
음반을 냈으나 당시의 음반판매의 수익은 음반회사가 챙겼고 이들에게 음반이란 유명해지는 수단이며 연주 활동을 한 흔적 정도로 보는 편이 더 옳았을 것이다.
석유파동으로 인해 재고로 쌓인 판을 다시 녹여 판을 만들었고 설상가상으로 금지곡 판정을 받은 음반들이 많았고 밤새워 공연을 하는 것을 규제했고 특히 대마초와 연류된 가수들이 구속되며 활동을 접는 경우도 있었다.
사진에 나오는 음반은 2003년 세월이 지나 다시 1000여장을 비트볼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것이며 일명 '철창음반'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70년대에 나온 건 극소수라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 음반은 우연히 2000년대 초중반 서울 아현동 음반가게를 지나다가 내 또래의 사장이 권해서 샀고 그냥 보관하기 보다는 뜯어서 들었다.
특히 ' 그리운 건 너'의 경우 어린시절 라디오를 통해 들었던 노래로 귀에 쏙쏙 들어왔고 세월이 지나 콘서트 7080에서 '김명길 '님과 '박 문 '님이 30년 세월을 뛰어 넘어 연주를 했는데 벌써 10여년 넘었고 그때도 김명길 님은 밤무대에서 활동을 했었으며 낙원상가 상인들도 '명길이 형'하면서 친숙함을 과시하는 걸 다큐프로에서 본적이 있다.
데블스라는 밴드는 기타와 베이스 드럼 이외에도 관악기가 추가되고 특정한 사람만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돌아 가면서 노래도 하고 어떤 특정 악기가 앞장을 서는 게 아닌 상호 조화를 강조하고 볼거리를 제공했다고 한다.
훗날 노만기획이라는데 소속되어 연주활동을 계속하고 이은하의 유명한 노래 '밤차'를 연주해 주기도 했었고 강변가요제의 연주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이 재반 LP가 나올 때 쯤 조승우가 주연을 한 영화 '고고70'이라는 영화에는 70년대 데블스의 모습이 재현이 되어 볼만했다.
나라의 근대화와 함께 단합을 강조할 당시 자신의 음악을 하며 시련을 겪었던 이들의 분위기를 음반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