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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기정 심리교육 디오라마 원문보기 글쓴이: 문기정
지셴린 (季羨林) 어록 다시 읽기
지셴린은1911년생으로 중국인들로부터 ‘나라의 스승’이란 칭호를 받을 정도로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원로학자이다.(2009년 입적)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 살 때 숙부 밑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고등학생 때 이미 여러 단편소설을 발표하고 번역활동을 할 정도로 학문에 관심이 많았다. 칭화대 서양문학부를 졸업하고 산동성 지난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지내다가,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인도 고대 언어를 공부하고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에서 10년간 유학하면서 펴낸 다수의 논문은 그 당시 서양 학계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45년 귀국 후엔 후스의 추천으로 베이징대에 부임해 동방학부를 처음으로 개설했고 1978년에는 부총장을 지냈다. 또한 제2, 4, 5회 전국정치협상위원, 제6회 전국인민대표회의 상임위원으로 선출되었고, 중국사회과학원 남아시아 연구소 소장, 중국외국문학회장, 중국어언학회장, 작가협회 이사 등을 맡으며 수많은 단체를 이끌었다. 학문 연구 분야는 고대 언어, 중국불교사, 중국인도문화교류사, 비교문학, 문예이론, 동방문화 등으로 다양하다. 지은 저서로는 《인도고대언어논문집》 《라마야나 연구》 《대당서역기교주》 《천축심영》 《낭윤집》 등 500종이 넘으며, 중국도서상, 국가도서상, 루쉰문학상, 파드마 부샨 훈장 등을 수여받았다.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학내정치투쟁에 휘말려 린치, 강제 노동, 지식인을 가둬놓는 외양간을 뜻하는 ‘우붕’의 수감생활 등 온갖 고초를 겪었는데, 그 와중에도 방대한 양의 인도 고대 서사시 《라마야나》를 번역하기에 이른다. 그는 문혁이 종결된 지 16년이 지나서야 최초로 그 누구도 쓸 엄두를 못낸 이야기를 《우붕잡억》에 담아 펴냈다. 이 책에서는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이데올로기와 집단적 광기의 부당성을 고발하는 한편, 자신을 핍박한 이들에 대한 복수심을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승화시킨 지셴린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중국인들 사이엔 지셴린을 공경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원자바오 총리, 리자오싱 전 외교부장 등은 제자로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를 자주 병문안하고 있으며,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총감독 장이머우는 자문을 구하기 위해 방문하기도 했다. 중국 대표 신문 <런민르바오> 인터넷 사이트는 지셴린의 생일 축하 기념으로 그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특집 코너를 신설했을 정도다. 지셴린의 고향 산둥성 린칭시에는 지셴린 자료관이 건립되어 있다.
98세 때 나이와 명성을 감안하면 가만히 여생을 즐길 법도 했지만, 그는 노환과 지병으로 병상에 있으면서도 날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집필하였다. 학문에 대한 그의 한결같은 열정은 2002년 SBS 다큐 <세계의 명문대학 - 다이하드, 죽도록 공부하기 편>에서도 다뤄진 바 있다. 마지막 멘트는 다음과 같았다. “거기 한 평생 오직 학문에만 정진해온 하나의 전설이 숨쉬고 있었다. 세상에 참으로 많은 공부가 있지만 진정한 가치, 진정한 경쟁력을 가진 공부는 머리가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좋아서 하는 공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 지나간다 (지셴린의 인생에세이)
기뻐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마라
다시는 혼자서만 깊이 생각하지 마라
나를 가두지 말고 차츰차츰 나아가라
지나가는 생의 옷자락을 놔줘라
피할 수 없는 것을 대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피하지 않고 편안하게 대하는 것이다. 아니, 한 발 더 나아가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면 위험이 훨씬 줄어들기도 한다. … 가고 싶지 않은 길이지만 가야만 한다면 울어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오히려 웃으며 가는 것이 자신에게 더 좋지 않겠는가.
(웃으며 가다 18쪽)
“짧은 한순간도 가볍게 여기지 마라”는 주자의 말은 아흔을 넘긴 나 같은 늙은이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말이다.
(시계의 초침소리 24쪽)
난 “나를 버리고 타인만 위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에 이 말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추구하는 바가 너무 높으면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없다.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 51쪽)
내가 지금 나 자신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은 ‘현재의 생활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가?’이다. 지금의 ‘현재’도 몇 년이 지나면 ‘옛날’이 될 것이니, 그때 가서 또 지금을 그리워하지 않을까?
인연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이 사람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사뭇 다르다. 인연을 믿는 사람은 성공해도 오만하지 않고, 실패해도 실의에 빠지지 않으며, 이겨도 승리감에 도취되지 않고, 져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
(내일이면 또 오늘을 그리워하리 61~62쪽)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바탕 치열한 싸움이다. 그 싸움에서 친구가 없다면 고독하게 홀로 싸우다 패배할 것이고, 친구가 있다면 다수의 힘으로 승리할 것이다.
(친구가 함께한다면 81쪽)
스스로 늙었음을 인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차츰차츰’이다. … 자신이 늙었음을 차츰차츰 인식해간다면 인생이 쓰고 또 써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 아님을 깨닫는 동시에,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자연히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서둘러 끝마치게 될 것이다.
(늙어간다는 것 178쪽)
사람이 나이가 들면 지기 싫은 것도 마음뿐이요, 강하고 싶어도 힘이 없으니 저절로 자괴감이 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박력 있고 용감했던 젊은 시절을 자랑하며 자기 위안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이런 것은 남이 나서서 깨우쳐주거나 고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0’부터 시작하기 206쪽)
아흔다섯 번째 생일을 맞은 오늘, 내 나이에 한 살이 보태졌다. 나는 또 한 해를 죽은 것이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나는 또 다시 오늘을 산다.
(다시 오늘을 산다 270쪽)
지셴린의 ‘인생’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사는가? 글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뿐만 아니라 이 세상 중생 가운데 이 물음에 명쾌하게 답을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동서고금의 철학자들 가운데 인생에 관해 이야기한 사람은 많다. 무엇이 인생인가? 어떤 인생이 가치 있는가? 다양한 문제를 두고 저마다 의견을 늘어놓았다. 정말이지 눈과 귀가 다 어지러울 지경이다. 그러나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가? 그들 자신도 이야기할수록 더 모호해졌다. 나도 잘 모르겠거늘 그들이라고 다들 바 있겠는가!
철학자의 철학은 지혜의 정수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철학이 나 같은 평범한 노인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디 나의 불경을 용서하기 바란다. 위대한 철학자들이나 그들의 철학은 저 신성한 지혜의 전당에서나 찬란하게 빛나게 하자!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배부르고 걱정이 없어야 이따금 인생 문제를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완벽한 인생을 추구한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100퍼센트 만족할 만한 완벽한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29쪽)
일이 잘 풀릴 때는 불행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음을 생각해서 지나치게 기뻐하지 말라. 불행이 찾아왔을 때는 행운이 오고 있음을 생각해서 지나치게 낙심하지 말라.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 것이 바로 장수의 비결이다. (35쪽)
인간은 세상을 살면서 반드시 세 가지 관계를 잘 살펴야 한다. 첫째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이고, 둘째는 가족관계를 포함한 인간관게이며, 셋째는 생각과 감정 사이의 갈등고 균형의 관계이다. 이 세 가지 관계를 잘 관리한다면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고달픈 인생살이가 될 것이다. (39쪽)
내가 독일에 유학할 때는 파시즘이 한창 맹위를 떨치던 시절이었다. 히틀러를 맹목적으로 숭상하던 사람들이 자주 하던 말이 있는데 “말했으면 반드시 행동해라.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바로 파시즘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반드시 심사숙고해야 한다 .실행 가능성을 먼저 고려해야 하고 다양한 상황을 고려할수록 좋다. 좋은 것과 나쁜 것 두 가지를 곰곰이 생각하고 비교한 다음에 결정을 내리고, 일단 결정을 했으면 즉시 행동으로 옮긴다. (80쪽)
인류가 살아온 긴 역사 속에서 한 세대는 거대한 사슬의 고리 하나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릴레이 경주처럼 앞세대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인생의 트랙을 한 바퀴 돈 다음 뒷세대에 바통을 넘겨준다. 이것이 인생이다. 인생의 가치는 성실히 그리고 책임감 있게 자신이 맡은 임무를 다하는 데 있다. 이 여정을 무사히 마치면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진다. 고대 인도인은 인생을 네 단계로 나누었다고 하는데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104쪽)
“늙은 천리마는 마구간에 누웠어도 마음은 천 리를 달리고, 열사는 말년이 되어도 비장한 웅지 꺾이지 않네.” 이런 구절이 노인들을 분발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노인을 위로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진실이라 믿으면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이 들면 식견도 넓어지고 다양한 경험과 풍부한 교훈을 갖게 되는데 그 중 유용한 것도 적지 않다. 늙은 티를 내며 거만하게 굴지만 않는다면 인류사회는 노인를 필요로 할 것이다. (213쪽)
지셴린의 애송 시: 歸去來辭(귀거래사) 陶淵明(도연명)
歸去來兮 (귀거래혜)
자,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지금까지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奚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어찌 슬퍼하여 서러워만 할 것인가.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 없음을 깨달았다.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앞으로 바른 길을 쫓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實迷塗其未遠 (실미도기미원)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그리 멀지 않았다.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이제는 깨달아 바른길을 찾았고,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그릇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舟遙遙以輕 (주요요이경양)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가네,
問征夫以前路 (문정부이전로)
길손에게 고향이 예서 얼마나 머냐 물어 보며,
恨晨光之熹微 (한신광지희미)
새벽빛이 희미한 것을 한스러워한다.
乃瞻衡宇 (내첨형우)
마침내 저 멀리 우리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자
載欣載奔 (재흔재분)
기쁜 마음에 급히 뛰어갔다.
僮僕歡迎 (동복환영)
머슴아이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稚子候門 (치자후문)
어린 것들이 대문에서 손 흔들어 나를 맞는다.
三徑就荒 (삼경취황)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松菊猶存 (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꿋꿋하다.
携幼入室 (휴유입실)
어린 놈 손 잡고 방에 들어오니,
有酒盈樽 (유주영준)
언제 빚었는지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가득,
引壺觴以自酌 (인호상이자작)
술단지 끌어당겨 나 스스로 잔에 따라 마시며,
眄庭柯以怡顔 (면정가이이안)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倚南窓以寄傲 (의남창이기오)
남쪽 창가에 기대어 마냥 의기 양양해하니,
審容膝之易安 (심용슬지이안)
무릎 하나 들일 만한 작은 집이지만 이 얼마나 편한가.
園日涉以成趣 (원일섭이성취)
날마다 동산을 거닐며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門雖設而常關 (문수설이상관)
문이야 달아 놓았지만 찾아오는 이 없어 항상 닫혀 있다.
策扶老以流憩 (책부노이류게)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며 발길 멎는 대로 쉬다가,
時矯首而遐觀 (시교수이하관)
때때로 머리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
雲無心以出岫 (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鳥倦飛而知還 (조권비이지환)
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
影翳翳以將入 (영예예이장입)
저녁빛이 어두워지며 서산에 해가 지려 하는데,
撫孤松而盤桓 (무고송이반환)
나는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이고 있다.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왔노라.
請息交以絶遊 (청식교이절유)
세상과 사귀지 않고 속세와 단절된 생활을 하겠다.
世與我而相違 (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는 서로 인연을 끊었으니,
復駕言兮焉求 (복가언혜언구)
다시 벼슬길에 올라 무엇을 구할 것이 있겠는가.
悅親戚之情話 (열친척지정화)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며 즐거워하고,
樂琴書以消憂 (낙금서이소우)
거문고를 타고 책을 읽으며 시름을 달래련다.
農人告余以春及 (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내게 찾아와 봄이 왔다고 일러 주니,
將有事於西疇 (장유사어서주)
앞으로는 서쪽 밭에 나가 밭을 갈련다.
或命巾車 (혹명건차)
혹은 장식한 수레를 부르고,
或棹孤舟 (혹도고주)
혹은 한 척의 배를 저어
旣窈窕以尋壑 (기요조이심학)
깊은 골짜기의 시냇물을 찾아가고
亦崎嶇而經丘 (역기구이경구)
험한 산을 넘어 언덕을 지나가리라.
木欣欣以向榮 (목흔흔이향영)
나무들은 즐거운 듯 생기있게 자라고,
泉涓涓而始流 (천연연이시류)
샘물은 졸졸 솟아 흐른다.
善萬物之得時 (선만물지득시)
만물이 때를 얻어 즐거워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感吾生之行休 (감오생지행휴)
나의 생이 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已矣乎 (이의호)
어쩔 수 없구나
寓形宇內復幾時 (우형우내복기시)
이 몸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그 얼마이리.
曷不委心任去留 (갈불위심임거류)
어찌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으며.
胡爲乎遑遑欲何之 (호위호황황욕하지)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富貴非吾願 (부귀비오원)
돈도 지위도 바라지 않고,
帝鄕不可期 (제향불가기)
죽어 신선이 사는 나라에 태어날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懷良辰以孤往 (회양진이고왕)
좋은 때라 생각되면 혼자 거닐고,
或植杖而耘 (혹식장이운자)
때로는 지팡이 세워 놓고 김을 매기도 한다.
登東皐以舒嘯 (등동고이서소)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臨淸流而賦詩 (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
聊乘化以歸盡 (요승화이귀진)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하는 대로 돌아가니,
樂夫天命復奚疑 (낙부천명복해의)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이랴.
거칠고 변화 많은 세상에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 걱정할 것이 없으리.
(2023.4.1.)
첫댓글 1912년생인 내 선친은 2000년에 89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는데, 진센린 선생은 한 살 더 많으신데도 2009년에 돌아가셨으니 내 선친보다 9년을 더 사셨으면서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 남긴 업적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훌륭하고 많은 교훈을 남기셨으니 그 분의 삶을 아는 세상 사람들이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얼핏 읽어보고도 세세히 기억되지는 않지만, 읽는 순간에 마음에 울림이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분이 지은 책을 읽는 사람들이 쉽게 못 잊는 것이겠지요.
또 한 마디 더 하겠습니다. 중국의 철학자 진셴린 선생은 중국의 문화 혁명 당시 십 여 년 동안을 질곡의 삶을 사시고도
歸去來兮 (귀거래혜)
자,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라고 읋었는데, 우리나라 장수 철학자 김형석은 평생을 대학교수로 호의호식하며 살기만 했지, 일반 서민들이 얼마나 해방 격동의 시기를 짐승처럼 살아왔던 것을 경험해 보지 못하고 살다가, 말년에는 검찰이라는 칼잡이 폭력 정치인에게 정치에 입문하도록 조언하여, 나라가 황폐해지게 만들어 놓았으면서도, 거기에 대한 아무런 반성도 없이, 지금도 이곳 저곳에 다니면서 자기 자랑으로 강연을 다니면서 나라 걱정은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 너무나도 진셴린 선생과는 대비되는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락은 여물수록 고개를 숙이고, 사람은 늙으면 겸손해진 다는데, 그 늙은 철학자는 자기의 조언으로 용기를 얻은 한 칼잡이가 한 나라를 황폐의 지경으로 몰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으니, 그 늙은이는 노망이 났는지 자기 반성도 할 줄 모르고 있으니 정말 우리나라의 철학자들은 사이비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복장이 터집니다.
지셴린(1911~2009,중국)은 '나라의 스승' 원로학자로 추앙받는다.
지은 저서가 500여종,문화대혁명당시 수감생활(우붕),
새벽4시반에 일어나 독서와 집필생활,
지셴린의 인생에세이~~'지나간다'는 그의 일생 생각 철학 등이 녹아 있다.~~지나간다
지셴린의 철학書 '인생'~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지셴린의 애송시(귀거래사,도연명)~~자,돌아가자
간단히 추려 보았는데 차분히 음미하며 읽어야할 부분이 많다.
인생보감 같은 글이다.